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 기독교 세계관의 현재와 미래
카이퍼 이후 칼빈주의적 전통을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발전시킨 이 세계관 운동의 직접적인 수혜자요 그 운동의 계승자는 개인이 아닌 집단이요, 특히 화란 암스테르담에 아브라함 카이퍼에 의해 설립되고 수많은 후예들에 의해 발전된 자유대학교와 1876년 화란 이민자들에 의해 세워진 미국의 그렌레피트 미시간의 칼빈대학교, 그리고 소수의 자유대학 출신의 철학, 신학, 법학, 교육학자에 의해 카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에 1967년에 세워진 기독교학문연구소 이외에도 여러개의 대학들과 연구기관이 북미대륙 여러곳과 남아프리카공화국, 호주와 뉴질랜드, 그리고 한국과 일본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 가운데 미국의 기독교 철학자인 Nicholars Wolterstorff는 그의 책 <공의와 평화가 만날때까지> Until Justice and Peace Embrace. Grand Rapids: Eerdmans, 1983. 에서 칼빈주의자들이 발전시켜온 기독교 세계관이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사회-문화-정치에서 실체화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그는 1981년 화란 암스텔담 자유대학교 카이퍼 렉춰, 제목은 시85:10-11에서 채용했다. 서문으로 이 성구와 더불어 라틴 아메리카의 기도문을 실었다. "오 하나님, 굶주린 자에게 빵을 주시옵고, 빵을 가진 우리에겐 공의로 굶주리게 하소서. O God, to those who have hunger give bread; and to us who have bread give the hunger for justice.)
이 책 서문에서 월터스토프는 자신의 목적이 초기 카이퍼 렉춰의 주제인 "종교개혁의 정치적 결과들" The Political Consequences of the Reformation을 따라 본래 칼빈주의적 종교개혁의 사회적 비젼을 "채용 (appropriate)" 하고자 함이라고 밝힌다. 여기서 채용이라 함은 전통을 무비판하게 수용하거나 전적으로 배격함이 아니고 자신의 환경에 그 주된 요소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 다. 거기에는 자신이 개혁주의 전통에서 자라나면서 그것이 본래 그토록 뚜렸하게 가지고 있던 세계형성적 추진력 (world-formative impulse)를 거의 가지지 못함에 대한 반성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들의 비젼은 성도들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질서를 개혁하기 위해 진력하는 성도의 의무가 그리스도가 그들을 부르신 제자도의 한 부분임을 고백한다. 그 의무는 종교에 부가물이 아니라 기독교 영성의 동력들 가운데 위치한다.
그는 주장하기를 로마문명에 들어온 기독교는 초창기 사회질서에 엄청난 변화를 초래했으나 시간이 감에 따라 (약3-4세기후) 그 영향을 상실한다. 중세 기독교는 사회구조 (출신과 역활을 포함한) 에의 묵종을 가르쳤다. 16세기 스위스의 종교개혁은 이와 다른 비젼과 실천을 가져와 당시 사회제도를 악한 것으로 판단하고 개혁을 선언하였다. 여기에서 세계-형성적 기독교의 재탄생을 본다. 이후 이 유형의 기독교는 때로 독재적 승리주의, 혁명으로 어떤 때는 겸손한 해방자로 간간히 역사에 나타나곤 했다. Michael Walzer, The Revolution of the Saints,에서 16-7세기 영국 청교도를 가리켜 중세인들과 달리 자신들이 속한 세상 (특히 사회구조)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그것의 향상을 위해 계속 노력하는 자들로 규정한 것은 매우 옳다. 사회구조란 자연질서의 단순한 일부가 아니며 인간적 결의의 결과이므로 합의적 노력에 의해 변개될 수 있는 것이다. 사회구조는 또한 실로 타락한 구조로서 때로 변개되어야만 한다. 이것은 그들 종교의 본질적인 일부이다.
월터스토프의 기획은 현대 사회질서 속에 기독교인이 어떻게 참여하여야 하는가를 묻는 것이다. 물론 그는 전대의 칼빈주의자들의 세계-형성적 기독교의 비젼을 그대로 옹호하거나 재현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칼빈주의적 비젼이 유일하고 가장 옳은 것은 아니나 사회질서에 참여하고자 하는 몇개의 기독교적 비젼의 항속적 패턴들 중 하나였던 것은 사실이다.
