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 7일 [음력 : 2006년(丙戌年) 2월(戊子) 8일(乙未)]
오늘의 관심뉴스는 중학교 중퇴자의 자수성가한 내용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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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중퇴` 시골소년 대학교수 됐다 [파이미디어 2006.03.06 14:36:05]
"배우지 못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어요. 단지 제 삶에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 했을 뿐입니다."
37년 전 중학교를 중퇴한 시골 소년이 대학교수가 됐다. 화제의 주인공은 부산정보대 호텔조리과 전임교수로 임용된 박세만(52)씨.
박씨는 충북 영동군의 조그만 시골에서 태어났다.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중퇴한 그는 15세의 나이에 서울로 올라왔다. 중앙시장에 있는 한 완구점에 점원으로 취직한 그는 "기술 하나라도 배우기 위해" 제과점에 들어갔다.
배고픈 시절이었다. 3년 여 제과점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오로지 빵 만드는 기술을 익혔다. 이후 호텔에 취직한 그는 작업오더에 적혀 있는 영어를 보고 난처했고, "남들보다 뒤쳐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해" 곧장 영어학원 야간반에 등록했다. 밤 9시부터 시작되는 강의를 4년 동안 들었다. 이것도 모자라 3년 동안 내리 일어학원에 다녔다.
1973년 서울 그랜드호텔을 시작으로 소피텔앰버서더호텔, 현대호텔 등을 두루 거친 그는 지난 2002년 대한민국제과기능장 자격을 얻었다.
"호텔은 겉이 화려하지만 이를 만들어 가는 백오피스에서의 일은 다른 어떤 일보다도 힘듭니다. 특히 빵을 만드는 작업은 정성과 혼이 담긴 작업이지요."
박세만씨는 2003년 8월 부산 해운대에 `쿠켄하임` 6호점을 열었다. 박씨는 부산에서도 6명 밖에 없는 제과제빵 분야의 장인이다. 국가에서 인정하는 최고의 자격증인 `기능장`이란 영예는 그의 뚝심과 노력이 만든 결과다.
그는 과 봉사동아리 ‘다도세’(다같이 도움을 주는 세상) 학생들과 함께 부산시 북구에 있는 중증 장애인 시설 ‘평화의 집’을 찾아가 음식을 대접한다. 월 1회 독거노인 20명을 학교로 초대해 점심을 대접하는 날이면 음식코치를 하느라 구슬땀을 흘린다.
"학생들에게 빵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기보다 최선을 다해 만드는 정신을 가르치고 싶다"는 박세만씨. 그가 만든 음식에 손길이 한 번 더 가는 이유는 그 속에 `행복한 빵장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 박세만 교수가 학생들과 함께 평화의 집에 가져 갈 음식을 만들고 있다.) [파이뉴스 백민호 기자] mino100@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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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0년 화폐속의 인물 236(체코-마사리크) 태어남
체코 5,000Korun(1999년 발행)
마사리크(Toma (Garrigue) Masaryk )1850. 3. 7 ~ 1937. 9. 14.
체코슬로바키아의 건국 공로자, 초대 대통령(1918~35).
모라비아 출생. 마부의 아들로 태어나 고학으로 1876년 빈대학·라이프치히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였고, 1882년 프라하 보헤미아대학의 철학교수가 되었다. 학자로서 러시아사상 연구와, 당시 새로운 학문이던 사회학에 공헌하였으며, 교직에 있으면서 잡지편집인으로 활동하였다. 1890년 청년체코당에서 오스트리아 제국의회의 의원이 되었으며, 뒤에 독자적으로 소정당인 현실당을 설립하였고, 제국의 민주적·연방적 개혁을 주장하였다. 제1차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국외로 망명하여 E. 베네시 등과 더불어 체코슬로바키아 민족회의를 설립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공화국이 독립하자 초대 대통령에 선출되어 신국가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네 차례 17년 동안 대통령직에 있으면서 1935년 은퇴할 때까지 국민의 지지를 배경으로 국내외정치에 커다란 영향력을 가졌으며, 특히 의회의 중도적인 각 세력의 연립을 지지하고 점진적인 사회개혁을 주창, 체코슬로바키아의 의회민주주의를 옹호하였다. 또 국내의 민족대립문제 해결에도 노력했으며, 외교면에서는 B. 베네시 외무장관의 대외정책을 지지하고, 이를 내정면에서 지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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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4년 이탈리아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세상 떠남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확실한 증명은 추상 관념에 기초를 둘 것이 아니라 우주에 나타나 제시되는 구체적인 증거에 기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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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이란, 루시디의 소설 `악마의 시` 문제로 영국과 단교
이란 정부가 1989년 3월 7일 샐먼 루시디의 소설 `악마의 시`와 관련, 이 작품의 출판금지를 거부한 영국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한다고 발표했다. 이란 정부는 영국측에 이 문제에 관해 입장을 밝히도록 요구한 시한인 1주일이 지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영국 정부는 루시디의 작품이 회교에 대해 모욕을 가했다는 점은 시인했으나 이 작품을 출판할 권리를 옹호하는 한편, 이란에 대해 호메이니가 루시디에 대해 내린 `처형명령`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었다.
