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씨 4형제도 금덩어리를 장강에 버렸을까?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고려 말 문신 이조년(1269~1343)의 유명한 시조인 '다정가'이다.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인가, 필자는 눈물토록 아름다운 이 시조를 처음 접한 후 한참동안 시조시인을 꿈꾸었고 오랫동안 문학청년 흉내를 냈었다.(주1)
지금의 서울 서남부와 김포일대의 가난한 농부였던 이조년은 어느 날 형 이억년과 함께 강 건너 고양으로 날품팔이를 가려고 길을 나섰다. 나루터 근처에서 이조년은 금덩어리 두개를 발견하고 둘은 이를 하나씩 나누어 가졌다. 그런데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던 중 이조년은 갑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금덩어리를 강물에 던져버리는 게 아닌가? 형이 깜짝 놀라 그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이조년은 “형님이 없었더라면 그 둘을 다 가질 수 있었을 텐데, 이 황금을 갖는 순간부터 형님이 미워지려 합니다. 이 황금이 우리 형제의 우애를 망치게 할 수 있는 액물이라는 생각이 들어 버렸습니다.” 이 말에 형도 감동하여 황금을 강물에 던져버렸다. 이후 그곳을 '금덩어리를 던져버린 여울'이라는 뜻의 '투금탄(投金灘)'이라고 하였다. 투금탄은 오늘날 서울 강서구 가양동 구암공원 안의 옛 나루터이다. 또한 그곳은 필자가 지금 황금 대신 졸고를 던지고 있는 ‘투고탄(投稿灘)’, '데일리안'(강서구 염창동 소재)과도 지척이다.
필자는 지난 19일(음력 8일)밤, 구암공원을 찾아갔다. 하얗게 핀 배꽃 대신 울울한 아파트 숲을 여드레 반달이 은빛 피를 수혈하고 있었다. 희부연 은하수가 삼경을 가리킬 때까지 서성였다. 중국 최장수부자 류씨 4형제 이야기를 쓰느라 잠 못 들어서였기 때문이다.
중국의 어머니 강, 장강 상류와 장강을 이루는 무수한 물줄기가 실핏줄처럼 얽혀 흐르고 있는 스촨(四川)(주2), 중국의 역대 광역행정구역의 이름에 ‘내 천(川)’자 가 있는 유일한 성인 스촨은 중국에서 나루터가 제일 많기로 이름난 성이다.
스촨 농부의 아들 류씨 4형제도 나루터로 가던 중 형제중 하나가 금덩이 4개를 우연히 주웠더라면?, 류씨 4형제도 장강을 건너면서 한강을 건너던 이조년 형제처럼 금덩어리를 강물에 버렸을까?, 만에 하나 그들도 금덩어리를 장강에 버렸더라면 우리나라처럼 후세에 재물을 버리고 우애를 택한 미담의 설화로 남을 수 있었을까? 투금탄, 재물과 우애는 함께 할 수 없는 걸까? 재물과 우애 중 하나를 버리고 하나만 취해야만 하는, 그 원천모를 양자택일의 강박관념의 강물은 왜 중국대륙과는 달리 한반도에서만 여전히 굽이치며 흐르고 있는 걸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면서 중국의 진정한 갑부, 최장수갑부 류용하오와 그의 형제들 이야기를 계속하고자 한다.
스촨신희망집단의 총수인 류용하오.ⓒ신희망집단 가격 경쟁력보다 품질 경쟁력
류용하오와 그의 형제들은 공장보다 연구소를 먼저 지었다. 1987년말 그들은 200만 위안을 투자하여 시왕과학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이듬해 봄, 그들은 300만 위안을 들여 시왕사료공장을 기공했다. 30여명의 저명한 사료 전문가와 축산학 관련 교수들을 미국과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 폴란드, 홍콩 등으로 연수를 보내고 외국의 전문가를 초빙하고 학술 교류도 실시했다. 추가로 400만 위안이라는 거금이 투입되었다. 연구소 설립과 연구개발비 등에 투자한 금액이 공장건설에 투자한 금액의 2배나 되었다.
류용하오는 이렇게 말한다.
“현대 시장경제에서 기업인은 먼저 품질향상과 신제품 개발에 정력을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기업경영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업의 경쟁력은 흔히 가격 경쟁력과 품질 경쟁력으로 나눈다. 가격경쟁력은 같은 품질을 경쟁자보다 얼마나 싼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고, 품질 경쟁력은 같은 가격에 얼마나 좋은 품질을 제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앞서 애국심보다 경쟁력을 택했던 류씨 4형제는 경쟁력 중에서도 가격 경쟁력보다 품질 경쟁력을 우선적으로 택했다.
중국 내 여타 사료업자들이 품질향상은 내팽개친 채 원가절감에 주력하면서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데만 진땀을 빼고 있던 시절, 류씨 4형제는 원가절감보다는 오히려 품질 향상으로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다른 업체들은 엄두조차 못낸 발상의 전환으로 돌파구를 마련했다. 물론 거기에는 시왕사료의 경쟁상대가 저렴한 국산사료업체가 아니라 품질 좋은 외국업체였던 이유도 있었다.
