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傲慢)
이진표
요즘, 자주 나를 돌아본다. 내 주위에서 좋지 않은 일이 생기고 마음이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원숭이가 자주 떠오른다. 올해가 ‘원숭이 해’라서가 아니다. 원숭이의 재주가 부러워서도 아니다. 다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속담이 예사로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은 재주가 모자라서가 아니고, 재주가 넘쳐서도 아니다. 그러면 왜? 자만을 넘어 오만이 불러온 실수라고 하면 지나친 판단일까. ‘내가 누군데. 원숭이 아닌가. 이 숲속에서 나무 타기는 나를 능가할 자 누가 있는가?’ 이러니 자만할 만하다.
그러나 원숭이는 하나는 알아도 둘은 모르는 어리석은 위인이다. 자만을 넘어 오만에 이르면 그 뒤에 숨어 있는 낭떠러지를 모르는 미숙아다.
내가 그러하다. 지난 일요일에 차를 타고 집을 나가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지다 돌아왔다. 차창이 박살나는 줄 알았다. 일전에 깨진 찻잔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집 앞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다가 직진하는 차와 부딪쳤다. 언제나 우회전하던 곳이다. 우리 집 앞이니 지나다닌 세월이 몇 년도 더 된다. 자신만만하게 지나다니던 길이 아닌가. 그러니 탈이 있을 수 없다고 믿었고 만성에 젖어 두려움도 없었다. 잘해왔고 잘하더라도 늘 조심해야 한다는 절제를 잊었다.
또한 초심을 잃었다. 운전대를 처음 잡았을 때는 등에 땀이 뱄다. 전방에 눈을 떼지 못했다. 운전석에 앉을 적에는 눈을 감고 한참 동안 안전이 제일이라고 다짐도 했다.
지금은 아니다. 오만이 넘친다. ‘무사고 몇 십 년’이란 괴물이 머리에 들어앉으면서부터는 운전대를 함부로 돌린다.
일전에는 찻잔을 깨뜨렸다. 하루에 한두 번 차를 마시는 찻잔이다. 더구나 대를 이어오는 귀한 찻잔이다. 물을 따르다 주전자에 걸려 방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났다.
날마다 하던 일이다. 수십 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 아무런 탈이 없었다. 해서 눈을 감고도 물을 따를 수 있는 자신이 있었을 것이다. 이것 역시 오만이다.
요즘은 집안사람과도 자주 부딪친다. 말을 함부로 한다.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사람으로 착각을 하고 있다. 내 집사람이다. 40년을 함께 살아온 사람이다. 그러니 마음대로 해도 된다. 이 또한 오만이다. 찻길에서 차를 함부로 운전하다 부딪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뿐만 아니다. 집안 조카들께도 말을 마구 하고 함부로 대한다. 어떤 때는 조카들이 들은 척도 아니 하고 돌아서버린다. 또 친구들과도 자주 다툰다. 친하다는 이유로 함부로 대한다. 이 또한 무례이며 오만이다.
이쯤 되니 가끔 스스로 돌아본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지난날에는 이러하지 않았는데…. 때때로 자책도 하지만 자책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이러다간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다. 찻잔이 부서지고, 차에 부딪치고, 집사람이나 친구와 다투고, 조카들이 돌아서고…. 이들은 넘어갈 수 있는 일들이다. 하나, 지울 수 없고, 돌아올 수도 없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고, 한 번 실수는 병가상사(兵家常事)*라고 자위할 때는 이미 지난 일이 된다.
모두가 부푼 가슴 때문이다. 지난날의 나를 버리지 못한 탓이다. 지난날의 경험은 때 지난 일이며,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날은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것이 현재의 자신인 줄 착각하고 있다. 더구나 그 그림자를 붙잡고 환상에 젖어있다.
교단 40여 년, 영광의 정년퇴직, 무사고 몇 십 년, 그럭저럭 살아온 70여 년, 이것이 무슨 대단한 일인 줄 알고 절제를 모르고 함부로 살아가는 우매한 모습이 스스로 가소롭다.
원숭이가 생각난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은 재주가 모자라서가 아니다. 경험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인가.
팔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스스로 돌아본다.
*병가상사(兵家常事) :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일은 흔히 있는 일
이진표 : 1940년 생, 진주사범학교 졸, 초등교장 정년퇴임,
2005. ‘창작수필’ 수필 등단
첫댓글 잠시
방심한 탓이겠지요
해강님에게 오만이란 있을수없는일
너무 자책하지마십시요
언제나 겸손하신글
겸손이 몸에 벤 분이지요
안병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