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 그리스도인(마26:20-22).
2024년 4월 21일(주오후). 김유선 목사
<먼저> 우리는 유사 그리스도인과 그의 그릇된 확신을 살펴야 하는 이유를 발견한다. ①거짓된 확신으로 행한 모든 것은 수고를 전혀 하지 않은 것과 동일한 결과를 가져온다. ②하나님께 대하여는 믿음이 없으므로 미움을 받고, 세상에 대하여는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므로 미움을 받게 될 터이니 난처한 일이다. ③믿음 때문에 고난을 받게 될 것이지만 그 고난을 견딜 수 없을 터이니 난처한 일이다. ④천국의 소망을 간직하였지만 결국 항구를 앞두고 침몰하는 것과 같아 그 소망이 헛되니 난처한 일이다. ⑤자신의 상태를 오해해서 참된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이사든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심지어 은혜가 없으면서 은혜를받은 체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마음 속을 모두 살피신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니, 이는 신성모독이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 이런 유사 그리스도인은 거짓된 확신 가운데 거하는 사람이다. 잠시는 이들이 속한 교회와 가정이 생명력이 있어 보이지만 곧 그들의 본성이 나타나고 교회는 생명력을 상실하고 침체와 형식주의의 늪으로 빠져들게 된다.
[1]유사 그리스도인은 어디까지 흉내낼 수 있는가?
제1장 유사 그리스인은 누구인가?
(1)근거구절 : “28ⓐ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28절). 아그립바는 바울에게 말을 한다. 그것은 적은 말로 권하였다고 표현 한다. 여기 사용된 ‘올리고스’(ολιγος)는 양적으로 ‘적은’ 것을 나타내는 형용사이다. 그런데 이 단어가 전치사 ‘엔’(εν)과 함께 쓰일 때는 시간의 연속을 나타내기도 한다. 따라서 엔 올리고(εν ολιγω)는 한글 개역 성경과 같이 ‘적은 말로’, RSV처럼 ‘짧은 시간 안에’(in a short time)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또한 주동사는 ‘권하여’ (πειθεις>πειθω.현능직2단)인데 ‘확신하다, 설득하다, 신뢰하다’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히브어로는 “수아데레”(suadere. 라틴어 ‘어떤 사람에게 사실을 설득하다’)와 ‘페르수아데레’(persuadere. 라틴어, ‘어떤 사람에게 무엇을 하라고 설득하다’)를 의미한다. 즉 설득하기 위해서 논증을 사용하거나 사용된 논증으로 설득하는 것을 말한다. 바울의 이러한 논증으로 인한 영향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Χριστιανον ποιησαι>ποιεω. 과능부. ‘하다, 만들다. 실행하다’)는 ‘그리스도인이 만들어지다, 그리스도인이 될뻔하다’라는 뜻이다. 즉 바울의 설득으로 인하여 거의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였다는 표현이다(메튜미드 「유사 그리스도인」.p34 ‘네가 나를 설득하여 거의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였도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는 제자들을 말한다. 우리는 보통 루터를 따르는 자들을 루터란, 칼빈을 따르는 자들을 칼빈이언, 아르미니우스를 따르는 자들을 아르미니안이라고 부른다. 그것과 유사한 방식의 언어로 그리스도인이다. 바라는 것은 ‘당신은 저를 설득하셔서 거의 그리스도인이 되게 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셨도다’(메튜미드).
