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아 시인의 시집＜＜그 자리에 네가 피었다＞＞ 해설문 / 권혁재

[권혁재]

소소한 서정에서 서정의 진경을 빚어낸 시심詩心

권혁재(시인, 문학박사)

  오미아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그 자리에 네가 피었다󰡕는 각시투구꽃, 며느리밥풀꽃, 연꽃, 백일홍, 사과꽃, 할미꽃, 제비꽃, 파꽃 등 꽃이 연상시켜 주는 일상적인 모습에서 시인이 체험한 사실과 꽃을 위한 ‘명분’을 내세우는 서정은 한 권의 거대한 식물도감처럼 다가온다. 그 이면에는 향긋한 냄새와 아름다운 꽃이 있는 반면에 아우성치고 “명분이 불명분일 때 무엇으로” 다시 할까 하는 고민과 확장을 펼쳐놓기도 한다. 이를테면 꽃으로 대체되는 인물이나 대상이 아버지, 어머니, 남편, 언니, 아들 등으로 꽃을 위한 이미지로 나타나 사유를 위한 여백을 남겨준다는 사실이다. 오미아 시인의 시세계는 소소한 서정을 서정의 진경으로 더듬어낸 독톡한 시작법으로, 꽃을 위한 일반적 시어를 선택함과 동시에 지나치기 쉬운 꽃의 의미들을 잘 포착해낸 화자의 담대한 모습도 잘 보여준다.

  또한 꽃을 바라보는 자세나 생명의 가치를 깨닫고 외면당하는 “불명분”인 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진다. 그녀에게 꽃은 시를 위한 하나의 대체물로서 시인의 개성과 문체에 상당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근원적으로 추동하는 사랑의 힘을 꽃으로 끌어안으려는 견고한 서정과 사유를 나타내는 그녀의 작품에서 우리는 서정의 진경을 찾아내려고 노력한 것을 엿볼 수 있다. 작품마다 내재 된 꽃의 이름에서 “꽃말에 발목 잡혀” “명분이 불명분일 때” 문제를 해결하고 결말로 나아가려는 집중력과 완성미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오미아 시인의 금번 시집에서 서정의 진경으로 차곡차곡 쌓아 가는 과정을 잘 이해할 것이다.

1.

  오미아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밝혔듯이 “햇살과 바람과 비”가 이끄는 ‘인’因의 결과에 따라 “꽃”을 피워내고 “흔적”을 보듬어내는 ‘연’縁에 잇닿아 발아하는 자아를 겸손하면서도 발랄하게 또는 비장하게 드러내는 시인이다. “물방울 만드는 언어를 짓”(｢호암지의 그해 봄, 연꽃으로 피다｣)거나, 백일홍에서 첫사랑을 떠올리거나, 사과꽃 속으로 흐르는 슬픈 가계를 추적하거나, “아버지가 주고 간/ 작은 연못에/ 연꽃 한 송이”에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꽃에서 발아하는 자아를 포착하고 그녀 자신도 자연 속에 둘러싸여 있음을 인식한다. 햇살과 바람과 비는 자아를 발아시켜주는 개별적인 요소이자 시를 이끌고 떠받치는 경계의 요소들이기도 하다. 시인은 그 개별적인 요소와 경계의 요소들을 결합하거나 분리하면서 직접적인 경험 방식을 빌어 시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과정과 다양한 경험에서 빚은 이미지를 시인은 한 폭의 “말하는 그림”으로 그려낸다. 부연하자면 꽃에서 획득한 내면의 사유와 서정에서 사람을 사람답게 보게 하는 삶의 인식론적인 담론으로 옮겨 놓고 있다는 뜻이다.

