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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에서 북악을 부르다
♠ 2박3일의 한라산 트레킹
여행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기대감과 설레임일 것이다. 여행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미지의 세계를 넘나들고픈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엔 안성맞춤인 이벤트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산산 2080’ 인터넷 카페 회원인 희연사랑, 산바람과 함께 3명이서 제주도 한라산 트레킹을 가기로 하였다. 5월 1일부터 3일까지 2박3일 일정에 카페리를 이용한 여행 프로그램이었다.
약속 장소인 홍제동 전철역엔 ‘희연사랑’, ‘산바람’이 먼저 와 있었고 ‘쿠스헤’가 우리 일행을 인천까지 대려다 준다고 승합차를 대기시켜 놓았다. 태국여행의 피로가 쉬 가시지도 않은 상태임에도 편의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었다. 참 고마웠다. 이렇게 우리들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인천 연안부두는 살아있는 듯 활기차 보였다. 대형 화물차들은 분주히 여기저기를 오가고, 부두의 크레인들은 서로가 크다며 키 자랑에 열중이었다. 콘테이너 박스는 팔려가는 노예마냥 멍하니 주저앉은 채 이름모를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산시장은 갓 잡아 올린 해산물과 이들을 팔려는 상인, 그리고 먹거리를 즐기러 온 사람들로 매우 혼잡하였다. 명절을 앞둔 시골 5일장을 방불케 했다. 우리는 배에서 안주를 할 요량으로 회 한 접시와 굴 한 사발을 샀다.
봄날 오후, 나른한 햇살에 축 늘어진 바다는 졸고 있었다. 육지에서의 분주함과는 달리 바다 한 가운데 점점이 떠 있는 크고 작은 선박들과 묘한 대조를 이뤘다. 그 옛날 김트리오가 불러 히트시킨 ‘연안부두’의 노랫말을 흥얼거렸다. - 어쩌다 한번 오는 저 배는 무슨 사연 싣고 오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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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리에 몸을 맡기다
인천항 연안여객 터미널에 들어서자 등산복 차림의 여행객들로 북새통이었다. 우리들과 같이 2박3일 동안 함께 여행할 사람들이었다. 형형색색의 등산복 차림과 지방의 사투리가 섞여 잔치집 같은 분위기였다. 대부분 사오십 대로 친목 모임 및 부부동반의 여행 케이스였다. 연인인 듯한 젊은이들도 간간히 보였다. 산악자전거 복장으로 무장한 육칠십의 노인들도 눈에 띄었다. 아마도 제주도 로드 트레킹 멤버인 듯 했다. 겉으로 보기에 백발에 잔주름은 많았지만 마음과 체력만은 역주행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척 부러워 보였다. 나도 저 나이가 되면 그만한 체력과 열정이 묻어나올 것인가 하는 괜스런 걱정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개찰을 마치고 부두에 들어섰다. 우리를 태우고 갈 ‘오하마나호’가 거대한 아가리를 치켜들고 서 있었다. 마치 도심 속의 아파트 한 채가 서 있는 것 같았다. 승객은 물론 각종 화물과 차량을 싣기 위해 창피한 줄도 모르고 자신의 속살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하마나호’는 총 톤수 6,322톤에 길이가 141.4미터, 너비가 22미터, 그리고 945명 까지 태울 수 있는 국내 최대의 여객선이란다. 21노트의 속도로 제주까지는 13시간 30분이 걸린단다. 이 시간이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런던과 뉴욕을 가고도 남을 시간이다. 혀를 내두를 만한 긴 뱃길이지만 늘 등산객들로 만원이란다. 왜 그럴까? 과연 어떠한 매력이 숨어있는 것일까? 그 물음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란다.
