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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열풍 사랑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독도침탈 & 역사왜곡 Re:기자, 기준, 위만에 대한 얘기~~ ^^
일심 추천 0 조회 126 05.10.28 15:06 댓글 13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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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5.10.28 16:02

    첫댓글 1. 논어에 공자가 "기자가 동쪽에 가서 살았다"라는 언급은 있지만.. 동쪽 어디라는 말은 없습니다. 기자가 조선으로 갔다면 공자가.. 조선이라는 명칭이 아닌 두리뭉실하게 동쪽으로 갔다!! 라고 말했을리는 없죠. 따라서 논어의 전거는 기자동래설의 근거로 삼을 수 없습니다.

  • 05.10.28 16:09

    사기에 보면 ['만'은 연나라사람이며, 성은 '위'씨로 조선을 쳐서 스스로 왕이라 했다.]라고만 되어있지.. 조선의 왕이 기씨인지 단씨인지 언급되어있지 않습니다. 위만이 찬탈한 조선의 왕위가 원래 기자의 후손들이 이은 자리였다면.. 사마천이 그것을 언급하지 않을리가 없죠. 역시 기자동래설의 근거가 못됩니다.

  • 05.10.28 16:07

    위에 언급하신 출처들에.. 기자가 조선으로 갔다.(왕이 되었다거나.. 조선후로 봉해졌다!) 라는 기술은 한서지리지 이전에는 없습니다. 기자가 활동했을때보다 약 1000여년이 지난 후에 뜬금없이 기자가 조선에 봉해졌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위략에서는 조선후, 삼국지위지에선 아예 왕이 된것처럼 각색이 됩니다.

  • 05.10.28 16:09

    후대에 갈 수록 그 위치가 상승하는 것은 다분히 상상이 가미된, 혹은 어떤 목적하에 진행된 위작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듯 기자동래설의 원전이 될만한 사서에서조차 조작 혹은 변조의 가능성이 농후한데 그 뒤에 언급되는 내용들은 거론할 필요가 없습니다. -_-;;

  • 05.10.28 16:11

    2. 은-주의 강역문제에서.. 은나라나 주나라나.. 황하중류지역을 중심으로 강역이 정해져있었습니다. 장강이남이나 현재의 하북성이북으로는 오로지 다 야만족으로 취급했고.. 춘추 5패중의 하나인 초나라마져도 오랑캐취급을 받았으니.. 춘추이전의 은말~주초의 시기에 지금의 만주 혹은 한반도까지 지리적 개념이 확립되

  • 05.10.28 16:13

    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한 지리적 개념이 존재하던 은말~주초의 시기에.. 은나라사람인 기자가 그 먼 만주나 한반도까지 갔다! 라는 설정 자체가 소설적인 센쓰일 따름입니다.

  • 05.10.28 16:19

    3. 따라서.. 동쪽으로 갔다라는 언급이나.. 은-주당시의 지리적 개념에 기초해서 이해해보자면.. 기자는 실존인물이며 주나라의 봉함을 피해 동쪽으로 간것은 사실일겁니다. 다만 그 동쪽이 만주나 한반도가 아닌.. 산동지역 어디쯤이 아닐까하는 견해가 많습니다. 산동지역을 언급하는 이유는 "1969년에 역시 산둥성

  • 05.10.28 16:20

    . 1951년에 산둥성 황(黃)현 남부촌(南埠村)에서 출토된 8점의 기기(器), 1969년에 역시 산둥성 옌타이(烟臺市)시 남쪽 교외지역에서 출토된 기후정(侯鼎)" 등의 유물등이 출토되었기 때문입니다.

  • 작성자 05.10.28 22:23

    기자가 피해간 위치는 위치는 사서에서도 나오고 있어요. 다만 여기에 일심이 안올렸을 뿐이죠. 기자가 간 곳에 대한 사서의기록을 올려놨어요 ^^

  • 작성자 05.10.28 22:29

    좌검우도님의 유추 - "기자가 간 곳은 산동성지역 어디쯤이다"라는 것은 일심도 동의해요. 일심이 올려놓은 자료에서도 산동성의 서화라고 해요. 문제는 위의 글에서도 써놓았지만, 한반도의 평양을 "기준, 위만"조선의 근거지로 보면, 당연히 좌검우도님의 말처럼 구라가 되는 셈이에요.

  • 작성자 05.10.28 22:32

    본문에서도 말하지만 기자문제는 정통성 문제 때문에 계속 걸려요. 기준, 위만을 정통으로 놓고, 평양을 지금한반도로 비정해야 하면 "기자를 외면"해야지 되요. 하지만 반대로 단군조선의 후신을 "기준, 위만"으로 놓지 않고, 북부여ㅡ고구려로 놓으면 문제는 쉽게 풀려요.

  • 작성자 05.10.28 23:03

    한무제에 점령당한 우거왕의 평양을 한반도의 평양으로 놓지 말고, 재야에서 주장하는 당시의 요서(지금의 난하서쪽)지방으로 비정하고, 한반도와 만주는 그대로 북부여-고구려의 강역으로 비정해놓고 보면, 적어도 아예부정할만한 성격은 안된다고 봐요.

  • 작성자 05.10.28 22:36

    은의 기자가 서화에 와서 몇백년이 지나고 후손인 기후(箕侯)부터 기준(箕準)까지 번조선의 왕으로 등극되어 기자조선으로 불리어졌다. 라고 하면 심각한 정통성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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