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대 성자를 소개 합니다
사랑의 실천자이신 김요석목사님을 소개합니다.
김요석 목사님은 독일에서 15년 동안 신학을 공부하고,
한국에 귀국하여 대학 강단에 서지만 영적인 갈증을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어떤 목사님의 소개로 나환자 정착촌인 영호 마을의 한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합니다.
이글은 영호를 방문하였다가 그들의 삶에 감동한 김요석 목사님의 독일 친구인
클라우드-디터 그래스가 1991년에 독일에 먼저 소개하였습니다.
김요석 목사님은 10년간 영호교회에서 사역하시다가 중국으로 떠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재 연락이 끊겨 소식을 아는 분이 없는 상태이기에
부득이 독일어판을 번역하여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중국 티벳에서 나병환자를 돌보며 선교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의 지체들은 영호라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이 마을은 서울에서 남쪽으로 약6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으로서 주민이 250명 정도 됩니다.
영호는 아주 특이한 곳입니다. 이곳을 설명하려면 먼저 다른 이야기부터 해야할 것 같군요.
한국에는 아직도 나병이라는 무서운 병이 있는데,
나병이 양성으로 나타난 사람들은 소록도라는 섬에 강제 수용됩니다.
소록도에는 나병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료시설이 있지요.
그곳에서 병이 호전되어 양성에서 음성으로 바뀐 사람들은 육지로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두 마을 중에서 한 곳을 선택하게 되는데, 저는 그 중 한 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사람들을 만날 때 으레 손부터 감춥니다.
비틀려 있거나 아예 끊어져 나간 손가락이 남의 눈에 뜨이기라도 하면
나병을 앓았다는 사실이 금세 드러나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그들의 약한 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
김요석
저는 제 친구인 김요석 목사의 교회에서 한 달 동안 함께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이야기해준 것과 우리가 체험한 것 가운데 몇 가지를 두 사람이 함께 쓰기로 했습니다.
나환자 정착촌에서 함께 살면서 겪은 김요석 목사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김광운 화백은 몇몇 장면을 삽화로 그려 주셨습니다.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클라우스-디터 그래스(Klaus-Dieter Gress)
1.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만남
오랜만에 고향인 한국에 돌아왔다.
독일에서 공부한지 15년째 되던 해에 서울에 있는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강의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돌아온 것이다.
나는 한학기 동안 신학교에서 강의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분열된 감정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러한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하나님에 관한 이론적인 질문에는 언제든지 대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학생들에게 별 도움이 될 수 없음을 느꼈다.
그들은 여러 가지를 묻고 싶어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신학 이론으로는
그 문제들에 대해 거의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주말에 시간을 내서 목사님이 없는 작은 교회를 돌보고 있었다.
그들은 내게 배운 신학을 그곳에서 늘 적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교인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은 무미건조한 신학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이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없었다.
나는 인간을 친히 만나기 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 문제를 생각하면 할수록 나의 체험보다는 교리가 더 많이 떠올랐다.
이러한 불만족스러운 마음은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이것이 내 얼굴에 씌어 있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 나이 많으신 목사님 한 분이 다짜고짜 다음과 같이 물으셨다.
"교수님은 하나님을 만나셨습니까?"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 목사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알고 싶으시다면 교수직에 머물러 있지만 말고 차라리 무슨 일을 해보십시오!"
그러면서 목사님은 한 가지 일을 제안하셨다.
"남부 지방에 제가 아는 작은 마을이 하나 있는데, 교회에 목사님이 안 계십니다.
그곳에 가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 결정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마침내 교수직이라는 좋은 직장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나는 하나님을 만나고 싶었다.
책 속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사람을 직접 만나 악수를 나누듯이, 그렇게 만나고 싶었다.
목사님은 내게 그 마을의 주소를 건네 주셨다.
어느 토요일, 나는 고속버스를 타고 그 마을을 향해 떠났다.
긴 여행이었다.
영호에 도착하자 날이 벌써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두서너 사람이 나를 마중나왔다.
그 사람들의 얼굴 생김이 특이한 것 같았지만 가로등 불빛으로는 자세히 볼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새로 온 목사입니다."
나는 스스로를 소개했다. 그 사람들은 별말 없이 어떤 작은 방으로 나를 안내해 주었다.
이것이 내 방인가? 방에는 가구가 없었을 뿐 아니라 벽은 더러웠으며
작은 벌레들이 여기저기 기어다니고 있었다.
방바닥에는 밤을 지낼 만한 이불 한 채 깔려 있지 않았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옷을 입은 채로 잠들어 버렸다.
주일 아침 8시 30분이 되자 교회 종소리가 작게 두 번 울렸다.
오래된 교회당에 가보니 아이들이 스무 명 가량 모여 있었다.
함께 찬송을 부르고 나서 어린이예배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첫줄에 앉아 있는 꼬마가 계속 콧물을 훌쩍이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이 내 눈에 거슬렸다.
"얘야, 이리 와 봐. 내가 코 닦아줄게!"
코를 닦아주고 나서 다시 예수님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이 번에는 다른 사내아이 하나가 코를 훌쩍였다. 못들은 척하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소리였다.
결국 나는 스무 명의 코를 모두 닦아주어야 했다.
아이들이 재미있다는 듯이 삐죽삐죽 웃었다. 첫 어린이예배는 그렇게 끝났다.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대예배를 기다렸다. 마침내 시간이 되어 강대상 앞에 섰다.
몇몇 사람들이 머뭇거리며 교회당 안에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마치 무언가를 숨기려는 듯이 내 눈길을 피하고 있었다.
왜 저렇게 부끄러워하는 걸까?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교회 마루바닥 맨 앞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눈길이 그 할머니에게 닿는 순간,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의 모습이 저럴 수도 있단 말인가!
할머니의 얼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구멍 다섯 개뿐이었다.
눈도, 코도, 입술도 없었다. 양손조차 다 끊어져 나가고 없었다. 내가 나환자촌에 왔긴 왔구나!
예배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오직 한 가지 생각만 망치질하듯 나를 두들겨대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여기를 떠날 수 있을까?'
처음에는 예배 후에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작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예배가 끝난 뒤에 일부러 천천히 설교원고를 정돈하였다.
내가 늑장부리는 동안 사람들이 전부 돌아가기를 바랐던 것이다.
마침내 교회 문을 닫으려고 강대상에서 내려오는데, 그 얼굴 없는 할머니가 고개를 드셨다.
"목사님, 말씀 감사합니다." 할머니는 손가락이 없는 손을 내게 내밀었다.
이 손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 나는 할머니의 손위에 내 손을 그냥 올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의 느낌은 앞으로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곁에 있던 다른 할머니 한 분은 내 손을 잡고 아예 놓아주지 않았다.
"할머니, 혹시 어디가 편찮으세요?"
나는 마침내 이렇게 물었다. 할머니는 흉한 얼굴로 웃어 보이려고 애쓰면서 대답했다.
"목사님, 전 열여덟 살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건강한 손을 잡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목사님이 이렇게 제 손을 잡아 주시니 너무 기뻐서......"
나는 그 생각을 미처 못했다. 너무나 부끄러웠다. 하나님이 나를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손가락이 다 끊어져 나가고 없는 이 할머니의 뭉툭한 손 끄트머리에서 하나님은 내게 악수를 청하셨다.
바로 그 자리에서 나를 맞이하시기 위해서. 나는 누군가와 악수하듯이,
바로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음을 느꼈다. 나의 소원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나는 할머니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할머니, 할머니의 가혹한 운명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으십니까?"
"어떻게 제가 감히 하나님을 원망하겠습니까? 오히려 감사드려야지요.
하나님은 아픔 가운데서 제게 복을 주셨는걸요."
"복을 주셨다구요?"
나는 당황해서 되물었다.
"그럼요. 예전에는 저도 많이 원망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여기에서 살아온 긴 세월 동안 나를 잊지 않으시고
그 아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선물로 주셨지요. 하늘나라에 갈 소망도 주시구요.
목사님, 이것이 진짜 복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부끄러웠다.
지금까지 나는 한 번도 나의 건강을 하나님의 복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문둥병자로 살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복을 말할 수 있을까?
할머니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2.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가혹한 운명
열여덟 살 때였습니다.
어느 날 아침 세수를 하는데 살갗에 이상한 반점이 생긴 거예요.
햇볕에 타서 그렇겠지 생각하고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지요.
그런데 군데군데 허연 부분이 점점 늘어나면서 고름이 차더군요.
어머님께 그것을 보여드렸더니 어머니가 비명을 지르셨습니다.
'문둥병'이라는 말이 제 귀를 때렸어요.
저는 제 방으로 뛰어가 방바닥에 엎드려서 많이 울었지요.
그렇게 울고 있는데 어머니가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오시더니 저를 꼭 안아주시더군요.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요!"
나는 죽어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머니는 아주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어요.
"얘야, 내 말을 좀 들어보거라. 에미가 도와주마. 동네 사람들에게는 숨겨야 한다.
아무도 널 보지 못하게 해야돼.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널 섬으로 보내버릴게다.
하지만 에미는 널 잃고 살 수 없다."
그때부터 저는 방안에서만 살았지요. 어머니만 이따금씩 돌보아 주셨어요.
