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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자료실 - 종교간대화와 그리스도인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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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정교회(해외) 스크랩 슬로바키아 제헤라 성령 성당 (스피슈스카 카피툴라)
대화일치 추천 0 조회 28 09.09.22 04:0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제헤라 성령 성당            (출처- http://blog.naver.com/notredam)

 

제헤라 성령 성당의 탑 위 알뿌리 모양의 장식이 눈길을 끈다 

 

제헤라 성령 성당 내부        (출처- http://blog.naver.com/notredam)

 

1275년에 세워진 제헤라 성령 성당에서 복원 공사를 하던 사람들이 귀중한 프레스코화를 발견했다

 

성 마르틴대성당

 

스피슈스카 카피툴라의 석벽에 둘러싸인 지구는 역사 경관을 보유한 스피슈 지방의 종교적 중심지이다. 성마르틴 대성당의 첨탑이 보인다

 

스피슈스카 카피툴라

 

1993년에 지정된 세계문화유산으로 13∼14세기 동부유럽의 가장 큰 군사적, 정치적, 종교적 건축물군 밀집지대로, 당시의 로마네스크, 고딕 건축이 원형대로 현존되어 있다. 12세기에 건설되어 16세기까지 꾸준히 확장된 스피슈성은 비록 폐허가 되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스피슈스카 카피툴라 요새내부          (출처- http://blog.naver.com/notredam)

 

길이가 약 400m인 스피슈 성의 성벽이 산비탈을 따라 이어져 있다. 넓은 골짜기가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 위 요새의 안뜰에는 저수로의 흔적이 남아 있다

 

슬로바키아 스피슈스카 카피툴라  스피슈 성과 주변


동슬로바키아의 고원에 우뚝 솟은 스피슈 성은 군사, 정치, 그리고 종교적인 의미에서 주변의 역사 건축물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성 아래쪽에 펼쳐진 스피슈스케 포드흐라지에 시는 거대한 성의 보호 아래 몇 세기 동안 발전했다. 부유한 성주들은 수도원장을 뽑고, 훗날에 역사 깊은 스피슈 관구의 주교도 선출했다. 폐허가 된 성과 그 주변의 건축물, 주교 관할 성당, 참사회 건물 등에서 지난날 직물 제조로 얻어 번영했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허물어진 성의 흉벽 위로 매가 날고, 뒤쪽에는 브라니스코 산맥의 줄기가 뚜렷한 윤곽선을 드러내며 뻗어 있다. 슬로바키아의 성채 가운데 유난히 위풍당당하던 이 성에도 돌을 깔라 놓은 안뜰에는 잡초가 무성하다. 그러나 넓은 골짜기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진 이 성의 폐허에서는 지난날 스피슈 지방의 번영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곳에는 신석기 시대인 기원전 5000년경에 이미 사람이 살고 있었으며, 청동시 시대를 거쳐 기원후 1세기에는 이미 성채로 둘러싸인 거주 지구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9세기의 대모라비아 왕국 시대에 다시 요새가 건설되었다. 현존하는 성은 12세기 초에 건설하기 시작했지만 지반이 약해서 성의 원형이 붕괴되어, 13세기 초에 재건한 것이다. 그 후 이 성을 중심으로 스피슈 지방의 통치가 이루어졌다. 원래 이 성채는 동방의 타타르인이 침입했을 때 도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초기에는 저택과, 지금은 폐허가 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 있는 성이었지만, 후에 헝가리인이 고딕 양식으로 개조했다. 그리고 15~16세기에 성의 뒷부분도 건설되었다. 또 커다란 탑에 끼어 있는 문 뒤에는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의 건물을 만들었다. 18세기에는 성이 군대의 주둔지였지만, 1780년의 화재로 불타버리자 완전히 버림받아 채석장으로 사용되었다. 뒤쪽 요새의 문 앞으로는 성 아래쪽에 있는 스피슈스케 포드흐라지에로 이어지는 길이 뻗어 있다. 현재 이 마을은 스피슈스카 카피툴라에 병합되어 있다. 지난날 스피슈 지방에는 작센(현 독일 지역)인의 주거 지구도 있었는데, 이는 헝가리인 군주들이 12세기에 광산 노동자와 기술자들을 이 곳으로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스피슈스케 포드흐라지에는 12세기에 성 주변 기슭에 주거 지역으로 만든 도시이다. 당시 이미 요새화되어 있었지만, 곧바로 성곽 도시로서만이 아니라 독립된 지구로 발전했다. 최초로 지은 성당을 타타르인이 파괴했지만, 1258~73년에 재건했다. 1321년에는 도시로 인정받았으며, 15세기에는 직물 제조업으로 경제가 발전했다. 그 사실을 대변하듯이, 이 곳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구 성당이나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 성주가 살던 오래된 성마르틴 수도원이 있었던 스피슈스카 카피툴라를 둘러보면, 비록 12세기에는 요새화된 작은 취락이었지만 유럽에서는 보기 드문 성직자를 위한 주거 지역으로서, 시대와 함께 번영을 누린 도시로 발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3세기에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은 성마르틴 성당은 후에 스피슈 지구의 주교좌가 놓인 대성당이 되었다. 달걀 모양의 구역에 세워진 이 대성당은 17세기에 만들어진 석벽의 보호 아래 주교구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성직자들은 각각 부와 권력의 상징인 자신의 인장과 막대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에 국가가 이것을 몰수해 버렸다. 시의 부유한 세력가들의 저택이 노동자들에게 점거당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1950년 이후 스피슈스카 카피툴라는 국가가 보호하는 도시가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역사 건축물이 손상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현재 이 지구의 역사 건축물은 100채를 헤아리는데, 그 중에는 13세기 후반에 지은 제헤라 성령 성당이 있다. 이 곳에서는 13세기 후반에서 15세기까지 5세대에 걸쳐 그린 귀중한 프레스코화를 볼 수 있다. 이 문화재는 그 간 정기적으로 관리해오고 있었지만, 1948년에 국가의 재산이 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특히 슬로바키아는 1980년대 말부터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맞아, 문화재 보호가 어려워졌기 때문에 정부는 정책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국가가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하자, 건물의 유지 및 관리와 복원을 각 소유자의 손에 맡겨 현재 대부분의 역사 건축물은 원래의 소유자나 교회에 반환되었다. 1961년, 스피슈 성은 국가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이어서 성 주변도 역사 보호구가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복원 작업은 자금 부족으로 연기되었다. 1989년부터 정부의 허가를 얻어 다시 주교좌가 놓여졌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지금, 건물의 수리가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

 (출처- http://blog.naver.com/notre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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