외제 사료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주요성분은 어분으로 밝혀졌다. 당시 중국산 어분의 질은 국제수준에 비해 형편없이 뒤떨어졌다. 그렇다고 거액의 달러를 들여 어분을 수입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으로 어분을 대신할 것인가?”
류씨 4형제와 시왕사료 연구진은 고심 끝에 번데기를 떠올렸다. 스촨성 농가에 지천으로 깔린 번데기는 풍부한 단백질과 각종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다.
“번데기로 어분을 대체해보자”
그들은 돼지사료 개발을 위해 번데기 가루와 어분을 혼합하는 수백차례의 시험을 반복했다. 물론 단순히 아이디어 차원에만 만족해하지 않았다. 그것을 뛰어넘는 최상의 비결을 찾아내려고 노력한 끝에 번데기와 어분의 배합 황금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외제 사료와의 품질 경쟁력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는 없었다. 이번에 눈길이 닿은 것은 공업용 분유 찌꺼기였다. 그것과 번데기와 어분을 주성분으로 30여 종의 원료를 배합하는 실험이 또다시 수백차례 계속 되었다.
1989년 초에 이르러 이 세상 어디에도 손색이 없는 품질의 ‘시왕 1호’라는 이름의 시제품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에 다시 류씨4형제는 300만 위안을 추가로 투입해 자체의 사료 과립화 기계 등 주요 설비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1989년 말 드디어 연간 10만 톤의 생산이 가능한 국산화 사료 공장이 완공되었다.
15만 마리 메추리 대살육 사건 이후 류씨 형제가 돼지사료 개발에만 투입된 돈은 총 2천 만 위안, 메추리 사업에서 번 돈을 전부 쏟아 부은 거액이었다.
“갈 데까지 가보는 거다. 아무리 우둔한 포수라 하더라도 수백 번, 수천 번 쏘기를 반복하면 언젠가는 목표를 명중할 것이다. 실패를 반복하면 언젠가는 본령에 닿을 수 있다. 이것이 우리 시왕그룹의 역정을 하나로 꿰뚫는 최고의 신조다.”
이 말을 할 때면 시왕그룹 총재 류용하오는 어김없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곤 한다.
다매는 목적, 박리는 수단
시왕1호는 확실히 기존의 사료에 비해 탁월한 장점이 있었다.
첫째, 투자 회수 기간이 크게 단축되었다. 젖먹이 돼지에서 성돈으로 키우는데 과거에 8개월이 걸렸던 것이 3, 4개월이면 족했다. 둘째, 손이 훨씬 덜 갔다. 시왕 1호는 사료에 물을 부어 반죽만 해주면 그만이었다. 끝으로 사료에 투입되는 양곡을 대폭 절약할 수 있었다. 사료의 주성분이 어분과 번데기 가루, 공업용 우유다 보니 사람이 먹을 양곡이 곧장 돼지의 뱃속으로 들어가던 과거의 폐단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류씨 4형제는 시왕1호를 외제 사료와의 경쟁에 출전시켰다. 스촨의 축산농가는 시왕 1호에 우레와 같은 호응을 보였다. 품질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태국의 정따(CP)사료와 비슷했지만 가격은 좀더 저렴했다. 쓰촨성 농민들은 앞 다투어 이 비스킷 맛이 나는 노란색 과립 사료를 돼지에게 먹였다.
류씨 4형제는 양돈가를 직접 방문해 물어보았다.
“요즘 아저씨 댁 돼지들은 잘 커요?”
류용하오는 먼 친척뻘인 류라오우(劉老五)아저씨를 찾아갔다. 쉰 살이 넘은 나이에 살짝 곰보였으나 근면하고 착실한 성격에다 양돈업에 나름대로의 식견을 가진 어른이었다.
그는 긴 의자를 나무그늘 밑으로 옮겨 놓으며 용하오를 반겨 맞았다.
“우리 류씨 집안을 빛낸 용하오가 왔구나, 어서 이리 와 앉으렴.”
“아저씨, 전 일이 있어 곧 가봐야 해요. 아저씨네 돼지가 어떻게 크는지 보고 싶어 왔어요.”
류라오우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용하오, 너 정말 대단한 아이야, 애당초 나는 놈팡이인 너를 싹수있는 녀석이라 알아봤지, 우리 마을, 아니 스촨의 양돈 농가 중에 네 덕을 안본 사람이 있으면 어디 한번 나와 보라지, 저 돼지우리 속을 좀 들여다보렴. 저놈들이 얼마나 반질반질하게 잘 자라고 있는지, 저놈들은 내게 지난 한 달 새에 1천 위안 이상을 벌게 해줬어.”
또 용하오는 한 양돈업자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거기에는 감사의 뜻을 담은 글과 함께 시왕1호의 광고문으로 쓰면 좋을 글이 적혀 있었다.
“1근 먹이면 1근 살찌네.”
용하오는 편지를 여러 번 읽어보다가 무릎을 쳤다.
“바로 이거야, 이걸 광고문으로 써야겠다.”
