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리(九龍里)
정의
강원도 철원군 원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마을이 들어선 모양이 구유 같다 하여 구송골[구승골]이라 하던 것을 한자로 옮기면서 구룡동리(九龍洞里)라 하였다. 후에 개울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하였다는 전설이 깃든 마을이라 하여 구룡리(九龍里)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본래 강원도 금성군(金城郡) 남면(南面)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강원도 금성군 남면 회고개리, 정자동리 일부와 병합하여 강원도 김화군 원남면 구룡리로 개설되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동시에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북한 지역에 속하였다가 6·25전쟁 이후 수복되었다.
-1963년 11월 1일 법률 제1178호에 의거하여 김화군이 철원군으로 편입되어 강원도 철원군 원남면 구룡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동쪽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지세를 이루고 있다.
현황
강원도 철원군 원남면 구룡리는 민간인 출입 통제 구역으로 거주 인구는 없다.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에서 행정을 대행한다.
구룡리(九龍里)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에 있는 리(里).
본래 청풍군 북면의 지역으로, 아홉 굽이가 이루어진 냇가에 위치하여 구론 또는 구곡(九谷)이라 하였다. 전형적인 농촌이다.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자감동(自甘洞), 장터, 한내를 병합하여 구룡리가 되었다.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137호인 제원박도수가옥이 있다.
특산물로는 오이가 있다.
구룡리(九龍里)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에 있는 리(里).
서북쪽에는 대청호(大淸湖)가 있으며, 대부분 낮은 구릉지이다. 장군봉, 구룡소류지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구사리, 문의땅(묘암), 오룡동 등이 있다. 구사리는 옛날에 아홉 진사가 났다 하여 이름 붙여졌고, 문의땅은 뒷산에 큰 바위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룡동은 다섯 용이 여의주 한 개를 서로 쟁취하려는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구룡리(九龍里)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에 있는 리(里).
평야가 넓으며 동남쪽은 번화가이다. 자연마을에는 건지미, 구룡이 있다. 건지미는 과거에 방죽이 있었는데 비가 오지 않으면 물이 고이지 않는 건지였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구룡은 마을의 산세가 아홉 마리의 용의 형상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오창과학산업단지가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구룡리(九龍里)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에 있는 리(里).
산자락 아래에 자리잡은 중산간마을로 서쪽으로 구룡천이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가죽나무골, 솔밭말, 오양골, 희롱골이 있다. 가죽나무골은 마을에 가죽나무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솔밭말은 처음에 마을이 솔밭이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양골은 옛날 이곳에 큰 버드나무가 대여섯 그루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희롱골은 마을 지형이 신선이 옥녀를 희롱하는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특산물로는 밤이 있다.
구룡리(九龍里)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에 있는 이(里).
마을이 평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화양저수지가 있다. 아홉 용이 구슬을 다투는 형국이라 하여 구룡이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건너마을, 되고개, 마차울, 장좌동, 화망 등이 있다. 건너마을은 화망 남쪽으로 건너에 자리한 마을이다. 건너쪽에 있다해서 건너마을이라고 부른다. 되고개는 아래뜸에서 마차울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를 되고개라고 부르고, 그 고개를 자리한 마을도 고개 지명에 따라 되고개라고 부른다. 구룡의 아래쪽이 됨으로 하구리라고도 부르는 마을이다. 장좌동은 옛날에 장자들이 살았다 해서, 장자들이 자리한 마을 이라 장좌동, 장좌울이라고 부른다. 화망은 장좌동 북쪽으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화망이라고 부른다. 대천리의 화락산을 바라보는 위치에 자리한 마을로 꽃을 바라보고 있다해서 화망이라고 부른다 한다.
구룡리(九龍里)
충청남도 청양군 남양면에 있는 리(里).
성태산 밑이 되며 대부분의 지역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농경지도 분포하며 마을 앞으로 구룡천이 흐른다. 신촌, 장전리, 평구리, 오룡동 일부를 병합하여 평구와 오룡의 이름을 따서 구룡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가맛골, 안가맛골, 쇠냇다리, 구룡, 텃골마을 등이 있다. 가마골마을은 구룡리에 있는 가장 큰 마을로, 그릇 가마가 있었다 하여 가마골이라 칭하였다. 안가맛골마을은 가맛골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쇠냇다리마을은 앞 냇가에서 사금을 많이 캤으며 그 냇가에 다리가 있었으므로 쇠냇다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구룡말은 지형이 구렁이처럼 생겼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채정승묘의 산지기가 살았으므로 산직말이라고도 불린다. 텃골마을은 옛 집터가 있으므로 텃골이라 하였다.
