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효 아키텍트-1] 위대한 건축가, 르코르뷔지에
매일경제 2019.09.24
▲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e d'habitation) /사진=flickr
[효효 아키텍트-1]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는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1887~1965)가 설계한 프랑스 마르세유의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e d'habitation, 1952)을 비롯해 그의 건축물 17개를 세계문화유산에 동시에 등재했다. 유산위원회는 "근대 운동에 탁월한 공헌(an Outstanding Contribution to the Modern Movement)"을 선정 사유로 밝혔다.
르코르뷔지에가 태어난 스위스 라쇼드퐁(La Chaux-de-Fonds)은 쥐라(Jura)산맥 기슭의 소도시이다. 코르뷔지에는 열세 살 때 시계 장식과 조각 공예를 가르치는 라쇼드퐁의 미술학교에 입학, 파리 에콜 데 보자르 출신인 화가 샤를 레플라트니 선생을 만나 건축에 눈을 떴고 선생의 후원으로 세계 건축 현장을 여행한다.
파리에서는 구스타브에펠의 에펠탑과 샤를 뒤테르의 '기계관'을 보며 산업 건축을 이해하고, 콘크리트와 철이라는 근대적 재료와 기술을 배웠고, 빈에서는 세세션(Secession, 분리파) 예술 운동을 접했으며, 지중해와 발칸반도의 민중 건축물에서는 '기하학적인 구조'를 체득하고, 그리스에서는 '고전적인 비례'를 배웠다. 그는 아크로폴리스에 올라 파르테논을 스케치하며 이렇게 말했다. "건축은 빛 속에 빚어진 매스(Mass)의 장엄한 유희다."
코르뷔지에는 1907년 파리에서 건축가 오귀스트 페레(Auguste Perret, 1874~1954) 사무소에 들어가 철근콘크리트 공법과 기하학적이면서 규칙적인 건축의 형태를 익혔다. 그는 수평창의 미학과 기능성에 대해 페레와 논쟁을 벌였다. 사진 필름이 감광되는 원리를 인용해 유입되는 빛의 양과 바닥판의 밝기 정도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며 자신의 논리를 펼쳐나갔다. 창 넓이가 같은 경우, 수평창의 방에서는 수직창의 방과 비교해 "감광판을 4분의 1만 노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페레는 '노출 콘크리트 공법'의 선구자로 불린다. 여기서 콘크리트는 구조재인 동시에 마감재이다.
그는 1908년 베를린에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페터 베렌스(Peter Behrens, 1868~1940) 아틀리에서 20세기 건축에서 불멸의 금자탑을 세운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 1886~1969),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1883~1969)를 만나 건축의 본질에 대해 논쟁한다. 코르뷔지에의 작품들이 낭만적이고 시적이라면 발터 그로피우스는 바우하우스 창시자답게 매우 합리적이며 모든 부분이 완전히 조정되어 있는 멋을 준다.
코르뷔지에는 시대에 대한 탁월한 혜안으로 1914~1915년, '혁신적 집'이란 뜻의 '돔이노(Dom-ino) 이론'을 완성한다. 이 공법은 자동차 뼈대(프레임)에서 얻은 영감으로, 마치 도미노 게임을 연상시키는 구조이다. 얇은 바닥판, 바닥판 사이를 지탱하는 기둥, 오르내릴 수 있는 계단을 집의 구조로 정의했다.
'돔이노'는 1차 대전후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코르뷔지에 방식의 '사회 참여'였다. 훗날 근대 건축의 5요소의 바탕이 된다. 이러한 새로운 건축에 대한 코르뷔지에의 심층화된 연구는 시트로앙 주택 계획안(1920)의 옥상 정원에 우선적으로 도입됐고, 라 로슈-잔느레 저택 이후 필로티 개념을 적용함으로써 점차 구체화한다.
그림에도 탁월한 재능을 지녔던 그는 화가 겸 디자이너인 아메데 오장팡(Amedee Ozenfant, 1886~1965)을 만나면서 건축 세계에 새롭게 눈뜨게 된다. 1920년 코르뷔지에는 오장팡과 공동으로 잡지 <에스프리 누보, Esprit Nouveau>를 창간, 많은 글을 기고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건축이론 토대를 다졌다. 오장팡은 입체파의 난해한 추상 개념을 거부하고, 일상적 사물이 갖는 순수주의(purisme)를 지향했다.
1922년 코르뷔지에는 그의 사촌인 피에르 잔느레와 같이 건축사무소를 열었다. 다수의 개인 주택을 설계한 코르뷔지에는 그 자신이 정의한 근대 건축의 5원칙(필로티Pilotis·옥상 정원Roof Garden·자유로운 평면Free Plan·수평창Horizontal Window·자유로운 입면Free Facade)을 적극적으로 적용한다. 오장팡과의 공저 <현대미술>(La Peinture Moderne)(1925)로 단숨에 당시 세계 문화 중심지인 파리의 주류적 위치에 오른다.
1927년 독일공작연맹의 초청에 의해 슈투트가르트의 바이센호프 시범 주거단지를 설계하였고 근대건축국제회의(CIAM)를 조직하여 다양한 도시계획을 제안했다.
돔이노 공법과 같은 '사회 참여' 맥락에서 2차 대전 후 프랑스 정부의 제안에 따라 현대 아파트의 시초로 평가받는 마르세유의 대규모 주거단지인 유니테 다비타시옹 설계를 맡았다. 해안가에 위치한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대형 여객선을 연상시키는 콘크리트 건물에 1600명이 거주하는 340여 가구의 아파트로 구성된다.
내부에는 복층화된 거실과 주거 공간, 상가와 편의시설을 갖추고 옥상에는 유치원과 체육, 영화 관람용 스크린 시설 등을 갖췄다. 마치 작은 도시처럼 아파트 내에서 주민들 생활의 상당 부분이 이뤄질 수 있었다. 아파트 가구별로 전면 발코니와 폭 넓은 창이 등장했고 외관은 컬러풀했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모듈러' 시스템을 적용했다. 모듈러는 인간이 생활하는 데 있어서 가장 편안한 최적의 수치를 만든 것이다. 오늘날의 아파트 방 높이가 약 2.3m인 것도 이 모듈러에 근거한다. 베를린 페렌스 사무실 동지 바우하우스 창시자 발터 그로피우스가 적용한 모듈러의 사람 서 있을 때의 기준은 183㎝이다. 공사는 몇 번의 중단 끝에 1952년 완공되었다.
최근 글로벌 건축계의 화두는 '사회 참여'다. 난민을 위한 건축,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모델을 제시한 건축가에게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의 영예가 주어지기도 한다. 코르뷔지에는 이 방면에서 선구자이자 혁명가이다. 그는 건축이 권위와 지배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임을 선언했고 실천했다. "집은 살기 위한 기계다"라는 명언을 통해서다.
※ 참고=서양근대건축(윤장섭), 르 코르뷔지에-근대 건축의 거장(이관석), 건축가 안정원 기고, 서양건축사(임석재), 묵상(승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