시왕1호를 뒤이어 출현한 30여종의 시왕사료의 포장지에는 "1근 먹이면 1근 살찌네" 라는 문구가 빠짐없이 새겨졌다. 시왕 1호는 중국전역의 수백만 양돈농가에게 희망을 선사해주는 제일의 사료로 알려졌다.
류씨 4형제는 품질 경쟁력 향상으로 내공을 기른 다음 가격 경쟁력 향상에 들어갔다. 중국 전통 상전(商戰)의 전술 핵무기인 ‘박리다매’로 대공세를 가했다. 판매가는 국산보다 적당히 높게, 외제 사료보다는 1푼이라도 낮게, 이윤율은 0.5~0.7%로 책정했다.
‘박리’와 ‘적은 돈’의 두 개념을 적지 않은 사람들은 ‘박리’를 적은 돈과 똑같이 여긴다. 기실 이것은 오해다. 겉보기에는 한사람의 고객을 통해 벌어들인 돈은 아주 적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의 ‘적음’이 있어야 더욱 많은 고객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적음이 모여 많음이 되고, 한 고객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합하면 큰돈이 된다. 다매가 목적이고 박리는 수단이다. 박리다매는 자금과 상품 회전율을 높여 매출을 신장시키고 경영을 확장시켜 결국 ‘후리다매’의 달콤한 과실을 따먹게 된다. 이윤을 좀 더 많이 빨리 거두려고 욕심을 부리다가는 ‘박리다매’ 아닌 ‘박리소매’ 가 되어 상품도 잘 팔리지 않고 사업도 망친다.
일반적으로 중국 제품은 품질에 비해 값이 싸 환영받아왔다. 그러나 먼저 값에 비해 품질이 좋은 상품을 생산하는(품질 경쟁력)기업이 이제 값도 싼(가격 경쟁력)박리다매 전략까지 실시했던 것이다. 2012년 현재 시왕사료(둘째형 류용싱의 동팡시왕 포함)가 중국 사료시장의 70퍼센트 이상을 점하는 세계적인 사료메이커로 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2001년 12월. 중국이 WTO가입했을 당시, 중국중앙TV대담프로에 출연한 중국의 각계명사들은 입을 모아 “10년 후 중국제는 여전히 싼데다가 품질 경쟁력마저 갖출 것이다. 그때 세계 시장은 Made in China로 평정되어 갈 것이다”라고 서로 웃어가며 맞장구를 쳐댔다. 필자는 간지러움과 함께 소름이 돋는 괴이한 느낌을 떨쳐버리고 싶었다. “저 참을 수 없는 중국인 허풍의 무거움이여! 설령 품질경쟁력이 올랐다 치자, 그러면 가격도 올라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겠지, 10년이 아니라 100년을 더 기다려도 그날은 쉽게 오지 않을 거야” 라며 TV채널을 다른 데로 돌려 버렸다. 그렇지만 뭔가 찜찜한 여운이 혜성의 꼬리처럼 길게 남았다.
그런데 요즘 필자는 경악스러운 가성비의 샤오미를 비롯한 무수한 ‘대륙의 실수’들을 보면서 섬뜩함에 몸을 떤다. ‘부지피부지기 백전백패’의 비극적 결말이라는 망측한 상상을 지우려고 뇌리의 TV채널을 돌리려는 듯 고개를 좌우로 강하게 흔든다. 하지만 한중FTA는 우리나라 내로라할 혜안과 식견을 갖춘 전문가들이 지혜를 한데 모아 체결했으니 ‘지피지기 백전백승’의 성과를 거두리라 축원한다.
아이디어를 진정한 현실로 만든 시왕그룹
1992년 9월 시왕그룹이 창립되었다. 맏형 용엔은 이사회주석, 둘째형 용싱은 회장, 셋째형 용메이는 사장, 그리고 언변이 제일 좋은 막내 용하오는 총재 겸 법인대표(주3)가 되었다.
“새로운 사상이나 아이디어만 있다고 온종일 시위해서는 안 된다. 저마다 훌륭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이 새로운 사상과 아이디어를 기업경영 속에 응용하고 실천하는 가에 달려있다. 아이디어 자체는 상당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아이디어는 필경 아이디어일 뿐이다.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아이디어를 진정한 현실로 만드는 것이다. 시장을 확장하려면 반드시 상품의 질을 높이되 원가를 절감해야 한다. 서비스가 첫째이고 판매는 둘째이다. “판매가 곧 서비스다”는 이 말은 ‘시왕’의 가족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제일 덕목이다. 서비스는 질을 중히 여기면서도 양으로 승리를 획득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개발은 생산력 증대의 핵심이다. ‘시왕’이 계속 발전하려면 반드시 과학기술 분야에서 최고를 쟁취해야 한다. 우리 중국은 농업대국이다. 풍부한 농업자원이 있다. 따라서 ‘과학기술’과 ‘자원’ 두 가지는 ‘시왕’의 영원한 언덕이자 배경이다.”