(2)이 교훈에 대한 전제 : 이러한 교훈에는 세 가지 전제가 있다. 이러한 전제를 알고 있으면 연약한 성도들이 낙심하지 않으며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전제①>거짓 신자를 들어내는 것은 참된 신자에게 유용하다. 자신을 돌아보고 혹시 가룟 유다와 같은 유사 그리스도인이 아닌지를 두려워하며 점검하게 한다. 예수님은 이러한 자들의 미래를 “슬피울며 음부로 내려가 이를 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마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전제②>참은혜를 받은 자는 결코 지옥까지 떨어지지 않는다. 참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은 아무리 천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서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은혜를 받았다면 결코 떨어지지않는 것이다. <전제③>자기를 살피지 않는 자것은 유사 그리스도인의 특징이다. 진리를 듣고 있지만 진지한 자기 반성과 자기 성찰이 없다면 그들의 상태가 건강하다고 하더라도 유사 그리스도인일 가능성이 높다. 어떤 사람이 중증 병에 걸렸는데 죽기 직전까지 아프지 않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3)유사X人의 성경예 : 거의 그리스도인이 될 뻔한 자들을 소개한다. <유사X人①>큰 계명에 대하여 물었던 지헤로운 서기관 이다 (막13:34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ου μακραν). 지혜로운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가장큰 계명을 물으시고 지혜로운 대답을 하시는 것을 보시면서 칭친하며 말씀하신 내용이었다. <유사X人②>영생의 도리를 물었던 한 청년이다 (막10:17-22). 한 청년이 예수님께 다가와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냐고 묻는다. 예수님은 계명을 소개한다. 그러자 청년은 어려서 부터 모두 다 지켰고 그래서 복을 받아 부자가 되었는데 무엇이 더 부족하냐고 반문한다. 실로 청년은 계명을 지켜서 순종하는 모습이 있었다. 그것도 어려서 부터 지속적으로 순종하였다. 또한 더 알고 싶고 더 영생에 가가이 가고 싶은 열망을 고백하였다. 그는 거의 그리스도인이 되어 영생에 가가이 갈번하였다. 하지만 영생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그가 부족한 단 한가지 돈에대한 욕망을 지적하셔서 포기할 것과 예수님의 제자가 될 것을 명령하셨다. 결국 그 청년은 근심하여 영생을 포기하였다(막10: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유사X人③>등불을 준비하던 열처녀 중 다섯 처녀이다(마25:1-13). 예수님은 천국 비유를 하시면서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이야기를 하셨다. 모두 천국 혼인 잔치에 초대된 열 처녀들이었다. 분명히 천국 혼인 잔치에 초대 되었다. 문제는 신랑이 늦어진 것이다. 지혜로는 다섯 처녀는 미리 등불의 기름을 준비하여서 늦게온 신랑을 맞이 할 수 있었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는 미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여 지혜로운 다섯 처녀에게 꾸러갔다가 여분이 없어서 결국 시내로 등을 사러갔다. 그리고 너무 늦게 도착하여서 문이 닫혀 버렸다(마25:11-13 ‘11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유사X人④>위선에 열심이었던 하나님의 백성들 이다(사58:2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 그들은 얼마나 멀리까지 도달했는지 보라. 그 다음 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얼마나 부패하고 불 건전한지 말씀하신다(사58:3-5 ‘3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4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5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그들은 외형을 볼 때에 거의 그리스도인이 될 뻔하였는데 정작 하나님이 받지 못하실 유사 그리스도인인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거의 천국에 갈뻔한 자보다, 겨우 천국에 가는 자가 더 낫다는 것이다. 겨우 성도가 된 자도 시험이 들고 지옥의 문앞까지 떨어져 천국의 가장자리까지 밀려났다고 하더라도 결코 지옥에는 가지 않는다. 반면 거의 성도가 될뻔한 각성자는 천국 문앞까지 갔다오더라도 결콘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과 유사 그리스도인을 점검해야 한다.
제2장 신앙적인 삶에서 큰 성장을 보였는데도 그가 다만 유사 그리스도인일 수 있는가?
<질문> 천국에 이르는 길을 아주 많이 나아갔는데도 그리스도인이 되다 말 수 있을까요? <답> 저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스무 가지로 그 대표적 사례를 들어 그 답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례①>지식의 큰 성장을 보일 수 있다. 당신이 비록지식이 많고 빛을 많이 받았다고 합시다. 즉 당신은 하나님과 그분의 뜻에 대해서, 그리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길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닌, 유사 그리스도인일 수가 있습니다. 지성이 많이 성장한다고 하여도 진정한 신앙은 전인으로 나머지 정서(affection. 감성과 의지)까지 미치지 못하면 그것은 참된 신앙이 아니다. 지식이 있지만 정서가 없으면 사색에 불과하고 정서는 있지만 지식이 없으면 맹목적이 된다. 지식을 짊어지고 지옥으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았습니다(바리새인과 서시관들).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신앙인의 본분입니다.
