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신
문자가 온 것은 토요일 오후였다. 강원문학상 신인상 당선을 축하하며 당선소감과 사진을 보내달라는 문자를 아내에게 보여줬더니 보이스피싱 같다고 했다. 소감과 사진을 보내달라는 말을 돈을 보내달라는 말로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나는 인터넷에 접속하여 주최 측 홈페이지에서 다시 한 번 나의 당선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문자를 보낸 사무국장에게 전화를 하여 감사의 인사와 함께 다시 한 번 등단사실을 확인하였다. “큰일하셨습니다. 축하드려요.”하는 사무국장의 말에 나는 꿈이라도 꾸는 것 같았다. 현실 같지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당선사실을 전화로 보내주는 줄 알았다. 내가 읽은 소설가들의 등단에피소드는 모두 지하철에서 전화를 받았던지, 밥 먹다가 전화를 받았다는 식으로 직접 당선전화를 받은 것으로 묘사되었다. 지난 3년간 신춘문예와 각종 공모전에 소설을 제출하고 발표일자가 가까워오면 나의 신경은 온통 핸드폰의 벨소리로 집중됐다. 하지만 울리는 전화는 판촉과 보험 등 스팸전화들뿐이었다. 평소에 모르는 전화번호는 무시해버리면 그만이지만 당선발표일을 전후해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모든 문청들의 딜레마였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당선사실은 문자로 보내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나중에 한군데 더 당선문자를 받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동안 당선사실이 없어 알지 못했다는 것이 비극이면 비극.
나는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뒤져 제일 잘 나온 사진을 골라 당선자사진을 보냈다. 당선소감을 쓰기 위하여 문인협회인터넷카페에 접속하여 그동안 당선자들의 당선소감과 당선작들을 감상하였다. 그리고 심사위원들의 심사평도 꼼꼼히 읽어 보았다. 당선작들의 수준이 상당함과 동시에 심사위원들의 심사평들도 예리하게 당선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이런 수준의 작품들과 내 소설이 경쟁을 하였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나의 심장은 두근대었다. 마치 문학의 신들이 함께 축제를 하는 마당에 초대받은 느낌이었다. 소설가로서 나의 본능은 이런 순간에서도 발휘되어 문학의 신들과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하였다.
나는 상상 속에서 문학의 신들로부터 문학을 모욕한 죄로 심판을 당한다. 심판위원장은 세익스피어이고 심판대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시의 신 백석 시인이 나를 심판하기 위하여 문을 열고 검사석으로 들어왔다.
“동무, 동무는 동무의 죄를 알고 왔소.” 백석 시인은 포마드로 바람머리를 한 젊은 시절의 모습이었지만 북한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지 말투가 공산당원 같이 변해있었다.
“아니 제가 무슨 죄를 지었다는 지 잘 모르겠습니다. 시인님. 그 보다도 제가 시인님의 팬인데 사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지금 사인을 해 달라고. 동무 제 정신이오. 시라는 것은 한편 한편마다 성의를 다해 써야 하는 데 동무는 시를 너무 쉽게 쓴 단 말이야. 그리 성의 없이 대충 쓰니 공모전에서 당선될 수 없는 것 아니겠소.”
“저의 시는 일상생활을 소재로 하는 생활시라 조금 편한 문체로 쓰긴 합니다만 쓰는 과정이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시라는 것은 구조, 문장력, 표현력, 독자의 가슴을 울리는 공감대 등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질 때 아름다운 것이오. 소재의 일상성으로 동무의 게으름을 포장하지 마시오.”백석은 계속 나에게 말했다.
“읽을 때마다 오래오래 감흥이 남는 시, 짜임과 수사가 담백한 시, 작자의 몫과 독자의 몫을 잘 배려한 시, 이런 시가 신인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시라는 말이오.”
“시인님의 말씀을 들으니 할 말이 없습니다. 앞으로 명심하고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시인님 그래도 저에게 사인 한 장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직도 죄인은 정신을 못 차린 것 같습니다. 세익스피어 위원장님. 저는 죄인에게 시집 1,000권을 읽고 시 100편을 습작할 것을 명하는 판결을 내려 줄 것을 청합니다.”
“알겠소. 죄인 권기현에게 시집 1,000권을 읽고 시 100편을 습작할 것을 명한다.” 세익스피어는 판결봉으로 판결대를 세 번 치고 판결을 선고했다.
판결이 끝나자 백석 시인이 나가고 피천득 수필가가 법정으로 들어왔다. 그는 나를 한참을 노려보다가 세익스피어 위원장을 보고 말을 꺼낸다.
