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동안 사람들은 온통 영화배우 이은주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창 인기가 오른 인생의 황금기에 돌연히 자살을 선택한 그녀에 대해 사람들은 가슴 아픈 연민과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우울증으로 괴로워했다는 그녀의 죽음에 대해 구구한 억측들이 난무했지만 어쨌든 그녀는 외롭고 힘들었던 것이다.
더구나 겉으로 보기에는 인기도 있고 미모도 있으며 재능도 있는 여배우라는 화려한 간판이 그녀를 더 외롭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은주 같은 여배우가 아니어도 이 세상에는 겉보기와는 달리 정말 외롭고 힘든 이들이 많다.
남들이 보기에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도 그 내면에는 남에게 말 못할 힘든 일을 겪고 있거나 속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서 혼자서 괴로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사람들이 혼자 끙끙대다 우울증에 걸려 결국은 자살까지 이르는 경우들도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다른 사람들과 아픔을 나눌 수 있다면 자살까지 이르지는 않는다. 강남에서 손꼽히는 과외 교사인 A부인은 실력만큼 돈도 많이 버는 성공 인생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자녀는 공부를 열심히 하기는커녕 학교에도 잘 가지 않으려 해서 속을 썩혔다. 학교에 안 갈 뿐만 아니라 반항의 정도가 극심해서 난리를 치다보면 몸싸움까지 하게 되고 그 와중에 아이에게 맞는 일까지 있었다. 그야말로 지옥 같은 날이 계속되면서 그녀의 고통은 극에 달했다. 누구에게 털어놓고 말할 수도 없는 고통이었다. 그녀는 고액 과외교사도 그만 두었고 정말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었다.
이때 그녀가 우연히 알게 된 이가 그녀를 한 모임에 소개했다. 그 모임은 열 명 정도 되는 여성들이 한 주일에 한 번씩 모여 서로 깊은 이야기를 하는 자리였다. 그 이야기들은 사람들이 남에게 털어놓기 싫어하는 이야기들, 가령 남편이 바람 피운 이야기나 아이가 속을 엄청 썩인 이야기, 부도가 나서 망한 이야기, 상처 받은 이야기 등 고통스럽고 힘든 일들이었다.
A부인은 어떤 다른 곳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각자가 자신의 수치스러운 이야기를 드러내며 자신도 치유
받고 이야기를 듣는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결을 받는 자리, 그곳에는 뜨거운 눈물과 기도가 있었다.
세상에서 자기만큼 고통받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A부인은 비로소 고난 받는 이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서서히 고통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지금 그녀는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힘든 일들이 자기처럼 고난을 당하는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약재료가 된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런 파도 없이 잔잔한 인생만을 살아온 사람은 결코 어려움을 겪는 다른 이들을 도울 수가 없다. 해줄 말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고난의 깊이만큼 성숙해진다. 그런데 고난을 겪어도 자기 자신을 성찰할 줄 모르고 그저 원망과 불평만을 늘어놓으며 아무런 내적 성장도 이루지 못하는 이들이 간혹 있다. 고난이 약이 되지 못하는 이런 사람들은 정말 안타깝게도 헛고생하고 있는 것이다.
성격 파탄자에 가까운 남편과 몇 십 년을 살면서 수천 번도 더 이혼을 생각했던 B부인은 요즘 다른 사람들을 상담해 주는 일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남편으로 인해 그녀가 받았던 무수한 상처는 마음과 몸에 깊은 흉터를 남겼지만 이제 더는 한숨과 슬픔으로 지내지 않는다. 그녀 역시 자신의 그 동안의 고통이 남을 위한 약재료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더 이상은 살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적 상황으로 느껴져도 그건 결코 생을 포기할 만한 일이 아니다. 나중에 돌아보면 그건 삶이 성장해 가는 고비고비일 뿐이다. 그래서 이은주의 죽음은 우리를 더 안타깝게 한다. 그녀의 문제가 무엇이었던 간에 죽음은 도피지 해결이 아니다.
디스코 음악의 여왕이었던 티나 터너는 무대에서는 빛나는 스타였지만 사생활에서는 폭력적인 남편에게 무수히 두들겨 맞는 눈물의 아내였다. 구타와 마약과 절망의 터널을 지나면서 그녀가 겪은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불행에 패배하지 않았고 승리해서 많은 이들에게 힘을 주는 여성이 된 것이다.
오늘이 힘들어도 절망하지 말자.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은 남편에게 버림받은 뒤 폐허가 된 집 앞에서 주먹을 쥐고 일어서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
첫댓글 전 이 대사가 가장 맘에 들어요.."그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존경합니다. 스칼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