중세의 인생관은 극히 저세상적 (otherworldly)이었다. 세상적 일들 (농공상 정부등)은 종교적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세상에서 살아야 하기에 했다. 중세 전체에 강한 영향을 미친 신의 도성에서 어거스틴은 기독교인들이 "모든 세상적이고 시공적 사물들이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에서 잘못되거나 걸림되지 않도록 이방에 사는 것과 같이 사용하고, 미래에 언약된 영원한 축복에" 시야를 고정해야 할 것을 말했던 것이다. 월터스토프는 삶에 있어 문제점을 보나 그것을 개혁하기 보다 묵과하고 피해 돌아서는 이 성향을 formative 종교와 구분하여 "회피적 (avertive)" 종교라 부른다. 회피적 종교나 형성적 종교는 세상에 어떤 문제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활동을 단지 축복 (blessing)으로만 보는 제삼의 형태와 대비하여 구원적 (delivering, salvation)종교라 할 수 있다.
중세의 회피적 모델은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연합하는 명상적 (contemplation) 의무들이 강조되며, 아울러 모든 실재는 매우 계층적 구조 (hierarchical structure)의 연속적 체인을 이룬다는 관념이 지배적이다. 이 연쇄속에 모두가 상이하고 계층적으로 불평등한 위치로 피조되었다. 따라서 중세인은 사회적 역활들 이나 그 불평등을 생각하는 대신 상이한 역활들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천부적이고 자연적인 불평등을 생각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모반자와 반역(rebels, usurpers)을 익숙히 알고 있었으나 급진주의자, 혁명자 (radicals, revolutionaries)에 대해 아는 바 없었다. 중세에는 심지어 군왕도 주어진 (given)제도를 수정하는 일은 상상하지 못했다. 군왕 (교황이나 감독도 교회를 돌볼 뿐)은 주어진 제도를 단지 돌볼 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는 중세후반과 16세기에 들어서 단지 주어진 제도의 개념 대신 만들어진 그래서 수정될 수 있고 잘못이 발견되면 반드시 고쳐야만 할 대상으로 바뀌었을 뿐 아니라 그 변화의 주체도 천부적으로 권위를 위탁받은 어떤 일부가 아니라 바로 시민들임으로 바뀐다. 즉 중세의 수동적인 臣民 (subject)가 능동적 市民 (citizen)이 되면서 변화한다. 월터스토프는 왈저를 인용하면서 이런 시작이 바로 칼빈주의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 최초로 군왕으로 부터 성도들 (또는 일단의 성도들)에게로 정치적 사고의 강조를 전환하고 독립적인 정치적 활동을 이론적으로 조직화한 것은 바로 칼빈주의자들이었다.) 즉 영국 청교도들에 있어 성도들이 불평등한 제도를 고쳐야할 임무가 있다고 생각한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루터주의 역시 형성적 동기가 강하나 그 촛점이 "종교적"인 면에, 주로 교회 구조와 개인적인 "내면성 (inwardness)"에 주어졌다. 반면 "비종교적"인 면, 정치나 사회적 변혁에 대해서는 중세만큼이나 묵종적이었다. 그러나 칼빈주의자들에게 있어 세계-형성적이라 할 때, 그 세계는 자연이 아닌 사회적 세계를 말한다. 이들에게 있어 형성활동은 하나님에게의 순종이었으며, 그것은 실재를 하나님의 뜻에 보다 가깝게 만들고자 하는 동기로 추진되었다. 변혁의 대상이 내부가 아닌 외부적 실재일 경우 칼빈주의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종 또는 기구라고 (servant or agent)라고 생각하였다. 회피적인 종교에서는 사람들이 자기가 하나님의 그릇 (하나님을 명상을 통해 연합한, 담은 그릇, a vessel of God)이기를 소원하나 세계-형성적 종교에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도구 (an instrument of God)이길 원하다. 