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보가 신재효 본(한글, 漢字)
아동방(我東邦)이 군자지국이요, 예의지방이라. 십실지읍(十室之邑)에도, 충신이 있고, 칠세지아도, 효제를 일삼으니, 무슨 불량한 사람이 있것느냐마는,순임금세상에도 사흉(四凶)이 었으며 요임금 당년에도, 도척(盜 )이 있었으니아마도 일종(一宗) 여기는 어찌할 수 있것느냐.
충청 전라 경상의 삼도 월품에 사는 박가 두 사람이 있었으니 놀보는 형이요 흥보는 아우인데 동부동모 소산이되 성정은아주 달라 풍마우지 불상급(風馬牛之不相及)이라. 사람마다 오장육부로되 놀보는 오장칠부인 것이 심사부(心思腑) 하나가, 왼편 갈비 밑에 병부주머니를 찬 듯하여 밖에서 보아도 알기 쉽게 달리어서 심사가 무론(毋論) 사절하고, 일망무제(一望無際)로 나오는데 똑 이렇게 나오것다.
본명방(本命方)에 벌목하고 잠사각(蠶絲角)에 집짓기와 오귀방(五鬼方)에 이사권코, 삼재든데 혼인하기 동네 주산을 팔아먹고 남의 선산에 투장(偸葬)하기 길 가는 과객 양반 재울 듯이 붙들었다 해가 지면 내어쫓고, 일년고로(一年苦勞) 외상 사경(私耕) 농사지어 추수하면 옷을 벗겨 내어쫓기, 초상난 데 노래하고 역신 든데 개 잡기와 남의 노적에 불지르고 가뭄 농사 물꼬 베기 불붙은 데 부채질, 야장(夜葬)할 때 왜장 치기 혼인뻘에 바람 넣고 시앗 싸움에 부동(符同)하기, 길 가운데 허방놓고 외상 술값 억지 쓰기 전동(顫動)다리 딴죽 치고 소경 의복에 똥칠하기 배 앓이 난놈 살구 주고 잠든 놈에 뜸질하기 닫는 놈에 발내치고 곱사등이 잦혀놓기, 맺은 호박 덩굴 끊고 패는 곡식 모가지 뽑기 술 먹으면 후욕(逅辱)하고 장시간(場市間)에 억매하기 좋은 망건 편자끊고 새 갓 보면 땀대 떼기 궁반 보면 관을 찢고 걸인 보면 자루 찢기 상인을 잡고 춤추기와 여승 보면 겁탈하기 새 초빈(草殯)에 불지르고 소대상에 제청치기, 애 밴 계집의 배통 차고 우는 아이 똥 먹이기 원로행인의노비 도둑, 급주군(急走軍) 잡고 실랑이질, 관차사의 전령 도둑 진영교졸(鎭營校卒) 막대 뺏기 지관을 보면 패철(佩鐵)깨고 의원 보면 침 도둑질 물 인 계집 입맞추고 상여 멘 놈 형문 치기 만만한 놈 뺨 치기와 고단한 놈 험담하기채소반에 물똥 싸고 수박밭에 외손질과 소목장(小木匠)이의 대패 뺏고 초라니패 떨잠 도둑 옹기짐의 작대기 차고 장독간에 돌 던지기, 소매치기 도자속금(盜者贖金) 고무도적의 끝돈 먹기와 다담상에 흙 던지기 계골(計骨)할 때 뼈 감추기 어린애의 불알을 발라 말총으로 호아매고 약한 노인 엎드러뜨리고 마른 항문 생짜로 하기 제주병(祭酒甁)에 개똥 넣고 사주병(蛇酒甁)에비상(砒霜)넣기 곡식밭에 우마 몰고 부형 연갑에 벗질하기 귀먹은 이더러 욕하기와 소리할 때 잔말하기, 날이 새면 행악질 밤이 들면 도둑질을 평생에 일삼으니 제 어미 붙을 놈이 삼강을 아느냐 오륜을 아느냐. 굳기가 돌덩이요 욕심이 족제비라 네모진 소로(小 )로 이마를 비비어도 진물한 점 아니나고 대장의 불집게로 불알을 꽉 집어도 눈도 아니 깜짝인다.
흥보의 마음씨는 저의 형과 아주 달라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에게 존경하며 인리간에 화목하고 친구에게 신의 있어 굶어서 죽게된 사람에게 먹던 밥을 덜어주고 얼어서 병든 사람 입었던 옷 벗어주기늙은이의 짊어진 짐 자정하여 저다주고 장마 때 큰물가에 삯 안 받고월천(越川)하기 남의 집에 불이 나면 세간 지켜주고 길에 보물이 빠졌으면지켜 섰다 임자 주기 청산에서 백골을 보면 깊이 파고 묻어주며 수절과부보쌈하면 쫓아가서 빼어 놓기 어진 사람 모함하면 대로 나서 발명하고애잔한 놈 횡액 보면 달려들어 구원하기 길 잃은 어린아이 저의 부모를찾아주고 주막에서 병든 사람 본가에 기별하기 계칩불살(啓蟄不殺) 방장부절(方長不折),남의일만 하느라고 한 푼 돈도 못 버니 놀보 오죽 미워하랴.
하루는 놀보가 흥보를 불러,
"흥보야 네 듣거라, 사람이라 하는 것이 믿는데가있으면 아무 일도 안 된다. 너도 나이 장성하여 계집 자식이 있는 놈이사람 생애 어려운 줄은 조금도 모르고서 나 하나만 바라보고 유의유식(遊衣遊食) 하는 거동을 보기 싫어 못 하것다. 부모의 세간 아무리 많아도 장손의차지인데, 하물며 이 세간은 나 혼자 장만했으니 네게는 부당이라. 네처자를 데리고서 속거천리(速去千里) 떠나거라. 만일 지체하여서는 살육지환(殺戮之患)이날 것이니 어서 급히 나가거라."
가련한 흥보 신세 지성으로 비는 말이,
"비나이다 비나이다, 형님전에 비나이다. 형제는일신이라 한 조각을 베면 둘다 병신 될것이니 외어기모(外禦其侮)를어이 하리. 동생 신세 고사하고 젊은 아내 어린 자식 뉘 집에 의탁하여무엇 먹여 살리리까. 장공예(張公藝)는 어떤 사람인고 하니 구세(九世) 동거 하였는데 아우 하나 있는 것을 나가라 하나이까. 척령( )은 짐승이나금란지의(金蘭之誼)를 알았고 상체(常 )는 꽃이로되, 탐락지정을 품었으니형님 어찌 모르시오. 오륜지의를 생각하여 십분 통촉하옵소서."
놀보가 분이 상투 끝까지 치밀어 그런 야단이 없구나.
"아버지 계실적에 나는 생판 일만 시키고서작은 아들이 사랑옵다 글공부만 시키더니 너 매우 유식하다. 당 태종은성주로되 천하를 다투어서 그 동생을 죽였으며 조비(曹丕)는 영웅이나재조를 시기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나 같은 초야 농부가 우애지정(友愛之情)을알것느냐."
구박 출문 쫓아내니 가련하다 흥보 신세 개구 다시못 하고서 빈손으로 쫓겨나니 광대한 이 천지에 무가객(無家客)이 되었구나.
불쌍한 흥보댁이 부자의 며느리로 먼 길 걸어 보았것나. 어린 자식 업고 안고 울며불며 따라갈 제 아무리 시장하나 밥줄 사람뉘 있으며 밤이 점점 깊어 간들 잠잘 집이 어디 있나. 저물도록 빳빳이굶고 풀밭에서 자고 나니 죽을 밖에 수가 없어 염치가 차차 없어 가네. 이곳저곳 빌어먹어 한두 달이 지나가니 발바닥이 단단하여 부르틀 법아예 없고 낯가죽이 두꺼워서 부끄러움 하나 없네. 일년 이년 넘어가니빌어먹기 수가 터져 흥보는 읍내에 가면 객사에나 사정(射亭)에나 죄기(坐起)를높이 하고, 외촌을 갈 양이면 물방아집이든지 당산 정자 밑에든지 사처(舍處)를정하고서 어린 것을 옆에 놓고 긴 담뱃대 붙여 물고 솥솔을 매든지 또아리를겯든지 냇가나 방죽이나 가까우면 낚시질을 앉아 할 제 흥보의 마누라는어린 것을 등에 붙여 새끼로 꽉 동이고 바가지엔 밥을 빌고 호박잎에건건이 얻어 허위허위 찾아오면 염치없는 흥보 소견에 가장태(家長態)를하느라고 가속이 늦게 왔다고 짚었던 지팡이로 매질도 하여 보고 입에맞는 반찬 없다 앉았던 물방아집에 불도 놓아 보려 하고 별수를 매양부려 하루는 이 식구가 양달 쪽에 늘어앉아 헌 옷에 이 잡으며 흥보가하는 말이,
"우리 신세 이리되어 이왕 빌어먹을 테면 전곡(錢穀)이많은 데로 가볼밖에 수 없으니 포구(浦口) 도방(道傍) 찾아가세 ."
일 원산 이 강경 삼 포주 사 법성리 악안 부원다리부안 줄내 근방을 다 찾아다녀 보니 비린내에 속 뒤집혀 암만해도 할수 없다. 산중으로 다녀 볼까 우복동 수인성 청학동 백학동 두류산 속리산순창 복흥 태인 산안 한다는 좋은 데를 다 찾아다녀 봐도 소금 없어살 수 없다. 고향 근처로 도로 찾아 한 곳을 당도하니 촌명은 복덕이요인심은 순후한데 빈집 한 칸이 서 있거늘 잠시 주접하여 살아보니 집꼴이 말 아니어 집 마루에 이슬이 오면 천장에 큰 빗방울. 부엌에 불을때면 방안은 굴뚝이요 흙 떨어진 욋대 구멍에 바람은 살 쏜 듯이.틀만남은 헌 문짝에 공석(空石)으로 창호하고 방에 반 듯 드러누워 천장을망견하면 개천도(開天圖)를 붙인 듯이 이
십팔 수를 세어 보고 일하고 곤한 잠에 기지개를불끈 켜면 상투는 허물없이 앞 토방에 쑥 나가고 발목은 어느새에 뒤안에가 놓였구나. 밥을 하도 자주 않으니 아궁이 풀을 뽑았으면 한 마지기못자리는 넉넉히 할 테어든 그렁저렁 여러 해에 자식은 더럭더럭 풀풀이생겨나고 가난은 버쩍버쩍 나날이 심해 가니 여거 식구 굶어 내기 초상난집 개 같구나.
흥보의 마누라가 견디다 못하여 가난 타령 섧게 울제,
"가난이야 가난이야 천만고에 있는 가난 아무리헤아려도 내 위에는 다시없네. 환도소연(環堵蕭然) 불폐풍일(不蔽風日) 도정절(陶靖節)의 가난하기, 내 집보단 대궐이요 삼순구식(三旬九食) 십년일관(十年一冠) 정광문(鄭廣文)의 가난하기 내게 대면 부자로세. 어릉중자(於陵仲子)는 주렸으나 오얏이나 얻어먹고 소중랑(蘇中郞)은굶을 적에 방석 털을 삼켰으니 오얏을 어디서 보며 방석이 어디 있나. 선산 해(害)로 이러한가 파묘나 하자 하되 종손이 말릴 테요 귀신이저희(沮戱)한가 점이나 하자 한들 쌀 한 줌이 없었으니 복채를 낼 수있나. 애고애고 설운지고 기한이 이러하니 불고염치(不顧廉恥)가 저절로되네. 여보시오 아기 압시, 형님 댁에 건너가서 전곡간에 얻어다가 굶은자식을 살려냅세."
흥보가 걱정하여,
"형님 댁에 건너갓 애긍히 사정하여 돈이되나쌀이 되나 주시면 좋거니와 어려운 그 성정에 만일 아니 주시옵고 호령만하시오면 근래 같은 세상 인심에 형님이 실덕될 터이니 안가는 수가옳으이"
"주시고 안 주시기 천부에 계시오니 청하다가못되면 한이나 없을 테니 수인사(修人事) 대천명(待天命)에 길을 두고산으로 갈까 되든지 안 되든지 허사 삼아 가 보시오."
흥보가 하릴없어 형의집에 건너갈 제,의관을 한참차려 모자 터진 헌 갓에다 철대를 술로 감아 노갓끈 달아쓰고 편자는좀이 먹고 앞춤에 구멍이 중중, 관자 떨어진 헌 망건을 물렛줄로 얽어쓰고 깃만 남은 베 중치막을 열두 도막 이은 술띠로 시장찮게 눌러 매고헐고 헌고의 적삼에 살점이 울긋불긋, 목만 남은 길버선에 짚대님이별자로다. 구멍뚫린 나막신을 두 발에 잘잘 끌고 똑 얻어 올 걸로 큼직한오쟁이를 평양 가는 어떤이 모양으로 관뼈 위에 짊어지고 벌벌 떨며지나갈 제, 저 혼자 돌탄( 嘆)하여,
"아무리 생각하나 되리란 말 아니 난다. 모진목숨 아니 죽고 이 고생을 하는구나."
형의 문전에 당도하니 그새 성세(聲勢)더 늘어서가사(家舍)가 장히 웅장하다. 삼십여 칸 줄행랑을 일자로 지었는데 한가운데 솟을대문 표연히 날아갈 듯. 대문 안에 중문이요 중문안에 벽문이라거장한 종놈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쇠털 벙거지 청창(靑 )옷에 문문에수직타가 그 중에 늙은 종은 흥보를 아는구나. 깜짝 놀라 절을 하며손을 잡고 낙루하며,
"서방님 어디 가셔 저 경상이 웬일이요. 수직방에들어앉아 어한(禦寒)조금 하옵시다."
방으로 들어가서 담배를 붙여 주며,
"서방님이 저리 될 제 아씨야 오죽하며 그새에아기는 몇 분이나 더 낳으시고 어찌하여 저꼴이오. 서방님이 나가실제 우리들 공론한 말이 군자같은 그 심덕에 어디 가면 못 살것나 암데가도 부자 되지 그럴 줄만 알았더니 세상이 공도(公道)없소."
끌끌 혀를 차며 화로의 불을 뒤져 가까이 놓아주니흥보가 불 쬐고 눈물을 흘리면서 목맺힌 소리로 ,
"복 없으면 할 수없네. 아들은 스물다섯, 아씨야말할게 있나 나 차리고 온 의복은 게다 대면 장갓길. 이 식구 스물일곱똑 죽게 되었기에 형님전에 고간하여 얻어 가지 왔네마는 문안 일향하옵시고성정 조금 풀리셨나?"
"문안이사 그 앞에가 무슨 병이 얼른하며 좀체귀신이 꼼짝할까 일생 태평하시옵고 성정 말씀이야 , 서방님 계실 제와장리(長利)나 더 독하오 두 말씀 할 것 있소. 이번 제사때에 음식장만아니하고 대전(代錢)으로 놓았
다가 도로 쏟아 내옵는데 지난달 대감 제사에놓았던 돈 한 푼이 제상 밑에 빠졌던지 몇 사람이 죽을 뻔 , 이번은의사가 또 생겨 싸돈으로 아니 놓고 꿰미채 놓았습죠."
흥보가 방에 안장 담배 먹고 불 쬐니 몸이 조금 녹았다가이 말을 들어보니 등골이 썬득썬득 찬물을 끼얹고 가슴이 두근두근 쥐덫이내려진 듯하고 머리끝이 꼿꼿하여 하늘로 치솟은 듯 온 몸을 벌벌 떨면서하는 말이,
"저기 들어가지 말고 바로 가는 수가 옳지. 이럴 줄 아는 고로 아예 아니 오쟀더니 아씨에 못 견디어 부득이 왔네그려."
그 종이 하는말이,
"이 추위에 저 꼴하고 예까지 왔삽다가 못 얻으면그만이지 무슨 탈이 있으리까. 어서 들어가 보시오."
"전일에 계시던 방에 그저 계신가?"
"아니오 그 방 옆에 화계(花階)를 꾸며 놓고화계 앞 굽은 길에 방석이 깔렸으니 그리 휘돌아 가면 외밀이 쌍창을열고 화류(樺榴)틀 완자영창(卍字映窓) 양편체경 붙인 창에 비슥이 누워계시오다."
" 함께 가서 가르치소."
"아니요 못하지요. 이런 위태한 일 만일 아차하게 되면 나더러 데려왔다 둘이 다 탈이오니 혼자 들어가 보시오."
흥보가 하릴없어 이를 꽉 아드득 물고 팔짱을 되게끼고 죽을 판 살 판으로 가만가만 자주 걸어 초당앞을 당도하니 과연놀보가 영창문을 반쯤 열고 잘돈피 두루마기 우단 왜단은 무겁다고 양색단의를 하고 청모관(靑茅冠)비껴쓰고 십상 백통 오동수복(烏銅壽福) 부산장인 맞춤대에 팔장생 별각죽(別刻竹)을 기장 길게 맞추어서 양초(洋草)피워입에 물고 안석에 비스듬히 누었구나. 흥보가 아주 죽기로 자처하고툇마루에 올라서서 곡진히 절을 하고 떨며 유무를 드려,"떠나온지 적년(積年)이니 기체 안녕 하옵신지."
놀보가 한 손으로 안석을 잡고 배 앓는 말 머리들듯 비슥이 들어본다. 한어미 배로 나와 함께 커서 장가들고 자식 낳고함께 살다 쫓아낸 동생이니 아무리 오래되고 형용이 변했던들 모를 리가있겄나만, 우애하는 사람이라 아주 모르는 체하여
"뉘신지요."
흥보는 정말 모르고 묻는 줄 알고 갔던 연조(年條)까지고하여
"갑술년에 나간 흥보요."
놀보가 무수히 되씹으며 의심하여,
"흥보 흥보 일년 새경 먼저 받고 모 심을 때도망한 놈 그놈은 황보렸다. 쟁기질 보냈더니 소 가지고 도망한 놈 그놈은 숭보렸다. 흥보 흥보 암만 해도 기억치 못하겄다."
흥보가 의사 있는 사람이면 수작이 이러하니 무슨일이 되겄느냐 썩 일어서서 나왔으면 아무 탈이 없을 것을 저 농판 숫한마음에 참 모르고 그러하니 자세히 일러주면 무엇을 줄 줄 알고 본사를다 고하여,
"동부동모 친형제로 이름자 항렬하여 형님 함자놀보자 아우 이름 흥보라 하온줄을 그다지 잊으셨소."
놀보가 생각하니 다시 의뭉을 떨자 한들 흥보의 하는말이 밤송이 까놓듯 하였으니 의뭉집이 없었구나. 맞설 밖에 수 없거든,
"그래서 동부동모나 이부이모나 친형제나 때린형제나 어찌 왔는고?"
운판 미련키는 흥보 같은 사람 없어 얻으러 왔단말을 그 말 끝에 할 것이랴. 엔간한 제 구변에 놀보 감동시킬 줄로 목소리섧게 하고 눈물을 훌쩍이며 고픈 배 틀어쥐고 애긍히 빌어 본다.
"형님 나를 내보낸 건 미워함이 아니오라 형님덕에 유의유식 사람 될 수 없었으니 각 살이 고생하면 행여나 사람될까생각하여 하였으니 그 뜻 어찌 모르리까."
놀보가 저 추는 말은 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말은 썩 대답하여,
"아무렴."
"형님 댁을 떠날 때 부부 손목 서로 잡고 언약을하옵기를 밤낮으로 놀지말고 착실히 품을 팔아 돈 관이나 모으거든 흰떡치고찰떡 치고 연계(軟鷄)삶아 위에 얹어 내 등에 짊어지고 찹쌀 청주 웃국질러 병에 넣어 자네가 들고 형님 댁에 둘이 가서 형님 부처 잡숫는것 기어이 보고 오세."
놀보가 음식 말을 듣더니 침을 삼키며 추어,
"그렇지."
"단단 약속하였더니 어찌 그리 무복하여 밤낮으로벌려 해도 돈 한 푼을 못 모으고 원찮은 자식들은 아들이 스물다섯."
놀보가 뒤로 물러앉으며 군소리로,
"박살할 놈 그 노릇을 해도 밤이면 대고 파니다른 일 할 틈 있어야지 계집년 생긴 것이 눈이 벌써 음녀거든."
"식구가 이러하니 아무런들 할 수 있소 빌어도많이 먹으니 다시는 빌 데 없고 굶은 지도 원 오래니 더 굶으면 죽겄으니예 형님전에 왔사오니 전곡간에 조금 주면 스물일곱 죽는 못숨 여상(呂尙)의일단사(一簞食)요 학철( 轍)의 일두수(一斗水)니 적선을 하옵소서."
두손을 비비면서 꿇엎디어 섧게 우니 놀보가 생각한즉저놈의 쪼된법이 빌어먹기 투가 나서 달래서는 안갈테요 주어서는 또올테니 죽으면 굶어죽지 맞아죽을 생각을 없게 하는 수가 옳다 하고부잣집 바람벽에 도적 방비하려 하고 철퇴 철편 마상도며 단단한 몽둥이를오죽 많이 걸었겄나. 그 중에 단단하고 손잡이 좋은 몽둥이 하나를 내려손에 들고 엎드려 우는 볼기짝을 에후루쳐 딱 때리고 추상같이 호령한다.