배 이름인 ‘오하마나호’의 유래가 우스꽝스러웠다. ‘오! 하마나’란 표현으로 여기서 ‘하마나’는 ‘아니 벌써’란 의미의 경상도 사투리란다. 하지만 이름값을 하지도 못하는 걸 어떡하란 말인가. 다른 교통수단에 비하면 느림보 거북이다.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족히 해결될 거리가 13시간이 넘게 걸린다니 지루함보다는 두려움이 먼저 앞선다. 하지만 어쩌랴.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고 루비콘강은 건너버리고 만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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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슬로우 시티’, ‘느림의 미학’이라는 말들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인류가 농경사회에서 산업화사회로, 그리고 정보화사회로 접어들면서 세월은 급속도로 빨리 움직이고 있다. 어찌 보면 ‘세월이 빛과 같은 속도로 흐른다’가 적절한 표현이다. 이러한 시대의 질곡을 거치면서 ‘과연 우리가 취한 것이 무엇이며, 잃어버린 것은 또 무엇인가’에 대한 회의를 품기 시작한 부류들에 의한 사고가 새로운 트랜드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대자연에 순응하고 대자연의 이치를 좇아 생활하면서 그동안 잃어버렸던 본연의 인간성을 회복해 나가자는 취지일 것이다. 언필칭 이러한 움직임들이 꿈틀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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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실에 들어서자 웅장한 규모에 다시 한 번 눈이 휘둥그레 졌다. 그 위용은 대단했다. 6층으로 된 선실내부는 겉에서 보기와는 또 다른 웅장함으로 다가왔다. 로비에 올라서자 이벤트 홀, 편의점, 커피숍, 레스토랑 등 편의시설이 완비되어 있었다. 지친 여정을 달래 줄 객실 또한 다양한 편이었다. 호텔급의 로얄실, 온 가족이 함께 보낼 수 있도록 꾸며진 가족실, 일본식의 다다미방까지 고루 있었고 가격대 또한 다양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다는 3등실도 20명 규모의 여러 방으로 나눠져 있어 크게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하였음을 볼 수 있었다. 또한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샤워실도 구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매력은 레스토랑에서의 두 차례 이어질 라이브 쇼와 선상에서의 불꽃놀이라는 승무원의 귀뜸에 우리들의 가슴은 마냥 설레기만 하였다.
우리들이 머무를 숙소는 3등실인 6층 이벤트 홀이었다. 15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란다. ‘희연사랑’이 한 번 다녀온 경험을 살려 잽싸게 명당자리(?)를 차지하였다. 사람들의 통행이 없는 제일 모퉁이 구석진 곳이었다. 여장을 풀자 그 동안의 긴장이 풀리면서 피로가 겹쳐오기 시작했다. 배가 워낙 커서 배 멀미는 커녕 배가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도 안 들 정도였다. 가끔 배가 크게 회전을 할 때만 미세하게 감지되었다. 수산시장에서 사 온 회와 굴을 안주삼아 소주를 마셨다. 원래 못 먹는 술이지만 오늘따라 그 맛은 또 다른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선상은 어둠이 짙게 드리워지고 물살을 가르는 엔진소리만 가쁜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공기가 밤안개와 겹쳐 스산하게 느껴졌다. 멀리 보이는 어느 마을의 평화로움이 불빛으로 다가왔다. 그 불빛은 고요하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유감없이 나타내고 있었다. 도시의 화려한 네온싸인도 아니요, 대형 쇼핑몰의 엘이디(LED)조명등도 아니었다. 소박한 자신의 존재지만 한 점의 부끄러움이 없어 보였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어느 골짜기에 핀 이름 모를 무명초처럼. 무명초의 꽃이 화려하지 않다고, 남들보다 잘나지 못했다고 고개를 숙인 채 꽃피우기를 거부한다면 어느 나비와 벌이 오겠는가. 더구나 나비와 벌이 오지 않는데 어찌 열매를 맺을 수 있겠는가. 세상의 이치는 이렇듯 물 흐르듯 흘러가야 하는 것이다. 만물이 다 이치에 의해 태어나고 이치에 의해 소멸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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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상 이벤트에 흠뻑 빠지다
저녁은 레스토랑에서 육천 원짜리 식권으로 해결했다. 직장인들의 구내식당처럼 줄을 서서 배식을 받는 형태였다. 반찬은 그런대로 잘 나왔다. 음식의 질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이윽고 라이브 쇼가 진행된다는 멘트가 방송을 타고 흘러 나왔다. 우리는 부리나케 가서 앞에 있는 좌석에 둥지를 틀었다. 자못 궁금한 표정으로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레스토랑에서 식사가 끝난 후에 그 자리에서 라이브 쇼는진행되었고, 무대는 한쪽 구석에 마련된 고정식 무대였다.
