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트럴파크에 위치한 맨해튼 조계사 탐방
홍성미
겨울의 긴 터널을 지나 어느 덧 새봄이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 성미 급한 사람들은 오는 봄을 재촉이라도 하듯 일찌감치 무거운 겨울코트를 벗어 던지고 가벼운 봄 옷 차림으로 거리를 나선다. 동네 꽃가게에도 예쁜 봄 꽃들이 화분에 담겨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고, 양지바른 곳의 개나리는 벌써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강남 갔던 제비도 봄에는 돌아온다고 했던가. 하지만 제비만큼이나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건 어쩌면 형형색색의 향기로운 봄 꽃들인지도 모른다. 그 만큼 봄은 꽃의 계절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45억년이라는 긴 시간을 진화해 온 지구의 역사 속에서 꽃의 출현은 인류의 정신적 성숙을 가속화시켰던 획기적인 사건이었다고 한다. 물론 꽃이 나타나기 몇 백억 년 전부터 이미 지구에는 수 많은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지만 오묘한 빛깔과 향기, 그리고 마치 바람처럼 가볍고 섬세한 구조를 가진 꽃의 아름다움에 지구상에 존재했던 많은 생명체들은 매료되었고, 그 중 인간이 가장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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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주지 도암스님
하지만 지구 최초의 꽃은 오랫동안 살아남지 못했을 거라고 한다. 아마도 홀로 피었다가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갔을 것이다. 그렇게 끝없이 생과 멸을 반복하던 어느 날, 홀연히 수 많은 꽃들이 들판을 가득 채우는 경이로운 일이 일어났고, 생존본능만으로 살고 있었던 인간은 꽃을 통해 생존이라는 본능적인 가치를 초월한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했다고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도 꽃이 자주 등장한다. 하늘에서 천신들이 여러 가지 만다라 꽃을 뿌려 부처님이 설법하시는 것을 축복하며 칭송했다는 이야기나 영축산에서 사부대중에게 설법을 하시던 부처님께서 문득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이셨고 오직 마하가섭 만이 부처님의 뜻을 헤아리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는 일화 등이 아마 대표적인 이야기들일 것이다. 이렇듯 가르침과 깨달음의 순간에도 꽃이 항상 등장하곤 하는데,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꽃은 어쩌면 어떤 깨달음을 상징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최초의 인류가 꽃에 매료되었던 것처럼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어디서 배우지 않아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것에 끌리게 되는데 그건 바로 우리 내면에 아름다움이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꽃과 같은 외부의 대상을 통해 우리 내면에 늘 존재하고 있는 아름다운 심성이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발견했을 때, 그는 타고 왔던 배를 오랫동안 해안선에서 가까운 작은 섬에 정박해 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인디언들은 가시거리 안에 정박되어 있던 콜럼버스의 배를 오랜 시간 동안 아무도 볼 수 없었는데, 그들의 인지영역 안에 배라는 사물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정보를 통해서만 외부의 사물을 인지할 수 있는데, 그래서 우리가 꽃의 아름다움에 반응한다는 것은 그러한 아름다움이나 선한 마음이 우리 내면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인류에게 선물처럼 찾아와 주었던 꽃. 그들이 그 수줍은 모습을 하나씩 하나씩 선보이던 어느 이른 봄날. 필자는 센트럴 공원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맨해튼 조계사를 찾았다. 봄 햇살이 유난히 좋았던 탓에 필자는 한 시간 정도를 걷기로 마음 먹었고 조계사에 거의 다달았을 때 멀리서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조계사로 향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일요일 아침 가족이 함께 절을 찾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맨해튼 조계사 1층 법당 안에는 이미 많은 신도들이 도착해 있었고, 법회준비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청년 신도들, 반갑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인사를 나누는 왕보살님들 마치 잔치집 아침처럼 따사로운 봄 햇살과 함께 사람들의 온기가 온 법당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사람냄새가 묻어나는 정겨운 모습들을 보며 어쩌면 한국불교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문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만에 집에 돌아온 듯 편안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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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맨해튼 조계사의 주지 스님이신 도암스님이 법당으로 내려왔고 곧이어 일요 법회가 시작되었다. 약 50여명의 신도들이 참석했던 일요법회에는 젊은 청년 신도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얼핏 보아도 그 날 참석한 전체 신도의 70%가 청년신도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법회가 시작되자 신도들의 분주했던 모습은 어느 새 부처님에 대한 경외감으로 바뀌어 있었고 신심을 다해 기도를 올리는 조계사 신도들의 모습에서 필자는 살아있는 부처님의 모습이 느껴졌다. 그때 마치 누군가 필자 앞에 거울을 스윽하고 내밀 듯 고개를 꼿꼿이 들고 있던 필자의 모습이 보였고 깜짝 놀란 필자는 얼른 고개를 조아렸다. 하심을 흉내만 내고 있었는지도 모를 필자는 그 짧은 순간 하심을 살짝 맛본 듯 했고, 부처님께 마치 비밀선물을 받은 듯 마음이 뿌듯하고 숙연해 졌다. 그리고 신심을 다해 기도를 올리는 신도들의 그 마음을 조금을 알 것 같기도 했다.