밤에는 마당에 데려다 주시기도 했지요. 그렇게 저는 짐승처럼 갇혀 지냈습니다.
"어머니, 전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정말 괴롭고 무서워요."
하지만 어머니도 그 답을 아실 리가 없었지요.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셨어요.
어느 날 저녁, 선잠이 들었는데 누군가 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버지였어요.
손에는 낫을 움켜쥐고....... 저는 숨을 쉬지 않으려고 애를 썼어요.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쳤습니다.'정말 아버지가 날 죽이실까?'
아버지는 거기 서서 자신과 싸우며 망설이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어요. 아버지는 다시 밖으로 나가 버리셨습니다.
바로 그날 밤, 아버지는 쌀과자가 가득 담긴 그릇을 가지고 제 방에 들어오셨어요.
"남기지 말고 다 먹거라."
제가 하나씩 집어먹는 동안 아버지는 나를 지켜보고 계셨어요. 아버지는 한숨을 깊이 내쉬셨어요.
"네 병 때문에 우리 집안은 풍비박산 나버렸다.
네가 우리 집에서 사는 한 우리 식구는 살 수가 없어. 동네 사람들이 우릴 쫓아내 버릴게다.
네 동생들은 이제 같이 놀 친구도 없고, 용삼이 색시네에서는 파혼하자고 하는구나.
차라리 내 손으로 널 죽이는 것이 낫겠다 싶었는데......이 애비 심정을 알겠느냐?"
저는 솟구치는 울음을 억지로 참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오늘 저녁이 마지막이다. 내일부터 넌 이 집에 살 수 없는게야."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한 번도 돌아보시지 않고 나가 버리셨습니다.
저는 아버지 마음을 알 수 있었어요.
아버지는 차마 아버지 입으로 자살하라고 말씀하실 수 없었겠지요.
저는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야 했어요.
다음 날 아침, 저는 집을 몰래 빠져 나와 강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미리 와 있는 사람이 있었어요. 어머니엿습니다.
"넌 내 딸이야. 내 눈앞에서 널 죽일 순 없다. 자, 이 쌀자루를 들고 산으로 올라가거라.
산신령께 치성을 드리면 혹시 고쳐주실지도 모르잖느냐? 그럼 너는 다시 집에 돌아올 수 있을게고."
어머니가 절 꼭 안아 주셨어요. 어머니의 사랑이 따뜻하게 절 감싸주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주신 쌀자루를 들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어요.
그리고 그 날 이후 한번도 저희 식구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산 속을 돌아다녔어요.
산꼭대기에 올라가 산신령을 기다렸지만 허사였어요.
저를 도와주려고 나타난 것이라고는 허깨비 하나 없었습니다. 저는 혼자였어요.
배가 너무 고파서 결국 저는 산에서 내려와 버렸어요. 그리고 어느 농가에 밥 한바가지를 구걸했어요.
나는 거지처럼 밥을 동냥하는데, 산 속에 두고 온 쌀자루는 어떻게 되었을까?
산신령이 벌써 다 먹어 버렸을까, 아니면 남아 있을까? 저는 엉터리 산신령에게 화가 났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에게 잡혀서 소록도에 가게 되었지요.
소록도에서는 적어도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거기 있는 문둥병자들은 날 한 가족처럼 맞아 주었어요.
우리는 가족을 대신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잃어버린 아버지와 어머니와 오빠와 언니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소록도 사람들에게는 다른 점이 하나 있었어요.
이 사람들은 신령과 우상을 믿는 대신 하나님 한 분만 믿었습니다.
이 하나님은 다른 신들과 달랐어요.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신 아드님은 문둥병을 무서워하지 않으시는 분이었지요.
저는 이 예수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처음에 문둥병은 제게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
저는 아무 가치 없는 사람이 되었지요. 친부모와 형제도 절 거부했어요.
하지만 이제 저는 하나님을 찾았어요. 하나님은 저를 '딸'이라고 불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새 형제와 자매들도 얻었지요. 제게는 장차 하나님의 전에 영원히 거할 소망이 있습니다.
목사님, 이것이 진짜 복이 아니겠습니까?
3.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평화를 위한 굶주림
어느새 겨울이 시작되었고 눈이 많이 내렸다. 얼음처럼 차가운 날씨였다.
어느 날 아침 새벽예배를 마친 후 집에 가보니, 꼬마 다섯이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니?"
내가 물었지만 아이들은 얼어붙은 듯이 서 있기만 했다.
마침내 그 중에서 가장 큰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목사님, 우리 엄마 좀 찾아 주세요. 엄마가 집을 나갔어요."
"무슨 일로?"
"할아버지가 엄마를 때렸어요."
나는 아이들을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할아버지는 집에 계셨다.
"할아버님, 애들 어머니가 왜 집을 나갔습니까?"
"그년이 아주 못된 년이어요."
노인은 욕을 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다 듣고 보니 며느리의 잘못이었다.
"엄마는 곧 집에 돌아오실거야."
일단 아이들을 달래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집에서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몰려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머니들은 여러 가지로 내게 이의를 제기하면서 애들 어머니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말했다.
"애기들 엄마가 잘 도망가부렀어요. 그 노인네가 자기 며느리 징허게 못살게 했당게요.
맨날 며느리 욕이나 허고 돌아댕기는디 그 정도 참은 것도 다행이지요."
"......시아버님이 잘못하시긴 잘못하셨군요."
나는 다음 주일 설교를 준비해야 했다. 그러나 머리에는 온통 이 집 생각뿐이었다.
두 사람의 태도에 다 일리가 있었지만, 그 사이에 끼인 아이들은 울면서 지내야 했다.
아이들로서는 어른들 일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가족은 모두 주일마다 예배드리러 나오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내가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들 사이의 화평에 대해
충분히 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 아닐까?
그제야 나는 이 일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깨달았다. 바로 내 잘못이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내 죄를 회개하며 금식하기로 결심했다.
금식이 닷새 째로 접어든 날, 차씨 할아버지가 내 금식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목사님, 저 때문에 금식하시는가요?"
할아버지는 나를 책망했다.
"아닙니다. 할아버님 때문이 아니라 저 때문에 금식하는 거예요.
할아버님도 옳고, 며느님에게도 잘못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불쌍합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울면서 배고파하는 것은 제 탓입니다.
제가 평화와 화해에 대해 충분히 설교하지 못한 탓입니다. 그래서 금식하는 겁니다."
할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이 돌아가셨다.
금식한 지 여드레가 지나자 몸이 많이 쇠약해졌다. 할아버지는 나를 찾아와 고백하셨다.
"목사님, 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식구들하고 며느리한테 너무 심했는갑네요. 인자 어째야 쓴당가요?"
"할아버님, 할아버님은 이미 가장 선한 길로 발을 디디신 겁니다. 저와 함께 기도하시지요."
나는 차씨 할아버지 댁에 가서 함께 아침을 먹었다. 그때 밖에서 아이들의 환성이 들려 왔다.
아이들의 어머니가 돌아온 것이다. 할아버지는 곧바로 며느리를 맞아들이셨다.
"아버님,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며느리가 먼저 말했다.
"아니다, 인자 다 잘 될 것이다. 내 맘이 달라져야제."
이제 아무도 상대방에게 잘못을 넘기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화해하게 되었다.
나는 두 사람이 화해하는 것을 보면서 내 배를 슬쩍 만져보았다. 배가 쑥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선한 목적을 위한 굶주림, 평화를 위한 굶주림이었다.
4.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 있다
이웃 동네에 살고 있는 한 가장이 우리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
그들은 초신자였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는 상태였다.
게다가 이웃 동네는 워낙 불교가 지배적인 곳이었기 때문에
교회에 다니는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온 동네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었다.
그들은 이웃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 살아야 했다.
어느 날 저녁 그 집 아버지가 나를 찾아왔다.
잔뜩 화가 나서 목에는 핏대가 서고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모습이었다.
"왜 그렇게 화가 나셨어요? 누구하고 싸우기라도 했습니까?" 나는 다그치듯 물었다.
"아니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제가 지금까지는 화가 나도 꾹 참았다구요.
예수 믿는 사람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목사님께서 늘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옆집 그 인간은 해도 정말 너무 하지 뭡니까?
도대체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말씀 좀 해주십시오.
목사님은 그래도 목사님이니까 뭔가 답이 있지 않겠습니까?"
양씨는 숨을 가쁘게 쉬며 씩씩거렸다. 우선 그를 진정시키는 일이 급했다.
"무슨 일인지 차근차근 말씀해 보십시오."
양씨는 깊이 숨을 몰아쉰 다음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오후에 우리 어미 돼지 다섯 마리가 옆집 채소밭에 들어가서 그 집 채소를 몽땅 먹어치웠거든요.
그랬더니 옆집에서 손해배상을 해달라고 하더라구요."
"그야 당연히 배상해야지요." 나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저도 손해는 배상해 주려고 했지요. 그런데 그 인간이 말도 안되는 걸 요구하지 뭡니까!"
"도대체 옆집 분이 원하는 게 뭔데요?"
"글세, 우리 어미 돼지 다섯 마리를 전부 달라는 겁니다!"
양씨는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무리 예수 믿는 사람이라도 이런 경우에 화가 안나는 놈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
양씨는 씩씩거리며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옆집 사람은 형제님을 시험해 보려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은 형제님이 마구 흥분하고 화내기를 바랄 거예요.
