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국정감사 [업코리아] "노동부 스스로가 KTX 여승무원 불법 파견을 인정"

"노동부 스스로가 KTX 여승무원 불법 파견을 인정"
학계,법조계 등 노동부의 여승무원 불법파견 재조사 결과 반박

열린우리당 유승희, 민노당 심상정 의원 등의 주최로 10일 열린 'KTX사건 노동부 판정의 허와 실' 토론회에서 발제자들 및 토론자들은 지난달 29일 발표된 노동부의 불법파견 재조사 결과에 대해 강하게 비난했다.

KTX여승무원 외주위탁이 불법임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말한마디.

"투쟁을 강화할수록 여러분에게 지급되었던 인센티브는 하반기에 지급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근무태도는 개인단위로 평가될 것이며, 채용시 계약 조건 등에 벗어난 부당한 행위는 향후 면제부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지난 5월 15일 KTX여승무원들이 정리해고를 당하기 전, 철도공사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투쟁의 강도를 높이고 있을 당시 철도공사 김 모 여객사업본부장이 여승무원들에게 보낸 호소문 중 일부이다.

이 발언은 승무원의 채용과 고용조건을 결정하는 실질적인 주체가 철도공사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철도공사의 여승무원 파견은 명백히 불법임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노동부는 지난달 29일 KTX여승무원들의 불법파견 재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철도유통이 여승무원들의 인사노무관리를 수행한다"며 "철도공사가 여승무원들을 철도유통에 위탁한 것은 도급계약의 한계를 일탈했다고 볼수 없으므로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결론지은 바 있다.


노동부의 결정을 반박하거나 모순을 지적하는 목소리들이 10일 국회에서 울려퍼졌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과 열린우리당 유승희 의원이 주최한 한 토론회에서이다.

노동부의 불법파견 재조사 결과에 대한 법률적 문제점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법조계와 학계, 정계 등 각계 전문가들이 10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토론회를 갖고 KTX여승무원들에 대한 노동부의 법률적 해석 결과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특히 "일부 불법파견 요소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합법 도급"이라고 결론 지은 노동부에 대해 "스스로 불법파견임을 인정한 셈"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옹색한 변명 붙여 의도적으로 적법 판정 내린 것"

민주노총 법률원 권두섭 변호사는 여승무원들의 업무성격에 초점을 맞춰 "열차팀장과 여승무원들의 주업무가 구분 가능하다"는 노동부의 주장을 반박했다.

권 변호사는 "열차팀장 및 운용팀장 등 공사 소속의 직원들이 여승무원들에게 구체적인 업무를 지시하고 지휘감독을 통해 사실상 혼재하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이러한 관계에 있는 직원들을 외주위탁한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고 강조했다.

©이석주 권 변호사는 이같은 근거로 지난 2005년 철도공사측이 제작하여 교육시킨 'KTX승무원 서비스 매뉴얼'을 제시하며 "여승무원의 역할이 철도공사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만큼 철도공사가 이들에 대해 지휘감독 규율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부는 재조사 결과보고서를 통해 열차내의 안전업무는 열차팀장이 담당하고, 여승무원의 주된업무를 고객서비스로만 한정지어 양자간 주요업무는 명확히 구분된다고 해석을 내렸다.

현재 18량을 기준으로 한 KTX열차 내에는 열차팀장 1명과 승무원 3명, 공안1명, 이밖에 기장, 먹거리 판매원 등이 탑승하는 점을 볼때 노동부의 결론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권 변호사 등 참가자들의 지적이다.

권 변호사는 "(열차팀장 1명이 안전을 책임진다는) 노동부나 공사의 주장이 맞다면 열차운행 중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할 때 여승무원들은 '이것은 내 업무가 아니니 열차팀장에게 이야기해라'라는 것이 맞다는 상식에 맞지 않는 주장을 펴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밖에도 권 변호사는 여승무원 채용시 공사측 간부가 면접관 및 수습교육담당자로 참여한다는 점, 철도공사 행사시 여승무원들이 동원되는 점, 승무일지 작성시 열차팀장의 서명을 받는 점 등을 들어 서울지방노동청의 재조사 결과는 '노동부 고시'를 명백히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차별연구회 정형옥 노무사는 지난해 6월 1차 조사와 이번 재조사를 비교해가며 "노동부가 4대보험, 휴가 등 여승무원들의 업무 이외에 부수적인 형식 조건들만 가지고 적법 판결을 내렸다"고 맹비난했다.

정 노무사는 "노동부가 그나마 1차보다는 2차 때 사실관계를 많이 밝혔다"며 "일부 불법파견 요소를 인정하면서도 적법판결을 내린 것은 억지로 공사의 손을 들어주려다 생긴 '자기모순적' 결론"이라고 주장했다.

