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스라엘 사람 혜인 선생님의 발자취
혜인 국희종 선생님 7주기를 추모하기 위하여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순창군 복흥면 기념교회를 찾아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내장산 입구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한 다음, 굽이굽이 감돌아 들어가는 장엄한 산세와 빼어난 경치를 목도하고, 내장산이 단풍만 유명한 줄 알았는데 신록이 우거진 초여름 풍경이 이렇게 아름다운지는 예전에 미처 몰랐습니다.
이렇듯 웅대한 내장산의 비경(秘景)을 바라보면서 저는 시편 121편 말씀으로써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하신 솜씨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치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란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혜인 선생님께서 복흥지역을 중심으로 의료선교활동을 하시던 초기에는 하루에 버스가 1대 정도 밖에 다니지 않을 정도로 교통사정이 나빴다는데, 이 험한 산길을 끝없이 왕래하셨던 선생님의 발자취는 이사야서 52:7절 이하의 말씀에 꼭 맞는 말씀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제 소개를 잠시 드리면, 저는 지금 용산미군기지 이전으로 한창 들끓고 있는 경기도 평택시 포승면사무소에서 민원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최병주(崔柄珠)라는 구도자입니다.
제가 소속하고 있는 평택시는 경기도 최남단에 있는 인구 39만 명의 시인데, 평택항과 서해대교, 해군2함대사령부, 평택엘엔지 인수기지, 한전평택화력발전소, 그리고 208만평에 이르는 포승국가산업단지가 모두 우리 포승면에 있고, 환황해권 국제무역물류도시로 한창 발돋움하고 있는 곳입니다.
저는 혜인(惠仁) 국희종 선생님을 생전에 단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으로 작년 정월부터 서울 천우회 모임에 출석한 뒤에 선생님의 존재를 깊이 인식하게 된 사람입니다.
평생을 주의 복음을 위하여 한 손에는 청진기를 드시고, 한 손에는 성경을 드셨던, 우리 시대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시자 참 이스라엘 사람 나다나엘 같은 분이신 혜인 국희종 선생님의 제7주기를 추모하는 이 뜻 깊은 자리에 주님의 의를 힘입어 감히 서게 된 것을 매우 뜻 깊게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혜인 선생님 선생님의 피땀과 젊음이 오롯이 간직되어 있는 이 유서 깊은 곳에서, 선생님의 소천 제7주기 추모행사를 위하여 운집(雲集)해 주신 여러분을 모시고 선생님과 저와의 특별한 인연에 관해서 말씀드리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는 선생님의 신앙문집에서 선생님의 이력(履歷)을 살펴보던 중에 선생님과 저 사이에는 특별한 인연이 무지개처럼 곱게 닿아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입니다.
첫 번째는 선생님의 초기 5년간의 의료선교 사업지가 제 고향 바로 인근이라는 사실입니다.
선생님께서는 6 ․ 25 사변이 한창이던 1951년 1월 15일에 영등포 발 마지막 열차로 부산에 피난하신 뒤, 경남 동래군 장안면에서 진료반장으로 무의촌 진료사업에 종사하셨습니다.
또 진료반이 해체된 1952년 3월에는 이곳에서 영생의원(永生醫院)을 개원하셨고, 1953년 1월 19일에 해군 군의학교에 입교하신 후에 1953년 3월 6일부터 1955년 3월까지 진해 해군병원에서 근무하셨다는 기록을 확인하고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장안면은 선생님께서 계실 당시에는 경남 동래군에 속해 있었으나, 행정구역 개편으로 지역 일부가 부산직할시 동래구로 편입되면서 동래군이 해체된 뒤에는 양산군에 속했던 면으로서, 부근에는 유명한 양산 통도사가 있고, 지금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입니다.
저는 1952년생으로서, 옛날 인도(印度) 아유타국의 허황옥(허수로왕비) 공주가 가야국 시조인 김수로왕을 만나기 위하여 인도에서 돌배를 타고 와서 내린 포구라고 해서 임금주자, 갯포자 주포(主浦)라는 지명이 붙은 경남 진해시 웅동2동 안의 작은 산골 마을 외할머니댁에서 태어났습니다.