그렇게 되면 예수 믿는 사람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온 동네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려면 그가 원하는 것을 모두 다 주셔야 합니다.
큰 손해를 입게 되더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더 많은 것으로 갚아주실 겁니다."
내 말이 초신자 양씨에게 설득력이 있을까? 양씨는 양손을 허리에 얹고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좋습니다. 어쨌든 저는 예수 믿는 사람이니까요.
아까는 정말 화가 났지만, 다 접어두고 하나님께 순종하겠습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지요." 그는 돌아갔다.
양씨는 정말로 한 마디 불평 없이 돼지 다섯 마리를 전부 옆집에 주어버렸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양씨가 미친 거 아니야?"
많은 사람들이 양씨를 비웃었지만, 그 중에는 양씨의 태도를 보고 사뭇 진지해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 예수 믿는 사람은 저렇게 하는구나.'
그것은 여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그 사건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나뭇잎이 곱게 물들어가던 어느 가을날 밤, 양씨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목사님, 밤 늦게 죄송합니다. 꼭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전에 제가 목사님의 말씀을 따르기는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굉장히 분했습니다.
그래서 옆집 사람이 한 짓을 오랫동안 잊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지 뭡니까?
글쎄 옆집 황소 일곱 마리가 우리 집 밭에서 실컷 뜯어먹고 있는 겁니다. 제 눈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옆집 사람이 그걸 보고 양심의 가책을 받았는지, 저한테 와서 난처한 얼굴로 이러는 겁니다.
'양씨, 어떻게 배상해야 할까?' 처음 생각 같아서는 그 황소 일곱 마리를 냅다 끌어오고 싶었지요.
하지만 목사님께 먼저 여쭈어 보아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목사님, 이제 제가 이겼지요? 그렇지요? 돼지 다섯 마리에 황소 일곱 마리라니,
목사님 말씀대로 하나님은 정말 제가 잃은 것보다도 더 많이 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양씨의 얼굴은 커다란 이익을 얻게 되리라는 기대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기대를 저버릴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형제님, 형제님은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
앙갚음하려는 마음을 버리시고 그분에게 용서하는 마음을 보여주십시오.
형제님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것으로 갚아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양씨의 얼굴이 갑자기 침울해졌다. 그는 올 때와는 달리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맥빠진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다음 날 저녁, 양씨는 또 한번 신이 나서 나를 찾아왔다.
"목사님 말씀이 또 맞았어요! 하나님이 정말 더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어제 목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옆집 사람에게 아무런 배상도 받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오늘 오후에 그 사람이 돼지 아흔 마리를 끌고 우리 집에 왔지 뭡니까?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돼지 전부 자네 껄세. 내가 자네 때문에 지난밤에 한숨도 못 잤어.
지난 일로 틀림없이 화가 잔뜩 났을 텐데 왜 내 황소를 달라고 하지 않느냐 말이야.
내가 그걸 생각하느라고 머리가 다 빠개지는 것 같아.
자, 자네 돼지가 낳은 새끼 열 여덟 마리씩 다 합해서 아흔 마리 전부 데려왔으니 다 가져가게.
그리고 이제부터는 이웃끼리 잘 지내보세."
양씨는 예기치 않은 이 이야기를 듣고 흥분해서 나한테 뛰어온 것이다.
"생각해 보세요. 별안간에 이렇게 많은 돼지를 되돌려 받은 것도 굉장하지만,
지금까지 옆집에서 그놈들 전부를 먹인 먹이를 생각하면
정말 하나님이 제가 손해본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주셨지 뭡니까?
이제 저는 확실히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이것보다 더 좋은 일이 뭔지 아십니까?"
좋아라 하던 양씨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마을 전체가 우리를 예수 믿는 사람으로 인정하게 된 겁니다.
이거야말로 하나님께 받은 최고의 선물이 아니겠습니까?"
5.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참사랑이란
문둥병은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쉰여섯 되신 그 아주머니에게도 문둥병이 재발했다.
몸과 얼굴이 부어오르고 양쪽 눈과 콧구멍에서 고름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다른 마을 사람들은 아예 그 집에 발길을 끊어버렸고,
나이 지긋한 교회 어른 한 분은 그 아주머니를 소록도로 다시 보내고자까지 했다.
게다가 소문은 꼬리를 물고 이웃 동네까지 퍼져나갔다.
심한 불안과 절망에 빠진 아주머니는 한꺼번에 많은 양의 약을 먹어버렸다.
차라리 죽어서라도 문둥병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도리어 위만 상해서 이제는 제대로 먹거나 마실 수도 없게 되었다.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그렇게 두 주가 지나갔다.
내가 찾아갔을 때 아주머니는 아무런 기력 없이 누워있었다.
아주머니는 나를 알아보고는 간곡히 부탁하기 시작했다.
"목사님, 제발 저를 다시 소록도로 보내지 말아주세요.
저는 두 번 다시 소록도에서 문둥병자로 살고 싶지 않아요!"
"그럼요. 하지만 여기 그대로 계시려면 건강을 빨리 되찾으셔야 합니다.
아무 거라도 좀 잡수어 보세요!"
"먹을 수가 없어요."
아주머니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부엌을 내다보니 아궁이 위에 생선찌개가 담긴 냄비가 있었다.
나는 숟가락으로 찌개를 떠서 맛을 보았다.
아주머니는 입을 다물지 못할 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내가 병에 옮을 것을 겁내지 않고 자신의 숟가락을 쓰는 것에 깜짝 놀란 것이다.
나는 생선찌개를 가득 떠올린 숟가락을 아주머니에게 건넸다.
"맛 좀 보세요. 아주 맛있는데요!"
아주머니는 내가 건넨 국물을 꿀꺽 삼켰다.
'아주머니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드실 텐데...... 내가 함께 있으면 어떨까?'
나는 신중하게 생각해본 다음,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냄비가 텅 빌 때까지
아주머니와 함께 숟가락 하나로 번갈아가며 찌개를 먹었다.
배부르게 먹은 송씨 아주머니는 금세 잠이 들었다.
잠든 얼굴을 들여다보니 온통 고름투성이어서 아주 끔찍해 보였다.
나는 수건으로 고름을 깨끗이 닦아냈다. 닦아도 닦아도 고름은 다시 흘러나왔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그 누런 액체를 비추었다. 고름이 마치 금처럼 반짝였다.
"자매님, 자매님 얼굴에 금이 정말 많기도 하네요!"
나는 크게 소리내어 말했다.
내가 어떻게 아주머니에게 나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었을까?
나는 그 동안 아주머니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었는지!
나는 건강한 사람이고 아주머니는 문둥병자였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내게 잔잔한 웃음을 보내주었다.
내가 그 아주머니의 숟가락을 썼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주머니에게 입맞춤과도 같은 것이었다.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담이 무너졌다.
그때 나는 참사랑이란 바로 내가 그 사람의 자리로 옮겨가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 아주머니 앞에서 나는 그분과 똑같이 문둥병자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이 아주머니에게 감사했다.
아주머니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내게 가르쳐 주었다.
하나님은 바로 나의 자리에 오셔서 나와 하나님의 사이를 막고 있던 담을 허물어 버리신 것이다.
6.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지체 높은 사람의 방문
어느 나른한 봄날 저녁에 군수가 나를 찾아왔다.
군수처럼 지체 높은 사람이 우리 마을에 찾아온 적은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김 목사님이십니까? 지금에야 찾아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사실은 우리 도지사 사모님께서 목사님을 꼭 만나고 싶어하셔서 말입니다.
내일 시간을 내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깜짝 놀랐다. 그렇게 지체 높은 분이 어디에서 내 말을 들었을까?
"혹시 다른 사람과 저를 혼동하신 것 아닙니까?"
나는 좀더 신중을 기하기 위해 되물었다. 그런데 군수는 영호에 살고 있는 내가 틀림없다고 말했다.
다음 날 급한 환자를 심방할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군수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날짜를 낼 모레로 연기할 수 없을까요? 그날은 시간을 낼 수 있겠는데요."
군수는 아주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어느 누구도 군수에게 이렇게 말한 사람이 없었나보다.
"음 목사님이 정 그러시다면 목사님의 대답을 그대로 전하지요."
다음날 아침 군수가 또 찾아왔다.
"내일 오후 두 시가 괜찮으시다면 기꺼이 오시겠답니다."
그가 돌아가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우리 마을 길에
무언가 덜거덕거리는 요란한 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영호는 국도에서 약 6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 있기 때문에
마을로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고르지 못한 들길을 통하는 것뿐이었다.
그 요란한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알아보려고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때 저만치 한 무리의 일꾼들이 트럭과 불도져를 몰고 마을 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체 높은 사람이 방문할 들길에 자갈을 깔고 땅을 평평하게 고르기 위해서 였다.
약속한 날 점심시간에 군수와 면장과 경찰서장이 공무원 몇 명을 거느리고 미리 왔다.
마을 분위기가 잔뜩 들떠 있었다.
그렇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실제로 본적이 지금껏 한 번도 없었던 탓이었다.
정확하게 오후 두 시가 되자 도지사 부인이 도착했다.
부인은 스물다섯 명의 다른 부인들과 함께 왔다.
