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퉁가바드라강변, 함피 시내 등 관광> 08.1.11
어제 저녁 일찍 잔 덕분인지 아침 6시에 눈을 떴다. 나는 비루팍샤 사원을 비롯하여 함피 시내의 새벽풍경을 구경했다. 관광객들은 마팅가 힐이나 헤마쿤다 힐 등에 일출을 보러 가는 것인지 2-3명씩 짝을 지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도 시내에서 볼 때는 동쪽하늘에 구름이 조금 끼어 해가 뜨는 광경보다 조금 늦게 볼 수 있었는데 다른 곳은 어땠을까?
[함피의 일출]
숙소로 돌아와 마당에 놓은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데 숙소 주인의 동생이 들어왔다. 그는 버스스탠드 부근에서 오토 릭샤를 운행하고 있는데 내가 자신의 형 집에 숙소를 정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으며 시내에서 어제도 보았다고 한다. 나는 그를 몰랐는데 그는 나를 알아보니 일행 외에는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줄 알았으나 그것이 아니었다. 특히 나와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도 나를 보고 동양인이라든가 아니면 한국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더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앞으로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에도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우리나라에도 전에 있었던 삼륜차와 비슷하나 크기는 작은 오토 릭샤의 가격을 물어보니 새것은 100,000Rs (한화 2,500,000원 정도)정도 라고 하며 여기서는 이것 한대만 있으면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다고 하였다.
아침 9시에 체크아웃하고 배낭을 맡긴 다음 일행에게 오늘은 자유롭게 이곳 저곳을 보거나 쉬다가 16시에 숙소에서 만나자고 얘기하고 헤어졌다. 나는 일행 중 2명과 함께 비루팍샤 사원에 다시 한 번 들어가 구경을 하고 나와 사원 뒤로 돌아갔다. 그곳 저수지 뒤에도 유적과 사원의 부속건물들이 있는데 그 유적지 안에 비록 일부 허물어지기는 하였지만 분명한 유적이 있었던 부지에 소를 키우고 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유적지를 나와 강 건너마을에 가는 선착장을 지나 조용한 산책로를 따라가니 바나나 농장이 나왔고, 그 뒤에는 “망고추리 레스토랑”이 있었다. 이 레스토랑은 바나나와 감자 등 농장도 가지고 있어 창고에는 방금 수확한 농작물이 쌓여 있었다. 또한 소도 키우고 특산품 매장도 갖고 있는 조용하고 깨끗한 집이었으며 마당도 쓸고 물을 뿌려 시원했다.
되돌아 선착장에 내려와 강을 건너는 배를 기다리고 있는데 일행 6명을 만 나 9명이 함께 배를 탔다. 뱃삯은 1인당 편도 10Rs이며 배는 20명 정도를 태웠고 승객의 승. 하선과 운행시간을 포함하여 편도 10분 정도 걸렸는데 지역주민과 관광객이 많아 언제나 90%이상 승선하였다. 인도에는 인구가 많아서인지 작은 배에도 선원이 4명이나 되었으며 배가 건너마을에 닫자 마자 승객에게 받은 뱃삯을 양산을 쓰고 의자에 앉아 있는 배 주인아주머니 에게 건네주었다.우리가 강 건너마을에 도착하니 시내 쪽과는 분위기부터 달랐다. 야자수에 둘러 쌓인 동네가 나오고 꽃밭이 잘 가꾸어져 있었으며 깨끗하고 아름다운 게스트 하우스가 나오는데 가격을 물어보니 욕실이 있는 방갈로 형태의 2인실이 400Rs라고 한다. (우리는 500Rs에 자고 있는데…) 이 마을의 하류 쪽은 논 농사를 많이 경작하고 있었으며 중간지점은 방갈로 형태의 게스트 하우스가 늘어서 있었다. 지붕의 밑부분은 삿갓이나 댓잎자리를 엮듯이 엮은 것을 깔아서 깨끗했으며 위에는 짚이나 풀잎을 덮은 초가집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이곳에는 레스토랑도 많았고 빵집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탓인지 정찰제를 실시하는 곳도 있었다. 우리들은 건너마을의 이곳 저곳을 돌아본 후 시내로 돌아왔다.