동남아시아가 국적인 듯한 2명의 남녀가 노래를 불렀다. 남자는 훤칠한 키에 기타를 치고, 싱어인 여자는 남자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가녀린 몸매였다. 팝송과 트로트를 섞어서 불렀는데 노래실력은 신통치 않았다. 여성의 음폭이 그다지 넓지 않았고, 특히 트로트를 부를 때는 그 깊은 맛을 알고 부르는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발음이 부정확할 뿐만 아니라 감정 표현이 제대로 되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무대 매너를 지키려는 흔적이 엿보였으며, 여행객들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하는 모습이 애처롭기 까지 하였다. 내 또래들이 어렸을 때, 팝송을 잘 부르면 남들 앞에서 대단한 행세를 하곤 했었다. 음악의 장르며 노래의 의미도 모른 채 한글로 베껴서 가사만 외워 불렀던 그러한 추억 말이다. 누구나 한 번쯤 그런 추억이 다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때의 모습을 영어권 국가에서 온 외국인이 보고 들었다면 어떠했을까? 아마도 실소를 금치 못했을 것이다. 무대에서 팝송을 부르는 여자의 모습과 나의 어설펐던 어린시절이 묘하게 오버랩 되었다.
여행객들은 간혹 무대 앞까지 나와 안무를 즐기려고 시도하였으나 그때마다 사회자가 제지하였다. 장소가 협소한 관계로 안전을 우선시하는 것 같았다. 삼삼오오 원탁에 모여 앉은 여행객들은 손뼉을 치며 어깨를 들썩이는 선에서 감정을 절제하였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감정도 절제할 줄 아는구나’라고 자위해 보았다. 한 시간의 라이브 쇼는 막을 내렸다. 기대와는 달리 조금은 싱겁고 아쉬운 순간이었다.
갑판 위에서는 불꽃놀이 쇼를 알리는 음악이 흘러 나왔다. 사이키 조명은 현란하게 움직이고 음악소리 또한 요란했다. 여행객들이 몰리면서 순식간에 갑판은 초만원이 되었다. 한 여름 강가의 가로등에 몰려드는 부나방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선상의 이러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바다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휩싸였다. 사방팔방을 둘러보아도 빛이라고는 한 점 없었다. 우주의 빅뱅을 예고하는 카오스 상태 그대로인 듯 하였다. 이 세상에서 오로지 우리들만이 존재한다고 믿고 싶을 정도였다. 사회자의 말로는 지금 지나고 있는 곳이 꽃박람회가 한창인 안면도 해상이라고 알려 주었다.
불꽃놀이의 흥을 고조시키려는 듯 환상의 디스코 파티가 벌어졌다. 여기서는 한 가지 원칙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흘러나오는 음악에 몸을 맡겨 버리는 것이었다. 남녀노소의 차이, 아는 이와 모르는 이의 차이를 넘어 모두 한 가족이고 친구처럼 여겨졌다. 아마 2002년 월드컵 때도 서울광장에 모인 인파들이 이러했으리라.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할 때 쯤 까만 하늘에 섬광이 번쩍였다. 불꽃놀이를 알리는 서막이었다. 이윽고 여기저기서 불기둥이 치솟았다. 치솟던 불기둥은 요술쟁이로 변했다. 형형색색의 모양으로 여기저기서 튀어 나왔다간 어느 사이엔가 사라져버리곤 했다. 환한 탄성과 스러지는 아쉬움이 교차하는 밤하늘이었다. 바닷바람이 찬데도 불구하고 선상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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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놀이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마지막 이벤트인 제2부 라이브쇼가 펼쳐지는 레스토랑에 다시 들어섰다. 테이블엔 많은 여행객들이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진행자인 듯한 사람이 기타를 매만지면서 열심히 음률을 다듬고 있었다. 생김새가 영화 ‘주유소습격사건’에 나오는 배우 유오성을 많이 닮아 있었다. 약간은 곱슬머리에 깡마른 체격, 꺼벙하면서도 어눌한 말투까지 꼭 닮았다. 하지만 노래실력은 대단하였다. 풍부한 성량으로 금세 무대를 압도해 나갔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기타를 신명나게 튕겨댔다. 여행객들의 컨셉에 딱 들어맞는, 7080세대들이 좋아하는 노래들을 불러댔다. 팝송과 우리 가요를 섞어가면서 열광의 무대를 이끌어 나갔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도심속의 나이트클럽을 방불케 했다. 흥에 겨워하는 일부 여행객들이 무대 앞을 점령하고 말았다. 광란의 댄스파티였다.