상류사회의 부인들이 가난한 우리 마을에 모두 모인 것이다.
물론 나도 긴장이 되었다. 도대체 우리 마을에는 왜 온 것일까?
도지사 부인은 서울에서 누군가에게 내 얘기를 듣고,
문둥병자들의 교회를 섬기는 이 목사에게 호기심을 품게 되었다.
그 부인은 자신의 삶에 의미를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부인은 그토록 풍요로운 생활을 하면서도 만족할 수 없었다.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그 부인의 갈증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부인은 영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기를 원했다.
"모두 교회로 가시지요. 이렇게 오셨으니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시다!"
나는 그 사람들을 모두 교회로 안내했다.
도지사 부인이 이 특별 예배에서 자신이 찾고 있던 것을 찾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부인은 떠나기 전에 내게 물었다.
"목사님, 목사님께 필요한 것을 하나 해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떠나실 때 우리 마을 사람들과 악수를 해주시겠습니까?"
부인은 확실히 불쾌한 듯 했다.
그러나 자가용에 오르기 전에 어떤 할머니 한 분에게 재빨리 손을 내밀었다.
할머니에게는 분명히 큰 영광이었다. 할머니는 그 후로 계속해서 그 부인을 위해 기도했다.
나중에야 나는 그 지체 높은 부인이 손씻을 물을 준비하기 위해
차들이 줄줄이 서서 기다려야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지체 높은'분의 방문이 있은 후 우리 마을에는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국도와 연결되는 길에는 콘크리트가 깔렸고, 전화도 연결되었다.
그리고 두 주 후에는 내 책상 위에 전화가 놓이게 되었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아침, 낯익은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들려 왔다.
"목사님, 목사님을 우리 집에서 모이는 성경공부 모임에 모시고 싶습니다. 와 주시겠습니까?"
나는 그 부인의 초대에 기꺼이 응했다. 그 부인은 자신이 찾고 있던 것을 우리에게서 찾았던 것이다!
7.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아직 늦지 않았다.
다시 봄이 찾아왔다. 모두들 들일을 하러 나갈 무렵이었다.
나는 근처를 돌아보려고 이웃 동네 쪽으로 갔다.
한 채소밭에서 몸집이 작은 할머니가 쪼그리고 앉아 잡초를 뜯고 있었다.
할머니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더니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
잠시 후에 할머니는 비틀린 잇몸이 부끄러웠는지 당황하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아이고, 부처님 오셨네! 저는 항상 살아계신 부처님 만나는 것이 소원이었는디."
할머니는 기쁨에 넘쳐서 말했다.
"아닙니다."
나는 놀라서 대답했다.
"저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에요."
이 말밖에는 다른 대답할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가 '목사'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예수가 누구다요?"
할머니는 알고 싶어 했다. 나는 할머니 옆에 주저앉아서 말했다.
"그분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예요. 예수는 우리말로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뜻이고,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구원자'라는 뜻이지요.
예수님은 오래 전에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어요.
예수님은 할머니나 저와 똑같은 사람이셨지만, 또 하나님의 아들이기도 하십니다.
그 이름의 뜻대로 하나님은 인간을 도와주시고
무엇보다 흉악한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 주셨지요.
예수님은 친구가 많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를 너무나 미워해서 죽여버렸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 주셨어요.
하나님은 이처럼 인간을 돕고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오늘도 예수님을 모든 나라에 보내 주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 어디를 가도 예수님의 백성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진짜로 우리한테 찾아온당가요?"
할머니는 내 말을 막고 물었다.
"그럼요. 바로 이곳에도 오십니다."
그 사실은 할머니에게 중요한 것이었다. 내 말을 듣고 있는 할머니의 눈이 반짝였다.
할머니는 80년동안 부처님을 공양했다.
그러나 그 조각상은 눈 앞에서 항상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할머니는 절에서 기도를 드리기도 하고 조상의 무덤 앞에서 제사를 드리기도 했지만
의지할 곳이 없기는 마찬가지이였다. 하루가 다르게 힘이 빠지고 죽음의 공포가 다가왔다.
그러나 할머니를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희망의 빛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저도 목사님처럼 예수님 백성이 될 수 있을까 모르겄네요. 나이가 벌써 여든아홉이나 되았는디!"
할머니는 기대감에 부푼 목소리로 물었다.
"나이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시면 할머니도 예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할머니에게 용기를 드리고 싶었다.
"그러면 지금 저를 예수님한테 데꼬 갈 수 있으시오?"
할머니는 조급하게 물었다.
"내일 새벽 네 시에 영호에 있는 우리 교회에 오세요. 매일 새벽기도회가 있거든요.
거기 오시면 예수님을 만나실 수 있어요."
"새벽기도회가 뭐다요? 예수님이 진짜 거기 있어요? 그러먼 제가 제일 좋은 옷 입고 가야 쓰겄네요."
"새벽기도회는 새벽에 교회에 함께 모여 하나님과 예수님께 노래하고 기도하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신 일과 말씀을 적어 놓은 책을 읽습니다. 우리는 그 책을 성경이라고 부르지요."
"근디 저는 글을 몰라요."
"걱정마세요. 예수님이 할머니와 말씀하실 길을 찾으실 테니까요. 그럼 내일 새벽에 꼭 오세요."
그날 밤 태풍을 동반한 큰 비가 밤새도록 퍼부었다. 길에는 물이 넘쳐 흘렀고 전기는 끊어졌다.
이런 날 노인이 새벽기도회에 나오기는 힘들겠지 .
그런데 성가대가 막 찬양을 시작했을 때였다.
교회 문이 열리더니 그 몸집 작은 할머니가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손에는 손전등을 들고 있었다.
교회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할머니에게 쏟아졌다.
할머니는 얼굴을 붉히며 무릎을 꿇고 앉더니 두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성경 한 부분을 읽은 다음 설교를 했다.
설교 시간 내내 무릎을 꿇고 앉아 무언가를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예배가 끝나고 다들 돌아가고 난 후에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로 왔다.
할머니가 아는 사람은 교회에서 나 혼자뿐이었다. 할머니는 나에게 말했다.
"목사님, 진짜 고맙습니다. 진짜로 제가 예수님을 봤어요."
"그러십니까? 어디에서요?"
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목사님 옆에 계신 거를 똑똑히 봤당게요! 목사님하고 똑같이 생겼드랑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제가 볼 때에는 목사님이나 예수님이나 똑같당게요."
할머니는 확신하고 있었다.
전에는 그런 생각을 한 번도 못했다. 그러나 할머니의 말이 맞다.
우리는 곁에 있는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도 예수님을 볼 수 있다.
나는 할머니에게서 중요한 것을 배우게 되었다.
나는 또 하나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할머니, 아까 예배 시간에 혼잣말씀을 계속 하시는 것 같던데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인자 제가 예수님 만났응께, 인제까지 저 살아온 거 예수님한테 싹 다 애기했당게요.
예수님이 내 얘기 다들어준께 정말로 좋아라우."
할머니는 고마워하며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나는 할머니가 마음속으로 무엇인가를 새로이 품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근디 제가 성경책 읽을라믄 어째야 쓰까요?"
할머니는 도움을 청하는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매일 새벽기도가 끝난 후에 나에게 오시라고 말씀드렸다.
말씀드린 대로 할머니는 매일 새벽 나를 찾아왔고,
내가 성경을 펴서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읽어나가면 한 글자 한 글자 따라 읽었다.
이렇게 해서 할머니는 성경구절을 배우게 되었고 새벽기도 때마다 배운 것을 자랑스럽게 외워보이곤 했다.
그렇게 두세 달이 지난 후였다.
할머니는 내가 가르쳐드리지 않은 성경구절들을 외우고 있었다.
"아니, 할머니! 어디서 그걸 배우셨어요?"
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처음에는 목사님 따라서 외았는디, 예수님이 도와서 인자는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았당게요."
마침내 할머니는 글을 깨우친 것이다!
그 후에 할머니는 아예 우리 마을로 이사를 오셨고, 손자들도 청년부 모임에 나오게 되었다.
할머니가 직접 손자들에게 예수님 이야기를 전했던 것이다.
8.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변함없는 사랑
처음 영호에 갔을 때 나는 그곳 사람들의 사정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나 점차 사람들의 신뢰를 얻게 되면서 비로소 사람들의 사연을 조금씩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중에서 한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어느 마을에서 젊은이 한 쌍이 결혼했다.
아내가 임신하게 되자 부부는 정말 기뻐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에게 문둥병이 발병했다.
정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아내는 문둥병자들을 격리 수용하는 소록도로 가야만 했다.
법적으로 남편은 아내와 이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내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그대로 버려둘 수 없었다.
오히려 아내와 함께 소록도로 들어가 살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관계당국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자 남편은 아기를 부모님 집으로 데려갔다.
이별은 이 젊은 부부에게 너무나도 큰 고통이었다. 남편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나도 문둥병자가 될거야. 그러면 내 마누라, 내 자식과 함께 살 수 있을 것 아냐!"
그는 절망으로 절규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일 년이 지난 후 그는 처음으로 아내가 있는 섬을 찾아 갔다.
아내를 보았을 때 그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얼굴에 문둥병으로 인한 흉터가 있긴 했지만 아내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전 여기서 한 사람을 알게 되었어요!"