"하늘이 사람 낼제 정한 분복 각기 있어 잘난놈은 부자 되고 못난 놈은 가난하니 내가 이리 잘살기 네 복을 빼앗느냐뉘게 다가 떼쓰자고 이 흉년에 전곡 주소 목 안으로 소리하며 눈물 방울흩뿌리면 네 잔꾀에 내 속으랴. 조금 지체 하다가는 잔뼈 찾지 못할테니 속속 출문 어서 가라."
몽둥이를 또 들메니 불쌍한 저 흥보가 제 형 성정을아는구나 눈물 씻고 절을 하며,
"과연 잘못하였으니 너무 진념 마옵시고 평안히계십소서. 동생은 가옵니다."
하직하고 나올적에, 남들은 놀보 가속이 거렁이 에밥 싸주네 밀가루 퍼서 주고 공알답인 한다 해도 모두 거짓말. 이년의마음씨는 놀보보다 더 독하여 낭자하고 긴 담뱃대를 물고 안 중문에비껴 서서 시종을 구경타가 흥보가 나간 것을 보고 제 서방을 나무라,
"저러한 떼군놈을 단단히 쳐줘야 다시는 안올텐제어떻게 때렸길래 여상(如常)으로 걸어가네. 계집은 잘 잡죄지. 다리칼공알주먹 하면서도 동생은 우애하여 사정을 보았구만."
흥보가 형의집에 전곡타러 왔다가 몽둥이만 잔뜩타고 비틀걸음으로 걸어간다. 이때에 흥보 아내는, 여러날 굶은 가장을형의 집에 보내고서 전곡간에 얻어 오면 굶은 자식 먹일 걸로 여(閭)에나서 기다린다. 스물다섯 되는 자식 다른 사람 자식 낳듯 한 배에 하나낳아 삼사 세 된 연후에 낳고 낳고 했어야 사십이 못다 되어 그리 많이낳겄느냐. 한 해에 한 배씩 한 배에 두셋씩 대고 낳아 놓았구나. 그래도아이들은 칠칠 일이 지나면은 안기도 하여보고 백 일이 지나면은 업기도해보고 첫돌이 지나면 손 잡고 걸어보고 삼사 세가 되면 의복 입고 다녔어야다리에 골이 오르고 몸이 활발할 터인데 이 집 자식 기르는 법은 덕석을결때에 세 줄로 구멍을 내어 한 줄에 열 구멍씩 첫 구멍은 조그맣고차차 구멍이 커간다. 한 배에 낳은 자식 둘이 되나 셋이 되나 앉혀 보아앉으면은 첫 구멍에 목을 넣고 하루 몇 때씩을 암죽만 떠 넣으면 불쌍한이것들이 울어도 앉아 울고 자도 앉아 자고 똥 오줌이 마려우면 덕석쓴 채 앉아 누워 세상에 난 연후에 실오라기 하나라도 몸에 걸쳐 본일 없고 한
번도 문턱 밖에 발 디뎌 본 일 없고 다른 사람 얼굴보아 소리 들어본 일 없고 그저 앉아 큰 것이라 때묻은 여윈 낯이 터럭이거칠거칠. 동지섣달 강아지가 아궁에서 자고 난 듯 덕석 쓴 채 새고나면빼빼 마른 몸뚱이가 대강이를 엮어 놓은 듯 못 먹고 앉아 크니 원 무르게되어서 큰 놈들은 스무 살 씩 작은 놈들은 열칠팔 세, 남의 자식 같으면농사하
네 나무하네 한창들 벌이를 하련마는 원 늦되어서부르는게 어메 아비 음식 이름, 아는 것이 밥뿐이로구나. 다른 음식알려 한들 세상에 난 연후에 먹기는 고사하고 보거나 듣거나 하였어야지. 밥 갖다 줄 때가 조금만 지나면 뭇 놈이 그저 각청으로 ,
"어메 밥 어메 밥"
하는 소리 비 오렬 제 방죽 개구리 소리도 같고 석양천에떼매미 소리도 같고 언제라도 밥 들고 들어가도록,
"어메 밥 어메 밥"
하는구나.
이날도 흥보 댁이 여러 자식놈들의 어메 밥 소리에정신을 못 차려서 벗은 발에 두 손을 불고 이문(里門)밖에 나서보니흥보가 방장 건너올 제, 지지도 메도 아니하고 빈손 치고 정신 없이비틀비틀 오는 거동 조창(漕創)배 격졸로서 일천 석 실은 곡식 풍랑에파선하고 십 차 형신(刑訊) 삼 년 체수(滯囚)의 고생을 걲고 오는 모양. 다섯 바리 고마 마부 관가 봉물을 싣고 갔다 백 냥짜리 말 죽이고 주막주막 빌어먹어 빈 채 들고 오는 모양 정색이 말 아니어 흥보 댁이 깜짝놀라 손목을 잡으면서 ,
"어찌 그리 지체하고 어찌 그리 심란한가. 오죽시장하며 오죽 춥겄는가."
자세히 살펴보니 쑥 들어간 두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간신히 살 가리운 고의 뒤폭 툭 미어져 빳빳 마른 볼기짝에 몽둥이 맞은자리 구렁이가 감겼는 듯. 흥보 아내 대경하여,
"애겨, 이게 웬일인가 저 몹쓸 독한 사람, 굶은사람을 쳤네 그려."
가슴 탕탕 발 구르니 흥보가 달래어,
"자네 그게 웬 소린가 형님 댁에 건너가니 형님이반기시고 좋은 술 더운 밥을 착실히 먹인 후에 쌀 닷 말 돈 석냥을 썩내어 주시기에 쌀 속에 돈을 넣어 오쟁이에 묶어지고 한출첨배(汗出沾背)오노라니이 너머 깊은 골짜기에 설금찬 두 사람이 몽둥이 갈라 쥐고 솔밭에서왈칵 나와 볼기짝을 때리면서, '이놈, 목숨이 크냐 재물이 크냐.' 한번 호통에 정신 놓아 졌던 것 벗어 주고 겨우 살아 오느라고 서러워서울었으니 형님은 원망 마소."
흥보 댁이 아니 믿고 손뼉을 딱딱치며,
"그래도 내가 알고 저래도 내가 아네 몹쓸래라몹쓸래라 시아주비도 몹쓸래라 하나있는 그 동생을 못 본 지가 몇 해런고. 오늘같이 추운 아침 형 보자고 간 동생의 관망을 보거드면 오려논에새 볼 터요 의복을 보거드면 구럭 속에 황육(黃肉)든 듯, 얼굴은 부황채색(浮黃菜色) 말소리 기진 함함( ) 여러 해 굶은 줄과 조금하면 죽을 정색 번연히알 터인데 구완하긴 고사하고 저리 몹시 때렸으니 사람이 할 일인가. 애고애고 설운지고 옛사람의 어우 생각 구름 보면 낮졸은 수유(茱萸)꽃꺾어 꽂고 소일탄(少一歎)을 한다는데 우리 집 시아주비는 어찌 그리영독한고 남의 원망 쓸데 없네 모두 다 내 죄로세 국난에 사양상(思良相) 가빈에 사현처(思賢妻)라. 내 설마 음전하면 불쌍한 우리 가장 못 먹이고못 입힐까 가장은 처복 없어 나 까닭에 굶거니와 철 모르는 자식 정경더구나 못 보겠네 짐승은 미물이나 입으로 밥을 물어 자식을 먹여 주며추우면 날개 벌려 자식을 덮는 것을 나는 어찌 사람으로 수다한 자식들을굶기고 벗기는고. 각결(却缺)의 아내 같이 밭이나 매어 볼가 양홍(梁鴻)의아내 같이 물이나 길어볼까 직녀성에 걸교(乞巧)하여 침자품을 팔아볼까 탁문군의 본을 받아 술장수를 하여 볼까."
흥보가 깜짝 놀라,
"자네 그게 웬 소린가. 죽었으면 그저 죽지자네 시켜 술 팔겄나 가사는 임장(任長)이니 내 나서서 품을 팔 터이니자네는 집에 있어 채전이나 가꾸고 자식들을 길러 내소."
흥보가 품을 팔 제, 매우 부지런히 서둘러 상평하평(上平下平)김매기원산근산 시초베기 먹고 닷 돈 받고 장서두리 십리에 돈 반 승교 메기신산(新産)석어(石漁) 밤짐 지기 시 매긴 공사 급주 가기 방 뜯는데조역꾼 담 쌓는데 자갈 줍기 봉산 가서 모내기 품팔기 대구령에 약태전초상 난 집 부고 전키 출상할 제 명정(銘旌)들기 공관되면 상직하기대장간에 풀무불기 멋있는 기생 아씨 타관애부(他官愛夫) 편지 전키부잣집 어린 신랑 장가 들 제 안부 (雁夫)서기 들병장수 술짐 지기 초라니판에 무투 놓기 아무리 벌어도 시골서는 할 수 없다. 서울로 올라가서군치리집 종노릇 하다가 소주 가마 눌려 놓고 뺨 맞고 쫓겨 와서 매품팔러 병영에 갔다가는 배교 밀리어서 태장 한 개 못 맞고서 빈 손 쥐고돌아오니 흥보 아내가 품을 판다.
오뉴월 밭매기와 구시월 김장하기 한 말 받고 벼훑기와 입만 먹고 방아찧기 삼 삶기 보 막기와 물레질 베짜기와 머슴의헌 옷 짓기 상고에 빨래하기 혼장가에 진일 하기 채소밭에 오줌 주기소주 고고 장 달이기 물방아에 쌀 까불기 밀 맷돌 갈 제 집어 넣기 보리갈 제 망웃 놓기 못자리 때 망초 뜯기 아이 낳고 첫국밥을 제 손으로해 먹고 운기(運氣)를 방통(放通)하되 절구질로 땀을 내니 한 때도 쉬지않고 밤낮으로 벌어도 늘 굶는구나.항보 댁이 할 수 없어 죽기로 자처하고복을 못 탄 신세 자탄을 진양조로 섧게 울 제, 맘 있는 사람들은 귀에서도눈물 난다.
"애고 애고 설운지고 복이라 하는 것을 어쩌면잘 타는고. 북두칠성님이 마련하시는가 제왕 산신님이 점지하신가. 생년생월 생일 생시 팔자에 매였눈가. 승금상수(乘金相水) 혈토인목(穴土印木) 묘쓰기에 매였는고 이목구비 오악으로 생기기에 매였는가. 적선행인(積善行人) 은악앙선(隱惡仰善) 마음씨에 매였는가. 어찌하면 잘사는지 세상에 난연후에 불의행사 아니하고 밤낮으로 벌어도 삼순구식(三旬九食) 할 수없고 일년 사철 헌 옷이라. 내 몸은 고사하고 가장은 부황 나고 자식들은아사지경(餓死之境) 사람 차마 못보겠네 차라리 자결하여 이런 꼴 안보고저 애고애고 설운지고."
치마끈으로 목을 매니 흥보가 울며 말려,
"여보소 아기 어멈 이것이 웬일인가. 자네가살았어도 내 신세 이러할 제 자네가 죽으면 내 신세는 어떠하고 자식들이어찌 될까. 부인의 백년신세는 가장에게 매였는데 박복한 나를 얻어이 고생을 하게 하니 내가 먼저 죽으려네."
허리띠로 목을 매니 흥보 아내 겁을 내어 가장 손목붙들고서 둘이 서로 통곡하니 아주 초상 난 집 되었구나.
이때에 중 하나가 촌중으로 지나는데, 행색을 알수 없어 연년 묵은 중 헐디헌 중 초의불침 부불선(草衣不侵復不線) 양이수견미복면(兩耳垂肩眉覆面) 다 떨어진 청올치 송낙 이리총총 저리 총총 헝겊으로 지은 것을 흠뻑눌러 쓰고 누덕누덕 헌 베 장삼 율무 염주를 목에 걸고 한 손에는 절로굽은 철쭉장 한 손에는 다 깨진 목탁을 들고 동냥을 얻으면은 무엇에받아 갈지 목기짝 바랑 등물 하나도 안 가지고 개미가 안 밟히게 가만가만가려 디디며 촌중으로 들어올 제 개가 쾅쾅 짖고 나면 두 손을 합장하며 ,
"나무아미타불."
사람이 말 물으면 허리를 굽히면서
"나무아미타불."
이집 저집 다 지나고 흥보 문전에 당도터니 양구히주저하여 울음소리 한참 듣다 목탁을 두드리며 목소리 내어 하는 말이,
"거룩하신 댁 문전에 걸승 하나 왔사오니 동냥조금 주옵소서."
목탁을 연해 치니 흥보가 눈물 씻고 애긍히 대답하되,
"굶은 지 여러 날에 전곡이 없사오니 아무리섭섭하나 다른 데나 가보시오."
그 중이 대답하되,
"주인의 처분이니 그저는 가려니와 통곡은 웬일이오."
"자식은 여럿인데 가세가 철빈하여 굶다굶다못하여서 가련한 부부가 목숨 먼저 죽기 다투어서 서로 잡고 우나이다."
저 승이 탄식하여,
"어허 신세 가련하오. 부귀가 임자없어 적선하면오나니 무지한 중의 말을 만일 듣고 믿을 테면, 집터 하나 가르칠게소승 뒤를 따르시오."
흥보가 대희하여 천번 만번 치하하며 대사뒤를 따라가니 배산임수(背山臨水) 개국하고 무림수죽(茂林修竹) 두른곳에 집터를 재혈(栽穴)할 제 명당수법(名堂手法)이 완연하다.
"감계룡(坎癸龍) 간좌곤향(艮坐坤向) 탐랑득거문파(貪狼得巨門破)며 반월형 일자안(一字案)에 문필봉 창고사(倉庫砂)가죄우에 높았으니 이 터에 집을 짓고 안빈하고 지내오면 가세가 속발하여도주(陶朱) 의돈( 頓)에 비길 테요 자손이 영귀하여 만세 유전하오리다."
정간에 입주 자리 막대기 넷 박아주고 한 두 걸음나가더니 인홀불견(人忽不見)이라. 도승인 줄 짐작하고 있던 집 헐어다가그 자리에 의지하고 간신히 지낼 적에 백설한풍 깊은 겨울 벌거벗고텅 빈 배로 아니 죽고 살아나서 정월 이월 해빙하니 산수경개 장히 좋다. 유색황금눈(柳色黃金嫩)에 꾀꼬리 노래하고 이화백설향(梨花白雪香)에나비가 춤을 춘다. 유작유소(維鵲有巢) 짓는 재주 내 집보다 단단하고산량자치(山梁雌雉) 유는 소리 너는 때를 얻었도다. 집은 방장 새려는데소쩍새는 비오비오. 쌀 한 줌이 없는 것을 저 새 소리 '솥 적다' 포곡(布穀)은운다마는 논이 있어야 농사하지. 대승(戴勝)아 날지마라 누에 쳐야 뽕따겄다. 배가 저리 고프거든 이것 먹소 쑥국새 목이 저리 갈하거든 술을줄까 제호조( 鳥) 먹을 것이 없으니 계견을 기르겄나 살해를 아니하니미록( 鹿)이 벗이로다. 삼월동풍 방춘화시(方春和詩) 비금주수(飛禽走獸) 즐길적에 강남에서 돌아온 제비 비입심상 백성가(飛入尋常百姓家)라흥보의 움막에 날아드니 흥보가 좋아라고 제비보고 치하한다.
"소박한 세상 인심 부귀를 추세하여 적막한이 산중에 찾아올 이 없건마는 연불부빈가(燕不負貧家)라 주란화각(朱蘭畵閣)은다 버리고 말만한 이내 집을 찾아오니 반갑도다."
저 제비 거동보소 그래도 성조(成造)라고 남남지성( 之聲) 하례하고 좋은 진흙 물어다가 처마 안에 집을 짓고 웅비종자(雄飛從雌) 힐지항지(署之 之) 알을 낳아 새끼 까서 밥 물어다 먹이면서 자모구구(子母 ) 즐기더니 천만 의외 대망(大 )이가 제비 집에 들었거늘 흥보가 깜짝놀라 정설하며 쫓는구나.
"무상한 저 대망아 너 먹을 것 많구나 청초지당(靑草池塘)에처처와(處處蛙) 춘면불각 처처조(春眠不覺處處鳥)며 허다한 것 다 버리고구태여 내 집에 와서 제비 새끼 잡아먹노. 한 고조 과대택(過大澤)에적소검(赤小劒) 드는 칼로 네 허리를 베고지고 남악사(南嶽詞)에 원정하여신병을 몰아다가 네 큰 목을 자르고저."
급급히 쫓고 보니 제비 새끼 여섯에서 다섯 먹고하나 남아 혈혈히 아니 죽고 날기를 공부타가 대발틈에 발이 빠져 거의죽게 되었거늘 흥보가 보고 대경하여 제비 새끼를 손에 놓고 무한히탄식한다.
"가긍한 네 목숨 대망에게 안 죽기에 완명으로알았더니 절각지환(折脚之患)이 웬일이냐 전생의 죄악이냐 잠시의 횡액이냐삼백 우족(羽族) 많은 중에 죄 없는게 제비로다. 네 알이 아니던들 은나라가없으렷다. 네 턱이 아니면은 만리봉후(萬里封侯) 어찌하리 백곡에 해가없고 사람을 별로 따라 공량락연니(空梁落燕泥) 문장의 수단이요 연어조량만(燕語雕粱晩)은정부의 수심이라. 네 경색이 가긍하니 기어이 살리리라."
칠산 조기 껍질 벗겨 두 다리를 돌돌 말고 오색 당사로찬찬 감아 제 집에 넣었더니 십여일 지난 후에 양각이 완고하여 비거비래(飛去飛來) 노는 거동 보기가 장히 좋다. 구만 리 장공에 높이높이 날아 보고 일대장천 맑은 물을 배로 씩 스쳐 보고 평판한 넓은 뜰에 아장아장 걸어보고 길게 맨 빨랫줄에 한들한들 앉아 보고 바람에 떨어진 꽃 또기또기차도 보고 세우에 젖은 날개 슬근슬근 다듬으며 아로새긴 들보 위에고운 말로 하례하고 해당화 그늘 속에 오락가락 놀아 보니 흥보가 좋아라고 ,집안에 있을 제는 제비하고 소일하고 나갔다 돌아오면 제비 집을 보아다정히 지내더니 칠월유화(七月流火) 팔월환위(八月환위) 이슬이 서리되고 금풍이 삽삽하여 수의(授衣) 구월 되어 오니 동방(洞房)에 실솔()이 울어 깊은 수심을 자아내고 장공에 홍안성은 먼데 소식 띄워 온다.
용산에서 술 마시고 망향대(望鄕臺)에 손 보낼 제섭섭다 우리 제비 고향 강남에 가려 하고 하직을 하는구나. 흥보가 탄식하여 ,
"사랑옵다 우리 제비 날 버리고 가려느냐 강남이멀다 하니 며칠이면 당도할꼬. 명춘에 돌아오거든 부디 내 집 찾아 오라."
제비 자도 못 잊어서 나갔다 돌아와서 아리따운 말소리로이별을 아끼는 듯. 흥보는 본래 서러운 사람이라 눈물보씩이나 흘리고이별을 하였구나. 십이제국(十二諸國)에 갔던 제비 구월 그믐에 돌아와서시월 초 하룻날 제 장수에게 현신하고 새끼 수를 점고하여 문서 치부(置簿)하는구나. 노나라에 갔던 제비 첫째로 들어가고 조선에 왔던 제비 둘째로 들어갈제 흥보의 제비가 현신하니 장수가 묻는 말이,
"어찌 새끼 하나 까고 두 다리가 봉통졌나?"
제비가 여짜오되,
"새끼 여섯을 깠삽는데 대망이가 다 먹삽고다만 하나 남은 것이 대발 틈에 발이 빠져 거의 죽게 되었더니 주인흥보의 힘을 입어 간산히 갈렸으니 흥보의 어진 덕은 백골난망(白骨難忘) 되나이다."
제비 장수 분부하되,
"장령을 어기면 번번 탈이 있느니라. 금춘 이월나갈 적에 그날이 을사일 사불원행(巳不遠行)이니 가지 마라 만류해도고집으로 나가더니 뱀날 떠났기로 뱀환을 만났구나. 흥보 한 일 생각하니금세의 군자로다. 보배 하나 갖다 주어 그 운혜를 갚아라. 명춘에 나갈적에 내게 다시 고하여라."
삼동을 다 지내고 이월 초에 행발할 제 흥보가 살린제비 장수전에 하직하니 보물 하나를 내어 주며,
"이것을 물어다가 흥보에게 신전하라."
제비가 받아 물고 조선으로 나올 적에 무인지경 누만 리에 인가를 볼 수 있나. 춘연이 소림목(巢林木) 밤이면 나무에서자고 날이 새면 다시 날아 삼월 삼일 원정일에 흥보 집 찾아드니.
이때에 주인 흥보 제비를 보내고서 일념으로 못 잊어서왕왕 생각타가 삼삼일이 돌아오니 그 제비가 다시 올까 품팔러도 아니가고 기다리고 앉았더니 반갑다 저 제비 처마 안에 날아들제 봉통이진두 다리가 구시용(舊視容)이 완연쿠나.
"아지주지."
고운 소리로 그린 회포 말하는 듯 흥보가 좋아라고무한히 정설한다.
