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espn의 빌 시몬스가 쓴 칼럼입니다. 엠바다의 '가가멜' 님이란 분이 번역하셨다고 합니다.
참고로 2001년 5월에 쓰여진 글입니다. 대단히 편향된 관점(보스턴 팬의 관점)에서 쓴 글이라는 것도 참고 하시길..
ESPN Page 2 (www.espn.go.com)
빌 시몬스
저는 이번 주에 페이지2의 제 상사로부터 간단한 지시를 받았습니다.
"왜 보스턴 팬들이 로저 클레멘스가 적그리스도일지도 모른다고 믿는지
독자들에게 설명해 주게나."
네, 기꺼이 그러죠.
극악의 로켓 헤이터 조차도 인정하는 것은
클레멘스가 명예의 전당행 티켓을 보장해 주는
확실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다섯 번의 20승 이상 시즌을 포함해서
현재까지 무려 265승이라는 확실한 승수를 챙기고 있고,
또한 자녀들의 이름을 이니셜 K로 시작하는
코비, 코리, 케이시, 코디로 지었다는 사실은
언급할 필요도 없이
지금까지 3,575개라는 충분한 탈삼진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놀랍게도 무려 5개나 되는, 넘치는 사이영 트로피와,
현재까지 2개의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그리고 "20 탈삼진 경기를 두 번 기록한 유일한 사나이"로 추앙받는 것을 포함한
각종 기록들도 가지고 있으며,
게다가 적어도 순자산만 6, 7천만 달러에 이를 마이클 베이 무비를 사들일만한
거금도 벌었죠.
네, 모든 조건을 갖추어 놓았습니다 ... 오직 하나만 빼고는요.
팬들.
그에게는 단 한 명의 팬도 없습니다.
클레멘스가 30대 후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운드에서 불같은 공을 변함없이 뿌려대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아주 특별한 선수라는 것을 증명해 줍니다 ... 하지만
아무도 그런데 상관하지 않죠.
때론 그가 마치 "펄프 픽션"에 나오는 '울프'처럼 보입니다.
누구에게도, 무엇에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끝장내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할 뿐인 킬러 말입니다.
레드삭스 팬들은 그를 증오하고, 블루제이스 팬들은 그를 경멸하죠.
그나마 양키즈 팬들이 잘 참아주고 있긴 하지만,
보스턴과의 악연이 없었다면 결코 그를 받아주었을 리는 만무합니다.
이런 선수가 또 있나요?
여러분은
자신이 머물렀던 어떤 도시에서도 애정을 보이려 하지 않는
기억나는 또 다른 스포츠 수퍼스타가 있습니까?
잠깐만 짬을 내 생각해 봅시다.
자, 지난 30년 동안의 수퍼스타 이름을 한번 대보세요.
여러분은 아마도 0.000000001초 내에,
무의식적으로 해당 선수와 특정 지명을 연결시키고 있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로즈? 신시네티. 에이크먼? 댈러스. 레지? 뉴욕. 라이스? 샌프란. 아이재아? 디트로이트.
이런 식의 리스트는 끝없이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이 모든 경우에
보통의 수퍼스타들은 각자 어떤 한 도시에서 전성기를 보냈고,
오늘날까지도 그 도시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클레멘스는 총잡이처럼 떠돌며,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좀더 챙기려고 자신의 팬들을 팔아치웠던 유일한 수퍼스타입니다.
쿠퍼스타운의 그의 흉상이 쓰게 될 모자에는
골치아픈 팀 로고 대신 그냥 "$" 표시를 해두는 것도 좋겠군요.
물론, 클레멘스가 얼마 전부터 양키즈의 멤버가 되면서부터
"더 샤이닝"의 결말 부분에 등장하는,
'오버룩 호텔'의 '중앙 엘리베이터'에 필적하는
무시무시한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보스턴시와 관련지어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아마도 모든 사람에게 향수를 불러일으켜 그를 껴안아 주고 싶어할 정도로
"늙고 병든" 단계로 접어드는 클레멘스의 커리어 막바지쯤에는
보스턴 팬들의 화가 누그러져서, 우리 모두가 그와 화해하고 그의 죄를 용서하며
그를 다시 우리들 자비의 품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그런 다음 로켓은 은퇴할 것이고,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게 될 것이며 ...
오, 이런 세상에!
