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시나위아님 일행 2명이 앞으로 갔다. 한참 내려가다보니 갈림길 비슷한 길이 있었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선명하게 나 있고 왼쪽 길이 희미하게 보이는데 눈여겨보니 길인 것이 확실했다. 지도에서 문수봉 정상에 있던 오른쪽 X표는 이 길을 뜻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오른쪽 길로 가면 서쪽 계곡 방향으로 내려가는데 이 길을 타고 내려가면 실격될 것 같았다. 왼쪽 길이 희미하기는 하지만 능선을 타는 그 길이 정상 코스인 것 같아서 아래쪽을 향해 올라오라고 소리를 치면서 호루라기를 불었다. 그리고 왼쪽 길을 갔다. 그 길은 도저히 자전거를 탈 수 없는 길이었고 가다가 절벽을 만나서 이 길이 아닌 것같은 불안감도 생겼다. 그러나 옆을 보면 희미한 길이 나 있었고 어쨌든 등산 경험이 많은 막타오님을 비롯하여 앞에 선 몇 분과 계속 의견을 주고 받으며 길을 찾아 나갔다. 이 때쯤 뒤에서 오는 분들도 몇 분 합류하여 일행이 10명이 넘었다. 앞에서는 길 찾고 뒤에서 대기하는 사람은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왈바랠리는 이런 과정을 통해 우의가 돈독해지고 이야깃거리가 풍부해진다.(군대식 말투: 선두에서는 길 찾느라 고생하는 데 뒤에서 기합들 빠져 가지고 이빨까고 있지.) 절벽 사이로 난 길이 미심쩍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서 가다보면 사람이 지나간 족적이 드문드문 발견되었다. 어쨌든 사람 다니는 길은 맞는데 잘 못 내려왔다가 ‘이 길이 아닌개비여!’하면 그대로 끝장 나는 것이다. 예전에 어래산을 헤매다가 김삿갓 계곡으로 내려왔을 때도 사람의 흔적이 없는 희미한 길을 헤쳐가며 갔던 경험을 되살리며 아래로 내려왔다. 지도상에 표시된 곳이 맞다면 지금쯤 우리는 문수암에 도착해야 하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암자는 보이지 않는다. 코스를 이탈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계속 밀려왔다. 조금이라도 탈 만한 곳이 있으면 다리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타기도 했다. 그렇게 계곡 쪽으로 내려왔는데 길이 없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비탈진 넝쿨길에 민가같은 집이 보여 넝쿨을 헤치며 기어 올라갔다. 그랬더니 조그만 집이 나타났는데 산신각이라고 씌어 있었다. 사람도 없는 스산한 곳에서 산신각을 만나니 약간 무서웠는데 아래쪽으로 조금 내려가니 암자가 있었다. 그곳에 스님 한 분이 서 계셔서 이곳이 문수암 맞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아! 드디어 문수암에 도착했다. 그 때가 약 11시 경이었나 보다. 시간은 정확하지 않으나 출발지에서 약 6시간 정도 걸려 10여킬로 넘는 거리를 왔다. 우리는 그곳에서 물을 보충하고 식사를 하기로 했다. 암자 평상에 싱싱한 토마토가 두어 광주리 있었다. 스님께 하나 맛을 봐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다 먹어도 된다고 했다. 다들 한 두 개씩 들고 먹다가 나머지는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남겨 놓았다. 나는 그곳에서 어제 저녁에 사온 김밥을 먹고 다른 사람들은 전투 식량을 먹거나 그 밖의 요깃거리로 식사를 했다. 한참을 쉬고 나니 상상님도 컨디션이 회복된 모양이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이었다. 우리가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2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아래쪽에서 식사를 하고 있어서 그분들이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출발을 할 수밖에 없었다. 13명쯤 되는 일행이 함께 달렸다. 비가 많이 내려 흙들이 쓸려가는 통에 길은 주먹과 머리통만한 돌들이 튀어나와 있는 길을 달려서 내려왔다. 포장 도로를 신나게 달려 공사중이라 우회하라는 표지가 있는 곳까지 왔다. 거기서 잠시 망설이다가 코스가 그곳으로 나 있기 때문에 공사중인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도를 보면서 과수원길을 지나 쭉 진행했다. 시나위아님이 손에 지도를 들고 길을 찾으며 달렸다. 한참 가다보니 우리가 들어가야 할 임도가 오른쪽에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아 마을 사람에게 길을 물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면 대체로 큰 길을 알려 주었다. 그래서 우리 지도에 있는 길을 설명하면서 그곳으로 가야한다고 하면 고개를 갸웃하면서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쉬운 길이 있는데 왜 그리 길도 없는 곳으로 가려 하느냐’고 물었다.
