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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문학지도 :『포스트사회주의 시기의 문학지도』
130218 안소희
1.『포스트사회주의 시기의 문학지도』를 읽고
포스트사회주의는 ‘개혁개방’이후 문혁으로 대변되는 ‘사회주의 30년’을 부정하고 그것과 단절하는 측면과,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음에도 문혁의 기제가 여전히 관철되는 측면을 동시에 지적한다는 장점이 있다. 즉 사회주의의 지속과 발전을 결합시키고 있는 중국 ‘개혁개방’ 시기의 특색을 요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효하다.
1987년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선언하고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면서 소련이 해체되고 동유럽 사회주의권이 와해되면서 ‘포스트냉전’시기로 진입한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지구적 차원에서는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 간의 대립으로 표상된 냉전체제가 무너진 것이고, 사회주의권의 초점에서는 ‘현실사회주의’가 붕괴된 것이다. 포스트사회주의라는 문제의식은 현실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수용해서 어떻게 변화했는지, 사회주의와 결합한 자본주의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그리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제3의 가능성은 무엇인지 등과 연계되어 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알렝 투렌은 『포스트사회주의』라는 책에서 인류역사의 발전단계를 ‘프리산업사회-산업사회-포스트산업사회’로 나누고 산업사회가 쇠퇴함에 따라 포스트산업사회로 진입한다고 진단했는데, 그는 포스트산업사회를 포스트사회주의와 동일시했다. 이에 따르면 포스트사회주의사회는 사회주의의 소멸을 의미하고 이 단계에서는 숙련 기술자로 구성된 ‘신노동자계급’이 출현해 ‘공평’과 ‘정의’를 건립하고 ‘포스트사회주의’를 실현한다고 한다. 알랭 투렌의 포스트산업사회는 사회주의와 관련이 없어 보이면서도 그것을 사회주의 이상형인 포스트사회주의와 동일시함으로써 다소 모순된 주장을 펼치고 있다.
크리스한은 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에 사회주의를 ‘타자’로 설정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현실사회주의권이 와해된 1991년 이후 약 10년 동안 진행된 사회주의 및 포스트사회주의에 대한 연구 동향을 요약하면서 ‘이행의 관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이행의 목적론’과는 다르다. 후자가 사회주의 다음 단계로 ‘서양식 자본주의 발전 도로’를 설정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행’의 관점은 ‘현실사회주의’가 자본주의와 결합한 후 나아갈 길을 개방적으로 검토한다.
터키 출신의 중국사학자 아리프 딜릭은 포스터사회주의를 ‘사회주의 국가의 현상, 즉 현실사회주의’와 ‘사회주의 국가의 미래’를 묘사하는데 사용했다. 그에게 포스터사회주의란 사회주의가 다음의 세 가지 역사 환경에 놓인 상황을 가리킨다. 첫째, 사회주의 이상이 역사 발전과정에서 쇠락했기 때문에 그것은 이미 정치 원이론으로서의 통일성을 상실했다. 둘째,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합은 어떤 상황에서도 ‘현실사회주의’라는 이 구조의 제약을 받게 된다. 셋째, 결합의 진행과정이 자본주의의 복권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포스트사회주의는 필연적으로 포스트자본주의이기도 하므로 그것은 자본주의의 경험을 이용할 뿐 아니라 자본주의 발전의 결합을 극복하려 시도하는 의미에서의 사회주의로 표현된다.
아리프 딜릭은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가 실패를 고하고 자본주의에 투항한 이후에도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견지하는 중국 현실에서 포스트사회주의를 해석하려 한다. 그는 우선 중국의 사회주의의 기본 모순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중국의 사회주의와 그 자본주의적 지구성 사이의 모순, 사회주의의 특수성과 보편성 사이의 모순, 역사 사업으로서의 사회주의와 그 원역사의 예측 사이의 모순이 그것이다. 개혁개방 시기에 마오쩌둥의 ‘혁명적 사회주의’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는 목표를 실현하는 데 방해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아리프 딜릭이 말하는 ‘사회주의의 합리성 위기’이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발전은 국제무대의 발언권을 강화시키고 있고 중국의 개혁개방은 새로운 가능성을 가져다주었다. “첫째, 비교적 큰 경제 선택의 공간이 생겼다. 둘째, 이전에 비해 더욱 많은 민주의 가능성이 생겼다. 왜냐하면 강제적 유토피아주의에 대한 신앙을 포기했기 때문에. 셋째, 더 풍부한 문화선택의 가능성이 생겼다. 이런 가능성은 지구적 문화다양성에 대한 중시에 따라 증가했다.” 그러므로 그에게 “포스트사회주의는 사회주의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의 위기에서 새롭고 창조적인 방식으로 사회주의를 성찰할 가능성을 제공”하는 담론인 것이다.