"너 왔느냐 너 왔느냐 내 제비 너 왔느내 행진강남수천리 자거자래 너 왔느냐 강남은 가려지(佳麗地)라 어찌하여 내버리고누추한 이내 집을 허위허위 찾아왔나. 인심은 교사(巧詐)하여 한 번가면 잊건마는 너는 어찌 신(信)이 있어 옛 주인을 찾아왔나. "
한참 이리 반길 적에 제비 입에 물었던 것을 흥보앞에 떠 어치니 흥보가 집어 들고 제 아내를 급히 불러,
"여보소 아기 어멈, 어서와서 이것 보소. 제비가물어 왔네."
흥보 잭이 들고 보며,
"애겨 이게 무슨 씨 아닌가."
여인네 소견이라 당찮게 대어 보아,
"그것 아마 외씨지."
"아닐세. 옛날에 소평(召平)이가 벼슬이 무섭다고외 심어서 팔았으나 그 땅이 관중(關中)이라 강남은 부당하고 외씨가이렇게 크겄는가."
"그러면 여지( 枝)씬가."
"아닐세 양귀비의 고운 얼굴 회색을 내려고여지만 먹었으나 서촉(西蜀)에서 공 바치니 강남 소산 아니었고 여지씨는우툴두툴 벌레 먹은 형상이니 옳아 그것이로구나. 약방에서는 백편두(白扁豆)라한다던가."
"그것 강낭콩 아닌가."
"아닐세 강낭콩은 휠씬 넓고 가에 흰 테 둘렀나니."
"애겨 무슨 글자 있네."
"일 주소 어디 보세. 갚을 보(報) 은혜 은(恩) 박 포(匏) 보은포. 보은포 보은은 충청도 땅 옥천 옆에 , 그러니까 이제비가 올 적에 공주로 노성으로 은진으로 온 것이 아니라 보은으로옥천으로 연산으로 dhikTsk. 여러 고을 지나오면 어찌 똑 보은 박씨를무엇하러 물어 왔나. 보은 대추 좋다 하되, 박 좋단 말 못 들었지. 그러나저러나강남 것이든지 보은 것이든지 저 먹을 것 아닌 것을 물어 오기 괴이하고내 앞에다 떨치기 더욱 괴이하니 아무튼 심어 보세."
을불재종(乙不裁種) 날을 보아 대장군 안선방을 둥그렇게깊이 파고 오줌독에 담근 신짝 여러 죽을 쟁이고서 흙과 재를 잘 버무려단단히 심었더니 입묘(入苗)하는 것을 보니 박은 정녕 박이어든 순이차차 뻗어 나니 산나무 가지 찍어 드문드문 손을 주어 지붕 위로 올렸더니화풍감우(和風甘雨) 호시절에 밤낮으로 무성하여 삿갓 같은 넓은 잎이온 집을 덮었으니 비가 와도 걱정 없고 닻줄 같은 큰 넌출이 온 집을얽었으니 바람 불어도 걱정 없어 흥보가 벌써부터 박의 힘을 입는구나. 마디마디 핀꽃이 노인의 기상처럼 조촐하다. 박 세 통이 열었는데 처음엔까마귀 머리만 종자만 보아(甫兒)만 화로만 장단 북통만 폐문(閉門) 북통만 밤낮으로 차차 크니 약한 집이 무너질까 흥보가 걱정하여 단단한장목으로 박통 놓인 데마다 천장을 괴었더니 그렁저렁 상풍(霜楓) 팔월단호절(斷壺節)이 당도하니 흥보가 저의 처와 의논을 하는구나.
"여보소 아이 어멈 이 아니 좋은 땐가. 우리동네 사람들은 오례 잡아 서릿쌀 풋돔부 풋콩 까서 밥을 짓네 송편하네창 앞에 대추 따고 뒤꼍에 알밤 줍고 논귀에서 붕어 잡고 두엄에 집장(醬) 띄워 먹을 것 많건마는 가련한 우리 신세 먹을 것 바이 없네. 세상에죽는 목숨 밥 한 덩이 누가 주며 찬 부엌에 굶은 아내 조강(糟糠)인들볼 수 있나. 철모르고 우는 자식 배를 달라 밥을 달라 무엇으로 달래볼까. 우리는 저 박을 타서 박속은 지져 먹고 박적은 팔아다가 한 끼구급하여 보세."
동네 도끼 얻어 들고 지붕 위로 올라가서 박꼭지는찍었으나 내릴 수가 없다. 정월 보름에 끌었던 줄 당산 나무에 감겼거늘그 줄을 풀어다가 박통을 동이고서 흥보는 뒷줄 잡고 처자는 잡아당겨간신히 내려놓고 박 목수의 큰 톱 얻어 박통을 켜려는데,흥보 꼴 이러하나속멋은 담뿍 들어,
"여보소 아이 어멈 평지에 지어도 절은 절이요성복(成服)술에도 권주가 한다네. 우리의 일년 농사 논을 한가 밭을한가. 모 심을 제 상사 소리 밭 맬 제 메나리를 불러 볼 수 없었으니우리는 이 박 타며 박소래나 해보세."
"무슨 노래 사설을 알아야 하지."
"묵은 사설은 때 묻으니 박 내력을 가지고서사설 지어 메기거든 자네는 뒤만 맡소."
"그럽세."
흥보가, 톱질 소리를 메긴다.
"어기여라 톱질이야 당겨 주소 톱질이야. 성인이풍류 질 제 금 석 사 죽 포 토 혁 목 이 박이 아니면은 팔음이 어찌되리."
일표음(一瓢飮)을 어찌하며,소부(巢父)의 둔세고절(遁世孤節), 이 박이 아니면은, 기산괘표(箕山掛瓢)를 어이하리."
"어기여라 톱질이야."
"군자의 말 없기는 ,무구포(無口匏)가 그 아닌가. 남화경(南華經)에 있는 박은, 대이무용(大而無用) 아깝도다."
" 어기여라 톱질이야."
"인간 대사 혼인할 제, 표배(瓢盃)로 행주(行酒)하고,강산의시주객(施酒客)은, 거포준이상속(擧匏樽以相屬)이라."
"어기여라 톱질이야."
" 우리도 이 박 타서, 쌀도 일고 물도 떠서, 가지가지 잘 써보세."
"어기여라 톱질이야."
슬근 슬근 탁 타 놓니, 청의 입은 동자 한 쌍이, 박통 밖에 썩 나서며,
"이것이 흥보 씨 댁이요.?"
흥보가 깜짝 놀라, 뒤꼭지를 탁탁 치며,
"이런 재변(災變)을 보았나. 초나라 유자(柚子)속에, 노인이 바둑 둔다 하되, 박통 속에 동자들이, 찬만고에 처음이라. 내이름을 어찌 알고, 무엇 하자 와 묻는지.허 참 이 노릇이, 도망케 되었나. 죽자 원 내가 흥보다. 이 사이 풀밭에 누워도, 진드기 한 마리, 붙을데 없는 사람을, 찾아 무엇 하겄느냐."
저 동자가 소매에서, 대모(玳瑁) 쟁반을 내 놓는데,병과접시 종이봉지, 드문드문 놓였구나.
눈 위에 높이 들어, 흥보 앞에 드리면서, 절하고여짜오되,
"삼신산 열위(列位) 선관이, 모여 앉아 공론하되, 흥보 씨의 지극덕화(至極德化),금수 까지 미쳤으니, 그저 있지못하리라. 수종 약을 보냈으니, 백옥병에 넣은 것은, 죽은 사람 혼을불러, 돌아오는 환혼주(還魂酒),밀화 접시에 놓은 것은, 소경이 먹으면, 눈이 밝는 개안주(開眼酒), 호박 접시에 담은 것은, 벙어리가 먹으면, 말 잘하는 개언초(開言草), 산호 접시에 담은 것은, 귀먹은 이가 먹으면, 귀 열리는 벽이롱(闢耳聾), 설화지(雪花紙)로 묶은 것은, 아니 죽는불사약(不死藥), 금화지로 묶은 것은, 아니 늙는 불로초(不老草),가지가지있삽는데, 약 이름과 쓰는 데를, 그 옆에 썼사오니, 그리 알아 쓰옵소서. 가다가 동정(洞庭) 용궁에, 전할 편지 있삽기로, 총총히 갑니다."
사흘 굶은 흥보가, 헛인사를 한 번 하여,
"저러하신 선동네가, 나 같은 사람을 보려고, 그 먼데서 오셨다가, 아무리 염반(鹽飯)이나, 점심 요기해야지."
동자 웃고 대답하되,
"세상 사람이 아니기로, 시장하면 구전단, 목마르면감로수, 연화식(煙火食)을 못 하오니, 염려치 마옵소서."
인홀불견이라.
흥보가 의사를 내어, 허소(虛疎)한 집구석에, 선약을혹 잃을까, 조그마한 오쟁이에 모두 넣어 꽉 동여서, 움막방 들보 위에, 씻나락 모양으로, 단단히 얹었구나. 동자를 보낸 후에,
"어허 괴이하다."
박적 속을 또 굽어보니, 목물(木物)들이 놓였는데, 하나는 반닫이 농만하고 하나는 벼룻집만한데, 주홍 외챌(倭漆)을 곱게하고, 용 거북 자물쇠를, 단단히 채고서, 초록 당사 벌매듭에, 열쇠달아 옆에 걸고, 둘 다 뚜껑 위에, 황금 정자가 쓰였는데, '박흥보 개탁(開坼)' 이라.
흥보가 보고 장담하여,
"내가 비록 산중에 사나, 이름은 멀리났지. 봉래산 선동들도, 내 이름을 부르더니, 목물 위에 썼구나."
돌 다 열고 보니, 하나는 쌀이 가득, 하나는 돈이가득, 부어 내고 되고 세니, 동서반(東西班) 생성수(生成數)로, 쌀 은서 말 여덟되, 돈은 넉 냥 아홉돈, 온 집안이 대희하여,그 쌀로 밥을짓고, 그 돈으로 반찬 사서 ,바로 먹기로 드는데, 흥보의 마누라가, 살림살이 약게 하나,양식 두고 먹었느냐. 부자 아씨 같으면, 식구가스물 일곱, 모두 칠 홉을 낼지라도, 이필이 십사 칠칠은 사십구,말 여덟되 구 홉이니, 채워 두 말 하였으면, 오죽 푼푼하련마는, 평생에 양식이부족하여, 생긴 대로 다 먹는다. 부부가 품판 삯을, 양식으로 받으나, 돈으로 받아 오나, 한 돈어치 팔아 오나, 두 돈어치 서 돈어치, 사온대로하여도, 모자라만 보았기로, 서 말 여덟 되를, 생긴 대로 다할 적에, 솥이 적어 할 수 있나. 쇠죽솥 그 중 큰 집을, 찾아가서 밥을 짓고, 넉냥 아홉 돈은, 쇠고기를 모두 사서, 반찬을 하려 할 제, 식칼 도마가어디있나. 여러 자식놈들, 고기를 붙들고서, 낫으로 자를 적에, 고기결을 알 수 있나. 가로 잘라 놓은 모양, 연목(椽木)머리 잘라 놓은 듯, 기둥 밑 잘라 놓은 듯, 건건이와 양념 등물, 별로 수가 많잖아,소금흩고 맹물 쳐서, 토정(土鼎)에 삶아 내고, 그릇 없어 밥 푸겄나, 씻도않은 헌 쇠죽통에, 밥 두 통을 퍼다 놓고, 숟가락은 근본에 없어, 있더라도찾겄는가, 적연(的然) 물기 안 한 손으로 질통 가에 늘어앉아, 서로주워먹을 적에, 이 여러 자식들이, 노상 밥이 부족하여, 서로 뺏어 먹었구나. 그리 많은 밥이로되, 큰놈 입에 넣는 것을, 작은 놈이 뺏어 훔쳐, 큰놈도빼앗기고, 새로 지어 먹었으면, 싸움 아니하련마는 ,악을 쓰며 주먹쥐어, 작은 놈 볼때기를, 이 빠지게 찧으면서 개 아들놈 쇠 아들놈, 밥통이 엎어지고, 살벌(殺伐)이 일어나되, 무지한 저 흥보는, 밥먹기에윤기(倫紀) 잊어, 자식 몇 놈이 뒈져도, 살릴 생각은 아예 않고, 그뜨거운 밥이로되, 두 손으로 서로 쥐어, 세죽(細竹) 방울 놀리는 양, 크나큰 밥덩이가 손에서 떨어지면, 목구멍을 바로 넘어, 턱도 별로 안놀리고, 어깨춤 눈 번득여, 거의 한 말어치를, 처치한 연후에,왼편 팔땅에 짚고, 두 다리 쭉 뻗치고, 오른편 손목으로,뱃가죽을 문지르며, 밥더러 농담하기로 들어, "여봐라 밥아, 내가 하도 시장키에, 너를조금 먹었으나, 네 소위를 생각하면, 대면할 것 아니지야. 세상 인심간사하여, 추세(趨勢)를 한다 한들, 너같이 심히 하랴. 세도집과 부잣집만, 기어이 찾아가서, 먹다먹다 못다 먹어, 개를 주며 돝을 주며, 학 두루미때거우를, 모두 다 먹이고도, 그래도 많이 남아, 쉬네 썩네 하는 것을나와 무슨 원수 있어, 사흘 나흘 예상 굶어, 뱃가죽이 등에 붙고 갈빗대가따로 나서 두 눈이 캄캄하고,두 귀가 먹먹하여, 누웠다 일어나면, 정신이어질어질, 앉았다 일어서면, 다리가 벌렁벌렁, 말라 죽게 되었으되, 찾는 일 전혀 없고, 냄새도 안 맡히니, 그럴 도리가 있단 말인가. 예라, 이 괴이한 것, 그런 법이 없느니라."
아주 한참 준책(峻責)터니 ,도로 슬쩍 달래어,
"내가 그런다고 노여워 안 오려느냐. 어여뻐서한 말이지, 미워 한 말 아니로다. 친고(親故)가 조만(早晩) 없어,정지후박(情地厚薄) 매였으니, 하상견지 만야(何相見之晩也)오, 원불상리(願不相離) 지내보세. 애겨애겨 내 밥이야, 옥을 주고 바꿀쏘냐, 금을 주고 바꿀쏘냐. 애겨애겨내 밥이야."
밥이 더럭더럭 오도록, 새 정을 붙이려고, 이런 야단이없구나.
밥하고 수작할 제, 흥보의 열일곱째 아들놈이, 장난을하느라고 쌀궤를 열어보고,깜짝 놀라 아비를 불러,
"애겨 아비 이것 보오. 이 궤 속에 쌀 또 있네."
흥보가 의심하여,
"그 말이 웬 말이냐 돈 든 궤를 또 보아라."
"애겨 돈 또 들었네."
"어 그것 맹랑하다."
쌀과 돈을 또 부어 내고, 덮었다 열고 보면, 돈과쌀이 도로 가득가득.
"어허 그것 장히 좋다. 그 많은 자식들이, 팔갈아달려들어, 종일을 부어 내니, 원 전곡이 가량(假量)없다. 자식들은 그노릇 하라 하고, 뱃심이 든든할 제, 둘째 통을 또 켜는데, 장 굶던 흥보신세, 뜻밖에 밥 보더니, 아주 밥에 골몰하여, 톱질하던 사설을, 밥으로메기겄다.
"어기여라 톱질이야, 좋을씨고 좋을씨고. 밥먹으니 좋을씨고. 수인씨(燧人氏)의 교인화식(敎人火食), 날 위하여가르쳤네."
어기여라 톱질이야."
"강구노인(康衢老人) 함포고복(含哺鼓腹), 나만치나먹었던가. 엽피남표( 彼南묘) 전준지희(田畯至喜),나만치나 즐기던가.."
"어기여차 톱질이야."
"만고에 영웅들도 밥 없으면 살 수 있나. 오자서도망할 제, 오시(吳市)에 걸식하고, 한신이 궁곤할 제, 표모(漂母)에게기식(寄食)이라."
"어기여라 톱질이야."
"진 문공 전간득식(田間得食), 한 광무(光武) 호타맥반( 麥飯), 중한 것이 밥뿐이라."
"어기여라 톱질이야."
"이 박통을 또 타거든, 은금보패(銀金寶貝) 내사 싫의, 더럭더럭 밥 나오소."
"어기여라 톱질이야."
슬근 슬근 탁 타 놓으니, 온갖 보물이 다 나온다.
비단으로 볼작시면, 천문일사황금방(天門日射黃金 )에, 번뜻 돋아 일광단, 재도중천만국명(裳到中天萬國明) 산하영자(山下影子) 월광단, 평치수토(平治水土) 하우공덕(夏禹功德)구주토산(九州土産) 공단, 금성옥진(金聲玉振) 높은 도덕, 공부자의 대단, 진시황이 안 무섭네, 입이 바른 모초단, 남궁연(南宮宴) 대풍가(大風歌에, 금도천지 한단, 팔년간과 지은 죄로, 공 바치던 왜단, 훈금어 삼군무늬, 노들십진 영초단, 나는 짐승 우단, 기는 짐승 모단, 쥐털 모아 짜내니, 불에 씻는 화한단, 일조 낭군(郞君) 이별 후에, 독수공방 상사단, 월중단계(月中丹桂) 꺾었으니, 낙수청운(落水靑雲) 장원주, 가련금야 숙창가(可憐今夜宿娼家), 옥빈홍안(玉紅顔) 가기주, 팽조(彭祖)와 동방삭이, 오래 사는 수주(壽紬),만동묘(萬東廟) 대보단에, 만세불망(萬世不忘) 명주, 만경창파 바람결에, 번뜻번뜻 낭릉(浪陵)이며, 삼월방춘 좋을씨고, 송이송이 화릉, 성자(姓字)도 좋을씨고. 세세초장(世世楚將) 항라(亢羅),황국단풍 구경 가세,소소금풍(簫簫金風) 추라(秋羅), 천간열을 세어 보니, 그중 거수(居首) 갑사, 남월북호(南越北胡) 멀다 마소, 주먹 쥐고 뒤쥐사,만물지리무궁(萬物地理無窮)하니,천지대덕(天地大德) 생초, 상풍구월(霜風九月) 축장포(築場圃)에, 백곡등풍(百穀登豊) 숙초, 뭉게뭉게 구름문 두리두리 대접문,이견대인(利見大人) 용문이며, 낙서짓던 구문(龜文)이요. 한수춘색(漢水春色) 포도문, 용산축신(龍山逐臣) 국화문, 팔짝팔짝 새발문, 투덕투덕 말굽문, 북포 저포, 항저포 세목, 중목 상목이며, 마포 문포 갈포 등물, 꾸역꾸역 다 나오고, 온갖 보패다 나온다. 금패 호박 밀화며, 산호진주 청강석 유리, 진옥 수만호(水曼胡),대모서각 고래 수염, 사향 용뇌 우황이며, 용주 한충 이궁전이, 꾸역꾸역다 나오고, 온갖 쇠가 다 나온다. 황금 적금 백통이며, 오동 주석 놋쇠며, 유납 구리 맑은 쇠, 생동 무쇠 시우쇠. 안방 세간 볼작시면, 삼층 이층외층장,오합 삼합 자드리, 상자 지롱 목롱 자개 함롱, 뒤주장 앞닫이혼합경대 쌍룡 그린, 빗접고비 바느질 상자, 반닫이 선반 횃대, 장목키 큰 병풍 작은 병풍, 온갖 그림 황홀하고, 핫이불 누비이불, 각색비단 좋을씨고. 화문 보료,우단 요와 녹전 처네, 원앙침을 한데, 모두괴어 놓고, 왜단 보료 덮었으며, 왕골 세석 쌍봉화문 홍수주(紅水紬)로꾸몄으며, 지도서로 꾸민 족자, 산호구에 거는 주렴, 방장 휘장 모기장과, 순금 반상 천은 반상, 놋쇠 반상 화기 반상, 시저(匙箸) 주걱 국자며, 밥소래 놋동이 양푼 유합, 탕기 쟁반 열구자 전골판과, 노구솥 냄비대화로며, 대야 요강 놋광명두 촉대 함께 놓았으며, 사랑 세간 다 나온다. 문갑 책상 가께수리, 필연 퇴침 찬합 등물, 사서삼경(四書三經) 백가어를가득가득 담은 책롱, 오음육률 묘한 잡이, 가지가지 풍류 기계. 흑각장궁(黑角長弓) 유엽전(柳葉箭)을, 궁대 전동 각기 넣고, 조총 철편 등채 환도, 호반기계 좋을씨고. 금분(金盆)에 매화 피고, 옥병에 붕어 떴다. 요지반도(瑤池蟠桃) 동정귤을,대화 접시에 담아 놓고, 감로수 천일주를, 유리병에 넣었으며, 당판책(唐板冊)을 보아 가다, 안경 벗어 거기 놓고, 귤즁선(橘中仙) 두던 판에, 바돌 그저 벌였구나. 풍로에 얹은 다관, 붉은 내가 일어나고, 필통 옆에 놓인 부채, 흰 것이 조촐하다. 질요강, 침 타구(唾具)와, 담배 서랍 재떨이며, 오동(烏銅) 빨주 천은 수복, 호박통 각색 연통, 수락 화락 별각죽에, 맵시 있게 맞추어서, 댓 쌈이나 놓았으며, 부엌세간 헛간 기물, 농사 연장 길쌈 기계, 가지가지 다 나온다. 밥솥 국솥대철이며, 가마 두멍 쇠소댕 개수통, 구유 살강발과, 물항아리 옹배기며, 소래 시루 항아리, 소반 모반 채반이며, 대소쿠리 나무 함지, 나무 함박솥솥 조리 쪽박이며, 사기 그릇 사판때기, 재글겅이 부등가리, 부지깽이부엌비며, 공석 멍석 맷방석, 짚소쿠리 멱서리며, 삿갓 도롱이 접사리며, 쟁기 따비 써레 발판, 괭이 가래 호미 살포,자게 도끼 낫 자귀며, 벼훑이갈퀴 도리깨 물레, 돌껏 씨아 베틀에, 따른 각색 기계, 빨랫 방망이다듬잇돌, 홍두깨 방망이며, 심지어 뒷간가래, 다른 나무는 무겁다고, 오동으로 정히 깎아, 나주칠(羅州漆)을 곱게하여, 꾸역꾸역 다 나오니, 이러한 많은 기물, 방이 좁아 놀수 없고, 뜰 좁아 쌀 수 없어, 스물다섯 자식 중에, 둘은 어려 못 시키고, 스물 세 명 데리고서, 크나큰동학(洞壑)에다, 비단 따로 포목 따로, 철물 따로 목물 따로, 보패 따로기명(器皿) 따로, 환부곡식(還付穀食) 다발 짓듯, 각기각기 쌓아 놓으니,적막한이 산중이, 불시에 종로 되어, 육주비전(六注比廛) 동상전(東床廛)과, 마상전(馬床廛) 박물판이, 정녕히 되었구나.
