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경기 성남시 LH(한국토지주택공사) 경기지역본부 강당에서 ‘신흥1구역’ 재개발 조합이 주최한 사업 설명회가 열렸다. 애초 DL이앤씨, GS건설 등 4곳이 참가 의향을 보였는데 정작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건설사는 한 곳도 없었다. 주민 대표들은 30분가량을 기다리다 해당 건설사 담당자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불참 의사를 확인한 뒤 행사를 취소했다. 건설업계에선 “서울과 인접한 수도권 요지에 아파트 4183가구를 짓는 ‘알짜 재개발’이 이렇게 외면받은 것은 처음”이라는 말이 나왔다. 자료=한국은행·국토교통부 그래픽=김성규 부산 최대 재개발 사업인 해운대구 우동3구역(2918가구) 조합 역시 지난달과 이달 두 차례 시공사 입찰을 받았지만, 건설사가 한 곳도 참여하지 않았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가 폭등했는데 조합이 제시한 공사비엔 이런 상황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대다수 건설사가 ‘밑지는 사업을 수주할 수는 없다’며 몸을 사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철근·시멘트·목재 등 자재 가격 급등으로 전국의 굵직한 재개발 사업지에서 시공사를 못 구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아파트를 짓는 데 드는 비용이 늘었는데, 조합 등 사업자가 제시하는 공사 단가가 낮아 건설사들이 일감을 마다하는 상황이다. 대형 정비 사업 수주를 위해서 경쟁사를 비방하거나 금품이나 향응 제공 같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영업을 서슴지 않던 과거 모습과 대조적이다. ◇공사비 급등에 일감 포기하는 건설사들 건설업계는 애초 성남 신흥1구역의 공사비가 최소한 3.3㎡당 500만원대 초중반으로 책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조합이 ‘평당 495만원 이하’를 제시하자 사업 수주를 준비하던 담당자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 가격에는 못 맞춘다”며 입찰을 포기했다. 신흥1구역과 함께 성남을 대표하는 재개발 사업으로 꼽히는 ‘수진1구역’(5259가구)도 여러 대형 건설사가 관심을 보였지만, 공사비가 예상보다 낮게 책정되자 지난달 입찰에 아무도 참여하지 않았다. 한 건설사 영업 담당 임원은 “철근이나 시멘트 등 원부자재 가격이 앞으로 더 오를 수도 있기 때문에 수주에 앞서 공사비 내부 검증이 이전보다 훨씬 까다로워졌다”고 말했다. 이미 시공 계약을 맺은 현장에서도 공사비 때문에 갈등을 빚는 사례가 많다. 국내 최대 재건축 단지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은 시공사와 조합 간 공사비 증액 갈등 때문에 한 달 넘게 공사가 중단되고 있다. 은평구 ‘대조1구역’, 대전 ‘용두동2구역’ 등도 공사비를 확정하지 못해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자재 값 22% 올랐는데 건축비 인상은 8% 그쳐 한국은행이 조사한 건설용 재료 생산자물가지수는 작년 3월 113.28에서 올해 3월 138.73으로 22.46% 올랐다. 철근, 목재 등 주요 자재는 상승률이 30%가 넘는다. 하지만 국토교통부가 정하는 기본형 건축비는 같은 기간 8.03% 오르는 데 그쳤다. 기본형 건축비는 지자체가 아파트 분양가 심의에 활용하는 주요 지표다. 건축비 상승률도 낮지 않은 수준이지만, 자재 가격 상승 폭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이다. 실제로 시멘트의 경우 2020년 1t에 6만700원이던 것이 지난해 6만2000원으로 올랐다가, 국제 유연탄 가격 급등과 맞물려 올 들어 두 차례 더 인상돼 9만800원까지 올랐다. 건설업계에선 분양가 상한제 등 문재인 정부 때 강화된 규제가 현실에 맞는 공사비 책정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꼽는다. 조합 등 재건축·재개발 시행사는 공사비가 인상된 만큼 분양가를 올려야 수지가 맞는데, 정부의 분양가 규제 때문에 반영할 수 없다고 불만을 호소한다. 서울의 한 재개발 조합 관계자는 “지난 정부에서 주변 시세와 전혀 맞지 않는 분양가를 강요한 탓에 사업 일정이 하염없이 미뤄진 사례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 관련 비용이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분양가를 지나치게 규제하면 주택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분양가 관련 제도를 손볼 예정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분양가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해 되도록 빨리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