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위/ 노래로 듣는 한국근대사

[화려한 겨울]

노래로 듣는 한국근대사

김 중 위

우리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우리 민족은 참으로 맹랑한 민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끔 들 때가 있다. 신라시대에 이미 우리는 3명의 여왕을 경험했고 서양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시대에 우리는 삼국통일 즉 민족통일을 이루어 냈다. 그러면서도 안에서는 끊이지 않는 민란과 반정을 겪었다. 이(異)민족으로부터도 수많은 외침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견뎌내는 저력을 발휘했다. 그들은 침략하여 약탈하고 굴복은 시켰어도 온전히 다스리지는 못했다. 일본이 한국을 36년간 식민지로 삼았다고 하나 엄격히 따지고 보면 10여년 밖에 안 된다. 합방 된지 10년째 되는 1919년에 이미 해외에 우리는 민립(民立)정부를 세우고 일본과 싸우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그동안 수많은 의병들과 독립운동가들로 인해 일본은 한 시도 편한 날이 없는 36년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겪은 아픔 못지않게 힘겨운 악몽의 연속이었을는지도 모른다.

우리 민족이 갖는 이런 끈질김과 저항정신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끊임없는 외침(外侵)이 가져다 준 담금질의 결과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거론하고 싶은 것은 우리 민족의 예지라고도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비상한 사태에 직면하면 언제나 번득이는 예지로 노래를 불렀다. 참요(讖謠)다. 조선조 숙종 때에는 장희빈의 농간으로 인현왕후가 폐비가 되자 백성들은 이런 노래를 불렀다.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 철일세/ 철을 잃은 호랑나비/ 오락가락 노닐더니/ 제철가면 어이 놀까” 장희빈이 아무리 그래봤자 한 때 뿐 결국은 폐비가 다시 돌아오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와 미래에 대한 예측을 노래하였던 백성의 예지였다. 아닌게 아니라 백성들의 기대대로 장희빈은 사약을 받아 죽고 폐비 민씨는 다시 왕후로 복귀하였다.

한말에 한창 서양세력이 판을 치기 시작할 무렵 우리 민중은 느닷없이 이런 노래를 불렀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연평도 바다에/ 갈바람이 분다/ 엘화에야 네야 에헤야/ 나이리 이허리/ 매화로구나” 경기민요인 〈매화타령〉이다. 그러나 단순한 민요만은 아니다. 1866년(고종 3년)에 있었던 병인양요(丙寅洋擾)를 예언한 참요였다.

병인년은 당시 조선은 물론 서양사람에게도 끔직한 한 해였다. 그해 7월 제너럴셔먼(General Sherman, 해적선이라 하는 학자도 있다)호 라는 미국 상선이 대동강을 타고 올라와 평양주민들을 살해하고 약탈하자 화가 난 주민들은 배를 불사르고 선원 모두를 살해하였다. 당시 정부에서는 서양 사람들이 천주교도를 앞세워 조선을 침략하는 것으로 알고 그 때부터 9명의 프랑스 신부와 남종상 등 8천명에 달하는 신자들을 처형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프랑스 정부는 그해 9월, 천진에 있는 극동함대와 천여 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강화도를 점령하고 프랑스 신부 살해범의 처벌과 통상협상을 요구하였다. 조선 정부가 이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자, 프랑스 군은 40일 동안이나 체류하면서 강화도성을 불태우고 그곳에 보관되어있던 각종 보물과 도서들을 약탈하고 물러났다. 이런 변란이 있을 것을 우리 백성들은 미리 알아차리고 〈매화타령〉을 불렀던 것이다.

동학 농민운동이 있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서학에 대칭되는 동학이 1860년에 민족종교로 발돋움하기 시작하자 정부에서는 교주 최제우(崔濟愚)를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죄를 물어 사형시켰다. 이에 2세 교주 최시형(崔時亨)이 발 벗고 나서서 교주의 신원운동과 함께 사인여천(事人如天)과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기치를 높이 들고 동학농민운동에 매진하였다.

1894년 갑오년에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의 심한 가렴주구(苛斂誅求)로 농민들이 폭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때 동학의 고부접주 녹두장군이라는 별명을 가진 전봉준(全琫準)이 농민군을 진두지휘하면서 고부를 점령하고 전라북도 일대를 석권하였다. 이때 나온 노래가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 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였다. 여기서 ‘파랑새’는 농민군을 진압하도록 정부가 요청하여 건너온 청나라 군과 청군 출현에 뒤따라 들어온 일본군을 지칭하는 것이었고 ‘녹두밭’은 농민군을, 청포장수는 조선 민중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갑신정변(1884)을 뒤에서 밀다가 원세개가 지휘하는 청나라 군사에 의해 실패한 일본은 절치부심하면서 청군의 파병에 발맞춰 일본군 역시 발 빠르게 인천항을 거쳐 서울로 진입하였다. 그리고 곧 이어 경복궁을 점령(1894. 7.)하였다. 이를 본 농민군은 내정개혁 문제는 뒤로 하고 일제히 일본군 격퇴를 위해 궐기하였다. 이렇게 일본군과 싸우는 과정에서 녹두장군 전봉준은 일본군에 체포되어 사형(1895. 4.)당한 후에도 이 노래는 줄곧 불려졌다. 농민군으로 나갔다가 전사한 남편을 위한 진혼곡으로도 불리어졌고, 애기들을 위한 자장가로도 불리어 지면서 구전이 끊이지 않은 채 해방 후의 어린이들에게까지도 전해졌다. 어렸을 때의 필자도 따라 불렀다. 동학 농민군에 얽힌 노래는 이 한 곡으로 끝나지 않았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너 뭣하러 나왔느냐/ 솔잎 댓잎 푸릇푸릇/ 하절(夏節)인줄 알았더니/ 백설이 펄펄/ 엄동설한이 되었구나”. 농민군이 봉기할 당시의 시대상황이 만만치 않음을 직감한 민중들은 지금은 아직 봉기할 때가 아닌듯하다는 애틋한 심정으로 이 노래도 불렀다. 또 이런 노래도 불렀다. “아랫녘 새야 웃녘 새야/ 전주 고부의 녹두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두류박 딱딱 우여”(박찬호). 농민군이 대일항전으로 치달을 때에는 전주 쪽의 전봉준 군과 충청도 쪽의 손병희 군이 합세하였다. 이때 민중들은 두류산(지리산을 말함)쪽에서 관군이 올듯하니 전주 고부에 머무르지 말고 진격하라는 뜻의 노래를 부른 것이라 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새’는 농민군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더욱 기가 막힌 노래는 다음의 노래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 가보리” 이 노래는 무슨 뜻인가! 우선 ‘가보세’는 갑오년을 말한다. “가보세 갑오세(甲午歲)”다. 갑오년에 일어난 농민운동을 민중들은 이렇게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갑오년에 일으킨 농민운동을 갑오년(1894)에 성공시키지 못하고 을미년(1895)으로 넘어가면 병신년(1896)에 모든 것이 끝난다는 민중의 예지적 호소였다.