법회에 이어 도암스님의 법문이 이어 졌다. 마치 스토리 텔링 시간처럼 모든 신자들은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스님의 법문을 경청했다. 도암스님은 육바라밀 중 보시 바라밀에 대해 설법했는데 대승 보살의 실천덕목인 육바라밀 중 첫 번째가 보시 바라밀이라고 하였다. 스님은 보시란 꼭 물질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봉사나 재능을 통해 베푸는 것도 좋은 보시의 모습이라고 말씀하였다. 더불어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 진정한 보시 바라밀이라고 말씀하였는데, 예를 들어 물질이나 재능을 통해 베품을 행한다 해도 만약 어떤 대가나 이익을 바라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일어 난다면 그건 ‘보시’는 될 수 있어도 ‘보시 바라밀’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가없이 베푸는 무상보시가 육바밀 제일 앞에 등장하는 것도 바라밀이라는 순수한 마음자세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한국인 입양 2세인 세계적인 비올리스트 리챠드 용재 오닐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세계 최고의 비올라스트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음악가 용재 오닐은 일명 ‘요즘 정말 잘 나가는 음악가’이다. 하지만 철저한 연습벌레라는 그는 어떤 대가나 눈 앞의 성공을 바라지 않고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통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꼭 하고 싶다는 그 한 생각만으로 열심히 음악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바람대로 그는 바쁜 공연일정 속에서도 음악을 통한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행하는 순수한 바라밀의 마음은 어쩌면 나와 남을 모두 살리는 삶의 성공 비법인지도 모르겠다.
때마침 맨해튼 조계사는100일 정진 기도 중이었다. 신도들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도암 스님은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정보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대화의 시간을 마련하였고, 이에 조계사 청년회 회장은 자신의 경험을 소개해 주었다. 지난 번 100일 정진 때는 하루에 108배를 하였다는 청년회 회장은 이번에는 하루 500배에 도전 중 이라고 하였다. 지금까지 몇 번의 위기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카톡과 같은 SNS로 연결되어 있는 다른 도반 회원들의 자극과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잘 실천 중 이라고 하였다.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왕보살들은 마치 어머니가 아드님을 칭찬하 듯 “열심히 정진하니 얼굴이 좋아졌다” “피부가 맑고 깨끗해졌다” “ 인물이 살아난다” 등 여기저기서 격려와 칭찬의 말씀들이 쏟아져 나왔고 어느 새 법당안은 웃음바다가 되어 있었다.
수행에 있어서 도반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도암 스님도 강조하였다. 스님 역시 함께 공부하셨던 도반 스님들의 정진하시는 모습을 통해 그것이 촉매제가 되어 더욱 열심히 수행에 정진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필자도 여러 번 108배 수행을 시작했었지만 처음의 각오와 달리 이런저런 핑계거리들이 생겨 나면서 중도에 그만 두었던 경험들이 많이 있다. 도반을 통해 좋은 수행경을 만들수 있다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수행에 동참하고 수행력을 배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한 불교 포럼에서 미국내 한국 불교신자들의 고령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절에 연로하신 부모님들은 많이 계신데 자식들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맨해튼 조계사와는 거리가 먼 걱정인 것 같았다. 따뜻한 격려로서 다독거려 주시는 왕보살님과 거사님들. 그리고 그런 어른신들을 예의로서 공경하는 청년 신도들은 마치 부모와 자식처럼 서로 조화를 이루며 조계사의 크고 작은 공식, 비공식적인 행사들을 의논하고 준비해 가고 있었다.