[초가집 게스트 하우스]
[함피의 농촌 풍경]
[함피의 농촌 풍경]
나는 일행과 헤어져 혼자서 시내를 다니다 돌로 난디(소)를 조각하는 가게에 들렸다. 3명이 별로 크지 않은 것(L: 1m, H: 80cm)을 만들고 있는데 모두 조그마한 칼과 끌, 작은 망치 등을 들고 손으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 작품을 완성하는 데는 3명이 계속 일을 할 경우 약 6개월이 걸리고 완성된 조각은 100,000Rs를 받기로 하고 주문생산을 하는 중이라고 한다. 밖으로 나와 거리를 다니다 일행1명을 만나 이곳에만 있는 것으로 아내의 선물을 하나 사고 싶다고 하자 자기도 여기에서 손으로 뜬 쇼핑 백을 샀다며 골라 주어 90Rs를 주고 구입했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정리한 다음, 함피가 비자야나가르 왕조의 수도로 되는데 도움을 주었고 지금은 함피의 젓 줄인 퉁가바드라 강(Tungabhadra River)변에 나가 나무 그늘 밑 바위 위에 걸터앉아 주위를 살펴보았다. 강 건너편 마을을 지나면 수많은 돌덩어리로 만들어진 바위산이 있는데 거기 에도 관광객 몇 명이 올라가고 있었다. 또한 강은 망고추리 레스토랑 쪽에서 시내를 거쳐 빗딸라 사원 쪽으로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선착장 위는 이곳 주민들의 빨래터이라 남. 녀를 불문하고 손으로 빨래 감을 들고 마치 예전에 우리 농촌에서 보리 단을 들고 태를 쳐 타작을 하듯 내리쳐 세탁을 하여 넓은 바위 위에 널어 놓았다. 바위 위에 널어 놓은 빨래도 울긋불긋한 것이 멀리서 보면 단풍이 든 가을 산을 연상케 할 정도로 넓게 많이 널려 있었다.
[퉁가바드라 강]
[퉁가바드라 강변의 빨래터]
오전에 망고추리 레스토랑으로 올라갈 때 같이 동행했던 일행의 말이 생각 난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너무 바쁘게 살아왔는데 이번 여행을 계기로 좀 여유 있는 생활을 해야겠다”라는 말이다. 또한 일행 중 “이번 여행에서 먹는 것이 만만치 않아 고생을 하면서도 죽, 빵, 계란, 과일 등을 평소의 반만 먹고도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많이 먹는다며 귀국해서도 소식을 하고 싶다”고 한다. 우리의 배낭여행이 힘들고 어려운 고행임에도 인도인들이 살아가는 삶을 보고, 화려 했던 과거의 문화유적도 보면서 인생의 덧없음을 느낀 탓일까? 여행이란 평소의 생활패턴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방식과 또 다른 생각과 행동(힌두교인이 아니면 입장불가, 사원 담장 안에만 입장하려고 해도 신발을 벗거나 윗옷을 벗도록 하는 등)을 접 하는 장이다. 여행을 통하여 세상은 다양한 인간과 다양한 생각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의 생각이 반드시 옳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껴 그들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리라.
우리는 숙소를 출발(16:00)하여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달려서 호스펫 (Hospet)에 도착한 후 사설 침대버스를 타고 고아 주로 출발(18:10)했다. 초저녁이라 더워 창문을 열어놓고 가는데 이곳은 오염이 안된 곳인지 밤하늘에는 별들이 누구의 빛이 더 밝은지 자랑하고 있었다.
첫댓글 백호 선생님, 문화 유적만 보다가 그들의 생활터전인 빨래터를 보니 분위기가 새롭습니다. 특히 빨래하는 장면 같은 것은 그렇게 빨면 옷이 금방 떨어질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선생님 덕분에 참 많이 배웁니다. 그동안 무심했던 것에 대해 세삼 생각도 하게되고......
5년전 가수 작곡가 국악인 김수철 친구와 인도여행 갔다가 음식이 입에 안 맞아 고생했던 기억과 카메라와 필름을 도둑 맞고 허망하여 다시는 인도를 여행하지 않으리라고 귀국하는 여객기내에서 다짐했던 모습이 회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