케빈 레이섬은 “이행이 현 중국 담론의 핵심개념”임을 강조하며 레이섬이 볼 때 중국은 어떤 연구자들에게 소비자혁명을 통해 시장경제로 이행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신생 시민사회와 함께 개방적 정부와 자유화·민주화로 가는 길에 있다. 또 아리프 딜릭처럼 사회주의에 대한 낙관적 전망도 존재한다. 레이섬은 이러한 다양한 버전의 이행의 공통점을 “중국과 중국인들은 무엇인가로 이행 중”이라고 요약했다. 많은 중국인들에게 이행은 단지 더 커다란 재화와 더 나은 삶의 기준으로의 이동을 의미하는데 레이섬은 이를 ‘이행의 수사학’이라 명명했다. 이는 중국이 이행중이라는 사실만 지시할 뿐이지만, 이행의 목적론을 경계한다는 점에서 비자본주의적 출로를 모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국내외의 광범한 주목을 받았던 마틴 자크는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날』에서 ‘서양 세계의 종말’과 ‘새로운 지구적 질서의 탄생’이라는 전망을 제기했다. 그는 중국과 최근 중국의 부상에 대한 서양의 주류적 견해 및 공감대가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오독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하면서, 중국을 관찰할 때 서양적 관점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중국적 특색을 충분히 고려하는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가 중국적 특색으로 꼽은 네 가지 핵심 주제는 ‘국민국가에 그치지 않는 문명국가’, ‘94퍼센트에 이르는 한족을 중심으로 한 인종’, ‘조공국가 체계’, ‘오래 지속된 통일 국면’이다.
조반니 아리기는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에서 “현재 진행 중인 세계 정치경제위 중심지가 북아메리카에서 동아시아로 이동하는 현상을 애덤 스미스의 경제 발전론의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한다. 물론 그가 말하는 동아시아의 중심은 중국이다. 그는 부상하는 중국과 기울어가는 미국의 관계를,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기존 헤게모니 강국(영국)과 그 시대에 경제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신흥 강국(미국)사이의 관계와 비교”하면서 양국 관계가 “심한 상호적대에서 점차 긴밀한 협조로 전개되기 시작”한 것에 주목한다. 이것이 “‘새로운 미국의 세기 프로젝트’의 실패와 중국의 성공적인 경제 발전이 결합된 결과, 세계 문명들 사이의 더 큰 평등성에 기초한 스미스식 ‘세계-시장사회’가 『국부론』출판 이래 250여 년간 어느 때보다도 실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진단을 내리는 주요 근거이다.
‘포스트사회주의’ 문학의 시작은 ‘몽롱시’와 ‘상흔문학’을 그 표지로 삼는다. ‘몽롱시’가 사회주의 시기의 금기였던 모더니즘을 지향했다면 ‘상흔문학’은 문혁으로 인한 상처를 되돌아보며 목숨이 위태롭던 그 상처의 흔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상처의 원인을 반추해본 것이 ‘반사문학’이다. ‘상흔문학’에서는 아직 반성하고 성찰할 여유를 갖지 못했지만, ‘반사소설’에 오면 아픔을 딛고 이성을 회복하여 지나간 역사의 오류와 실패를 분석하고 정리하려 했다. 이어 잘못된 것을 고치려는 시도가 출현했고, 이를 ‘개혁문학’이라고 한다. 그 개혁의 방식을 전통문화의 뿌리에서 찾아 그것을 현대화시키고자 노력한 것이 ‘심근문학’이라면, 서양의 것을 모범으로 삼아 그것을 방편으로 개혁하고자 한 것이 이른바 ‘선봉문학’으로 표현되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황허를 중심으로 한 북방과, 창장을 중심으로 한 남방의 구분이 있었다. 중국문학사의 첫 장을 여는 『시경』과 『초사』는 북방의 리얼리즘과 남방의 로맨티시즘을 대표한다. 근현대에 들어서도 1920년대 ‘인생을 위한 예술’을 추구한 문학연구회는 베이징을 중심으로 삼았고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한 창조사는 도쿄에서 창립되어 상하이를 근거지로 삼았다. 또한 경파와 해파는 좌익문학과 함께 1930년대 중국문단을 삼분했다. 경파가 과도한 정치 참여를 경계하면서 인민의 생활에 접근하고 인성미와 자연미를 추구한 반면, 해파는 유럽의 모더니즘과 일본의 신감각파의 영향을 받아 자본주의 대도시의 새로운 문화와 도시민의 삶을 그렸다.
