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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제 공동체/수도원(Taize Community)순례기
1997년 4월 11일 Geneva에서 오후4시에 출발하여 Lyon을 거쳐 Macon에서 나와 Cluny로 향했다. 도로표시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Macon에서 한 번 길을 잘못들었고, Cluny로 빠져야 하는데, Cluny를 10여km 지나쳐 되돌아 와야만 했다. 표시를 좀 더 친절히 해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
밤 10시 20분에야 Taize 수도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Taize 수도원에 도착해 보니 의외로 많은 청소년들이 모여들었다. 대형 버스들이 와있다.
1년에 30여만명이, 특히 젊은이들이 모여 온다고 한다. 무엇이 저들을 끌어당기는 것일까? 누구도 안내, Control하지 않는다. 도로비도 받지 않고, 주차비도 없다. 빈자리에 주차하고, 취침했다.
4월 12일 Taize 수도원에서
처음 발견한 특징은 Taize 수도원 공동체가 수수하고, 소박, 검소하다는 것이다. 교회도 아주 검소하게 지었다. 바닥은 값싼 수지 Teppich다. 의자도 없다. 더러 깔고 앉는 목침 비슷한 것이 있을 뿐이다. 장식도 거의 없다. 작년 12월 쯤 KBS에서 보여준 교회 그대로다.
밤 11시경에 와봤더니 3-400평 정도의 교회 안에 드문드문 주로 청년 남녀가 앉아 있다. 누구도 인도하는 사람은 없고, 아무나 그레고리 성가 같은 음률의 찬송을 시작하면 조용히 따라부르고, 하나가 끝이 나면, 또 다른 사람이 어디선가 또 시작하고, 하는 식이다. 그 조용한 중세적인 음률이 아주 좋았다. 더러는 기도 명상하고 더러는 별 생각 없이 앉아 있는 것 같다. 이 분위기를 즐기는 눈치다. 유럽의 호화롭고 깨끗한 교회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한 교회인데, 그런 교회는 안가고 이리로 모여 오는 것이다. 추운 4월이라 별로 사람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왔는데, 1000여명, 아니면 2-3000명은 족히 되지 않는지 모르겠다. 주로 젊은이 들이다. 이들을 끌어들이고 모으는 힘은 과연 그 무엇이란 말인가? 더러는 교회 안에서 연인끼리 껴안고 있기도 하지만, 그누구도 간섭하거나 말리는 사람도 없다.
테제 공동체 기도예배의 한 장면
교회 가운데 좌석은 수사들 자리다. 강단은 붉은 천을 예술적으로 걸어 놓았다. 강단 밑 오른쪽 앞에 J상(이코네)이 서 있을 뿐 나머지는 교회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다. 지금은 4월 12일 아침 8시15분 예배시간이다. 5분전인데도 맨 뒤 좌석까지 사람들이 거의 꽉 차 있다.
모이라는 종소리도 없다. 여기 저기에 Stille/Silence라는 푯말들이 있고, 참여자들 가운데 자원 봉사자들이 들고 서 있다. 8시 15분이 되니 비로소 종소리가 들린다. 독일에서 듣던 종소리다.
한국의 기도원이나 교회의 철야기도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목소리 높여 기도하는 사람도 없고, 무릎 꿇고 소리없이 조용히 기도할 뿐이다. 그 누가 앞에서 찬송을 인도하는 사람도 없거니와 목청 것 함께 찬송하는 일도 없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가 오히려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것같다.
두 번째 특징은 자유롭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엊저녁 Taize 수도원 분위기를 보고 즉감적으로 느낀 것이다. 누구도 간섭하지 않고, 자율에 맡기고, 각자가 자기 하고싶은대로 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도하고 싶으면 기도할 수 있고, 찬송하고 싶으면 찬송할 수 있고, 자고 싶으면 잠자도 되고, 교회 바닥에 엎드려서 자거나, 누워서 잠잘 수도 있다.
밖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서 그룹으로 Taize 찬송가를 합창하기도 하고, 모든 것들이 자유요. 자율적이다. 이것이 타율에 얽매였던 사람들에게 매력을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8시 20분이 되어서야 수사들이 들어온다. 바닥에 의자 없이 앉는 것이 습관화 되어있지 않는 서구인들이 모두 맨바닥에 앉아 있다. 이것도 보기 드문 광경이다. 수사들은 흰옷이다.