물론 하나님 나라의 메타퍼가 세계-형성적 종교의 목표와 희망에 있어 중요한 참조점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형성적 동기가 반드시 자신의 능력으로 천국을 가져오는 유토피아적 혁명이나 승리주의적 환상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요약하자면, 본래적 칼빈주의의 등장은 하나님과 보다 가까운 연합을 찾기 위하여 사회적 세계로 부터 돌아서는 환상과 실천으로 부터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사회적 세계를 개혁하고자 일하는 실천으로의 기독교적 감성에 근본적 변화를 나타낸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중세적 신학저술의 전통을 따라 신지식에 대한 서술로 시작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 획기적인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즉 신지식이 더이상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명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것은 그의 하신 일 (works)에 대한 적절한 반응 (response)로 구성되어 있다. 신지식은 하나님에 대한 인지 (acknowledgment)로서 그것은 신뢰, 존경, 감사와 봉사등 삶 전체에서 일어난다. 제네바 요리문답 (1541)의 인간의 목적에 대한 부분에서 인간의 제일되는 목적과 선은 그를 만드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참되고 바른 신지식은 그에게 바른 존경을 돌리는 지식이 얻어짐이며, 바른 존경의 방법은 "우리를 그에게 온전히 의탁함이며; 그의 뜻에 순종함으로 우리들 삶 전체를 통해 그를 섬김을 연구함이고; 구원과 그에게서 얻어질 수 있는 모든 선한 것을 갈구하며 우리의 모든 필요에 있어 그에게 간구함이며; 마지막으로 마음과 입술 모두에서 모든 복의 유일한 근원이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칼빈주의가 흔히 하나님은 주로 법을 주신 분이요 우리는 거기에 복종한다는 이해가 있으나 그 이면에 하나님께서 선히 주시고 성도는 그에 대한 감사로 복종한다는 바탕의식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사회에 있어서도 순종은 그 감사의 표현이요, 하나님의 영광에로의 순종이다. 칼빈의 요리문답에는 인간의 삶이 세상을 향하고, 나아가 도피적 종교를 부정함이 뚜렸하다. (칼빈주의가 이러한 성향으로 현대적 세속화를 야기시킨 도구였다는 비판이 있다. 물론 칼빈주의가 도피아닌 세상을 향하게 하고, 그 속에서 신적 권위를 가진 모든 것의 권위를 박탈하고 예배하기를 거부함으로 세상을 "속화 (secularized)" 한것이 사실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은 흔히 칼빈주의가 세상 속에서의 하나님의 활동을 인지하고 그것에 대해 순종의 형태로서 세상에 도장을 새기려 함을 통하여 세상을 성화 (sacralized)한 것을 간과하고 있다.) 칼빈주의자의 사회적 경건의 중심에는 감사에서 동기되고 소명으로 표현된 순종 (감사, 순종, 소명)이 깔려있다. 칼빈주의자의 소명의식은 단지 "직업" (occupation)의 개념보다 넓어 감사, 순종, 소명의 삼요소를 가진 사회적 역활 모두를 포함한다. 즉 칼빈주의자들은 자신의 직업을 그것을 통하여 자신의 순종을 실행하는 그 무엇으로 보았다. (트렐취가 말하는 바 중세적 Christian morality was exercized in vocatione but not per vocationem 이었는데 반해서 Calvinist saw his occupation as something through which to exercise his obedience 였다. 즉 단지 자신의 직업을 버리지 않고 그 역활을 지키는 것 (remaining in that role)의 순종이 아닌 순종적 감사에 바탕을 두고 그 역활에서 담당하는 활동 (the actions performed in that role) 으로 직업을 생각했던 것이다.) 또 이들은 단지 자신이 타고난 직업에 충실히만 하면 공동의 선에 기여한다는 무비판적 생각을 넘어서 자신의 직업이 공동의 선에 참으로 기여하는가를 반성했다. 성경이 보여주는 대로 자신이 사는 세계와 그 사회적 질서가 자연적 세계 아닌 인간의 질서로 거기에는 인간적 악이, 그 영향이 스며있는 것을 인식하고, 거기에 대하여 책임의식을 가지는 새로운 사고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점이 실로 중세적인 사고를 넘어 사회 개혁과 심지어 혁명에 이를 수 있는 혁신적인 사고였다.