충주에서 자동차로 30분은 달려야

방학리 햇살 가득한 사과농원으로 간다

365일 누런 광주리 들고

해 뜨기 전에 가서 해 기울면 나오는 사내가

석양이 지도록 나오지 않았다

이놈 발그라니 올해는 제값 혀네

땡볕에 주름을 잡고 사다리 오르내리며

적과 한다고 실랑이하던 아들이

사과 한 입 먹고 하늘을 본다

낡은 사다리에 사과꽃 달아주고

발그란 사과 서너 개도 달아주더니

사과 광주리 들고 선별장으로 간다

이놈 발그라니 올해는 제값 혀네

아버지가 하던 말을 그대로 하는

아들 말에 사내가 미소 지으며

사과꽃 숲으로 사라진다

봄 오면 방학리 사과농원에

사과는 사과로

가계는 사과꽃 속으로 흐른다

-｢사과꽃 속으로 숨은 가계｣ 전문

  이 작품은 사과 농원에서 있었던 사실적인 일을 쓴 농원의 일지이자 대를 이어 사과 농원을 지키며 신산한 삶을 살아 온 한 가계를 기록한 가계일지이기도 하다. 작품의 내용으로 보아 오미아 시인은 사과 농원을 가지고 있고, 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 듯하다. 사과 농원이 있는 현장까지는 자동차로 30분 달려야 하고 해 뜨기 전에 가서 해 기울 때까지 광주리 들고 발그란 사과를 따고 선별해야 한다. “이놈 발그라니 올해는 제값 혀네”라는 들뜬 소리에 “땡볕에 잡힌 주름”도 “낡은 사다리에 사과꽃 달아주”던 손도 넉넉하고 따뜻한 사과 농원이 다 품고 있다. 사과가 품은 속에는 둥글고 빨간 우주뿐만 아니라 사내의 눈물이며, 아버지의 아버지가 했던 말이며, 아들의 말에 웃던 사내의 미소며, 사과꽃 숲으로 사라진 한 시대의 가계가 사과의 유전자를 가진 “사과꽃 속으로 흐”르고 있는 셈이다. 이런 사연으로 발그라니 제값을 하는 사과의 역할은 더 근원적인 사실을 파헤쳐내려고 앞으로 나아간다. “봄 오면 방학리 사과농원에/ 사과는 사과로/ 기계는 사과꽃 속으로 흐른다”는 사실적인 서정의 진경은 “사과는 사과로”라는 사유와 감각적인 표현에 부딪혀 외연과 내포라는 중심에서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화자의 도저한 자세와 시선을 가늠하게 해준다.

  요즘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러다 보니 참회할 줄 모르는 사람 또한 많다. 오미아 시인이 이 시를 쓴 계기가 단순히 사과 농원을 가꾸는 한 가계를 지적하는데 멈추지 않고 나아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부끄러워 하는 법을, 참회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참회하는 법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법을 일깨워 주려고 “사과는 사과로”라는 진정성과 진실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버지가 주고 간

작은 연못에

연꽃 한 송이 피었다

아버지 등에 앉아

놀던 나비인가

흰나비 한 마리 앉았네

그리움에 젖은 눈꺼풀 사이

아버지 마른 등을 스치다

작은 연못에 수련이 되었나

아버지 어깨에 기대고 싶은 날

하냥 아버지 그립게

연꽃 한 송이로 되돌아오신 날

-｢아버지의 연못｣ 전문

  앞의 작품에서 발그라니 사과를 따는 아버지와 그의 가계에 대한 일면을 짚어내었다면 이 시는 더 나아가 아버지에 대한 근원적인 그리움을 획득해낸다. “아버지가 주고 간/ 작은 연못”을 연결고리로 해서 비롯되는 시의 실마리는 “아버지 등에 앉아/ 놀던 나비”로 전이되면서 시선이 동적으로 확장된다. 그러나 “그리움에 젖은 눈꺼풀 사이/ 아버지 마른 등을 스치다/ 작은 연못에 수련이 되었나”라는 시의 전개과정은 자연스럽게 확장된 시어들의 배치로 “작은 연못”을 파동시키고 있는 오미아 시인이 지닌 시의 내공으로 밀려오는 듯하다.