또 다른 특징은 종파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입구 광고에 Kaih, Reformierte Kizche 사람들이 함께 하자는 말을 보았을 뿐이다. 아마도 끼리끼리 모이는가 보다. 입구에 성수(水)도 있다.
8시 25분이 되자 오르간 반주로 Taize 성가가 시작되었는데, 수사가 선창하고 모두다 따라서 찬양을 했다. 할렐루야 !
내가 이 광경을 목격하고 느낀 점은 젊은이들이 텅빈 가슴의 공허감을 견디지 못해 그것을 채우려고 왔다고 생각되어 그 감동으로 눈시울이 젖어 오는 것을 느꼈다.
순서에 따라 모인사람들 전체가 뒤로 돌아앉아서 수사가 성서를 낭독했다. 왜 뒤로 돌아 앉아야 하는것일까? 아마도 앞선자가 맨 꽁무니도 될 수가 있고, 맨 뒤의 사람이 선두주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또 다시 뒤돌아 정면을 향한다. 수사는 영어로 스페인어로 독일어로 성서를 낭독한다. 찬송하는 젊은이들을 보니, 현대의 그 어떤 부와 오락으로도 텅빈 가슴을 채울 수 없어 이곳을 찾아왔다고 생각되어 또 다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기존 교회는 무엇을 하기에 청년들의 공허한 가슴을 달래 줄 수도 없었단 말인가?
모두다 자막에 의해서 진행되어가고 있다. 묵상기도 시간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이것 또한 자유다, 기도하고 싶은 사람은 기도하고, 심지어는 두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앉아 있는 사람들도 있다.
주님 ! 저들은 주님의 사랑에 굶주려 있습니다. 기존교회는 그 큰 사랑을 채워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가슴이 텅빈 사람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채워 줄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이제 제2종교개혁연구소를 통하여 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예수의 사랑을 채워주고, 갈급한 사람들에게 생수와 같은 은혜의 단비를 내려 주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기 위해 이렇게 온몸으로 느끼게 하시고, 감동을 주시는 것이옵니까? 이제 이 큰 사명 감당하게 하시고, 더 큰 은혜 내려주실 것을 믿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
테제수도원의 예배야 말로 텅빈가슴과 공허감으로 가득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어주고, 채워 줄수 있기에 이곳에 무리지어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교회들이 못한 일들을 이 테제수도원이 감당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난방장치도 없는 곳, 이 곳을 입추의 여지도 없이 들어와서 온몸으로 주님의 사랑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8시 45분이 되니, Gloria 찬송을 부르며 성찬식이 거행되어 수사들이 떡과 포도주를 들고 여기저기 신속하게 나누어주는데, 떡 한 개를 포도주에 찍어 먹는데 2-3천명이 단 5분안에
끝이 났다. 참으로 신속한 동작들이다.
이어지는 예배는 라틴어 영어 독어 불어등 모두 쉽게 부를 수 있는 키타반주 멜로디로 성가를 계속해서 함께 부르고, 설교는 없지만,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는지 은혜의 물결이다.
9시에 예배가 모두 끝이나서 수사들도 퇴장하고,10여명의 어린이와 함께 모두들 퇴장했는데, 순서에 의해서 아무말도 없이 진행되어가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엊저녁에 몇번이나 헤매고 비싼 통행료(45DM)를 내고 올 때는 후회도 많았지만, Taize 수도원의 감명 깊은 은혜의 사역을 통하여 사명감을 더욱 더 느끼게 되어 오히려 잘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개신교와 다른 점이 있다면, 설교가 없다는 점, 그리고 순서에 의해서 아무말 없이 예배가 진행되고 있다는점, 자유로운 분위기가 있다는점 등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형식에 얽메이기 싫어하는 젊은이들에게 만족을 준다는 사실이다.
찬송은 독일어로 부르는데, 이를 따라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봐서 독일인이 대부분인 것 같다.
9시 30분 식사시간을 알리는 전광판 안내가 있었다. 아침 식사는 무료란다. 점심, 저녁은 식권을 사야하지만, 돈이 없는 사람은 신청에 의해서 그냥 먹어도 된다고 한다. 의자도 없는 맨 바닥에 무릎을 꿇는 사람들 ! 독일, 스위스 교회들은 텅텅 비어가며 문 닫는 교회도 부지기수인데, 왜 이 곳 Taize 수도원은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 모여드는 것일까?
