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생명의 떡이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 성경에 “떡”으로 번역되었는데, “떡”이나 “빵”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옛날 한국 사람들이 빵보다 떡에 익숙한 민족이었기 때문에, “떡”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래서 새 번역에는 “빵”이라고 번역되었고 개역에는 “떡”이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밥”을 먹고 유대인들은 빵을 먹었기에, “밥”이라고 번역하여도 상관없습니다.
우리 성경에는 “나는 ~이다” 중간에 “떡”이라는 말이 오지만, 영어는 동사가 먼저 “I am ~”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에 “I am ~”이라는 말이 일곱 번 나옵니다. 그 중에 첫 번째인 “나는 생명의 떡이다”라는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병든 사람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요 6:2, 쉬운 성경).
예수님께서는 언덕으로 올라가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셨습니다(요 6:3).
때는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 무렵이었습니다(요 6:4, 쉬운 성경).
예수님께서는 눈을 들어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나오는 것을 바라보시고 필립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먹을 빵을 어디서 살 수 있겠느냐?”
예수님께서는 필립이 어떻게 하나 보시려고 이런 질문을 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필립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요 6:6).
필립이 예수님께 대답했습니다. “여기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빵을 한 입씩만 먹는다고 해도, 그 빵을 사려면 이천만원은 있어야 할 것입니다.”(요 6:7)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인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가 말했습니다.
“여기 사내아이 하나가 가지고 온 작은 보리 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 이렇게 많은 사람을 어떻게 먹이겠습니까?”(요 6:9, 쉬운 성경).
이것을 한자어로 “오병이어”라고 합니다. “병(餠)”이 떡이라는 뜻이고, “어(魚)”가 물고기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앉으라고 하여라.” 그 곳은 풀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거기에 앉은 남자 어른의 수는 약 오천 명이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하신 후, 그 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만큼 나눠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물고기를 가지고도 그렇게 하셨습니다(요 6:11, 쉬운 성경).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먹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먹이시는 표적,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와서 자기를 강제로 데려다가 그들의 왕으로 세우려 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그 곳을 떠나 혼자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요 6:15, 쉬운 성경)
요한복음 6장 1-15절은 예수님께서 5천 명을 먹이신 내용입니다.1)
감사하신 그 예수께서 그 비스듬히 기댄 자들에게 그 떡을 나눠주셨고 그 보리 떡 다섯에서 그들이 조각의 12바구니들을 가득하게 하였습니다. 각 제자들이 바구니 하나씩을 가득 채우니 12바구니가 되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먹은 후에 처음 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이 남았습니다.2)
1. 영생으로 머무르는 양식을 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26-27절에 “너희가 먹고 배불렀기 때문에 나를 찾노라. 너희는 멸망하는(perish) 양식을 일하지 않도록 하라 그러나 영원한 생명 안으로 머무르는 그 양식을(for the food) 그러하라 그것을 그 사람의 아들(the Son of Man, 인자)이 너희에게 줄 것이니 이를 그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 치셨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22-59절은 ‘생명의 떡 말씀’입니다.3)
요한복음 6장 22-40절은 ‘가버나움의 예수님과 군중’입니다.4)
무리는 예수님을 그들의 왕으로 만들려 했던 계획에 관여한 자들이며, 이들이 예수님의 대화 상대가 되어서 말하는 내용이 기록되었습니다.5)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신 그 이튿날 그 바다 건너편에 선 그 무리가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지 아니하신 것을 보았습니다(요 6:22).
그러나 배들이 그들이 떡을 식사한 장소의 가까이 왔습니다(요 6:23).
그 무리가 예수님께서 계시지 아니하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보았을 때 예수님을 찾는 그들이 그 배들 안으로 올라갔고 가버나움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 바다의 건너편에서 그를 발견한 그들이 그에게 말하였기를, “랍비여 언제 당신은 여기에 되신 것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요 6: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배불렀기 때문에 자신을 찾는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이 예수님을 찾은 이유는 떡을 먹고 배불렀기 때문입니다(요 6:26).