어쨌든 잔풀이 있는 좁은 길을 통해 철길을 건널 때 일행 중 누군가 사진 촬영을 했다. 철길을 건너 시멘트길을 올라 마을을 통과하여 달려가는데 홀릭님이 송현님에게 전화를 해서 코스 확인을 해야 하니 기다리라고 했다. 저수지 근처에서 한참을 기다리는데 근 한 시간 가까이 지나서 홀릭님이 나타나서 코스가 이탈된 것 같다고 했다. 정해진 길을 타지 않고 로드로 질러오는 길을 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가지 않았다고 철길을 넘은 사진과 GPS 트랙을 보여 주었다.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를 까먹고 다시 출발했다.
이리저리 코스를 찾아 돌면서 어떤 언덕을 넘어와서 도로로 내려왔는데 어떤 사람이 우리가 진행하는 반대 방향에서 오고 있었다. 왜 그러냐니깐 코스를 이탈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우리는 웃으면서 진행을 했다. 조금 가니까 운영진 중 스쿠터를 타는 요원이 우리를 가로 막았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코스를 이탈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정상적인 코스로 왔다고 하니까 한쪽 길을 가리키면서 정상적인 코스로 내려오면 이 길로 와야 된다고 해서 투덜거리다가 우리도 다시 갈림길로 올라갔다. 삑사리가 난 것이다.
왈바랠리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말은 한참 가는데 ‘이 길이 아닌개비여!’이다. 삑사리가 나면 체력 소모는 말할 것도 없고 시간 소모가 크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공황상태가 된다.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큰 삑사리가 나면 랠리를 포기하는 이유다.
우리는 아직 힘이 남아 있기 때문에 운영진에게 한 번 만 봐 달라고 사정할 필요도 없이 다시 갈라진 길을 찾아 업힐을 해서 정상적인 코스라고 하는 곳으로 내려왔다. 왈바 랠리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완주 메달을 따려고 하지 않는다. 모르고 가는 길은 어쩔 수 없지만 알면서 일부러 질러가지는 않는 것이다. 지원 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모두들 무지원이 원칙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동네 수퍼에 들러 시원한 아이스크림이나 이온음료를 마시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누구 하나 그렇게 하자는 사람이 없다. 또 이곳은 사과 과수원이 매우 많아 손만 뻗으면 사과를 따 먹을 수 있지만 어느 누구도 사과를 탐내는 사람이 없다.
정상적인 코스를 지나서 조금 가니 교회 옆에 체크 포인트가 있다. 그곳에서 체크를 하고 교회에 가서 물통을 채웠다. 오늘 절에서도 물을 받아 마시고 교회에서도 물을 받아 마셨으니 부처님과 예수님의 가호가 있을 것이니 좋은 일만 가득할지어다.
출발 준비를 했다. 어찌 하다보니 내가 번짱이 되어 버렸다. 왈바 랠리는 경쟁을 지양하고 협력을 추구하기 때문에 동호회 라이딩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단, 각 동호회에서 그래도 한 가락씩 한다는 사람들이 참가하기 때문에 시간을 지체하는 법이 별로 없다. 특히 우리는 선두조여서 그런지 내가 출발 ‘1분전’을 외치면 군말없이 잔차에 올랐다. 시간에 쫓겨 휴식 시간을 길게 갖지 못하고 서두르는 나에게 불평이 있었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이 기회를 통해 용서를 빈다.
