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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익~
논밭을 가로 질러 시커먼 그림자가 쓰윽 지나갔다. 순간, 마을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양철 지붕을 두드리던 소나기가 뚝 그친 듯 고요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먹 그림자라니. 혹시 비행기가 지나간 것은 아닐까? 그런데 그것도 아니다. 마을에는 비행기소리는커녕 닭울음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그 때였다. 그루터기만 남은 벼논에서 떠오르는 물체가 있었다.
“저것 봐라, 저것 봐!”
바깥마당을 쓸던 할아버지가 싸리 빗자루를 던지며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영수네 논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물체는 검독수리였다. 하늘의 왕자로 불리는 수리 중의 수리, 검독수리(Golden eagle)였다.
검독수리의 억센 발톱에는 이미 약병아리 한 마리가 잡혀 있었다. 영수 할아버지가 애지중지 기르던 약병아리였다. 지난 가을에 서리배로 태어나서 이제 막 어미 닭의 품을 떠난 중닭이었다. 검독수리의 억센 발톱에 얽혀 든 약병아리는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검독수리는 커다란 날개를 소리없이 퍼덕이며 유유히 날아올랐다. 좌우로 펼친 검독수리의 날개는 남자 어른이 벌린 양팔보다 더 길었다. 검독수리는 앞산 통뫼를 넘어 서서히 사라졌다. B29로 불리는 수송기가 탱크를 싣고 하늘을 날듯 평사리 쪽으로 사라졌다.
“허허!”
약병아리를 검독수리에게 빼앗긴 할아버지는 아쉬운 듯 허탈하게 웃었다. 지난 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애지중지 기른 놈이었다. 아직 알을 낳기 전의 약병아리는 몸보신에 좋은 놈이었다.
할아버지가 발을 동동 구르는 사이에도 영수는 제 눈을 의심했다. 커다란 독수리는 개나 사람도 채간다는 말은 영수도 여러 번 들었다. 그러나 이토록 눈앞에서 생생하게 벌어지는 장면을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때때로 하늘에 뜬 황조롱이가 들쥐를 잡는 모습은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약병아리를 채가는 모습을 보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하였다. UFO처럼 나타났다 사라진 검독수리의 모습이 꿈속처럼 여겨졌다.
그 날 이후로 할아버지는 약병아리를 들판에 내놓지 않았다. 닭장에 가두어 두고 하루에 두 번만 문을 열어 주었다.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에 닭장을 열어 모이를 주고는 가두어 길렀다.
‘아쿠일라 크리사이토스 자포니카(Aquila chrysaetos japonica)’라는 학명을 가진 검독수리는 절벽 동굴이나 외진 나무에 둥지를 만든다. 이른 봄에 둥지를 틀고 1개에서 4개까지 알을 낳아 품는다. 검독수리는 암수가 교대로 40~45일 동안 번갈아 알을 품는다. 그러나 먹이 부족으로 보통 한두 마리밖에 살아남지 못한다. 새끼는 약 3달이 지나면 어미처럼 하늘을 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검독수리 수컷의 몸길이는 81cm 정도이다. 암컷의 몸길이는 수컷보다 조금 더 큰 89cm 정도이다. 검독수리 날개의 길이는 190cm 정도로 거대하다. 검독수리가 하늘을 나는 모습은 비행기가 소리없이 나는 것과 흡사하다.
검독수리는 한국의 수리 중 제1위이지만 그 수효가 극히 적다. 토끼 등의 포유류와 꿩 등의 조류를 잡아 먹으며 살아간다. 검독수리는 한반도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종으로 인공 번식이나 서식지 보호 등의 적극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1948년 4월 1일, 서울시 부근의 예봉산 25m 절벽 15m 지점의 3m 정도 들어간 바위굴에서 번식한 예가 있다. 1974년 8월 3일, 전라북도 내장산 도집봉 암벽에서 한 쌍을 목격한 예가 기록되어 있다. 1986년 5월 □일, 경기도 용문산 백운봉 절벽에 서식하는 검독수리가 어린 아이를 채 간 사건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해안 절벽이나 내륙지방의 바위 절벽에서 번식하는 희귀한 텃새이다. 어두운 갈색의 맹금류(猛禽類)로 목덜미에 창끝 모양의 금빛 깃털을 가지고 있다. 검은 눈, 잿빛 부리, 깃털로 덮인 노랗고 커다란 발, 큰 발톱이 특징이다. 양 날개를 펼치면 길이가 2m가 넘는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겨울에는 먹이를 찾아 도시 주변이나 평지로 내려오기도 한다. 1973년 4월 12일, 검독수리는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243호로 지정되었다.