예수님께서 그를 찾는 무리의 가치 없는 동기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찾은 이유는 굶은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6)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육체적으로 채워 주실 것을 원한 것입니다. 그들은 물질적인 것에 관심이 있었고 영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실 때에 사람들의 육체의 필요를 채워 주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죗값을 치르심으로써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영적인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그들은 육체적으로 배부르게 먹고 잘 먹고 잘사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멸망하는 양식을 일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없어질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요 6:27).
이 땅의 식량은 먹어서 없어지든지 썩어서 없어지든지 없어질 것인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없어질 식량을 위해 일하지 말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일하는 목적이 무엇이냐? 너희가 육체를 위해 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생으로 머무르는 그 양식을 일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육체를 위해 살지 말고 영(spirit)을 위해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육체를 위해 살지 말고 영(spirit)의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에게 영(spirit)이 있는데 태어날 때에 영(spirit)이 죽어 태어나며 성령님께서 새로운 생명을 주셔서 다시 태어나게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성령님에서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난다는 말은 영(spirit)이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spirit)이 다시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육체를 위해서만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태어나서 영(spirit)의 양식을 일할 것을 말씀하셨고, 이것은 영(spirit)을 배부르게 하려고 사는 사람들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영(spirit)을 배부르게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음으로써 영(spirit)을 배부르게 하여야 하며,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음으로써 영(spirit)이 살찌는 것입니다. 그런 양식, 즉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영생으로 머무르는 양식을 일하는 것은 오직 믿는 자들에게 가능한데,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영(spirit)이 죽어서 영(spirit)을 위해 일할 수 없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의 욕망을 이루는 목적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너희는 다시 태어나서 영(spirit)의 양식을 일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양식은 영생으로 머무르는 양식이니 그 양식을 먹으면 영생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어야지 영생으로 머무를 수 있게 됩니다.
영생으로 머무르는 양식은 “사람의 아들”, 즉 “인자(人子)”가 주시는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항상 자신을 가리켜서 “인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나는 사람의 아들이야’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이 세상에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따라서 “인자가 줄 것이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주실 것을 뜻합니다. 사람이 영생으로 머무르는 양식을 일하면, 예수님께서 그것을 주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줄이면 “영생”인데 요한복음의 주제는 영생입니다.7) “주제”는 중심을 뜻하며 요한복음의 중심 내용이 바로 영생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무엇?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문에 영생으로 머무르는 양식을 일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요한복음은 이렇게 “영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물질을 갈망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추구하고 있습니까?8) 돈 많이 벌어 부자가 되어 보물 차고 다니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추구하고 살아갑니까?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물질이 필요하지만 이것이 목적이 되면 안 되며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 하나님의 찾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건성으로 찾지 아니하고 진지한 자세로 찾아야 합니다.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였기를 “우리가 그 하나님의 일들을 일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행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요 6:28).
그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 시작하셨고 그가 그들에게 대답하셨기를 “이것이 그 하나님의 일이니 저가 파견하신 자 안으로 믿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6:29).
그들은 “하나님의 일들”이라고 하나님의 일이 여럿으로 생각하였지만 오직 “이것”이 “하나님의 일”인데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예수님을 믿으며 사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들은 “양식을 일하라”는 말씀을 가서 일해야 되는 것으로 들었는데, 그들은 항상 예수님의 영적인 말씀을 육체적인 것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양식을 일하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설명되었습니다.9)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은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기를 “우리가 보고 우리가 당신에게 믿었기 위해 당신은 무슨 표적(sign)을 행하시며 당신은 무엇을 일하시는 것입니까? ‘그가 떡을 그 하늘에서 그들에게 먹게 주셨다’라고 기록된 것에 따라서, 우리의 조상들은 그 황야 안에 그 만나를 먹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표적을 요구한 것은 그들의 불신을 잘 드러냅니다(요 6:30).10) 바로 어제 예수님께서 표적을 행하셨는데, 어떤 표적을 행하셨습니까?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셨는데, 유대인들은 또 표적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당신을 믿게 하는 표적은 무엇이냐”고 말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만나”를 먹고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만나”가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는 “생명의 떡”과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황야에 있었고 농사를 짓지 못했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먹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슬과 함께 풀잎에 하얀색 가루가 같이 내렸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아침마다 들에 나가서 그 하얀색 가루를 모아 가지고 와서 밀가루처럼 반죽해 가지고 그걸로 떡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주신 떡이었습니다. 그 떡의 이름이 “만나”입니다. 그들이 만나를 먹고 살았습니다.