반송 교회를 옆으로 지나니 지도에 나온 그대로다. 이 길이 맞다. 앞으로 큰 길과 만날 때까지 곧장 도로를 따라가면 된다. 더구나 앞은 좍 뻗은 다운 길이었다. 모처럼만에 후련하고 신나게 달렸다. 길 옆에 개울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곳에 누런 모래가 어찌나 아름답던지 라이딩을 하면서 힘든 줄을 몰랐다.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랫빛’ 노래가 절로 나왔다.
시나위아님, 박종진님 그리고 나 또 아직 힘이 남아 있는 일행이 경주하듯 신나게 달렸다. 달리면서 농담으로 이렇게 신나게 달리다가 ‘이길이 아닌개비여!’ 그러면 진짜 큰 일 난다며 웃었다. 큰 길과 만나는 지점에서 지나는 차량에게 우체국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지도에 우체국이 있어서 물어본 것이다. 그랬더니 운전자가 ‘저기’라고 소리치며 손으로 가리키고 갔다. 우리는 우체국 옆을 지나 마음 놓고 큰 다리를 지나 계속 달렸다. 큰 길을 약간 달리다가 마을 옆을 지나 시멘트 농로를 달렸다. 얼마만큼 가서 임도에 접어들기 전에 잠시 쉬었다. 시간이 3시경쯤 되었나보다. 랠리 때는 시간 개념이 이상하게 된다. 출발할 때는 하루 종일 탄다고 생각하니까 시간이 많은 것 같은데 점심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오후 시간은 빨리 지나는 것 같다. 그래서 야간에 대한 걱정 때문에 점점 초조해진다.
점심을 먹을 시간이 지났지만 근처에 식수도 마땅치 않고 해서 비상식을 먹으며 지도를 펴 놓고 우리가 온 길이 맞는지 보았다. 그런데 나침반을 놓고 우리 위치를 가늠하는데 방향이 이상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여기면서 그래도 해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가야 하기 때문에 송현님이 라면이나 하나 끓여 먹고 갔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매정하게 출발 1분전을 외쳤다.
임도 쪽으로 가니 묘지 공사를 한 곳이 나오고 길이 없었다. 척후조 시나위아님이 길이 이상하다며 GPS 궤적을 보여 주었다. 지도를 놓고 보았다. ‘아뿔싸! 이 길이 아닌개비여!’ 대형 사고가 터졌다. ‘만약 잘 못 온 것이라면 지금까지 신나게 달려온 그 긴 거리, 올라가야 할 업힐을 어찌할꼬.ㅠㅠ 그런데 우체국 방향까지는 분명히 맞는데 왜 이렇게 되었지!’ 속으로 의아심을 갖고 일단 잘 못 들어 온 길이니 빨리 내려와 도로에 있는 이정표를 보았다. 이정표에는 우리 코스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지명이 표기되어 있었다. 그제서야 제대로 큰 삑사리를 만났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맥이 좍 풀렸다. 시간도 벌써 상당히 허비해서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약 3시간 정도 늦어지는 것 같았다. 뭐가 잘 못되었을까 ‘맞아 우체국이다.’ 우리가 가야할 목표는 상운우체국인데 지나온 우체국은 이산우체국이었다. 정확한 명칭을 대지 않고 우체국이라고 하니까 아무 의심없이 맞다고 생각하고 와 버린 것이다.