헌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다름 아닌 인천 여객선터미널에서 본 산악자전거 할아버지들이었다. 그 복장 그대로 모여서 춤을 추고 있었다. 어느새 다른 여행객들의 눈요깃감이 되어 버렸다. 복장과 나이만이 아니었다. 춤 솜씨 또한 대단했다. 그중에서도 백발에 꽁지머리를 한 할아버지가 단연 돋보였다. 나도 분위기에 취해 희연사랑과 같이 춤을 췄다. 여행객들 모두가 한 마음 한 몸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의 이벤트는 이렇게 해서 모두 막을 내렸다. 막 내린 무대는 언제나 그렇듯이 아쉬움과 서운함이 교차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마음을 뒤로한 채 숙소에 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선상에서의 첫날밤이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여기저기서 소곤대는 사람들, 한 잔 술로 또 다른 얘기거리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 진짜 승부를 보여주겠다고 벼르며 화투장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사람들로 실내는 좀 어수선하였다. 파티 뒤의 허무함 때문인지 피로가 겹쳐서 몰려왔다. 내일의 한라산 등반을 기약하며 잠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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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라에서 백록을 품다
아침 바다는 희끄무레하게 다가왔다. 해상은 연무에 휩싸여 시야를 가로막았다. 배는 밤새도록 달리고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연신 기계음을 토해내며 나아가고 있었다. 갑판 위는 새벽 공기를 마시려는 여행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순간 너무나도 유명했던 영화 ‘타이타닉’이 떠올랐다. 뱃머리에서 남녀 주인공이 두 팔을 벌린 채 한 곳을 응시하던 모습. 벅찬 감격의 환한 표정. 바람에 나부끼던 옷자락. 잔잔하면서도 흡인력이 있는 배경 음악 등 그야말로 팬들의 심금을 울렸던 그 명장면 말이다. 하지만 어쩌랴. 우리가 타고 있는 배는 그러한 여객선이 아니었다. 뱃머리는 출입이 통제되었다. 아마도 화물을 싣기 위한 구조로 설계되어 그런 것 같았다. 아쉬움을 달래기도 전에 멀리 한라산이 한 눈에 들어왔다. 환상과 신비의 섬, 제주도가 눈앞에서 우리들을 반기고 있었다. 하늘은 코발트, 바다는 에메랄드로 분칠을 하였고 한라산은 싱그러움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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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버스는 우리들을 싣고 제주 도심을 질주하기 시작하였다. 한라산 등반의 시작점인 성판악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제주도의 대표적인 가로수 구슬잣밤나무가 막 꽃망울을 터트렸다. 구슬잣밤나무는 참나무과에 속하는 상록활엽수로 이국의 정취를 느끼게 해 줬다. 꽃이 본격적으로 피기 시작하면 꽃향기가 온 거리를 진동할 것이다. 고급 향수 냄새와 흡사했다.
성판악은 여느 때처럼 등산객들로 붐볐다. 한라산 등반의 대표적인 출발점이기 때문이었다. 한라산 등반은 네 개의 코스로 구분된다. 즉, 성판악 코스, 관음사 코스, 어리목 코스, 영실 코스다. 이중에서 나의 등반경험에 비추어 보면 성판악코스는 완만한 대신 가장 길고, 관음사 코스는 경사가 심해 인내를 요구한다. 그리고 어리목 코스는 그저 평범한 반면, 영실코스는 경관이 가장 빼어나며 서귀포 바다를 한 눈에 굽어 볼 수 있다. 보통 한라산 등반은 성판악에서 관음사 까지, 어리목에서 영실까지 일주하는 코스를 많이 애용한다. 하지만 어리목과 영실코스는 백록담까지는 오를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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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등반은 성판악에서 진달래 대피소를 거쳐 백록담에 오르고 삼도봉 대피소를 지나 관음사로 내려오는 코스였다. 등반 거리는 총 18.7키로미터로 족히 8시간은 걸리는 순탄치 않은 코스였다. 도시락과 물 한 병을 배낭에 넣고 긴 여정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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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판악은 비가 많이 내리기로도 유명한 곳이다, 성판악에 도착하자 제주 시내에서의 화창한 날씨는 금세 어디로 가버렸는지 하늘은 잔뜩 인상을 찌뿌린 상태였다. 주변엔 아열대성 나무들이 군락을 이뤄 푸르름이 싱그러웠다. 지나는 길옆으로 작은 도마뱀 한 마리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달아난다. ‘나 살려라’하면서 기우뚱기우뚱 도망가는 폼이 실없는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등산로는 잘 다듬어져 있었다. 최대한 자연 친화적인 자재를 사용하려는 흔적이 역력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성판악 코스는 지루한 감을 준다. 시야도 탁 트이지 않고 완만한 경사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온의 차이가 피부로 느껴졌다. 식물들의 분포 또한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잎이 넓은 아열대성 식물에서 차츰 잎이 가는 침엽수림 쪽으로 바뀌어 갔다. 생물시간에 생태계에 대해서 배운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온도 변화에 따른 산림의 분포도를 그려내는 대표적인 산이 한라산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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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가 높아지면서 안개비의 양이 심상치 않았다. 하산하는 등산객들의 말에 의하면 백록담 정상에는 가랑비가 오고 있다고 하였다. 대부분이 우비 차림이었다. 곧 비가 쏟아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진달래 대피소에 도착했다. 우리는 이 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적당한 곳을 골라 자리를 폈다. 날씨가 차갑게 느껴졌다. 손가락이 시려왔다. 이런 날씨에 푸석푸석한 도시락을 먹자니 여간 거북스러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랴. 이러한 고행을 자초하고 이곳에 온 것을. 추위 속에서도 식사 후의 포만감과 나른함이 겹쳐왔다.