베이징 지역은 많은 작가들이 근거지로 삼아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은 대체로 엄숙문학을 지향한다. 정치의 중심이라는 사실은 문단의 주도권이 베이징에 있음을 의미한다. “80년대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왕숴를 읽어라”는 평가가 말해주듯이, 소설가 왕숴는 개혁개방 초기의 새로운 사회 사조와 포스트사회주의의 탈 이데올로기적인 신세대를 대담하게 묘사함으로써 ‘사회주의 현대화’를 예리하게 풍자했다. 전 베이징 대학 중문학부 교수인 첸리췬은 체제 비판적인 학자로, 문혁기를 포함한 18년간의 하방과 유랑의 경험을 통해 중국사회에 대하 비판적이고 실천적인 관점을 형성했다. 그는 퇴직 이후 중고등학교 문화교육에 열성을 쏟는 한편 국가권력에 의해 억압되었던 1950년대 우파와 1960년대 문혁의 복원에 주력하고 있다. 허난 출신으로 베이징 대학 중문학부를 졸업한 류전원은 베이징 시민의 일상생활을 리얼하게 묘사함으로써 도시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베이징의 지류라 할 수 있는 산둥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붉은 수수밭』의 모옌과 마위안이 더불어 선봉문학의 선봉장이다. 선봉문학은 근현대화에서 자신들의 출로를 모색했는데, 이들의 근현대화는 국족화와 결합하여 가장 국족적인 소재와 주제로 문학의 승부수를 걸고 있다. 찬쉐, 위화, 쑤퉁을 포함한 선봉문학 작가들의 특색은 ‘실험’과 ‘반역’이지만, 그 심층에는 중국적 서사전통이 면면히 흐른다.
중국경제의 심장이자 대중문화의 중심인 상하이는 개방적이고 전위적이다. 본격적인 근현대문학의 기점인 5.4신문학은 베이징에서 시작됐지만 그 성과의 대부분을 상하이에서 꽃피웠고, 1920-1930년대 좌익문화의 중심 역시 상하이였다. 1930-1940년대 ‘신감각파’를 중심으로 한 도시문학도 상하이에서 그 절정을 맞이했다. 상하이에서 성장해 상하이와 상하이인을 형상화하고 있는 왕안이는 1940년대 장아이링과 더불어 근현대 상하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작가로 대두했다. 그 대표작 『장한가』는 서양 문화시장의 식민 상상에 영합하려는 ‘상하이 노스텔지어’를 극복하고, 순수하고 소박한 올드 상하이를 충실하게 재현함으로써 ‘도시의 민간서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시안은 역사 고도로서 전통문화의 중심이자 내륙의 농촌문화를 대변하는 또 하나의 문학 중심지이다. 특히 시안을 중심으로 한 상지역은 중국문화의 근원지로서 ‘심근문학’의 흐름과 연계되어 있다. 심근문학은 후난 출신 작가 한사오궁의 ‘심근선언’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은 개혁개방 시기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전통으로부터 국족 정체성과 뿌리 찾기를 시도했는데, 이때 전통은 근현대화와 결합한 전통이다. 이 계열에 속하는 아청의 『아이들의 왕』은 천카이거가 영화화함으로써「황토지」와 더불어 5세대 초기 영화의 대표작이 되었고 「장기왕」은 지청문학에 속한다. 지청은 문혁 시기 농촌으로 하방한 지식청년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문혁이 끝난 후 도시로 돌아와 문혁시대의 폐해를 폭로했다. 지청은 각 변방에 하방되었기에 전국적으로 분포했지만, 그들의 문학은 농촌의 경험에 바탕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전통문화와 연계되었고 심근문학과 천연성을 가지고 있다.