이곳은 현재 부산․진해 신항만과 녹산국가산업단지, 르노삼성자동차공장을 관할하는 부산․진해경제특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저는 여섯 살 때인 1957년에 이웃마을인 부산광역시 강서구 송정동으로 이사 왔는데, 장안읍과 마찬가지로 부산광역시에 속해 있습니다.
이처럼 혜인 선생님께서 초기 의료시업을 하셨던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과, 의무장교로 입대하신 해군군의학교와 해군병원이 위치한 진해시 모두 제 고향이니 선생님과 저의 인연이 보통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제가 태어나기 한 해 전인 1951년 1월부터 1955년 3월까지 저와 같은 땅에서 함께 호흡하시며 사셨다는 사실을 그 당시에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에 이 일을 계획하셔서 먼 훗날에 선생님과 저를 믿음의 끈으로 연결해 주셨다고 생각하니 한없는 감격이 제 가슴에 북받쳐 오름을 느낍니다.
다만, 한 가지 애석한 점은 혜인 선생님께서는 제가 살고 있는 경기도 평택에서 양돈을 크게 경영하고 계시는 애제자 박동래 형제님의 신애농원에서 여덟 달 동안이나 사모님과 함께 농사일도 하시고, 주일성서공부모임도 가지셨다는데, 저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해서 선생님의 말씀을 육성으로 듣지 못한 점이 두고두고 아쉽기만 합니다.
두 번째 인연은 선생님께서 소령으로 진급하신 1957년 5월부터 퇴역하신 1959년 8월 31일까지 의무중대장으로 복무하셨던 포항 해병대 제1상륙사단에서 저도 복무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부친의 6․25 참전으로 난리 통에 출생신고가 2년 늦어져서 병역을 필하기 위해서 1973년 7월 2일에 가수 나훈아와 같은 기수인 공군 병 235기로 지원 입대하였습니다.
대전에 있던 공군교육사령부 항공병학교와 통신전자학교를 수료한 후, 김포비행장의 헌병대대 군견반에서‘아이크’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군견을 이끌고 4개월 동안 대통령 전용비행기 주기장(駐機場) 경비근무를 마친 다음, 일제시대 훈련소가 있던 제주도 모슬포 기상대와 김해국제공항 기상대를 거쳐, 1976년 11월에 포항 해병 제1상륙사단 공군기상파견대로 전속을 가서 그 곳에서 근무하였습니다.
감회 깊게도 저는 선생님보다 꼭 20년 늦은 시기에 포항 해병대 상륙사단에서 복무한 것입니다.
저는 제 고향 부산과 진해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 포항 해병대 제1상륙사단에서도 당시에는 전혀 깨닫지 못했지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아득히 뒤에서 선생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제가 지냈던 공군기상파견대 내무반은 해군 의무대 내무반과 바로 인접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선생님께서 머무셨던 곳을 뒤따랐으니 제가 선생님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주장해도 무리는 아니겠지요?
포항은 제게는 소중한 추억이 어리어 있는 곳입니다. 내무반장으로 있을 당시 새로 전입해 온 신병의 소개로 제 집사람을 알게 되어 연애편지를 수없이 썼던 곳입니다. 지금 생각하니 아마 선생님의 자취를 뒤 따랐기 때문에 좋은 결실을 맺은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면서 잠시 선생님과 제가 복무했던 포항으로 마음을 달려가 보았습니다.
저는 포항에서 근무하다가 1977년 5월에 서울 대방동 공군본부에서 1980년 7월 31일 제대할 때까지 복무하였습니다.
셋째로, -가장 본질적인 점인데- 선생님과 저의 신앙 이력에서의 동질성입니다.
우선 선생님은 일반교회 출신이십니다. 선생님께서는 1948년 10월부터 목포 양동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와 성가대원으로 봉사하시며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심하셨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군에서 퇴역하신 후에는 신학교를 나와서 목사가 되려는 뜻을 품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1958년도에『가신(嘉信)』이라는 일본 무교회 계통의 신앙 월간지를 만나신 후 신학교 진학의 꿈을 스스로 거두셨다고 하셨습니다.