“죄인은 수필을 모독했습니다. 죄인에게 엄중경고가 필요합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긴장하여 몸이 뻣뻣하게 굳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수필은 모두가 쓸 수 있는 장르이지만 그렇기에 잘 쓰기는 매우 힘든 장르입니다. 그런데 죄인은 시와 소설과 달리 수필을 잡문이라고 생각하고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죄인.” 피천득 선생이 나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저는 수필을 경시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수필을 쓸 때 최선을 다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정성들여 수필을 써왔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수필은 지식으로 쓰는 게 아니라 감성으로 쓰는 겁니다. 혹시 내가 쓴 ‘인연’이라는 수필을 읽어 봤습니까?”
“네. 학창시절에 교과서에서 여러 번 읽었습니다. 선생님.”
“그 수필이 지식으로 쓰였던 가요?”
“아니오. 선생님의 지난 추억에 대한 감성으로 넘쳐났던 기억이 납니다.”
“바로 그겁니다. 수필은 체험을 바탕으로 하지만 작가의 독특한 감성으로 독자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죄인은 알량하게 책에서 얻은 얇은 지식으로 수필을 써 왔습니다. 그런 수필로 각종 공모전을 더럽혔으니 그 죄과가 가볍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저의 과오가 느껴집니다. 죄를 인정하고 판결을 기다리겠습니다.”
나의 순순한 시인에 피천득 수필가는 잠시 고민을 하는 모습이었다.
“세익스피어 위원장님. 죄인의 잘못은 크지만 그 죄과를 인정하여 개전의 정이 보이니 실형을 선고하는 것 보다는 봉사활동 및 재능기부를 통한 감성개발의 판결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죄인에게 양로원과 복지원에서 노인목욕 봉사활동 100시간과 아동복지센터에서 아동들에게 글짓기 수업 재능기부 100시간을 명한다.” 세익스피어 위원장이 판결을 내리고 나자 피천득 선생이 나가고 머리가 반쯤 벗겨진 늙은 백인 남자가 들어왔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라 자세히 보니, 집에 있는 안나카레니나 소설 표지에서 사진으로 봤던 톨스토이였다. 헉.
“죄인은 소설을 수필처럼 쓴 죄과가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검사석에서 돋보기를 손으로 치켜 올리면서 말했다.
“위원장님 소설은 자기의 경험을 쓰는 일기나 수기가 아닌 새로운 진실의 공간을 창작하는 것입니다.”세익스피어는 톨스토이의 말을 듣고 깊은 공감을 드러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희곡을 썼지만 희곡도 소설과 같이 새로운 진실을 창작하는 장르라 단순히 경험이나 수기를 썼다면 죄인은 용서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것입니다.”세익스피어는 나를 보고 질책했다.
“위원장님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저의 경험을 소재로 소설을 집필했지만 경험은 약간만 이용했을 뿐 대부분의 캐릭터와 사건은 새로 만들어 소설을 썼습니다.”
“그렇소. 톨스토이 경 죄인이 하는 말이 사실이오.”
톨스토이는 갑자기 기침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소설을 읽어보니 자기가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이야기라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다 창작이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톨스토이 선생님. 대부분이 제가 만들어낸 캐릭터이고 에피소드입니다. 부득이 저의 경험을 가져올 때도 많은 수정을 가하여 소설에 적합하게 변형하여 가져왔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죄인의 소설은 문체가 구리고 묘사가 엉성합니다.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많지 않아 아직 세상에 내 놓기에는 영글지 못한 소설입니다.”
“나도 읽어 봤는데 일견 그런 면도 있지만 이야기는 나름 재미있던데요. 소설을 끝까지 끌고 가는 추진력도 있어 보이고. 톨스토이 선생.”세익스피어의 말에 톨스토이는 다시 나의 소설을 읽어 보는 것 같았다.
“위원장님 잠시 휴정하고 접견실에서 접견을 요청합니다.”
두 사람은 나를 남겨두고 접견실로 들어갔다. 10여분 후 세익스피어와 톨스토이는 서로 웃으며 법정으로 들어왔다.
“소설적인 구성력과 완성도를 높이 평가하여 권기현에게 소설을 쓸 기회를 주기로 본 법정은 결정했소.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진정한 작가로 거듭 나도록 하시오.”
세익스피어 위원장은 판결봉을 세 번 내리쳤다.
“권작가님. 이젠 행복 끝 고생 시작이오.”
톨스토이는 나를 보고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뱀다리>
이번에 게시된 2021년 강원문학상 신인상 공모를 보고 작년 신인상 당선의 기쁨이 다시 떠올라 써 본 글입니다. 당선의 기쁨을 표현하려고 보니 부득이 수필 속 문학의 신들의 대화에 작년 심사위원분들의 의견을 인용하게 되었습니다. 넓으신 아량으로 이해부탁드릴게요. 늦은 나이에 등단의 기쁨을 주신 강원문인협회와 심사위원분들에게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이 글을 게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