흥보 아내 그 안목에, 전후에 하나나 본 것이냐. 그래도 가장 네는, 서울에도 갔다 오고, 병영도 다녀오고, 읍내 장에도다녔으니,매우 박람한 줄 알고, 청한단(靑漢緞) 통말이를, 집어 들고하는 말이,
"애겨, 그것 장히 좋소. 무명보다 광도 넓으이. 이렇게 긴 바디를, 어디서 얻었으며, 짠 여인네 팔뜩도 길던가베. 이편으로 북을 던지고, 이 편에서 제가 받아, 물은 우리 치맛물, 청대(靑黛)인지쪽물인지, 청물이 채(彩) 더 곱거든,짜가지고 들여을 텐데, 반들반들한데하고, 얼룽얼룽한 떼하고, 빛이 어찌 같잖으니."
그 껄껄한 두 손으로, 비단무늬 만지거든, 오죽이붙겄느냐.
"애겨, 그것 이상하다. 손가락을 안 놓네."
흥보가 문견(聞見) 있어. 수 터진 사람이면,
"선전시정( 廛市井) 들도, 비단 짤 줄 모른다네, 어찌 알 것인가."
쉽게 대답하련마는, 여편네께 추졸(醜拙)될까, 곧본 듯이 대답하여,
"비단 짜는 여인네는,팔뚝이 훨씬 길지. 그렇기에대국에서는, 며느리 선볼 적에, 팔뜩을 먼저 보지. 물은 그게 청대물, 청 곱고 안 곱기는, 사회(死灰) 넣기 매였지. 얼릉얼릉한 것들은, 물들여가지고서 갖풀로 붙였기로, 손가락이 딱딱 붙지."
흥보 댁이 딱 돌리어,
"애겨 그렇거든, 우리 부부 평생한이, 의식 없어 한하다가, 먼저 통에 밥 나와서, 양대로 먹었더니,다행히이 통에서, 옷감이 하 많으니, 눈에 드는 대로, 옷 한 벌씩 해 입세."
"내 소견도 그러하네, 언제 바빠 옷 짓겄나. 우리 식구대로, 한 필씩 가지고서 우에서 아래까지, 우선 휘감아 보세."
"그럴 일이요. 무슨 비단 가지고서 ,당신부터감으시오."
"우리가 넉넉터면, 큰자식을 성취(成娶)시켜, 전가를 벌써 하고, 건방(乾方)으로 갈 터이니, 제 방위색 찾아, 흑공단으로감을테세."
"나는 무슨 색을 감고."
"자네는 곤방(坤方) 차지, 흰 비단을 감을 테지."
"옛소 백여우 같게, 붉4은 비단 감을라네."
"오, 딸이 없으니, 아무렇게나 하소."
"큰놈은 박부득이(迫不得已),진방(震方) 차지청색이요, 그 남은 자식들은, 제 소견에 좋은 대로, 한 필씩 다 감알."
흥보 댁이 또 말하여,
"저 두 말쨋놈은, 온 필로 감아선,ㄴ 숨막혀죽을 테니,까치 저고리 뽄으로, 각색 비단 찢어 내어, 어깨에서 손목까지, 잡아매어 드리우세."
"오, 좋으이. 그리 하소."
흑공단을 한 필 빼어, 흥보 먼저 감을 적에, 상투에서시작하여, 뺨과 턱을 휘둘러서, 목덜미 감은 후에, 왼쪽 어깨서 시작하여, 손목까지 내려 감고, 도로 감아 올라와서, 오른쪽 어깨 손목까지 내려감고,도로 감아 올라와서, 오른쪽 어깨 손목까지, 빈틈없이 감아 올라, 겨드랑에서 불두덩에, 차차 감아 내려와서, 두 다리 갈라 감고, 두 발은발감개하듯이, 디디고 나서니, 여인네와 자식들은, 상투가 없으니까, 머리 동여 시작하여, 똑같이 감은 후에, 항렬 차례대로, 뜰 가운데 늘어서니, 흥보가 보고 재담하여,
"이게 어디 호사냐, 늘어선 조(調)를 보면, 대촌 당산 법수 같고,휘감아 놓은 품은, 진상 가는 청대 죽물, 색을의논하면, 내 조는 까마귀. 아이 어멈은 고추잠자리. 큰 놈은 쇠새,여러놈들은 꾀꼬리, 해오라기 새 한 떼가, 늘어선 곳에, 저 두 말쨋놈은, 비단 장수 다니는 길,성황당의 나무로다."
온 집안이 대소하고, 흥보가 하는 말이,
"이번 호사 다했으니, 이 통 하나 마저 탑세."
흥보의 마누라가, 박통을 타갈수록, 밥도 나고 옷도나니, 마음이 장히 좋아, 이 통을 탈 소리는, 내 사설로 메길 테니, 당신은 뒤만 맡소."
흥보가 추어,
"가화만사성이라니, 자네 그리 좋아하니, 참기물이 나오겄네. 어디 보세 잘 메기소."
흥보 댁이, 메나리 목청으로, 제법 메겨 ,
"여보소 세상 사람, 내 노래 들어보소. 세상에좋은 것이, 붑밖에 또 있는가."
"어기여라 톱질이야."
"우리 부부 만난 후에, 서런 고생 많이 했네. 여러 날 밥을 굶고, 엄동에 옷이 없어, 신세를 생각하면, 벌써 아니죽었을까."
"어기여라 톱질이야."
"가장 하나 못 잊어서, 이때까지 살았더니, 천신(天神)이 감동하사, 박통 속에 옷밥 났네. 만복 좋은 우리 부부, 호의호식 즐겨 보세."
"어기여라 톱질이야."
"한 상에서 밥을 먹고, 한 방에서 잠을 잘 제, 부자 서방 좋다하고, 욕심 낼 년 많으리라. 암캐라도 얼른 하면, 내솜씨에 결딴 나지."
"어기여라 톱질이야."
슬슬 탁 타 놓으니, 천만 뜻밖에, 미인 하나 함교함태(含嬌含態)로나오는데, 구름 같은 머리털로, 낭자를 곱게 하여, 쌍룡새김 밀화(蜜花)비녀, 느직하게 질렀으며, 매미머리 나비눈썹, 추파 같은 고운 모자(眸子),흑백이분명하고, 연지뺨 앵도순에, 박씨같이 고운 잇속, 삘기 같은 두 손길, 세류(細柳)같이 가는 허리 응장성식(凝粧盛飾) 금수의상(錦繡衣裳),외씨같이고운 발씨, 보보생련(步步生蓮) 나오는 양, 해당화 조으는 듯, 모란화말하는 듯, 쇄옥성(碎玉聲) 으로 묻는 말이,
"흥보 씨 댁이요?"
흥보가 깜짝 놀라,
"하 괴이하여, 당찮은 세간, 그리 많이 나올적에, 만단 의심하였더니 ,임자 아씨 오셨구나."
납작 엎드려 절을 하며,
"호(瓠) 좁은 박통 속에, 평안히 오시니까. 이 세간 임자시면, 모두 가져가옵시오. 쌀 서 말 여덟 되와 돈 넉 냥아홉 돈은, 한끼 양찬하였삽고, 몸에 감던 비단가지 도로 풀어 놓았으니, 한 가지 것 속였으면, 벗긴 쇠자식이요."
그 여인이 대답하되,
"놀라지 마옵시고, 내 말씀 들으시오. 당 명황(明皇) 천보간(天寶間)에, 회모일소백미생(回眸一笑百媚生), 육궁분대무안색(六宮粉黛無顔色)하던, 양귀비를 모르시오. 어양비고동지래(漁陽 鼓動地來)라,서촉으로 가옵다가, 완전아미 마전사(宛轉蛾眉馬前死), 마외역(馬嵬驛)에 죽은 향혼, 천하에주류하여, 임자를 구하더니, 제비 편에 듣자온즉, 흥보 씨의 적선행인이, 부자가 되었다니 ,천자 서방 내사 소맇의. 육군분발(六軍分發)할 수없데. 각선강남 부가옹(却羨江南富家翁), 부자의 첩이 되어, 춘종춘유야전야(春從春遊夜專夜)에, 무궁행락(無窮行樂)하여 보세."
흥보가 저의 가속의 흑각(黑角)발톱, 다목다리만보았다가, 이런 일색을 보아 놓으니 ,오죽 좋겄느냐. 손목을 덤벅 쥐다, 깜짝 놀라 탁 놓으며,
"어디 그것 다루겄냐, 살이 아니고 우무로다. 저런 것 한창 좋을제, 잔뜩 안고 채겼으면, 뭉크러질 텐데 어찌할까."
서로 보며 농탕치니, 흥보의 마누라가, 좋은 보물나올 줄로, 소리까지 메긴 것이, 못 볼 꼴을 보았구나. 부정탄 손님같이, 불시에 틀리는데, 손가락을 입에 넣고, 고개를 외로 틀고, 뒤로 돌아앉으면서,
"저것들 지랄하지. 박통 속에서 나온 세간 뉘것인 줄 채 모르고, 양귀비와 농탕친고. 당명황은 천자로되, 양구비께정신 놓아, 망국을 했다는데, 박통 세간 무엇이냐. 나는 열끼 곧 굶어도시앗 꼴은 못 보겄다. 나는 지금 곧 나가니, 양귀비와 잘 살아라. "
흥보가 가난하여, 계집 손에 얻어먹어, 가장 값을못 했으니, 호령이나 할 수 있나. 곧 빌어,
"여보소 아기 어멈. 이것이 웬일인가. 자네방에 열흘 자면, 첩의 방에 하루 자지 . 그렇다고 양귀비가 나 같은사람 보려 하고, 만리 타국에 나왔으니, 도로 쫓아 보내겄나."
처첩하고 수작할 제, 박통 속 우근우근, 무수한 사람들이꾸역꾸역 나오는데, 남녀 종이 백여 구, 석수 목수 와수 토수, 각색장인수백 명이, 각기 연장 짊어지고, 돌과 나무 기와들을, 수레에 싣고 썰매에싣고, 소에 싣고 말에 싣고, 지게도 지고 더미로 메고, 줄로 끌며 지레로밀며, 방아타령 산타령, 굿 치며 나오는데, 이런 야단이 있느냐. 마른담배 서너너덧 참, 뚝딱뚝딱 서둘더니, 기와집 수천 칸을, 동학이 가득하게, 경각에 지어놓고,참으로 이상하여, 벽 붙인 그 진흙을, 어느새에 다말리어, 도배까지 하였구나.원채에 본처 두고, 별당에 양귀비요. 안팎사랑 십여 채며, 사면 행랑 노속이요. 사랑 사랑 굽어보면, 좌상에 객상만(客常滿),사죽(絲竹)이낭자하며, 시부(詩賦)로 소일하고,곳간마다 열고 보면, 전곡이 가득가득, 남은 곡식은 노적하고, 흥보는 심심하면, 양귀비 데리고서, 후원의 화초구경, 옥란간 밝은 달에, 둘이 마주 비껴 앉아,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을, 한가히 의논하니, 이러한 지상선(地上仙)이, 어디가 있겄느냐. 흥보가, 졸부(猝富)되었단 말이, 사면에 퍼지니, 놀보가 듣고 생각하여,
'그것 모두 뺏어다가, 부익부를 하면 좋되, 이놈이잘 안주면, 어떻게 작처할꼬. 만일 아니 주걸랑, 흥보가 부자로서, 제형을박대한다고,몹쓸 아전 뒤를 대어, 영문(營門) 염문(廉問) 적어 주고, 출패를 돈 백 먹여, 향중에 발통(發通)하고, 도회까지 붙였으면, 이놈의살림살이, 단참에 떨어 엎지.'
흥보가 사는 동네,급히 물어 찾아가니, 고루거각(高樓巨閣) 오간팔작(午間八作),봉방수와(蜂房水渦) 천문만호(千門萬戶), 즐비하고웅장하다.
대문을 여럿 지나, 안사랑 앞 당도하니, 흥보가 제형을 보고, 버선발로 내려와서, 공손히 절을 하고, 반기어 하는 말이,
"형님이 오십니까. 어서 올라갑시다."
방으로 들어가서 상좌에 앉힌 후에, 흥보가 두 손잡고, 고개를 숙이고서,조용히 사죄한다.
"박복한 이놈 신세, 자분필사(自憤必死)하였더니, 선영의 음덕이며, 형님의 덕택으로, 부자가 되었기에, 자식들을 데리옵고, 형님 댁에 건너가서 형님을 뵈온 후에, 형님을 모시옵고, 선산에 성묘하자, 일자를 받았더니, 형님이 먼저 오셨으니, 하정(下情)에 황송하오."
놀보의 하는 어조, 좋게 하는 말이라도, 평생 남을잡아 뜯어,
"저러한 부자들이, 우리같이 가난한 놈, 찾아오기쉽겄는가. 어찌하여 부자가 됐는고.?"
흥보가 제비 살려, 박씨 얻어 부자가 된 내력을, 종두지미(從頭至尾) 다 고하고,
"한퇴지(韓退之)는, 취식강남(取食江南)이라하더니, 나는 좌식강남(坐食江南)이오. 밥이나
옷이나 기물이 다 강남 것이요."
놀보가 바로 가기로 들어,
"내가 집 일이 많은데, 부득이 나왔더니, 어서가야 하겄고."
흥보가 만류하여,
"안으로 들어가서, 처자나 보옵시고, 무엇 조금잡수어야, 환행차를 하시지요."
놀보가 어서 가서, 제비를 청할 테나, 양귀비 구경키로, 흥보따라 들어가니, 제수가 나와서 연접하여, 이놈이 양귀비를 찾느라고, 눈을 휘휘 내둘러, 수숙(嫂叔)이 절한 후에, 제수 먼저 문후하여,
"아주버님 뵈온 지가, 여러 해 되었으니, 기체안녕하십니까."
놀보놈의 평생 행세, 제수 보기 종 같아서, 아주머니고사하고, 하오도 안하더니, 오늘은 전과 달라, 앉은 방 차린 의복, 새 눈이 왈칵 띄어, 홀대(忽待)를 하여서는, 탈이 정녕 날 듯하고, 경대를하자 하니, 혀가 아니 돌아가서, 매운 것 먹은 듯이, 입을 불며 얼버무려,
"허 평안하오."
흥보가 종을 불러,
"도령님네 게시느냐. 들어들 와 뵈오래라."
이것들이 멍석 구멍에, 근본 길이 들었구나. 세 줄로늘엎디어, 절하고 꿇안으니, 소위 백부 되는 놈이,
"모시고들 잘 있더냐." 하든지,
"선영의 음덕이다. 좀 잘들 생겼느냐."
하든지, 할 말이 좀 많을새, 저 때려 죽일 놈이, 흥보를 돌아보며,
"너 닮은 놈 몇 되느냐."
흥보 부처의 넓은 소견, 개 같은 놈 탄컸느냐. 묵묵무어(默默無語)하는구나.
자식들 나간 후에, 또 종을 불러,
"일 오너라."
이것들이 강남에서 나와서, 아주 열쇠 같지.
"예"
"강남 아씨께 여쭈어라."
아이(俄而)오 미인 하나가, 들어오는데, 당 명황같은 풍류 천자도, 정신을 놓았는데, 놀보 같은 상놈 눈에, 오죽 놀랐겄나. 보더니 턱을 채고, 일어서 절 받기를, 큰 제수께 비하면, 갑절이나 공순하다. 양귀비 거동 보소. 옥수를 땅에 짚고, 청산미(靑山眉) 나직하고, 양도순을반개하여, 옥반낙주성(玉盤落珠聲)으로, 문후를 하는데,
"먼데 살고 천한 몸이, 이 댁 문하에 의탁한지, 오래지 않삽기로, 처음 문후 드립니다."
놀보놈 제 생전, 처음 보는 미색이요, 처음 듣는옥음이라, 넉넉잖은 제 언사에, 어찌 대답할 수 없고, 턱 들입다 안고싶어, 정신을 놓겄구나. 벌벌 떨며 대답하되,
"오시는 줄 알았더면, 내가 와서 박 타지요."
앵무 같은 아이 종이, 주물상을 올리는데, 소반 기명음식 등물, 생전에 못 보던 것. 형제 함께 상을 받고, 종년이 옆에 앉아, 술을 연해 권하는데, 놀보가 좋은 술을, 십여배 먹어 놓으니, 취중에광심이 나서, 참다가 못 견디어, 양귀비의 고운 손목, 썩 들입다 쥐면서,
"술 한 잔 잡수시오."
다른 계집 같거드면, 뺨을 치며 욕을 하며, 오죽하겄느냐. 안색이 천연하여, 좋게 대답하는 말이,
"왜 내가 물에 빠지오."
놀보놈이 깜짝 놀라, 손목을 썩 놓으며,
"일색뿐 아니시라, [맹자] 많이 읽었구나"
양귀비가 일어나서, 안으로 들어가니, 흥보 마누라가, 그 뒤 따라 가는구나. 놀보놈이 무안하여, 술상을 물리고서 , 무슨 심사를부리려고, 사면을 살펴보니, 좋은 비단 붉은 보로, 이불을 덮었거든, 일어서서 쑥 빼내어, 청동 화로 백탄 불에, 비비어 던지면서, 부담을하는 말이,
"계집년은 내외하여, 안으로 가려니와, 이불도내외하나."
저 비단이 불 붙더니, 재 되기는 어림없고, 빛이더욱 고와 간다. 놀보가 물어,
"그게 무슨 비단이냐."
"화한단(火漢緞)이오. 불쥐 털로 짠 것이라, 불에 타면 더 곱지요."
"얘, 그것 날 다오."
"그럽지요."
"또 무엇을 가져갈꼬., 너 그 첫 통 속에, 쌀들고 돈 들었던 궤 둘 다 주려느냐?"
"부자 된 밑천이니, 둘 다 어찌 드리겄소, 하나씩나눕시다. 어떤 것을 가지시려우."
"돈궤를 가질란다."
"그럽시오. 또 무엇 생각 있소."
"다 주면 좋건마는, 내가 바빠 가겄기로, 그것만가져가니, 다시 생각나는대로, 연해 와서 가져가지. 내가 번번이 올수 없어, 기별을 하는 대로, 칭탁 말고 보내어라."
"그리 하오리다."
벼룻집 같은 궤를, 화한단 보에 싸서, 제 손수 옆에끼고 제 집으로 급히 가서 문 안데 들어서며, 종 불러 하는 말이,
"짚 댓 뭇 급히 축여, 돈꿰미 한 천 발을, 어서어서꼬아 오라."
안으로 들어가서, 제 계집께 자랑하여,
"여보소 흥보놈이, 참 부자가 되었거든. 그놈의재산 밑천 ,내가 여기 뺏어 왔네."
화한단 보를 풀며,
"이것은 불에 타면, 더 고운 것이로세."
돈궤를 내놓으며,
"이것은 돈이 생겨, 비워 내면 또 생기지."
궤 문을 열어 놓으니, 돈은 나전돈(신이나 부처께복을 빌 때 그 삶의 나이 수효대로 놓는돈), 몸뚱이는 구전(舊錢) 꿴듯, 구부려 누운 길이, 넉냥 아홉 돈만한, 샛누런 구렁이가, 고개를꼿꼿이 들고, 긴 혀를 널름널름. 놀부부처가 대경하여 ,궤 문을 급히닫고, 노속을 바삐 불러,
"이것을 갖다가, 문 열어 보지 말고, 짚불에바로 태워라."
놀보 계집이 말려,
"애겨 그것 사르지 맙쇼. 인제 그런 흉한 것들, 돈 나는 궤 주었다고 자세(藉勢)하면 어쩌게. 구렁이 쌌던 보를, 두어서무엇 하게. 그 보로 도로 싸서, 급급 환송하소."
놀보가 추어,
"자네 말이 똑 옳으네."
사환을 급히 시켜, 흥보 집에 환송커늘, 흥보가 받아열고 보니, 거렁이는 웬 구렁이, 돈이 한나 가득하지. 제 복이 아니면은, 할 수 없는 법이었다.