『가신(嘉信)』은 문자 그대로‘아름다운 믿음, 기쁜 소식, 복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순수 신앙 월간지입니다.
일본 동경제국대학총장을 두 번씩이나 역임하셨고, 김교신 선생님과도 교분이 깊으셨던 분으로, 식민지 경제정책 분야의 권위자인, 일본 최고의 지성 야나이하라 타다오(矢內原忠雄) 교수님이 그 책임자였습니다.
선생님의 신앙문집 1권『믿음 그리고 사랑』에 수록되어 있는 ❮나의 무교회 신앙 40년❯을 읽어보니, 선생님께서는 야나이하라 선생님을 비롯하여, 성서주석으로 유명한 구로자키(黑崎幸吉), 월간지『영원한 생명』의 마사이케 진(政池仁),『깃발』의 후지사와 타케요시(藤澤武義),『십자가의 말씀』주필 타카하시(高橋三郞), 사토(左藤司郞) 와 같은 일본 무교회 진영의 저명한 분들과 현해탄(玄海灘)을 넘어 교제하시고, 박석현 선생님을 통하여 노평구 선생님이 펴내신 월간지『성서연구』등을 알게 되어 마침내 평신도 독립 의료전도자의 길로 나서시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이와 같은 방향전환의 결과로 우리 무교회 진영으로서는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게 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지난 해 5월 5일 선생님 6주기 추모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생전 처음으로 복흥에 도착하여 선생님의 기념교회에 있는 서재에서 일본 독립학원의 한국어교사 사토(左藤司郞) 님이 보내주셨다는『야나이하라 타다오 전집』29권과『성서주석』,『마르크스주의와 기독교』, 그 밖의 많은 저술들과 신앙 잡지들을 발견하고, 선생님께서 저보다 훨씬 먼저 같은 믿음의 길을 걸어가신 것을 알게 되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혜인 선생님께서 경도되신 이 분의 전집에서 몇 군데를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잠시 인용해보겠습니다.
○ 우리들은 땅의 현실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러나 우리들을 참되게 살게 하는 것 ─ 우리들에게 생명이 있게 하며, 희망과 환희와 평안 과 생명을 주는 것은 하늘의 현실이다.
하늘의 현실이 땅에 깃들이게 하는 것을 이상(理想)이라고 부른다. 우리들은 지상의 생활태도를 하늘의 현실에 입각하여 정한다. 이렇 게 하여서만 우리들은 암흑의 경우에도 광명으로써 생활할 수 있다. 천적인 빛을 받고 비로소 우리들의 마음은 기쁘게 가슴을 설레며 그 위에 광활하게 되는 것이다.
(『전집』제12권. 626 page )
○ 믿음은 역사의 종국(終局)을 현재로 하고, 사물의 본체를 현실화하 는 힘이며, 이런 통찰력으로 사람은 이상(理想), 바꾸어 말하면 하 나님의 거룩하신 뜻 안에 있는 이미 정해진 경륜(經綸)을 알게 된 다. 즉 믿음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
믿음은 공상이 아니며, 상상이 아니고. 이상(理想)의 현실적 인식 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사람의 세계관(世界觀), 인생관(人生觀)의 현실의 기초를 위한 것이다. ……
희망의 확실성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실현해 두셨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장래의 성취를 현재화하여 희 망을 확신하는 힘, 이것이 믿음이다.
(『전집』제15권. 96-97 page )
○ …… 모든 사건에 「때」가 있으며, 정해진 「때」가 오기까지는 그것 이 계속되지만, 「때」가 오면 끝난다.
「때」보다 빨리 빨리 끝나는 일이 없고, 「때」를 거쳐서 끝나지 않는 일이 없다.
「때」는 구절(區切)되어 있다. 즉 「때」는 유한하다. 아무리 길게 보 여도 「때」는 반드시 종말이 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때」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 이것을 알 때, 우리들 의 마음으로부터 초조가 사라진다.
