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매창 소개.
조선 시대 수많은 여류 시인들이 있었고,
그녀들이 남긴 시문집 또한 여러 권이 되지만,
그 중에서도 군계일학은 양반집 규수로는 허난설헌이 으뜸이고,
기생으로는 황진이와 이매창이 쌍벽을 이룬다.
황진이가 남긴 한시는 고작 3 - 4 편에 불과하고,
우리말로 쓴 시조 역시 많지는 않다.
어찌 보면 황진이는 한자가 아닌 한글로 쓴 시조가 걸작이고,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이후 한글 詩 분야에 있어 一人者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이매창은 漢詩에 있어서는 조선 최고의 작가라 할 수 있는데,
황진이를 능가하는 일면을 보여 주고 있다.
이매창은
전북 부안현의 아전 이탕종의 딸로 1573년에 태어나
女子로서 한창 나이인 38살인 1610년 늦은 봄에 죽었다.
매창은 한 男子를 만나 지아비로 모시며(이조시대에는 이렇게 표현했다.)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할 수 없었기에,
매창 나이 18살에 처음 만나 알게 된 28살 연상의 촌음 유희경을 첫사랑이자
평생의 戀人으로 삼았다.
매창은 전북 부안에 살고 촌음은 한양에 살아,
情을 통하고 헤어져 다시 재회까지 무려 15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지만,
매창의 가슴속에 시종일관 변함없이 남아 있는 男子는 유희경밖에 없었다.
매창은 유희경이 한양으로 떠나고 15년 세월 동안을 홀로 살며,
한 때는 당시 김제 군수인 묵재 이귀와 情人(정인: 정을 통한 사이) 사이였고,
교산 허균(홍길동전의 저자, 허난설헌의 친동생, 동인의 지도자 초당 허엽의 3남)
과 정신적 사랑은 했지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일편단심 하나로 남은 男子는 오로지 유희경뿐 이었다.
情을 주고 떠나가서 오지 않는 님을 기다리며,
一生을 외롭게 독수공방으로 보내야 했던 이매창.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 絶唱의 漢詩들은 한 女人의 이러한 삶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기생으로서
최고로 착한 여자가 이매창이고,
남자를 유혹하여 연애 잘 하기로 첫손가락에 꼽히는 여자는 황진이.
독하기로 유명한 여자가 소춘풍.
한 남자와 지고지순한 사랑을 한 순애보 여자는 홍랑 이었다.
이매창은 한시와 거문고, 노래에 있어 당대 최고일 뿐만 아니라,
한시에 있어서는 조선 오백년을 넘어 한민족 5천년 역사에서 女流로서 최고수 이었다.
제사 지내줄 자식이 없었기에,
죽어서도 거문고와 함께 부안읍 공동묘지에 묻혔고,
매창을 사랑하는 나무꾼, 남사당패들이 해마다 매창이 뜸에서 그녀의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살아생전에 수백 편에 달했다는 한시는
고작 58수만이 부안 고을의 아전들에 의하여 암송되다가 그녀의 사후 58년이 지나서,
목판으로 출판되어 오늘에 전해져 오고 있다.
이매창은 한시로 유명한데, 앞으로 25여편 정도를 카페에 올려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화우 라는 한글로 된 아름다운 詩 한편이 전해져 오고 있다.
이화우(梨花雨)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 참조
1. 이 한글 시는 이매창(1573-1610) 이
그녀의 戀人인 유희경(천인 출신의 한시의 대가인데,
임진왜란 때 의병의 공을 세워 양반으로 신분 상승이 되었음.) 과 이별하고,
서울로 떠나간 임을 전북 부안에서 그리워하며 지은 한글 詩로
현재 전북 부안에 있는 매창 추모비에 새겨져 있다.
2. 이 詩의 뜻은 하얀 배꽃이 피어있는 어느 비 오던 봄날
눈물을 흘리며 보낸 그 님(유희경)은
세월은 흘러 가을이건만 당신은 날 생각하기나 하실련가?
천리 멀리 떨어져 있으니 그대 향한 외로움만 오락가락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