욕심 없는 놀보놈이, 제비를 청하기로, 차비를 장만할제, 이런 야단이 없구나. 신 잘 삼는 사람들을,십여 명 골라다가, 메일에서돈 공가(工價),삼시 먹고 술 담배를, 착실히 대접하고, 외양간 더그매(지붕밑과 천장과의 빈 공간)에, 신 삼을 찰벼 짚을, 여남은 짐 내어놓고,제비받기수백 짐을, 밤낮으로 걸어 내어, 안채 사랑 행랑이며, 곳간 사당 뒷간채에, 앞되 처마 다 지르고, 제 대가리 상투 밑에, 풍잠(風簪)지른 모양으로, 앞뒤로 갈라 꽂고, 제비 몰러 나갈 적에, 상엽홍어이월화(霜葉紅於二月花),한산석경(寒山石俓)에올라가고, 설청운산 북풍한(雪靑雲散北風寒),초수오산(楚水吳山)을 다찾아도, 제비 소식 알 수 없다. 놀보가 제비에, 상사병이 달려들어, 길짐승은 족제비를 사랑하고, 마른 그릇은 모제비('모집'이라고 하는 '고리'의 사투리)만 사고, 음식은 칼제비,수제비만 하여 먹고, 종이보면 간제비를 접고, 화가 나면 목제비(목접이의 사투리)를 하는구나. 그렁저렁 과동하여, 정월 이월 삼월 된, 강남에서 오는 제비, 각 집을날아들제, 신수 불길한 제비 한 쌍이, 놀보 집에 들어 가니, 놀보가제비 보고, 집짓기에 수고된다 제가 손수 흙을 이겨, 메주 덩이만씩뭉쳐, 처마 안에 집을 짓고, 검불을 많이 긁어, 소 외양간 짚 깔 듯이, 담뿍 넣어 주었더니, 미친 제비 아니면은, 게다 알을 낳겄느냐. 위가상치(違家相値:깃들일집을 그릇 듦) 하였기로, 알 여섯을 낳았더니, 마음 비쁜 놀보놈이, 삼시로 만져 보아, 다섯은 곯고 하나 까서, 날기 공부 익힐 적에, 이흉녕한 놀보 소견, 구렁이가 먹으렬 제, 쫓았으면 저리 될까. 축문 지어제사하되, 구렁이가 아니 와, 대발 틈에 절각하면, 제가 동여 살려 줄까, 밤낮으로 축수하되, 떨어지지도 아니하여, 날기 공부하느라고 ,제 집가에발 붙이고, 날개를 발발 떨면, 놀보 놈이 밑에 앉아,
"떨어지소 떨어지소" 두손 싹싹 비비어도 ,종시 아니 떨어지니, 그렁저렁 점점 커서, 날아가게 되었구나.
놀보가 망단(妄斷)하여,절로 절각되기 기다리면, 놓치기 가려(可慮)하니, 울려 놓고 달래리라, 제비 집에 손을 넣어, 제비 새끼 집어내어, 그 약한 두 다리를, 무릎에 대고 자끈 꺾어, 마웃바닥에 선뜻 놓고, 천연히 모르는체, 뒷집 지고 걸으면서, 목소리를크게 내여, 풍월을 읊는구나.
"황성허조 벽산월(荒城虛照碧山月)이요. 고목은짖입창오운(盡入蒼梧雲)."
앞으로 돌아서며, 제비 새끼 얼른 보고, 생침 맞는된 목소리로, 제 계집을 급히 불러,
"여보소 아이 어멈. 내가 아까 글 읊느라, 미처보지 못했더니, 제비 새끼가 떨어져,절각이 되었으니, 불쌍해 보겄는가. 어서 감아 살려 주세."
저 몹쓸 놀보놈이, 제비 다리 감으렬 제, 흥보보다더하려고, 대민어 껍질을 벗겨, 세 겹을 거듭 싸고, 당사실은 가늘다고,당팔사주머니 끈으로, 단단히 동인 후에, 제 집에 도로 넣고, 행여나 촉풍(觸風)할까. 섶 두껍고 큰 누더기를, 서너 겹 둘렀더니, 놀보 망칠 제비여든, 죽을리가 있겄느냐. 십여 일이 지났더니, 절각이 완합하여, 비거비래 출입터니, 연지사일 사소거(燕知社日辭巢去),강남으로 들어갈 제, 놀보가 부탁하여,"여봐라 제비야. 똑 죽을 네 목숨을, 내 재조로 살렸으니, 아무리짐승인들, 재생지덕(再生之德) 잊겄느냐. 흥보 은혜 갚은 제비, 세 통박씨를 주었으니, 너는 갑절 더 보태어, 여섯 통열 박씨를, 부디 쉬이물고 오라. 삼월까지 있지 말고, 과세 즉시 발행하여, 정월 망전에 당도하면, 기다리기 괴롭잖고, 오죽 좋겄느냐. 그 제비 들어가서, 놀보의 전후내력을, 장수전에 고한 후에, 박씨 하나 얻어 두고, 명년 삼
월 기다릴 제. 이때에 놀보놈은, 정월 보름에 제비올까, 앉은 뱅이 삯군 얻어, 강남에 급주 보내 보고, 안질 난 놈 중가주어, 제비 오는 망을 보아, 제비에게 드는 돈은, 아끼잖고 써낼 제, 그렁저렁 삼월 되어, 자거자래 당상연(自去自來堂上燕),놀보 집에 다시오니, 놀보놈이 참으로 반겨,
"반갑다 내 제비야, 어디 갔다 이제 왔나. 금천씨이조기관(金天氏以鳥紀官),벼슬하러네 갔더냐. 유소씨 구목위소(有巢氏構木爲巢),집짓기 배우러 네 갔더냐. 오의항구석양사(烏衣巷口夕陽斜),왕사당전(王社堂前)에 네 갔더냐. 기다홍분위황니(幾多紅紛委黃泥),미앙궁중(未央宮中)에네 갔더냐. 어이 그리 더디 와서, 내 간장을 다 녹이냐. 박씨 물어 왔거들랑, 어서 급히 나를 다오."
손바닥을 딱 벌리니,저 제비 거동 보소. 물었던 박씨하나, 놀보 손에 떨어치고, 두 날개 편편(翩翩)하여, 돌아도 안 보고, 백운간에 날아가니, 놀보 좋아 춤을 추며,
"얼씨구나 좋을씨고. 부익부를 하겄구나."
저의 가속을 급히 불러, 박씨 주며 자랑한다.
놀보 가속이 박씨 보고,
"애겨 이것 내버리소. 갚을 보(報)자 원수 구(仇)자, 바람 풍(風)자 쓰었으니, 원수 갚을 바람이니, 어디 그것 쓰겄는가."
놀보가 대답하되,
"자네가 어찌 알어. 원수구라 하는 글자, 군자호구(君子好逑)란, 짝 구(逑)자와 통용하니, 어떠한 미인으로 내짝 갚잔 말이로세."
놀보 가속이 들어 보니, 이런 죽을 말이 있나. 못심을 말 연해 하여,
"만일 그러하면, 바람 풍자는 웬일인가."
"바람 풍자 더 좋지. 태호(太昊) 복희씨는, 풍성(風姓)으로 왕하시고, 순임금의 오현금(五絃琴)안,남풍시를 노래하고, 문왕 무왕의 장한 덕화는, 천무열풍(天無烈風)하였으며, 주공은 성인이라, 빈풍시( 風詩) 지으시고, 한 태조 수수풍(睡水風),광무황제 곤양풍(昆陽風),와룡선생적벽풍(赤璧風),대풍이 삼조한(三助漢),장하다 하려니와, 백이숙제 고절충풍(高節淸風), 엄자릉(嚴子陵)의 선생지풍(先生之風),도정절(陶靖節)의 북창청풍(北窓淸風),만고에맑았으니, 그 아니 좋을쏜가. 우리도 이 박 심어, 습습동풍(習習東風)d 입묘하여, 삼월 남풍에 점점 자라, 우순풍조(雨順風調) 호시절에, 꽃이피고 박이 열어, 팔월 고풍에 따서 켜면, 보물이 풍풍 나와, 집안이풍덩풍덩, 근래 풍속 좋은 호사, 갑사 풍차(風遮) 금패 풍잠, 학슬풍안(鶴膝風眼) 떠 괴고, 은안 백마 도춘풍(銀鞍白馬度春風)에, 풍호무호(風乎舞乎)하여보고, 풍류랑(風流郞) 좋은 팔자, 밤낮 풍악으로 지낼 적에, 네 귀에풍경 단 집, 방 안에 병풍 치고, 풍로에 차관(茶罐)얹고, 풍석(風席)없는자네 배를, 선풍도골(仙風道骨) 내가 타고, 풍편수성침(風便數聲砧)을, 풍풍 찧었으면, 경수무풍야자파(鏡水無風也自波)가, 짤끔짤끔 날 것이니, 그만하면 풍족하지, 잔말 말고 심어 보세."
책력을 펴놓고, 재종일을 가려내어, 사랑 앞을 급히파고, 못자리할 거름을, 모두 게다 퍼 쟁이고, 단단히 심었더니, 아침에심은 것이, 오후가 겨우 되어, 솟아난 큰 박 순이, 수종(水腫)난 놈다리 만큼.놀보 아내가 깜짝 놀라,
"여보시오 아이 압시, 이것 급히 빼 버리오. 은나라 상상곡(詳桑穀)이, 아침에 났던 것이, 저녁에 큰 아람, 요물이라하였으니, 이것 정녕 재변이오."
놀보가 장담하여,
"나물이 되련 것은, 떡잎부터 알 것이니, 사오삭이 지나가면, 억만금 세간, 그 덩굴에서 날 터이니, 일찌감치 잡죄겄나(잘되지 않겄는가)."
이 박의 크는 법이, 날마다 갑절씩이, 더럭더럭 크는구나. 연거푸 순이 나고 순이 나고, 한 순이 커지기를, 한 아름이 넘는구나. 어디 가 턱 걸치면, 모두 다 무너질 제, 사당에 걸치더니, 사당이 무너져, 신주가 깨어지고, 곳간에 걸치더니, 곳간이 무너지고, 온 동네 집집마다, 부지불각 턱 걸치면, 무너지고 무너지고, 무너지면 값을 물고, 무너지면값을 물고. 그렁저렁 거기에 든 돈이, 삼 사천 냥 넘었으니,놀보가 벌써부터, 박의 해를 보는구나. 꽃이 피어 박 맺을 제, 처음에 바로 북통만씩, 십여 일이 지나더니, 나루의 거룻배만, 한 달이 되더니, 조창(漕倉) 세곡선(稅穀船)만. 여섯 통이 열었거든, 놀보가 좋아라고, 가리키며국량(局量)하여,
"저 통 색이 노란 것이, 속에 정녕 금 들었지, 황금 적금이라니, 은도 누르겄다. 어느 통에 미인 있노. 그 통을 꼭알면은, 포장으로 둘러 두게."
한참 아리 걱정할 제, 허망이라 하는 놈이, 성명듣고 행사 보면, 명불허득(名不虛得)하였구나. 동네 사람들이 앉으면놀보 공론.
"놀보 같이 약은 놈이, 박에다 쓰는 돈은, 아끼잖고써 내니, 무슨 꾀를 냈으면, 돈 천이나 쓰게 할꼬."
허망이가 장담하여,
"나밖에 할 이 없지."
놀보 집에 건너가서,
"여보소 놀보씨, 박통일을 몰라, 걱정을 하신다니, 나를 어찌 안 찾는가."
놀보가 반가이 물어,
"자네가 알겄는가."
허망이 대답하되,
"모수자천(毛遂自薦)하는 말을, 남은 암만 웃더라도, 노형이야 속이겄나. 값 정해 주었다가, 박 타보아 안 맞거든, 그 돈도로 찾아가소."
"그리 할 일일세."
맞히면 천 냥 결가(決價),삼백 냥 선폐하고, 박 속일을 알려 할 제, 허망이 지닌 재조, 복구분법(卜龜分法)이었다. 박통놓인 좌향(坐向)을, 복구분법으로 보아 가니, 신통히 맞히거든,첫 통보고 하는 말이,
"모두 다 생금인데, 누가 혹 가져갈까, 노인한분 수직한다."
둘째 통을 한참 보다,
"사람이 많이 들었구나."
놀보가 옆에 앉아, 손수 장담이 더 우스워,
"집 지을 장인들과 종들이 들었나뵈."
셋째 통을 보더니,
"애겨 계집 많이 있다."
"서시(西施)가 나오는데, 계집종들이 따라오나."
넷째 통 또 보더니,
"풍류기계 많이 있다."
"내가 두고 행락하게."
다섯째 통을 가리키며,
"그 가마 장히 길다."
"나하고 서시 둘이 타게."
여섯째 통 가리키며,
"그 말 장히 좋다."
"타고도 다닐 테요, 바 늘여 매어 두지."
"대강만 볼지라도 들 것 다 들었으니, 어서 타고 보는 술세."
책력을 펴놓고, 납재일(納財日) 가려내어, 박통을타려 할 제, 섬(石)술 빚고 섬밥 짓고, 소 잡히고 개 잡혀서, 먹이를차린 후에, 팔 힘 세고 소리 좋은, 건장한 역군들을, 잔뜩 먹고 닷 냥삯에, 삼십 명을 얻어다가, 생금 통을 먼저 탈 제, 놀보가 좋아라고, 제가 소리를 메기는데, 똑 금이 나올 줄로, 금으로 메겨 ,
"여보소 세상 사람, 금 내력을 들어 보소, 여수(麗水)에생겨나고, 흙 속에 묻히어서, 소진(蘇秦)은 구변으로, 많이 얻어 실어오고, 곽거(郭巨)는 효성으로 묻힌 것을 파내었네."
"어기여라 톱질이야."
"오행의 가운데요, 팔음의 머리로다. 아부(亞父)를반간(反間)키로, 진평(陳平)은 흩었는데, 고인이 주는 것을, 양진(楊震)어이마다 하고."
"어기야라 톱질이야."
"나는 제비 살렸더니,금 박통 씨 얻었으니, 이 통을 어서 타서, 금이 많이 나오면은, 석숭(石崇)을 부러워할까, 이 동네가 금곡(金谷) 되리."
"어기여라 톱질이야."
"서시 소군 앉히기로, 황금옥을 지어 볼까 자류청총(紫靑 ) 달리기로, 황금편을 만들고저."
"어기여라 톱질이야."
슬근 슬근 거진 타니, 박통 속에서, 글 읽는 소리가나,
"맹자 견양혜왕(孟子見梁惠王)하신데,왕왈수불원천리이래(王曰不遠千里而來)하시니,역장유이이오국호(亦將有以利吾國乎)이까. 마상에봉한식(逢寒食)하니, 도중에 송모춘(送暮春)을,
가련 놀보 망하니, 불견상전(不見上典)인가."
놀보가 듣고 하는 말이,
"어디 그게 박 속이냐, 정녕한 서당이지. 귀글은당음(唐音)인데, 강포(江浦)가 놀보 되고, 낙교(洛橋)가 상전되니, 그것은웬일인고."
한참 의심하노라니, 박통 문을 반만 열고, 노인 한분이 나오는데, 차린 복색 제법이어, 헐고 헌 쳇불관(冠)에, 빈대 알이따닥따닥, 생마포 적삼 위에, 개가죽 묵은 배자가, 무릎 밑에 털렁털렁, 구멍이 뻔뻔한 중치막, 아랫단에 황토 묻고, 세전지물(世傳之物) 묵은바지, 오줌 싸서 얼룽이 지고, 석 자 가웃 홑베 주머니에, 일가산을넣어 차고, 또닥또닥 기운 버선, 사날(네 날로 된 짚신) 초혜(草鞋)를들메신고,곱돌조대 중동 쥐고, 개털 모선으로 차면하고, 놀보의 안방으로제 집같이 들어가니, 놀보가 보고 장담하여,
"흥보는 첫 통 탈제, 동자가 왔다더니, 내 박은첫 통에서, 노인이 나오시니, 그로만 볼지라도, 관동지분(冠童之分)이있고, 저 주머니 속에 든게, 다 선약이지."
바삐바삐 따라가서, 자상히 살펴보니, 토끼 같은낯에, 반대코가 맵시 있다. 뱁새 눈 병어 입에, 목소리는 장히 커,
"이놈 놀보야, 구상전(舊上典)을 모르느냐. 네 할아비 덜렁쇠, 네 할미 허튼 댁, 네 아비 껄덕놈이, 네 어미 허천네, 다 모두 댁 종이라. 병자 팔월에, 과거 보러 서울 가고, 댁 사랑이 비었을제, 흉녕한 네 아비놈, 가산 모두 도둑하여, 부지거처 도망했으니, 적년을탐지하되, 종적을 모르더니, 조선에 왔던 제비 편에, 자세히 들어 보니, 네놈들이 이곳에서, 부자로 산다기로, 불원천리 나왔으니, 네 처자 네세간을, 박통 속에 급히 담아, 강남 가서 드난하라."
놀보가 들어 보니, 정신이 캄캄하여, 아무렇다 못하겄다. 아니라 하자 한들, 삼 대나 되었으니, 증인 설 사람없고, 싸워보자해도, 이 양반 생긴 것이, 불에 넣어도 안 탈 테요, 송사를 하자하니, 좋잖은 그 근본을,읍촌이 다 알터니, 어찌하면 무사할꼬. 저 혼자 국량할제, 저 양반의 호령 소리, 갈수록 무섭구나.
"이놈 놀보야, 구상전이 와 게신데, 네 계집네 자식이, 문안을 아니하니, 이런 변이 있단 말고. 일 오너라."
박통 속이 관문같이,
"예."
범강 장달, 허저 같은 설금찬(힘세고 무섭게 생긴),여러놈이 몽치 들고, 올가미 바 들고, 꾸역꾸역 퍼나오니, 놀보가 이 광경을본즉, 죽을밖에 수 없구나.
엎디어서 애걸한다.
"여보시오 상전님, 이 동네가 반촌이요, 아비가세 요부(饒富)키로, 착관하고 지내오니, 이 고을 통경 내에, 모모한양반 댁이, 다 모두 사돈이요. 이 소문이 나게 되면, 소인은 고사하고, 그 양반들 우세오니,방장부절(方長不折) 생각하와, 아무 말씀 마옵시고, 속전(贖錢)으로 바치옵게, 속량(贖良)하여 주옵소서."
"그새 여러 십 년, 네 놈의 아비 어미, 네놈과계집 자식, 드난 아니하였으니, 공돈은 어찌할꼬."
"분부대로 하오리다."
"네놈 죄상을 생각하면, 기어이 잡아다가, 주야악역시키면서, 만일 조금 잘못하면, 초당전(草堂前) 마줏대(말말뚝의사투리)에, 거꾸로 매어 달고, 대추 나무 방망이로, 두 발목 복사뼈를, 꽝꽝 우려 때려 가며, 부려먹자 하였더니, 네 말이 그러하니, 차역인자(此亦人子)라,가선우지(可善遇之)로, 공돈 속전을 바칠 테면, 지체 말고 썩 들여라."
놀보가 물어,
"몇 냥이나 바치올지."
"너 같은 놈을 데리고서, 돈 다소를 다투겄나."
조그마한 주머니를, 허리에서 끌러 주며,
"아무것을 넣든지, 여기만 채워 오라."
놀보놈 제 소견에, ,저 양반 저 억지에, 많이달라 하게 되면, 이 일을 어찌할꼬, 잔뜩 염려하였다가, 이 주머니 채우자면,얼마안 들겄거든, 아주 좋아 못 견디어,
"예 그리 하오리다."
주머니를 가지고서, 제 방으로 들어가서, 돈 열 냥을풀어 놓고, 한 줌 넣고 두 줌 넣어, 열 줌이 넘어가도, 아무 동정이없었구나.싸돈이라 그러한가. 양돈으로 넣어 보아, 닷 냥 열 냥 스무냥,얌만 넣어도 간데없다. 묶음 으로 넣어볼까, 스무 냥씩 묶음 묶음,백묶음이 넘어가도, 형적이 없어 간다. 이 주머니 생긴 품이, 무엇을 넣으려하면, 주둥이를 떡 벌려서, 산덩이도 들어갈 듯, 넣고 보면 딱 오무려, 전과 도로 같아진다.
"어허 이것 어찌할꼬."
돈 천 냥 쟁인 궤를, 궤째 모두 밀어 넣으니, 어디간지 알 수 없다. 이대로 하다가는,묵은 상전 고사하고, 자신 방매하여, 새 상전 생기겄다. 부피가 많겄기로, 곡식을 넣어 보자, 쌀 백 석을넣어 보아, 이백 석 삼백 석이, 곧 넣어도 그만이라.벼 천 석 쌓은 노적, 나무가리 짚가리,심지어 뒷간 거름을, 모두 쓸어 넣어도, 발름(볼록)도아니한다.놀보가 겁을 내어, 주머니를 들고 보아,
"이게 어디 구멍 났나."
혼솔(홈질한 솔기)밑을 다 보아도, 가죽으로 만든것이, 바늘 찌를 틈이 없다.
"애겨 이것 어찌할꼬, 사람 죽일 것이로다."
주머니를 가지고서, 양반전에 다시 빌어,
"여보시오 상전님, 이게 무슨 주머니요."