<사례②>큰 은사를 받을 수도 있다. 당신이 비록 크고 놀라운 은사, 바로 영적인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닌, 유사 그리스도인일 수가 있습니다. 기도나 설교의 은사는 대단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참된 그리스인만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가룟유도도 제자이며 설교하고 전도도 하였습니다(마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은사보다 중요한 것은 은혜입니다. 은사는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지만 은혜는 스스로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은사의 뿌리는 자연에, 은혜의 뿌리는 그리스도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사례③>수준 높은 신앙고백을 할 수도 있다. 당신이 비록 높은 신앙 고백을 하고 외적인 경건의 의무를 많이 행한다고 할지라도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닌 유사 그리스도인일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가룟유다를 보면 위선자도 은혜를 흉내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높은 수준의 신앙고백을 입으로 할지라도 그것이 천국으로 인도하지 못함을 알아야 합니다. 관습과 처지에 따라서 의무적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입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어서 저주를 받았던 무화과 나무와 같습니다.
<사례④>죄를 미워하고 대적할 수도 있다. 당신이 비록 천국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 죄를 대적하는 데까지 갈지라도 그리스도인이 아닌 한 갖 유사 그리스도인일 수가 있습니다. 먼저 죄를 자각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자각이란 영적이기도 하지만 이성적이기도 한 단어입니다. 자연인도 죄책감고 죄의식을 가집니다. 그러나 이성적 자각은 참된 회개를 하지 못합니다. 단지 습관이나 행동을 교정할 수도 있습니다. 다음은 죄에 대해 슬퍼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사울도 에서도 후회의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단지 양심의 자각에 의한 감정의 자극일 수 있습니다.
<사례⑤>은혜를 사모할 수도 있다. 당신이 비록 은혜를 사모한다고 해도 그리스도인이 아닌 한갖 유사 그리스도인 일 수가 있습니다. 열처녀의 비유 중에 기름을 준비 못한 다섯 처녀를 보십시오. 그녀들은 다른 다섯 처녀에게 “너희 기름을 좀나눠 달라”(마25:8)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여기 기름은 성령이기도 하지만 은혜이기도 합니다.
<사례⑥>말씀을 두려워할 수도 있다. 당신이 비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떨 수도 있지만, 벽에 씌어진 글씨를 보고 떨었던 벨사살처럼 단지 그리스도인이 되다 만 유사 그리스도인일 수가 있습니다. 바벨론의 마지막 왕인 벨사살은 왕위에 오르자 잔치를 베풀었습니다(단5장). 그는 도를 넘어서 하나님의 성전 기물인 잔을 가져다가 술을 마셨습니다. 그 때 한 손이 나타나서 벽에 글을 썼습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즉 ‘너를 달아보고 또 달아보았는데 한량 미달이다’라는 뜻으로 결국 벨사살도 바벨론도 망하였다. 그럼에도 벨사살은 돌아오지 않았던 유사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사례⑦>말씀을 기뻐할 수도 있다. 당신이 비록 말씀과 하나님의 계명을 기뻐한다고 해도 그리스도인이 아닌 한갖 유사 그리스도인일 수가 있습니다. 물론 말씀을 기뻐하는 것은 성령의 은혜입니다. 그럼에도 말씀을 기뻐하지만 유사 그리스도인 일 수 있습니다. 말씀의 선포를 듣고 문제의 해답을 얻고 기뻐하지만 예수를 믿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례⑧>교회의 일원으로 의식에 참여할 수도 있다. 당신은 비록 그리스도 교회의 일원이 되어, 하나님의 백성들과 연대하고, 그들과 함께 모든 의식에 참석하며, 교회의 모든 특권에 참여한다고 해도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닌, 한잦 유사 그리스도인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혼인잔치비유의 어리석인 다섯 처녀는 지혜로운 처녀들과 함께하고 함께 걸었습니다. 그러나 천국 혼인 잔치에는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에서도 결국 천국 곡간에 들어가는 것은 알곡 뿐이었습니다.