0시 30분은 식사시간이 아니고, 여기서 발행한 Gesunge aus Taize에 있는 성가를 맨 앞에 있는 자원봉사자나 참여자가 마이크를 들고 선창을 한다. 앞 왼쪽에 성모 마리아상이 카톨릭 분위기를 연출하는 듯 하는데, 이는 카톨릭 신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KBS에서 방송한 적이 있다.
재단에 있는 수많은 촛불들은 빛되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오전 9시에 아침식사를 했는데, 빵 한쪽에 코코아 차이다. 자기가 먹을 수 있을만큼 자유롭게 무료로 급식하고 있었다.
테제 공동체
종탑에는 종이 다섯 개가 있는데, 종탑은 Schlidt한 목조로 되어있다. 크고 작은 나무집들은 아마 숙소로 사용되고 있는 듯 하다.
오전 10시에 성경공부 시간이다. 여러 그룹으로 나눠 수사들이 인도하는데, 영어(독일어 통역) 그룹에 참여해서 복음서 Text를 읽고, 수사가 해석 설명했는데, 부활후 예수님이 만난 마리아 이야기로 주제가 되었다. 교회안에 칸막이를 설치해서 강의하는데, 참여자는 자유롭게 듣는다. 심지어는 누워서 편하게 들어도 되도록 한 것이다.
식사 시간에 내가 만난 독일 학생은 독일 Bonn 근방 Meckenheim에서 왔단다. Taize에는 4년전에 왔었는데, 또 왔다고 한다. 그는 Schweigen 시간을 여기서 처음 경험 했다고 한다. 분위기가 기존교회와 다르기 때문에 또 왔다고 했다. 예수님을 좀더 가까이서 만나기 위해서 왔다고 한다. 모든 분위기가 좋아서 더러는 단체로 오기도 한다고 했다.
성경공부 시간이 끝나고 비디오 감상시간인데, 우리는 바쁜 일정이기에 그냥 나올 수 밖에 없다. 젊은이들은 그렇게 Simple한 노래와 반복하는 노래가 좋았다고 한다. 맨바닥에 그냥 앉아 있어도 좋단다. 무엇이 그렇게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함께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일까?
Taize 수도원 원장은 1940년 35세의 나이로 인적이 드문 Taize에 정착해서 주로 내면생활과 이웃과 나누는 삶을 목적으로 헌금도 받지 않고, 성경공부도 단순하게 진행하는 것을 특색으로, 1959년에는 청소년을 위한 집을 지어 운영해 왔다고 한다.
이 곳 Taize 수도원은 Stille가 주 목적이다. 왜냐 하면 예수님은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큰 목소리로 기도한다고, 응답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론이다. 우리 안에 계신 주님과 소통하는 것이 Taize 수도원의 목적이요, 고난 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특색이다.
테제수도원 공동체 지도
Taize 수도원은 London 에 19000명의 신도 뿐만 아니라 인도 독일 마닐라 파리 로마 등등 모든 종교 종파 인종을 초월해서 사역하고 있다. 1986년에는 로마 교황이 방문하기도 했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Taize 수도원 !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흡사 한국 불교의 참선을 하는 것같은 의식 속에서 설교도 생략한다기 보다는 화두를 던지듯 짦게 한다.
사람들은 묻는다. 하나님은 전능하신데, 왜 세상을 이런 것이냐고,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최선을 다하고 계시지 않는가?
돌이켜 보면 오늘날 모든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 의식은 쓸데 없는 군더더기 형식적인 부분들이 많다. 이곳은 꼭 필요한 절차로 진행되고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이 곳에서 부르는 성가는 배우지 않고도 금방 따라 할 수 있어서 좋다. 주로 라틴어이지만 1-2소절 짧은 성가를 10번이고 20번이고 반복해서 부르기 때문이다. 예배도 한시간은 넘기지 않고 짧게 끝이 났다. 아마도 40분에서 50분 사이가 아닌가 한다. 결국 지루하지 않아서
좋았다.
성가집에 실린 “Du legst den glauben in die Tiefe unser seele" 이 말은 앞에서 본 Vido에서도 반복해서 말했다. Roger는 이런 확신에서 인간적인 수단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단순하게 찬송하고,침묵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그 믿음이 싹터 나오도록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사역이 성공적이다.