"에라 이놈 간사하다. 그럴 리가 왜 있으리. 조그마한 주머니를, 채워 오라 하였더니, 아무것도 아니 넣고, 이 소리가웬 소린고. 일 오너라 네 저놈 매달아라."
놀보가 황겁하여, 애긍히 빈다.
"비옵니다 상전님,덕택에 삽시다. 공돈 속전또 바치지, 이 주머니 챌 수 없소."
"네 원이 그러하면, 네 할아비 네 할미, 네아비 네 어미 네 아들 네 딸년, 네놈까지 일곱 구(軀),매구에 일천 냥씩, 칠천 냥을 바치라. 만일 잔말을 해서는,네놈을 여기에 넣으리라."
주머니를 떡 벌리니, 놀보가 황겁하여, 칠천 냥을또 바친, 저 양반 그 돈 받아, 주머니에 들여치니, 경각에 간데없다.
놀보가 속량터니, 상전이라 아니하고, 생원으로 부르겄다.
"여보시오 생원님, 이왕 작처한 일인, 주머니이름이나, 가르쳐 주옵소서."
속 얕은 저 양반이, 먹을 것을 다 먹더니, 마음이낙락하여, 수작을 좋게 하여,
"이 주머니가 능천낭(凌天囊)이다. 천지 개벽한연후에, 불충불효한 놈들, 무륜무의(無倫無義) 모든 재물을, 뺏어 오는주머니다."
"뉘 것 뉘 것 뺏어 왔소."
"어찌 다 말해야. 한나라 양기(梁冀)의 세간, 한 편 귀도 못 차더라."
"그 세간은 얼마나 되더라우."
"돈 많아도 삼십여 만만이지. 당나라 원재(元載)의세간, 한 편 귀도 못 차더라."
"그 세간은 얼마나 되더라우."
"호초(胡椒)만 해도, 팔천 석이지야."
"그렇게 뺏어다가, 다 어디다 쓰시오."
"임금에게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우애하고, 친구 구제하는 사람, 형세가 가난하면, 이 재물 노나 주어, 부자 되게 하였지야. 그것도 조선땅이지. 박흥보라 하는 사람, 마음이인자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되, 형세가 가난키로, 이 주머니에 있는 세간, 절반 남짓 보냈지야."
놀보놈의 평생 성기(性氣), 다른 사람 하는 말을, 기어이 뒤받겄다.
"만일 그렇다면, 안자(顔子)같은 아성인(亞聖人)이, 단표누항하였으며, 동소남(董召南)의 출쳔지효,숙수공양(菽水供養) 못하오니, 주머니에 있는 세간, 왜 아니 보내었소."
"그럴 리가 있겄느냐. 많이 많이 보냈더니, 염결(廉潔)하신 그 어른들, 무명지물(無名之物)이라고, 다 아니 받더구나. 누가 허물이 없으리요, 구치면 귀할 터니, 너도 이번 개과하여, 형제간에우애하고, 인리(隣里)에 화목하면, 이 재물 더 보태어, 도로 갖다 줄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한 장(場)동안에 한 번씩을, 큰 비가 올지라도, 우장(雨裝)하고 올 것이니, 지질하게 알지 마라."
당하에 내리더니, 인홀불견이라.
박 타던 역군들이, 이 꼴을 보아 놓으니, 무색이막심하여, 다시 탈 흥이 없어, 각기 귀가하려 하니, 놀보가 만류하여,
"아까 왔던 그 노인이, 상전인 게 아니시라, 은금이 변화하여, 내 지기(志氣)를 받자 하니, 만일 중지하여서는, 저다섯 통에 있는 보화, 흥보 갖다 줄 것이니, 대명당(大明堂)을 쓰려하면, 초년패(初年敗)가 똑 있나니, 무안히 알지 말고, 어서 어서 톱질하소."
놀보가 설 소리를 또 메기되, 부자만 원하겄다.
"어기야라 톱질이야."
"인간에 좋은 것이, 부자밖에 또 있는가. 요임금은어찌하여, 다사(多事)타 마다시고,맹자는 어찌하여, 불인하면 된다신고.다사해도내사 좋고, 불인해도 내사 좋으이."
"어기여라 톱질이야."
"범려(梵 )의 부자 되기,계연(計然)의 남은꾀요. 백규의 치산하기, 손오(孫吳)의 병법이라. 재물이 없으면은, 잘난사람 쓸데없네."
"어기여라 톱질이야."
"공자 같은 대성인도, 자공이 아니면은, 철환천하(轍環天下) 어찌 하며, 한 태조 영웅이나, 소하(蕭何) 곧 아니면은, 통일천하할수 있나."
"어기여라 톱질이야."
"배금문입자달(排禁門入紫 )에, 임금도 사랑하고, 일백금전 편반혼(一百金錢便返魂) 귀신도 안 무서워."
"어기여라 톱질이야."
"이 통을 어서 타서, 좋은 보물 다 나오면, 부익부 이내 형세, 무궁 행락하여 보세."
슬근슬근 거의 타니, 필채 꿰미가 박통 밖에, 뽀조록이. 놀보가 보고 좋아라고,
"애겨 이것 돈꿰미."
쑥 잡아빼어 놓으니, 줄봉사 오륙백 명이, 그 줄들을서로 잡고, 꾸역꾸역 나오더니, 그 뒤에 나오는 놈, 곰배팔이 앉은뱅이, 새앙손이 반신불수, 지겟다리에 발 디딘 놈, 밀지(蜜紙)로 코 덮은 놈, 다리에 피칠한 놈,가슴에 구멍난 놈, 얼어 부푼 낯바닥에, 댕강댕강물든 놈,입술이 하나 없어, 잇속이 앙상한 놈, 다리가 통통 부어, 모기둥만씩한놈,등덜미가 쑥 내밀어, 큰 북통 진 듯한 놈, 키가 한 자 남짓한 놈, 입이 한쪽으로 돌아간 놈, 가죽 관을 쓴 놈, 쳇불관 쓴 놈, 패랭이 꼭지만쓴 놈, 웅장건(熊掌巾) 끈 달아 쓴 놈, 물매 작대 멜빵만 진 놈, 감태(甘苔)한줌, 헌 공석 진 놈, 온몸에 재 칠하여, 아궁에서 자고 난 놈,헐고 헌고의 적삼, 등잔 그을음이 질음한 놈, 그저 꾸역꾸역 나오는데, 사람들모은 수가 대구 시월령 만한데, 각청으로 "놀보 불러 놀보 불러." 이런 야단이 없구나. 그 중에도 영좌(領座) 고원(雇員) 있어, 영좌라하는 영감, 나이 오십 남짓한데, 다년 과객질에 ,공것 먹는 수가 터져, 힘도 별로 안 들이고, 예상으로 하는 수작, 사람 조질 말이로다. 헌갓에 벌이줄(물건을 버티어서 이리저리 얽어매는 줄),헌 중치막 방울띠, 휠씬 긴 담뱃대를, 한가운데 불끈 쥐고, 점잖게 나오더니, 동무들을책망하여,
"왜 이리들 요란하냐. 한 달 두 달 내에, 끝날일이 아닌 것을, 어찌 그리 성급한고. 아무 말도 다시 말고, 내 영대로시행하지."
놀보 안채 대청 위에, 허물없이 올라앉아, 끝없는반말 소리,
밖주인이 어디 있노. 이리 와서 내 말 듣지."
놀보가 전 같으면, 이러한 과객보고,오죽 호령할터로되, 여러 걸인 호령 소리에, 정신을 놓았다가, 이분의 하는 것이, 잠잖아 보이거든, 원정(原情)을 하여보자,올라가 절한 후에, 공순히묻삽기를,
"본댁은 어디온데, 무슨 일로 오셨으며, 저리많은 동행 중에, 성한 사람 없사오니, 어찌하여 오셨나이까."
영좌가 대답하되,
"우리들 온 내력은, 오륙 일 쉰 후에, 종차(從此) 수작하려니와, 수다한 동행들이, 저 좁은 박통 속에서, 여러 날 고생하여, 기갈이 자심하니, 좋은 안주 술 대접과 ,갖은 반찬 더운 점심, 정결한사처방에, 착실히 대접하지."
놀보가 깜짝 놀라, 애긍히 비는 말이,
"저 많으신 손님네들, 주식 대접할 수 있소. 대전(代錢) 차하(差下) 하옵시다."
영좌가 대답하되,
"손님 대접하는 법이, 밥상 하나 하자 하면, 접시 일곱 종자 둘, 조칫보(김칫그릇)에 갖은 반상, 반찬 값만 할지라도, 댓 냥이 넘을 테나, 주인의 폐를 보아, 댓 냥으로 작처하니, 손님 한분에 매일의 식가 석 냥, 술 담배 값 한 돈씩, 파전(破錢) 소전(小錢) 섞이잖게, 착실히 차하하라."
놀보가 하릴없어, 삼천 냥을 내어 놓고, 한 끼식가차하하니, 몇 냥 어니 남았구나. 놀보가 다시 빌어,
"귀하신 손님네를, 여러 날 만류하여, 쉬어가면좋을 테나, 내 집 십 배 더 있어도, 못다 앉힐 터이오니, 오신 내력말씀 쉽게, 작처하옵시다."
"주인 말이 그러하니, 아무렇게나 하여 볼까, 우리 나라 벼슬 중에, 활인서(活人署) 마름 있어, 관원 서리 고자(庫子)들이, 누만 냥 돈 식리하여, 수많은 우리 걸인, 요(料)를 주어 먹이더니, 주인조부 덜렁쇠가, 삼천 냥 보전(保錢)쓰고, 병자년에 도망하여, 부지거처되었으니, 매년 삼리 삼삼 구를, 본전에서 범용되어, 그렁저렁 수십 년에, 본전이다 없어서, 우리 반료(頒料) 못 하더니, 조선 왔던 제비 편에, 주인소식 자세히 듣고, 활인서에 백활(白活)한즉, 관원이 분부 내어, '만리타국에있는 놈을 패문왕복(牌文往復) 번거로우니, 너희들이 모두 가서, 축년(蓄年) 변리(邊利) 받아 오되, 만일 완거(頑拒)하거들랑, 그놈의 안방에가, 먹고 반 듯 누었어라 .' 분부 모시고 나왔으니, 갚고 안 갚기는, 주인의소견이지."
놀보가 기가 막혀, 공순히 다시 물어,
"우리 조부 그 돈 쓸제, 수표 착명(着名) 증인있소."
"있지."
"여기 가져오셨습니까."
"안 가져왔지."
"수표가 있더라도, 신사면(信士面)이중한데, 수표도 안 가지고 빚 받으러 오셨습니까."
"일년쯤 되면, 강남 왕래할 터이니, 우리 식구예서 먹고, 동행 하나 보내어서, 수표를 가져 오지."
놀보가 들을수록, 사람 죽일 말이로다. 무한히 힐난하다, 갑절로 육천 냥에, 사화(私和)하여 보낼 적에, 영좌가 하는 말이,
"갖다가 바쳐 보아, 당상께서 적다 하면, 도로찾아올 것이니, 홀홀(忽忽)히 떠난다고, 섭섭히 알지 마소."
일시에 간데없다.
걸인들을 보낸 후에, 셋째 통 또 타렬 제, 놀보 저도무안하여, 아니리를 연해 짜,
"선흉후길(先凶後吉)이요,고진감래요, 삼령오신(三令五申) 이라니, 무한 좋은 보화, 이 통 속엔 꼭 들었지."
박 타는 역군 중에, 입바른 사람이 있어, 옆구리에칼이 와도, 할 말은 똑하겄다.
"여보게 놀보 씨. 이 통 설소리는, 내가 메겨어떤가."
놀보가 허락하니, 놀보를 꾸짖는, 박 사설로 메기겄다.
"요순우탕(堯舜禹湯) 태평시에, 인심들이 순박, 공맹안증(孔孟顔曾) 성인님은, 행실들이 검박, 밀화 늙어 호박, 구슬발은 주박(珠箔)."
"어기여라 톱질이야."
"근래 풍속 그리 소박(疎薄),사람마다 모두경박, 남의 말을 대고 타박, 형제간에 몹시 구박."
"어기여라 톱질이야."
"흥보의 심은 박, 제비 은혜 받는 박, 놀보의심은 박, 제비 원수 갚는 박, 양반 나와 바로 결박, 결인 나와 무수공박."
"어기여라 톱질이야."
"네 정경이 저리 민박(憫迫),네 사세가 하도망박(忙迫),불의로 모은 재물, 부서지기 쪽박."
슬근 슬근 거의 타니, 사당(寺黨)의 법이란 게, 그중에 연계사당이, 앞서는 법이었다.
허튼 낭자 때 묻은 옷, 박통 밖에 썩 나서니, 놀보가깜짝 놀라,
"애겨 서시가 나오느라고, 하님 먼저 나온다."
내외를 시키려고,금잡인(禁雜人)이 대단하여, 울력꾼을모두 다, 문 밖으로 보내고서 ,휘장이 모자라니, 홑이불 이불 안팎, 돗자리 문발이며, 심지어 공석까지,담뿍 둘러 막았더니, 그 뒤에 서시들이,꾸역꾸역나오는데, 낭자도 했으며, 고방머리 곱게 빼고, 주사(紬絲) 수건 자지(紫地) 수건, 머리도 동였으며, 연두색 저고리에, 긴 담뱃대 물었으며, 따라오는짐꾼들은, 곱게 결은 오쟁이에, 이불보 요강 망태, 기름병도 달아 지고, 꾸역꾸역 나오더니, 놀보 보고 절을 하며,
"소사(小寺) 문안이요, 소사 등은, 경기 안성청룡사(靑龍寺)와, 영남 하동 목골이며, 전라도로 의론하면, 함열에성불암(成佛菴),창평에 대주암, 담양 옥천 정읍 동복, 함평에 월량사, 여기 저기 있삽다가, 근래 흉년에 살 수 없어, 강남으로 갔삽더니, 강남황제 분부 내어,
'네 나라 박놀보가, 삼국에 유명한 부자라니, 박통타고 그리 가서, 수천 냥을 뜯어내되, 만일 적게 주거들랑, 다시 와서아뢰어라.' 분부 모시고 나왔으니,후히 차하하옵소서."
놀보가 하릴없어, 제 손수 눅이겄다.
"나오던 중 상(上)이로다. 너희들 장기대로, 염불이나 잘하여라."
사당의 거사 좋아라고, 거사들은 소고 치고, 사당의절차대로, 연계사당이 먼저 나서, 발림을 곱게 하고,
"산천초목이 다 성림한데, 구경 가기 즐겁도다. 어야여 장송은 낙락,기러기 훨훨, 낙락장송이 다 떨어진다. 성황당 어리궁뻐꾸기야, 이 산으로 가며 어리궁 뻐꾹, 저 산으로 가며 어리궁 뻐꾹."
"야 잘 논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초월이오."
또 한 년이 나서면서,
"녹양방초(綠楊芳草) 녹양방초, 다 저문 날에, 해는 어찌 더디 가며, 오동야우(梧桐夜雨) 성긴 비에, 밤은 어찌 길었는고, 얼싸절싸 말 들어 보아라. 해당화 그늘 속에, 비 맞은 제비같이, 일흔들 저리 흔들, 흔들흔들 넘논다. 이리 보아도 일색이요, 저리 보아도절색이라."
"얘 잘 논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구광선이요."
또 한 년 나오더니,
"갈까 보다 갈까 보다, 잦힌 밥을 못다 먹고, 임을 따라 갈까 보다. 경방산성(傾方山城) 빗근길로, 알배기처자, 앙금 살살, 게게 돌아간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일점홍이오."
또 한 년이 나오면서,
"오독도기 춘향 춘향월에, 달은 밝고 명랑한데, 여기다 저기다 얹어 버리고, 말이 못 된 경(景)이로다. 만첩 청산에쑥쑥 들어가서, 휘어진 버드나무 ,손으로 주르륵 훑어다가, 물에다 두둥두둥실실실, 여기다 저기다 얹어 버리고, 말이 못 된 경이로다."
"잘한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설중매요."
또 한 년 나오며, 방아타령을 하여,
"사신 행차 바쁜 길에, 마중참이 중화(中和)로다.산도첩첩 물도 중중, 기자(箕子)왕성이 평양이라. 청천에 뜬 까마귀, 울고가니 곽산(郭山),모닥불에 묻은 콩이, 튀어 나니 태천(泰川)이라, 찼던칼 빼어 놓으니, 하릴 없는 용천검(龍泉劍),청총마를 칩떠(들입다) 타고, 돌아오니 의주(義州)로다."
"잘 논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월하선이요."
또 한 년 나오면서, 잦은 방아타령을 하여,
"유각골 처자는, 쌈지 장수 처녀, 왕십리 처자는, 미나리 장수 처녀, 순담양(淳潭陽) 처자는, 바구니 장수 처녀, 영암강진 처자들은, 참빗 장수 처녀, 에라뒤야 방아로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하옥이요."
한참 서로 농탕치니, 놀보 댁이 강짜가 났구나. 사양머리동강치마, 속곳 가래 풀어 놓고, 버선발 평나막신, 왈칵 뛰어 냅다 서서, 놀보 앞에 앉으면서,
"나는 누구만 못하기에, 사당보고 미치느냐."
놀보가 전 같으면, 볼에 금이 곧 날 터나, 사당에게우세될까, 미운 말로 별시(別視)하여,
"차린 의복 생긴 맵시, 정녕한 사달들이, 예쁘기도하거니와, 강남 황제가 보냈으니, 홀대할 수 있겄느냐."
매명에 일백 냥씩, 후히 주어 보낸 후에, 설소리꾼에게다, 분을 모두 풀어,
"방정스런 저 자식이, 톱질 사설 잘못 메겨 ,떼 방정이 나왔으니, 물러가라 내 메길게."
놀보가 분을 내어, 통사설로 메기겄다.
"헌원씨(軒轅氏) 작주거(作舟車)에, 타고 나니이제불통(以濟不通),공부자 교불권(敎不倦)에, 칠십 제자가 육예(六藝) 신통(身通)."
"어기여라 톱질이야."
"한나라 숙손통(叔孫通), 당나라 굴똘통, 옛글에있는 통, 모두 다 좋은 통."
"어기여라 톱질이야."
"어찌하다 이내 박통, 모두 다 몹쓸 통, 첫번 통 상전 통, 둘째 통 걸인 통, 셋째 통 사당 통."
"어기여라 톱질이야."
"세간을 다 빼앗기니, 온 집안이 아주 허통, 우세를 하도하니, 처자들이 모두 애통, 생각하고 생각하니, 내 마음이절통."
"어기여라 톱질이야."
"어서 썰세 넷째 통, 이는 분명 세간 통, 그렇지않으면 미인 통."
"어기여라 톱질이야."
"내 신수가 아주 대통, 어찌 그리 신통, 뺏뜨려라이내 죽 통, 흥보 보면 크게 호통,"
"어기여라 톱질이야."
슬근슬근 거의 타니, 열대여섯 살 된 아이가 노랑머리 갈매 창옷, 박통 밖에 썩 나서니, 놀보가 장히 반겨,
" 애겨 이것 선동이지."
"삼십 넘은 노총각이, 그 뒤 따라 또 나오니, 볼보가 더 반겨,
"동자가 한 쌍이지."
"그 뒤에 사람들이, 꾸역꾸역 나오는디, 앞에선 두 아이는, 검무(劍舞)쟁이 북잡아라,풍각쟁이 각설이패, 방정스런외초라니 등물이, 짓끌어(지껄이며) 나오더니, 놀보의 안마당을, 장판으로알았던지, 휠씬 넓게 자리잡고, 각 차비(差備)가 늘어서서, 가얏고 "둥덩둥덩."
통소 소리 "띠루띠루."
해적(奚笛)소리 "고깨고깨."
북 장단에 검무 추며, 번개 소고 벼락 소고 "동골동골."
한 편에서는 각설이패가 덤벙이는데, 배코(머리털을밀어버린 자리) 밑 훨씬 돌려, 숭늉 쪽박 엎어 논 듯, 가로 약간 남은머리, 개미 상투 얹듯 하여, 이마에 딱 붙이고, 전라도 장타령을 시작하여,
"뚤울울 돌아왔소. 각설이라 멱서리라, 동서리를짊어지고, 뚤뚤 몰아 장타령, 흰 오얏꽃 옥과장, 노란 버들 김제장, 부창부수(夫唱婦隨) 화순장, 시화연풍 낙안장, 쑥 솟았다 고산장, 철철흘러 장수장, 삼도 도회 금산장, 일색 춘향 남원장, 십리 오리 장성장, 애고애고 곡성장, 누릇누릇 황육전(黃肉廛),펄펄 뛰는 생선전, 울긋불긋황화전(荒貨廛),파싹파싹 담배전, 얼걱덜걱 옹기전, 딸각딸각 나막신전."
한 놈은 옆에 서서, 두 다리를 벗디디고, 허릿짓고갯짓, 살만 남은 헌 부채로, 뒤꼭지를 탁탁 치며,
"잘 한다 잘 한다, 초당 짓고 한 공부가, 실수없이 잘한다. 동삼(童參)먹고 한 공부가, 진기(津氣)있게 잘도 한다. 기름 되나 먹었느냐, 미끈미끈 잘 나온다. 목구멍에 불을 켰나, 훤하게도잘 한다 . 뱃가죽도 두껍다, 일망무제(一望無際)로 나온다. 내가 저리잘할 적에, 네 선생이 오죽하랴. 네 선생이 나로구나. 잘 한다 잘 한다. 목 쉴라 목 쉴라, 대목장에 목 쉴라. 가만가만 섬겨라(종알거려라). 너 못하면 내가 하마."