할 수 없이 어긋난 원점을 찾아 반송교회 근처까지 왔다. 그곳에서 주민들에게 길을 물어 상운우체국 방향으로 임도를 타고 달려갔다. 이제는 갈림길만 보아도 마음이 불안하다. 상운우체국을 찾아서 그 옆길로 계속 진행했다. 그런데 달리다보니 산비탈님과 송현님이 보이지 않는다. 누구 본 사람 없느냐고 물었더니 삑사리난 원점 부근에서 농부에게 길을 물었을 때 두 사람이 앞쪽에 가고 있었다고 했다. 아뿔싸 그 분들이 길을 놓쳤구나 생각하며 전화를 꺼내 연락을 취해봤지만 전화기가 꺼져있어 받을 수 없다는 메시지만 들릴 뿐이었다. 매우 가슴이 아팠다. 그 분들은 어느 곳에서 헤매고 있을까? 그렇다고 지금 어떻게 찾을 방법도 없다. 할 수 없이 앞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지도에 길주의라는 곳에 도착하니 갈림길이 나왔다. 산자락 밑에서 고추 따는 농부가 있어서 상상님이 가파른 길을 올라가 농부에게 문촌분교를 가는 길을 물어서(이 상황에서 1밀리가 몇 십 미터씩 차이가 나는 오만분의 일 지도는 이미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이제 주민에게 길을 물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갔다. 문촌 분교를 가는 내리막길에 접어들어 근처 농가에 가서 다시 한 번 길을 확인했다. 그 농가에서 물을 보충했는데 그 농가 한 귀퉁이에 판매하기에는 상품 가치가 없는 수박이 몇 덩이 있었다. 누군가 주인에게 뭐라고 물으니까 아줌마가 칼을 가지고 나와 수박을 썰어 주면서 마음껏 먹으라고 했다. 정말 맛있게 수박을 먹고 있는데 주인 아저씨가 ‘거 옥수수 삶고 있는 것 가져오라’고 해서 힘들텐데 다 먹으라고 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옥수수를 하나씩 먹으니 배고픈 기운이 싹 가시었다. 다시 힘을 내어 교회로 바뀐 문촌분교 옆을 지나 임도로 접어 들었다. 이 길 역시 지도를 믿을 수 없어 내가 먼저 나가 주민에게 확인하고 뒤에 일행을 불러왔다. 그런데 우리 뒤에 있다고 믿었던 정병호님이 일행 중에 있었다. 우리가 삑사리하는 시간 동안 뒷 분들이 따라온 것이다. 그 분들도 대단하신 분들이다. 정병호님께 옥수수 하나를 꺼내드리고 앞으로 간 금성님과 상상님을 따라가기 위해 페달에 힘을 주었다. 그곳에서 또 이리 저리 삑사리가 나서 헤매다가 겨우 길을 찾아가니 정병호님이 가장 선두가 되어 있었다. 이래저래 모인 사람이 20여명 가까이 되어 있었다. 날은 조금씩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한참 가고 있는데 뒤에서 산비탈님이 따라오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니 삑사리 원점 부근에서 반송교회로 더 갔다가 일행을 놓치고 헤매다가 죽기 살기로 따라왔다는 것이다. 송현님의 행방을 물으니 교회 앞에서 보았는데 아마도 접으려는 것 같아서 혼자 왔다는 것이다. 이 랠리를 위해 거제에서 올라와서 재미있게 타셨는데 접어야 하다니 마음이 많이 아팠다.
점골과 긴재를 가는 임도를 힘을 내어 달렸다. 한참을 업힐 한 뒤 잠시 쉬면서 산비탈님께 옥수수를 하나 드렸다. 산비탈님은 우리 일행을 따라오기 위해 힘을 너무 많이 소모한 것 같다. 원래 잘 타는 분인데 이곳 긴재를 오르면서 약간씩 처지기 시작했다. 오버페이스를 한 것이다. 은근한 오르막과 신나는 내리막이 있는 긴재를 재미있게 타고 나오니 신라재 올라가는 도로와 만났다. 신라재는 힘이 빠지고 지친 우리들에게 또 하나의 장벽이었다. 나와 금성님은 낑낑거리며 타고 올랐고 약간 기운이 빠진 상상님과 산비탈님은 끌고 올라왔다. 신라재 정상 부근 약수암에 도착했을 때 홀릭님을 만났다. 홀릭님 왈 여러 개의 지도를 참고하여 코스를 설계했는데 현지에 와보니 길이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자기도 다니면서 길을 잃어 고생을 했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아주 친절을 베풀어(이런 일이 절대 없었음) 앞길을 알려 주었다. 정상에서 살살 내려가면 왼쪽에 향적사 돌팻말이 있는데 그곳으로 접어들어 가다가 갈림길이 나오면 우회전을 하면 그 뒤부터 쭉 외길이니 그곳으로 가라고 한다. 뒤에 오는 일행들이 모여서 다시 한 번 간이 브리핑을 하고 약수암에서 물을 받아 보충하고(약수암이라서 약수가 있는 줄 알았는데 이제 짓기 시작한 절이어서 약수가 준비되지 않은 듯 수돗물을 받았음) 출발했다. 시간은 7시가 넘었고 주위는 어두워서 라이트를 켜고 갔다.