정상을 향한 등반은 계속되었다. 발길을 재촉해 보지만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듯 했다. 묘한 감정이었다. 점차 기운이 없어지는 듯 하면서 다리는 천근만근이었다. 숨이 턱까지 치밀어 올랐다. 등산로 주변을 제외하고는 모두 우윳빛으로 칠해 놓은 듯 했다. 마치 구름위에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계단으로 이어지면서 경사가 심해지기 시작했다. 속으로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생각하니 또 다른 용기가 솟구쳤다.
드디어 한라산 정상은 우리들의 발길을 허락하고야 말았다. 보다 정확한 표현으로는 일방적인 침입이 맞는 말일게다. 한라산은 우리에게 언제 오라고 한 적이 없었다. 다만 우리들이 찾아온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한라산의 마지막 자존심, 백록담만은 우리들 침입자를 거부했다. 지독한 안개비 때문에 백록담의 실루엣조차도 구경할 수 없었다. 백록담 구경을 못해 본 등산객이 부지기수인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왠지 서운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서 추억을 담느라 야단법석이었다. 남는 건 사진 밖에 없다면서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우리도 기념촬영을 몇 컷하고 하산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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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하기 위해 관음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계단으로 이어진 급경사였다. 급경사는 그렇지 않아도 힘이 빠진 다리가 더욱 더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등산로 좌우로 고사목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누가 그랬던가.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고. 천년의 억겁을 묵묵히도 지켜 왔건만 이렇듯 이승의 끈을 놓지 못하고 서 있었다. 무슨 한이 그렇게도 많아 또 다른 천년을 향해 줄달음 치고 있는 것일까.
삼도봉 대피소에 다다르자 햇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후의 나른한 햇살을 머금은 수목들이 환한 미소로 반겨 주었다. 여기서부터 지리한 하산 길이었다. 말없이 터벅터벅 걷기만 했다. 거의 무조건적 반사현상이 이어졌다. 주위의 경관을 둘러 볼 힘도 없었다. 그냥 걸었다. 한 없이 걸었다. 어느덧 관음사 입구에 도착했다. 장장 일곱 시간 삼십분의 긴 여정은 여기서 끝을 맺었다. 기뻤다. 해 냈다는 마음의 위안을 갖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피로가 씻겨 나가는 느낌이었다. 알고 보니 오늘이 석가탄신일이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이 태어나신 날이다. 불교는 우리 민족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내린 종교다. 종파를 초월하여 이 땅에 부처님의 축복이 가득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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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찬거리를 위해 제주항에 도착했다. 제주항은 싱싱한 해산물로 넘쳐났다. 배에서 잡은 큰 고기와 해녀들이 물질을 해서 건져 올린 해산물이 질펀하게 널려있었다. 여행객들은 여기저기서 눈요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는 방어와 광어회에 다른 안주거리를 조금 준비하고선 숙소가 있는 배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여덟 시간의 긴 등반은 몸을 지치게 만들었다. 다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간단한 샤워를 마친 후 만찬을 즐겼다. 싱싱한 횟감이 입맛을 자극하였다. 감칠맛이 그만이었다. 약간의 알콜은 그렇지 않아도 이완된 근육을 더욱 더 풀어지게 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스르르 졸음이 몰려왔다. 눈꺼풀이 천근만근이었다. 주변 정리를 한 후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여행의 마지막 밤은 이렇듯 맥없이 스러지고 말았다.
