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화분님이 최근에 여호와의 증인의 방문을 받고 대화한 내용을 적은 것입니다. 재치넘치는 질문과 추리능력을 보여 주신 보기 드문 대화이기에 여러분께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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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 무척이나 뜨겁던 어느 여름날 오후, 마당을 손질하던 나는 가지런한 양복차림의 두 사람이 내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부터 그들이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아버지 명의로 된 손바닥만한 땅 떼기에 가족이 먹을 만한 상추나 고추 같은 작물을 심고 관리할 목적으로 일년 전부터 조그만 조립식 건물을 지어놓은 그곳은 아버지가 자란 고향으로 총 십여 가구가 모여 사는 작고 조용한 시골 구석이었다.
그들의 정열적인 전도봉사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곳까지 찾아오나?’하는 생각에 ‘풋’ 하는 웃음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한 사람은 약 30대 중반쯤으로 나머지 한 사람은 50대 중반쯤으로 보였다. 연세가 많아 보이는 분은 차분한 음성과 논리적인 화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회중 장로쯤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무더운 날씨였는데 나는 마당 정리로 삽질을 하고 있던 탓에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몸도 지쳐있었고 남은 일도 만만치 않아서 그들과 대화하는 것이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들이 나에게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좋은 소식을 알려드리려고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 라는 식상한 서두를 꺼냈을 때 ‘관심 없습니다’라는 짤막한 답변을 퉁명스럽게 했다.
그러나 그가
“하지만 선생님의 미래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으시겠지요? 조만간 닥쳐올 재앙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했을 때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무엇인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현재 닥친 당신의 재앙조차도 대처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반문이었다. 나는 ‘그에게 닥친 재앙’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소수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허상에 자신과 가족의 인생을 송두리째 담보 잡힌 그들의 재앙을…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이루어게 되었다.
에어컨도 없는 조그만 방으로 안내된 그들은 연신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는 냉장고에 있던 사이다를 내오며 그들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자칫하면 이미 내 귀에 딱지가 되어 앉아있는 ‘지상낙원’과 ‘삼위일체’ ‘지옥 불’ 교리에 대하여 지루한 설명이나 설교로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할 태세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나의 염려와는 다르게 그날의 대화는 내가 뜻하는 데로 흘러갔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을까?
“성당에 다니시나 봅니다”
연세가 더 들어 보이는 분이 말을 꺼냈다. 아마도 TV 밑에 놓여있던 공동번역 성서를 보고 짐작한 듯하다.
“관심은 좀 있습니다.”
물론 나는 카톨릭에 매우 적대적인 입장이지만 비판하는 것도 관심의 일종이니까 그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 분은 나의 말을 반대로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는 내가 하느님께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에 매우 반갑다는 표현을 하면서 신앙에 대한 격려에 대한 말을 한 뒤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나 자신이 갖고 있는 종교가 진실로 하나님을 향해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자신이 가진 종교가 정말로 그러한지 알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라며 그는 성서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말이지요?”
나는 시간을 끄는 것이 싫어서 그 분이 찾는 성구의 내용을 미리 이야기 했다. 굳이 찾지 않아도 된다는 나의 신호였다. 그 분은 놀란 듯 나를 바라 보았지만 이내 빙긋이 웃으면서 그렇다고 말했다.
“카톨릭이 거짓종교라고 생각하시는 이유를 들어 보아도 되겠습니까?”
라는 나의 질문에 그는 매우 흥미로운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질문은 원래 하나님의 보이는 지상의 조직, 즉 참 종교는 유일하다는 배경설명이 있은 후에 ‘그렇다면 무엇이 참 종교인가를 찾아보자’는 그들의 제안에 따라 카톨릭은 참 종교가 아닌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순서였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그는 ‘거짓 종교’라는 다분히 나의 여증성 단어선택에 놀랐는지도 모른다.
그는 나에게 카톨릭이 성서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로서 카톨릭의 중요한 교리 중 하나인 ‘삼위일체’의 부당성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이후로 ‘천국과 연옥’, ‘지옥불 교리’, ‘마리아 숭배’등등이 연이어 화두가 될 것은 뻔한 일이었다. 이것은 나에게 매우 지루한 시간낭비가 될 것이었기에 어떻게든 생략하여야 하였다.
“교리문제는 지금 여기서 듣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교리문제가 선생님께서 하시려는 듯 단 몇 시간 혹은 몇 달 만에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가벼운 사안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어느 종교의 교리가 옳은지를 조사하여 그 여부에 따라 참 종교를 판단하려 든다면 그 사람은 성서학자수준의 지식을 갖추어야 할 것이고 이것은 사람에 따라 평생을 투자해도 불가능한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적인 활동이 둔한 경우나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더 불리하겠지요. 저는 이것이 전능하신 그리고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양을 선택하시는 방법이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나의 이 대답에 두 사람은 조금 당황한 기색이 엿보였다. 그는 반론을 하려 ‘그러나..’는 연발하였지만 이내 그것이 나에게는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 잠시 생각이 잠겼다.