신라재 정상을 지나니 급한 내리막길이 있었다. 홀릭님이 알려준대로 좌측을 살피며 살살 내려가다보니 정말 향적사 돌팻말이 나왔다. 수풀에 반쯤 가려 있어 미리 알고 있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곳이었다. 뒤에 오는 일행이 떨어지지 않게 조금 기다렸다가 어느 정도 모이자 출발을 했다. 홀릭님 말씀에 의하면 처음에 짧은 거리만 업힐하면 다음부터는 긴 내리막이란다. 이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이냐! 이 말은 MTB를 즐기는 사람치고 반기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제 조금만 올라가면 환상의 다운힐 펼쳐질 것을 그리며 짧은 업힐을 힘차게 했다. 업힐 뒤엔 다운힐이 기다리는 것은 당연한 일. 문제는 다운힐이 짧다는 것이다. 조금 내려가다 보니 갈림길이 나와서 우측 길을 택했다. 하도 삑사리에 데여서 이제 갈림길만 나오면 불안하다. 또 한참 내려가니 역시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측에 돌멩이를 모아서 화살표를 만들어 놨다. 이 길이 맞구나.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페달을 밟았다. 그런데 그 길이 은근한 업힐이었다. 그것도 짧은 길이 아니고 향적사에 도착할 때까지 매우 긴 거리였다. 업힐을 꾸준히 하다보니 땀이 났다. 게다가 돌길에 많이 튀어나와 울퉁불퉁한 길이었다. 그런 길을 계속 달려서 그런지 사타구니가 약간씩 쓰리기 시작했다. 예전에 280랠리 때 하루 종일 임도를 타다가 안장에 닿는 부위가 까져서 매우 고통을 느낀 일이 있었다. 그러나 왈바랠리는 자전거에 타는 시간이나 자전거를 모시고 다니는 시간이 거의 비슷해서 엉덩이 까질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 이 임도에서 나와 금성님이 앞서 가는데 금성님은 밤이 되자 더욱 힘이 나는지 지치지도 않고 페달질을 했다. 매일 20여킬로 미터를 출퇴근하는 내공으로 다져진 체력이어서 그런지 좀체로 지치지도 않는다. 상상님이 약간 처지는 것 같아서 앞에 서게 하여 보조를 맞추면서 3개의 라이트가 질주를 했다. 얼마쯤 가다가 끌바를 했다. 평소 같으면 가볍게 탈 코스이지만 하루 종일 시달려 체력이 고갈된 몸이라 경사가 완만하지만 긴 업힐에서 힘이 부친 것이다. 중간에 물이 졸졸 내려오는 길에서 잠시 쉬었다. 어디서든 식사를 해야 하는데 조금 더 가서 물이 있는 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고 우선 간식으로 허기를 채웠다. 오버페이스를 한 산비탈님은 뒤로 처져서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발바닥에 가시가 들어갔는지 걸을 때마다 뒷꿈치 부분이 따끔거렸다. 신발을 벗어 털어보아도 그 때만 잠시 조금 걷다보면 또 따끔거렸다. 세게 디디면 가시가 깊이 박힐까봐 오른발은 힘을 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얼마를 가니 환한 불이 하나 있었고 두어 사람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넓은 주차장이 나타났다.
먼저 도착한 시나위아님이 스님에게 길을 묻고 있었다. 그곳에서 잠시 쉬면서 발바닥을 살폈는데 다행히 가시는 아니었고 그와 비슷한 무딘 것이 바닥을 찌르고 있어서 쉽게 빼낼 수 있었다.