그렇다면 HoFer가 될 때 그가 감사의 표시로
레드삭스 모자를 쓰고 싶어할지도 모르겠군요!
자, 제가 말하고 싶은 건 ... 이런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지난 수년간
아이크와 티나, 니콜과 OJ, 샘과 다이앤 커플들이 보여주었듯
'관계'라는 건 종종 돌아갈 수 없는 선을 넘어 버리게 될 때도 있습니다.
로켓의 경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죠.
우리는 결코 돌이킬 수도, 돌이키려고도 하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진심을 건네 주었더니
그 사람이 그것을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자근자근 짓밟은 다음
"내가 대체 뭔 짓을 한 거지?"하고 되물어 온다면...
뭐, 여러분은 그런 일을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영원히 말이죠.
오어와 버드의 대를 잇다
래리 버드 시대의 절정기였던 '80년대 중반
클레멘스가 보스턴 스포츠계에 혜성처럼 등장하자,
모든 사람들은 로켓이 버드와 바비 오어의 대를 잇는
다음 세대의 전설이 되어 줄 거라고 믿었습니다.
오어는 '70년대 보스턴 하키, 버드는 '80년대 보스턴 농구의 중흥을 진두지휘했고
클레멘스는 '80년대 후반부터 보스턴 야구붐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오어 ... 버드 ... 클레멘스.
그것은 우리가 상상해오던 바였고, 실제로 현실이 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했죠.
그리고 '86년부터 '92년까지 7년 동안 로켓은
136승, 사이영상, 세 번의 플레이오프와 한 번의 월드시리즈 진출을 일궈내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면서도
오어와 달리 허세를 부리지 않았고, 버드처럼 잔꾀를 쓰지도 않았습니다.
오래지 않아, 우리는 더 이상 그를 오어나 버드와 비교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열광했고,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주었습니다 ... 하지만 동시에
그에 대한 걱정거리도 슬며시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버드나 오어에 대해서는 걱정한 적이 없었던 것과는 다르게 말이죠.
예를 들면
'86년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클레멘스는 메츠를 쓰러뜨리면서 진짜 영웅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이 사실을 잊어버렸을 지도 모르겠지만
"전설적인"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던 모든 것이
그의 손가락 끝에 달려있던 순간이 있었죠.
멋지게 공을 뿌리면서 3대2의 리드를 이끌고 있던 7회,
그는 갑작스레 집게손가락에 물집이 잡히게 되었습니다.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상황에 관계했던 인물들,
클레멘스 본인, 당시의 감독 존 맥나마라와 투수코치 빌 피셔는
클레멘스가 그 당시 마운드에서 내려오겠다고 자청했었는지 여부에 대해
여전히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맥나마라는
클레멘스가 자신에게 직접 "더 이상 던지기 힘들겠어요"라고 말했다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클레멘스는 변함없이
자신은 7회가 끝난 다음 코치진에 의해 교체되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죠.
그리고 변호사 짐 개리슨은
아마도 클레멘스를 교체하라는 투수코치의 지시가 내려졌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만, 우리는 단 한가지 사실만은 알고 있습니다.
그와 비슷한 상황에서
경기에서 억지로 끌어내어 셀틱스 벤치에 꽁꽁 묶어두지 않는 한
래리 버드라면 절대로 그런 경기에서 빠지지 않고
죽어도 뛰려고 했으리란 것입니다.
1986년부터 1990년까지 5년 동안
여덟 번의 플레이오프 경기에 선발 출장한 클레멘스는
미친 에인절스 팀을 상대했던 1986년 ALCS 7차전에서
오직 단 한번의 승리를 거두었을 뿐이었습니다.
엄격히 말하자면
보스턴 불펜이 승리투수가 될 기회를 두 번이나 날려버리긴 했습니다만
어쨌든 그 여덟 경기에서의 결과는 레드삭스의 2승 6패로 나타나게 되었죠.
좋은 징조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같은 기간,
'88년 허샤이저, '90년 리호, '91년 모리스가 포스트시즌에서 맹활약하는 것을 보면서
클레멘스가 그들처럼 "모두 내 등에 업혀, 얘들아"하며
떨치고 나서는 모습을 간절히 기다렸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두 번째 사이영상을 수상하는데 결정적이었던
'87년 시즌의 마지막 경기를 완봉승으로 장식했던 것처럼
레드삭스의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된 시기에만
절정의 투구를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른 예로 매치업에서 언제나 클레멘스를 압도했었던
오클랜드 에이스의 복수의 화신 데이브 스튜어트가 있습니다.