이윽고 그는
“그렇다면 종교가 맺은 열매를 보고 판단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성서는 그 열매로 나무를 안다고 하였습니다. 즉 선한 열매를 맺은 종교는 참이요 악한 열매를 맺은 종교는 거짓임을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라며 마태복음 12장 33절을 인용하였다.
“선생님께서는 악한 열매를 맺는 종교는 거짓이라고 확신하십니까?” 라며 나는 그의 확인을 재차 받아두었고 그는 그렇다고 단호하게 말하였다. 그것은 성서의 말씀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기까지 하였다.
“카톨릭은 어떤 열매를 맺었습니까?”라는 나의 질문에 그는 연이어 카톨릭이 과거 자행해온 극악한 죄악들을 열거하기 시작했다. ‘십자군 전쟁’, ‘종교재판’, ‘천국 표 판매’ 등등.. 특히 일차 세계대전 때 카톨릭의 활약상을 매우 상세하게 묘사하였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나는 그분의 말을 경청하여 들었다. 마무리에 그는 이런 극악한 열매를 맺었던 종교가 어떻게 참 종교가 될 수 있겠냐며 조용히 나에게 반문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지난 과거의 일들입니다. 현재는 매우 개선되었습니다. 과거의 일부 과오를 언제까지 붙잡고 계시렵니까? 사람은 실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일부 몰지각한 종교지도자들의 개인적 실수로 종교전체를 판단하는 것은 장성한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잘못을 수정하여 주실 때를 기다리는 것이 곧 순종 아니겠습니까? 과거 이스라엘에서도 다윗이나 솔로몬 등 많은 지도자가 악행과 실수를 저질렀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들을 의인이라 칭하셨습니다. 지나간 실수를 근거로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조직에 반기를 드는 것은 하나님 권위에 도전하는 어리석은 짓이라 생각됩니다. 실례로 모세를 대적한 미리암의 경우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겪었던 다양한 여증 옹호론자들의 논리를 역으로 그들에게 내밀어 보았다. 그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궁금했지만 어떤 대답이 되던 그것은 곧 그들의 논리적 무덤이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설명이 매우 난처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대답이 궁해서가 아니라, 바보 같은 주장을 하는 나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 주어야 잘 이해시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 같았다. 아마도 그들에게 나는 천주교를 맹신하는 비논리적인 사람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무조건 적인 충성을 바치는..
“동의하십니까?” 라는 나의 질문에 그는
“솔직히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다윗이나 솔로몬 시대는 신정 일치 시대였습니다. 또한 선지자를 통해 하느님께서 직접 개입하셨던 때입니다. 이스라엘이 거짓종교냐 아니냐의 구분이 필요 없던 시대라는 것 입니다. 이때 어느 지도자가 잘못을 저지른다면 그것은 그 종교가 거짓이라는 증거라기 보다 그 지도자를 벌하는 것이 순리였을 겁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이 참 종교임에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는 뜻이죠. 더불어 말씀 드리자면 다윗이나 솔로몬의 경우는 그 죄악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그들도 회개를 했고요. 미리암은 모세의 잘못을 지적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리를 위해서 취했던 행동이었기에 하느님께서 그의 잘못된 속 마음을 아시고 벌하신 경우입니다. 비교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정리하자면 예수 이전 시대의 이스라엘은 자신의 종교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분별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매우 명확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예수 이후에는 예수를 중심으로 다양한 종교와 파벌이 생겨났습니다. 따라서 그 중 참을 찾을 필요성이 생긴 것 이고 열매로 그들을 찾으라는 것이 예수님 말씀의 본 뜻이었을 겁니다. 만일 열매로 이스라엘의 참과 거짓 여부를 판단하려 한다면 이스라엘은 분명 거짓종교에 속하게 되겠지요? 이스라엘도 악한 열매를 많이 맺었으니까요. 그럼 예수께서 이스라엘을 부정 하셨다는 뜻인가요? 모순입니다. 따라서 열매로 그 나무를 알라고 하신 말씀은 예수님 이후의 종교를 뜻하는 말이 되어야만 합니다.
천주교의 경우는 분명히 악한 열매를 맺었고 이에 따라 그 나무가 악한 나무라는 점은 명백합니다. 과거사라고 하셨지만 과거에 하느님의 영이 함께 하지 않던 거짓종교가 어떻게 지금은 참 종교가 되어 있을 수 있습니까? 사족이지만 만일 카톨릭이 참 종교였다면 그리고 그 지도자가 진정한 하나님의 종이었다면 그러한 극악한 범죄가 일어날 당시 그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충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겸손한 마음을 보여주었을 겁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카톨릭은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잔잔한 미소와 함께 차근한 설명을 내게 해 주었다. 옆의 젊은 사람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조한다는 표현을 하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완전한 답은 아니더라도 짧은 시간에 이정도 답변을 내어 놓는다는 것은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선생님께서는 악한 열매를 맺었던 것으로 보아 카톨릭은 거짓종교라는 점을 확신하시는 것 입니까?” 라는 나의 질문에 두 분 모두 일제히 “그렇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들의 눈은 나에게 객관적이고 현명하게 생각 좀 해보라는 듯이 하소연 하고 있었다. ‘이 답답한 사람아 생각 좀 해봐라 제발~’하듯이 말이다.