류용하오는 시왕그룹 창립식 개막사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그의 개막사는 오늘날까지 전체 시왕그룹의 핵심정신이 되고 있다. 시왕그룹의 탄생은 류씨 4형제의 사업에 무한한 생기를 불어 넣었다. 특히 류용하오는 이듬해 1993년 3월 제8대 전국정치협상위원으로 당선되었고, 같은 해 10월에는 전국공상연합회 부주석으로 취임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사상 최초로 민간기업인이 정치계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당과 정부의 인사가 기업체의 최고경영자로 임명되어온 정통 사회주의 체제하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1995년 류씨4형제는 ‘시왕’의 구조를 조정하여 각자 역할 분담을 했다. 큰형 용엔은 따루시왕을 창립하여 전자부문을, 셋째 용메이는 화시시왕을 창립하여 부동산 개발을 전담하기로 했다. 둘째 용싱과 넷째 용하오는 시왕의 주력업종인 사료와 기타 업종을 장강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나누었다. 장강 이북은 용싱이 맡아 ‘동팡시왕’을, 장강 이남은 용하오가 ‘난팡시왕’을 각각 창립했다. 1997년 용하오는 다시‘ 남방시왕’을 확대개편하여 ‘신시왕그룹(新希望集團)’을 재창설하였다. 동팡시왕은 상하이에 본사를, 신시왕은 고향 스촨청두에 본사를 두었다. 그러나 이 모든 시왕은 여전히 시왕그룹의 이름이라는 큰 지붕 아래 들어 있다. 1990년대 말 이후 2015년 현재까지 시왕은 부동산, 전자, 금융업계에 진출해 착실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있다.
류씨4형제의 3대 성공전략
중국최장수 갑부이자 대표적 모범가족기업인만큼 성공비결은 많다. 지면 관계상 류씨 4형제의 성공전략 3가지만 추려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첫째, 정능생혜, 목적을 정해야 지혜가 열린다.
이 중국식 선택과 집중 경영전략의 본령은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을 버리는 것, 즉 버려야 구하리니"에 있다. 완수한 과업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버린 일에 대해서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한다. 기업가의 지혜는 정할 ‘정(定)’자를 떠날 수 없다. 아주 작은 중심점 한 개를 찍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작디작은 메추리알 사업부터 출발하여 돼지사료생산기업으로 성장했다. 거기서 다시 농축산 생산 판매 일원화 사업을 출발점으로 삼아 금융, 부동산, 화공, 낙농업, IT 등 다양한 산업으로 동심원을 그리듯 사업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중국 기업가들은 대부분 부나방처럼 단지 자기가 좋아하는 불(업종)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몸이 타들어가는 것조차 모른 채 불 주변을 맴돌다 재가 되었다. 그러나 류씨 4형제는 돼지우리를 확고부동한 중심점으로 삼아 중심점에서 외곽으로 동심원을 그리듯 착실히 기업영토를 확장했다. 중국인 대부분은 ‘류용하오’ 하면 제일 먼저 “아, 그 양돈업자!” 라고 반응한다. 하지만 류용하오는 ‘양돈업자’, 꿀꿀, 돼지우리 냄새 배인 듯한 이미지를 오히려 즐긴다. “돼지투자가 황금투자보다 좋다. 우리 중국인은 황금은 없어도 되지만 돼지고기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류씨4형제는 축산업으로 시작하여 사료업에 뿌리를 내렸다.
시왕그룹의 국제화전략 중심 역시 사료업이다. 금융, 부동산, 화공, IT 업종이 각광을 받을 때도 그들은 사료업과 밀접한 낙농업을 제2의 주업종으로 선택하였다. 낙농업의 유제품은 축산업에서 나오며, 축산업의 대부분은 사료업에 의존한다. 류용하오는 민영기업그룹으로서는 최초로 중국공상행정국에 등록하였으며 최초로 상하이 증시에 상장하였고 중국최초의 민영은행인, 민셩은행(民生銀行) 창립도 하였다. 류씨 4형제가 손대는 업종마다 흔들리지 않고 연전연승하는 비결은 사료업을 중심점으로 확정한데서 출발하는 것이다.
둘째, 고요한 물의 흐름이 깊어 바다로 나간다.
얕은 산골짜기 물은 졸졸 흐른다. 그러나 큰 강의 깊은 물은 고요하게 바다로 흘러간다. 깊고 큰 뜻을 품은 자는 요란을 떨지 않고 정중동하며 성장한다. 집중과 확장은 일견 대립적인 개념이다. 류용하오는 이 둘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킨 기업전략을 구사하였다. 그는 왕년의 전설적인 인물 위줘민(주4)이 중국중앙TV에 나와서 다치우좡(大邱莊)은 세계최대 농장으로 미국을 추월하였다고 자랑을 늘어놓았을 때 일찌감치 ‘현대판 우물안 개구리 기업가’ 의 비극을 예감하였다.
