몽유기행시 ＜만휴정晩休亭의 청백淸白＞청백은 말을 앞세우는 게 아니라고 거개 감복은커녕 비웃고

[푸른솔]

만휴정晩休亭의 청백淸白

-윤동재

봄날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과 만휴정晩休亭 마루에서

차 한 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쉴 틈 없이 만휴정을 찾는 사람들

만휴정 마루에는 오르지 않고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에서 김태리와 이병헌이

“합시다 러브 나랑 같이” 하고

사랑을 고백한 외나무다리에 서서

인증샷 찍고 얼른 돌아섰네

보백당이 연신 쯧쯧 혀를 찼네

“우리 집안에 보물은 없으니吾家無寶物

보물이 있다면 오직 청백뿐寶物惟淸白”

외나무다리 위쪽 너럭바위에 커다랗게 새겨놓은 글귀

다들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그냥 돌아가는 게 못마땅하다고 했네

나는 보백당을 위로해 준답시고

20년 가까이 관직 생활을 하면서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요직 두루 거치고

대사성 대사간을 지낸 분이

늘그막에 고향으로 돌아와 만휴정을 세우고

이렇게 쉬고 있는 걸 안다면

청백은 말을 앞세우는 게 아니라고

거개 감복은커녕 비웃고

청백을 보배로 여긴다는 보백당 호號도 비아냥댈 거라며

여길 찾는 사람들 저러는 게 오히려 낫다고 했네

보백당은 내 말을 듣고

으흠 으흠 으흠 으흠 자꾸만 헛기침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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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휴정과 외나무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