한국의 모든 교회들은 믿음을 강요하고, 인위적인 수단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숨가쁘게 불러야 하는 찬송가 소리, 부흥회의 통성기도, 안수기도, 무리한 철야 집회까지 감행해서 성과를 올리고는 있지만, 수많은 부작용 속에 이루어 지고 있는 것들이 아닌가 말이다.
외부의 자극으로만 길들여진, 의존적인 신앙인, 성숙하지 못한 신앙인, 부자연 스러운 신앙심 ! 비현실적인 천박하기 짝이 없는 신앙인을 양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F Roger는 자기 자신을 가능한 한 나타내지 않는데 반해,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자신을 들어내기에 급급한 한국의 목사들, 그리고 나 자신도 그렇게 휩쓸려 살아왔구나! 하고 반성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모든 예배의 중심은 하나님이어야만 한다. 예수님이 나타나야 한다. 인간의 그늘에 가려 하나님도 예수님도 실종되어가는 현실앞에 제2종교개혁연구소를 통하여 주님이 주인이 되는 교회로 개혁해나가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소서 !
칼빈은 자신을 들어내고 자신이 숭배의 대상이 될까봐 무덤도 쓰지 말라고 했다지 않는가? 결국 비밀 매장했지만, J.C 이니셜로 찾아내어 칼빈의 뜻이 담긴 표지판을 세우고서야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Taize 수도원의 특징은 헌금강요가 없다는 것이다. 숙식도 무료이다. 모든 비용은 수사들이 작업을 해서 조달하는 방식이다. 한국교회가 헌금을 강요하고 그 헌금으로 교회를 대형화하는데 급급한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만 하는가?
Taize 수도원의 건물은 수사들이 직접 지었는데, 초교파적이고, 인종과 종파를 뛰어넘는 설계로 지어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성당은 으례히 성모마리아상이 있도, 교회는 높은 십자가 탑이 있어야 교회 구실을 하는 것과는 현저하게 다르게 설계 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고 확신을 주는 것 같다.
돌이켜 보면,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의 싹은 사람이 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르신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자신의 목소리로 인위적인 방법을 총동원하고, 결국은 부작용을 남기고 만다. 이제 이런 방식은 없어져야만 한다.
예배의식도 개혁이 필요하다. 틀에 얽매인 순서에 의해서 드려야 하는 한국교회의 예배 실태가 아닌가 말이다. Taize 수도원처럼 그렇게 형식을 과감하게 탈피해서 드려지는 예배야 말로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하나님을 나타내는 예배가 아니겠는가 ?
나는 젊은 시절 믿음의 초기때, 시골교회 부흥회 분위기 속에서 자랐기에 으례히 예배라 하면 박수치고 찬송하고 통성으로 기도해야 적성이 풀리는 예배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 뒤늦게나마 Taize 수도원 사역을 통하여 어색하고 또 인위적인 방법이 아닌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예배야 말로 우리들의 신앙의 싹을 꽃피우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제 제2종교개혁연구소를 통하여 이 모든 형식에 얽매인 것을을 과감하게 탈피해 나가야만 하리라 굳게 다짐해본다.
한국의 어느 교회 어느 유명한 부흥사가 Roger 만큼 세계적으로 믿음의 싹을 꽃피우게 하였던가? 그는 그렇게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도 인위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도, 그렇게 성공적인 사역을 감당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나타나게 인도함으로써, 성공적인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를 도운 사람은 인간이 아니요. 오로지 하나님이시요 !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도 그렇게 모든 사역을 하나님께 맡겨야만 한다. 예수님이 주인이 되도록 해야만 하리라.
오늘날 한국교회의 거듭나는 사역은 하나님 몫인데도 마치 인간이 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역을 인간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모든 치유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역을 마치 부흥사나 목회자 자신이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자신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은혜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Taize 수도원은 청소 설거지 식사당번 등등 모두다 자율적으로 자원봉사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예배의식도 아마 중세 초대교회에서 행해지던 것과 같다. 성가라던가 묵상이 주로 이루어지는 것, 수사들의 복장에 이르기 까지 중세풍인데 거기에 현대적인 것이 가미되어 더욱 더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설교는 되도록이면 생략하고, 화두를 던지듯 짧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것이 전통적인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왜냐 하면, 예수님께서도 많은 비유와 교훈으로 가르치셨고, 사도 바울도 그랬고, 칼빈 말틴 루터 등 종교개혁자들의 신학도 말씀의 신학을 부르짖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살아 역사하시는 말씀으로, 또 생명력 있는 말씀으로 사역을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인간적이고 인위적인 것들을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신앙의 싹을 꽃피우기 위해서는 계란의 껍데기가 깨어져야 병아리가 나오는 것처럼 제2종교개혁연구소를 통하여, 개혁해 나가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장경선 수사와의 대담 내용으로 본다면 이 곳 Taize 수도원의 재정은 수사공동체로 운영되고 있으며, 등록비 식비가 저렴하다는 것이 특색이다.