류용하오는 세계 저명기업 총수들의 시간 활용법을 참고삼아 자신의 이상적인 ‘1년 3등분 시간활용법’ 을 제정, 실천하고 있다. 1년 중 5일만 쉬고 나머지 360일을 3등분한다. 120일은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경영전략 수립과 이의 제도화작업에 할애한다. 120일은 기업내부 조직관리와 주요업무처리의 집행을 진두지휘하는데 쓴다. 나머지 120일은 해외출장에 활용한다. 류용하오는 야후의 창업자 제리 양에게는 창업자의 자세와 스트레스의 참 의미를,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전CEO 젝 웰치에게는 사람을 감별하는 법과 고용원칙 등을 배웠다.
제리 양은 자신이 동업자보다 겨우 3개월 정도 앞섰다고 했다. 악착같이 노력하지 않고 끊임없이 전진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추월당할 것이다. 경쟁상대보다 한 단계 높은 계단으로 올라가기 위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제리양은 그에게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일수록 성공한 사람이라고 귀띔해주었다.
젝 웰치는 사업파트너를 선택하거나 인재를 초빙할 경우 재덕겸비, 후덕무능, 재승박덕, 무능박덕, 4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여 대처한다고 조언했다. 젝웰치는 재덕겸비형은 신뢰중용하고, 후덕무능형은 절차탁마시키고, 재승박덕형은 경이원지하고, 무능박덕형은 촉수금지, 즉 무기한 단교한다고 했다.
셋째, 깊은 못을 마주한 것처럼, 살얼음을 밟는 것처럼, 안전제일
실패는 쉽지만 성공후의 실패는 더욱 쉽다. 성공은 어렵지만 성공의 관리 더욱 어렵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듯 개미구멍에 방죽이 무너진다. 자만과 방심은 기업의 무덤이다. 단도처럼 짧은 성공의 쾌감 끝에 장검처럼 긴 실패의 고통으로 신음하는 중국 기업가들, 성공의 저주는 다음 4가지 경우에 어김없이 내려진다. 첫째, 성공의 흥분으로 정신이 혼미해져 지뢰를 뜀틀로 착각하고 무작정 뛰어드는 경우, 둘째, 절식할 때 과식하고 비움을 기피하고 채움에만 몰입하는 경우, 셋째,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창조와 근면이 오른 후부터는 타성과 권태로 변질되는 경우, 넷째, 리더 1인의 독선과 오만에 빠져 타인의 아부와 맹종 또는 환멸과 배신을 유발하는 경우,
류용하오는 이들 기업의 4저승사자 출현의 효과적인 억제책은 의법치사, 즉 기업을 제도로 다스리는, 시스템 완비와 함께 깊은 못을 마주한 것처럼 살얼음을 밟는 것처럼 신중을 기하는 경영전략의 수립과 그 실천이라고 강조한다. 시왕그룹의 사업타당성 분석과정은 어렵고 복잡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청두화공과 화룽화공을 인수합병할 때 류용하오는 무려 5차례나 기술 및 시장 검증회의를 직접 주재하였다. 류용하오는 자신을 포함한 어느 누구의 사적 의견을 믿지 않는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고 비판하고 또 비판한다. 의심과 비판의 여지가 완전히 없어질 경우에 프로젝트 추진을 최종 결정한다. 주요경영정책결정은 총재 1표로 절대 통과할 수 없으며 단 1 표만으로 부결하도록 제도화했다. 경영자의 패닉 브레이크 작동에 의해 기업이 미끄러지고 전복하는 사고위험의 방지를 위한, 기업경영의 ABS브레이크시스템을 개발한 것이다.
중국 최장수 갑부 류씨 4형제 劉永好 劉永言 劉永行 劉永美.ⓒ신희망집단 윷가락 네 짝이 똑같아요, 류씨4형제도 똑 같아요
류씨 4형제의 외모는 친형제간이지만 언행은 일란성 4쌍둥이 같다. 한 장갑안의 네 손가락처럼 크기와 모양, 맡은 역할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류씨 4형제는 덕망과 학식, 근면 성실, 겸손 검소, 친화적 리더십은 물론, 헤어스타일, 옷차림, 식성 등 심지어 주말의 식사는 아내와 함께 먹는 습성까지도 같다.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윷가락 네 짝이 똑같아요,” 에다 “류씨4형제가 똑같아요”를 덧붙여도 괜찮을 정도이다.
“나는 하루에 100위안 이상은 절대 쓰지 않아요, 유명브랜드가 뭔지도 모르고요, 그런 것은 신경조차 쓰지 않아요.”
중국의 진정한 갑부, 류용하오의 말이지만 그가 말하는 ‘나’는 대부분 ‘우리 류씨 4형제’를 가리키는 의미나 마찬가지이다.
CCTV 대담프로에 나온 류용하오에게 진행자가 물었다.
“총재님의 성공 비결을 한마디로 말씀해주세요?”
“항상 깨어있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매일 12시간씩 매년 5일만 쉬고 360일 일하는 각오로 살아 왔습니다. 사람이란 타성에 빠지기 쉬운 동물이지요. 사람은 후퇴할 수 없는 길에 몰려서야만 자신이 모든 지혜와 재능을 발휘하게 됩니다. 외부환경이 어떻든 저희는 항상 최하의 상태에 있다고 끊임없이 자기암시를 가합니다. 항상 깨어있기 위해서이지요.”
