훨얼 훨 날고 싶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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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고, 일하고, 공부하고!!
- 아름다운 하루 하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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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분도 명상의 집에서 문안드립니다.
지금껏 교회생활을 해 오면서 매년 ‘8월’하면 성모승천 대축일,
그것도 옛날 말로 ‘성모 몽소승천
대첨례’가 떠오르면서
8월 15일이 지나면 선선해진다는 생각을 줄곧 하여왔습니다.
아주 더운 날에는 이제 곧 가을이 오겠지 생각하고 날씨보다 더 뜨거운 정열로
살 수만 있다면 여름의 열기도 무색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떻든 시원한 여름을 즐기시기 바라면서 이 달의 얘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미국 뉴 저-지에 있는 뉴튼 수도원에 가보면 그 수도원 숲 속에
그 물이 델라웨어 강으로 흘러나가는 ‘스틱클 폰드’라고 부르는 호수가 있고
부산 분도 명상의 집 옆과 뒤쪽 산 넘어 에는
아주 넓고 큰 저수지가
펼쳐져 있습니다.
부산 오륜동에 있는 저수지에는 그런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스틱클 폰드에는
철철이 다른 철새들이 오고가며 즐기는 모습을 잘 볼 수 있습니다.
몸집이 작은 오리 떼, 특히 몸집이 큰 거위 떼들이......
그런데 이상스러운 것은 백조 한 쌍이 늘 호수 이 쪽 아니면 저 쪽 건너편에서
어떤 때에는 둘이 함께 어떤 때에는 부부싸움이라도 한 듯 따로따로
멀리멀리 떨어져 물에서 노닐고 있는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주 추워서 호수의 물이 꽁꽁 얼어 노닐 물이 없을 때를 제외하고는.
그 호수 한편 끝 모퉁이 숲 쪽에는 자그마한 사설 비행장이 접해있어
늘 경비행기 네 다섯 대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겐 좀 별난 풍경이지요.
그 호수 주위로는 수도원의 크리스마스트리 농장과 ‘
베네딕트 캠프장’이 어우러져 정겨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백조도 비행기도 날개를 지니고 있는 것들인데 나르는 시간보다
물에서나 아스팔트 위에 앉아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아 보입니다.
아니, 몇 날 며칠이고 호수 안에서 물고기를 잡아먹는지 연신 물속을 뒤지고 다니거나
돌이나 나무토막위에 앉아 있는 모습만 보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사람들은 날개만 달렸으면 훠얼 훨 날라보았으면 하는 때가 종종 있지 않습니까!
이놈들도 또한 시간이라는 계절과 호수나 저수지라는 공간에,
에너지나 경제적 조건에 따라 움직이면서 사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해 봅니다.
날개가 있다고 항상 나르는 것만은 아니로구나!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신나게 하면서 사는 분들도 있겠지만
우리 중에 많은 분들이 매일매일 하고 싶지 않더라도 해야 하니까
할 일을 하면서 살고 있고, 가정이나 사회 공동체에 떠밀려 사는 경우도 있고,
또 다른 편으로는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좋은 마음으로 헌신적으로
이것저것 하면서 분주히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의 유명한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 올리는 ‘삼종기도’의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시도다.
” 우리는 누구나 시간과 공간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이 시간과 공간은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 때문에
더 이상 속박이나 제한이 아니고 오히려 성화되어 그 안에서 구원의 역사가 성취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 자연은 구원의 역사 안에서 은총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게 되는 영역인 시간과 공간을 지혜롭게 이용함으로써
초자연의 세계로 접어드는 통로가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일찍이 교회 안에서 수도생활을 체계적으로 설계하고
극명하게 가르친 베네딕도 성인은 수도자의 매일의 일과를 잘 배정 하였습니다.
약한 인간의 조건과 한계를 통찰하여 시간과 공간의 분배를 조화롭게 규정하여 놓았습니다.
곧 ‘하느님의 일’이라고 부르는 공적인 공동기도, 현재 성무일도라고 부르는
시간전례와 통상 미사라고 부르는 감사제를 합쳐서 4시간 정도를 성당이나 경당에서 거행하고,
농장과 여러 가지 형태의 공장과 작업장,
그리고 음식을 만들거나 환자를 돌보거나 순례자나 손님을 맞이하는 일들,
수도자의 재주나 역량 또는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일을 하는데 6시간을 바치게 했습니다.
이런 생활을 수도자들이 하는 모습을 사람들이 보면서,
함께 체험하면서 베네딕도회 생활을 묘사하는 그 유명한 표어가 태어난 것입니다.
“기도하고 일하라 PRAY and WO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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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실제로 베네딕도 성인이 ‘매일의 육체노동에 대하여’ 규정한 내용을 보면
기도하고 일하는 시간 이외 인간생활에서 극히 중요한 요소에 대해
아주 엄격하게 규정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교회와 수도생활에서,
특히 근래에 한국 교회에서도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고 있는 ”성독 聖讀“,
또는 ”거룩한 독서“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매일 4시간을 바치도록 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소박하게 성경말씀을 읽는데 발음하면서 자신이 들을 수 있도록
소리를 내어서 읽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베네딕도 규칙서는 단순하게 ‘독서 LECTIO =Reading'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더 많지만
오늘날 일반적으로 ’렉시오 디비나 Lectio Divina' 라는 단어로 그 특징을 살리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거룩한 독서를 즐겨 들어라“라는 말에서 보듯이
단순히 오늘 우리가 책을 읽는 것과는 다른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개인기도와 공부시간인 것입니다.
6세기 의미로는 ‘묵상하다, 익히다, 공부하다, 개인으로 기도하다’ 가
서로 실천 상 구별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여간 하루 일과 중 4시간을 개인으로 공부하고
기도하는 시간으로 엄격하게 규정한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는 24시간을 공동기도에 4시간,
노동에 6시간, 공부에 4시간을 바치고 나머지 시간은 인간의 생리적 요청인 식사와 휴식에 바치게 됩니다.
여기서 이 편지의 제목을 생각했습니다.
‘기도하고 일하고 공부하고!’ 얼마나 아름다운 조화와 균형 잡힌 일과 입니까!
영혼과 육체의 수련, 정신과 육체 그리고 마음의 단련, 지성과 감성 그리고
지적인 수행과 의지와 감정의 수행이 함께 이루어지는 하루하루. 조화와 균형, 곧 아름다움이지요.
매일생활의 미학을 체득하는 아름다운 하루하루가 되는 것입니다.
일생을 이렇게 하루같이 살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서 훠얼 훨 날지 못해도
이 세상에서 이미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 그 분의 현존 안에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우리의 현실을 봅시다. 하루하루 생활의 이런 삶의 조화 균형이
나에게는 하나의 ‘유토피아’ 또는 꿈같은 하나의 감상적인 바람 뿐 이겠습니까?
먹고 살기에 바쁘고 지쳐 죽을 지경인데 무슨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지금 우리는 일 중독자가 되어도 한참 되어 앞뒤를 볼 수도 없는데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이런 생각이 드신다하더라도 다시 한 번 어떤 가능성을 찾아보시도록 초대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인간으로서 일상의 이런 아름다움을 가장 크게 망가뜨리고
있는 요소가 어느 것인지 가려서 처방을 내려 보시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고생하고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다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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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히 계십시요.
부산 분도 명상의 집 원장
김구인(요한보스코)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