<사례⑨>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도 있다. 당신이 비록 천국에 대한 큰 소망과 구원받을 큰 소망을 가지고 있을 지라도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닌, 한갖 유사 그리스도인일 수가 있습니다. 말씀의 은혜에 근거하지 않은 착각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말이나 정보로 인하여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례⑩>크게 변화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당신이 비록 눈에 띄는 큰 변화를 겪고 있고, 이 변화들이 말씀의 작용으로 일어날 수도 있지만, 당신은 아직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닌 한낮 유사 그리스도인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동생이 살아있음에도 힘으로 동생의 아내 제수씨를 빼앗아 살았던 헤롯 왕도 세례 요한의 말을 듣고 크게 번민했었습니다(막6:20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하지만 결국 세례 요한을 죽이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사례⑪>종교적인 일에 매우 열심일 수도 있다(120-129). 당신이 비록 종교적인 일에 열심을 낸다 하더라도 아직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한갖 유사 그리스도인 일수도 있습니다. 예후는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을 행하지도 않았지만 열심은 있었습니다(왕하10:16 ‘이르되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 하고 이에 자기 병거에 태우고’). 그러나 예후는 이러한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위선자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주요목적으로 삼지 않고 다른 이차적인 불순물이 열심의 목적이 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2:17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여기서 열심은 진리의 지식 없이 맹목적인 열심이나 한쪽을 편향된 열심, 잘못 놓인 열심, 이기적 열심, 외적인 열심, 자기 중심적인 열심, 죄악으로 가득한 열심, 성경적 근거가 없는 열심은 거짓된 열심입니다.
<사례⑫>기도를 열심히 많이 할 수도 있다. 당신이비록 오랫동안 많이 그리고 자주자주 기도한다 하더라도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닌한낮 유사 그리스도인일 수가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러했습니다. 자신의 명예와 방식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위선자가 되었습니다.
<사례⑬>그리스도로 인해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 당신은 그리스도 때문에 재물과 명예와 인격에 손혜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여전히 그리스도인이 아닌 한갖 유사 그리스도인일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기 등에 지고간다고 해서 모두 그의 영혼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자는 상급이 있다고 하였지만 그것은 참된 그리스도인에게만 해당됩니다. ①단순한 신앙 고백 때문에 겪는 고난이 있습니다. ②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을 근거로한 고난이 있습니다.
<사례⑭>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수도 있다. 당신은 비록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부르심을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긜스도인이 아닌 한낮 유사 그리스도인 일 수가 있습니다. 가룟유다와 영생을 물어온 한 청년은 이 예의 가장 적합한 사건입니다. ①성령의 특별 사역인 내적 부르심 ②말씀의 사역인 외적 부르심이 있습니다.
<사례⑮>성령을 받을 수도 있다. 당신이 비록 성령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이 아닌 한낮 유사 그리스도인 일 수가 있습니다. 발람이 이스라엘을 축복했을 때 그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주어졌습니다(민24:1-2 ‘1 발람이 자기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심을 보고 전과 같이 점술을 쓰지 아니하고 그의 낯을 광야로 향하여 2 눈을 들어 이스라엘이 그 지파대로 천막 친 것을 보는데 그 때에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 임하신지라’). 이런 사람들은 성령께서 일시적으로 임하시지만 거주하지 않으시는 사람입니다.
<사례⑯>믿음을 가질 수도 있다.
<사례⑰>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할 수도 있다.
<사례⑱>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킬 수도 있다.
<사례⑲>성황의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사례⑳>그리스도인의 외적 의무를 다할 수도 있다.
[2]유사 그리스도인이 그릇된 확신에 이르게된 이유 네 가지.
제3장 신앙의 삶에 있어서 어떻게 유사그리스도인들이 거의 그리스도인으로 보일 정도의 성장을 보일 수 있는가? <양심의 기능>
이러한 질문에 대한 4가지 답이 있습니다.
1. 양심의 빛이 발견하는 신의존재 : 양심은 신을 발견할 수 있으며 피조물의 경배와 섬김을 받으실 분이라고 인정합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이러한 양심을 가진 무신론자를 설명하였습니다(딛1:16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2. 죄를 깨닫게는 하지만 구원에는 못 미치는 양심 :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양심은 죄를 깨닫게 합니다. 양심은 조명을 받고 죄를 깨달을 수 있지만 구원 받을 만큼 변화되지는 않습니다.