홍콩과 타이완의 문학은 국민문학의 경계에 놓여있다. 1997년 회구 이전 홍콩문학과 1949년 이래의 타이완 문학은 그것을 중국문학의 일부분으로 보느냐 독립적인 국민문학으로 보느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회귀 이전 홍콩문학의 대표작가인 예쓰는 2000년 링난대학에 아시아 최초의 문화연구학과를 개설하고 홍콩 연구와 문화연구를 결합시켰다. 회귀 이후 특별행정구가 된 홍콩은 재중국화의 과정을 거쳐 중국의 일부분으로 자리잡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1949년 이후 타이완은 통일파와 독립파의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되어왔다. 통일도 우파와 좌파의 구분이 있고, 독립도 해외파와 토종파의 변별이 존재한다. 민진당 집권 이래 독립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그 문화적 반영으로 각 대학에 타이완문학과 또는 타이완문학연구소가 개설되었다.
포스트사회주의 중국문학의 주요한 특징은 ‘문화연구’와의 결합이다. 중국의 ‘문화연구’는 199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사회주의 30년 동안 금제되었던 서양의 이론들이 ‘셴다이화’의 이름으로 개방되면서 물밀 듯 들어왔고, 중국의 지식인들은 포스트사회주의와 함께 ‘문화연구’방법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문화연구’는 중화권 학자들에게 1997년 회귀를 전후한 홍콩을 대상으로 지구적 관심이 집중된 적이 있었고, 타이완의 복잡한 정체성 문제도 문화연구의 중요한 주제였다. 다만 홍콩과 타이완의 문화연구 학자들은 유럽보다는 미국의 문화연구에 경도되어 있다.
홍콩과 타이완의 문화연구와는 달리, 대륙의 문화연구 학자들은 대부분 토종이다. 한국의 문화연구 학자들이 대부분 영문학 또는 미디어 전공에서 넘어간 것과는 달리, 대륙에서는 중문학 전공자들이 문화연구 쪽으로 영역을 확장한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왕샤오밍과 다이진화는 중국의 일반 중문학자와 달리 서양 이론에 개방적이면서도 그에 대한 비판적 수용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중국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소수자에게도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연구 경향을 ‘비판적 문화연구’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2.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문학지도
(1) 알렝 투렌, 아리프 딜릭, 크리스 한, 케럴라인 험프리, 케빈레이섬, 마틴자크, 조반니 아리기 등 여러 학자들의 포스트사회주의에 대한 생각을 읽고 나는 아리프 딜릭이 중국에서 해석한 “포스트사회주의는 사회주의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위기에서 새롭고 창조적인 방식으로 사회주의를 성찰할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말이 가장 와 닿았다. 사회주의 중국이 자본주의 미국을 수용하면서 이전단계인 마오쩌둥의 혁명적 사회주의에 방해가 되었다고 하였지만 자본주의의 최종승리라고 일컬어진 미국 주도의 지구화의 수혜자는 동아시아였고, 그 가운데서도 중국이 최대의 수혜자였다. 오랜 무역흑자로 축적된 자금은 이제 미국에 역투자 되어 미국의 금융위기를 구원하고 있으며 중국의 급속한 발전은 국제무대의 발언권을 강화시키고 있을 만큼 중국의 개혁개방에는 새로운 가능성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중국의 사례가 아리프 딜릭의 말을 더욱 인정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 같다.