검독수리가 마을에 나타나면 암탉은 물론 수탉도 무서워 도망갔다. 나무 울타리나 수풀 속으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 검독수리를 무서워하는 것은 비단 암탉뿐이 아니었다. ‘하룻강아지 법 무서운 줄 모른다.’는 강아지도 마루 밑으로 숨어들었다.
영수네 마을을 습격했던 검독수리는 한 달에 한두 번 쯤 나타났다. 사람들이 검독수리의 습격을 잊을 만하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 때마다 마을에서는 한두 마리의 닭이 없어졌다. 닭을 채어 간 검독수리는 평사리 쪽으로 날아갔다.
검독수리가 닭을 채어 가는 날이면, 영수와 또래 친구들은 검독수리를 추격했다. 검독수리의 공격에 대비할 지게 작대기를 들고 달려갔다. 검독수리의 둥지는 영수네 아랫마을인 평사리의 벼락바위에 있었다.
검독수리가 둥지를 튼 벼락 바위는 깎아지른 절벽이다. 천둥 번개를 맞아 생긴 바위라서 벼락 바위라고도 하였다. 벼락 바위 아래로는 깊고 푸른 냇물이 흐른다. 마을 사람들의 말로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다고 했다. 방패연을 날리는 얼레의 연실이 다 풀려 들어간다고도 했다. 마을의 할머니들은 때때로 이곳을 찾아와 용왕님께 가족의 소원을 빌기도 한다.
큰 내와 작은 내가 합쳐지는 두물머리의 평사리는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통뫼 마을 사람들은 큰 내, 작은 내로 이름 부르지만 평사리 사람들은 형 내, 아우 내로 부르기도 하였다.
물빛이 다소 흐린 큰 내에는 물고기가 많았다. 붕어, 메기, 피라미, 모래무지, 참게 등이 많았다. 물빛이 맑은 작은 내에는 버들치와 새우, 모시조개가 많았다. 족대로 갯버들 아래를 훑노라면 파닥파닥 뛰는 민물새우가 수북이 담겨 왔다.
마을 사람들은 대대로 냇가에 의지하여 살았다. 마실 물은 냇가의 상류에서 긷고 목욕은 냇가의 중류에서 하였으며 빨래는 냇가의 하류에서 하였다. 이것은 평사리 마을 사람들이 대대로 지켜오는 전통이었다.
검독수리가 서식하는 평사리의 벼락바위는 30m 높이의 절벽이다. 절벽의 20m 지점에 1m 정도 움푹 들어간 바위굴이 있다. 이 바위 턱에 검독수리가 둥지를 틀었다. 까치나 산비둘기처럼 나뭇가지를 주워 엉성한 둥지를 틀었다.
검독수리가 벼락바위에 둥지를 튼 것은 3월 중순이었다. 검독수리 한 쌍은 꿩알 크기의 알 두 개를 낳았다. 검독수리의 알은 뽀얀 흰색에 갈색 반점이 드문드문 있었다. 검독수리는 암수가 번갈아 가며 두 개의 알을 품었다. 검독수리가 알을 품는 시기는 영수네 암탉이 알을 품는 때와 비슷하였다.
신록이 좋은 5월이 되었다. 영수네 어미닭이 둥지에서 막 깨난 노랑 병아리를 데리고 사립문을 나섰다. 어미닭을 따라나선 병아리는 풀벌레를 찍어가며 너른 들판을 구경했다.