3. 자연인의 양심이 느끼는 율법의 공포 : 자연인에게도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역할이 있습니다. 그들은 죄채감으로 종종 죄를 지은 후에 공포를 느낍니다. 죽은 귀신이 꿈에 나타나서 괴롭히기도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면 죄인임을 양심이 깨닫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력 없는 회개를 하기도 합니다. 신에게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4. 비참한 상태를 보게 하는 양심의 눈 : 자연의 양심도 말씀의 조명을 받아서 자연 상태의 비참함에 빠져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양심은 죄책감에 지치고 낙심하게 됩니다. 때로는 자신의 벌거벗은 모습을 발견하고 몸부림 치기도 합니다(창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제4장 자연적인 양심과 갱신되어 새로워진 양심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양심의 종류>
<질문> 자연적인 양심이 이렇게까지 이를 수 있다면, 위선자와 죄인들의 자연적인 양심과 신자의 갱신된 양심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나의 양심의 작용이 자연적인지, 혹은 그 속에 은혜가 작용하는 것이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대답> 양자를 구별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 어려움은 두 가지 사실에서 기인합니다.
1. 은혜 가운데 끼어드는 죄 : 자연적인 양심과 거듭난 양심을 구별하기 어려운 것은 가장 훌륭한 성도들에게도 있는 위선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약한 자에게는 위선이 없습니다. 최상의 은혜가 있는 곳에도 죄의 틈이 있어서 위선이 타고 들어옵니다.
2. 은혜와 위선 사이의 유사성 : 이렇게 동시에 존재하는 것은 은혜와 위선의 유사성 때문입니다. 위선은 은혜의 생명은 없이 은혜의 외양만 가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3. 은혜와 위선을 가리는 방법 일곱 가지 : ①자연인의 양심은 종교적 의무를 제한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제한적으로 합니다. 자연적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선택적으로 복종합니다.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한다면 거듭난 양심입니다. ②거듭난 양심은 보혈로 죄의 제거를 바랍니다. 자연인의 양심은 죄를발견하고 죄를 책망한다면 그는 양심을 만족시키지 않고 죄를 지적하는 양심의 입을 막아 버리기를 구합니다. 거듭난 양심은 죄를 회개하고 십자가의 보혈로 양심을 만족시킵니다. ③자연인은 종교적 의무를 죄의 가리개로 삼습니다. 자연인의 양심은 종교적 예식에 참여할 수 있고, 직분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거짓된 회심으로 인하여 예배나 기도를 죄의 가리개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종교적 의무들로 자기 죄를 드러낸다면 거듭난 양심입니다. ④자연인은 종교적 의무를 크게 자랑 합니다. 자연인의 양심은 종교적 의미를 자신의 공로로 여기기 때문에 자랑스러워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자신의 종교적 의무를 자랑하였습니다(눅18:11-12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종교적 행함이 높고 마음이 낮아지는 것이 거듭난 양심입니다. ⑤자연인은 모든 의무의 공로를 자기 것으로 삼습니다. 모든 것은 자신이 수고하여 얻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수고의 열매를 은혜로 생각하는 것은 거듭난 양심입니다. ⑥자연인의 양심은 봉사는 하나 성화에 이르지 못합니다. 자연인은 열심을 내어서 많은 봉사를 할 수는 있지만 결코 거룩함에 도달할 수는 없습니다. 그 모든 열심의 봉사 아래는 성화되지 못한 마음이 깔려 있습니다. 따라서 고백과 행실이 균형을 이룬다면 그것은 거듭난 양심입니다. ⑦자연인의 의무는 처음에는 크나 나중이 미약합니다. 자연적 양심은 그 은혜의 원천이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점점 은혜가 식어지고 열심이 사라집니다. 따라서 나중의 것이 처음 것 보다 많아진다면 거듭난 양심입니다.
제5장 무엇이 유사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제법 신앙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하는가? 또 다른 이유 세가지 <말씀의 능력> <명예심> <구원의 욕망>.