길을 묻고 난 뒤 출발을 했는데 신나는 내리막길이었다. 한참 내려가니 T자형 길이 나왔다. 앞은 어두워서 아무것도 식별할 수 없었다. 현재의 위치와 주변을 식별할 수 없으니 독도법도 무용지물이다. 우리 일행은 오른쪽 길을 택해서 달렸다. 한참 달리다보니 이길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T자 갈림길 부분으로 원위치해서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그곳도 아니었다. 그러는 사이에 뒤에서 오는 일행들과 만나게 되고 인원은 또 다시 열 대여섯 명이 되었다. 서로 논의를 하다가 아무래도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강가가 나올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고 다시 오른쪽으로 달렸다. 한참을 가다 길이 아닌 것 같았다. 마침 근처에 민가에 불이 켜져 있어서 주인을 소리쳐 불러서 길을 물어보았다. 젊은이였는데 그 근처 지리를 설명하면서 과수원 사이 아래로 쭉 내려가서 어쩌고 저쩌고 설명을 하는데 우리 중 알아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계속 관창교를 찾고 있었고 이 사람은 한참 설명을 해도 우리가 알아듣지를 못하고 관창교 가는 길만 묻자 오토바이 열쇠를 가져오더니 자기 뒤를 따르란다. 그 뒤를 따라가는데 경사가 상당한 다운 길을 신나게 내려가는 것이었다. 힘이 남아도는 금성님이 열라리 쫓아가고 그 뒤에 내가 따라서 힘차게 밟았다. 길이 꼬불꼬불해서 앞에 가는 불빛이 보였다 안보였다 했다. 얼마만큼 도착하자 이제 이 길부터는 갈림길에서 헤매지 않을 것이고 곧장 아래로 내려가면 된다고 하고 올라갔다. 그 사람이 없었으면 우린 그곳에서 밤새도록 헤맸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렇게 높이 있는 줄도 몰랐고 바로 앞 부분에 강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강을 찾으러 이리저리 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이 돌아가고 바람막이를 꺼내 입었다. 내리막길에서 내리쏘니 땀이 식으면서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있으니 뒤따라 오던 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내려왔다. 경사가 심한 길이었다. 그리고 길이도 길었다. 내리막길을 신나게 달렸다. 브레이크 패드에서 냄새가 날 정도였다. 한참을 내려오니 앞에 강물이 보였다. 그곳에서 좌회전을 하여 조금 가니 다리가 있었다. 이곳이 우리가 찾던 다리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다리를 건너 청량산 방향으로 향했다. 가다보니 운영진을 비롯하여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다다랐다. 그런데 운영진 한 사람이 잘못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뭘 잘못 왔느냐고 물었더니 그곳은 관창1교이고 앞에 조그만 다리가 보였는데 그곳이 관창교인데 그곳으로 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곳으로 가는 길이 없었다고 말하자 저기 오는 사람도 있지 않느냐고 했다. 그곳을 보니 불빛 2개가 다리를 건너오고 있었다.(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들은 자전거 타는 사람이 아니고 근처에서 낚시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우리는 산에서 내려온 뒤 우측에는 길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산에서 내려오면서 봉고차에서 고스톱 치는 사람들 보았느냐고 물었다. 못 본 것 같다고 했더니 그곳에 가면 봉고차에서 고스톱 치는 사람들 옆으로 가면 길이 있다고 했다. 맥이 풀리기는 했지만 거리도 그리 먼 거리가 아니고 코스 이탈했다는데 구차하게 봐 달라고 하기도 싫어서 다시 돌아서 강 건너편으로 갔다. 그곳에는 정말로 봉고차에서 고스톱을 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앞서 간 금성님이 그 옆에 있는 길로 접어들었다. 잠시 후 되돌아 나온 금성님이 그 곳은 길이 없어서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봉고차에 있는 사람들이 현지 지리를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에게 가는 길을 물었다. 그 사람들의 대답이 우리가 진행해야 할 곳은 길이 없고 원래 우리가 갔던 길이 정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곳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우리는 꼭 우측으로 가야 한다고 했더니 왜 좋은 길 놔두고 그곳으로 가느냐며 계속 좌측으로 가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꼭 우측으로 가야하니 길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 사람들이 자기들은 이곳 출신인데 그곳으로 가려면 다시 산으로 올라가서 늘뱅이 쪽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나중에 지도를 보니 해발 200여미터 부근에서 해발 400여 미터까지 올라가야 했다.) 그 때는 고도가 얼마가 되는지도 모르고 금성님과 상상님이 앞 서 경사가 심한 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그곳으로 올라간다고 해도 늘뱅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물어볼 사람도 없고 힘만 뺄 것이 당연하다고 판단되어 운영진에게 전화를 했다. 당신들이 가라는 곳에는 길이 없다. 그 길을 가 본 적이 있느냐며 처음으로 항의를 했다. 그랬더니 운영진 쪽에서 원래 길로 내려와도 된다고 해서 금성님과 상상님을 불러 세워 다시 좌회전하여 달리다가 다리를 건너 운영진이 있는 곳까지 달려왔다. 왈바랠리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또 내가 좋아서 스스로 참가했기 때문에 힘이 들어도 운영에 대해 불만을 하지 않았는데 이 때 약간 짜증을 냈다.