계산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 기억으로는
클레멘스를 맞상대한 스튜어트의 통산 기록이 982 대 0 정도 될 겁니다.
글로브트로터스 대 제너럴스의 싸움조차도 이 정도로 일방적이지는 않았더랬죠.
스튜어트와 클레멘스가 맞붙은 1990년 아메리칸리그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마침내 사건은 터졌습니다.
주심 테리 쿠니에게 볼스트라이크 판정에 화가 난 로켓은
마치 휘트니 휴스턴이라도 되는 양 엄청난 성깔을 부려대며
경기에서 쫓아 내주길 바라기라도 한다는 듯 쿠니를 여러 차례 밀쳐,
결국 2회에 퇴장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래리였다면 그런 짓은 저지르지 않았을 겁니다.
'92년 클레멘스가 4년 간 2천만불 짜리 계약을 따낸 이후
논문 쓸 생각을 접은 채 안식년을 즐기고 있는 교수 마냥
다음 3년 동안을 나자빠져 있기만 하자
그에 대한 우려는 깊어만 갔습니다.
93년 시즌, 그 해 봄 제 아버지가 가장 즐겨하던 농담이
"아직도 주름이 모자라나, 로저?"였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이중턱을 자랑하던 클레멘스는
팔 부상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커리어 처음으로 루징 시즌을 기록해야만 했습니다.
파업으로 단축된 '94년 시즌에는 9승 7패, 방어율 2.85를 기록하며
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불행히도 겨우내 훈련이 부족했던 그는
'95년 시즌 스프링 트레이닝이 시작할 즈음
"크리스 팔리 스토리"에 오디션이라도 보려는 듯한 모습으로 나타났죠.
점차 비난의 수위를 높이던 보스턴 미디어에 의해 자극받게 되면서
삭스팬들은 클레멘스에 대한 반감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확장 DL 제도가 중단되면서 필연적으로 예정되었던 클레멘스의 부진과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레드삭스의 플레이오프 진출이 우연히 겹치게 되면서
감정의 골은 점차 깊어져 갔습니다.
당연한 것 처럼 클레멘스는 "큰 경기에 약하다"는 의심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인디언스를 상대했던 그 해 유일한 플레이오프 선발 등판에서도
승리를 따내지 못했죠.
바야흐로
앞서 말했던 클레멘스와 맺은 4년 계약의 마지막 시즌인
96년이 다가왔습니다.
보스턴이 자신에게 연장 계약을 제의하지 않은데 대해 무덤덤해 하던 로켓은
팀이 플레이오프 진출이 무산되자마자 제트 엔진에 불을 당겼고
9월 중순경 디트로이트에서 타이거즈를 상대로 기록한 20 탈삼진 경기를 포함해
마지막 10번의 선발 등판에서 6승 2패로 훨훨 날면서
최후의 순간까지도 고전적인 클레멘스 패턴을 고집스레 반복했습니다.
만약 이런 사실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면
언제나 여러분은 그를 훌륭한 선수라고 추켜세울지 만도 모를 일이겠죠. 하지만,
네, 저는 이 모든 사실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저 씁쓸할 뿐이로군요.
당시 레드삭스가 클레멘스에게 또 한번의 장기 계약을 제시하지 않았던 것은
결코 잘못된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첫째, 그의 나이가 이미 서른 넷이나 되었고
둘째, '93년과 '95년에는 부상 경험을 가지고 있었으며
셋째, U2가 "주로파"와 "팝"을 낸 뒤 소속 레코드사로부터 제의 받았던 것과 같은
메가급 계약의 4년 가운데 상당 기간을
개점휴업 상태로 날려버렸기 때문입니다.
클레멘스의 에이전트였던 비열한 헨드릭스 형제와 레드삭스의 단장 단 듀켓 사이에는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했고,
듀켓이 시즌 도중의 모든 협상과 로켓에 대한 시장 가치 조사를 냉정하게 거절하면서
사태는 악화되어 갔습니다.
양측은 결별의 수순을 밟게 되었고
그저 화나고 서글픈 한 가지 사실이 있었다면
결국 이런 결말을 맞게 되리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블루제이스는 그렇다 치고, 양키즈라니 ...