무엇이 유사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제법 신앙적인 삼을 살 수 있게 할까요? 이제까지 양심을 말했습니다. 그 외에도 말씀의 능력, 명예심, 구원의 욕망을 들 수 있습니다.
1. <말씀의 능력> 죄인들의 양심에 조명된 말씀의 능력 때문에 : 말씀을 듣는 죄인들의 양심에 작용하여 죄인들을 갱신시키지는 않지만 개혁 시키기는 한다. 말씀은 양심으로 하여금 죄를 분별하게 하고 양심을 제어하며, 죄인들에게 심판을 선포한다. 그러므로 양심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할 수도 있고 신앙을 고백하고 일시적으로 죄악의 길에서 돌아설 수도 있다.
2. <명예심> 명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서 명성을 얻고 박수갈채를 얻기 위해 신앙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직분이 목적이 되는사람들도 있다.
3. <구원의 욕망> 영생에 대한 욕구 때문에 : 어떤 사람은 구원받기 위해서 신앙적인 삶을 살 수 있다. 구원을 소유하기 위해서 많은 것을 희생하고 절제할 정도로 구원을 열망한다. 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자신이 영원히 보존되기를 바라는 본능에서 나온 욕망에 불과한 것이다.
제6장 많은 진보 끝에도 한갖 유사 그리스도인으로 머무는 까닭과 원인
<질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멀리까지 이르렀으면서도 유사 그리스도인에 머누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답> 저는 이에 대해 여러 가지로 답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만 말하겠습니다.
1. 죄에 대한 올바른 각성이 부족하기에 : 그것은 죄에 대한 분명하고 바른 각성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뉘우치기는 하지만 철저하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인한 것이 아니라 단지 본성적이고 이성적인 뉘우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죄애대한 거듭난 양심의 각성과 자연적 양심의 각성의 뚜렸한 차이점은 다섯가지 입니다. ①영적인 죄의 자각은 은밀한 것까지를 포함합니다. ②자연적인 죄의 자각은 본성의 오염을 알지 못합니다. ③자연적인 죄의 자각은 죄 자체의 악함을 모릅니다. ④자연적인 죄의 자각은 일시적이고, 표면적입니다. ⑤성령의 역사인 죄의 자각은 죄인을 하나님께로 이끕니다.
2. 은혜의 역사에 의한 영적인 죄의 자각이 부족하기에 : 마음에 역사하는 철저한 은혜의 역사가 부족하여서 영적인 죄의준 자각이 부족합니다. 마음에 은헤의 작용이 없다면, 그 다음에 이어지는 신앙고백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7장 유사 그리스도인도 신앙을 고백하는데 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가?
<질문>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고백하면서도 유사 그리스도인 이상으로 더 나아가지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자신의 진실한 상태를 스스로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상태를 오판합니다. 사실은 악하고 위태로운데 선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자신의벌거벗음을 모르고 우쭐대는 임금님과 같은 상태입니다. 자신이 대단하다고 착각에 빠집니다.
①거짓된 마음
②교만한 마음
③일반 은혜를 특별은혜로 착각함
④참된 회심보다는 외적인생활 개혁에 머무름
⑤마음과양심에 하나님의 율법의 철저한 적용의 결핍입니다.
[3]어떻게 유사 그리스도인을 탈출할 수 있는가.
제8장 적용 :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라.
천국문은 좁아서 정욕과 부패의 짐을 지고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젋은 길을 가면서도 좁은 길로 걷는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진주 장사의 비유에서 흥정은 하지만 결코 진주를 사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자연인 입니다. 골라인을 넘지 못하면 절대로 골인이 아닙니다. 따라서 주여 내니이까? 확인하던 예수님의 제자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해야 할 이유 다섯 가지를 살펴봅시다.
1. 외적 표증에 안주하며 자연적 상태에 머물기에 : 많은 사람들이 경건의징표와 신앙의 외적 표증에 안주하며서 여전히 자연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는 자가 되지 않아 자신의 영혼을 속이고 있습니다(약1: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 마음의 기초가 은혜 위에 놓이지 않을 수 있기에 : 우리의 마음이 본질에 있어서 바른 근거에 놓이지 않는다면 이어지는 우리의 모든 고백은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3. 우리 영혼을 오도하는 속임수가 많기에 : 우리의 영혼이 잘못 신뢰할 수 있는 속임수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 같지만 은혜가 아닌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사품으로 다른 것을 대체하는 것입니다. 볼질이 그늘에 가리지 않도록 상태를 시험하라.