그곳에서 송현님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무진장이라는 부근에서 혼자 헤매다가 접었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보다 먼저 갔던 박종진님이 옷을 깔끔하게 갈아 입고 있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빙긋이 웃으며 접는다고 했다.
우리 셋은 일단 밥을 먼저 먹고 생각하자며 지금은 문을 닫은 휴게소 자리에서 전투 식량을 꺼내 데웠다. 밥이 데워지고 있는 동안 송현님이 와서 지금 밥먹고 출발하면 청량산 임도를 넘고 도로를 간 뒤 일월산 싱글을 넘으면 내일 날이 밝기 전에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지도를 보았더니 청량산 임도와 국도를 가는 것은 거리가 길어도 상관 없는데 일월산 싱글은 사정이 다를 것 같았다. 홀릭님 말로는 그곳에 싱글길이 있어 현지 사람은 자전거를 탄다는데 정상을 보니 1218미터였다. 이곳이 해발 200~300인데 그곳까지 올라가면 어떤 상황이 닥칠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백두대간같이 길이 하나로 쭉 나 있고 리본이 있다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싱글길은 현지인의 안내가 없으면 길찾기가 매우 어렵다. 또 강원도 산의 특성상 1200고지가 넘으면 타는 것보다는 메거나 끌고 가야 하는 길이 태반이라 계산상 아무리 빨라도 새벽 5시 이전에 빠져 나오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 설령 새벽 5시에 그곳을 벗어난다고 해도 밤새도록 무리하게 되면 다음날 코스도 만만치 않은데 라이딩이 어려울 게 뻔했다. 어차피 완주는 어렵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 세 사람이다. 뒤에 오는 사람이 7명 있다는데 그 분들은 우리보다 늦게 도착할 것이 뻔하고 우리보다 늦게 도착한다면 그만큼 지쳐 있다는 것인데 우리가 포기하면 이번 4회에는 완주자가 없는 것이 불보듯 뻔했다.
송현님이 홀릭님에게 이런 사정을 말하며 일월산 코스를 변경하는 것이 어떠냐고 건의를 했다. 홀릭님은 그것은 어렵다는 말을 했다. 송현님이 우리를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고 은근히 코스가 변경되기를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홀릭님은 요지부동이다. 아쉬운 마음은 있지만 홀릭님의 생각이 옳다고 여겼다. 완주자를 내기 위해 정해진 코스를 변경한다면 완주의 의의도 감소될 뿐 아니라 이미 포기한 분들을 농락한 꼴이 되기 때문에 정해진 원칙을 굽히면 안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이런 부분까지 민주주의를 적용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못 가더라도 가는데까지 가볼까 그냥 접을까 고민을 하며 셋이 의논을 하다가 새벽까지 무리하게 라이딩을 하고 접는 것보다 여기에서 접고 오늘 쉰 뒤 내일 관광라이딩이나 하자고 의견을 모으고 조용히 접었다. 이것으로 4회 왈바랠리는 완주자가 한 명도 없는 대회가 되었다. 그러나 완주자 전무도 또한 기록의 하나이므로 서운할 것은 없다.
