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렌 골짜기(AllenDale)
강옥엽 인천여성사연구소 대표
오랜 역사의 흔적이 스며 있는 종가의 고택이나 외국인이 살았던 근대 건축물을 접할 때면 건물의 구조와 이력만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살았던 인물들의 궤적이 궁금해진다. 그런 사례 중에 개항기 인천 숭의동에 자리했던 알렌별장과 서울 행촌동에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건축 딜쿠샤(Dilkusha)를 들 수 있다. 전자는 현재 터로 남아 있지 않지만 다양한 이력을, 후자는 건물과 함께 의미 있는 역사를 전해주고 있다. 당시를 체험할 수 없었던 현재로서는 소중한 역사적 근거 자료라 할 것이다.
1901년 한국을 방문한 버튼 홈스(Burton Holmes)는 서울의 여러 모습을 촬영해 고종에게 보여 준, 한국에서 최초로 영화를 상영한 사람이자 또한 최초로 영화를 촬영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그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영화를 촬영하고 이를 바탕으로 여행기를 쓰면서 강연을 했다. 그의 여행기에 보이는 인천 관련 사진 중 지금의 숭의동 107번지 일대를 찍은 사진이 있다. 연기를 뿜으며 경인철도를 달리는 열차, 멀리 허허벌판과 구릉 위에 서 있는 알렌별장 전경이 그것이다.
알렌이 한국에 왔던 1884년 조선에서는 갑신정변이 발생했는데, 이때 부상당한 민영익을 고친 것이 인연이 돼 알렌은 고종 황제의 두터운 신임을 얻게 됐다. 이후 왕실의사 겸 고종 황제의 정치고문이 됐다. 고종은 고마움의 표시로 서울 재동에 있는 개화파 홍영식의 집을 주고, 1885년 4월 10일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 제중원을 설립하게 했다.
알렌의 한국에서의 외교 및 정치활동은 1890년 미국 공사관 서기관이 됐을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당시는 열강들의 이권쟁탈전이 벌어지던 시기였는데, 알렌은 고종 황제의 신임이 두터워 미국인들이 이권사업을 따는 데 유리했다. 운산광산 채굴권(1895), 경인철도 부설권(1896) 및 전차·전등 등에 관한 전력회사의 설치권(1897)을 미국에 넘겨주는 역할을 했다. 알렌은 22년간 한국에 머무르다가 1905년 조선을 떠나 고향인 오하이오주 톨레도에 정착, 향년 74세로 타계했다.
숭의동에 알렌별장이 왜, 언제 세워졌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나타나 있지 않지만 정황상 경인철도가 부설되는 1897년 전후로 추측된다. 더구나 별장 건축 비용 문제에서도 미국의 외교관 신분이었던 알렌은 주변 사업가의 주식을 단 한 주도 소유할 수 없었음에도 고향인 톨레도의 회사 두 곳에 투자했던 점 등에서 각종 이권사업을 알선해 준 것에 대한 반대급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런 것이 알렌별장을 건축하는 비용으로 사용됐으리라 추측된다.
알렌별장은 현재 전도관 자리, 창영동 쇠뿔고개로 불리는 곳에 세워졌는데, 경인철도가 이 별장 앞을 경유해 지나갔고 그를 위해 우각리역이 조성됐다고 전해진다. 그런 까닭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이 지역을 ‘알렌 골짜기(Allendale)’라고 불렀다.
별장은 흰색 2층 서양식 건물로 한 모퉁이를 둥근 탑으로 쌓아 올린 작은 돔 형식이었는데 ‘공사집’, ‘의사집’, ‘이명구(이완용 조카) 별장’, ‘서병의(서상집의 아들) 별장’ 등으로 불리면서 소유주가 바뀌어 갔고, 뒤에는 이순희의 계명학원이 있다가 1956년 인천전도관이 지어졌다. 한때 인천을 휩쓸었던 이 교회는 계파 갈등으로 연일 신문에 오르내리기도 했는데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1978년까지 무려 20여 년간이나 이 자리에 있었다. 인천전도관이 떠난 후 잠깐 공장이 들어서기도 했으나, 이곳에 마지막까지 자리했던 것도 교회당이었다. 최근에는 전도관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이 터에 얽힌 역사적 이야기들이 일시에 사라질까 안타까운 마음이다.
이와 대비되는 사례가 서울 행촌동에 현존하는 건축물 ‘딜쿠샤(Dilkusha)’이다. 미국의 기업인이자 언론인으로 3·1운동을 세계에 알렸던 앨버트 테일러 부부가 살았던 집이다. 힌두어로 ‘이상향’ 혹은 ‘행복한 마음, 기쁨’을 의미하는 이름이 새겨진 이 저택은 1924년 건축돼 1942년 일제에 의해 부부가 추방될 때까지 거주했던 공간이다. 이후 여러 사람의 소유로 바뀌었다가 한국전쟁 때는 피난민들의 거처로 개조됐고, 2005년 발견 당시 12가구가 살고 있었다. 2017년 서울시 등록문화재 제687호로 등록되면서 복원공사를 거쳐 2021년 전시관으로 개관돼 자칫 사라질 뻔했던 문화유산이 재탄생할 수 있었다.
재개발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알렌별장 터, 발견 당시 무려 12가구가 살고 있었던 딜쿠샤 저택의 문화유산으로의 재탄생을 보면서 도시재생이 화두인 지금, 재생의 본질이 ‘개발’보다는 ‘치유’의 관점에서 진행돼야 함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출처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http://www.kiho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