Taize 수도원 원장 Roger는 스위스 개혁교회 출신으로 독일 Bonn, Geneve 등에서 신학공부를 했고, 자신의 할머니께서 1차대전 때 많은 부녀자들을 돕고, 개신교 출신이시면서도 천주교 성당에 가서 기도하시는 것을 보았고, 교회가 종파적으로 갈라지는 아픔을 겪으면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다 가신 할머니의 영향으로 평온한 스위스 보다는 패전한 프랑스에서 고통받는 사람들과 살고파서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제네바에서 200km나 떨어진 이곳에 자전거를 타고 와서 정착하게 되었다. 목사님이셨던 아버지께서는 극구 반대했지만, 할머니의 뜻을 따라 이 곳에 정착해서 혼자 자립하겠다고 다짐하며 전쟁 접경구역인 이곳에 많은 소외되고, 고난 받는 사람들에게 헌신적인 삶을 살고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인적이 드문 이곳까지 전쟁 후에 몇몇 친구가 절친한 친구 막스 투리안과 함께 이곳을 찾아오기도 했단다.
처음에는 땅을 사서 농사를 시작했다. 가축도 기르고, “개신교 공동체”라는 팻말을 걸고 기도하며, 많은 사람들이 모여오면, 강연도 해서 개신교처럼 운영하다가, 수도원 전통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데, 성공했다.
맨처음 수사는 7명을 임명했고, 처음에는 1년동안 시험삼아 생활하려고 했던 것이 1949년도에 종신으로 헌신할 것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당연히 초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때로는 굶기도 하고, 의사였던 직업특색을 살려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광산도 해보고, 도자기를 굽기도 했는데, 지금까지 생존해 계신 분은 나이가 80세이시다.
현재는 모든 교파와 인종을 초월한 수사가 100여명을 넘게 되었고, 그가운데는 한국인 수사도 3명이나 포함되어 있다.
MBC에서 전하는 기사에 의하면, 불란서 교회들은 텅텅 비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런대도 젊은이들이 저렴하게 운영하는 이곳을 찾아올수 있도록 개방해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곳을 찾아오고 있지 않는가?
수사들이 Taize 수도원 인근각지를 다니며, 문제아들을 상담 지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청년들이 편하고 자유스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젊은 사람들을 배려한 까닭에 그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이 곳을 찾아 자신의 문제점에 대한 해답을 얻고 돌아갈 수 있어서 더욱 더 이곳이 활성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Taize 수도원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정리 한다면, Taize 수도원은 삶의 모델을 제시 하지 않는다. 하나의 경직된 모델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모델을 통하여 개방한다는 의미이다. 중요한 것은 성령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성령이 너희 안에 조금이라도 있으면, 이는 희망이다”하고 Roger는 기도한다. 수사규율은 첫째로 공동기도 때는 참여해야 한다. 둘째는 독신을 유지 하라는 것이다. 셋째는 의결사항에 순복하고 따르라는 것이 주된 규율이다.
Roger는 자기 자신을 낮추기 위해 수도원 원장이라는 칭호도 거부한다. 그냥 수사라고만 불러주기를 바랄 뿐이다.
비용을 쓰다 보면 적자도 발생하는데, 적자 부분만 기부금 형식으로 충당하는 것 같다. 적자 부분외에는 기부금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 특색이다.
Taize 수도원의 음악은 묵상을 하기 위한 음악이기 때문에 조용하고 감미로운 음악이다. 일부는 Bach 등에서 가져오고, 대부분은 Taize 수도원에서 수사와 외부 작곡자들에 의해 작곡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비로소 Taize 수도원을 떠날 시간이 되었다. 우리가 춥다고 하니 장경선 수사가 담요 두장을 주어서 가지고 간다. 이제 추위는 면할 수 있을 것 같다. 눈물나게 감사한 일이다. Taize 수도원의 번영과 축복을 기도한다. 가다가 보니 졸려서 Lyon을 약 20여km 지난 휴게소에 들러 밤 10시에 한 숨 자고, 4월 13일 주일날 새벽 4시 50분에 Torino를 향해 출발했다. 감동과 은혜의 동산 Taize 수도원을 뒤로 하고 아쉬움을 남긴체, ... ...
