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로메르 특별전을 봤다. 연달아 두 편의 영화를 봤다.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과 <내 남자친구의 여자친구>다. 한 편을 보고 다음 영화까지 약15분 정도의 텀이 있다.
예전에 분명 포토플레이를 했는데 갑자기 하는 방법이 기억나질 않아 매점 직원에게 물어보러 갔다. 내 나이즘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자신이 직원과 대화중이었다. 에릭 로메르 영화를 며칠 전부터 7편을 봤는데 어제 받지 못한 포스터를 오늘 받을 수 있냐고 물어보고 있었다.
직원은 포스터 배부는 당일 영화티켓에만 적용가능하다고 했다. 그분은 무척 아쉬워하며 오늘 영화 포스터만 받았다. 나는 포토플레이하는 법을 물으러 깄다가 포스터를 받지 못한 그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도 예전에 그런 경험이 있어서 공감되었다.
그분은 몇 년 전 에릭로메르감독 특별전을 오오극장에서 했을 때도 봤다고 했다. 그때 나도 주말 이틀을 특별전을 관람하기 위해 영화관을 들렀던 기억이 있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영화를 보다보면 이런 매니아들을 심심찮게 발견한다. 몇 년 전 에릭로메르 특별전 이틀 동안 나는 같은 자리를 예매헸고 내 옆자리의 관객도 같은 분이었다. 오늘도 그런 우연이 발생해서 웃고 말았다.
에릭로메르 영화의 특징은 영화 시작 5분 이내로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 그들은 언제나어떤 사건에 함께 맞닥뜨린다. 그리고 둘은 그것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의 연출을 맡은 하마구치류스케 감독은 ”에릭 로메르는 내가 흉내내고 싶은 가공의 스승이다.“ 라고 하며 그를 진정으로 좋아했다. 특유의 이러한 우연성과 대화로 스토리를 이어가는 방식을 좋아하는 건 홍상수 감독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어딘가에 매니아가 된다는 건 우연히 같은 세계로 진입한 서로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다.
오늘 보았던 <레네트외 미라벨의 네가지 모험>에서도 레네트의 자전거 바퀴에 구멍이 났고 그 장면을 본 미라벨이 바퀴를 수리해주겠다며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도 내성적인 공무원인 블랑쉬가 서류를 보며 혼자 점심을 먹고 있을 때 외향적이며 매력적인 학생인 레아가 같이 앉아도 되겠냐고 물어본다. 혼자 앉으면 주변에 남자들이 귀찮게 하는 게 싫어서라고 하자 블랑쉬는 공감하고 둘은 이내 친해진다.
두 영화는 다른 영화지만 같은 정서다. 모두 우연히 어떤 사건으로 시작되며 그것을 관통하는 대화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있다. ’정의란 무엇인가‘ 연애판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지나가 버린 포스터는 받을 수 없듯이 흘러가버린 사건 역시 돌릴 수 없다. 살아가면서 생각해왔던 정의의 기준은 지나가버린 포스터만큼이나 아쉬울 때가 많다. 정의의 개념이 사랑앞에서는 그 경계짓기가 참으로 모호하다. 두 영화 모두 정의와 도덕에 괸해 생각하게 한다.
정의라는 단어만큼이나 어려운 단어가 소통이라는 단어기 아닐까싶다. 시골에 사는 사람과 도시에 사는 사람,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랑하는 쪽과 사랑받는 쪽의 정의와 소통방식이 다르다. 특히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가지 모험>에서 그림을 팔려는 미라벨이 레네트와 말을 하지 않고 소텅하는 내기를 하는 장면에서 소통과 언어보다 더 중요한 소통은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임을 보여준다.
이 사람과는 잘 소통되다가 저 사람과는 영 불통이 되어버린다. 언어가 딱 그런 역할이다. 같은 언어를 쓰고 있지만 서로 다른 외계어처럼 이해되지 않는다. 반면 어떤 사람음 보자마자 서로 이해한다. 두 영화 속에서 모두 서로가 서로의 가치관으로 각자의 정의를 소통하려고 하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 담글 수 없는 것처럼, 정의를 생각하는 가치관도, 좋아하는 영화도, 취향도 어느 것 하나 특별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니 누구의 생각이 맞고 어떤 말은 틀리다고 하기도 어렵다. 지나가버린 포스터는 돌려주지 않으니까.
*포토플레이: 티켓을 사진처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지만 천원의 비용이 발샹하며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선택하여 자신만의 차별화된 티켓을 발부받는 느낌이 드는 장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