구룡리(九龍里)
충청남도 청양군 장평면에 있는 리(里).
지천이 동쪽과 남쪽을 감싸 흐르고 북쪽에는 낮은 산지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구룡리(구룡말, 구룡촌), 들말(평촌) 등이 있다. 구룡리는 앞에 구룡못이 있다 하여 이름 붙여졌고, 들말은 구룡말 동쪽 들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구룡리(龜龍里)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에 있는 리(里).
삽교천변에 위치한 마을로 수도작 하기에 적당한 마을이다.
거북이가 움츠리고 있는 모양으로 되어있는 구산을 중심으로 동구마을과 서구마을로 크게 나뉜다. 구산은 산세가 좋아서 명당자리가 많다 하여, 예부터 지관들이 자주 드나들고, 명관들의 묘지로 많이 선택되었던 곳이다. 자연마을로는 천변, 동구, 용지, 사성 등이 있다. 천변은, 마을이 냇가에 자리한 마을이라 붙은 이름이며, 구산의 서쪽에 자리해 있다 해서, 서구산또는 서구라고도 부른다. 용지는 옛날에 하늘로 승천을 못한 이무기가 살면서 많은 사람을 해쳤는데,하루는 이 곳을 지나던 어느 도승이 그 이무기를 죽이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서 소금과 사금피리로 잡아 죽였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구룡이라는 명칭도 동구와 용지의 이름을 따서 생겨났다.
구룡리(九龍里)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팔덕면에 있는 리(里).
북쪽은 산지 남쪽은 평야지역으로 입석(立石), 신평(新平)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입석은 마을 이름대로(立石) 마을 주변에 9개의 돌을 세워 마을의 비보를 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 마을 주변 선돌 고인돌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선사시대부터 주변에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평은 입석에서 서쪽 새들(新平)에 형성되어 있는 취락촌으로 물무(물무골 안쪽에 마을이 있었음)에서 살던 사람과 서당뜸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새 들에 새 터를 잡고 마을을 형성했다. 하여 새들(新平)이라 했다고 전해오고 있다.
구룡리(九龍里)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구렁들을 끼고 이뤄졌으므로 한자로 ‘구룡’이라 하였다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 말 용담군 이남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진안군 정천면으로 편입되었다가 1983년 2월 15일 다시 상전면으로 편입되었다. 용담댐 건설로 모든 마을이 수몰되었고, 금당 마을과 세동 마을은 산기슭에 새로 조성되었다.
자연환경
고산 줄기가 북쪽으로 이어져 불당골재를 경계로 하여 안천면 신괴리와 접경하고, 이 산등성이가 더 북진하여 대양밭재 등성이를 경계로 하여 안천면 노성리와 접경한다. 불당골재 아래로 지금은 불노치 터널이 뚫려 국도 30호선이 통과한다. 대양밭재는 구룡리 금당 마을과 안천면 대양밭재를 이어 주는 통로였다.
서쪽은 금강이 휘돌아나가는 곳이라 동고서저형의 지세였다. 서쪽은 예전 금강을 경계로 하여 상전면 용평리와 접경하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용담댐 담수로 호수가 되어버려 경계를 가늠하기 어렵다. 북쪽은 고산 줄기가 서쪽으로 휘어진 산등성이를 경계로 하여 정천면 망화리와 접경하고, 남쪽은 고산 줄기가 사창산을 이루고 뻗어 내린 산등성이를 경계로 하여 상전면 월포리와 남북으로 접경한다.
현황
구룡리는 상전면 동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2013년 11월 30일 현재 면적은 5.16㎢이고, 인구는 38가구 74명[남자 38명, 여자 36명]이 살고 있다. 행정리로는 금당·세동이 있다. 용담댐 수몰 이전에는 세동·불노티·코크니[금당] 등의 자연 마을이 있었으나 모든 마을이 물에 잠겨 새로 조성된 세동·금당만 남았다. 세동 마을은 마을이 가늘고 길게 형성되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요 경제 활동은 농업이나 실제 경작 규모는 상당히 영세하다. 국도 30호선이 용평 대교를 거쳐 불노치 터널을 지나 안천면과 연결되는데 면도가 각 마을을 이어 주고,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정천면 망화리 지역까지 연결되어 있다.