“시왕그룹의 사훈은 무엇인가요?”
“성(誠), 신(信), 정(正), 일(一), 즉 성실한 태도와 신용을 근본으로 정당하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제일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지금 IT산업 등 첨단산업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가축사료가 주업종인 시왕그룹의 주력업종을 첨단산업으로 전환할 계획은 없는지요?”
“허구한 날 신경제만 중시하고 전통경제를 등한시한다면 어떻게 먹고 입고 살 수 있겠습니까? 전통경제가 없으면 새로운 희망도 없어요.”
시왕그룹 산하에는 모든 계열사의 구내식당에는 간부식당이 없기로 유명하다. 총재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구내식당에서 평사원들과 같이 점심을 먹는다. 총재의 식사 속도는 제일 빠르다. 스촨농부의 아들답게 단 한 톨의 밥알도 남기지 않는다. 그들이 평소에 가장 즐기는 메뉴는 샥스핀(상어 지느러미)나 제비둥지, 바다가제요리 등 산해진미가 아니라 마파두부와 회이궈로우(제육볶음)등 스촨의 전통 대중음식이다.
류씨 4형제는 양복을 잘 입지 않는다. 그들이 평상시에 즐겨 입는 T셔츠와 바지, 구두는 모두 합쳐도 1인당 300위안(약 5만 9천원)이 넘지 않는다. 그들의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은 보통 중국사람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현재 류씨 4형제의 개인재산 총합은 약 120억달러(2015년 중국갑부 순위 샤오미의 레이쥔에 이은 제7위(주5), 2001년 제1위, 20년간 10위권 내 유지,* 한국최고갑부 이건희 110억 달러)가 넘는 글로벌 슈퍼리치라는 사실을 그들의 외양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올해 만 64세의 류용하오는 머리카락이 이마를 가린 중학생 머리에 염색은 물론 무스나 스프레이도 바르지 않는다. 담황색 점퍼를 걸치고 싸구려 검은색 구두를 즐겨 신는다. 40년 세월 한결같은 헤어스타일과 패션이다.
류용하오는 2005년, 15년 넘게 타고 다니던 1989년 형 산타나(우리나라 소나타급)를 눈물을 머금고 벤츠로 바꿨다. 산타나가 에어백 기능이 없는 등 안전상에 문제 있으니 안전성이 보완된 탈 것으로 바꿔주시라는 주위의 읍소 때문이었다. 류씨 4형제는 비행기를 탈 때 퍼스트클래스는 물론 비즈니스 클래스도 아닌 이코노미 클래스만 고집한다. 자가용 비행기를 보유한 왕젠린(2015년 제1갑부)이나 마윈(2014년 제1갑부)과는 딴판이다.
류씨 4형제에게 술과 담배는 평생에 한 번도 입에 대어 본 적을 만큼 거리가 멀다. 그래서 “간은 상해도 좋으니 정은 상해서 안 된다.”는 주당들의 본거지 산둥이나 동북3성을 관할범위로 하고 있는 동팡시왕의 류용하오는 사업의 최대 애로사항의 중의 하나를 자신의 비주류 소속이라는 점을 든다. 그들은(배우자까지 포함) 춤과 노래 마작도 못하며, 연예계 스타와 명품에 어떠한 관심도 흥미도 없는 멍텅구리들이라고 자처하고 있다. 또 실제도 정말 그렇다.
류씨 4형제는 잘난 척, 있는 척, 아는 척, 높은 척하지 않는다. 그들은 욕설을 하거나 험담을 하거나 큰 소리로 호통을 치지 않는다. 항상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를 담고 언행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하여 상대방을 불쾌하지 않도록 애쓴다. 시왕그룹의 임직원들 대부분은 류씨 4형제에게 공포나 타성에서 나오는 복종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복종을 하고 있다고 사석이나 공석에서나 입을 모은다. 류씨4형제의 성씨가 덕치형 군주의 모델, 촉나라의 유비(劉備)나 한고조 유방(劉邦)과 같은 모금도 유씨(중국 4대성의 하나)의 후예라서 그럴까? 라며 우스운 상상도 해 본다.
필자가 좀 삐딱한 각도로 보기엔, 류씨 4형제는 먼 후일, 대부분 좋은 면만 부각하는 학생용 위인전의 인물로 적합할 것 같다. 후세의 작가들도 류씨 4형제의 인생궤적에 억지로 미화할 부분이 별로 없어 쓰기에도 수월할 것 같다. 반면에 성인용 인물전의 대상으로는 마치 공자 왈 맹자 왈 성현의 전기를 읽는 것 같아 너무 밋밋하고 따분하여 인기가 없을 것 같다.
중국인은 배고픔은 참지 못하나 배 아픈 것은 잘 참는다
“학문은 세상의 모든 마침표를 물음표로 바꾸는데서 시작한다.”
이는 평소 말은 잘 믿으나 글은 잘 믿지 않는 기벽을 가진 필자의 '학문연구 기본법' 제1조이다.