결국 ...
클레멘스가 2천 8백만 달러에 블루제이스와 계약하게 되자,
우리는 충격을 받았지만 ... 그를 이해했습니다.
가끔은 우리에게도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가야만 하는 때가 닥쳐오곤 하니까요.
그런데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요?
왜 갑자기 마음이 변해버린 것일까요?
어째서 로켓은 현대판 뉴잉글랜드의 시란 시란이 되었던 것일까요?
다음 3년 동안
보스턴 팬들이 평생을 두고 클레멘스에 대한 적개심을 품게되는,
만약 그 중 몇 몇 사건이 조금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기만 했더라도
팬들의 악의에 찬 증오심만은 피할 수 있었을
다섯 가지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1. 잽을 날리다
토론토와 계약을 맺으면서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클레멘스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데는 단 1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지난 12년 동안 저와 함께 해주신 보스턴 팬들에게
몇 말씀드리고 싶군요.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 드립니다.
저는 보스턴에서 보낸 지난 시간은 언제까지나 기억하면서
마음으로나마 영원한 보스턴 팬의 한 사람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언젠가는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 우승의 현장에서 팀원으로 함께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보스턴 프론트의 판단이 흐려지지 않기를 바랬지만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군요.
보스턴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선수로 저를 대할 뿐이었지만
토론토는 저를 블루제이로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면서
제가 팀에 꼭 필요한 존재라고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그 점에 대해 저는 토론토 구단에 감사 드리며
토론토의 일원이 된 것을 참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보스턴 팬들이
제가 언제나 그들을 기억할 것이며,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펜웨이의 마운드에 설 수 있었던 추억을
그리워하리란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행복했던 지난 12년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여러분은 정말 최고입니다."
이걸로 끝이었죠.
45초 정도 걸렸었던가요.
그게 전부였습니다.
그 대신, 클레멘스는
자신의 새로운 블루제이스 모자를 흔들면서
마치 미스터 스폭 처럼 감격에 겨워하는데
남은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고통스럽고 잔혹하게도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얼마나 "블루제이가 되어 기쁜지",
또한 "블루제이스의 대우에 대해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를
지겹도록 알게 만드는 것이
그의 유일한 관심사인 듯 보일 지경이었죠.
마치 그가 제이스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을 때마다
구단으로부터 50달러씩을 받기라도 하는 듯이 말입니다.
보스턴 언론은 그에게 보스턴과의 결별에 대한 질문을 반복하면서
실수를 만회할 여러 차례의 기회를 주었지만,
클레멘스는 결코 총구를 돌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변하고 있었고, 그 순간 그는 이미 블루제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보스턴 팬에 대한 모든 질문들을 깡그리 무시하며
화가 나기 시작한 우리들을 못미더운 눈초리로 노려 볼 뿐이었습니다.
그것은 명백히
폭투가 아닌,
플레이트에 걸치는 행잉 커브볼이었습니다.
게다가
토론토가 디펜딩 챔피언인 양키즈보다 2백만 내지 3백만 달러 많은
최고 연봉을 그에게 제시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뒤늦게 알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클레멘스가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고 싶었기 때문에 블루제이스와 계약했다는
억지를 굽히지 않았고 ...
네, 이 사실은 그가 거짓말쟁이라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될 뿐이었죠.
토론토는 클레멘스가 소속했던 두 시즌 동안
승률 5할에 24경기나 모자란 기록만을 남겼을 뿐입니다.
2. 스트레이트를 뻗다
보스턴 프론트가 자신을 등한시한 데
급작스럽고도 이상할 정도로 자극 받은 클레멘스는
듀켓 패거리가 오판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로 작정을 하고는
오프시즌 동안 혹독한 훈련에 돌입했습니다.
그는 전례 없이 훌륭하게 몸을 만들어 스프링 트레이닝에 도착했고
기자들에게는 평생 최고의 컨디션으로 시즌을 맞게 되었다고 수없이 강조해 주었죠.
물론, 이런 자신에 찬 이야기에 대해
"이번 시즌에 자극을 받았다면,
레드삭스 역사상 최고 연봉으로 계약을 맺었던 1993년에서 1996년까지는
왜 당신이 지금처럼 자극을 받지 못했던가요?"
또는
"사료가 넘쳐나는 푸대자루와 닭날개살로 가득한 드럼통로 훈련했던 '95년과
다름없이 하고 있을 뿐인가요?"
