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의 행복
복잡한 사색의 통로를 지나는 길에
어찌 따끈한 한 잔의 커피가 없을까?
온갖 번다한 일들로 인해 마음이
심히도 번거롭고 귀찮게 여겨질 때
지옥보다 뜨겁게 사랑보다 달콤한
캐치프레이즈로 다가오는 차 한 잔
그 멀건 맹물 같은 것이
무슨 영양가가 있겠냐마는
새록새록 피어나는 생활의 잔정을
이리 저리 추스르고 보듬는 데는
그만한 음용할 것도 별로 없는 것 같아
너와 나 우리 모두 즐거이 애용 하네
혀끝을 살며시 휘 감돌아 내리는
달짝지근하고 새콤달콤한 맛에
한창 분주히 오가던 상념의 파노라마
무채색 오래된 상영관의 영사기 되어
흑백의 추억으로 짜르르 돌아가는데 ...
빛바랜 회색의 실루엣으로 남아
끈끈하게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저 억세게 기구한 밥상 같은 올무여 !
아무리 줄기차게 끈질기게 달라붙어도
너 훅 불면 바람으로 날아갈 것이여 !
습관처럼 다가와 풍경처럼 붙박이는
우리들의 오래된 유전과 전통처럼
심심풀이 땅콩이나 오징어처럼
입술 천장에 차지게 달라붙는 맛이여 !
오늘도 너로 인해 하루가 엉겨 붙는다
땀 흘리는 삶의 현장에서 너를 삼킨다.
호호 불어보는 뜨거운 입김 사이로
울컥 울컥 치밀어 오르다 사르르 녹는
물컹거리는 검은 욕망의 추임새사이로
맴돌다 꼴깍 숨넘어가는 수고의 짐이여 !
기찻길 옆 오막살이 옆 옥수수 밭
오가 가는 행인들이 지나가는 길목
따스하게 날아드는 따끈한 하오의 햇살
그 옆에 누렇게 여물어 가는 옥수수들
기차 소리 요란해도 옆집 강아지 짖어대도
칙칙 푹푹 기차 연통에서 새카만 매연을
쉴 새 없이 울컥 울컥 토해 낸다 해도
아, 어김없이 찾아오는 시절의 날들 속에
올해도 어김없이 옥수수 풍년이 들었네 그려
질박(質朴)한 살림살이 비록 사람 보기에는
궁벽(窮僻)이 짜르르 윤기로 감돈다 해도
천혜(天惠)의 공덕(功德)은 변하지 않고
어김없이 찾아와 선물(膳物)을 안겨 주었네 그려
신작로 자동차들이 떼거리로 데모하듯
신나게 경음(硬音)울리며 질주할 때도
고추잠자리 한가로이 떠 맴을 도는 곳
그 곳에 깃드는 유유자적한 평화의 기운
한껏 높아만 가는 파란 하늘 가로
옛날부터 전해져 오던 고운 엉김들이
저만치 파르르 떨리는 잎 새 하나로
빙그르르 맴을 돌며 살포시 떨어질 때
기찻길 옆 오막살이집에 연기가 피어나고
수숫대로 엮은 담장 울타리 잠자리 한 마리
이제 막 날개를 펴고 그 옆 옥수수 밭으로
어제 먹다 남은 성찬(盛饌)을 즐기려 가네
꽃밭에서
철따라 찾아가는 꽃밭에는
언제나 형형색색의 어울림이 있다
그 가운데 호젓이 파 묻혀 버린 날
온통 하늘은 노란색 애드벌룬
코끝에 스미는 재스민의 향기
이름 모르는 그윽한 고운 향취
온통 넋이 나간 추임새로
한동안 정신없이 쓰러져 있었다
하늘을 향해 피어오르던
고운 빛깔의 상념은 한 무더기
진홍빛 장미 덩굴 속에 엉기고
가느다란 촉수를 살짝 내민 가시
손가락 끝에 피어나는 붉은 선혈
점점이 구성지게 피어나 아롱지는
저 은밀한 욕망의 끝없는 질주는
내 가슴에 핏빛 울음으로 차고 넘쳐
터질듯 부푼 판타지아 교향곡이 된다
누가 근거 없이 꽃들의 아름다움을
시샘하여 평가절하를 하는가?