Taize 수도원을 떠나 Torino로 향하면서도 테제 수도원의 생각들이 맴돌고 있다. 그렇게 내 생각을 떠나지 않는 것은 Taize에서 느낀 감동의 파노라마 때문일 것이다.
1. Taize는 Eigencapital(재산)을 갖지 않는다는 문구가 있었다 (팜플랫)그들은 세계적인 명성을 이용해서 후원금/헌금을 끌어 모을만도 한데, 그들은 이런 일은 일부러 피하고, 받지 않는다고 공언하고, 써붙여 놓고 있다. 다만, 청소년을 위한, 가난해서 집회에 참석해도 자기 식비, 교통비를 낼 수 없는 청소년들의 몫을 대신 내 주는 경우에만 그 범위 내에서만, 후원금을 받겠다고 쓰여 있었다.
참으로 양심적이고 가슴이 맑은 모습을 여기서 보았다. 한국교회의 집회를 생각해 본다. 집회 때마다 등록비라고 해서 몽땅 받아 치부하고, 헌금 바구니를 돌려 돈을 버는 한국교회, 교회 가자고 하면 "헌금 낼 돈이 없다." 고 거절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데, 이는 결국 헌금이 전도에 장애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교회는 헌금을 강요하고, 헌금주머니를 돌려 처음 교회에 나온 사람들을 당황케 하는 풍습/악습/병폐를 고쳐야 한국교회가 산다. 헌금이 많이 들어와 여러 가지 선교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단기적으로는 유익/ 도움이 될 수 있을런지는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마이너스다. 한국 교회의 오늘의 정체/ 퇴보가 이를 말해준다. 그 반대의 경우를 Taeze가 보여 준다. Taize는 헌금할 기회를 일체 주지 않는다. 아니 헌금을 하겠다고 해도 안 받는다. - 어디에도 헌금통, 헌금 바구니를 볼 수 없다. 등록비도 자기가 먹을 만큼만 내면 된다.
그것도 가장 싼 값으로 계산해서 ! 그것도 없으면 공짜로 먹고 잘 수 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유럽) 힛치 하이킹을 해서라도 이리로 와서 마음껏 쉬고, 먹고 기도하고 명상하고 간다. 우리 한국교회가 배울 만한 부분이다. 앞으로 온계레 교회의 헌금바구니도 일체 없애고 헌금 광고도 안해야 겠다.
2. Taize는 헌금을 거둬 들이기 보다는 자기들이 노동을 해서 돈 없는 청소년들을 먹여준다. 식사는 마음껏 먹도록 허용되어 있다. 단 남기지 말라는 주의 사항은 있다. 젊은이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오기만 하면, 원하는 대로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것이 Roger 원장의 배려란다. 젊은이들을 사랑해서 ! 참으로 귀한 일이다. 젊은이들은 여기서 공짜를 경험할 수 있다.
세상 어디 가도 이런 공짜가 없는데, 여기서 공짜를 겅험하고, 사랑을 경험한다 그들 생애에서 아마 거의 유일한 경험일 것이다. 그들은 그 공짜 배후에 있는 수사들의 노동과 희생, 사랑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이런 사랑의 봉사자가 될 것을 각오하게 될 것이다. 이런 각오/ 결단이 그들의 자원봉사/ 공짜 봉사로 나타난다.
누구도 설겆이, 변소, 마당 청소, 등록 , 기타 봉사를 하라고 강요하는 것같지 않다. 그런데 그들은 그 일을 기꺼이 하고 있다. 좋은 경험일 것이다. 그들은 그동안 그런 일을 거의 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 경험을 여기서 해보는 것이다. 이렇게 봉사자들이 거의 모든 일을 다 해주니 별도로 인건비를 들일 필요가 없으니 Taize 운영에 비용 절감이 되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오기전에, 일년에 30여만명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설과 운영위원이 필요하고, 그 운영 비용은 엄청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한 비용은 거의 들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여기서 유럽에서는, 아니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것들 가운데 가장 친절한 것을 경험 하였다. 어느 사무실에 들어가서 두리번 거리고 있으면 "What can I halp you?" 하고 자청해서 도와 주겠다고 나선다. 우리가 Taize를 알고 싶다고 했더니, (우리가 장수사를 만나기로 약속한 다음에도), 스위스에서 자주 온다는 한 청년은 Video를 보면, 도움이 될거라면서 장소를 옮겨가면서 까지 우리를 따라와서 결국 우리만을 위해 특별히 Video를 틀어 주었다.