청년들의 맨파워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맨해튼 조계사는 청년 신도회와 일반 평신도회 이렇게 이원적 조직 체계로 운영되고 있었다. 청년 신도회 안에는 다시 5개의 분과 위원회 조직이 있었는데 조계사의 청년 신도들은 각 분과 위원회의 회원으로 소속이 되어 활동한다고 한다. 대부분의 청년신도들은 적어도 하나의 분과에는 소속하게 되는데 좀 더 많은 청년 신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청년회의 운영방침 중 하나라고 했다. 청년 신도회와 평신도회는 긴밀한 유대관계를 통해 조계사에 관련된 모든 일을 함께 의논해서 결정하고 진행해 나가고 있었다. 분명 청년 신도들과 평신도회의 어른 신도들이 잘하는 분야가 각각 다를 것이다. 각자가 더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책임지고 부족한 부분은 서로의 도움을 받아서 보완해 나가는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운영체계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의 조계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난 몇 년간의 많은 시행착오와 여러 사람들의 노력의 필요했다고 한다.
점심 공양이 끝나고 조계사 대청소가 시작되었다. 매주 일요일마다 해오는 일인 듯 모두들 능숙하게 일을 분담하고 일사천리로 청소가 진행되었다. 청소 구역을 정할 때는 주사위 게임을 이용해 마치 놀이를 하듯 당번을 정했는데 필자는 계단 물걸레질 당번을 맡았다. 모두가 함께 하면 청소도 놀이처럼 즐거운 일이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일요일 법회가 청소까지 모두 마무리 된 후 청년회 분과 모임이 있다고 해서 필자도 잠시 참석해 보았다.
청년회 모임은 조계사 지장전에서 열렸는데 약 20명의 청년회 신도들이 참석했고 너무도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그 날의 안건은 다가 올 청년 수련회에 대한 사항들과 그 외 개인적인 정보나 소식등을 교류하는 사랑방 이야기처럼 편안한 분위기였다. 대부분의 청년 신도들은 직장을 다니는 직장인들이었는데 바쁜 직장 생활 속에서도 아침이든 저녁이든 자신들이 정해놓은 스케줄에 따라 하루도 빠지지 않고108배 혹은 500배, 명상등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했다. 몸이 피곤하면 쉬고 싶다고 생각하는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108배나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게 오히려 직장 생활에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고 청년회 회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었고, 명상과 절 수행 때문에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유지 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신도들도 있었다. 왠지 조계사 청년회 신도들의 넘치는 활력과 유쾌함의 근원지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도암 스님 덕분에 조계사에 더 편안하게 다닐 수 있었다고 말하는 청년부 신도들도 많았다. 부모님께서 모두 불교신자라고 말하는 한 여성 신도는 무조건 부모님의 종교를 따르는 것보다 자신의 종교에 대해 좀 더 신중하게 고려해 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한 본인의 생각에 대해 도암 스님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고, 도암 스님이 그 여성신도의 생각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세대간의 소통이 힘들다는 말을 한다. 도무지 젊은 세대들의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가깝게는 부모 자식간에도 높은 단절의 벽을 느끼게 된다. 프랑스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La Reproduction Interdite”을 보면 한 남자가 거울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그 작품속의 남자가 바라보고 있는 거울에는 자신의 얼굴이 아닌 뒷모습이 비쳐져 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시각이나 사회의 틀을 통해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많은 부모님 세대들은 삶의 기준을 스스로 정하기 보다는 사회에서 옳다고 정해 놓은 기준을 따르는 삶을 살아 오셨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삶이 맞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지금의 세대들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삶의 주인으로서 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마치 부모님의 종교가 불교라고 해서, 그냥 불자가 되기 보다는 불교를 더 공부하고 알고 난 후 자신의 종교를 정하고 싶다는 말하는 청년회 여성 신도 분처럼 말이다.
필지가 만난 도암 스님은 열린 마음의 소유자 였다. 신도들과의 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도암 스님은 신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 하였고, 가장 효과적으로 신도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조계사가 어떤 방법으로 제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듣고, 공부하는 중이다. 이러한 스님의 열린 마음과 진심 어린 노력이 오늘의 조계사를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는 것을 필자는 느낄 수 있었고, 아직도 할 일이 많다고 말하는 도암스님의 앞으로의 행보와 맨해튼 조계사의 더욱 발전된 모습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여 오는 듯 했다.
이른 봄날의 오후 햇살은 여전히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고, 센트럴파크는 따뜻한 봄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더 많은 맨해튼 조계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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