라고 반문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이야기는 뒤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그저
클레멘스의 경우를 보노라면
스포츠 스타라는 친구들은 자신이 무시당할 때까지
몸 만들기에 열중하면 안 된다는 법이 있기라도 한 것 같군요.
어쨌든, 우리는 옛정을 생각해
클레멘스가 블루제이스에서 연이어 사이영 시즌을 보내는 장면을
지켜 봐주었습니다.
다음은 '93년부터 '96년까지 보스턴에서의 평균 스탯과
'97년과 '98년 토론토에서의 기록입니다.
YR W-L ERA G IP H SO BB
93-96 10-10 3.90 26 186.1 164 204 76
1997 21-7 2.05 34 264.0 204 292 68
1998 20-6 2.65 33 234.2 169 271 88
이렇게 생각할 수 있죠.
클레멘스가 캐나다에서 맹활약하는 것을 보는 것은
마치 헤어진 옛 여자친구가
만 달러를 쏟아 부어 트레이너를 고용해서 15파운드나 살을 뺀 다음
"베이와치"에 출연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것과 심정이었습니다.
클레멘스는 그의 친정팀을 상대로 한 네 번의 선발 등판에서
마운드에서 물러난 뒤 구단주를 노려보며 "f-you"를 날렸던 길이 남을 등판을 포함해서
2승 무패 방어율 1.73으로 뛰어난 구위를 선보이며
한편으론 모 본이 자신과 함께 캐나다에서 뛰어야만 한다는 메모를 남기는 등
믿기지 않을 정도의 잔인함을 보여주었던 것이죠.
바야흐로 주변 상황은 인신공격의 양상으로 변해갔고
보스턴 글로브의 노련한 싸움꾼 윌 맥도너를 중심으로
보스턴 언론이 합심하여 클레멘스를 때리기 시작하면서
이 때부터 클레멘스에 대한 반감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어 갔습니다.
우리는 이용당하고 나서 버림받은 듯한 기분을 느꼈고
그로부터 급격히 등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3. 벨트 아래를 치다
다행히도
클레멘스가 미국 소재도 아닌 승률 .500 미만인 팀에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던 때와 정확히 같은 시기에
보스턴 팬들은 두 명의 새로운 영웅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페드로 마르티네즈와 노마 가르시아파라였죠.
이 둘은
야구란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우리가 열심히 뛰는 선수들을 얼마나 존경하며 어떻게 대우해 주는지
우리의 영웅이 우리들, 팬이라는 존재를 인식하고
"오늘 우리 팬들은 정말 대단했어요." 라든지
"이 보스턴의 팬들 앞에서 경기할 수 있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 중 하나입니다."
라는 말이라도 해 줄 때면
얼마나 기뻐하며 그들을 사랑하게 되는지를
잘 알고 있는 축복 받은 선수들이었습니다.
바보 같은 소리로 들리나요?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이게 바로 보스턴, 이런 것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캐나다에서 회춘 기계를 조립하기 시작한 클레멘스에도
꿀릴 것이 전혀 없는 노마와 페드로 두 선수의 등장은
클레멘스를 잃은 것이 우리가 염려했던 것보다는
치명적인 손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글쎄, 이 새로운 친구들을 지켜보는 것이
오히려 더 즐거운 편이었을지도 모르겠군요.
왜냐면, 여기서 플레이하던 시기에
클레멘스는 우리 팬들을 신경쓰지 않던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작자에 불과했으니까요 ...
네, 이건 전쟁이었습니다.
만약 야구가 레슬링이었다면, 바로 이 순간은
클레멘스가 캐나다 국기를 들고 링으로 올라와서는
노마와 페드로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보스턴을 비아냥거리는 조크를 내뱉고
모든 관중을 일으켜 세워서 캐나다 국가를 부르게 만드는
그런 장면과도 같았습니다.
다시 말해
모든 관계는 절단났고,
이제 그는 공식적인 "악당"이었던 것입니다.
4. 어퍼컷을 먹이다
토론토에서 두 번의 루징 시즌을 보낸 뒤, 꿈에서 깬 클레멘스는
"만족하지 못할 경우, 2년 내에 트레이드를 요청할 수 있다"는
커미셔너조차도 황당해 할 수밖에 없었던
말도 안 되는 계약서의 조항을 이용해
'99년 봄 갑자기 양키즈로의 트레이드를 요청하게 됩니다.
