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의 가슴은 가벼워졌을까
이광조
신문 기사 한 단락이 눈을 사로잡았다. 어디선가 접한 것 같다는 느낌으로 다시 읽어 내려가다 보니 경전의 어느 장면이 생생하게 오버랩 되었다. 공감이 바탕을 이루면 티끌 같은 꼬투리만 있어도 기억은 순식간에 고리를 이루는 모양이다.
한 사진작가가 한국을 다시 찾은 6.25 참전용사들을 만났다고 한다. 이제는 구순이 넘은 그들이 젊은 날에 겪은 전쟁에 대한 기억과 감회를 사진과 글로 남기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많은 인터뷰 내용 중 한 편은 이렇게 기술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온 참전용사 허먼의 이야기를 들었다. 헌병으로 근무할 때 허먼은 한 여자를 봤다. 여인은 등에 무언가를 업고 미친 사람처럼 이리저리 쏘다녔다. 자세히 보니 죽은 아기였다. 아이를 잃은 엄마였다. 그리고 시신은 이미 부패해 있었다.
먹을 걸 줘야 할지, 뭘 해줄 수 있을지, 허먼이 고민하자 간호사가 말했다. "저 분에게는 아무것도 필요한 게 없어요. 저 아기가 세상을 떠난 그 순간부터는요." 그게, 허먼이 기억하는 전쟁의 가장 참혹한 순간이었다.
인간의 문제를 다 꿰뚫어 봤다는 부처님도 그 대목에서는 몹시 곤혹스러웠을 것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이야기의 결과에 조바심을 내지 않을 수 없었고, 그때의 그 강한 인상 때문에 유사한 장면을 다룬 기사를 접하자 감전이라도 된 듯 멈칫했던, 그 일은 이렇게 시작된다.
화장터로 시신을 옮기려는 사람들을 밀치고, 그녀는 축 늘어진 아들을 가슴에 끌어안은 채 실성한 듯 마을로 뛰쳐나갔다. 아들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던 그녀는 마을 곳곳을 헤매 다니며 “우리 아기의 병을 낫게 할 약을 가르쳐 주세요. 제발 우리 아기를 살려 주세요”라고 울부짖으며 애원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착한 이가 “아마 그분이라면 약을 알고 계실 겁니다”라며, 부처님에게 찾아가 볼 것을 권했다. 끼사 고따미는 그 길로 부처님이 계신 제따숲으로 달려갔다. 죽은 아이를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꼬따미와 맞닥뜨린 부처님은 이렇게 응수한다.
“약을 줄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당장 마을로 내려가 한 번도 사람이 죽은 일이 없는 집에서 겨자씨 한 숟갈을 얻어 오너라. 그것만 있으면 아이를 살릴 수 있다.”
방법이 있다는 말에 여인은 나는 듯이 마을로 내려가 겨자씨를 구하기 시작했다. 사정을 듣고 나면 누구나 다 겨자씨를 싸주었지만, 하루 종일 헤매고 다녀도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은 찾을 수가 없었다.
사력을 다해 이 집 저 집 문을 두들겼던 꼬따미는 그날 해가 저물기도 전에 부처님이 왜 그런 요구를 했는지 짐작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되는구나. 그러니 그 절대불변의 이치를 나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구나.’ 부처님이 던진 미끼를 통해 삶의 본질을 간파한 끼사꼬따미는 아이 시신을 부처님 앞에 내려놓으며 이제 다른 요청을 한다.
“저의 출가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들 죽음의 대가로 머리를 깎은 꼬따미의 정진은 비장했던 모양이다. 일 년이 채 되기도 전에 남들이 평생 닦아도 이루기 어렵다는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경전은 밝히고 있다.
아득한 시,공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문제가 너무나 흡사하게 묘사되는 것이 한편 놀랍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렸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는구나.’라는 비감에 젖어 드는데, 그동안 잊고 지낸 사실조차 미안해지는 옛일 한가지가 다가섰다.
군에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제자가 어느 날 불쑥 집으로 찾아왔다. 전방에서 근무하던 그에게 갑자기 전역 특명이 떨어지더란다. 전역을 두어 달 앞둔 채 다른 부대에서 복무하던 형이 훈련 중 사망하자 가정의 대가 끊기지 않도록 배려하는 복무규정에 따라 동생인 자신을 전역시켰다고 했다.
집에 돌아온 제자를 기다린 건 맏아들 잃은 엄마가 종일 방에 누워 흐느끼다가 한 번씩 미친 듯이 절규하는 일뿐이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것은 아버지가 침착하게 어머니를 다독이며 가정을 지키고 있었던 점이다. 그렇지만 며칠 못 가서 그는 자기 아버지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된다.
밤중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는데 깜깜한 거실 구석에서 아버지가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소리죽여 흐느끼고 있었단다. 가족들 앞에서 흐트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해 버티는 아버지를 배려하여, 아들은 못 본 척 다시 자리에 들었고 그런 아버지가 불쌍하여 그 역시 소리죽여 울며 그날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고 했다.
몇 달 후 그의 어머니를 만나니 상상했던 것보다는 활기가 있어 보였다. 계속 누워있다가는 그대로 죽을 것 같았는데, 보다 못한 친구가 보험설계사를 해보라고 권하더란다. 부유하게 살았던 그 부인에게는 참으로 생뚱맞은 제안이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일에 매달리자 다시 밥이 넘어가더라고 털어놓았다.
참담한 일을 겪고 나서 그녀가 보험설계사가 되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지인들에게 퍼져 나갔고, 그동안 많이 베풀고 살았던 그녀였으니 주변 사람들이 그냥 있을 리 없었다. 연락하지 않았는데도 먼저 전화를 걸어오고, 너나 할 것 없이 시원시원하게 가입해준다고 했다. 별로 애쓰지 않았는데도 몇 달 내리 보험왕으로 선발되는 재미에 빠져 죽은 아들을 지우는 중이라고 했다.
“낮은 사람들 만나서 수다 떨며 그럭저럭 넘기는데, 밤에는 아직 안 돼요. 선생님, 얼마나 더 걸릴까요?”
마흔 갓 넘어선 내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쩔쩔맸었던, 그녀가 던진 화두는 나의 가슴 한구석에 그대로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참전용사의 일을 접하자 그 때의 기억이 고스란히 되살아나고 있지 않은가. 노병이 칠십여 년 전 목격한 참상을 평생 가슴에 담고 지냈던 그것처럼 말이다.
참전용사 허먼의 가슴은 이제 가벼워졌을까. 운 좋게도, 가슴에 쌓아 둔 응어리를 받아주는 사진기자를 만나 털어놓았으니 이제 그 아픈 기억도 다 내려놓았을까. (23.8.20. 15.5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