그 때였다. 휘익~ 논밭을 가로 질러 날아가는 시커먼 그림자가 있었다. 어미닭이 급히 병아리를 불러 모았다. 그러나 이미 때가 늦었다. 시커먼 그림자는 노랑 병아리 한 마리를 채 가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검독수리의 병아리 사냥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햇볕이 좋은 6월이 되었다. 검독수리는 이제 노랑 병아리를 채가지 않았다. 지난 가을에 서리배로 자란 영수 할아버지의 약병아리를 채갔다. 초복이 오면 영수 할아버지가 몸보신으로 드실 약병아리를 잡아갔다. 약병아리를 잡아가는 것을 보니 검독수리의 새끼들이 제법 큰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신나는 여름방학이 되었다. 영수 또래의 마을 아이들은 매일 같이 냇가로 달려 나왔다. 1~2학년의 어린 꼬마들은 백사장에서 놀고 3~4학년의 꼬마들은 멍석바위에서 물장난을 치고 5~6학년의 또래들은 삼각바위에서 다이빙을 했다. 수영을 하다 싫증나면 아이들은 물고기를 잡았다. 두 손으로 풀숲을 뒤져 붕어를 잡는가하면 두 발로 모래를 쓸어 모래무지를 잡기도 했다. 바위틈에 기어 다니는 다슬기를 줍기도 하고, 매운 여뀌풀로 게 구멍을 막았다가 참게를 잡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물놀이를 하며 큰 내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해가 설핏하면 저마다 냇가에서 잡은 물고기를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마을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을 즐거운 눈으로 바라보셨다. 또래들과 어울려 씩씩하게 자라는 아이들을 미쁘게 여겼다. 그 중에서도 아이들을 어여삐 사랑하는 이는 단연 영수 할아버지가 으뜸이었다.
영수 할아버지는 큰 내와 작은 내의 중간에 놓인 모래밭에 참외밭을 가꾸셨다. 매일같이 참외밭을 둘러보시는 영수 할아버지는 때때로 아이들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영수 또래 아이들에게 심심하면 참외 선물을 주셨다. 그런데 영수 할아버지가 참외 선물을 주시는 방법은 유별났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위쪽으로 냇물을 건너 다니셨다. 그러다가 슬며시 꼴망태에 담긴 참외를 흐르는 물위에 띄워 놓으셨다. 상류에서 둥둥 떠내려오는 참외를 발견한 아이들은 참외를 향해 돌진한다. 참외를 얻기에는 헤엄을 잘 치는 아이가 단연 유리하다. 그러나 한꺼번에 두 개의 참외를 움켜잡을 수는 없다. 두 손에 참외를 움켜잡으면 헤엄을 칠 수 없기 때문이다. 영수 할아버지는 이 점을 미리 간파하고 아이들 머릿수만큼의 참외를 냇물위에 띄어 놓고 유유히 사라지는 것이다.
영수와 또래 친구들이 검독수리를 추격한 까닭도 거기에 있었다. 할아버지의 약병아리를 잡아간 검독수리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영수 할아버지에게 참외 선물을 받은 것이 얼마인가? 아이들은 영수 할아버지에게 받은 은혜를 갚으려는 마음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검독수리가 채간 약병아리를 되찾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줄 타는 등반가가 아닌 다음에야 검독수리가 둥지를 튼 절벽을 기어 올라갈 수는 없었다.
아이들은 열적은 마음에 검독수리 둥지를 향해 돌팔매질을 했다. 그러나 냇물 건너 20m 절벽에 위치한 둥지에는 절반도 미치지 못하였다. 영수와 또래 친구들은 심통이 나서 지게 작대기로 참나무를 후려갈기며 돌아왔다. 참나무에서 서너 개의 상수리가 후두둑 떨어져 발밑에 굴렀다. 아이들은 잘 여문 상수리를 까서 입어 넣으며 마을로 돌아왔다. 입안에 상수리의 텁텁하고 씁쓸한 맛이 감돌았다.
여름방학이 끝났다. 한 여름이 지나도록 검독수리는 마을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자기네들이 검독수리를 혼을 내준 덕분으로 여겼다. 영수 할아버지의 약병아리를 잡아간 검독수리를 돌팔매질로 혼내준 까닭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가을이 왔다.
아이들은 이제 벼논에 날아드는 새 쫒기와 텃밭에 붉게 익은 고추 따기로 바빴다. 고구마 캐는 일도 도와야 하고 저녁에는 소먹일 꼴도 베어야 했다. 가을 걷이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부모님 일손을 도와야 했다.