접고 나자 마음이 편했다. 우리는 야영지까지 갈 수 없으므로 짐을 옮겨달라고 운영진에게 건의했다. 야영지까지 갔다오는데 차로 약 2시간 걸린다고 했다. 그래서 그 시간 동안 기다리기로 했다. 송현님이 돈을 주며 운영지에게 주류와 안주를 준비해 달라고 했다. 한참 뒤 맥주, 막걸리, 소주와 안주를 사오고 그 자리에 앉아서 오늘의 경험들을 이야기했다. 힘든 일이 많았던 만큼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나도 그 자리에 끼어서 몇 잔 마셨다. 두어 시간 뒤 짐이 왔고 몸이 너무 피곤해서 강가에서 간단히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꿀맛같은 휴식에 빠져 들었다.
뒤에 남은 7명 중 4명은 같은 일행으로 중도에 포기하고 민박을 잡고 들어갔으며 나머지 3명은 문수산에서 같이 선두를 섰던 막타오님, 터보님 일행이었는데 그 중 한 명이 무릎에 이상이 있어 접기로 하고 천천히 내려왔다.
다음날 평소 습관대로 6시가 되기 전에 잠을 깼다.
어젯밤 대충 늘어놓은 짐을 이것저것 정리하고 있는데 상상님이 아이스박스를 꺼내와서 어제 저녁에 야영지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으려고 했는데 그렇게 못했다며 삼겹살을 굽고 어제 남은 술을 돌렸다. 즉석에서 파티가 이루어졌다. 술을 산 송현님, 고기를 준비한 상상님 덕분에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짐을 꾸려 놓고 오늘 관광라이딩 조가 편성되었다. 송현님, 상상님, 금성님, 십자수님,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이 출발하려고 했다. 그런데 짐이 하나 남아서 주인을 찾다가 정자나무 밑에 텐트가 있는 것이 보였다. 가보니 산비탈님이 자고 있었다. 그래서 산비탈님은 자동차로 점프하기로 하고 다섯이서 35번 도로를 타고 명호를 거쳐 삼동 전망대에서 봉화의 장엄한 산들을 구경하고 두내약수에 가서 운영진과 만나 막국수로 점심을 먹고 도래기재에 와서 해산을 했다. 관광라이딩을 하니 랠리 때와는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포기를 하고 느낀 점
마음으로는 꼭 완주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완주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순간 접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괜히 우리가 가는데까지 가보겠다고 하면 어차피 완주도 못할 것이면서 운영진만 밤새도록 잠도 못자고 고생을 할 것이 뻔하고 우리도 지친 몸으로 다음날 집에 오려면 매우 힘들 것이기 때문에 이번의 경우 포기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랠리는 누가 강요해서 가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즐기러 가는 것이기 때문에 운영진의 실수에 대해 욕을 하거나 불만을 터뜨릴 필요는 없다. 운영진은 나름대로 준비를 하느라 고생이 얼마나 심했을 것이며 또 진행 과정에서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얼마나 노심초사하겠는가! 특히 왈바랠리는 코스에 대한 비밀을 철저히 지키기 때문에 홀릭님이 거의 혼자서 준비를 할 것이기 때문에 운영진이 많은 다른 랠리와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비용도 참가비를 훨씬 상회하는 경비가 들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 랠리를 개최해 주신 홀릭님을 비롯하여 운영진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런 분들이 아니었으면 대한민국 오지 봉화의 아름다운 산하를 어찌 구경이나 했겠는가!
함께 달리며 고통과 즐거움을 나눈 분들께 수고했다는 말씀과 함께 해 주어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수고하신 운영진과, 함께 달리며 알게 된 분들의 닉네임을 떠올려 보며 그 분들의 건승을 기원한다.
홀릭님께 건의
코스 세팅할 때 힘들게 하는 것도 좋지만 이번처럼 별로 아름답지 못한 길을 삑사리나게 하기보다는 힘들어도 경치 좋은 곳을 배치하고 가능하면 낮에는 힘들게 주행하고 야간에는 조금 일찍 야영지에 도착하여 술도 한잔씩 나누면서 동호인들끼리 우의를 돈독하게 할 수 있도록 해 주시면 어떨까요? 이번 코스에서 장그래미에서 봉양리 방면 도로를 타게 했더라면 훨씬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