  흰나비에서 아버지 마른 등을 스치고 수련이 되는 시의 과정은 입체적으로 신선하게 매듭을 잘 짓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끝에는 “아버지의 어깨”를 등장시켜 따뜻하고 포근한 근원적 온기를 남겨 놓는다. 그 스치고 닿는 시의 과정이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을 나비로 하여금 날아가 앉게 하는 시의 힘을 발현시켜낸다. 한없이 와닿는 아버지에게로 향한 그리움의 속성을 획득해내는 ｢아버지의 연못｣에서 “아버지의 연가”를 떠올리는 회한은 오미아 시인만이 지닐 수 있는 신비로운 서정이며, 그 서정의 진경을 잘 보듬어낸 시심은 슬프면서도 산뜻하다 하겠다.

2.

  이번 오미아 시인의 시집 󰡔그 자리에 네가 피었다󰡕에서 몇 작품을 제외하고 대개가 꽃과 꽃 이름이 등장하여 대상과 어떤 매개체 역할을 하거나 주제로 나아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매우 고무적이고 신선하다. 꽃은 발랄함이나 열정, 희망 등을 나타내는 의미상 특징을 갖고 있지만 오미아 시인에게 꽃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로는 화자의 독백이 꽃으로 투영되는 사실에서 꽃 이전의 꽃을 보거나 실존론에 입각한 사유를 하는 작품이 다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벌레 먹힌 가련한 사과 앞에서/ 상처는 상처끼리/ 본래로 돌아가는 것”(｢가장 예쁜 사과는 너에게｣)이라든가 “인생도 슬그머니 가을 편에 섰다/ 중년도 느낌으로만 남으려나 보다/ 무소유란 소유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의미 없음을 버리는 것”(｢장자산｣)이라든가 “호상은 없는 것이며/ 천년을 살다 가도 슬픈 것”(｢문상｣)이라든가 “이리저리 방향 없는 것들이/ 왜바람으로 마구 흔들리네”(｢왜바람｣) 하는 것들의 표현이 그러하다.

  오미아 시인에게 독백의 꽃이나 꽃의 독백들은 자아를 되묻는 계기도 되지만 독백을 함으로써 대상에 한 발짝 더 다가서는 친근감이나 사랑을 드러내는 표시로 하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일련의 이러한 행위를 통해 그녀가 맞닥트리게 되는 것은 자아의 확인과 삶에 대한 애틋한 집착과 시어에 대한 따뜻한 수용이다. 그래서 그녀의 시를 읽으면 꽃내음이 묻어나며 “문득, 문득”(｢하루 한 장씩｣) “바람에 펄럭이는 외로운 시화들”(｢사계｣)을 만나게 된다.

들판에 있는 꽃이 너냐

순박하고 앙증스러운 꽃

보도블록 사이에 고개 내민 꽃

너였구나

산천에 꽃이 너냐

사람들이 밟고 가도 기어이

다시 피어오르는 꽃

그래 너였구나

가루비에 젖은 사랑 이야기와

닻별을 밟는 발자국 소리

물비늘 덮고 탁주 한잔 걸친 아버지의 기침과

비 오는 날의 심장 소리를 기억하는

너는, 꽃

-｢독백｣ 전문

  옥타비오 파스에 의하면 시는 “민중의 노래이자 선민의 언어이고 고독한 자의 말”이라 했다. 시는 독백의 형식으로 입에서 나온 것을 받아 적은 게 시가 되는 것이다. 오미아 시인의 시제이자 작품인 ｢독백｣도 고독한 자의 말의 형식을 빌려 나온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녀에게 독백은 ‘나’가 아닌 ‘너’를 통해서 보게 되는 ‘나’를 코나투스 이론으로 드러내고 있다. 너를 통해 탐색해낸 ‘나’는 실존적인 인물로 이 시를 주도해나가는 구체적인 인물이 된다. “독백”도 간접적인 ‘너’가 되지만 그 속에 내재 된 ‘나’가 실제로 존재하게 되면서 “아버지의 기침” 소리를 들으며 “비 오는 날의 심장 소리를 기억”해내는 아버지의 자식인 ‘나’가 되는 것이다.