종교와 학문은 준별되어야 한다. 종교는 “믿습니다!”로 출발할 수 있지만, 학문은 “묻습니까?”로 출발해야 한다. 평생 남의 말을 잘 믿어 잘 속아 온 필자는 어찌된 셈인지, 신문이나 잡지속의 글은 물론 교과서나 심지어 사전과 법전, 지도 속의 글과 사진조차 잘 믿지 않는 괴벽이 있다. 이러한 ‘문자 사진 의심증(?)’ 때문에 여태까지 사는데 말 못할 애로사항이 많았다. 고립과 고독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러한 ‘문자 사진 의심증’ 덕분에 필자는 교과서를 비롯한 오만 군데에 실려 있었던 ‘윤봉길의사 체포시 사진’의 조작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고, '데일리안'의 협조와 지원 덕분에 이어도의 중국측 기점도 바로잡아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절실함을 호소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역사와 지리교과서를 바로잡은 사람은 필자 말고 또 누가 있는가? 하는 자긍심 하나로 살아왔고 또 살아갈 것이다. 여생도 마침표를 물음표로 바꾸면서 살아갈 것이고 죽는 날도 그러다가 죽을 각오이다.
이러한 물음표 마니아 필자인데 중국 기업가 이야기를 하면서 무엇을 주저하랴. 류용하오는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졸저들에 등장하였던 10명의 중국부자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부자이다. 2002년 당시 필자는 류용하오 형제를 칭찬 7, 비판 3 비율로 써야지 작정했었는데 이상하게도 최대한 지면을 할애하여 최대한 우호적 시각으로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려고 해도 비판을 할 거리가 있어야지, 이번에는 류용하오와 그의 형제들, 낱말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의 마침표를 물음표로 바꿔 재검증하고 갈기갈기 해체하여야지. 류씨 4형제 개개인보다 형제들의 수평관계를 집중적으로 점검하여야지. 뭔가 있지 싶다. 형제는 같은 길을, 같은 보조로, 사업을 개척해 나가왔기 때문에 충돌을 피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불화와 암투, 사달이 날 뻔한 사건이 묻혀 있겠지.
그래서 우선 중국 온라인상의 모든 뉴스와 블로그, 카페 게시 글과 댓글을 전수분석 하듯 샅샅이 훑어보았다. 중국은 최근 구글이나 카카오, 페이스북 같은 해외의 사이트의 접속을 차단해서 접속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 국내인터넷 사이트는 이미 이야기한 동밍주와 왕젠린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앞으로 이야기할 알리바바의 마윈, 샤오미의 레이쥔, 텐센트의 마화텅, 세계중국인 제일갑부 리쟈청 등과 그들의 가족들은 7억 네티즌들이 씹는 껌이요, 저질 욕설받이이자 스트레스 해소의 배설구이다. 그런데 당사자들 대부분은 악성 댓글들에 발끈하지 않고 의연한 태도를 보인다.
중국부자 L은 “졸부라서 죄송해요”라고, 중국부자 W는 “나를 칭찬하는 자는 나의 적, 나를 욕하는 자는 나의 스승이다, 더욱더 심한 욕설을 내게 퍼부어다오 ”라는 댓글 신공을 보이며 오히려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당국도 살인, 강간, 강도, 마약, 납치유괴, 폭파방화, 조폭테러(이들 7대중범죄에 대해 중국형법 제20조 3항은 무한정당방위를 인정하고 있음)와 국가최고지도층과 그들의 가족, 국가분열 및 반란혐의 등의 중범죄와 직간접으로 관련된 건 외는 거의 방치수준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물론 예의주시, 엄중감시하고 있을 것임).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익명의 욕설 해방구를 일정부분 용인해주는 유화책이 중국의 IT산업 급성장의 동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류용하오와 그의 형제들에 대해서는 “시왕 총재님 형제들은 모두 너무 검소한 생활을 하시어 탈이에요, 그 많은 재산으로 이제 맛있는 요리도 먹고 비싼 옷도 입고 좋은 차도 타고 다닐 만 하지 않습니까? 이제 좀 쓰세요” 라는 아부 반 찬양 반 일색이다. 간혹 부정적 글도 있지만 그것은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지 류씨 4형제에 대한 비판은 아니었다.
형제는 안에서는 싸워도, 밖에서 모욕하면 함께 그것을 막는다. -
후계자와 상속인 문제는 중국의 싱크홀, 시한폭탄, 블랙홀
온라인에서 찾을 수 없다고 쉽게 포기할 필자가 아니다. 지난 주 국제회의 주제발표차 중국출장기회를 이용하기로 했다. 7층 대형빌딩이 통째로 서점인 베이징의 시단투수따샤를 비롯한 오프라인 서점은 물론, 베이징 뒷골목의 구멍가게에서 파는 3류 잡지도 가리지 않고 정보를 수집해보았다. 그 결과 필자가 얻은 깨달음을 요약하면 이렇다.
