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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속곡리…
“말씀 좀 물을게요~ 혹시 당나귀 가족 아세요? ” 새벽부터 일어나 차로 달리길 5시간, 안동을 지나 미시령 뺨치는 굽이굽이 고갯길을 수도 없이 너머 지품면까지는 도착했건만 문제는 이제부터다. 눈에 보이는 건 오직 앞으로 쭉 뻗은 2차선 도로와 온 마을을 에워싸듯 감겨 있는 산뿐. 어딜 봐도 ‘속곡리’라는 표지는 없다. 도대체 이 산속에서 당나귀 가족을 어찌 찾는단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으로 어리석은 기우였다. 물어보는 족족 “당나귀 가재? 알쥐! 허먼 당나귀 타고 요까지 내려온다 안하나~” 당나귀 가족은 이미 지품면을 대표하는 스타급 패밀리였다.
마을 사람들이 알려주는 대로 산속으로 핸들을 꺾으니, 이번엔 울퉁불퉁 비포장도로의 연속이다. 어찌나 적막한지, 길을 따라 흐르는 계곡물과 새소리가 유난히도 크다. 5km쯤 달렸을까? “찾았다! ”라는 사진기자의 외침에 고개를 돌려 보니, 아~ TV에서 봤던 그 유명한 당나귀들이 타지 손님이라도 반기듯 터벅터벅 다가온다. 당나귀에 이어 염소, 양, 젖소, 강아지까지 동물들의 ‘공동 우리’를 지나니, 아버지 최태규 (47세) 씨가 운영한다는 죽염 공장의 대나무 타는 냄새가 솔솔 불어온다. 하지만 어딜 봐도 당나귀 가족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는데…. 10분 후, 곱게 내려 땋은 양갈래 머리에 큼직한 저고리를 입은 최태규 씨가 산속에서 내려왔다.
낮에는 도시로, 저녁엔 산골로 ‘출근’하는 아이들
최태규 씨의 안내를 따라 산속으로 20여 미터쯤 올라갔을까? 탁 트인 마당에 기품이 흐르는 수백 년 됐음직한 고목이 있는 아담한 토담집이 보인다. 사방이 산으로 에워싼 당나귀 가족의 보금자리다. 갓 끓여낸 찻잔을 마주하고 인터뷰를 나눈 지 한 시간 남짓, 해는 뉘엿뉘엿 져 가는데 영덕서 수업을 마치고 엄마와 함께 오기로 한 아이들은 영 나타날 태세가 아니다. 첫째부터 넷째까지 아이들은 모두 영덕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산 아랫자락 마을에 초등학교가 있긴 하지만 또래가 있는 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엄마 이주경 씨의 고집으로 이뤄낸 성과다. 아이들이 시내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당나귀 가족의 두 집 살림은 시작됐다. 그렇다고 살림이 완전히 둘로 나뉜 것은 아니다.
새벽 6시30분에서 7시 사이에 일어나는 아이들은 아빠의 트럭을 타고 40분 거리에 있는 영덕 읍내의 엄마 옷가게로 향한다. 그곳에서 세수하고, 책가방 챙기는 등 등교 준비를 마친 뒤, 학교에 갔다가 다시 마중 나온 아빠를 따라 속곡리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오후 6시. 저녁 8~9시면 아이들은 다시 속곡리 토담집에서 잠이 든다. 학교는 양보했지만, 절대 잠자리는 바꿀 수 없다는 아빠의 주장 때문. 엄마와 사는 막내 유림이까지, 당나귀 가족 7명이 오롯이 다 모이는 날은 바로 오늘 같은 주말뿐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 대신 명심보감 달달
일곱 가족이 모이는 날이면 토담집에선 주말 가족서당이 마련된다. 건넌방에 앉은뱅이 책상 세 개를 놓고 일곱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 앉으니, 길게 내려땋은 머리에 꼿꼿한 자세까지 아빠 최태규 씨는 영락없는 서당 훈장님의 모습이다. 아빠의 명심보감 수업이 시작된 건 장남 대수가 5세가 되면서부터. 아이들은 만 4세가 되면 어김없이 명심보감 공부를 한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한자를 모두 외는 건 아니다. “지금 당장 모든 걸 이해하기 바라진 않죠. 뜻과 음으로만 읽고, 행동에 옮기고, 마음에 새기는 거죠.” 명심보감엔 부자 되는 법,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법 등 다양한 내용이 있지만, 아빠는 오직 ‘성심편’만을 가르친다. ‘마음을 쓸 줄 아는 아이’, 아빠가 가르쳐주고 싶은 진짜 교육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재 초등학교 1학년인 쌍둥이까지 한글을 제대로 떼고 학교에 들어간 아이는 하나도 없다. 아빠가 아이들에게 한글, 그것도 조기교육을 시켰을 리가 없기 때문. 한글을 모른 채 힘겨운 학교생활을 시작한 첫째가 안타까웠던 엄마는 둘째 영신이를 입학 6개월 전부터, 쌍둥이는 좀 더 일찍 한글 학원에 보냈지만 결과는 영 신통치 않았단다. 결국 첫째부터 넷째까지 한글을 못 떼고 학교에 들어갔다. 남은 건 이제 여섯 살 난 막내 유림뿐. 왠지 엄마는 유림이는 한글을 떼고 학교에 갈 것 같다고 말한다. 거기엔 다 남다른 이유가 있었다.
글 기자 : 문영애 기자
사진 기자 : 김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