4. 사탄의 시험이 극성스럽기에 : 예수님을 시험한 사탄은 다시 사람을 시험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까부르고 체로 거릅니다. 우리가 근거없는 확신에 안주하면 위안 없는 절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붙들지 못하면 이길 수 없습니다.
5. 치유와 갱신의 적기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 죽음에 이르기까지 주제 파악을 못하는 비극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질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되면 의사를 시기에 맞게 찾을 것입니다. 시기를 놓치면 심각해 집니다.
제9장 경고 : 유사 그리스도인이 주는 준엄한 경고
유사 그리스도인은 주의 하십시오.
1. 하나의 부족이 아흔 아홉을 무익케 한다. 어느 한 가지 점에서라도 실패한다면 천국에 가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은 것과 동일한 손상을 입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의 회심했다고 하여도 아무것도 유익이 없습니다. 모든 죄를 버리지 않는다면 이런 저런 죄를 버리는 것이 전혀 유익하지 않습니다.
2. 부두를 눈앞에 두고 침몰하는 배. 그것은 매우 난감한 일입니다. 세 가지 면에서 그렇습니다. ①유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사람에게서 모두 미움을 받는다는 점에서 난감한 일입니다. ②고난의관점에서 난감한 일입니다. ③소망이 헛되다는 점에서 난감한 일입니다.
3. 유사 그리스도인이 처할 위험 여덟 가지. ①참된 역사를 방해하기에 위험합니다. ②은혜의 상태로 오인하기 쉽기에 위험합니다. ③은혜받는 것처럼 가장함이 신성모독이기에 위험합니다. ④헛된 양심의 평안을 누리기에 위험합니다. ⑤용서받을 수 없는 죄와 연관되기에 위험합니다. ⑥결국 배교로 넘어가지에 위험합니다. ⑦두려운 영적 심판을 초래하기에 위험합니다. ⑧저주를 대단히 악화시키기에 위험합니다.
제10장 권면 :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간곡한 권면?
이 중요한 의무를 고양시키기 위한 동기가 필요하십니까?
1.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기 위한 다섯 가지 동기 부여 : <숙고①>이것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계명이 지향하는 것입니다. <숙고②>그리도는 온전하신 구세주요, 완전하신 중보자이십니다. <숙고③>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이되는 것은 신앙으로 충분합니다. <숙고④>사악한 사람들은 자신의 정욕에 전적으로 복종하는데왜 우리는 주 그리스도께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숙고⑤>여러분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영원한 심판의 날, 큰 날에, 하나님 앞에 평안하게 나타나거나 설 수 없을 것입니다.
2. 유사 그리스도인에서 돌이킬 수 있는 지침 세 가지 : <질문>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떤 수단을 사용해야 저의 마음이 온전한 행위를 이룰 수 있으며 더 이상 유사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까? <답> 저는 여러분이 이 중요한 의무를 행하는 것을 도와 하나님의 축복에 이 일을 맡길 수 있도록 세 가지 지침을 드리겠습니다. <지침①>양심의 모든 거짓된 평안을 깨뜨리십시오. <지침②>죄를 뉘우치되 온전히 힘써 뉘우치십시오. <지침③>회심에 이르기까지 결코 죄의 자각과 뉘우침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결론> 쓰여진 목적 : 매튜미드는 구원의 확신을 흔들려고 이글을 쓴 것은 아니다. 그는 거짓 확신을 가지고 헛된 열심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하는 유사 그리스도인들이 아닌지 돌아보라고 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에서 최후의 만찬 때에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하고 말씀하셨고 제자들은 모두 두려워하며 “주여, 내니이까”라고 물었던 것과 같은 상황이다. 거짓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거짓된 평안과 거짓 가치를 누리는 자들에게 도전을 주는 것이다. 형식적인 삶에 만족하는 신앙인들의 마음을 움직여 전심으로 돌아오는 것이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