중국인은 배고픔은 참지 못하나 배 아픈 것은 잘 참는다. 부자들을 배 아파 하지 않는다. 부자들이 남보다 몇 십 배의 노력으로 돈을 벌였으니 그만큼 쓰는 것에 욕하지 않는다. 다만 편하게 돈을 벌고 주제넘게 방탕하게 쓰거나, 잘난 척, 있는 척, 아는 척, 높은 사람과도 친한 척 하는 부자들을 비판한다. 그런데 류씨 4형제는 강산이 변하는 세월에 나이는 10여살, 재산은 10여배 늘은 것 외에는 그들의 이름 끝 자를 모은 언행미호, 그대로 언행과 우애는 여전히 아름다고 좋다. 류씨 4형제의 우애와 처신은 찢어지게 가난했을 때나, 중국최장수 갑부가족이 되어서나 의구하다. 그래서 류씨 4형제의 시왕그룹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가리지 않고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공인하는 인민대표 모범가족기업이다.
“우리나라 전래동화 ‘흥부와 놀부’와 비슷한 중국의 전래동화가 있으면 알려주세요, 후사하겠습니다.”
이는 필자가 오래 전 개인 블로그에 올려놓았던 광고문이다. 여태껏 답이 없다. 30년 중국학도의 한 사람으로서 필자는 '흥부와 놀부'처럼 ‘놀부 = 부자 = 나쁜 놈’ vs ‘흥부 = 빈자 = 착한 사람' 이라는 권선징악적 대립구조를 담은 중국의 동화나 설화는 물론, 그 비스무리한 것조차 듣도 보도 못했다. 이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는 다음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류씨 4형제 개개인의 점(点)과 형제사이의 수평관계 선(線)에서 이렇다 할 허점을 찾지 못한 필자가 입술을 깨물고 물음표 붙이기 과업을 접기 일보직전, 마지막으로 수직관계 선을 아래쪽으로 한번 그어보았다. 그런데, 아, 싱크홀!, 폭이 일망무제하고 깊이가 천곡지심한 싱크홀을 발견했다.
그 초대형 싱크홀은 다름 아닌 1가구 1자녀 정책이 나은 치명적 폐해, 선택의 여지가 없는 후계자 선정, 1인 상속인 문제이다. 이는 비단 류씨 4형제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의 모든 기업가들은 물론 중국 전체의 명운이 달려 있는 문제이다. 이 문제는 중국의 대변혁을 내장하고 있는 시한폭탄, 아니, G2시대 중국의 모든 빛을 일순에 빨아들여버리는 ‘블랙홀’이 될지도 모른다.
상속세율 중국 0% 대 한국 50%, 괜찮은가?
지금 필자는 남양주 덕소 집 거실에 앉아 한강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다. 음력 시월 아흐레 반달은 늦가을 한강의 밤을 밝히는 몫을 네온과 가로등 각종 문명의 불빛에 내어주었더라도 여전히 교교하고 아름답다. 강 건너 둔치 미사리조정경기장을 건너 불야성의 하남시 그 너머 롯데월드타워의 상층부가 비죽이 솟아나온다.
류씨 4형제의 희망(希望)그룹, 신씨2형제의 롯데(LOTTE)그룹, 두 나라의 가족기업이 나란히 가슴속 수평선에서 떠올랐다. 갑자기 울화 같은 게 치밀어 장식장 속의 52도짜리 독주 한 병을 노려보았다. 오래전 쓰촨의 나루터 도시 이빈을 지나가다 들고 온 우량예이다. 병째로 들이켜 며칠을 속살까지 취하고 뼛속까지 울고 싶은 욕망을 겨우 참아내었다.
다음 주, 명징한 정신으로 두물머리 다산 정약용 생가를 찾아가기 위해서이다. 가서 말없이 글썽이며 반짝이는 진실을 접하고 싶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었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웠던 다산 실학의 결기와 고독에 빙의라도 되고 싶다. 그리하여 류씨4형제의 상속녀 등 중국기업가의 후계자 문제와 아울러 상속세율 0%의 사회주의(?) 중국과 세계최고의 상속세율 50%를 고수하고 있는 자본주의(?) 한국의 절망과 희망을 톺아보고 싶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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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열린 물 갈피마다 튀어 오르는 네 생각은/ 어쩌면 한 무리 새떼로 푸드드 날아/ 빈 가슴 어느 섬 기슭에 초승달로 걸리겠다. ‘바닷가에서’, (1979년 샘터 시조상 수상작) 빛 속에 소리가 샌다. 저 왁자한 빛의 소리 / 귀 안에서 귀 밖에서 어금니 사이에서/ 무수한 깃발 푸들대다 흰 비늘을 털고 있다. ‘빛’ (1998년 제1회 공무원문예대전 장관상 수상작)
2)‘四川’의 사(四)는 4개가 아니라 동서남북 4방을 가리키는 것이다. 즉 사천성은 사방팔방에서 무수한 내천들이 흐르는 비옥한 성이라는 의미이다.
3)중국 2005년 「회사법』에 의하면 회사의 최고총수는 직책의 명칭에 관계없이 법인대표이다.
4)거액의 횡령과 배임, 부정부패혐의로 당국에 체포되어 현재 무기징역을 살고 있음,
5)http://www.forbes.com/billionaires/#version:static_country:China
글/강효백 경희대 중국법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