아내가 남편에게 주저없이 말했다.
" 물론 남자겠지?"
남편은 분노와 질투를 감추려고 애쓰며 말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저한테는 당신밖에 없어요.
제가 말하는 그분은 저뿐 아니라 당신도 사랑하시는 분이에요."
"그 자가 누구야? 대체 어디 있지? 얼굴이나 한번 보고 싶군!"
아내는 그에게 작은 책을 한 권 건네주었다.
그것은 목사님이 선물로 주신 신약성경이었다.
소록도로 간 아내는 예수를 믿게 되었던 것이다.
"여보, 이 책은 우리 두 사람에게 다시 희망을 줄거예요.
그것을 읽으면 저의 새 주인이 어떤 분인지 잘 알 수 있어요. 꼭 읽어보세요!"
두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와 다름없이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
시간은 빨리 흘러 헤어질 시간이 왔다. 이별은 이 부부에게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남편은 성경을 읽으면서 믿음의 소망을 아내와 함께 나누게 되었다.
그는 그후 5년 동안 한결같이 아내가 돌아올 날만을 기다렸다.
아이를 언제까지 엄마 없이 키워야 하는지 .
그러던 어느 날 소록도에서 소식이 왔다. 아내의 문둥병이 음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아내는 육지에 있는 가족에게 올 수 있었다.
그들은 몇몇 다른 문둥병자의 가족과 함께 영호로 이사했고, 여기에서 새 생활을 시작했다.
건강한 아이들도 태어났다.
이렇게 해서 이 작은 마을은 점점 커져 갔다. 그들은 마을에 예배당도 건축하였다.
그러나 이웃 동네 사람들은 그들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이 보기에 이들은 언제까지나 똑같은 문둥이일 따름이었다.
그들이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뜨거운 믿음으로 희망을 잃지 않았다.
매일 아침 해가 뜨기 전, 그들은 작은 교회에 모여 찬양하고 기도하며 성경을 읽었다.
겨울날 영하의 날씨에도 그들은 손뼉치며 찬양하면서 몸을 따뜻하게 하였다.
하지만 이 교회에 오겠다는 목사님은 한 명도 없었다.
긴 세월이 흘렀다. 처음 영호에 온 사람들은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문둥병이 재발하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한 중년 부인은 약을 먹어도 아무런 효과가 없어서 발가락을 절단해야만 했다.
문둥병은 늘 그런 흔적을 남겼다. 그런데 그와 똑같이 이 마을에서 늘 하나님의 흔적이 있었다.
젊은 남편이 문둥병에 걸린 아내를 버리지 않았던 것처럼 하나님은 문둥병자들에게 신실하셨다.
그 부부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 영호 사람들은 몸이 다시 나빠질 때에도 용기를 잃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새 가정들이 늘어났다. 소록도에서 사람들이 왔다.
지금 영호에는 약 예순다섯 가정이 백 명이 넘는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9.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어떤 부유한 농부 이야기
영호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대부분 문둥병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이웃 지역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약점보다는 그 약점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 때문에
더 깊은 상처를 입게 된다. 때때로 그들도 그것 때문에 더 힘겨워한다.
그래도 '문둥이'들의 신앙생활은 점점 꽃을 피웠다.
우리의 예배 시간과 성경공부 시간은 점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어느 날 이웃 마을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 마을로 찾아왔다.
건강한 사람이 우리 마을에 찾아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 아주머니는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서 나를 찾아왔다. 그것은 정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목사님, 부탁이 있어서 왔습니다! 제 남편을 좀 도와주세요.
그 양반이 지금 많이 아파요. 한의한테도 가보고 양의한테도 가보았는데 전혀 차도가 없습니다.
절에 가서 불공도 드려보고 스님한테 부탁해서 치성도 드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무당을 불러다 굿을 했지만 그것도 효과가 없네요.
우리 동네 애들 말을 들어보니 예수님은 아픈 사람을 낫게 하신다던데 그게 정말입니까?"
아주머니가 이렇게 영호까지 와서 나에게 도움을 청하기까지 정말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아주머니,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나는 물었다.
"사실 예수님이 누군지 잘 몰라요.
그저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듣고 왔지만 예수님을 알고 싶습니다!"
아주머니는 정말 진지하게 말했고, 그 말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이리 들어오십시오. 좀 앉으시지요."
나는 성경을 펴서 신약을 몇 부분 읽어 주었다.
나는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기적적인 치료자나 마술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해주고 싶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그것도 성경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씀을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예수님이 병자들을 모두 치료해주신 것은 아니라는 말을 듣고도 실망하지 않았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그리고 남편되는 분께 꼭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저한테 들은 대로 말씀하시면 됩니다."
우리는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 부유한 농부의 아내는 몇 번씩이나 고개를 숙이며 고마워 했다.
며칠 후 그 아주머니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목사님, 저희 집에 좀 와주세요. 우리집 양반이 예수를 믿고 싶대요."
그래서 나는 기쁜 마음으로 교회 장로님을 모셔와 함께 출발할 채비를 했다.
그런데 그 부인의 안색이 변하더니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내게 귀엣말을 하는 것이었다.
"저 사람들은 말고요 목사님만 혼자 오세요."
아주머니는 우리 마을 사람들이 자기 집에 오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우리가 다같이 갈 수 없다면 저도 안 가겠습니다."
나는 불편한 마음을 표현했다. 농부의 아내는 잠시 생각하더니 마침내 결심을 했다는 듯이 말했다.
"좋습니다. 모두 함께 가시지요."
우리는 모두 이웃 마을로 갔다. 아주머니가 방문을 열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한 남자가 고통을 못 이겨 웅크린 채 방바닥에 꼬꾸러져 있었다.
그는 며칠 전부터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했다고 했다. 우리는 그의 주변에 둘러 앉았다.
우리는 먼저 찬송을 몇 곡 불렀다. 그리고 나서 내가 집에서 미리 찾아온 성경 구절을 읽었다.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던 농부의 얼굴이 점점 편안해졌다.
우리는 차례차례 돌아가며 그를 위해 마음을 다하여 기도드렸다. 기도는 길었다.
그 농부에게 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육체의 치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얻는 것이었다.
농부는 이내 잠이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잠이었다.
아주머니가 고마워하며 우리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돌아온 후에도 그 농부를 생각하며 기도했다.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우리에게 깜짝 놀랄 일이 생겼다.
농부의 가족이 모두 새벽기도회에 나온 것이다.
병들었던 농부는 옷을 멋있게 차려 입고 가족들보다 먼저 교회에 왔다. 그는 건강해 보였다.
이 농부의 마음속에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났는지!
이전에는 문둥병자들을 멀리하던 그가 이제는 우리 동네 사람들의 친구이자 후원자가 되었다.
그는 바로 뛰어다니며 자기 마을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있다.
우리의 믿음은 겨자씨만큼 작은 것이었지만 이 일로 인해 큰 믿음의 용기를 얻게 되었다.
10.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안녕하세요?
한국에서는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데 이것은 "평안하십니까?"라는 뜻이다.
이 인사말과 관련된 일이 하나 생각난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 알고 지내는 여의사가 있었다.
오십대 초반인 그 의사는 광주에서는 꽤 널리 알려진 교수였다.
"자네가 그 의사와 한번 이야기해볼 수 없을까? 벌써 몇 달 동안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군.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은 아니지만 왠지 자네가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친구가 나에게 제안해왔다.
영호에서도 할 일이 많긴 했지만, 이 여교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모르는 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고속버스를 타고 광주에 갔다. 사무실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커다란 문패에 그 교수의 직함과 이름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가 방문한 것에 그리 놀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두 시간이 넘도록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주로 미국에서 보낸 유학생활과 화려한 업적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아주 거창하게 설명하더니 갑자기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감탄하며 맞장구쳐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자 그는 계속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갔고
마침내 결정적인 지점에 이르렀다. 지난 해 좋은 교수 자리가 하나 생겼다.
이 교수는 그 자리를 꼭 얻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부풀어 여러 가지로 애를 썼지만
그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도 그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자기 자신이 그 자리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 실패를 맛본 후에 그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게 되었다.
매사에 만족할 수 없었고 두통과 우울증까지 생겼다.
여기까지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야 그는 자신의 상한 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전 모든 걸 소유하고 있습니다. 돈도 많고 이름도 꽤 알려졌죠.
좋은 직장도 있고 사랑하는 가족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이제 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지금 몹시 불안합니다. 목사님, 말씀해 주세요.
어떻게 해야 다시 평안한 마음을 찾을 수 있을까요?"
나는 대답했다.
"교수님, 저는 교수님의 우울증에 대해서 의학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문둥병자들이 함께 모여 사는 마을에 한번 오십시오.
그러면 제가 만족이 무엇인지 보여드리겠습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 의사 교수는 정말 우리 마을에 찾아왔다.
우리는 마을 주위를 함께 거닐다가 채소밭에서 일하고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다.
우리를 본 아주머니는 밝은 얼굴로 인사했다.
"목사님, 이것 쪼까 보씨오. 저번주에 손가락이 세 번째로 끊어져 불렀거든요.
근디 아직 일곱 개는 멀쩡하다니까요. 정말 감사해 죽겄네요."