문화대혁명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니 마오쩌둥의 사회주의에 대한 확고한 생각도 알 수 있었으면서 그 속에는 국가가 산업을 장악하는 정책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공산주의의 이상과 점점 멀어지는 것이라고 판단한 마오쩌둥은 “자본주의적 사상·문화·습관을 몰아내자.”는 뜻과 중국공산당 내부의 반대파들을 제거하기 위한 권력투쟁인 극좌사회주의운동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렇게 개혁을 실행하게 되면서 홍위병들은 전국을 돌며 각종 문화재와 예술품을 파괴했다. 만약 마오쩌둥이 권력욕심을 조금만 줄이고 류샤오치, 덩샤오핑 등 실용주의자들과 타협하며 권력투쟁 따위가 없었더라면 관리, 지식인, 학자 등 많은 인민들이 학대를 받고 목숨을 잃는 최악의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마오쩌둥의 사망 후, 개혁주의자였던 덩샤오핑의 경제 정책은 자본주의식으로 추진, 정치는 기존의 공산주의식으로 추진하는 개혁개방 정책으로 중국 경제는 놀라운 경제 발전을 이뤄냈다. 바로 이 부분에서 나는 덩샤오핑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적절히 합친 개혁개방을 아리프 딜릭이 포스트사회주의로 설정한 것으로 중국이 사회주의의 위기에서 경제 발전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이렇게 중국은 현재 그토록 원하던 근대화가 실현되었으며, 그 어느 나라 못지않게 정치·외교·경제·군사외교·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중국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있다.
(2) 베이징 지역 80년대의 소설가 왕숴의 소설에는 개혁개방 초기 중국 사회가 새롭게 변화하는 모습과 그 속의 의식의 급격한 변화를 알 수 있다. 왕숴는 자신의 성공 비결이 당시 젊은이들의 심리상태, 즉 폐쇄적인 사회 환경에 대한 반항과 거부심리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그의 소설 특징은 제재가 특이하고 참신했으며, 소설 중 등장인물을 파격적으로 선택하였고, 구어화 된 소설 어투와 대화체 언어를 과다하게 사용한다고 한다.
2006년 ‘중국작가협회’의 주석으로 선출된 톄닝은 60대의 부주석 두 명을 제치고 당선이 되었다. 작가협회 주석의 자리에 여성이, 또 40대의 작가가 선출된 것은 작가협회 57년 역사상 처음이며 그녀는 루쉰 문학상, 마오둔 문학상 등 중국의 대표적인 문학상들을 휩쓸었다. 그녀의 첫 장편소설 『장미의 문』은 페미니즘 경향을 보이며 여러 세대에 걸쳐 여성들이 어떻게 투쟁하였는지를 잘 나타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베이징의 지류라 할 수 있는 산둥에는 마위안과 더불어 선봉문학의 선봉장인 모옌이 있다. 모옌의 대표작인 『붉은 수수밭』은 1900년대 초반,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이 뻗어나가는 시기를 배경으로 미래의 ‘나’는 손자의 입장에서 과거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서술해 나아간다. 나는 이 『붉은 수수밭』을 책으로 보진 못하고 영화로 보았는데 영화 전체의 분위기에 붉은 빛이 맴도는 것 같아 중국의 문화나 특색이 많이 들어났던 것 같다. 또 일제의 잔인함에 처참히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일제의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의 아픈 기억이 떠올라 영화가 끝난 후에도 여운이 많이 남았던 영화로 기억에 남는다.
선봉문학의 작가들 중 한 명인 쑤퉁과 모옌을 비교하면 쑤퉁이 독특한 설정 속에서 쉴 틈 없는 입담을 가졌다면, 모옌은 중국 전통의 향취를 바탕으로 현실과 환상을 나타낸다. 하지만 모두 하층민이 주인공으로 그들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보여주고자 하는 공통점이 있다.
또 위화의 『인생』 역시 영화로 보았지만 그 속의 사건, 사고로 당시 중국의 현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림자놀이를 하던 주인공은국민당과 공산당의 국공내전으로 전쟁터에 끌려가게 되고 그 곳에서도 그림자놀이를 하며 겨우 목숨을 건지게 되고, 집에 돌아와서는 아들과 딸이 각각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된다. 또 문화대혁명으로 주인공 자신의 인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 그림자놀이마저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결말은 주인공이 자신의 아내와 손자, 사위와 함께 소박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끝이 났다. 이 영화를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느꼈다. 주인공이 국공내전에 끌려가 그림자놀이를 하며 살아남았던 것처럼 당시 중국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데올로기가 아닌 생존을 위해 살아왔고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이렇게 선봉문학의 특색인 ‘실험’과 ‘반역’과 함께 중국적 서사전통으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각 사람과 마을이 겪어 나가는 모습을 잘 나타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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