클레멘스가 부렸던 이 약아빠진 수작은
단순히
레드삭스 역사상 최고의 승률을 자랑하던 투수가
뉴욕에서 플레이하기를 원한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죠.
그 때까지도 여전히 클레멘스를 옹호하고 있던
뉴잉글랜드의 몇몇 열혈팬 조차도
더 이상은 그를 감싸줄 수가 없을 지경이었으니까요.
그는 악의 편에서
텍사스 사투리를 쓰는 다스 베이더가 되기를
자처했던 것입니다.
이제 그는 우리의 적이었죠.
만약
여러분이 이 때의 상황에 좀더 깊이 파고들 기회가 있다면
당시에 클레멘스는
공인된 지독한 사기꾼이며 졸렬한 배신자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겁니다.
5. 카운터 펀치를 날리다
그 해 여름, 펜웨이에서 올스타게임 행사가 진행되는 도중
클레멘스는 "20세기 최고의 선수들" 중 하나로 소개될 예정이었습니다.
살아있는 신화로 칭송 받던 모든 선수들은
자신이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던 소속팀의 모자를 쓰고 있었고
클레멘스는 당연하다는 듯
고작 세 달간 뛰었을 뿐인 양키즈 모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기회,
보스턴 팬들의 애정을 되살릴 수 있었던
앞으로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기회를 날려버렸죠.
이런 광경을 겪고 난 우리는
"대부 2"에서 프레도가 조니 올라와 이전부터 아는 사이였다는 사실을 알아채 버린
마이클 콜레오네와 같았습니다.
"프레도 형, 이제 형은 내게 아무런 존재도 아냐.
난 형을 더 이상 만나고 싶지도, 기억하고 싶지도 않아.
만약 어머니를 만나러 오기라도 한다면,
그 땐 형은 죽은 목숨이야."
딱 이런 분위기였죠.
애정결핍에 시달리며
1999년 올스타 경기 이후
우리가 로켓에게 품고 있던 적개심이 줄어드는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
몇 가지 사건이 더 일어났습니다.
페드로가 당당한 에이스 자격으로
펜웨이에서 로켓과 담판을 짓기 위해 나선
잊지 못할 '99년 ALCS 3차전 동안
우리는 그를 향해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야유를 쏟아 부어 주었습니다.
클레멘스의 부인은 글로브지의 댄 쇼네시에게
"저는 로저가 대체 그네들에게 무슨 못할 짓을 했길래 저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라는
파렴치한 코멘트를 섞으면서
자신의 남편이 어떤 시달림을 당했는지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불난 데 기름을 들이붓는 꼴이었죠.
몇 주 뒤 클레멘스가 결국 처음으로 챔피언 반지를 얻게 되자
우리는 잠시 의기소침해 질 수밖에 없었지만
만약 그가 없었더라도 분명 양키즈가 우승을 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자위할 수는 있었습니다.
예기치 않게 양키즈와 양키즈 팬들에게 커다란 오점으로 남게된
월드시리즈 2차전의 엽기적인 뱃던지기 사건을 비롯해
2000년 시즌 내내 마이크 피아자와 벌였던 다툼도
신나는 볼거리 중 하나였군요.
이제는 사실상 그의 이야기도 오래된 안주거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 이상은 누구도 "에브리원 헤잇츠 클레멘스" 같은 안경을 쓰고 그를 바라보지는 않죠.
"클레멘스 대 페드로"나 "타락 천사의 귀환" 따위의 시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구태의연한 이야기들은 이미 사라진지 오랩니다.
언젠가 클레멘스가 삭스를 맞아 공을 던지게 된다면
그저 관중석에서 양키즈 팬들이 그를 응원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될 뿐이겠죠.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단 하나의 질문만 남게 되는군요.
과연
나중에라도
로저 클레멘스를 사랑하는 야구팬이 생겨나게 될까요?
여러분 중 누군가가 양키즈 팬들 이라면 어떠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적어도 양키즈 팬의 입장이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양키즈 팬들은 투수들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거드리와 리게티, 콘과 웰스, 그리고 리베라를 사랑하죠.
하지만 클레멘스라 ...
클레멘스를 통해 양키즈 팬들이 연상하는 것은
아마도
보스턴과의 악연이나
그를 얻기 위해 웰스를 트레이드 해야만 했다는 사실 정도일 겁니다.