구룡리(龜龍里)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진안읍에 있는 리(里).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금강의 상류가 흐르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암곡, 석곡, 예리 마을이 있다. 암곡마을 앞에는 큰 바위와 정자나무가 있었는데 마을 앞에 바위가 있다 하여 마을 명칭을 바우실이라 부르다가 요즈음에 와서 바위암(岩)자를 그대로 붙여 암곡(岩谷)이라 개칭하게 되었다. 석곡 마을은 옛부터 돌이 많은 곳이었으며 또한 이웃마을 예리(曳泥)부락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어서 처음에는 마을 명칭을 "돌고개"라 불렀다.
구룡리(九龍里)
전라남도 곡성군 목사동면에 있는 리(里).
비래산 끝자락에 자리한 마을로, 마을 앞으로는 들이 펼쳐져 있으며 뇌정나루터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구룡마을이 있다. 구룡은 마을 뒷산인 비래산에서부터 마을 앞까지 9개의 큰 바위가 있고, 마을 뒷산의 능선이 용(龍)의 형국을 이루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은 신숭겸 장군의 탄생지로 알려져 있고, 지방기념물 제98호인 용산재가 있다.
구룡리(九龍里)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구룡리 명칭은 구룡마을과 용두마을에서 유래했다. 용두(龍頭)마을은 『승주향리지』[1986]에 의하면 용이 바다를 향하여 한가로이 구슬을 희롱하며 놀고 있는 형국으로, 용의 머리 부분에 마을이 형성되어 ‘용두’라 했다고 전한다. 산 능선을 풍수에서는 용이라 표현하는데, 바다로 길게 뻗어 나간 땅고개의 모습이 마치 용과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어, ‘용머리’라 부른 것으로 보인다. 구룡(九龍)마을 역시 아홉 마리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희롱하는 형국이라 ‘구룡’이라 했다 한다.
형성 및 변천
구룡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순천군 초상면 구룡리와 용두리 일부를 병합하여 순천군 동초면 구룡리로 개설되었다. 1929년 동초면이 폐지되면서 별량면에 속하게 되어 순천군 별량면 구룡리가 되었다.
1949년 전라남도 순천시와 전라남도 승주군이 분리되면서 승주군 별량면 구룡리가 되었다. 1995년 도농통합 정책에 의해 순천시와 승주군이 통합되면서 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 구룡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구룡리 북쪽에는 구룡 뒷산으로 주산이 되는 산부래기[133m]가 있다. 주산의 한 갈래는 서쪽으로 서남등[37m]을 만들어 우백호가 되고, 한 갈래는 동쪽으로 큰까끔[63m]을 만들어 청룡을 이루어, 동쪽·서쪽·북쪽이 산으로 감싸고 남쪽으로 열려 있다. 마을 앞 옛 국도와 경전선 철도 너머에 있는 뒷산은 큰까끔에서 야트막하게 바다 쪽으로 뻗어 나간 구릉지로 청룡등[27m]이라 부른다. 용두는 산부래기에서 동쪽으로 뻗은 산자락이 큰적굴, 작은적굴을 이루며 바닷가에 닿아 있다. 과거 간척되기 전 돼지산[46m]과 황새등[21m]은 섬으로 있던 곳인데 수차례 걸친 간척으로 염전과 농토가 되었다. 큰마을 서남쪽으로 뻗어 나간 땅고개[22m]는 용머리 형국이다. 북쪽으로는 금지천이 흐르며, 남쪽으로는 순천만에 접해 있고 동초천 주변으로는 구룡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현황
구룡리 면적은 2.64㎢로 별량면 관내 18개리 중 열 번째이며, 2019년 8월 31일 기준으로 인구는 212가구, 426명[남 221명, 여 205명]이다. 구룡리에 속한 자연마을로는 용두마을과 구룡마을이 있다.
구룡리(九龍里)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 있는 리(里).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멧골산에 둘러싸여 있다. 동쪽으로는 송광천이 흐르며, 구룡저수지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구표, 오룡 등이 있다. 구표는 지형이 거북이 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오룡은 오봉산 밑에 자리잡고 있는 용의 형세를 하고있다 하여 붙여졌다.
구룡리(九龍里)
전라남도 장성군 동화면에 있는 리(里).
