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5일 사순 제3주간 화요일
(마태 18,21-35)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
베드로가 주님께 제 형제가 죄를 지으면 일곱 번까지 용서해 주어야 하느냐고 묻자,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도 용서해야 한다.”(22절)고 하셨다.
일흔일곱이라는 수의 신비는 이 특별한 수가 모든 세대의 모든 죄가 용서받았음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여기엔 한 세대도 빠지지 않았으므로, 십자가 안에서 주어진 하느님의 용서라는 충만한 선물을 받지 못한 세대는 하나도 없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완전히 용서해 주셨듯이, 우리도 서로를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용서를 이처럼 여러 번 하라는 것은 분노할 시간이 없음을 보여준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로 우리의 죄를 모두 용서하시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많이 용서해야 한다는 의무가 우리에게 면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복음의 은총을 통해 하느님께 한없는 용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가치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베드로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라고 하시지요. 가치 있는 삶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한 없이 용서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따르는 우리 역시 한계를 두지 않고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습을 묵상해야 합니다. 당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사랑을 주시는 모습을 우리는 복음에서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직접 모범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 역시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에, 구원의 길에서 제외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큰 빚을 탕감받고도 동료의 작은 빚을 참지 못하는 못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에게 관대하고 남에게 엄격한 모습으로, 절대 가치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가치 있는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모습은 어떨까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