‘그 몇 천 년 전에 우리의 조상들은 황야에서 농사도 짓지 않았는데 아침마다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고 살았습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모세가 우리의 조상들에게 이 떡을 주었는데, 당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라면 아침마다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서 우리로 하여금 먹고 배부르게 해야 될 것 아닙니까?’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오해를, 그들의 잘못된 말을 고쳐 주십니다.
2. “내가 그 생명의 떡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32-33절에 “모세가 그 떡을 그 하늘에서 주지 않았으나 나의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그 진짜의 떡을 그 하늘에서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오고 생명을 세상에게 주는 것임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만나를 준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모세가 만나를 준 것으로 오해하였습니다(요 6:32).
그들의 말은 처음에 전제부터가 틀린 말입니다. 전제부터가 틀리니까 논리적이지 못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모세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만나를 주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모세가 그 조상들에게 그 떡을 하늘에서 주었다고 말하였지만, 모세가 만나를 주지 아니하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신 것입니다.
‘모세가 떡을 내렸듯이 메시아도 그러하다’고 가르치는 것은 잘못인데 지금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런 잘못된 가르침을 지적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아버지께서 진짜 떡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모세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떡을 주었다고 말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떡을 준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떡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런 것이니 ‘너희는 나에게 만나를 달라고 요구하지만 그것이 표적이 될 수 없다. 내가 만나를 주어야 될 것이 아니라, 내가 떡을 주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셔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께서 떡을 주시는데 그 떡을 이미 너희에게 주셨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미 진짜 떡을 너희에게 주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오고 그 세상에게 생명을 주니(요 6:33), 하나님의 떡은 그 세상에게 하나님의 왕국의 생명을 준다는 말씀입니다.
하늘에서의 그 떡은 모세가 주지 아니하였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데, 하늘에서의 그 진짜 떡을 주시는 분은 예수님의 아버지십니다(요 6:32). 이는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와 생명을 주는 것임입니다(요 6:33).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였기를, “언제나 우리에게 이 떡을 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요 6:34).
그들의 말은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것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아직 “만나”처럼 먹을 수 있는 떡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 6장 35절에 “내가 그 생명의 그 떡(the bread)이다, 나에게 오는 자는 주리지 않고 내 안으로 믿는 자는 목마르지 않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내가 그 생명의 그 떡(the bread)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에 걸으신 예수님께서 “I am”, “나다”라고 하셨고, “나는 떡이다”의 “나는(내가) ~이다”는 말도 “I am”입니다.
“나는 ~이다”는 말은 자신을 소개하는 문구로 사용됩니다.11)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떡”이신데 예수님께서 생명을 주시기 때문이며 예수님께서 “나는 그 생명의 떡이다”라고 그 정체를 밝히신 것입니다.12)
예수님께서는 “나는 ~이다”는 “I am”을 사용하셔서 자신이 “생명의 떡”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새 번역, 개역은 생명의 떡).
이 떡을 먹는 것은 예수님께 오고 그를 믿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이상한 음식을 먹는 사람이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께 오고 그를 믿는 자는 굶주리지 아니하고 목마르지 아니합니다.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것을 그를 먹는 것으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는 먹는다고 표현하심으로써 믿는다는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생명을 주는 떡을 먹기에 굶주리지 아니합니다. 이 떡을 먹으면 생명을 얻습니다. 즉 예수님을 믿으면 생명을 얻습니다.