영국은 호메이니가 회교를 모독한 이 작품의 저자인 루시디에게 2월14일 `처형명령`을 내린 후 이란 주재 외교관 전원을 철수시킨바 있다. 이란은 단교발표와 함께 영국 정부가 `악마의 시` 출판을 금지하고 루시디를 기소하면 이 책을 둘러싼 위기가 진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암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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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한글타자기를 발명한 공병우 박사 별세
한국인 최초의 안과의사이자 한글타자기를 발명한 공병우 박사가 1995년 3월 7일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별세했다. 공 박사의 죽음은 "내가 죽거든 장기는 모두 기증하고 누구에게나 알리지도 말고 장례식도 치르지 말라"는 유언 때문에 하루가 지난 뒤에야 알려졌다.
공 박사는 평북 벽동군 출신으로 1926년 의과대학도 다니지 않은 채 조선의사 검정시험에 합격한 최초의 안과전문의로,1938년 9월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서울 서린동에 공안과 의원을 개설했다. 그는 1938년 눈병치료를 받으러온 한글학자 이극로 선생을 만난 것을 계기로 한글사랑과 한글기계화운동에 헌신하기 시작했다.
공 박사가 타자기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해방전 경성제대 의학부 연구실에서 일할 때 영문 타자기를 보고 나서였다. 그후 일본어로 된 ‘소안과학’이란 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한글타자기의 필요성을 느끼고 타자기 개발에 착수, 1949년 한글이 가로로 찍히는 세벌식 타자기 발명에 성공했다. 공 박사는 그 타자기로 한국 최초의 미국 특허를 받아냈다.
한글타자기가 발명된 초기에는 문교부장관의 면회신청마저도 거절당했으나 1953년 휴전회담이 시작되면서부터 한글타자기는 군대와 행정 부처에서 두루 널리 보급되어 유용하게 쓰이기 시작했다. 이후로 쌍초점 타자기, 한글텔레타이프, 점자 한글타자기, 맹인용 한글워드프로세서 등을 잇따라 개발했다. 1988년에는 한글문화원을 설립해 한글 글자꼴과 남북한 통일 자판문제 등을 연구하는 정열을 보였다. 외길 인생을 살아온 공 박사에게 금관문화훈장이 수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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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1년 제15대 로마제국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 사망
1274년 이탈리아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 사망.
1399년 조선 정종, 한양에서 개성으로 환도.
1445년 조선 세종27년, 용비어천가 간행.
1622년 조선조 문신 정기룡 사망.
1785년 이탈리아 소설가 만초니 출생
1793년 프랑스, 스페인에 선전포고
1849년 미국의 품종 개량가 L.버뱅크 출생.
1850년 체코슬로바키아 초대 대통령 T.마사릭 출생.
1872년 네덜란드 추상미술 운동의 대표적인 화가 피테르 몬드리란 출생.
1875년 프랑스 작곡가 M.J 라벨 출생.
1888년 우사당(右史堂) 화재로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3백여권 소실-
1901년 국제 부인데이 행사 개시.
1911년 일본 중의원, 한국.일본합방을 사후승인.
1917년 중국정부, 간도에서 한인의 거주권 및 토지소유권을 인정.
1918년 러시아 볼셰비키, 사회민주노당을 '공산당'으로 개칭.
1918년 조선총독부, 서당규칙 공포.
1925년 소련, 외몽고 점령.