한참 이리 덤벙일 제, 한 편에서는, 고사(告祀)초라니가 , 덤벙이는데, 구슬 상모(象毛) 담벙거지, 되게 맨 통 장고를, 턱밑에다되게 매고,
"꽁그락공 꽁그락꽁."
"예 돌아왔소, 구름 같은 댁에, 신선 같은 나그네왔소. 옥같은 입에, 구슬 같은 말이, 쏙쏙 나오."
"꽁그락 꽁."
"예 오노라 가노라 하니, 우리 집 마누라가, 아주머님전에, 문안 아홉 꼬장이,평안 아홉 꼬장이, 이구 십팔 열여덟꼬장이, 낱낱이 전하라 하옵디다."
"꽁그락 꽁."
"허페."
"통영 칠한 도리반에,쌀이나 담아 놓고, 귀가진 저고리, 단 가진 치마, 명실 명전 가진 꽃반,고사나 하여 보오."
"꽁구락 꽁꽁."
"허페페."
"정월 이월에 드는 액은, 삼월 삼일에 막아내고, 사월 오월에 드는 액은, 유월 유두에 막아내고, 칠월 팔월에 드는액은, 구월 구일에 막아 내고, 시월 동지 드는 액은, 납월(臘月) 납일에막아 내고, 매월 매일에 드는 액은, 초라니 장구로 막아 내세."
"꽁그락 꽁 허페."
놀보가 보다 하는 말이,
"저런 되방정들, 집구석에 두었다는, 싸라기도안 남겄다."
돈 관씩 후히 주어서 치송하였구나.
잡색꾼들 보낸 후에, 남은 통을 켜자 해도, 이 여러박통 속이, 탈수록 잡것이라, 놀보 댁은 옆에 앉아,
"아이고 아이고"
통곡하고,삯 받은 역군들은, 무색하여 만집(挽執)한다.
"그만 타소 그만 타소,이 박통 그만 타소,삼도유명 자네 성세를, 일조탕진(一朝蕩盡)하였으니, 만일 이 통 또 타다가, 무슨 재변 또 나오면, 무엇으로 방천(防川)할까, 필경 망신 될 것이니, 제발 덕분 그만 타소."
고집 많은 놀보놈이, 가세는 틀리어도, 성정은 안풀리어,
"너의 말이 녹록(碌碌)하다, 천금산진 환부래(千金散盡還復來)가옛 문장의 말씀이요, 빼던 칼 도로 꽂기, 장부의 할 일인가. 무엇이나오든지, 기어이 타볼 테네."
톱소리를 아주 억지쓰기로 메겨 ,
"어기여라 톱질이야."
"초패왕이 장감(章邯) 칠 제, 삼일량(三日糧)만가졌으며, 한신이 진여(陳餘) 칠 제,배수진이 영웅이라."
"어기여라 톱질이야."
"미불유초(靡不有初) 선극유종(鮮克有終),성인이하신 경계, 자넨 어찌 모르는가. 나는 기어이 타볼 테세."
"어기여라 톱질이야."
"정녕한 좋은 보패, 이 두 통에 있을 테니, 일락 서산 덜 저물어, 한 힘 써서 당기어라."
슬근슬근 거의 타니, 큼직한 쌍교 대체, 거금도(居金島) 가시목(加時木)을, 네모 접어 곱게 깎아, 생가죽으로 단단히 감아, 철정(鐵 0을 걸었는데, 박통 밖에 뾰조록, 놀보가 대희하여,
"아무렴 그렇지. 아무리 박통 속이, 내와하기좋다 한들, 천하백 그 얼굴이, 걸어올 리가 있나. 정녕한 쌍교 속에, 서시가 앉았으니, 쌍교째 모셔다가, 안채 대청에 놓을 테니, 휘장 칠것 다시 없다."
장담하여 기다릴 제, 쌍교는 무슨 쌍교, 송장 실은상여인데, 강남서 나오다가, 박통 가에 당도하여, 세상에 나올 테니, 상여를 정상(停喪)하여, 마목(馬木)틀 되어 놓고, 어동육서(魚東肉西) 좌포유혜(左脯右醯),제를 진설하느라고, 그새 종용하였구나. 불시에나는 소리,
"영이기가(靈 旣駕) 왕즉유택(往卽幽宅),재진견례(載陳遣禮) 영걸종천(永訣終天)." 대고
"워허너허 워허너허."
"명정(銘旌) 공포(功布) 앞을 세고, 행자 곡비(哭婢0 곡을 하소."
"워허너허 워허너허."
"행진강남 수천리(行盡江南數千里)에, 고생도하였더니, 박통문이 열렸으니, 안장처가 어디신고."
"워허너허 워허너허."
"금강 구월 지리 향산, 산운불합(山雲不合) 갈 수 없다."
"훠허너허."
"일침운중(日沈雲中) 우세 있다. 앙장(仰帳) 떼고 우비 껴라, 가다가 저물세라, 어서 가자 놀보 집에."
"워허너허 워허너허."
그 뒤에 상인들이, 각청으로 울고 올 제, 낳은 아들하나요, 삯 상인이 여섯이니, 메기고 날 댓돈에,목청 좋은 놈만 얻었구나. 한 놈은 시조청으로 울고, 한 놈은 산타령으로 울고, 한 놈은 방아타령으로울고, 한 놈은 하 울어서, 목이 조금 쉬었기로, 목은 아예 아니 쓰고잦은모리 아니리로, 남을 일쑤 웃기겄다.
"애고애고 막동아, 기운 없어 못 살겄다. 놀보집에 급히 가서,개 잡혀서 잘 고아라. 애고애고 오늘 저녁, 정상(停喪)을얻다 할꼬, 놀보의 안방 치고, 포진(鋪陳)을 잘 하여라. 애고애고 좆꼴리어, 암만해도 못 참겄다. 놀보 계집 뒷물시켜, 수청으로 대령하라. 애고애고 이 행차가, 초라하여 못 하겄다. 놀보 아들은 행자 세우고, 놀보 딸은 곡비 세워라. 애고애고 철야할 제, 심심하여 어찌할꼬. 글씨잘 쓴 경(磬)쇠 한 목, 쇠 좋은 놈 얻어 오라. 애고 애고 설운 지고, 가난이 원수로다. 삯 한 돈에 몸 팔리어, 헛울음에 목 쉬었다. 애고애고."
"훠허너허."
땡그랑 요란하게 나오더니, 놀보의 안방에 정구(停柩)하고, 허저(許楮)같은 상여꾼들, 벽력같이 외는 소리,
"주인 놀보 어디 갔나. 대병(大屛)치고 제상놓고, 촉대에 밀초 켜고, 향로에 향 피워라. 제물 먼저 올린 후에, 상식상(上食床) 곧 차려라. 방 더울라 불 때지 말고, 괴(고양이) 들어갈라, 구들을 막아라."
이런 야단이 없구나. 놀보가 넋을 잃어, 처자를 데리고서, 대강 거행한 연후에, 상제에 문안하고, 공순히 묻자오되,
"어떠하신 상 행차인지, 내력이나 아사이다."
상제가 대답하되,
"오 네가 박놀본가."
"예."
"우리 댁 노 생원님이, 너를 찾아보시려고, 첫 박통에 행차하셔, 너를 속량해 주고, 환행차하신 후에, 네 정성이극진하여, 자식보다 낫더라고, 매일 자랑하시더니, 노인의 병환이라, 병환 나신 하루내에, 별세를 하시는데, 박놀보의 안채 정간(井間),장히좋은 명당이라, 내 말 하고 찾아가면, 반겨 허락할 것이니, 갈 길이멀다 말고, 부디 게 가 장사하되, 만일 의심하거들랑, 이것을 보이면, 신적(信迹)이 되리라고, 재삼 유언하시기로, 상행차 모시고서, 불원천리찾아왔다."
소매에서 능천낭을, 슬그미 내놓거든,, 놀보가 이것보니, 송장 보다 더 밉구나. 꿇엎디어 섧게 빌어,
"상제님 상제님, 소인 살려 주옵소서, 노 생원님하신 유언, 임종시에 하셨으니, 정신이 혼미하여, 난명(亂命)의 말씀이니, 위과(魏顆)의 하신 일을, 상제님이 모르시오. 산리(山理)로 할지라도, 이 집터가 명당이면, 일조 패가 하오리까. 운진(運盡)한 땅이오니, 상행(喪行) 부비(浮費) 산지가(山地價)를, 대전으로 바치올 제, 환향 안장하옵소서."
전답 문서 전당하고, 돈 삼만 냥 빚을 얻어, 상행치송한 연후에, 남아 있는 여섯째 통, 타려고 달려드니, 제 계집이 옆에앉아, 통곡하며 만류한다.
"맙쇼 맙쇼 타지 맙쇼. 그 박씨에 쓰인 글자, 갚을 보자 원수 구자, 원수 갚자 한 말이라, 탈수록 망할 테니, 간신히모은 세간, 편한 꼴도 못 보고서, 잡것들게 다 뜯기니, 이럴 줄 알았더면 ,시아재 굶을 적에, 구완 아니하였을까. 만일 잡것 또 나오면, 적수공권(赤手空拳) 이 신세에, 무엇으로 감당할까. 가련한 우리 부부, 목숨까지 없앨 터니, 기어이 타려거든, 내 허리와 함께 켜소."
박통 위에 걸터 엎어져, 경상도 메나리조로, 한참을울어 내니, 놀보가 하릴없어, 저도 그만 파의(罷意)하여,
"이 내 신세 된 조격(가락, 모양)이, 계집까지덧내서는, 정녕 아사할 터이니, 여보소 톱질꾼들, 양줄 풀어 톱 지우고, 저 박통 들어다가, 대문 밖에 내버리소."
한참 소쇄하는 참에, 천만 의외 박통 속에,
"대포수(大砲手)."
"예"
"개문포(開門砲) 삼방(三放)하라."
"예."
"뗑뗑뗑."
박통이 한가운데, 딱 벌어지며, 행군 호령을 똑, 병학지남조(兵學指南調)로 하겄다.
"행영시(行營時)에 여전면(如前面)에, 조수목(阻樹木)이거든, 개청기(開靑旗)하고, 조수택(阻水澤)이거든, 개혹기(開黑旗)하고, 조병마(阻兵馬)거든, 개백기(開白旗)하고, 조산험(阻山險)이거든, 개황기 하고, 조연화(阻煙火) 이거든, 개홍기(開紅旗)하고,과소견지물(過所見之物) 이거든,즉권(卽捲)하라. 여도가일로행(如道可一路行)이거든, 입고초일면(立高招一面)하고, 이로평행이거든, 입이면(立二面)하고,삼로평행이거든, 입삼면하고, 사로평행커든, 입사면하고, 대영행(擡營行) 이어든, 입오면하되, 후대체상구전(後隊遞相口傳)하여,전로에수모색기기고초(樹某色旗畿高招)라 하여든, 중군이 즉거변영호포(卽擧變營號砲),급(及) 제비( 備) 호령하라."
"정수(鉦手)."
"예."
"명금이하인(鳴金二下引),행취타(行吹打)하라."
"예."
"쨍 나니나노 퉁 쾡."
천병만마 물 끓듯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 나오는장수, 신장은 팔 척이요, 얼굴은 먹빛 같고, 표범 머리 고래 눈과, 제비턱 범의 수염, 형세는 닫는 말, 황금 투구 쇄자(鎖子) 갑옷, 심오마(深烏馬) 높이 타고, 장팔사모(丈八蛇矛) 비껴 들고, 거뢰(巨雷) 같은 큰 목소리,"이놈놀보야."
박 타던 삯꾼들, 이 소리에 깜짝 놀라, 창자가 터져죽은 놈이, 여러 명이 되는구나. 놀보놈은 정신 잃고, 박통 가에 뒤쳤으니(기절하여넘어짐),저 장수 거동 보소. 놀보의 안채 대청이, 쓸 만한 장대(將臺)인줄로, 하마포(下馬砲)에 말을 내려, 승장포(升帳砲) 삼방하고, 오색기치 방위 차려, 청동백서(靑東白西) 세워 놓고, 각영 장졸 벌여 서서, 명금 대취타에, 좌기(坐起) 취한 연후에, 대상에서 나는 호령,
"놀보놈 나입(拿入)하라."
비호 같은 군사들이, 놀보의 고추상투, 덤뻑 끌어나입하니, 대장이 분부하되,
"네놈 수죄할 양이면 네가 놀라 죽겄기에, 조용히분부하니, 자세히 들어 보라. 한나라가 말세되어, 천하가 분분할 제, 유(劉) 관(關) 장(張) 세 영웅이, 도원(桃園)dpt 결의하고, 한실(漢室)을흥복하자, 천하에 횡행하던, 삼 형제 중 말째 되고, 오호대장 둘째 되는탁군( 郡)서 살던, 성은 장이요 이름은 비요, 자는 익덕(益德)이라 하는용맹을 들었느냐. 내가 그 장 장군이로다. 천지에 중한 의가, 형제밖에또 있느냐. 한날 한시에 못 낳았어도, 한날 한시에 죽는 것이, 당연한도리엔데, 네놈은 어이하여, 동기 박대 그리 하며, 비금(飛禽)중에 사람따르고, 해 없는 게 제비로다. 내가 근본 생긴 모양, 제비 턱을 가졌기로,제비를사랑터니, 제비 말을 들어 본즉, 생다리를 꺾었다니, 그러한 몹쓸 놈이, 어디가 있겄느냐. 내 평생 가진 성기(性氣),내게 이해 불고(不顧)하고, 몹쓸 놈 곧 얼른하면, 장팔사모 쑥 빼내어 ,푹 찌르는 성정인 고로, 안득쾌인 여익덕(安得快人如翼德) 진주세상 부심인(盡誅世上負心人)을 ,너도 혹 들었는가. 네놈의 흉녕(凶獰) 극악, 동생을 쫓아내고, 제비절각시킨 죄를, 꼭 죽이려 나왔더니, 도리어 생각하니, 사자는 불가부생(不可復生) 형자(刑者)는 불가부속(不可復屬), 네 아무리 회과(悔過)하여, 형제우애하자 한들, 목숨이 죽어지면, 어쩔 수가 없겄기에, 네 목숨을 빌려주니, 이번은 개과하여, 형제 우애하겄는가."
놀보 엎어져 생각하니, 불의로 모은 재물, 허망히다 나가니, 징계도 쾌히 되고, 장 장군의 그 성정이, 독우(督郵)도 편타(鞭打)하니, 저 같은 천한 목숨, 파리만도 못하구나. 악한 놈에 어진 마음,무서워야나는구나. 복복사죄(伏伏謝罪) 울며 빈다.
"장군 분부 듣사오니, 소인의 전후 죄상, 굼수만도못하오니, 목숨 살려 주옵시면, 전허물을 다 고치고, 군자의 본을 받아, 형제간에 우애하고, 인리에 화목하여, 사람 노릇 하올 테니, 제발 덕분살려 주오."
장군이 분부하되,
"네 말이 그러하니, 알기 쉬운 수가 있다. 남원이나고금도(古今島)나, 우리 중형(仲兄) 계신 곳에, 내가 가서 모셔 있어, 네 소문을 탐지하여, 개과를 하였으면, 재물을 다시 주어, 부자가 되게하고, 그렇지 아니하면, 바로 와서 죽일 테니 ,군사나 호궤( 饋)하라. 이제 곧 떠나겄다."
놀보가 감화하여, 양식 있는 대로 밥을 짓고, 소와닭 개 많이 잡아, 군사를 먹이면서, 좋은 술을 연해 부어,장군전에 올리오니, 제 계집이 말려,
"애겨, 그만 합쇼. 그 장군님 술 취하면, 아무죄 없는 놈도, 편타를 하신답네."
놀보가 웃으며,
"자네가 어찌 알아. 그 장군님 장한 의기, 의석(義釋) 엄안(嚴顔) 하셨나니."
장군이 회군하신 후에, 가산을 돌아보니, 일패도지(一敗塗地) 하였구나. 방성통곡(放聲痛哭) 하고, 흥보 집 찾아 나니, 흥보가 대경하여, 극진히 위로하고, 제 세간 반분하여, 형우제공(兄友弟恭) 지내는 양, 누가 아니 칭찬하리. 도원에 남은 의기, 천고에 유전하여, 이러한 하우불이(下愚不移), 감동하게 하시오니, 염완입나(廉頑入懦)하는 백이지풍(佰夷之風) 같은가하노라. (신재효 판소리 여섯 바탕중에서 흥보전)
흥보가(興甫歌) - 일명 박타령
동편제 흥보가 신재효본(한글)
매품 팔이와 놀보집 가서 매맞고 온다
흥보쫓겨나는 대목
요점 정리
작자 : 미상 (민중의 공동작, 적층 문학, 구전 문학)
연대 : 미상
근원설화 : 방이 설화, 박 타는 처녀설화, 동물 보은 설화
갈래 : 판소리 사설
문체 : 가사체(3·4조, 4·4조바탕), 율문체, 만연체
성격 : 해학적, 희극적, 풍자적, 평민적, 교훈적, 운문적
배경 : ① 시간적 배경 : 조선 후기 ② 공간적 배경 : 전라도 운봉과 경상도 함양 경계(지금의 전라도 남원)
구성 : 추보식 구성
인물(성격) :
① 흥보 : 농토가 없는 농촌 빈민이지만 선량하고 정직하며 우애와 신의가 있는 인물
② 흥보의 처 : 흥보처럼 선량하나 현실 인식이 더 빠르고 고난을 억척스럽게 이겨내고자
하는 인물
③ 놀보 : 부를 축적한 농민이자 수전노, 온갖 못된 짓을 저지르는 악인의 전형적 인물
갈등 구조 : 흥보가의 기본 갈등 구조는 흥보로 대표되는농촌 빈민층과 놀보로 대표되는 반사회적 지주층과의 갈등이다. 흥보가놀보에게 쫓겨난 것은 토지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놀보에게 빼앗겼음을의미한다. 이는 빈농과 부농으로 농민층이 분해되고 있음을 뜻한다. 동시에 당시의 사회가 공동 사회에서 이익 사회로 전환됨에 동반된 현상으로흥보가는 당시의 농민 현실을 심각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주제 : 표면적주제는 형제 간의 우애와 권선징악(勸善懲惡), 인과응보이고, 이면적주제는 신흥 부농과 유랑 빈농 사이에 벌어지는경제적 갈등. 또는 빈부 갈등(빈농층과 반사회적지주층 간의 갈등)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표현상 특징 :
① 3·4 또는 4·4조 운문과 산문이 혼합됨
② 양반의 품위 있는 한문투(?. 보통 이렇게 말들을 하지만 왜 한문투가 품위가 있다고 생각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져 보아야 한다)와서민들의 비속한 표현이 뒤섞임
③ 일상적 구어와 현재 시제를 사용하여 사실적 표현과 전라도 사투리의 구사를 통해 향토색을드러 내었다. / 현재형 시제를 사용하여 극중 세계의 사실감을 높여 사실적인 표현 기법을 취하였다.
④ 조선 후기의 몰락하는 양반의 실상과 평범한 서민들의생활상을 사실적으로 드러내었고, 평민적 취향이가장 강함.
⑤ 대조, 과장하는 수법을 통해 해학적골계미를 풍부하게 표현하였다.
⑥ 문학의 세 유형인 노래하기, 이야기 하기, 보여 주기의 요소를 모두 지니고 있다.
⑦'장면의 극대화'로 인하여 각 장면의 독자성이 강화되고 있다 – 판소리에서 말하는 '장면의 극대화'란 어떤 장면에서 기대되는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문학적 형상화 수법의 하나로 주어진 장면에서 기대되는 효과를 최대화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서술자의 의도에 관계되는 것이다. 예컨대 기쁜 장면이라면 그 기쁨을 최대화하고, 열등한 인물을 묘사하기 위해서라면 앞뒤에 행동에 상관하지 않고 그 주어진 장면에서 열등함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서술하는 것이다. 그래서 장면을 극대화하다 보면 해당 장면이 인물의 앞뒤 행위와 일관성을 잃는 경우도 있다. 즉, 이것을 장면의 독자성이 강화된다고 말한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줄거리 : 경상·전라·충청 3도의 접경에 심술 사나운 형 놀부와 착하고 순한 아우 흥부가 살았는데, 놀부가 부모의 재산을 독차지하고 흥부를 내쫓자, 아내와 여러 자식을 거느린 흥부는 온갖 어려운 일을 다하며 가난하게 살았다. 어느 해 봄 제비가 흥부집에 집을 짓고 살다가 새끼 1마리가 땅에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는데, 마음씨 착한 흥부가 제비다리를 고쳐 주자 이듬해 봄에 박씨 하나를 물어다 주었다. 흥부가 박씨를 심어 그해 가을 큰 박을 거두어 켜 보았더니 그 속에서 금은보화가 나와 큰 부자가 되었다. 놀부가 이 소식을 듣고 일부러 제비다리를 부러뜨린 뒤 치료하여 날려 보냈더니 이듬해 역시 박씨 하나를 물어다 주었다. 놀부도 박씨를 심어 가을에 박을 거두어 켰는데, 그 속에서 온갖 몹쓸 것이 나와 집안이 망해버렸다. 흥부가 재물을 나누어 주어 다시 잘살게 하자 놀부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다시 형제가 화목하게 살았다는 내용이다.