  오미아 시인의 ｢독백｣은 쉽게 잘 읽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가 쉽게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시는 평면적인 면보다 입체적인 이미지나 서정을 배치하고 있어 읽고 난 그 이후의 감동이 “닻별을 밟는 발자국”처럼 서서히 안으로 파고들어 파문을 치는 독특한 기법을 갖고 있다. 독백 속에는 다하지 못한 “앙증”이 있고, ‘너’를 가장한 내가 있고, 밟혀도 다시 피는 꽃이 있고, 가루비에 젖은 사랑과 물비늘 덮고 탁주 한잔 걸친 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오는 독백 속의 독백이 중첩되어 있어서 시작품이 남다르다 할 수 있다.

느리게 온 사람 급하게 온 사람

바쁘게 일하다 온 사람

옆구리 콕 찔려주던 당신

반세기를 넘어서 여기에 왔습니다

왕조 시대는 오십 세만 넘으면

장수한다고 하였지만

현시대는 다들 왕입니다

이제 백이십오 세까지는 살 수 있다고 합니다

덜컥

우리 앞에 나타난 팻말

백세시대입니다 쭉 가시오

준비도 없이 어쩌라고

호박죽이 기다리고

소고기죽이 기다리고

잣죽이 기다리고

약봉지가 기다리고

설레는 가슴은 없습니다

벌렁이는 가슴만 남았습니다

엄마는 애기네 엄마는 애기네

나이 들면 애기네 흰 머리만 나이드네

준비 없는 장수의 전쟁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백세시대｣ 전문

  이 작품은 희화적으로 보이지만 발달한 문명과 문명의 이기에 맞물려 살아가는 현대인의 바쁜 일상과 그로 인해 도래한 “백세시대”를 서글프게 잘 풍자해낸다. 백세시대 자체가 모순을 지니고 있지만 오미아 시인이 보는 백세시대는 왕조 시대를 넘고 현시대에 도착한 장수하는 왕으로 “엄마는 애기네 엄마는 애기네”하는 사실적이면서 희화적인 지적은 서글픈 독백의 양상이다. 그러나 백세시대까지 도착하기 위해서는 “호박죽, 소고기죽, 잣죽”을 맞닥트려야 하고 심지어는 “약봉지”까지 맞이하지만 설레는 가슴은 없다고 한다. 이런 역설적인 백세시대에 대한 표현을 통해 오미아 시인이 추구하고자 한 시의 방향은 구차하고 로맨스가 없는 엄마가 차라리 애기인 오십 세 시대를 반어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엿보인다. 그것은 “준비도 없이 어쩌라고”하는 독백에서 잘 드러난다. 준비 없이 백세시대를 맞이하지 말고 느리고 바쁘더라도 충분히 스스로 일을 다 정리한 다음에 백세시대를 준비하자는 바람이 “벌렁이는 가슴”에 담겨있다.

3.

