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강화나들길 6코스 화남생가 가는 길은 화남 고재형 선생이 걸었던 길을 잇고, 잊혀진 길을 찾아 강화가 품고 길러낸 자연과 땅 위의 모든 것과 연결한 길이다.
강화풍물시장의 출발점을 시작으로 도감산 숲길을 넘어 선원사지에 내려서고 이어 남산대의 월하공원을 지나 만월평을 가로질러 삼동암천의 조경교를 건너 화남생가를 찾아가는 길, 그리고 터진개에서 강화갯벌을 보며 광성보에서 끝을 내는 길이다.
2024년 늘 걸었던 가을철 또는 겨울철이 아닌 5월의 싱그러운 숲길을 걷기 위해 강화터미널에서 9시 25분에 출발하는 53번 군내버스는 9시 50분 오두리 넙성입구에 우리를 내려준다. 오늘은 터진개에서 시작한다.
화남생가 두두미 마을로 가는 시작점인 터진개에 선다. 불은면 오두리 터진개 옛 포구는 조선시대 지리지인 "택리지"에 의하면 강화와 김포 사이의 염하는 우리나라 해상 교통의 요충지로 삼남 지방에서 거둔 세조를 실은 배가 한양으로 들어오는 관문이기도 했다.
이 강화 염하는 교통의 요지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개항기, 아니 그 이전부터 군사적 요충지였으므로 아직도 많은 방어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한때 6.25동란 이후까지도 이곳에는 24호의 객주집이 산재했다는 포구였다고 한다.
터진개에서 보는 유유히 흐르는 염하다. 통일의 길목. 통일의 물길 바람 길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해안동로를 가로지르고 이어 오두리 간뎃마을로 들어서는 길은 노랑코스모스 금계국이 곱게 길가에 늘어서 있다. 오두리는 마을 지형이 마치 자라의 머리처럼 좁고 길게 뻗어나간 곶이 있어 오두동이라 칭하는데 이곳에 오두정이란 정자가 있어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오두리 간뎃마을은 오두머리 옆에 있는 마을로 간뎃말에서 큰말로 넘어가는 고개를 간뎃말 고개라고 부른다. 고즈넉한 산길이 시작된다. 싱그러운 초록의 숲길이 시작된다.
겨울이면 더욱 푸르게 보이던 낯익은 소나무 숲이지만 소나무는 여름철에는 조금은 빛을 발하는 느낌이다. 어딘선가 검은등뻐구기에 구슬픈 울음소기가 들린다. 5월이면 찾아오는 철새는 우리의 산줄기를 찾아 걸을 때 정맥꾼들의 길동무였다. 마치 울음소기가 “홀딱벗고, 홀딱벗고”로 들리기 때문에 홀딱벗고새로 통하면서 5월의 아가씨라고 했었다. 이제 검은등뻐꾸기가 떠날 때가 되었다.
6코스는 강화나들길에서 유일하게 알바를 하게 하는 코스이다. 가끔은 갈림길에서 길을 놓칠 때가 있다. 그만큼 눈을 크게 뜨고 찾아가야하는 길이 6코스다. 특히 초여름에 걷는 숲길에 갈림길이 많은 6코스는 안내목과 리본을 잘 보며 가야한다.
고즈넉한 숲길을 뒤로 포장길을 만나 걷다보면 모내기를 끝낸 시골마을 풍경이 아름답다. 장안촌 마을로 들어선다. 장안촌 마을에는 명품 향나무가 기다리고 있다. 수형이 독특하고 수려한 향나무는 집주인 구자형 님(80세)의 증조부께서 250년 전(1700년대)에 심은 나무로 4대째 보호, 관리 하고 있는 나무다.
일제 시대에는 일본인들이 몰려와 허락도 없이 향나무를 캐고 있었다고 한다. 조부님과 마을 사람들이 달려와 일본인들을 저지하자 그들이 물러가면서 끝까지 나무를 붙잡고 놓지 않자 나무의 큰 가지가 찢어지면서 두 조각이 되었다고 한다.
조부님과 마을사람들은 찢어진 가지를 정성스럽게 감싸고 보호하여 이 나무를 살렸다고 한다. 향나무를 뒤로 마을길을 걷다보면 두운2리 마을회관이 마중 나온다. 불운면 두운리에 위치한 백운동은 몽골 침략 때 고려 조정이 강화도로 천도했을 때, 이규보도 강화도에 와서 이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고려 최고의 대문장가였던 이규보의 호는 백운거사였다. 그가 살던 마을이었기 때문에 백운동으로 불리게 되었다. 100여년 전 화남 고재형 선생도 백운동의 이규보에 대해 시를 지었다.
두두미마을이다. 지금 불은면 두운리이다. 도의를 숭상하는 인물이 살아서 두도미라고 했는데 이후 두두미로 변했다고 한다. 오늘날의 지명인 두운리는 두두미동의 ‘두’ 와 백운동의 ‘운’을 합해서 이루어진 이름이다.
이 마을에 제주고씨 여러 조상의 위패를 모신 ‘영모사’라는 사당이 있고, 평해황씨의 효부 정려문이 있다. 평해황씨는 고계인이라는 분의 아내였는데 시부모님을 지극 정성으로 봉양하여 효부로 표창을 받았다. 이 마을에서 [심도기행]의 저자 화남 고재형 선생이 태어났다.
잠시 꽃마니에 뜨락을 지나 우측으로 돌아서면 화남 고재형 선생 생가다. 화남 고재형 선생은 1906년 강화도의 유구한 역사와 수려한 자연을 노래하며 강화의 논ㆍ밭 ㆍ산길ㆍ바닷길을 둘러보고 칠언절구의 한시 256수를 ‘심도 기행’이라는 기행시집으로 남겼다.
강화나들길은 바로 화남 선생이 걸었던 길을 잇고, 잊혀진 길을 찾아 강화가 품고 길러낸 자연과 땅 위의 모든 것과 연결한 길이다.
선생의 생가 두두미 마을에는 선생이 남긴 “봄바람 맞으며 두두미를 걷노라니, 온 마을의 산과 내가 한눈에 들어오네, 밝은 달 푸른 버들 여러(구)씨 탁상에서, 잔 가득한 술맛이 힘을 내게 하는구나”라는 ‘두두미동’ 시 한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