악인의 발호는 반드시 끝날 때가 온다. 의인의 고난도 반드시 끝날 때가 온다. 「때」가 있기 때문에 기대할 수 없는 일은 없다.
(『전집』제9권. 664-665 page )
○ …… 우리들이 현실문제에 신경을 몰두해 있는 상태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경륜에서 우리들이 놓여 있는 위치를 알 수 없고, 앞길의 도달점도 아직 명확히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쓸데없이 초조해 하고 고민할 뿐이며, 도저히 고난을 벗어날 길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
우리들이 지상에서 당면하는 문제는 하늘에서는 원리적으로 해결된 문제이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들은 하늘에서 이미 해결된 문제만 을 문제로 부여받은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믿음으로 말 미암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갖고 있는 것이다. ……
현실의 생애 혹은 역사의 도달점은 하나님의 경륜의 출발점에서 이 미 획득되어져 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승리를 얻은 싸움을 싸우는 것이므로, 결코 승패를 알 수 없는 싸움에 종 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사실의 신앙에 의한 인식이 기독자의 전투력이며, ……
(『전집』제9권. 493 page )
○ …… 하나님나라는 내세(來世)의 희망이지만, 그것 때문에 현실적 으로 알맹이가 없는 존재라는 의미는 아니다. 내세가 단지 현세(現 世)의 시간적인 계속이 아니라, 현세를 지배하고, 지도하며, 바탕 이 되는 영원한 생활원리다.
하나님나라는 마지막 날에 이르러 완전하게 지상에서 성취되는 것이지만, 천국(天國)에서는 세상을 창조하기 전부터 이미 존재하 며, 더욱이 현세에서도 잠재적으로 실현되며, 부분적으로 실현 되 어 오고 있다.
「슬퍼하는 사람은 위로(慰勞)를 받을 것이다.」고 한다. 위로의 완전한 성취는 내세에서 주어지지만, 그것은 현세에서 이미 이와 동질(同質)의 위로를 받는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위로는 영원하다. 따라서 내세에도 있고, 현세에도 존재한다. 하나님나라는 내세적이 기 때문에 가장 확실한 현세의 위로인 것이다.
(『전집』제6권. 348 page )
저 역시 선생님처럼 무교회가 아닌 대한에수교장로회 통합측 출신입니다.
저는 중3 여름방학 때인 1968년 8월에 이웃마을에 있는 교회에서 연극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 교회에 갔는데, 사실은 연극을 하는 게 아니라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름성경학교였습니다.
여기서 저는 나흘 동안의 여름성경학교 과정을 마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의 주제말씀이“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사도행전 16장 31절 말씀이었는데 이 말씀은 지금도 제가 가장 애송하는 말씀입니다.
언젠가 선생님의 애제자이신 임중기 형제님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아직도 불신의 늪에 빠져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너무도 마음이 아프다는 제 이야기를 들으신 임중기 형제님이 뜻밖에도 사도행전 16장 31절의 이 말씀을 가지고 제게 말씀해주시더군요.
“걱정할 것 없어요. 하나님께서 주 예수를 믿으면 너와 네 집을 구원하시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최선생님이 이미 예수님을 믿으니 가족분들도 모두 구원에 동참하실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으로 얼마나 많은 위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저는 입신(入信)한 이듬해에 주일학교 교사를 하였고, 공군에 입대하기 전인 1972년에는 총각집사가 되었으며, 공군 김해기지교회에서는 1976년도에 신우회장을 역임하였고, 군 생활 틈틈이 포항 상대교회에서 중고등학생을 지도하는 등 그야말로 교회밖에 모르던 사람이었습니다.
집 사람이 하도 말리는 통에 결국 포기했지만, 저도 한 때는 선생님처럼 목사가 되려고 공군본부에 근무할 때인 1978년에는 현재의 칼빈신학대학교 의 전신인 칼빈신학교 신학과에 입학한 적이 있답니다.