  꽃은 한 계절에 머무르지 않는다. 꽃은 계절의 순서와 시기에 따라 피었다 진다. 계절별로 피고 지는 꽃들은 각양각색으로 그 생김새나 꽃의 지닌 의미도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봄에 피는 꽃은 봄바람과 봄의 분위기대로, 여름에 피는 꽃은 비바람과 땡볕에 익어서, 가을꽃은 계절을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풍성한 결실을 맺고, 겨울꽃은 날씨와 온도 탓에 주로 실내에서 자라는 그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오미아 시인의 시에 나타나는 꽃들도 자연의 순리대로 순환하는 양상을 지니고 있다. “피안의 길로 가버린 여자. 시어미보다 먼저 문을 닫은 그녀”(｢갈대 흔들리고｣)에서처럼 시어미보다 먼저 죽은 며느리를 표현하여 꽃으로 대치된 그녀가 죽음과 동시에 순환하고 있음을 시사적으로 나타낸다. 오미아 시인은 시어로 시를 부리는 기법보다는 삶의 진경을 그대로 시에 집어넣는 고유한 기법을 선택하여 시를 쓰고 있다. 그래서 표현이 과하지 않고 주로 사람을 토대로 한 시가 쓰여져 그녀의 시에서는 사람 냄새가 나서 읽기가 포근하고 다정하게 느껴진다. “피에로는 분장한 우리들의 시간”(｢휙휙 피에로｣)이나 “동강의 할미꽃을 본 이후 미운 꽃이 없다”(｢고운 길을 가다｣)는 표현은 오미아 시인의 평온한 심리 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지만 이것보다는 “주인은 차를 파는 것이 아니라/ 차를 담은 시를 팔고 있다”(｢아원카페｣)는 부분에서 그녀가 얼마나 시를 사랑하고 시를 위해 살고 있는지 암시를 해줘 시를 위한 시인임에는 분명한 것 같아 신뢰가 가고 큰 위안이 된다.

구절초 향 두고 온 내가 미워

그 꽃밭 다시 찾았네

늦가을에 잃어버린 너의 이름을

찾아 주려고 왔네

벌 나비도 주춤거리는 늦가을

네 한 몸 받아주려고 왔네

-｢구절초｣ 전문

  구절초는 국화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따뜻한 특성 때문에 몸이 찬 여성들이 즐겨 먹어 혈액의 흐름을 조절했다고 한다. 시에서 구절초는 대체로 어머니, 할머니 등 여성의 이미지로 많이 나타나고 있다. 오미아 시인이 바라보는 구절초는 늦가을에 물러가는 구절초 꽃밭을 찾아 “네 한 몸 받아주”는 대상의 꽃으로, 이 역시 꽃의 순환으로 대치되는 계절이자 화자와 구절초가 위치를 바꾸려는 순환점에 있음을 보여준다. “구절초 향 두고 온 내가” “그 꽃밭 다시 찾아”가는 화자이지만 “늦가을에 잃어버린 너의 이름을 찾아 주려고” 주춤거린다. 네 한 몸 받아주면서 구절초가 계절 속에서 순환하는 것을 따라 화자도 구절초와 더불어 순환하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에 두고 온 구절초로 인해 미워지는 화자의 모습에서 구절초라는 이름을 다시 찾아 주려고 결국은 그 꽃밭을 다시 화자는 찾아간다. 순환하는 것은 계절과 구절초이지만 그 속에 “네 한 몸 받아주려고” 왔다고 피상적으로 말하는 화자 자신도 순환의 범주에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화자는 단순히 구절초를 대하는 것이 아니라 구절초 너머의 또 다른 세계를 보면서 정제된 시어와 절제된 서정으로 잘 빚어낸 작품이 바로 ｢구절초｣라 하겠다.

태백 문곡

유년의 옛 집터

아버지와 어머니가 누워 계시는 곳

그 자리에 할미꽃 피었다

발목에 찰 듯 말 듯 얕은 도랑물에 손을 담그니

어릴적 뒷산에 나무하러 가는 아버지를 따라가고 싶다

나는 아버지 지게에 꽃이었다

-｢아버지의 지게에 꽃｣ 부분

  오미아 시인의 작품 특징은 꽃으로 대치되는 화자나 자아를 유년의 기억을 통해 일깨워, 회한을 품거나 잘못된 인식의 세계로부터 반성이나 자성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유난히 그의 시에는 꽃이 많이 등장하고 그 꽃으로부터 자아를 따뜻하게 보상받고 싶은 기대심리를 시작품 곳곳에 여러 층위의 서정과 감각으로 배치시켜 놓고 있다. 예를 들면 아버지나 어머니를 꽃으로 대치시켜 나타낸다는 것이다.