어안이 벙벙해진 교수는 나를 바라보았다.
"저게 무슨 말이에요? 대체 뭘 감사한다는 거지요?
저 아주머니는 늙고 못생긴 데다가 문둥병 환자이고 손가락도 일곱 개밖에 안 남았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만족하면서 웃을 수가 있는 거죠?"
나는 놀라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그 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바로 다른 점입니다. 저 아주머니는 가진 게 별로 없습니다.
더군다나 손가락도 일곱 개밖에 없지요.
그렇지만 자기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아주머니의 얼굴에서 볼 수 있는 저 기쁨은 하나님의 값진 선물이지요.
자신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교수님은 건강하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큰 하나님의 선물에 대해 교수님은 이제껏 한 번도 감사하지 않았지요.
교수님은 항상 자기 힘으로 기쁨을 만들려고 하지만 교수님 스스로 기쁨을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제까지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 당연하지요."
그는 이 진리를 깨달았을까?
우리는 아무말 없이 한참 걸었다. 교회 앞에서 그가 멈춰 섰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한 눈치였다.
"목사님, 저는 중요한 걸 배웠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리 적더라도 그것을 감사할 때 기쁨과 만족이 온다는 것을요.
하지만 전 도무지 누구에게 감사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상황이 나빠질 때 다른 사람을 원망하기보다는 자신을 질책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우리는 조금 후에 집에 도착했다.
"잠깐만 기다리시겠습니까? 조촐한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나는 식사기도를 드리고 나서 그에게 음식을 권했다.
상 위에는 밥 한그릇과 김치와 맵게 무친 나물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그는 한 술도 뜨지 않았다. 그의 눈빛을 보니 무엇이 문제인지 알 것 같았다.
"목사님, 이걸로 충분하세요? 고기나 생선도 없이 밥하나 김치 하나로 식사하기가 어렵지 않으세요?
대체 목사님은 뭘 가지고 그렇게 만족하신다는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목사님이라면 서울에서도 아주 좋은 자리를 얻을 수 있을 텐데
가구도 없는 방 하나에 검정 고무신으로 지내다니 저로서는 정말 이해가 안되네요.
목사님은 하나님께 지금의 상황을 감사하시나요? 아까 하나님께 기도하셨지요?
도대체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지요?"
나는 질문에 일일이 대답하지 않았다.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교수님, 지금 혹시 6,000원 정도 있습니까?"
그에게 그만한 돈이 없을 리가 없었다. 우리는 함께 시내로 나가 서점에 갔다.
나는 성경을 하나 집어 그에게 건네 주었다.
"이 책을 읽으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될 것이고, 평화의 샘을 만나게 될 겁니다."
그 교수는 성경을 가지고 다시 광주로 돌아갔다. 나는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렸다.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나는 그 교수를 잊지 않고 늘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 교회 사람들은 그를 위해 함께 기도했다.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 갑자기 버스 한 대가 마을 어귀에서 들어서며 큰 소리로 경적을 울렸다.
서른다섯 명 가량의 사람들이 차에서 내렸다. 그 여교수와 조교 의사들, 그리고 의과 대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일주일 내내 우리 마을과 근방에 사는 환자들을 무료로 진료해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생활필수품도 몇 상자씩 가져왔다. 일요일 저녁에 우리는 모두 함께 예배를 드렸다.
이 방문으로 우리만 도움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교수와 교수를 도와주러 함께 온 사람들의 얼굴에는 만족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 의사는 평안을 찾는 질문의 답을 찾은 것이다. 하나님이 그에게 평안을 주셨다.
"안녕하세요?"
"평안하십니까?"
11.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가족의 반대를 이겨낸 새댁
이웃 마을에 사는 어는 젊은 새댁이 우리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새댁은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캄캄할 때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집을 몰래 빠져 나오곤 했다.
우리는 앞으로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시댁이 워낙 엄격한 유교 집안이었기 때문에 새댁은 공개적으로 믿음을 고백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시댁 식구들은 며느리의 낯선 신앙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어느 날 아침 시아버지가 마당에 나와 대문 곁에 서 있었던 것이다.
"얘야, 이렇게 일찍 들에 나갔다 오는 길이냐? 그런데 왜 그렇게 손이 말끔하지?
이제 바른 대로 말하거라. 너, 문둥이 마을에 있는 예수쟁이들과 함께 있다가 오는 거지?"
새댁은 시아버지의 다그침에 놀라고 겁이 나서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깬 가족들이 모두 마당으로 뛰쳐 나왔다.
젊은 남편은 황당한 얼굴로 자기 부인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무슨 망신당할 짓이라도 했어?"
"니 처가 문둥이 마을에 있는 교회에 다닌단다. 여태까지 우리를 감쪽같이 속이고 말이다.
그래도 누가 내게 알려줬으니 망정이지.
그래서 내가 이 아침부터 니 처를 문간에서 지키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발칙한 것 같으니라구!"
노인은 뒷짐을 진 채로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남편이 기겁해서 아내를 꾸짖었다.
"아버지가 당신을 야단치는 것은 당연해.
왜 문둥이 들이 믿는 다른 나라 신을 믿어가지고 우리 집안을 쑥대 밭으로 만드는 거야?"
다시 시아버지가 말을 가로챘다.
"네가 예수교를 믿어서 우리 집안의 기강은 엉망이 됐다.
조상님들이 우리를 보호하시다가도 너 때문에 거두어 가시지 않겠느냐?
예수쟁이들이 조상들께 제사도 안 드린다는 말은 나도 들었다. 너도 이제 제사를 안 지낼 셈이냐?"
모두 아버지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새댁은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때부터 집안 식구들이 모두 새댁을 구박하고 구속하기 시작했다.
새댁은 그 후로 새벽기도회에 나올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새댁이 집에서 어떤 어려움을 당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몇 주 후에 새댁은 가족들의 강요에 못이겨 교회에 나오는 것을 단념하고 말았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새댁은 일을 하다가 갑자기 쓰러지더니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상태는 하루 종일 계속되었다.
저녁에 내가 심방을 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남편과 시누이가 그 새댁을 옮겨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 처가 몹시 아픕니다. 다리에는 힘이 하나도 없어서 걷지도 못하고 헛소리만 해대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남편이 말했다. 난 그들을 바라보다가 함께 기도하자고 말했다.
우리는 새댁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나누어 앉았다. 나는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했다.
특히 이 여인이 견뎌내야 했던 내적 싸움을 위해 기도했다. 시누이가 울기 시작했다.
"저희도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저희 때문에 언니가 아프다니! 목사님,
저희가 정말 잘못했어요. 이 죄를 어떻게 하면 갚을 수 있을까요?"
시누이는 새언니가 낫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죄를 뉘우치는 마음과 새언니에 대한 염려를 할 수 있는 대로 모두 하나님께 내려 놓으십시오."
두 사람은 내 말대로 소리내어 함께 기도했다.
갑자기 새댁이 눈을 뜨고 입술을 움직였다. 기도하려는 것 같았다.
나는 새댁이 잘 아는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새댁도 같이 찬송하려는 듯이 입술을 움직였다. 반응을 보이지 시작한 것이다!
남편이 아내에게 찬송가를 내밀었다.
그 젊은 여인의 목소리가 어찌나 크고 또렷하던지 우리는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다시 한번 더 기도를 드렸다. 그러고 나서 남편은 아내를 부축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남편과 여동생이 아픈 새댁과 함께 기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새댁의 몸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친척들은 남편과 그 여동생의 마음이 변해가는 것을 보고
예수교가 사람을 그렇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아주 놀라워했다.
새댁과 남편과 시누이는 한 주도 빠짐없이 영호로 예배드리러 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조상의 보복도, 문둥병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지난번에는 시아버지까지도 내가 무엇을 설교했는지 물어보고,
아무도 몰래 아들의 성경을 뒤적거리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족의 반대는 없어졌다.
12.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슬픈 이야기
서울에서 친구 하나가 영호로 나를 찾아왔다. 우리는 주변을 산책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우리 교회가 사들인 땅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거기에 공동묘지를 만들 생각이었다.
한국에는 돌아가신 분들을 가족의 땅에 묻는 풍습이 있어서,
시골에 가면 여기저기에서 비석이 세워진 둥그런 무덤을 쉽게 볼 수 있다.
친구는 들판을 두루 돌아보았다. 멀지 않은 채소밭 저편에 무덤 하나가 외롭게 솟아 있었다.
그 무덤 위로 풀이 드문드문 나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저기에는 누가 묻혀 있는 거야? 묻힌 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친구는 그 무덤에 관심을 보였다.
"한번 가보겠나? 참 슬픈 일이 있었지."
우리는 풀이 무성한 곳을 지나 그 무덤 앞에 섰다.
"십자가가 새겨져 있군. 자네 교회 교인이었나?"
친구가 내게 물었다.
"작년 11월에 여기에서 한 청년을 장사지냈네. 겨우 스물두 살이었지.
비참한 죽음이었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거든."
난 친구가 이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내일 아침 우리 교회에서 가장 연로하신 박씨 할아버지를 자네에게 소개해 주겠네.
여기 누워 있는 청년의 아버지 되는 분이시지.
그 부부는 청년이 아기였을 때 양자로 데려왔다는군.
