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의 연구내용은 고대 중국의 강역이론 연구, 동북지방사 연구, 동북민족사 연구, 고조선·고구려·발해사 연구, 중조관계사 연구, 중국동북변경과 러시아 극동지역의 정치·경제관계사 연구, 동북변경의 사회안정 전략 연구, 조선반도의 형세 변화와 그것이 중국동북변경지역의 안정에 미치는 영향 연구 등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동북지역 및 한반도와 관련된 각 분야를 포괄하고 있다.
동북공정이 우리에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동북공정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 중 고구려사를 비롯한 고조선, 발해 등 한국 고대사와 관련된 연구들이 한국사를 크게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고구려를 중국의 소수민족이 세운 지방정권이라고 보아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라고 하는 견해를 계속적으로 주장해 왔다. 동북공정은 바로 이러한 주장을 중국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며 본격적으로 연구를 진행시키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중국은 고구려사 뿐만 아니라 고조선사와 발해사까지도 한국사의 영역에서 제외시키고 있는데, 이렇게 된다면 한국사는 시간적으로는 2,000년, 공간적으로 한강 이남에 국한되게 되어 한국사의 근간은 크게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중국은 왜 막대한 예산을 들여 동북공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일까. 먼저, 동북지역의 전략적 가치가 증대함에 따라 이 지역에 대한 역사적 연고권을 주장하려는 것임을 지적할 수 있다. 사전에 이 지역의 역사를 중국사로 공언해 둠으로써 북한의 붕괴나 남북통일 등 향후의 상황 변화에 대비하려는 것이다. 여기에는 통일 한국의 만주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미리 차단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과도기 한반도에 대한 개입 여지를 확보해 두려는 사전 포석일 가능성도 있다.
이와 같은 중국의 동북공정은 향후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아시아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한 전 단계의 정지작업이기도 하다. 현재 세계는 지역 단위로 블록화되어 가고 있으며 동북아 역시 빠른 시일 내에 하나의 권역으로서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게 될 것이다. 다가올 이 시대에 과연 누가 동북아, 동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중국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동북공정을 통하여 조직적인 역사 왜곡을 진행시켜 나가고 있는 것이다
2. 단대공정, 탐원공정 (완료)
1996년 시작돼 2000년 11월9일 완료를 선언한 '거대 중국 만들기' 역사 프로젝트다. 역사학자.고고학자.천문학자 등 각 분야 전문가 200명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5년의 작업을 거쳐 중국 역사학계는 전한시대의 사가 사마천조차 포기해 버린 하.상.주 3대 왕조의 연대를 확정했다. 하왕조는 기원전 2070년에 시작된 것으로 결론 내렸고, 상왕조는 기원전 1600년 무렵에 건국했다는 학설이 만들어졌다. 또 주왕조의 시작은 기원전 1046년으로 각각 설정됐다.
한마디로 단대공정은 현재의 중국 영토 안에서 일어난 모든 문명을 중국의 것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다. 동북공정은 서북공정.서남공정과 함께 단대공정을 지역별로 나눠 구체화하는 일종의 '실행 프로그램'이다. 동북공정의 예를 들면 만주의 고구려 유산을 유네스코에 등재하고 한반도와 이어지는 역사유물은 물론 백두산의 의미까지 지우는 작업 등이다.
중국은 이를 더 강한 이론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2003년 새로운 공정을 추가했다. 바로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 약칭 탐원공정이다. 프로젝트 매듭 연도는 정해져 있지 않지만 과거의 예로 봐서 5개년, 즉 2007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탐원공정은 글자 그대로 '중화문명의 시원을 캐는 계획'으로, 궁극적 지향점은 신화와 전설을 역사 영역으로 포섭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중국'이라는 실체를 무려 1만 년 전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중국 당국은 얼마 전 산시(山西)성 샹펀(襄汾)현 타오쓰마을(陶寺鄕)에서 영국의 스톤헨지보다 건립 연대가 500년이나 앞선 4,100여 년 전의 세계 최고(最古) 천문대가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이 유적이 요순(堯舜)시대의 흔적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 심지어 2002년 중국 후난(湖南)성 융저우(永州)시 닝위안(寧遠)현에서 발굴된 1만 년 전 대형 고분이 순(舜)임금 무덤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 프로젝트가 산시성 샹펀현과 허난(河南)성 신미(新密).덩펑(登封)시 등을 중심으로 시행되는 것은 이곳이 한족(漢族)의 조상인 화하족(華夏族)이 활동했던 지역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와 직접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동북공정은 중국이 국가 차원에서 거대하게 추진하는 '단대공정'과 그것을 계승한 '탐원공정'과 맞물려 있다. 따라서 동북공정에만 매달려서는 중국의 거대한 '자국 역사 키우기' 및 '주변국 역사 지우기'에 대응하기 어렵다. 나무에 매달리다 숲을 보지 못하는 꼴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중국은 한족 중심의 역사를 세우고자 중원 상고사에 대한 연구인 단대공정(하상주연구) 탐원공정(삼황오제시대)을 통해 과거 전설에 불과했던 것을 역사화 하였다. 이는 한족의 고대사 기원연장기도로 중국내 한족의 주도권을 확립하려는 작업이었다.