  담임 선생님이 가정 방문을 온 날에는 허름한 옷에 까맣게 그을린 아버지의 얼굴이 창피했지만 월급날에 국화빵을 사 오는 아버지를 “태백 문곡/ 유년의 옛 집터”에서 그리워한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누워 계시고 할미꽃이 피어 있다. 유년의 불편한 기억을 통해 꽃으로 대치된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잘 주조해낸다. 오미아 시인은 시가 시로 보여지지 않더라도 시인에게 시로 보여질 때 진정한 시가 된다는 백석의 주장을 잘 수용하여 시로 보여지는 대상들을 자아와 잘 엮어 그녀만의 시작법을 개발하여 사용해 온 것 같다.

가을비 오는 날에는

어머니 혼잣말이 그립다

산에 가면 새하고 꽃하고 놀아야지

나물 이름 외워두지 말아야지

괴산 장날 다녀오는 길

여우비 내리는 들녘에서 글을 쓴다

나의 그림자는

나의 무엇으로 남겨둘 수 있을까

-｢어머니의 혼잣말｣ 부분

  이 시도 ｢아버지 지게에 꽃｣과 더불어 꽃으로 대치된 어머니의 그림자를 추적하는 화자의 서글픈 심정을 엿 볼 수 있다. 가을비는 스산하고 차갑게 느껴진다. 그런 빗속에서 낡은 운동화 신고 나물 뜯는 어머니의 모습은 춥고 처연하게 다가온다. 그래도 화자는 “가을비 오는 날에는/ 어머니 혼잣말이 그립다”고 한다. 그러면서 산나물 뜯는 어머니가 미운지 “산에 가면 새하고 꽃하고 놀아야지/ 나물 이름 외워두지 말아야지”하고 부정적으로 말한다. 오직 외워두어야 할 것은 새나 꽃 이름이고 나물 이름은 외워두지 않겠다는 화자의 안타까운 다부진 결심에서 “나의 그림자는/ 나의 무엇으로 남겨둘 수 있을까”하고 자문하게 된다. 그 자문은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나 가난에 대한 슬픔이 아닌, 다시 말해 어머니 삶처럼 살지 않겠다는 어린 화자의 다짐에서 보면 유년의 삶과 기억은 꽃으로 치유하기 위한 시작품이자 몸에 잘 맞는 처방전이 분명할 것이다.

4.

  이제 오미아 시인의 시는 과거와 현재를 지나 미래로 건너갈 지점에 닿아 있다. 그녀에게 꽃의 미래는 “종착역”이 아니라 “이방인의 역”(｢첫 버스여행｣)이며, “어제는 벚꽃 내일은 민들레꽃/ 오늘은 죄로 피어나는 들꽃”(｢너를 보다｣)이며, “유리창에 걸린 햇살이/ 마야 마아야 내일 또 보자 건너”(｢미야 미아야｣)가는 세월 속에 있는 대상들이다.

  오미아 시인이 지적하는 미래의 꽃은 “이방인의 역”에서 마주하는 사람이나 풍경, 또는 개에서도 시와 마주쳐 미래에 대한 시들을 예지적으로 짚어낸다. 혹은 “시골길 논두렁 지나갈 때 마주하는 할머니도 뉘 – 신 – 지 – 요”하고 어둡고 불명확한 시에 대해 말을 흐리고 있다. 그러면서 “죄 되는 것들 다 타라 재 되어라”하며 주술에 가까운 말을 직설적으로 스스럼없이 하고 있다. 그녀의 솔직하고 도저한 미래의 꽃에 대한 표현은 앞날이나 미래에 대한 또는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꽃을 사랑하고, 시를 사랑하는 그녀의 진심이 앞서 있기 때문이리라.