청년은 소록도에서 태어났는데 생모는 해산할 때 죽었지. 아버지는 누군지도 모르고 말이야.
사람들은 먼 친척집에서 아이를 거두어주길 바랐지만 친척들은 그 아이를 맡으려 하지 않았다네.
문둥병이 워낙 무서운 병이고 아이가 정말 건강한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니 그랬겠지.
그러다가 박씨 할아버지가 그 소식을 들은거야.
할아버지가 아내와 함께 소록도를 떠나도 된다는 허락을 막 받았을 때였지.
두 사람은 그때까지 결혼을 위해 육지로 가려고 애를 쓰던 참이었어.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두 사람도 소록도에서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된 사이지.
두 사람은 그 갓난아기의 사정을 듣고서는 곧장 아이를 데려왔다네.
그리고 영호로 이사해서 친자식처럼 정성껏 키웠지. 두 사람은 아이를 낳을 수 없었거든.
아이는 자라서 학교도 잘 다니고 부모님께 큰 기쁨을 안겨 주었다네.
부부는 아이에게 성경 이야기도 들려주었지. 그 아이는 아주 인기가 좋은 청년으로 자랐다네.
그의 기쁨은 우리 모두의 기쁨이었지. 우리가 아는 그 아이는 친절하고 인정 많은 젊은이였다.
학교를 마친 청년은 군에 입대했지. 그는 어느 소도시 근방에서 군대생활을 했어.
그리고 거기서 한 아가씨와 시간을 보냈지.
그는 자랑스럽게 부모님께 도시에 사는 처녀에 대해 말씀을 드렸지.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있었지 결혼하기로 약속했다네.
물론 부부도 아들과 똑같은 심정으로 기뻐했네.
그들은 빨리 아가씨를 보고 싶은 마음에 집으로 초대했지.
그런데 몇 주가 지나도록 오지 않는 거야. 그때마다 아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곤 했지.
그런데 사실은 그 아가씨의 부모가 문둥병자들이 사는 마을에 가지못하게 딸을 막았던 거였네.
아가씨의 부모는 두 사람을 멀어지게 만들었고 청년은 절망에 빠졌지.
이 이야기의 마지막은 짤막하게 끝나고 말았네. 두 젊은이는 같이 도망가려고 했어.
아무도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곳까지 아주 멀리.
그러나 아가씨의 부모는 그것을 미리 눈치채고 딸을 친척집에 보내버렸다네. 청년은 크게 상심했지.
그는 영호에 와서 부모님의 서랍에 들어 있던 문둥병 치료약을 먹어버렸어.
부모가 청년을 발견했을 때에는 이미 시간이 너무 지난 후였네.
마을 사람들은 너무 놀라 할 말을 잊었다네.
물론 우리는 무엇이 이런 비극적인 결과를 불러왔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 .
박씨 할아버지 내외는 우리 마을이 보이지 않는 곳에 아들을 묻고 싶어했네.
그래서 산이 보이는 이 한적한 곳을 택한걸세."
우리는 아무말 없이 다시 영호로 돌아왔다.
한 젊은이와 그의 비극적인 이야기에 대한 생각에 잠긴 채.
13.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돌아온 아버지
"목사님, 목사님!"
나는 그것이 정씨의 목소리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는 우리 성가대에서 베이스를 맡아 노래하고 있었다.
내가 채 대답도 하기 전에 그가 허둥지둥 내 방에 들어왔다. 무슨 큰 일이라도 일어난 것일까?
"목사님, 아버지와 헤어진 지 사십 년 만에 아버지가 절 찾아오셨어요.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오늘 아침 갑자기 오셨어요!"
정씨는 내 팔을 잡고 나를 문까지 끌고 갔다.
"이리 오세요, 목사님. 저희 아버지를 소개해 드릴게요!"
그제서야 나는 그의 아버지를 알아보았다. 노인은 미닫이 문에 몸을 반쯤 숨기고 있었다.
그는 당황했는지 자신이 쓴 밀짚모자 테두리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들었다. 거센 비바람에 주름진 구리빛 얼굴이었다.
양쪽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 셋은 작은 상에 둘러 앉아 수박을 먹었다. 정씨의 아버지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 처와 저는 여덟 아들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아이들이 좀 큰 다음에는 밭에서 열심히 저희 일을 도왔지요.
그렇지만 우리의 기쁨은 얼마 안 가 깨지고 말았습니다.
넷째 놈이 열두 살에 문둥병에 걸린 겁니다.
우리 식구에게 그런 일이 생겼다는 것을 믿을 수도 없었고, 우선 동네가 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었지요.
우리는 그 사실을 오랫동안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근선이가 문둥병에 걸렸다는 말이 온 동네에 파다하게 퍼졌지요.
문둥병자는 가족과 고향을 떠나는 게 법이지만
저는 제 아들이 소록도에 산다는 건 꿈도 꾸고 싶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생각했지요.
저는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딴 도리가 없었습니다.
전 근선이를 데리고 산에 올라갔습니다. 한참을 올라가니 좁은 골짜기가 나오더군요.
절벽이 나오면 밀어버릴 생각이었지요. 그러면 그저 사고로 보일 테니까 .
절벽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가슴이 마구 뛰더군요.
저는 저를 따라오고 있는 근선이를 자꾸 돌아다보았습니다.
지금 이 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마침내 발 밑으로 좁은 골짜기가 내려다보였습니다. 저는 거기에서 아들의 어깨를 잡고 .
아니야! 내 아들을 떨어뜨릴 수는 없어. 그래, 차라리 같이 떨어져 버리자!
그런데 근선이 놈이 불안한 눈으로 날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엄마하고 형들하고 동생들을 생각해보세요.
아버지는 우리 가족에게 꼭 필요한 분이에요. 저 때문에 식구들을 내팽개치시면 안돼요.'
아들이 대견했습니다. 그 아이는 우리 식구 모두의 사랑을 합친 것보다 더 큰 사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골짜기를 빠져나왔습니다. 저는 아들을 바닷가까지 바래다주었지요.
작은 배 한척이 와서 아이를 소록도로 데려갔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저는 근선이가 죽었다고 말했어요. 사망신고까지 했지요.
근선이는 영원히 우리 앞에서 사라져야 했습니다.
세월은 화살처럼 지나갔습니다. 아들들은 모두 결혼해서 대부분 고향을 떠났지요.
제 처와 저는 그때까지 건강했기 때문에 어느 아들에게도 짐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끼리 살던 집에서 그냥 살았습니다.
그런데 제 처가 죽고 나자 의지할 데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몇 년 동안 먹고 사는 문제를 혼자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그럴 힘조차 없어져 버리더군요.
전 당연히 큰 아들네로 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리 달갑지 않은 존재라는 걸 담박에 알게 되었습니다.
한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지 아우네로 가보라더군요.
그래서 얼마있지 않아 짐을 꾸려 둘째 아들네로 떠났지요.
그렇지만 그 놈 집에서도 다를 게 없었습니다.
아들이 그렇게 많은데도 늙은 아비를 기꺼이 맞아들여서
편안히 죽게 해주는 자식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내가 잘못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뼈에 사무쳤습니다.
저와 제 처는 오직 아들들만을 위해 살아왔어요. 하지?우리는 잘못 살았습니다.
전 차량한 마음으로 소록도에 있는 아들을 생각했지요.
그때까지는 그 아이에 대해서는 일절 아무 것도 알려 들지 않았습니다.
다른 아이들을 위해 그 아이를 버린 거지요. 이 놈이 얼마나 죽일 놈인지!
저는 소록도에 가서 근선이 소식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벌써 섬을 떠나 결혼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근선이가 살고 있는 마을을 찾아 이렇게 영호에 오게된 겁니다.
사십 년이 지나서야 하나밖에 없는 진짜 아들놈한테 돌아온 거지요 .
저는 아들네 집 앞에서 오래 망설였습니다 .
근선이가 뭐라고 할까? 저는 원망만 실컷 듣고 쫓겨날 각오를 했습니다.
아비가 가장 필요할 때 저를 버렸으니, 무슨 말을 들어도 싸지 용기를 내서 오긴 왔지만
다른 아들들은 다 어떻게 하고 왔느냐고 하면 뭐라고 하나 .
도저히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서 돌아서려는 찰나에 어떤 여자가 내다보며 친절하게 말을 걸더군요.
'할아버지, 이리 들어오세요. 누구 찾는 사람 있으세요? 아까부터 서 계신 걸 보았는데.'
그 여자는 바로 제 며늘애였습니다. 그때 외양간에서 나오던 근선이가 저를 알아보았습니다.
아들놈은 저를 끌어안고 울더군요 .
'애비는 사십 년 동안 네 소식 한 번 알아보지 않았다. 내가 원망스럽지 않으냐?'
'처음 소록도에 갔을 때는 너무 외로웠지요. 밤마다 집 꿈을 꾸었어요.
식구들을 미워하면서, 내 운명을 원망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문둥병자이면서도 저와는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반발심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끌리더군요.
그 사람들은 자신을 문둥병자 이상의 어떤 존재로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저는 그들 중 한 사람과 사귀게 되었지요.
그분은 병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대해 말씀해 주셨지요.
그리고 그후로 예수님께 선물로 받은 사랑을 나에게 주었지요.