철마다 돌아오는 계절의 한 가운데
저리도 때깔 곱게 어우러지며 뽐내는
조화옹의 저 기가 찬 걸작들을 보라 !
혹은 이 사람에게는 이런 모양으로
넌지시 다가가 살며시 입을 맞추고
혹은 저 사람에게는 저런 색깔로
은근히 추파를 던져 배시시 웃는
저 황홀하다 못해 휘황찬란한
빛, 빛, 색, 색 빛, 색깔들의 만찬장
한참이나 정신없이 구경하는 사이
어느새 한 나절이 훌쩍 지나가 버렸네
춤추는 봄 날
봄이 오니
모두 가 다 좋아서 춤을 춘다
아득한 인고의 날들
숨죽이며 참아온
시린 날들은 날아가 버렸다
춤추지 말라는 시샘 추위도
이제 어디를 보아도 찾을 수 없다
완연한 그리움이 몰고 온
해방의 밝은 햇살은
만물을 깨우기에 충분하다
노랗게 물든 개나리가 배시시 웃고
하얗게 머금은 목련꽃 입술이 예쁘다
산천을 붉게 물들인 철쭉, 진달래도
가녀린 붉은 혓바닥을 날름거린다
산천과 시절이 한데 어울려
멋있게 빚어내는 고운 색깔의 향연장
노래하는 새들의 지절거리는 목소리
온 하늘가로 분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누가 춤을 멈추게 할 수 있으랴?
이 기쁜 해방과 자유의 날 들 가운데
도도히 흐르는 저 생명들의 환희의 찬가
누가 꽁꽁 언 화초의 심장을 녹일 수 있으랴?
천계의 빛나는 소스 태곳적부터 줄달음쳐 온
저 일곱 가지 빛살무늬 들의 기기묘묘한 작용
줄기차게 흐르는 생명의 연동 작용으로 인해
산천은 눈부실 듯 가슴이 벅차올라 노래하고
그 가운데 우리도 한 몫들 거들고 있는 것을 …….
달과 사막
광야와 같이
메마르고
건조한 땅에도
천계의 빛나는 소스
그 은파의 물결은
언제나
휘황찬란하게
넘실거린다
박토의 땅에도
어김없이 찾아와
밝은 빛으로
화답하는 저 걸물
세상의
어두움을 몰아내고
광명의
천지로 인도하는
저 빼어난 자태 앞에
홀연히 서면
유구무언이라
할 말이 없어진다
야트막한
인생의 굽이지고
이랑진 골짜기를 지나
스산한 바람이 불다 그친
먼지 풀풀 나는 대지를 가다 보면
물어 때는 독충
전갈도 발뒤꿈치를 노리고
쨍쨍 내리쬐는 열사의 더운 열기도
사정없이 등줄기와 낯짝을 내리 훑는다
나그네의 사주를 받은
뒤틀린 코브라의
날카로운 독아도
두 갈래 붉은 혓바닥으로
날름거리며 들락거리며
쉬지도 않고 내 쏠 채비를 한다
어떻게 무사히 지나고 넘어가랴?
저 해맑은 웃음으로 넌지시 웃는
배포가 큰 천계의 빛나는 전령의 안위
그 속에 피어나는 고운 미소를 발견한다
그 바다에 가면
갈매기 끼룩거리는
소릴 들을 수 있다
찰싹거리는 해조음이
허연 이빨을 드러낸 채
포효하며 울부짖는
바다 심장의 소리
맥박치며 굽이치며
신열로 펄펄 끓는
저 바다의 깊은
울음 소리를 듣는다
아, 선부의 노랫가락
높이 울러 퍼지는 곳
희망과 소망의 돛단배가
깃폭 높이 올리는 곳
그 바다에 가면
날마다 기분 좋은 콧노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