토요일 오후였다. 학교를 일찍 파한 영수는 춘식이 아저씨를 따라 너덜이골로 갔다. 춘식이 아저씨는 가끔 영수네 농사일을 해주고 쌀을 얻어 사는 동네 일꾼이었다. 너덜이골에는 아름드리 밤나무가 많았다. 영수 할아버지께서 젊은 나이에 심어 가꾼 밤나무였다. 춘식이 아저씨네 개 누렁이도 춘식이 아저씨와 영수를 따라 나섰다.
굵은 바위돌이 나뒹구는 너덜이골에는 너구리가 산다. 골짜기에는 밤, 도토리, 개암 등의 나무 열매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하여 계곡에는 들쥐, 개구리, 뱀, 참게, 물고기, 곤충 등도 많았다.
너구리는 야행성 동물이지만 가끔 낮에도 숲속에 나타날 때가 있다. 몸은 땅딸막하고 네 다리는 짧으며 귓바퀴는 작고 둥글다. 주둥이는 뾰족하며, 꼬리는 굵고 짧다. 몸의 털은 길고 황갈색이며 등줄기와 어깨에는 끝이 검은 털이 많다. 얼굴, 목, 가슴 및 네 다리는 흑갈색이다.
영수는 춘식이 아저씨가 터는 밤나무 아래에서 알밤을 주워 담았다. 춘식이 아저씨가 바지랑대로 밤송이를 휘갈기면 알밤이 우수수 쏟아졌다. 영수는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알밤을 주워 자루에 담았다.
그 때였다. 밤나무 고목 사이를 시커먼 그림자가 휙 지나갔다. 검독수리였다. 이 모습을 제일 먼저 본 누렁이가 ‘컹컹’ 소리를 내어 짖었다.
밤나무 숲을 날아간 검독수리가 노린 것은 너구리였다. 때마침 너구리는 알밤을 주워 먹으러 굴밖으로 나온 모양이었다. 소리없이 날아간 검독수리는 이내 너구리의 머리를 억세게 움켜잡았다. 그러더니 곧장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하였다. 그러나 살찐 너구리가 버둥대며 저항하자 쉽게 날아오를 수 없었다. 검독수리는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하고 너구리는 검독수리의 발톱을 벗어나려고 하였다. 검독수리와 너구리는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그러자 춘식이 아저씨네 개 누렁이가 ‘으르렁’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검독수리 가까이는 가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면서 큰소리로 짖을 뿐이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춘식이 아저씨도 너구리 사냥에 끼어들었다. 춘식이 아저씨는 밤을 털던 바지랑대를 더욱 힘있게 움켜 잡았다. 그리고는 삼국지의 관우처럼 바지랑대를 휘두르며 검독수리에게 돌진했다.
“이야아~”
춘식이 아저씨가 고함을 지르며 돌진했다. 그러자 검독수리는 두 발톱으로 억세고 잡고 있던 너구리를 내려놓았다. 잠시 밤나무 고목으로 올라가 춘식이 아저씨의 바지랑대를 피했다. 춘식이 아저씨의 돌진에 누렁이도 함께 달려들었다. 춘식이 아저씨의 공격에 힘을 얻은 누렁이는 너구리의 뒷다리를 물고 늘어졌다.
“탁, 탁, 타악!”
춘식이 아저씨가 바지랑대로 너구리를 때려잡았다. 통통하게 살찐 몸에 짧은 다리를 가진 너구리는 몇 걸음 도망도 치지 못하고 쓰러졌다.
춘식이 아저씨가 쓰러진 너구리를 지게에 올려 실었다. 너구리의 한쪽 눈에서는 붉은 피가 철철 흘렀다. 너구리의 몸에서 피비린내의 더운 기운이 확 끼쳐 졌다. 그러고 보니 너구리의 한 쪽 눈알이 없었다. 검독수리가 제일 먼저 공격한 것은 너구리의 눈이었다. 검독수리는 눈알을 먼저 빼어 너구리가 도망가지 못하게 하였던 것이다.
춘식이 아저씨와 영수는 서둘러 마을로 돌아왔다. 너구리와 알밤을 지게에 옮겨 싣고 돌아왔다. 그러자 검독수리가 춘식이 아저씨와 영수의 뒤를 따라 왔다. 하늘을 천천히 빙빙 날며 따라왔다. 영수는 겁이 덜컥 났다. 누렁이도 겁을 먹었는지 춘식이 아저씨 곁을 뱅뱅 돌며 떨어져서 걷지 않는다.