순간 나는 내 머릿속에서 ‘찰칵’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이 스스로 덫을 만들고 스스로 기어들어가는 소리였다. 나는 이제 이 사람들이 어떻게 이 덫을 빠져나올 것인가가 매우 궁금해 졌다.
서로의 열기도 식힐 겸 우리는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잠깐 동안 가벼운 담소를 나누었다. 직업이 무엇인지, 침례를 받은 지는 얼마나 되었는지 등의 개인 신상문제가 주된 화제였다. 나는 매우 오래 전 여호와의 증인 연구생이었다는 말을 해 주고 지금은 무교로서 지낸다고 말했더니 그 분들은 그제서야 무엇인가 이해가 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셨다. 아무래도 내 태도와 말투가 수상하긴 했었나 보다.
왜 여호와의 증인을 떠났냐고 물었을 때 공평한 기준을 나에게도 적용하였기 때문이라고 답했더니 무슨 말씀이냐고 되물었다. 나는 그분들께 곧 아시게 될 거라고 대답했다.
어느 샌가 구름이 끼는 듯 하더니 후드득 거리며 소나기가 쏟아졌다. 창가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나는 창을 통해 하늘을 바라보며 이 선선한 바람이 이 분들 마음에도 불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에 잠겼다.
잠시 휴식을 취한 우리는 다시금 토론을 재개 하기 위해 탁자 앞에 가지런히 앉았다.
“여호와의 증인은 어떤 열매를 맺었습니까?”
물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얼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질문을 위해 꼭 필요한 수순이었기에 생략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나는 그간 내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사실이 추가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결국 그 분들의 대답은 나의 예상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간간히 교리적인 문제가 섞여 있는 항목을 제외하고 보면 ‘사랑으로 뭉친 세계적인 조직’, ‘전쟁에 불참’, ‘주목할 만한 성장’ 등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통일교’나 ‘몰몬교’, ‘아델피안’, ‘안식교’ 등의 예를 들어 보이며 세계적인 연합을 하고 있는 종교는 여증 외에도 많고 이름 모를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비롯하여 SDA교회, 메노나이트, 퀘이커, 아델피안 그리고 수백만의 개인적 그리스도인들도 징집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여증만이 독특한 입장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다시 ‘주목할 만한 성장’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오순절종교(하나님의 성회)가 여호와의 증인이 0에서 500만으로 증가할 같은 기간에 4억으로 성장했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었다. 즉 그 분이 열거한 열매는 선한 열매일지는 몰라도 참 종교라고 판단할 만큼 여증만의 독특한 열매는 아니라고 말하였다. 사실 자신의 종교를 선전함에 있어서 그 정도의 화려한 미사어구를 사용하지 않는 종교는 없다.
그분은 나의 말을 곰곰이 듣고 계시며 간간히 고개를 끄덕이었다. 오순절종교의 성장률에 대해서 말했을 때는 ‘아! 그렇군요’ 라며 새로운 정보를 알았다는 듯이 매우 흥미로운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의 말을 끝까지 경청한 그분은 한동안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하지만 그런 특징을 모두 갖고 있는 곳은 여호와의 증인이 유일합니다.”
라며 가만히 나의 눈을 응시했다.
‘세계적인 조직’, ‘전쟁에 불참’, ‘주목할 만한 성장’ 등의 특성을 모두 갖는 종교가 여호와의 증인이 유일한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모든 종교를 검토해 본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그곳이 유일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참 종교’ 라는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는 점은 알고 있다.
때로는 ‘유일하다’는 말이 매우 ‘흔하다’라는 말과 연결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어릴 적 살았던 동네에는 시장에 정육점이 3군데나 있었는데 각각의 집들은 저마다 독특한 특성을 자랑하였다. 동네아주머니들이 정육점을 평가하는 내용을 보면 이렇다. A 정육점은 값이 싸고 친절하며 외상이 가능하다. B 정육점은 고기가 신선하고 시설이 깨끗하며 반품처리가 용이하다. C는 경우에 따라 고기를 배달도 해주며 늦은 밤까지 운영한다.
‘가장 좋은 정육점’이란 어디일까? A는 이렇게 주장할 수 있을까?
‘값이 싸면서 친절하고 외상이 가능한 곳은 우리가 유일하다! 따라서 우리가 동네에서 가장 좋은 정육점이다!’
몇 가지 좋은 특성의 조합을 갖춘 곳이 유일하다고 해서 그곳이 가장 좋은 곳일까? B도 ‘유일함’을 주장할 수 있다. 신선하고 깨끗하며 반품처리가 용이한 곳은 그곳뿐이니까. 이 경우에는 A도 B도 C도 모두 유일한 곳이지만 동시에 그 ‘유일함’이 흔하게 되어 버렸다.
첫댓글 정말 공정하고 유익한 변증을 봅니다.
블루님 이메일로 대화 가능하세요?
네 ~~~. tomohyun@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