보통으로는 상영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그 때만 단체로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우리가 오후에 떠나고, 시간이 없다니까 이렇게 특별 배려를 해준 것이다. 또 Sweden에서 왔다는 청년은 우리가 일과를 몰라서 물으니까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우리가 잘 알았다고 하니까, 계속 옆에 서 있으면서 또 도와드릴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수사들도 젊은이들이 원하면 언제라도 시간을 내서 상담해 준다고 한다. 장수사도 우리의 형편을 듣고는 담요를 두장이나 자원해서 마련해 주지 않았던가?
이런 친절은 이 곳 분위기에서 오는 것 같다. 아니 다른 사람에게서 제일 먼저는 로제 원장일 것이고 , 그 다음은 수사, - 그리고 이들의 친절을 경험한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그 친절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 친절의 연쇄 반응이다. 음악, 이곳의 음악은 독특하다. 나는 처음에 들으면서 Anegorian Hymn인줄 알았는데, (그런 분위기다.) 대부분이 여기서 직접 작곡하거나, 작곡가에게 의뢰해서 작곡한 것이란다. 멜로디가 단순하고, 10번 - 20번 반복해서 부르도록 되어 있어서 명상에 아주 좋은 음악이란다. 모두다 금방 배우고, 즉석에서도 금방 따라 부를 수 있다.
금방 친숙해 진다. Pop을 부르는 그들이 Taize의 멜로디를 좋아한다. 이 성가는 명상하기에 좋은 조용한 음악이다. 이 음악이 이 젊은이들을 순화시키는 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것이다.
낡은 집 - 수사들의 집은 아주 오래된 작은 집이다. 나는 세계적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시설이 상당히 고급으로 잘 되어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테제수도원의 소박한 숙소
돈을 들였다는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상당부분 수사들 자신이 서투른 솜씨로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할 정도로 투박하고 검소해 보였다. 벽의 금 가리게는 나무 (대패밥) 껍질을 그대로 씌워 놓을 정도였다. 그렇게 투박하고 소박했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광택나는 도시문화(깔끔하고 먼지 하나 없는 도시 문화, 차갑고 인간미라고는 찾아 볼 수도 없는)에 익숙한 젊은이들에게는 전혀 맞을 것 같지 않은데, 오히려 젊은이들은 이 먼지나는 Taize의 환경을 좋아하는 것이다.
테제공동체의 아침식사
바람 불고 먼지나는 야외에서 그들은 식사를 하며 웃고 떠든다. 그런 의자 없는 방바닥에 앉는 것을 즐긴다. 하나님은 인간을 흙으로 만드시고 흙을 먹고 살도록 하셨는데, 도시화로 흙과 너무나 거리가 먼 생활을 인간들은 하고 있다. Taize는 바로 이 흙과 다시금 가까워지게 하고 있고, 젊은이들은 흙으로 다시 돌아가고, 흙과 가까워지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Jesus + 성령 로제 수사는 기독교의 교리가 서로 싸우는 것 (Kath - 개신교파)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 그의 최초의 목적이었다고 한다. 그 원칙은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강조, 주안점이 청소년 선도에로 이동되어 진행되고 있다. 초교파적이면서도 그는 종교다원주의자는 아니고, 철저히 예수와 성령을 강조하는 수사다. 마리아 테레사 수녀와도 같다.
가난한 자 젊은 이들을 위하면서도, 테레사 수녀는 그들에게서 Jesus의 얼굴을 본다고 하면서도, J.X에 대한 숭앙과 신앙은 철두철미하다. 그래서 둘이는 서로 통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테레사 수녀가 이 곳을 방문한 모양이다. 여기에 교황도 오고 UN사무총장(케이야르)도 방문해서 격려했다.
이제 Torino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결 더 가볍다. 더 큰 감동과 사랑을 기대하면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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