서쪽으로 영산강의 지류인 황룡강이 흐르며 남쪽에는 비네봉이 위치해 있고 대부분 낮은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남서쪽으로는 덕산 저수지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구봉, 판교, 덕산, 동각촌, 삼룡, 옹굴 등이 있다. 구봉은 덕산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앞의 용진산 자락에 아홉개의 봉우리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판교는 동각촌 북서쪽에 있는 마을이며 마을 앞에 널판지로 놓은 다리가 있었던 것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덕산은 동각촌 서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며 덕산 저수지가 있다. 동각촌은 구봉 서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삼룡은 구봉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며 세 줄기의 산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옹굴은 삼룡 서쪽에 있는 마을이며 새로 형성되어서 신기라고도 한다.
구룡리(九龍里)
전라남도 장흥군 부산면에 있는 리(里).
수인산 앞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진다. 용두리, 구정리, 자미리를 병합하면서 구정과 용두의 이름을 따 구룡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구정, 굼박골, 까막골, 뱀머리, 니거리마을 등이 있다. 구정마을은 아홉 그루의 정자나무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마을이다. 굼박골마을은 구멍이 나있는 바위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까막골마을은 가마솥 안처럼 우묵한 곳에 자리하였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뱀머리마을은 뱀머리처럼 생긴 산 앞에 자리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니거리마을은 마을 앞에 네 갈래의 길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구룡리(九龍里)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리(里).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형세이다. 자연마을로는 동달리, 원구룡, 소월(小月), 양평(陽坪), 원심이 등이 있다. 동달리는 옛날에 동쪽 구룡천(九龍川)에 큰 다리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구룡은 구룡리가 통합되기 전부터 구룡, 구룡방으로 부르던 마을로 원래의 구룡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소월은 뒷산이 반달모양으로 생겼으며, 앞뒷산이 모두 높아 달을 오래 볼 수 없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양평은 근처가 산이 높고 골이 깊으나 이 곳은 조금 넓은 편으로 다른 곳보다 볕을 오래 볼 수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심이는 들에서 멀고 깊다 하여 유래된 이름으로, 삼면이 막혀있고 북쪽만 트여 난시(亂時)에 피난에 알맞고 편한 곳이라 하여 온심이라고도 하였다.
구룡리(九龍里)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에 있는 리(里).
삼봉산에서 북동쪽으로 뻗어나온 산줄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산간 마을이다. 비교적 높은 지대에 자리하고 있으며, 마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낮아지는 지형이다.
자연마을로는 구룡, 대추징이, 밤나무징이 마을 등이 있다. 구룡 마을은 지형이 아홉 용이 구슬을 희롱하는 모습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대추징이 마을은 대추나무가 있다는 의미에서 불리워진 이름이다. 밤나무징이 마을은 밤나무가 많다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구룡리(龜龍里)
강원도(북한) 법동군 남동부에 있는 리.
북쪽과 동쪽은 건자리(乾子里), 남쪽은 금평리(金坪里)·어유리(魚游里)와 세포군 신동리, 서쪽은 장안리(長安里)·취암리(鷲岩里)와 접한다. 지명은 이 지역에 있는 거북바위와 고미탄천의 용소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것이다.
강원도 이천군 웅탄면에 속하였다가,
1952년 12월 면이 폐지됨에 따라 이락리와 왕막리 일부를 분리·통합하여 법동군 구룡리를 신설하였다.
마식령산맥과 명의덕산맥 사이의 험준한 산간지대에 자리잡고 있으며, 형제봉(1,141m)·요골산(1,104m) 등 해발고도 1,000m 안팎의 높은 산들이 솟아 있다. 전체 면적의 97%가 산림이며, 주요 수종은 잣나무·소나무·참나무·피나무 등이다. 중앙으로 임진강의 지류인 고미탄천이 흐르는데, 경사가 심하고 수량이 풍부하다. 강에는 열목어가 많다.
경작지의 대부분이 밭이며, 주요 농산물은 옥수수·감자 등이다. 지역 특산물로 잣과 꿀이 유명하다. 목기생산협동조합과 인민학교, 병원이 있다. 주요 교통로로는 직고개(980m)를 넘어 법동읍으로 가는 도로가 있으며, 군 소재지인 법동읍까지의 거리는 41km이다.
구룡리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용방리에 편입된 옛 마을.
이밖에 북한지역에 구룡리 이름을 가진 많은 마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