죄 되는 것들 다 타라 재 되어라

윤전輪転 하지 마라

바람처럼 물처럼 살다

꽃으로 마주해라

어제는 벚꽃 내일은 민들레꽃

오늘은 죄로 피어나는 들꽃

-｢너를 보다｣ 부분   

  오미아 시인이 “아네모네 아이리스 개망초 자운영 할미꽃”에서 “연옥 천국 지옥 수없는 시간들”을 보내며 “탑돌이를 하는 그림자”로 꽃의 미래를 추측하는 단계는 주술사의 주문과 흡사하다. “죄 되는 것들 다 타라 재 되어라/ 윤전하지 마라”는 저주에 가까운 극단적인 방식의 기원은 “바람처럼 물처럼 살다/ 꽃으로 마주해라”는 희망적인 꽃의 미래를 들춰냄으로써 시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갖고 있는 그녀의 자세가 이상적이고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사실을 극명하게 뒷받침해주는 시가 다음에 또 나온다.

종착역은 이방인의 역

마침 장날이라 토산품이 즐비하다

흐르며 마주치는 사람마다 詩다

둘러싼 풍경도 詩고

어슬렁거리는 개도 詩다

-｢첫 버스여행｣ 부분

  오미아 시인에게 꽃의 미래에 대한 시는 ｢첫 버스여행｣처럼 “하루 계획을 메모”하거나 간판을 거꾸로 읽는 숲의 나무와 “종착역은 이방인의 역”이라며 미리 미래에 대한 시간과 장소를 짚어내는 그녀의 돋보인 예지력에 있다. 그것은 “흐르며 마주치는 사람마다 詩다/ 둘러싼 풍경도 詩고/ 어슬렁거리는 개도 詩다”라고 한 부분에서 잘 포착된다. 오미아 시인이 바라보는 꽃의 미래는 결국 시가 시를 품고 있는 몇 개의 풍경이나 화자의 행위에서도 잘 드러난다. 풍경 속에는 고통이 깃들어 있고, 화자의 행위 속에는 유년의 애틋한 편린을 더듬고 있다. 그만큼 그녀가 시에 대한 애착이나 집착이 불명확한 시를 더 명확하게 하거나 시를 더 시적으로 구현하려는 의지가 강하고 남다르기 때문이다.

  오미아 시인은 꽃에서 나타나는 여러 층위의 서정이나 감각을 삶의 진경이나 실존적인 사유와 결부시켜 시로 섬세하게 유추해내는 자질과 면모를 갖추고 있다. 결국 그녀의 내면에 핀 꽃에서 자아와 존재의 양상을 보듬어내고 삶의 음영까지 들여다본 점에서 특유의 상상과 사유가 시를 이루는 밑바탕이 되었다고 추측한다. 오래된 삶의 체험과 꽃으로 성장한 시간의 사유를 구성하면서 변하지 않은 시의 보편적 가치를 획득하여 가는 시심이 진솔하게 실현될 때, 우리는 매 순간의 서정과 그리고 삶의 진경을 시의 형식으로 엮어내는 오미아 시인을 만날 수 있다. 꽃이나 꽃말을 통해 오랜 경험과 도저한 시어로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담아내면서 자아나 대상을 발아해낸 이번 시집은 시간의 흐름을 소거하고 꽃에서 자아를 구현한다는 사실에서 신선하고 산뜻하다 하겠다.

  오미아의 두 번째 시집은 삶의 한 단면마다 각인된 어두운 경험을 서정의 감각으로 표출하고 그 단면의 장면마다 심상찮은 삶의 흔적과 무한궤도 같은 사유를 희석해서 잘 주조해낸다. 이러한 데에는 시를 향한 오미아 시인의 열정과 자아화로 나가는 화자에 대한 애착의 면모가 고스란히 남아서 제자리를 지키고 있어서다. 그리고 꽃과 대상과의 섬세한 교감을 통한 완숙하고 노련한 서정을 가지고, 유년의 기억을 더듬어낸 그녀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겠다. 꽃의 여러 층위에서 나타난 자아의 양상을 실존과 꽃의 세계로 들여다본 이번 시집 이후에도 오미아 시인이 여전히 꽃을 가꾸고 시를 쓰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리고 그녀의 시가 꽃처럼 무장무장 피어나 타인이나 스스로를 위안하고 사유하게 만드는 새로운 어떤 시를 가꾸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