동구 밖 소나무 곁을 지날 때 영수 할아버지를 만났다. 고추를 따던 손을 멈추고 영수 할아버지가 물었다.
“어이, 춘식이. 어인 일인가? 그새 밤을 다 털었나?”
“아니요.”
“그런데 왜 벌서 돌아오나?”
“아, 예. 어르신, 너덜이골에서 너구리를 잡았어요. 그래서 밤은 내일 털기로 했어요.”
춘식이 아저씨가 의기양양해서 대답했다.
“무어? 너구리를 잡았다고?”
“예, 지게작대기로 때려잡았어요. 마을 사람들과 잔치를 벌어야겠어요.”
그말을 들은 영수 할아버지의 안색이 붉어졌다.
“예끼, 이 사람아. 따라는 밤은 안 따고 너구리 사냥을 해.”
“너구리를 잡은 일이 뭐 어때서요?”
춘식이 아저씨가 볼멘소리로 대꾸했다.
“야! 이 사람아. 내일 모레면 조상님을 모시는 추석이야! 그런데 어째서 산짐승의 피를 보나? 내 집으로는 아예 들어올 생각을 말게. 동네 사랑으로 가서 그슬리던지 알아서 처리하게. 내 집으로는 고기 한 첨도 보낼 생각을 말게. 알아들었나? 알밤이나 이리 내어 주게. 내가 들고 감세.”
"아, 예."
춘식이 아저씨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알밤 자루를 할아버지에게 건네었다. 할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며 춘식이 아저씨가 잡은 너구리를 집안으로 들여 놓지 못하게 하셨다. 춘식이 아저씨는 너구리를 지고 영수네 집이 아닌 자기의 집으로 건너갔다.
그때 까지도 검독수리는 춘식이 아저씨의 지게에 실린 너구리를 노리고 쫒아 왔다. 동구 밖 소나무 가지에 올라 앉아 춘식이 아저씨가 어디로 가는 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검독수리는 땅거미가 져서 어두워질 때까지 동구 밖 소나무를 떠나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에도 검독수리는 동구 밖 소나무에 앉아 있었다. 검독수리는 밤에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춘식이 아저씨에게 너구리를 빼앗긴 일이 무척 분하였던 모양이다. 한참을 앉아있던 검독수리는 춘식이 아저씨네 집 위를 빙빙 돌다가 사라졌다.
사흘째 아침에도 검독수리는 동구 밖 소나무에 나와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해가 중천에 떠오르자 춘식이 아저씨네 집 위를 빙빙 돌다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춘식이네 강아지 누렁이가 없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검독수리가 잡아 간 것이라고 쑥덕였다. 검독수리가 너구리를 빼앗긴 일에 복수전을 펼친 것이라고 만 하였다. 그러나 검독수리가 누렁이를 잡아가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후로 검독수리는 두 번 다시 마을에 나타나지 않았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와도 검독수리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듬해 봄이 왔다. 영수네 암탉이 또다시 병아리를 깠다. 노랑 병아리가 어미 닭을 따라 논밭을 돌아다녔다. 영수는 문득 검독수리가 병아리 사냥하는 모습을 다시 보고 싶었다. 그래서 또래 친구들과 평사리의 벼락바위로 가보았다.
벼락바위 아래를 흐르는 물은 여전히 깊고 고요하였다. 냇물에 비친 벼락바위의 모습이 더욱 높아 보였다. 한참을 기다려도 검독수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검독수리의 그림자는커녕 산새 한 마리도 날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영수는 가끔 무서운 꿈을 꾸었다. 높은 벼랑에서 떨어지는 꿈이었다. 파란 물이 넘실대는 냇물로 떨어지다가 소나무 가지에 걸려 겨우 살아나는 꿈이었다. 꿈에서 깨어보면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흘렀다. 영수 할머니는 그런 영수를 보고 ‘크느라고 그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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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검 독소리의 작 잘 감상하고 갑니다.늘 고운날 되세요
늘 행복한 날 만들어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