혹은 '99년 시범 경기에서 팬들을 진땀나게 만들었던 것이나
펜웨이에서 벌어진 '99 ALCS에서 자멸했던 기억일 수도 있겠고
그도 아니라면 지난 10월에 뱃을 내던졌던 사건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젠장, 어쩌면 모든 게 뒤죽박죽 되어 생각날 수도 있겠죠 뭐.
어떻든 간에
뉴욕 팬들이 진심으로 그를 받아들인 적은 없었습니다.
가장 극성스런 다이하드 양키 팬일지라도 이 사실만은 분명히 인정할 겁니다.
지금은 클레멘스를 응원하고 있는 그들이
여전히 미심쩍은 눈으로 그를 살피고 있으며
필요하다면 지체없이 그를 버릴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 달에 개봉한 "61"을 보면서
여러분은 로저 매리스와 클레멘스의 닮은 점을 쉽게 찾아낼 수 있었을 겁니다.
이 두 명의 올스타는 모두
특별한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팬들로부터 진정한 사랑을 결코 얻지 못했던 선수로 대변되죠.
따라서 양키즈가 승리할 수 있는 꽤 좋은 기회를
5일 간격으로 제공하고 있는 클레멘스라 할지라도
로테이션을 지키지 못하게 되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 즉시 양키즈는 그를 버리고 다른 투수를 찾아나설 겁니다.
이건 비즈니스의 문제니까요.
그는 고용된 총잡이, 끝장을 내기 위한 도구,
혹은 필요악인 존재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는 언제 쫓겨날지 알 수 없는 비정규직 종사자 중 한 명인 것입니다.
은퇴하기 전에 그는 통산 300승을 거둘지도 모르고
또 다른 챔피언 반지를 얻게 될런지도 모릅니다 ... 하지만
다가올 마지막 몇 년 동안 이뤄질 그 모든 일들은 부질없는 것들입니다.
가족과 친구들이 그와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해 주겠지만
그 뿐입니다.
팬들은 벌써 그의 곁에서 멀찌감치 떠나간 다음일 테니까요.
레드삭스 팬들에게
클레멘스 시대에 있어 최악의 시기였던 1986년부터 1996년까지는
이미 무의미합니다.
마치 아주 오랫동안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지면서
괴로운 기억이 되어버린, 연인과 함께 했던 그 모든 순간들과도
이별하려 애쓰는 것처럼 말이죠.
좋은 추억조차 기억에서 지우려고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단지 그 추억들을 더 이상 떠올리지 않기로 마음을 다잡았을 뿐이라는 이야기죠.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것까진 없어요.
문득 대학시절 여자친구한테서 선물 받았던,
사인이 들어간 클레멘스의 20K 경기 한정판 브로마이드를
1990년부터 96년까지는 여러 차례 이사하던 와중에도
애지중지하며 챙겨 다녔던 기억이 나는군요.
토론토 입단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채 벽에서 때어 내버리고 난 다음
다시는 꺼내 본 적이 없군요.
4년이 넘게 지난 지금 그 브로마이드는 여전히 제 침실 옷장 속에 묻혀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클레멘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테지요.
쓸모없는 졸업논문과 심심풀이 잡지들,
야한 사진 쪼가리들과 옛날 여자친구들과 주고받은 오래된 편지꾸러미,
그리고 더 이상은 입지 않는 낡은 스웨터와 함께
클레멘스는 제 옷장 속에 갇혀 있습니다.
그는 적그리스도일까요? 아마도 아닐겁니다.
그렇지만 거의 30년 동안 스포츠 팬이었던 저에게 있어
로저 클레멘스만큼이나 저를 실망시켰던 운동 선수는 없었습니다.
만약 운이 좋다면
40년쯤 후인 2041년, 올드 타이머의 날에 초청되어서 ...
레드삭스 팬들의 야유로 샤워를 하며
뉴 펜웨이파크에 서있는 클레멘스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여전히 팬들이 손 내밀기만을 고대하면서
그런 참담한 반응을 예상하지 못하고 있던 그는
희미한 미소를 띄우며 이렇게 중얼거리겠죠.
