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신명기 8,2-3.14ㄴ-16ㄱ 1코린토 10,16-17 요한 6,51-58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 6,51)
그리스도인들은 좋은 날 누군가에게 축하를 할 때, “영육간의 건강을 빕니다.”라는 기도의 말로 인사를 합니다.
이는 건강한 몸이 되는 것, 그 이상의 깊은 뜻을 품은 표현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영적인 건강에 대한 갈망보다는, 육신의 건강에 더 예민하고 집중된 관심을 가집니다.
몸에 좋은 음식뿐 아니라 소위 건강식품이라고 하는 것들까지 추가로 먹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맛집을 검색하고, 또 찾아다니는 것을 자랑삼아 말하기도 하고,
심지어 맛집 순례를 취미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는 분명 예전과는 달라진 식생활 문화의 한 모습이며,
찾아다니며 먹는 즐거움의 내용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그런 반면 영의 음식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모습은 어떤지 생각해 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살과 피를 영혼의 음식으로 내어 주셨습니다.
이는 생명을 살리는 음식으로써 영혼의 청춘, 영혼의 생기를 되찾아 주시는 사랑의 모습입니다.
빈 상자에 보석을 넣으면 보석함이 되고,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통이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내 안에 무엇을 채우는가에 따라 내 모습이 형성됩니다.
정성을 다해 미사참례를 하고 성체를 받아 모시면 내 안에는 주님으로 가득 차서
주님 닮은 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는 특혜를 받는 일이기에
그에 합당한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찬미와 감사로 응답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 방법은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주신 주님처럼,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일입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면 그늘진 곳에서 풍요 속의 빈곤을 살고 있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먹은 힘으로,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줄 때
비로소 나를 통해서도 성체성사가 완성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단 한 순간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아니었던 때가 없었습니다.
통 크게 목숨을 내어놓는 사랑은 인간들을 향한 확고하고도 거룩한 메시지입니다.
맛있고 좋은 음식으로 육신의 건강을 달래는 그 이상으로 영혼의 허기를 채우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들의 실천적인 사랑의 삶은 주님의 허기를 채워 드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부산교구 김두윤 안토니오 신부
***********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신명기 8,2-3.14ㄴ-16ㄱ 1코린토 10,16-17 요한 6,51-58
성체의 삶은 다른 이에게 먹힐 밥이 되는 것이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살아 있는 빵이다.”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말씀을 듣고 병자들의 치유를 원했던 군중에게 예수님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신명기의 말씀을 역설적으로 확인시켜 주십니다.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은 이스라엘의 후손들은 광야에서 40년을 보내야만 하였습니다.
이곳에서 하느님이 내려 주시는 만나를 먹고 므리바의 샘물을 마신 야곱의 후손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믿음을 키웠습니다.
부활 제2주간의 독서에서 성 가우덴시우스 주교는 말합니다.
“빵은 많은 밀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밀알은 바수어져 가루가 되고 가루는 물로 반죽된 다음 불로 구워져 빵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피인 포도주는 많은 포도를 모아서 십자가라는 포도 압축기로 만드신 것입니다.”
다른 이에게 먹히는 생명의 빵이 되기 위하여 그리스 도인들은 성체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중국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일행 14명은
40여 일의 항해 끝에 금강의 강경 땅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그들 중 4명은 한국 교회의 자랑스러운 순교 성인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다블뤼 주교님은 20여 년의 고달픈 여정을 마치고 4명의 동료들과 함께
갈매못에서 순교하시고 서짓골에 묻히셨습니다.
뜻하지 않게 일본 나가사키로 유해가 옮겨지는 과정에서 다블뤼 주교님은
조선에 첫발을 디뎠던 강경에 유해의 모습으로 다시 찾아오셨고(1882년 3월 23일),
이곳에서 블랑 주교님의 유해 확인과 봉인 절차를 밟으신 후 나가사키로 옮겨졌습니다.
그래서인지 강경성당 마당에 전시되어 있는 「탄생」 영화 제작에 쓰였던 라파엘호가
새롭게 느껴졌고, 우리 신앙 선조들이 살았던 성체의 삶을 되새겨 봅니다.
대전교구 정성용 세례자 요한 신부
*************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신명기 8,2-3.14ㄴ-16ㄱ 1코린토 10,16-17 요한 6,51-58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여러분은 누군가와 친해질 때 어떻게 하시나요? 또는 친한 누군가와는 어떻게 지내고 있으신가요?
자신도 알게 모르게 ‘나눔’ 을 실천하고 있지 않나요? 음식을 나눕니다. 마음을 나눕니다.
그렇게 나누는 시간 속에서 가까워지는 관계 또는 상대를 향한 가까운 내 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오늘 맞이한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이
우리 주 예수님의 몸과 피의 나눔을 소중히 새겨보는 날이 되길 빕니다.
오늘 복음은 자신을 생명의 빵이라고 말씀해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들려 줍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살인 참된 양식과 피인 참된 음료로 인간을 구원하실 사랑을 건네십니다.
그렇게 제1독서에서도 말해 주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느님께서 내려 주신 만나를 먹었던 역사를 기억시켜 주십니다.
구약에서의 만나가, 이제는 신약에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새로운 만나’ 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만나’ 가 되시기 위해,
곧 인간을 구원시키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스스로를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 말씀에서 강조하는 것은 예수님 스스로 제물이 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겨봅니다.
그 너머에, 스스로 제물이 되신 그 사랑이, 지금 우리와 닿아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렇게 영원한 생명을 향한 지금의 우리에게도 닿아 있는 ‘살아 있는 사건’ 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요한 6,56).
이와 비슷한 말씀이 한 구절 떠오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 15,5).
라틴어로 ‘communio’ 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영성체’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더불어 ‘친교’ 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맺을 수 있는 열매 또한 삼위일체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친교, 그 사랑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몸으로 친교를 나누는 우리가 되길,
그렇게 하느님의 하나 된 사랑에 가까워지고 동참할 수 있기를 빕니다.
그렇게 제2독서 사도 바오로의 말씀이자 증언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며,
우리 자신과 다른 누군가에게 하느님의 사랑이 깃들길 빕니다.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 (1코린 10,17).
춘천교구 박상진 요셉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에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