노동부는 이번 결정에서 "100% 적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철도유통이 자체적으로 임금을 지급해 근로조건을 결정해 사업주로서의 실체가 존재한다"고 밝혀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이에 정 노무사는 "노동부가 적법의 기준으로 제시한 내용들은 단순히 형식에 불과하고 옹색한 변명에 불과하다"며 "철도유통이 공사의 '일개부서'역할을 한 것이기 때문에 판단기준 자체가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즉, 철도공사측의 명백한 자회사 위장술을 노동부가 일부러 외면했다는 것이다.

"이철 사장 로비로 최종보고서 재작성 돼"

한편 이날 토론자로 나선 KTX승무지부 정지선 부대변인은 노동부의 재조사 및 발표 준비 과정에서 철도공사의 로비와 제3자에 의한 보고서 작성 등 여러 의혹들을 제기했다.

여승무원들은 지난달 29일 노동부의 최종보고서를 작성하는 단계인 법률자문단 회의가 이유도 없이 연기되고, 자신들을 지지했던 민변소속 변호사가 갑자기 해촉되는 등 공사측의 로비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세미나를 주최한 심상정 의원 ©이석주 정 부대변인은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최종보고서는 노동부의 재조사 결과 발표 훨씬 이전에 작성되었지만, 이철 사장의 로비로 인해 제3의 인물이 재작성 작업에 들어갔고 이러한 이유로인해 예정되었던 결과발표 일정이 연기되었던 것"이라고 공사측의 외압을 기정사실화 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열린우리당 홍미영 의원,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 민노당 심상정, 최순영, 단병호 의원 등이 참석하여 여승무원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북한의 핵실험 파문으로 13일로 연기된 2006 국정감사에서 KTX여승무원들의 문제가 주요쟁점으로 다루어질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노동부 재조사 발표와 관련한 여러 의혹들의 진실이 밝혀질지 주목된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 주최측은 "당초 철도공사와 노동부, 서울지방노동청 관계자들을 토론자로 계획했지만, '법적으로 정당한 판정이 내려진 이상 참석할 이유가 없다'고 밝혀 불참을 통보했다"고 전했다.

[토론회 참석자 발언]

임상훈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 법해석을 빌리지 않고 경영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철도공사가 기본적으로 인건비를 아끼려고 불법임을 알면서도 여승무원들을 위탁도급한 것 같다. 이해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는 철도공사 조직 내에서 어떻게 합리적 경영방식이 나올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설사 여승무원들이 승리해 직접고용이 되더라도 이런 조직에서 어떻게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다.

철도공사는 여승무원들을 왜 위탁도급했는지 타당한 아웃소싱 기준을 반드시 제시해야만 하고, 철도공사 뿐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공기업들은 이번 사태처럼 분쟁이 일어났을 경우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해결 메카니즘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양현아 서울대 법학과 교수

- 노동부는 여승무원들의 고객서비스를 단순히 안전과 전혀 상관없는 사항으로 판단했지만, 고객에 대한 서비스도 안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본질적 업무로 판단했어야 했다. 여승무원들이 고객서비스만 담당한다면 이들을 채용시 단순히 외모만 가지고 판단한다는 뜻인가. 고객서비스는 엔터테인먼트적 성격이 아니라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는 신자유주의 도입과 대규모 구조조정을 마치 시대의 흐름인냥 미시적인 관점에서 판단하고 있지만, 근로기준법과 민법위에 헌법이 존재하 듯 단순히 정책적 고려가 아닌 여러 사회현상과 맞물린 종합적 고려를 해야만 한다.

조돈문 카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 정확한 법률적 관계까지 파고들지 않아도 노동부의 판결내용은 결국 여승무원들의 불법파견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 되버렸다. 과연 서울지방노동청장이라는 사람은 초등학교까지 나왔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런상황에서 여승무원들이 주장하듯 제3자에 의한 보고서 작성이나 공사의 외압 등을 의심하지 않을 수 가 없다.

즉 이번 결정을 대단히 정치적인 판결이라고 추론하는데는 그리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정부는 지난7월 공공부문 비정규대책을 내세웠지만, 결국 이번 결정은 공기업에서 불법파견 결정이 날 경우 다른 공기업 및 사기업에 미칠 파급효과를 우려했던 것 아니냐

김진 법무법인 <이안> 변호사

- 변호사로 일해오면서 여러 불법파견 관련 사건들을 처리해왔다. 그때마다 느낀점은 입증자료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는데, 이번 여승무원 사건은 자료자체가 너무 완벽해 많은 기대를 했었다. 민변소속 변호사들과 다수의 전문가들 조차 이번 결정을 두고 "노동부가 과연 파견의 의미는 알고 있나"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노동부의 '단순착각'이라기보다는 파견업무 자체를 보는 우리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석주 기자 / 이슈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