요한복음 6장 35절에 “나는 그 생명의 그 떡이라, 나에게로 오는 자는 결코 굶주리지 아니할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생명의 떡이신 분이십니다. 떡(식량)이 육체에 생명을 주듯이,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기를 “너희는 나를 보았고 믿지 아니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6:36).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미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이전 표적들을 본 자들입니다. 그들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하나님을 그들의 눈으로 본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목마르지 아니함에도 그들은 그를 믿지 아니합니다.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것은 다시 태어나지 못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다시 태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육체적인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배고프지 않고 잘 먹고 잘살까’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며,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믿지 않는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6장 37-40절에 “아버지께서 주시는 자는 나를 향해 오겠고, 나를 향해 오는 자를 결코 내가 밖에 쫓아내지 아니하겠노라. 내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기 위해 그 하늘에서 내려왔으나. 그가 나에게 주신 모든 자를 내가 그에서 잃어버리지 않으나 내가 그를 그 마지막의 날 안에 일으킨 이것이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이니. 이는 그 아들 안으로 믿는 모든 자가 영생을 가지는 이것이 그 뜻임이고, 내가 그를 그 마지막의 날 안에 일으킬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자는 예수님을 향하여 오게 될 것입니다(요 6:37). 아버지께서 주시는 자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와서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은 아버지께서 주시는 자들이 아니기에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시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이기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사람이 믿지 않는 것은 아버지께서 그를 선택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선택의 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13)
예수님께서는 그를 향하여 오는 자를 결코 밖에 쫓아내지 않으시는데, 아버지께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는 분이신 까닭인데, 아버지께서 오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믿는 것이 아버지의 뜻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결코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려고 하늘로부터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하나님의 뜻입니다(요 6:38).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려고 하늘에서 내려오셨기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들을 결코 쫓아내실 수 없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신 자를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리지 아니하시나 예수님께서 그를 일으키시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요 6:39).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신 모든 자들이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마지막의 날에 일으키시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입니다.
아버지께서 100명을 주셨다면, 예수님께서는 100명 다 구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99명만 구원하고 한 사람을 잃어버리는 분이 아니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신 자는 잃어버림을 받지 않고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도 잃어버림을 받지 않고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은 구원을 받습니다.
세상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고 세상의 “마지막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 도래한다는 사실을 믿지 아니합니다.
많은 사람이 몇 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하늘과 땅이 그대로 있어 왔고 앞으로도 몇 천 년 동안 하늘과 땅이 그대로 있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은 생각하기를, 사람들이 멸망할지라도 쥐는 멸망하지 않고 사람들이 다 멸망할지라도 하늘과 땅은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하늘과 땅은 계속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마지막 날”이 반드시 있게 될 것이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마지막 날”이 반드시 오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움직이고 돌아가는 것을 보니 “마지막 날”이 가까이 왔습니다. “마지막 날”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백신패스를 통해서 확인하게 됩니다. 백신패스를 통해서 “마지막 날”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마지막 날이 오면 사람들이 백신패스와 같은 어떤 패스를 받지 않으면 몸에다가 그런 패스를 받지 않으면 물건을 사지도 못하고 팔지도 못하는 그런 세상이 온다고 성경 맨 마지막인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백신패스 전에는 그런 날이 언젠가 온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백신패스를 겪으면서 그런 날이 매우 가까웠음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백신패스 기간에 마트에 이마트에 롯데마트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까? 한 달인가 잠시 하다가 끝나지만, 앞으로도 그런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악인들이 요구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사지도 못하고 팔지도 못합니다. 그런 세상이 오게 되면, 그때에 끝이 가까웠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세상이 악해지고 더 이상 믿음을 지킬 수 없을 정도로 악해졌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때 다시 오실 것이고 그때가 “마지막 날”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다가 그때까지 살아 있는 사람들은 몸이 영화롭게 바뀌고, 예수님을 믿다가 이미 죽은 자들을 예수님께서 다시 일으키실 것입니다. 이미 죽은 자들은 새로운 몸을 받고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중에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일으키십니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가 영생을 가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이고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그 마지막의 날에 일으키실 것입니다(요 6:40).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주셔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가 영생을 가지며,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든지 불에 태우든지 몸이 모두 없어지게 되는데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는 일으킴을 받을 때에 새로운 몸을 받게 됩니다.
영광의 몸, 썩지 않는 몸, 죽지 않는 몸, 빛의 몸으로 일으킴을 받는데 그를 믿는 모든 자는 새로운 몸을 가지고 영원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교리 중에 하나가 선택의 교리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만이 믿고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3.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는 것에 관해 불평하였습니다.