이러한 초기 칼빈주의의 혁신적 세계형성적 성향이 훗날 (루터주의에서 내면성과 교회 중심적 사고로 국한된 것에 반해) 칼빈주의에서는 신학과 철학형성을 위한 관심 집중의 에너지로 빠져나가면서 소멸하였거나 그러할 위기에 놓여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초기 칼빈주의는 사회적 세계를 하나님에게서 유리되지 않은 것으로 재구성하려는 열정적 욕구를 가졌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은 사회가 인류의 공동복지를 위해 봉사하는 질서있는 "형제체계 (brotherhood, or solidarity)"을 이룩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또한 인류로부터도 유리되지 않은 것이 될 것이었다. 물론 칼빈주의는 초기에 그들과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정의로운 사회속에서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깊히 생각하지 못한 결과 정의를 말하면서도 매우 억압적인 성향을 지닌 것이 사실이다. 또 칼빈주의자들은 자주 승리주의 (triumphalism, dominon theology)에 빠지곤 했다. 이에 대해 월터스토프는 이렇게 제언한다. 주의 말씀과 백성들의 외침들이 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우리들의 축복을 세아리는 것 이상의, 우리들의 내면세계를 가다듬는 것 이상의, 우리들의 생각을 개혁하는 것 이상의 것을 하라고 부른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들의 싸움의 목표가 궁극적으로 우리들에게 허락될 것이라는 소망과 기대속에 새로운 사회를 위해 투쟁해나가라고 부른다.
이 책 제3장의 종말론적 비젼으로서의 두 이미지인 샬롬과 정의를 월터스토프는 이렇게 정의한다. 샬롬은 인간이 하나님과, 자신, 동료 인류,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평화로운 관계속에 살아감을 의미한다. (사11:6-8) 샬롬의 최고 형태는 자신의 관계를 향유 (enjoyment)함으로 나타난다.
이어서 그는 정의를 각자가 가진 권리들을 평화로이 향유함 (the enjoyment of one's rights)으로 정의하는데 이것은 샬롬에 있어 필수적이다. 그것은 샬롬이 하나의 윤리적인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각개인에게 정당한 권리가 주어짐이 인정되지 않고서는 평강의 공동체가 가능하지 않다. 거기에는 구성원 상호간의 적의도 없는 사회이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정의, 또는 공의는 단지 다른 인간들에 대한 공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월터스토프가 말하는 공의는 인간들 사이의 정당한 관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와 자연에 대한 바른 관계,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바른 관계도 포함한다. 따라서 샬롬은 단지 윤리적인 공동체를 떠나서 하나님께서 그의 피조물의 다양한 존재를 위해 지으신 하나님의 법이 순종되는 책임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이 샬롬은 하나님의 목표이시자 인간의 소명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월터스토프가 밝혀준 오늘날의 현실에 있어 기독교적 세계관의 이상과 실제는 불정의와 불화로 가득한 세계정세와 현실로 새로운 도전을 맞고있다. 그러나 이와 아울러 또 한가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변화가 우리의 문화를 강타하고 있어 이것 역시 세계관 연구에 있어 뺄 수 없는 밑그림으로 등장했다. 그것은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대주의 분위기와 그 문화적 영향력이다. 현대의 문화적 특징 한가지는 한 국가, 지역, 사회내에 다양한 세계관들이 함께 존재한다는 점이다. 세계관이란 세상을 보는 시각, 그 정신적 안목에 따라 인간적 세계, 즉 문화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상대주의를 은연중에 함의한 단어이다. 이러한 의미를 가진 말이 문화, 사회적 논의에 있어 중요한 단어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이 시대는 문화적 다원주의의 기초에 놓여있음을 보여준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문화적 다원주의의 분위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세계관의 각축장이 되다시피한 오늘날의 문화적 현실속에서 기독교 세계관이 그 진리됨을 증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가 고려되어야 한다. 그것은 더이상 좁은 의미에서의 이론적 변증이나 신학과 철학적 논의로서 제한되어서는 안된다. 본래 세계관의 함의가 삶 전체를 포괄하는 종합적 체계인 것과 같이 그것은 삶의 전 영역에서 성경의 계시를 바탕으로 한 삶의 안목이 생명과 평화와 삶의 안정을 준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이제는 문화적 힘으로서의 성경적 세계관을 보여주어야 함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요청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