저는 그 사람들을 따라서 예배와 성경공부에 가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예수를 믿게 되고 난 다음부터는 식구들에 대한 미움을 잊게 되더라구요.
살고 싶은 마음도 생기구요. 전에는 그냥 죽고만 싶었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살아있다는 것 자체를 기뻐해야 할 이유가 생겼지요.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에서 나를 떼어놓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으니까요.
그러다가 집사람을 만나게 되었어요.
우리는 사랑하게 되었고 언젠가는 육지로 나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랐지요.
그리고 어느 날 우리 꿈은 현실이 되었어요.
우리는 섬을 떠나서 결혼할 수 있었고 이곳 영호에서 가정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우린 우리와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어요, 아버지.'
그토록 긴 세월 끝에 만난 아들이 오늘 아침에 제게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손주놈들도 보여주더군요 ."
할아버지는 긴 이야기를 마치고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이제 할아버지는 아들과 가정을 찾았다.
집을 떠난 탕자가 돌아오듯이 잃어버렸던 아버지가 집에 돌아온 것이다.
"우리 마을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리 세 사람은 손을 잡고 힘차게 흔들었다.
14.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확성기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교회탑에서 울리는 찬송가 소리였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다. 그날 밤 나는 거의 눈을 붙이지 못했다.
거센 돌풍이 집과 외양간을 할퀴고 지나갔다. 그러나 잠을 자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어제 저녁 느지막이 걸려온 전화 때문이었다.
"목사님, 접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아, 형제님이십니까? 무슨 일이 있으세요?"
"30분 전쯤에 택시 한 대가 옆집 나씨네 앞에 서더라구요.
그래서 창문으로 내다보니까 그집 애 택상이를 택시에 태우는 겁니다.
집사람을 불러서 '저 집에 또 뭔 일이 났나보다'고 말했지요.
택상이와 택상이 엄마가 택시를 타고 떠난 다음에 그 집 문을 두드렸더니
할머니가 열어주시는데 울어서 눈이 잔뜩 부어 있더라구요.
집안에서 나씨가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게 들리데요.
술에 잔뜩 취한 채로 나와서는 노모를 확 밀어제치고 제 얼굴 앞에서 주먹을 휘둘러 대는데,
나 원 참. 그러더니 '내집에서는 내 맘대로 할거니까 내버려두라구!' 하고
소리를 지르고는 문을 쾅 닫아버리는 겁니다.
목사님,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애비라는 사람이 자식을 병원에 갈 정도로 패다니, 게다가 이게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에요.
이대로 가만이 앉아서 보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 같은데요.
게다가 그 집도 우리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까?
목사님, 나씨와 이야기 좀 해보세요. 혹시 목사님 말씀은 들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하지만 제가 얘기했다고는 하지 마세요. 나씨와 싸우고 싶지 않으니까요."
박씨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나는 전화가 끊기 뒤에도 오랫동안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그만큼 그 소식은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박씨의 말은 과장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나씨가 그런 짓을 할 사람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아버지라는 사람이 그렇게 이성을 잃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나는 그의 집안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나씨는 작년에 큰 양계장을 짓느라고 돈을 많이 꾸어야 했다.
그러나 나씨네가 양계장 때문에 큰 빚을 졌다는 사실을 아는 마을 사람들은 없었다.
그런데 다른 문제가 있는 걸까? 그렇게 성실한 사람이 지난 주에는 왜 그리 술을 많이 마셨을까?
나씨는 내 앞에서는 자신의 어려움을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다.
새벽기도회 후에도 그저 몇 마디 인사말만 나누곤 했다.
그런데 이 집에 숨겨져 있던 불행을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나씨 집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단지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 때문에 놀란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집 식구들이 이런 문제를 털어놓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교회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설교와 성경공부에서 그렇게 여러 번 이야기했고 구역예배에서도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얼마나 많이 이야기했던가!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한 가족이 이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도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이렇게 서로 돌보지 못하다니!
나는 나 자신과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 크게 실망했다. 우리는 얼마나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가!
확성기에서 다시 거친 소리가 들려왔다.
찬송가가 끝났다. 나는 터벅터벅 걸어서 교회로 갔다.
장마철의 끈끈한 바람이 내 얼굴로 확 불어왔다.
새벽기도회에 친밀한 듯이 모여 있는 사람들 앞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해야한단 말인가?
나는 강대상으로 올라갔다.
모두들 기대하는 마음으로 강대상을 올려다보며 좋은 말씀을 듣게 되기를 기다렸다.
나는 그들의 이기적인 생각에 화가 났다. 새벽부터 나는 심각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전화로 들은 이야기를 간단히 말했다. 구체적인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나는 교회에 모인 교인들 앞에서 이 주간에는 심방을 일절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교인들을 그대로 둔 채로 나는 혼자 내 방으로 돌아와 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내가 미처 묻기도 전에 말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목사님, 어떻게 모든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제 이야기를 하실 수 있습니까?
저는 그래도 그렇게 심하게 자식을 때리지는 않는다구요."
"제가 말한 사람은 형제님이 아닌데요."
우리는 두 사람 다 어안이 벙벙해져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럼 저희 동네에 그런 사람이 또 있단 말씀입니까?"
"이리 들어와 보세요.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이야기해야 할 시간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털어놓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실제 생활에 부딪쳤을 때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나님의 풍성한 용서 가운데 일부분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베풀기 위해서는
얼마나 힘들게 씨름해야 하는지!
이씨가 말했다.
"예배드리러 함께 모여 앉은 우리의 모습은 마치 죄의 실로 짜놓은 옷감 같습니다.
우리의 원수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어요.
그래서 교회 밖으로 한 걸음만 나와도 다시 싸움이 시작되고 괴로운 일들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우리 부부 사이나 식구들 사이에서도 그랬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아들에게 너무 심했어요.
너무 화가 나는 바람에 하나님은 자격 없는 저를 그토록 긍휼히 대해 주셨는데
저는 아들에게 그렇게 못했습니다. 마음으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꾸 그런 짓을 하게 됩니다.
저는 몰매를 맞아도 할 말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씨는 절망감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형제님, 저도 형제님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렇게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는 손을 잡고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근심을 내려놓았다.
이씨는 돌아갔고 내 마음도 잔잔해졌다.
그렇지만 나씨 일을 어떻게 해야 되나?
그 이튿날에는 나씨도, 그 가족도 보이지 않았다.
새벽기도회에도 나오지 않았고 예배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사람들을 보기가 너무나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우리는 그들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좋은 생각이 하나 떠 올랐다. 그날 어린이 성가대 시험이 있었는데
우리는 시험을 치르는 대신 곧장 나씨 집으로 행진해 갔다.
우리는 가면서 힘차게 노래를 불렀다. 동네사람들은 우리가 대체 어디로 가는지 구경하고 있다.
"오랜만입니다. 어린이 성가대원들이 형제님을 방문하고 싶어해서 이렇게 왔습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나씨의 어두웠던 얼굴에 갑자기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알았다.
이것은 그의 가족의 명예를 회복시켜주는 특별한 방문이었던 것이다.
"어서 들어오거라!"
그는 꼬마들을 맞이했다. 금세 작은 상 몇 개가 놓이고 맛있는 떡과 참외가 차려졌다.
우리는 다시 우리와 하나가 된 나씨 집에서 먹고 울고 노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15.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하나님의 씨는 자란다
"목사님, 계셔유?"
밖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네, 여기 있습니다. 들어오세요!"
나는 밖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문이 살짝 열리더니 할머니 한 분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아, 할머니세요? 어서 들어오세요."
유씨 할머니는 고무신을 벗고 방으로 들어왔다.
"목사님, 어떻게 지내셔유?"
할머니는 공손하게 절을 하며 내 안부를 물었다.
"잘 지냅니다. 여기 좀 앉으시지요."
나도 절을 하며 방석을 권했다. 할머니는 방석에 앉아 조용히 기도를 드리더니,
내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목사님, 제 안경 좀 봐주셔유. 귀 가장자리가 영 아프구만유."
"어디 볼까요?"
나는 할머니의 안경테를 약간 구부려서 간격을 넓혀드렸다.
"이제 한번 써보세요."
안경은 편하게 잘 맞았다. 할머니는 수줍은 듯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만족스럽게 웃었다.
"아이구, 목사님이 여기 안 계셨더라면 어쨌을까 몰러!"
할머니는 손가락이 끊어져 나가고 없는 두 손을 무릎 사이에 감추었다.
"목사님, 절대 여기를 떠나지 마셔유.
목사님이 떠나시면 우리는 죄다 목자없는 양떼가 되버릴 거구만유."
할머니가 이렇게 부탁하시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할머니는 문둥병에 걸린 후부터 여든일곱이 된 지금까지 미움과 배척만 당해 왔던 것이다.
할머니의 가족들에게 할머니는 더 이상 세상에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평소에 궁금히 여기던 것을 물어보았다.
"할머니, 제가 할머니를 알게 된 것도 벌써 몇 년이 되었네요. 한 가지 여쭈어 보아도 될까요?"
"그러믄유."
"할머니는 언제 예수를 믿게 되셨습니까?"
할머니는 그때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지가 스물두 살 때 어떤 일본 목사님의 전도를 받았구만유.
그 목사님이 무슨 말을 할라치면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