3. 서북공정 (완료)
신장 위구르족을 대상으로 한 역사 및 지리에 대한 종합연구인 서북공정(西北工程)은 2002년 동북공정과 함께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해에야 겨우 기초과제영역이 선정됐다. 우선 순위에서 동북공정에 밀린 탓이다. 돌궐이라는 명칭으로 역사에 등장하는 위구르족은 투르크메니스탄이라는 혈족 국가를 옆에 두고 있고, 멀리는 터키까지 이어지는 방대한 민족이다. 583년 돌궐은 수나라에 패해 동서 돌궐로 나뉘었고 다시 당나라에 의해 반세기동안 지배를 받았다. 당나라 지배에서 벗어난 위구르족은 돌궐제국을 출범시키는 등 중앙아시아 역사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1755년 청나라 건륭제가 이 지역에서 부족 반란을 진압하면서 돌궐족 영토는 중국에 편입됐다. 중국 영토가 된 지 250년밖에 안 됐기 때문에 지금도 위구르족 일부는 동투르키스탄 개국을 목표로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한나라 시기부터 신장이 월씨(月氏)족, 강(羌)족, 흉노, 한족이 섞여 살던 다민족 지역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가 기원전 60년 신장에 서역도호부(西域都護府)를 설치한 이후 중국 역대 왕조가 신장을 군사정치적으로 관할했다고 소개했다.
중국은 특히 신장의 각 부족은 중국 왕조와 가까운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 왔고 '중화민족 대가정(大家庭)'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위구르는 지금도 외모.언어.문자.종교가 중국과는 전혀 다르다. 1949년 신장에서 위구르족 비율은 76%였으나 2000년엔 59%로 떨어졌다. 중국 정부가 적극 한족의 대량 이주를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사회과학원 산하 "변강사지 연구중심"에서 나온 자료들에 의하면 서북공정은 바로 티벳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관련된 것이다. 다시 말해 동북공정이 고구려사 및 한국의 고대사 왜곡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듯 서북공정 등은 이들 지역 소수민족의 역사왜곡과 연관된 것이다. 그렇지만 동북공정과 서북공정 등은 추진 과정과 주변 반응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서북공정 대상의 민족들은 대부분 주권을 상실했거나 거의 다 중국 영토안에 들어와 있는 민족들이다. 누가 어떻게 반발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서북공정 등 기타 지역에 대한 작업은 이미 마무리돼서 "서역 통사" 등의 책이 나와 있는 상황이다. 그 거짓의 뿌리는 더욱 깊어지게 마련이다.
4. 서남공정 (완료)
티베트의 중국 역사편입은 1986년 서남공정(西南工程)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졌다. 당시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이 서남공정을 직접 지시했다. 작업은 중국 사회과학원 산하 중국장학연구중심(中國藏學硏究中心)이 주도했다.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이 동북공정을 수행하고 있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티베트 연구의 핵심은 한장동원론(漢藏同源論)으로 요약된다. 중국인인 한족(漢族)과 티베트의 장족(藏族)은 문화와 언어의 뿌리가 같다는 주장이다.
중국은 먼저 티베트가 늘 중국의 일부분이었다고 주장했다. 7세기 초 국가를 형성한 이후 원(元)과 청(淸)대를 제외하고는 독립적인 국가를 유지해온 티베트의 역사를 말끔히 지운 셈이다. 당(唐)대 장안(長安.현재의 西安)까지 세력을 넓히면서 중앙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했던 8세기의 티베트 역사도 통째로 빠졌다.
5. 북방공정 (진행)
중국은 1995년 '몽골국통사' 3권을 출판하면서 "몽골의 영토는 중국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몽골공화국이 강하게 반발했지만 "학술활동일 뿐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라는 말로 비켜갔다. 동북공정에 쏠린 한국의 비판을 받아넘기는 수법과 유사하다.
중국이 몽골 역사에 집착하는 것은 몽골이 현재 몽골공화국과 중국의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로 분할돼 있어 언제든지 영토분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포석인 셈이다. 몽골은 청의 멸망을 틈타 1911년 독립을 선언했다. 현재 몽골공화국인 당시의 외몽골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1924년에는 몽골인민공화국의 개국을 선언했다. 네이멍구는 일본의 패퇴 이후 중국이 접수했다. 네이멍구는 1947년 중국의 첫 자치구가 됐다.
6. 남방공정
운남을 비롯한 미얀마, 태국, 베트남 접경지역 관련 공정.,
기원전 208년 중국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남비엣(南越)의 수도는 지금의 광저우(廣州)인 피언응우다. 남비엣은 기원전 196년 중국에 대한 조공관계를 인정했다가 기원전 112년 이를 철회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남비엣의 성격. 베트남은 남비엣이 자주독립 국가였다고 주장하는 반면, 중국은 남방지역에 할거한 지방정권이었다고 역사책에 기술하고 있다. 남비엣 건국 이전, 남비엣 멸망 이후에도 영토 대부분이 중국 영토라는 게 주장의 근거다. 베트남이 나중에라도 광둥(廣東), 광시(廣西)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할 가능성에 대비한 역사적 명분 쌓기의 일환이다.
7. 해양변강 공정 (진행)
첫댓글 초등학생인 홍관군은 이다음에 역사학자가 꼭 될 것 입니다. 이토록 관심이 있다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