을미년은 어떤 해요 병신년은 어떤 해인가! 을미년은 을미사변 즉 일본군에 의해 민비가 살해된 해요, 병신년은 고종이 아관(俄館)으로 파천(播遷)한 해다. 동학 농민운동은 갑오년 2월에 거병하여 1차로 정부와의 전주화약(全州和約)(6월)을 통해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다가 일본군의 왕궁 점령소식에 분개한 농민군은 갑오년 10월에는 남북연합군으로 편성하여 일본군과 접전 끝에 을미년 4월에 전봉준의 사형으로 병신년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실패하였다.

병신년은 한 나라의 군주가 자기 나라 안에 있는 남의 나라 대사관저로 망명하여 숨어 지내는 형국의 한해였으니 “병신 되면 못가리”라고 울부짖을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우리의 민요 아리랑에 붙여 결국은 일제가 조선을 병탄할 것이라는 노래 역시 기가 막힌 표현으로 나타났다. “아라사 아차하니/ 미국은 밀구 온다/ 일본이 일등이다/ 영국은 영 글렀다/ 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조선을 가운데 두고 러시아와 미국과 영국이 일본과 각축전을 벌이지만 결국은 일본이 조선을 병탄할 것이라는 예언의 노래다.

그 외에도 일제시대에는 〈학도가〉, 〈희망가〉, 〈석탄가〉 등에 이어 국채보상운동을 장려하는 〈담바고 타령〉에 이르기 까지 시대 시대마다 겪고 있는 아픔을 민요조의 노래로 남겨 놓은 것이 부지기수다.

필자가 초등학교 1학년 해방되던 해에는 이런 말이 떠돌아다녔다. “조선아 조선아/ 소련놈에게 속지 말고/미국 놈 믿지 말고/ 조선은 조심해라/ 일본놈 일어선다” 어쩌면 이리도 운율이 척척 맞을 수 있을까!

김중위(金重緯) 프로필

-. 경북 봉화 출생(1939. 10. 28), 봉화초등학교, 양정 중.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및 동 대학원 졸업(정치학 석사), 대구대학교 명예행정학 박사, 고려대 정경대 및 명지대 강사,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석사과정) 초빙교수 역임, 고려대학교 교우회 자문역(현)

-. 전 고려대학교 총장 현민(玄民) 유진오 박사 비서관, 13대 대통령후보 대변인, 대통령 취임준비위원, 14대 대통령후보 정무보좌역, 대통령 특사, 당 대변인, 정책연구실장, 정책조정실장, 당정책위 의장, 당 민족사관정립 특별위원장, 당 경제특위 및 지방자치특별위원장, 당 서울시지부 위원장(3회), 〈한나라당〉 당무위원, 〈새누리당〉 상임고문

초대 환경부장관, 12, 13, 14, 15대 국회의원, 국회예결특위 위원장, 국회제도개선특별위원장, 국회정치개혁특별위원장, 국회정무위원장, 국회경제종합대책특위위원장, UNESCO한국위원회위원, 국회도시문제연구회 회장, 국회카톨릭신도의원회 회장, 국회〈암법〉제정의원모임 회장, UN환경계획(UNEP)한국위원회 부총재, 대한민국〈헌정회〉영토문제연구특위 위원장, 편집위원회 의장

-. 사단법인 강우규 의사 기념사업회 회장, 심산 김창숙 선생 기념사업회 회장, 의성김씨 대종회 회장, 포럼글로벌코리아 대표, 주)동립산업 기획부장, 감사, 상임감사, 상무이사 역임

-. 전, 《사상계》 편집장, 한국문인협회, 국제PEN한국본부 고문, 한국수필문학회 이사, 《한강문학》 상임고문, 월간 《헌정》誌 주간, 칼럼니스트(경북신문, 경남일보, 대전일보, 중부일보, 문학저널) 및 수필가로 활동

-. 저서 : 《정치와 반정치》, 《의회주의의 몰락》, 《권력과 부패》, 《마음의 티끌을 닦으며》, 《산너머 산이지만》, 《목소리를 낮추어서》, 《순간을 위하여 영원을 위하여》, 《눈총도 총이다》 외/ 역서 : 《부와 빈곤》(G.길더) 외

-. 수상 : 청조근정훈장, 익재(이제현)문학상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