요한복음 6장 41절에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하신 까닭에, 그 유대인들이 그에 관하여 불평한지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뭐 이와 같은 설교를 하느냐’고 그들이 그에 관하여 불평한 것입니다. 마치 그들의 조상들이 황야에서 불평한 것처럼 그들은 불평한 것입니다. 그들의 조상들이 ‘이 떡 싫어 만나 싫어’라고 불평하였던 것과 같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다시 반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2'. “내가 그 생명의 떡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48-51절에 “내가 그 생명의 떡이라. 너희의 그 조상들은 그 황야 안에 그 만나를 먹었으며 그들은 죽었노라.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 떡이니 누구나 먹고 죽지 않기 위한 것이라. 나는 그 하늘에서 내려온 그 살아 있는 떡이라(the living bread),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떡에서 먹었다면 그는 그 영원 안으로 살게 되겠고, 그러나 내가 줄 바의 그 떡은 그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나의 살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하늘에서 내려온 그 살아 있는 떡이십니다(요 6:51).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떡에서 먹었다면 그는 그 영원 안으로 살게 되겠고, 그러나 그가 주실 바의 그 떡은 그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그의 살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므로 서로를 향하여 그 유대인들이 다투어 말하기를, “어떻게 이가 우리에게 그의 살을 먹게 줄 수 있느냐?”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육체적인 사람들이었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이 말씀 때문에 그들 가운데에 다툼이 일어났습니다(요 6:52).
3'.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53-58절에 “그 살을 먹지 않고 그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가 너희 자신들 안에 생명을 가지지(have) 아니하노라. 나의 살을 씹어 먹고 나의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지며 내가 마지막의 날에 그를 일으키겠으니(raise him up). 이는 나의 살은 진짜의 먹는 것이고 나의 피는 진짜의 마시는 것임이라. 나의 살을 씹고(eat) 나의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파견하셨고 내가 아버지 때문에 사는 것처럼 나를 씹는 그도 나 때문에 살 것이라.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그 떡이라 조상들이 먹었고 죽은 것처럼 아니며 이 떡을 씹어 먹는 자는 그 영원 안으로 살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지 않고 예수님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는 자는 그 속에 생명을 갖지 않습니다(요 6:53).
예수님의 살을 씹어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지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를 마지막 날에 일으키실(raise up) 것입니다(요 6:54).
예수님의 살은 참된 양식이고 그분의 피는 참된 음료입니다(요 6:55). 서로 안에 머무르는 것은 친밀한 교제를 뜻합니다(요 6:56). 믿는 자는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로 이 세상에서 영생을 가지고 살다가 부활하여 영원히 살 것입니다(요 6:58).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시며 친밀한 교제를 누리고 사는 복된 구원영생교회 성도들이 다 됩시다!
1) Robert H. Stein, 『BECNT 마가복음』, BECNT 성경주석, 배용덕 옮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4), 431.
2) D. A. Carson, 『요한복음』, PNTC 주석, 박문재 옮김 (서울: 솔로몬, 2017), 490.
3) Andreas J. Köstenberger, 『BECNT 요한복음』, BECNT 성경주석, 신지철·전광규 옮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7), 293.
4) J. Ramsey Michaels, 『NICNT 요한복음』, NICNT 성경주석, 권대영·조호영 옮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22), 450.
5) Michaels, 『NICNT 요한복음』, 452.
6) James Boice, 『요한복음 강해 Ⅱ』, 서문강 옮김 (파주: 쉴만한 물가, 2017), 207-208.
7) D. M. Lloyd-Jones, 『생수를 구하라』, 전의우 옮김 (규장, 2010), 12.
8) Boice, 『요한복음 강해 Ⅱ』, 213.
9) Köstenberger, 『BECNT 요한복음』, 294.
10) G. K. Beale·D. A. Carson 편집, 『누가·요한복음』, 신약의 구약사용 주석 시리즈 2권, 우성훈·배성진 옮김 (서울: CLC, 2012), 560.
11) G. R. Beasley-Murray, 『요한복음』, WBC 성경주석 36, 이덕신 옮김 (서울: 솔로몬, 2001), 257.
12) Michaels, 『NICNT 요한복음』, 452.
13) Boice, 『요한복음 강해 Ⅱ』, 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