첫댓글역시..스포츠는 스포츠로써 끝나는것도 아니고..선수도 선수로써 정리가 되는게..아닌것 같습니다.. 하늘이 공평하다는게...다시 한번..생각되네요.. 한 마디로 GM에서 잘 놀다가 혜성미디어로 가서 돈 문제로 휩쓸렸던 조성모를 보는 듯..하지만..올해에도..발라드부문 수상은 했었죠...ㅎㅎㅎ...참..인생이란게..
레드삭스팬들이라고 다 저렇진않겠죠. 저토록 그를 미워하는 팬들이 팬웨이에서의 마지막등판에서 기립박수를 보냈겠어요..레삭스에서 로켓이 나올때는 오히려 구단이 늙어가는 그를 내쳤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고 보이고..오히려 토론토로 가서 전성기를 되찾은 로켓이 대단하다고 밖에..
보스턴 자신들이 지명한 선수를 잘 키워 로켓에세 그에 다른 대단한 보답까지 받았다면 아무리 두시즌 성적이 나쁘다 했을지라도 96시즌 회복기에 들어섰던만큼 트레이드라는 초강수를 두지 않았어도 되었을듯 싶습니다..하지만 다른팀에 가서도 로켓은 진정한 그의 실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레드삭스가 선수를 버리다시피 한 게 한두번이 아니죠...일례로...최고의야구선수 였던 베이브 루스 도 레드삭스에서 내쳐졌죠.....보스턴은 야구에 관한 엄청난 관심을 보이는 지역이고...축구로따지면 남미같은 지역이죠...불같은 성격들...하지만 그게 보스턴의 야구사랑인듯싶네요...
첫댓글 역시..스포츠는 스포츠로써 끝나는것도 아니고..선수도 선수로써 정리가 되는게..아닌것 같습니다.. 하늘이 공평하다는게...다시 한번..생각되네요.. 한 마디로 GM에서 잘 놀다가 혜성미디어로 가서 돈 문제로 휩쓸렸던 조성모를 보는 듯..하지만..올해에도..발라드부문 수상은 했었죠...ㅎㅎㅎ...참..인생이란게..
엠바다에서 전에본글이네요...
양키스,레드삭스,팬들이 안좋아해줘도 "클레멘스"만 보고 좋아하는팬들이 없을까요? 전 그 팬들이 더 많다고 생각되는데요....
레드삭스팬들이라고 다 저렇진않겠죠. 저토록 그를 미워하는 팬들이 팬웨이에서의 마지막등판에서 기립박수를 보냈겠어요..레삭스에서 로켓이 나올때는 오히려 구단이 늙어가는 그를 내쳤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고 보이고..오히려 토론토로 가서 전성기를 되찾은 로켓이 대단하다고 밖에..
이글은 사실 좀 편향된 입장에서 쓰여졌지요. 반박할 수 있는 자료도 많이 있습니다...^^ 단 이 글은 레드 삭스 팬들의 정서를 잘 표현해 주지요
레드삭스가 로켓 내쳤을때 생각하면 할말없는거 같은데..
보스턴 자신들이 지명한 선수를 잘 키워 로켓에세 그에 다른 대단한 보답까지 받았다면 아무리 두시즌 성적이 나쁘다 했을지라도 96시즌 회복기에 들어섰던만큼 트레이드라는 초강수를 두지 않았어도 되었을듯 싶습니다..하지만 다른팀에 가서도 로켓은 진정한 그의 실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레드삭스가 선수를 버리다시피 한 게 한두번이 아니죠...일례로...최고의야구선수 였던 베이브 루스 도 레드삭스에서 내쳐졌죠.....보스턴은 야구에 관한 엄청난 관심을 보이는 지역이고...축구로따지면 남미같은 지역이죠...불같은 성격들...하지만 그게 보스턴의 야구사랑인듯싶네요...
펜웨이 파크 마지막 등판때나 월드시리즈 4차전 마지막 투구 이후에 팬들이 보낸 그 성원은 정말 로켓을 진정으로 아낀다는 표현같았습니다..아무튼 다시 돌아올일이 없을것 같은 로켓인데 로켓, 당신은 영원한 승리자입니다..
헉;;;; 글 내용과 정반대되는 꼬릿말 내용들 -_-;;;;;;
보스톤넘들 다른 선수에게 더 심한짓도 태연히 해놓군 지들이 당하면 그게 악이냐?
허억..대략 귀차니즘의 압박..근데..빌 시몬스 지가 먼데 로켓을 욕해 씹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