♠ 서해의 태양은 다시 떠 오른다
어김없이 둥근 해는 떠올랐다. 선상에서 바라보는 태양은 한층 친근감 있게 다가왔다. 긴 항해를 인도해 주는 안내자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저 멀리 인천대교가 눈앞에 들어왔다. 우선 바다를 둘로 갈라놓은 듯한 거대함에 놀랐다. 그 모습은 마치 전라도 광산지방의 무형문화제 ‘고싸움놀이’를 보는 것 같았다. 양쪽의 주탑을 중심으로 좌우로 길게 늘어선 교량이 마치 두 개의 ‘고’를 연상케 했다. 일전을 불사하며 상대방 ‘고’를 향해 치닫는 형상과 흡사했다.
인천대교는 인천국제공항과 인천송도국제도시를 연결하는 국내 최장,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긴 해상 사장교란다. 하늘과 바다 그리고 땅을 연결하는 21세기 동북아 핵심 인프라로 세계와 한국을 이어주는 관문이 될 것이라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총 길이가 21.38키로미터로 초속 72미터의 폭풍과 진도 7의 지진에도 견디게 설계되었단다. 또한 주탑의 높이는 238.5미터로 63빌딩과 맞먹고, 주탑과 주탑과의 거리는 800미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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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인천의 자랑 인천대교는 오는 10월 개통을 앞두고 있었다. 인천시는 인천대교의 개통을 축하하기 위해 9월 중에 마라톤 대회를 개최한다니 자못 기대가 크다. 대회의 질을 따지자면 미국의 보스턴이나 영국의 런던 마라톤대회에 못 미치겠지만 세계적인 축제가 되리라 믿는다. 마라톤을 사랑하는 마니아들의 꿈의 무대가 될 것이다. 생각해 보라. 인천 앞바다 한 가운데 서서 내가 달리고 있다는 걸. 그 이상의 환상이 어디 있겠는가. 9월이 기다려진다. 아니 인천대교 위를 빨리 달리고 싶다. 꼭 대회에 참가하리라 다짐해 본다. 사실 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마라톤에 미쳐 있었다. 미쳤다는 표현이 어색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마라톤은 분명 묘한 매력이 있는 스포츠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혹자들은 마라톤을 마약에 비유하기도 한다. 숨이 끊어질 듯 한 고통을 감내하고, 근육이 파열될 것 같은 아픔을 견딘 후의 결승선 통과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야릇한 희열을 가져다준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 희열을 오르가즘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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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두가 가까워오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한 무리의 갈매기 때가 선상을 뒤덮었다. 선상에서는 여행객들이 새우깡을 연신 던져주고 있었다. 갈매기들은 새우깡을 먹기 위해 배를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우리도 매점에서 새우깡 한 봉지를 사서 잽싸게 갑판 위로 올라갔다. 갈매기들은 여행객이 던져주는 새우깡을 힘차게 낚아채서 먹고 있었다. 위에서 나는 갈매기가 새우깡을 채 먹는데 실패하면 여지없이 아래서 나는 갈매기의 몫이었다. 이를 보는 여행객들의 탄성은 그칠 줄을 몰랐다. 마냥 어린애처럼 신나 있었다. 하지만 부산 해운대 갈매기들과는 달랐다. 손에 쥐고 있는 새우깡은 채 먹지 못했다. 해운대 갈매기는 엄지와 검지사이에 새우깡을 쥐고 있으면 번개같이 날아와 채 먹곤 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인천 갈매기들은 부산 갈매기들보다 진화가 덜 됐는지, 아니면 더 순진한건지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모처럼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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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일탈을 꿈꾸며
만남과 이별이 늘 교차하는 연안부두를 뒤로한 채 우리는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차창 밖으로 비치는 봄 풍경은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휴일 나들이 인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그동안 2박3일의 한라산 여행은 많은 기쁨과 추억을 안겨 주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물은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면서 진화해 나가지만 인간만은 유일하게 변화를 거부하고 두려워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인즉 생태계의 최상위에서 군림하고 있는 인간은 변화해 나갈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경쟁 상대가 없는 유아독존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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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우리에게 많은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가끔의 일탈은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촉진시켜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마음의 변화를 꾀하게 해 준다고 한다. 우리 모두 고루한 환경이 아닌 새로움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자. 그곳에서 마음의 창을 한번 활짝 열어보자. 그 어떤 자유를 향해 힘껏 소리쳐 보자. 그리하여 일상에서의 과감한 일탈을 꾀하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자. 누구랑 언제 어디서가 무슨 상관이 있으랴. 그냥 훌쩍 떠나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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