저는 무교회 신앙에 정식으로 발을 들여놓기 전인 1972년경에 신앙계라는순복음교회 발행의 월간잡지에서, 감리교단 출신의 털보 목사 이현주 님의『다시 김교신이 그리워지는 시절』이라는 글을 감명 깊게 읽은 적이 있었지만, 그 당시는 시골이어서 무교회에 대한 별다른 참고자료를 얻지 못하여 김교신 선생님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결정적인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5일장인 성산시장으로 갔다가 노점책방에서 학원장학회가 발행한 알렉산드 뒤마의『삼총사』를 사서 읽은 후부터 독서에 취미를 가지게 된 후부터 손에서 책을 뗀 일이 별로 없을 정도로 책을 유난히 좋아하는 저인지라, 1970년대 후반부터 서울 종로서적을 출입하면서 잡지 코너에 전시되어 있던 노평구 선생님의『성서연구』라는 20여 페이지 분량의, 아무 장식도 없는 무교회 신앙잡지를 보게 되었는데, 이 잡지에서 국희종 선생님과 복흥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우찌무라 칸조 선생님의『나는 어떻게 기독교인이 되었는가?』,『기독교신도의위로』,『구안록』,『소감』,『기독교문답』,『종교좌담』등과 야나이하라 선생님의『마르크스주의와 기독교』등 일본 무교회 계통의 신앙서적을 열심히 탐독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독일 마인츠대학 신학부에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를 전공하신 다카하시 사부로(高橋三郞) 박사님이 저술한『무교회신앙의 탐구』라는 설우사에서 펴낸 책이 있는데, 어떤 종이로 만들었는지 책갈피에서 솔향기가 향긋하게 풍기는 이 책을 대여섯 번 이상 정독하고 나서 무교회의 본질에 대하여 일깨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신학연구소에서 발행한 페스탈로치 전문가 고려대학교 교수 출신 김정환 교수님의『김교신평전』과 종로서적에서 복간한『김교신 전집』, 혜문사 발행의『우찌무라 성경주해전집』등 수많은 책들을 독파하며, 김교신선생님의 신앙과 삶에 온통 매료되어 저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저의 신앙은 무교회 신앙으로 점점 기울어져 갔습니다.
성서를 조선 위에, 조선을 성서 위에! 라는 기치를 걸고 수도승처럼 고고하게 신앙생활을 하신 김교신 선생님을 저는 너무나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혜인 선생님께서 김교신 선생님과 야나이하라 타다오 선생님을 비롯한 무교회 지도자들을 국적을 초월하여 사랑하신 것처럼, 어쩌면 이렇게 철저하게 선생님의 신앙행로를 따르고 있는지 제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로 입니다.
이처럼 저는 혜인 국희종 선생님을 직접 대면한 적은 없지만, 위에서 말씀드린 세 가지 관점에서 선생님에게 큰 동질감(同質感)을 느끼게 되어, 선생님께서 야나이하라 선생님을 평생 흠모하셨던 것처럼 혜인선생님의 신앙과 사상과 인격을 흠모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혜인 선생님께서 생전에 그토록 아끼시고 사랑하셨던 우리한국무교회의 성지(聖地)인 순창군 복흥면 출신 믿음의 형제들이 주축이 된 신앙 결사체인 우리 천우회(天友會) 서울 에클레시아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선생님의 위대한 신앙인격의 발자취를 따라가고자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아무쪼록 하늘나라에 먼저 가 계신 국희종 선생님께서 당신의 신앙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는 우리 미약한 천우회 모임과, 꿈에도 잊지 못하실 사랑하시는 사모님을 위시한 유족 분들과 교우들, 제자들을 위하여 하늘에서 주 예수님께 기도해 주실 줄 믿고, 하늘나라에서 다시 반갑게 해후할 때 까지 우리 남은 자들을 위하여 천상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드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장 43-51절을 봉독해 올리며 참 이스라엘 사람 나다나엘 같이 온유하신 국희종 선생님을 마음 깊이 기리는 바입니다.
요한복음 1:43-51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세다 사람이라.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경청해 주신 데 대하여 깊이 감사합니다.
첫댓글 2006년 5월5일 고 국희종 선생 기념회에서 최병주 선생님의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