1926년 뉴욕과 런던간 첫 대서양 횡단 무선전화 교신 성공
1932년 대공황속 포드사, 노동자3천명 디트로이트서 폭동일으켜 4명사망
1933년 낙동강교 준공
1936년 독일, 로카르노 조약 폐기통고-라인란드 비무장지대 진주.
1938년 미국 바이러스 학자 데이비드 볼티모어 출생
1946년 경부선에 특급열차 첫 운행
1951년 국회 6.3.3.4학제 채택
1952년 미국-쿠바 군사원조협정 조인
1956년 경주박물관의 신라금관 도난
1965년 미국 흑인 인권보장 시위
1966년 드골, 나토(NATO)에서 프랑스 철수 선언
1969년 동백림 사건 관련 복역중이던 이응노 화백과 최정길 형집행정지 석방
1969년 서울 세운상가에서 화재, 점포52 소실 부상10명
1969년 아폴로9호, 달착륙과 모선 랑데뷰 재도킹 완전 성공
1976년 모로코, 알제리와 외교단절
1976년 영국·아이슬랜드 어업 분쟁
1978년 한미합동 팀스피리트78 작전개시
1979년 카터 미국 대통령, 이집트-이스라엘 평화조약문제 타개차 중동방문
1980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유럽연합(EC) 외상회담, 경제협력협정 조인
1981년 방송위원회 발족
1981년 KBS, 상업광고 개시
1983년 달성냉천 자연원 사자가 사육사습격, 살해
1987년 영국 여객선 전복 사고
1989년 시인 기형도 사망
1991년 고(故)박정희 대통령 아들 박지만씨, 마약 상습복용협의로 구속
1994년 남성 염색체 가진 불임여성, 인공임신 국내 첫 성공.
1995년 미국, 세계 최초 반창고처럼 상처에 붙이는 피부암 치료제 개발
1995년 한글타자기를 발명한 공병우 박사 별세
1999년 미국의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 사망
2000년 나스닥 첫 5000P 돌파
2000년 독일 도이체은행-드레스드너은행 합병
2000년 쥐 이용 난소발육 성공-美·日 연구팀
2000년 프랑스, 한국 SOC사업에 21억弗 직접투자 합의
2001년 이스라엘, 샤론 연정 출범
2003년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초대 대통령에 마로비치 선출
2003년 수필가 박연구씨 별세
2003년 클리프 리처드 34년 만에 내한공연
2003년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만장일치로 여섯 번째 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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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세요!
첫댓글 한글사랑이 남달랐던 공병우박사님이 별세하신 날이군요. 지금은 컴퓨터가 대중화되어 타자기가 장식품 정도로만 사용되고 있지만 한때는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였지요. 오늘도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가난은 노력으로 당대에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약한 정종이 개성으로 환도하네요. 클리프 리처드의 처음 방문시 이화여대생 등이 괴성을 지르고 내의들을 벗어던지자 말세가 왔다고 했답니다.
해박한 부연설명과 그시대(과거)의 에피소드까지... 매일 좋은 가르침 감사합니다.
인간은 배움이 전부가 아니란걸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지금젊은이도 이런글좀 읽고 느꼈으면 합니다. 기본 인성이 올바르며, 참된 삶이 무엇인가 를 알아야하는데.....
아무리 시대가 변했어도 넘기힘든 벽인데 중학교 중퇴의 학력으로 대학 강단에까지 선 내용이 감동입니다... 다른사람보다 두배, 세배의 노력이 있었겠지요...^^ 체코 5,000의 무섭게 생기신분이 초대대통령이군요...ㅎㅎㅎ
호텔 일이 힘들다는 것은 제 처제를 통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대단한 분이군요. 교수까지되구요. 자신의 일에 너무 열심히 하신 것 같습니다.
1995년에 공병우 박사님이 별세하셨네요. 도덕책에 소개가 되어서 제가 존경하던 분입니다. 글 잘읽었습니다.
kbs가 상업 광고를 시작한 날이군요.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경주박물관에서금관이도난을당햇군요...어찌이런일들이....다시는 이런일이 없게지요...
한글타자기 발명한 (공병우 박사)분을 오늘 첨~접하네요...(잉~! 도덕책에 있었어욤?에구~@@~^^;) /오늘도 좋은 정보 감사 드립니다...
한글도스님 잘 읽고 갑니다.
공병우 박사님께서 별세하신날이네요. 오늘도 소사 잘 읽고 갑니다.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