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계몽주의 지식인들은 온화한 가르침과 격려를 통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에밀』과 같은 교육서를 썼던 루소가 대표적인 예가 되겠지요. 그는 가정에서 생활을 통해 이루어지는 자녀의 양육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샤르댕은 장르화를 통해, 중산층의 노동과 함께 교육에 관한 주제를 많이 다루었습니다. 아래 그림 1의 <가정교사>를 봅시다. 아이의 가정교사는 학교에 가는 것도 잊고 놀이에 몰두하고 있는 아이를 꾸짖어 타이르고 있습니다. 흐트러진 아이의 놀잇감은 자신의 본분을 잊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데, 보모의 잘 정리된 바느질 바구니와 대비됩니다. 그렇지만 아이의 뒤편으로 열려진 문은, 보모가 손질해준 모자를 쓰고 곧 학교에 갈 것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나태함에 대한 계몽적인 경계의 메시지가 분명합니다.
영국은 이미 18세기 이전부터 정치혁명이 시작되었을 뿐 아니라, 기독교적인 정서로 인하여 과장된 바로크 미술이 그다지 번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팔라디오풍의 별장을 짓고, 고전주의 미술이야 말로 고상함과 아름다움의 표본이라 믿고 있던 당시 영국의 상류계층들은 자기네 미술을 지방적인 것으로 폄하하여서 대부분의 미술품이나 장식품을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수입하거나, 아니면 외국의 미술가들을 직접 불러들여서 제작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호가스(William Hogarth, 1697-1764)는 자신이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화가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며, 청교도적인 전통에서 성장한 사람들에게 도덕적인 교훈을 주는 작품을 제작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풍토에서 호가스는 도시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무절제한 악행들, 당시의 잡지나 통속소설에 자주 오르내리는 일화에서 주제를 찾아 이야기형식의 판화로 제작하여 판매하였습니다. 그는 주점이 있어 흥청거리고, 간판들이 즐비한 도시의 뒷골목을 즐겨 작품의 배경으로 삼았습니다. 산업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몰려듭니다. 이러한 도시중심의 대중문화는 19세기 근대주의를 거쳐 더욱 가속화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하겠습니다. 호가스가 그려낸 도시는 악덕의 온상처럼 보입니다. 그림 2의 <진 골목>은 술에 취해 이성을 잃은 인간들의 방종을 경고합니다. 매춘부 일대기의 첫 번째 장면은, 시골에서 갓 올라온 순진한 처녀가 포주의 꾀임에 빠지는 장면입니다(그림 2). 이 때에도 도시는 순진한 여자를 타락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사악한 곳으로 그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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