화해의 매개자, '제비'와 '박' - '흥부전'에 나오는 '제비'와 '박'은 초현실 세계의 전령사로서, 청빈하고 도덕적인 인간 흥부에게 재물로써 이를 보상하고, 부자이면서 부도덕한 놀부를 벌해 재산을 몰수 한다. 이것은 놀부같이 부도덕한 부자에 대한 서민 독자들의 카타르시스 효과를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초자연적 힘에 의해 놀부는 잃어 버렸던 도덕성을 회복하고, 대립 관계였던 흥부와 화합을 이루게 된다. 즉, 놀부는 부도덕한 재산을 탕진함으로써 도덕성을 회복하고, 흥부는 그의 도덕성 때문에 부자가 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형제 간의 우애라든지, 권선징악과 같은 도덕적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경제적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해와감상
판소리 다섯마당 가운데 하나.‘박타령’이라고도 한다. 가난하고 착한 아우 흥보는 부러진 제비다리를 고쳐주고 그 제비가 물고 온 박씨를 심어 박을 타서 보물들이 나와 부자가 되고, 넉넉하고 모진 형 놀보는 제비다리를 부러뜨리고 그 제비가 물고 온 박씨를 심어 박을 타서 괴물들이 나와 망한다는 이야기를 판소리로 엮은 것이다.
사설이 우화적이기 때문에 우스운 대목이 많아 소리 또한 가벼운 재담소리가 많다. 사설의 길이는 짧은 편이며 한 마당 모두 부르는 데 대개 3시간 가량 걸린다. 조선 중기에 이미 불렸으며 송만재(宋萬載)의 ≪관우희 觀優戱≫, 이유원(李裕元)의 ≪관극팔령 觀劇八令≫과 같은 조선 후기 문헌에 처음 보인다.
정조 때의 명창 권삼득(權三得)이 〈흥보가〉를 잘하였고,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이 그의 더늠이라고 한다. 순조 때의 명창 염계달(廉季達)·문석준(文錫準)도 〈흥보가〉로 이름을 떨쳤는데 그는 ‘박통 속에서 돈과 쌀을 정신없이 퍼내는 휘모리 대목’을 더늠으로 전하고 있다.
철종 때에는 한송학(韓松鶴)·정창업(丁昌業)이 〈흥보가〉를 잘하였다 하며, 고종 때에는 최상준(崔相俊)·김창환(金昌煥)이 잘하였다 한다. 김창환은 ‘제비노정기’를 더늠으로 내었던 바, 오늘날 ‘제비노정기’는 그의 더늠을 첫손으로 꼽고 있다.
전승되고 있는 〈흥보가〉 바디에는 박녹주(朴綠珠)와 박봉술(朴奉述)이 보유하고 있는 송만갑(宋萬甲) 바디, 정광수(丁珖秀)가 보유하고 있는 김창환 바디, 오정숙(吳貞淑)이 보유하고 있는 김연수(金演洙) 바디가 있으며, 박동진(朴東鎭)이 짜 부르고 있는 바디 〈흥보가〉는 김창환 바디에 가깝다.
그 밖의 〈흥보가〉 바디는 거의 전승이 끊어진 상태이다. 〈흥보가〉는 바디마다 사설과 소리가 얼마쯤 다르게 짜여 있으나, 흔히 ‘초앞’·‘놀보심술’·‘흥보 쫓겨나는데’·‘매품팔이’·‘매 맞는데’·‘집터 잡는데’·‘제비노정기’·‘흥보 박타령’·‘화초장’·‘제비 후리러 나가는데’·‘놀보 박타령’ 등 뒤풀이로 짜인 바디가 많다.
앞과 뒤에는 재담소리가 많고 가운데에 좋은 소리가 많다. 〈흥보가〉에서 이름난 소리 대목은 ‘중타령’(엇모리-계면조)·‘집터 잡는데’(진양-우조)·‘제비노정기’(중중모리-평조 또는 계면조)·‘박타령’(진양-계면조)·‘비단타령’(중중모리-평조 또는 계면조)·‘화초장’(중중모리-계면조)·‘제비 후리러 나가는데’(중중모리-설렁제)를 들 수 있다.
〈흥보가〉는 우스운 재담 대목이 많이 들어 있고 끝에 ‘놀보 박타는 대목’에는 잡가(雜歌)가 나오기 때문에 해학적인 마당으로 꼽힌다. 소리도 잘해야 하지만 아니리와 너름새에 능해야 〈흥보가〉명창으로 제격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朝鮮唱劇史(鄭魯湜, 朝鮮日報社, 1940), 판소리 小史(朴晃, 新丘文化社 出版部, 1974).(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해와 감상1
'흥부가'는 형제간의 우애를 다룬 작품이다. 그리고 조선 후기 사회 서민들의 부(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전체줄거리에 흐르는 소재는 '제비와 박'이 중심이 되며, 선량한 아우와심술궂은 형을 등장시켜, 유교의 근본 사상의 하나인 형제간의 우애를강조한 윤리적인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제는 다양하게 잡을 수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수 있는 것은 빈궁의 문제이다. 작품을창작할 당시의 사회,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조선 후기 사회는 격심한사회 변동의 와중에서 토지를 잃은 농민들의 수가 급증하였다. 그런데이 글에서 흥부가 밥을 너무 많이 먹고 잠시 죽는 모습은 다소 비현실적으로보이지만, 당시 사회의 현실과 관련시켰을 때 이해가 가는 상황이다. 박을 타 보니 금은 보화와 쌀이 나오고, 그 쌀을 배가 터지도록 밥을먹어 본다는 것은 당시 서민들의 꿈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판소리는 창자인 광대와 고수가 성립시키는소리판에 청중이자 관객인 감상자들의 참여로 연행되는 예술 양식이므로, 그 삼자가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해 가며 연희할 수 있다. 위의 창에서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창자는 발랄한 속어, 재담 등을 구사하거나 상황을여실히 나타내기 위하여 반복하거나 의성, 의태어로 사실감을 높이기도한다. 이 작품 속에는 당시 만중들의 웃음과 해학이 들어 있으며, 조선후기 사회의 사회 현실도 엿 볼 수 있다.
'흥부가'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앞 부분은 흥부가 고난을 겪다가 제비 다리를 치료해 주는 내용이며, 뒷 부분은 흥부가 박을 켜서 복을 받고 이를 흉내 낸 놀부는 박을 켜화를 당한다는 내용이다. 흥보가는 일명 박타령이라고 하는데 그 박은바로 조선 시대의 민중 다시 말해서 일반 서민들의 가장 열망하는 것을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박 속에서 온갖 비단과 보물이 나왔다는 상상력은비현실적이지만, 당대 민중들이 직면하고 있던 절대적 빈곤과 그 빈곤에서벗어나고자 하는 부(富)에 대한 염원의 역설적 표현이라고 볼 경우, 오히려 강한 현실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심화자료
흥보가 '박 사설'의 기능
(1) 심리적 보상 기능
심리적 보상 기능의 하나로서는 흥보박 사설이 착한 흥보가 복을 받게 되는 내용으로 엮어져 있고, 놀보박 사설이 악한 놀보가 벌을 받게 되는 내용으로 엮어짐으로써 청중의기대감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음에는 흥보박 사설이 창자(唱者)와 청중의 현실적 소망을 언어적 형상 속에서 간접적으로충족시키는 구실을 맡고 있다는 점을 들어볼 수 있다. 한편, 놀보와흥보가 형제의 윤기(倫紀)를 되찾아 화해하게 되는 놀보 박 사설의 결말은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해결될 수 있고,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마음을돌이킬 수 있다는 낙관적, 긍정적 신념을 회복시키는 구실을 지니고있다. 이러한 여러 기능이 복합되어 소리판 속의 청중이나 독서물 앞의독자를 감동시키고 만족시키게 된다.
(2) 오락적 기능
청중이나 독자를 즐겁게 해 주는 오락적 기능은흥보 박 사설과 놀보 박 사설 전체에 넘쳐 흐르는 희극미에서 나타나고있다. 흥보 박 사설에서 흥보가 밥을 먹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대목에서이 점은 분명히 드러난다.
.(전략) 이놈아 밥판이고 무엇이고 느그 아버지 밥 자시다 세상 버리신다. 밥먹다가 죽는 걸 뉘 내 아들놈이 안단 말이요. 어디 아부지 궁둥이 좀봅시다. 아부지 궁둥이에 밥이 환히 비였소. 강아지 한 마리 들여 보내지요. 아이고 이놈아 강아지가 들어가 어쩌게야. 강아지가 들어가서 밥을 팍팍파먹을 게 아니요, 아이고 이놈아 밥은 파먹는다 하고 강아지는 어디로나오게야. 그러기에 호랑이 한 마리 몰아 넣지요. 호랑이가 들어가 어쩐다냐. 강아지를 콱 잡아먹을 게 아니요. 이놈아 강아지는 잡아먹는다고 하고호랑이는 어디로 나오게야. (후략)
위의 사설에서는 오래 굶주린 끝에 밥을 먹다기절한 흥보의 처지가 슬픔을 주기보다는 즐거움을 느끼도록 서술되고있다. 이것은 기절한 흥보를 두고 흥보의 아내와 아들이 말장난같이주고받는 대화가 일으키는 희극미에서 비롯된다고 생각된다. 박 사설이지니는 오락적 기능은 놀보 박 사설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놀보 박사설을 잘 살펴보면 박 속에서 나오는 인물들이 놀보를 처벌하기 위해서등장하고 있다기보다는 놀이판을 벌이기 위해서 등장하고 있다는 인상을받게 된다. 즉, 놀보 박 사설은 사당패·초라니패·푸악쟁이패등의 등장과 이들의 예능과 놀이판의 묘사로 사설이 길어지고 있다는사실을 알게 된다. 이것은 오락적 기능을 강화시켜 주면서 한편으로는판소리의 현장성을 보완하는 구실을 맡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3) 판소리의 공연의 현장성 보완
흥보 박 사설과 놀보 박사설은 한 사람의 창자가한마당의 소리판 전체를 재연해야만 되는 구연 방식의 제약 조건을 보완하는기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흥보 박 사설에는 비단의 이름을나열하면서 '들려 주는' 소리를 통하여 '보여 주는' 효과를 내고 있고, 놀보 박 사설에서는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색을 눈앞에 보여 주듯이 구체적으로묘사하고, 그들의 언행을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들은창자 한 사람이 인물을 묘사하고 수많은 장면을 전환시켜야 하는 판소리의구연 방식의 제약 조건 아래서 소리판 재연의 현장성을 보완하는 구실을지니게 되는 것이다. 특히, 박 사설에서 박 한 통 한 통이 장면 전환의구실을 맡고 있는 점은 흥미로운 일이다. (자료 출처 : 서종문의 '흥보가박 사설의 생성과 그 기능')
흥부·놀부의 인물 평가
조동일은 '흥부전의 양면성'이라는 글에서, 우선 '흥부전'이 판소리계 소설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이 작품이 구조적양면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한 면은 설화적 모태 구조로서의견고성을 지니고 있는 반면에 한편으로는 판소리의 구조적 특징이라할 수 있는 부분의 독자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장면의 확장과 수축이자유자재로울 뿐 아니라, 각 장면과 장면 또는 부분과 부분은 긴밀한연계성이 없이 독자적으로 설정되고 또 연행될 수 있는데, 그 구체적인사례를 흥부와 놀부의 상이한 신분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볼 수있다고 했다. 즉, 같은 형제간이지만 흥부는 양반 출신, 놀부는 천인출신이라는 상반되는 신분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당연히 논리적 자가당착으로지적될 수 있는 이러한 현상이 그러나 판소리 양식의 구조적 특징인 '부분의 독자성'원리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흥부는 몰락 양반의 표상으로, 놀부는신흥하는 천부(賤富)의 표상으로 보았다. 따라서, 흥부와 놀부 사이의갈등은 이미 있어 온 사회·문화와 앞으로 있어야 할 사회·문화사이의 갈등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구질서의 표상인흥부와 새로 신흥하는 질서의 표상인 놀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일련의진단을 내리고 있다.
…… 금전을 최대한 숭배하고, 재산이 무한히 확장되어나갈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놀부식 사고가새로운 힘을 가지고 있어 현실적 승리를 구가한다.
…… 선량한 군자이되 고생스럽게 살아야 한다는점에서 흥부는 긍정되고 해학의 대상이 된다면, 탐욕스럽게 악하다는점에서 놀부는 부정적으로 평가되고 풍자된다. 이러한 관점은 새로운현실 관계의 인식에 토대를 두고 있기는 해도 보수적인 견해라 할 수있다.
…… 흥부가 지닌 몰락 양반의 무능을 조롱하며 놀부의진취적인 능력에 친근감을 갖는 관점은 상인을 중심으로 하는, 대두하는새 세력의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이상의 진술을 통해 볼 때, 비록 가치 중립적인입장을 견지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역시 흥부쪽보다는 놀부쪽에 편향되고있는 연구자의 심정적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더구나 흥부의 인간상에서연역된다고 할 수 있는 도덕률, 특히 유교 도덕률을 대변하는 것이 표면적주제임에 반하여, 놀부의 인간성에서 연역되는 바로서의 천부의 대두로가난해진 양반과 모든 기존 관념이 얼마나 심각한 곤경에 빠지게 되었는가를여실히 보여 주는 것이 이면적 주제라고 할 수 있고, 표면적 주제보다는이면적 주제에서 보다 깊은 역사적 함의를 찾고 있는 연구자의 자세에서이러한 사실은 더욱 명백해진다.
이러한 조동일의 견해에 대하여 이론(異論)을제기한 이는 임형택이다. 그는 '흥부전의 현실성에 관한 연구'에서, 우선 놀부, 흥부의 신분 관계에 관하여 놀부와 흥부가 같은 서민층에서의양면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파악하였다. 즉, 놀부는 ' 상승된 경영형서민 부농'으로 파악하였다. 또 그는 이 글에서 조선조 후기 농촌사회가공동 사회에서 이익 사회로 이행됨에 따라 제기된 모순과 역리 현상에서흥부전의 주제 의식을 파악하려고 하였으며, 특히 '흥부라는 인물은피나는 노력에도 굶주려야 되는 반면에 놀부라는 인물은 악질적인 행위에도부자로 잘 살고 있는 현실의 모순'에서 날카로운 문제 의식이 제기되고있음을 지적하였다.
임형택 역시 사회 경제사적 시각에서 작품을투시하고, 또 문제를 풀어 가고 있음은 조동일의 경우와 다를 바 없지만, 작품 구조를 일정한 통일원리에 따라 바라보고 있다는 점과 놀부·흥부의신분을 동일한 서민 계층으로 파악하고 있는 점은 두 연구자 사이에서볼 수 있는 차이점이다. 차이점은 여기서 머물지 않고 놀부·흥부의인물을 평가하는 시각에서도 두드러진다. 두 인물에 대한 임형택의 견는다음과 같다.
놀부는 철저히 반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이었다. 물론 놀부의 이러한 반도덕적, 반사회적 성격은 봉건 사회에 대한 도전으로서역사적으로 일정한 진보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역사의 변환 과정에서나타난 암이며, 배제되어야 할 요소이므로 놀부는 부정적인 존재가 되지않을 수 없었다. …… 그는 이익 추궁려이 지나쳐 배금주의자가 돼 버린것이다. 돈벌이 그것이 인생의 목표였다. 그러나 결국 놀부는 무한한이익 추구열 때문에 자멸한다.……
우리는 흥부를 봉건 사회 말기의 보수적이고반시대적인 낡은 유형으로 처리해 버린 점에 반대한다. 흥부를 무기력하며게으르고 현실에 어두운 자로 보아 넘긴 태도에 대해서도 수긍할 수없다. ……흥부는 양심을 잃지 않고 근면으로 가난을 극복하려는 서민적인인간상을 극복하려는 서민적인 인간상을 분명히 반영하고 있다. 이 점에서흥부는 긍정적인 인물로 지지를 받았던 것이다.
이 인용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임형택은 놀부가철저히 반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인 배금주의자에 지나지 않는데, 이는역사 진보 과정에서 나타나는 암적 요소이기 때문에 당연히 배제되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흥부는 봉건 사회 말기의 반시대적인 낡은유형이 아니라, 오히려 양심을 잃지 않고 근면으로 가난을 극복하려는서민적인 인간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긍정적인 인물로 평가되는것은 당연한 일이라고도 했다. 그는 진취적이고 능률적이면서도 비양심적인배금주의자보다는 비록 가난하고 비능률적이지만 양심을 잃지 않고 성실히살아가려는 인간상에 기울어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런데 임형택의 글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문제는 놀부·흥부의 신분 관계에 관해서이다. 그는 두 사람이다 동일한 서민층이라고 하였지만, 아무래도 작품 실상에는 부합되기어려운 주장으로 보인다. 작품에서 흥부는 문자 쓰기를 좋아하는 식자층일뿐 아니라, 관습적으로 생활규범을 준행(準行)하려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염두에 두면서 이상택은 '고전소설의 사회와 인간'에서 놀부·흥부의 신분관계를 '획득 신분'의차원에서 풀이한 바 있다. 즉, 흥부전의 작가군이 신분을 풀이한 바있다. 즉, 흥부전의 작가군이 신분을 설정함에 있어서, 부모로부터 선험적으로물려받은 귀속 신분이 양반인가 천민인가 여부는 별반 관심거리가 되지못한다. 사회 변동이 그만큼 심화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양반 중에도정치·경제적인 몰락으로 말미암아 현실적으로는 빈민에 속하는자가 있는가 하면, 천민 중에도 부를 축적하여 고대 광실에서 풍요를누리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획득신분의 차원에서 보았을 때, 부의축적에 성공한 놀부는 말할 것도 없이 특권층에 해당되는 것이고, 온갖품팔이꾼으로 영락하여 심지어 매품까지 팔아야 했던 흥부는 오갈 데없는 극빈 천민에 해당된다. 즉, 획득 신분 차원에서 보면, 놀부가 상층에해당되고 흥부가 하층에 해당되는 것이다. 적어도 작가 의식의 심부에자리한 놀부·흥부의 신분은 그러한 시각에서 설명되어야 할 것이라는것이다. 그리고 놀부가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흥부의 유산권을 탈취한것과 같은 극악한 반윤리적 행위는 지탄되어 마땅하다. 그렇기 때문에 '흥부전'의 역사적 함의는 일차적으로는 반도덕적인 수탈 계층과 도덕적인피수탈 계층 사이의 갈등 사이에서 찾아야 한다. (출처 : 이상택의 '흥부놀부의 인물 평가')
판소리의 표현상 특징
① 일상어를 구어체로 사용
② 창 부분은 운문체(율문, 3·4 또는 4·4조의 가사체). 아니리 부분은 산문적 표현
-예- "가난이야, 가난이야, 원수년으 가난이야. 잘 살고 못 살기는 묘쓰기으 매였는가?"
"어떤사람 팔자 좋아 고대 광실 높은 집에 호가사로 잘 사는 데 이년의 신세는어찌하여 밤낮으로 벌었어도 삼순구식을 헐 수 없고"
③ 동일 어구나 유사 어구의 반복을 통한 운율감의 조성
-예- 비어 내고, 비어 내고, 비어 내고. 부어라, 부어라, 부어라, 부어라등
④ 하나의 국면을 확장적으로 그려 냄
-예- 박 타는 장면을 확장하고 부연하여 흥미를 조성함
⑤ 현재 시제를 사용하여 독자와의 거리감을 좁힘
-예- 열것다, 붓것다 등
⑥ 의성어와 의태어를사용하여 현장감을 살림
-예- 시르르르르르르르르, 실근실근, 번쩍, 수북, 가뜩 등
⑦ 상투적인 비유와 관용어구가 많이 나타남
-예- 구년지수, 석숭, 도주공
⑧ 서술어의 생략을통한 압축적 표현
-예- 박을툭 타 놓고 보니 박통 속이 훼엥. 궤를 찰칵찰칵, 번쩍 떠들러 놓고보니 어백미 쌀이 한 궤가 수북.
흥보가의 근원(根源) 설화(說話)
지금까지 근원설화에 대하여는 첫째, 고유설화, 둘째 고유 설화와 외래 설화와의 혼합, 셋째 몽고 설화, 넷째불교 설화의 네 가지 갈래로 추론되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몽고의 '박타는 처녀 설화'가 '흥보가'와 내용이 비슷하여 가장 가까운 설화로지목되어 왔다. 그러나 '흥보가'의 설화적 구조와 유형을 추출하여 악하고착한 형제가 등장하는 선악(善惡)형제담, 동물이 사람에게 은혜를 입으면반드시 보답한다는 동물(動物)보은(報恩)담, 박 속에서 한없이 물건이나오듯 어떤 물건에서 한없는 재물을 쏟아내는 무한재보담(無限財寶譚)의세 유형으로 나누어 이에 해당하는 구비 설화를 대비함으로써 '흥보가'의설화적 원천은 명확하게 밝혀질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중심을 이루는설화는 선악형제담으로서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흉내내다 실패한다는모방담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는 '혹 떼러 갔다 혹 붙이고 온영감'·'소금장수'·'부자 방망이'·'금도끼 은도끼'·'단방귀장수'·'말하는 염소' 등의 구전(口傳) 설화가 동일 유형의 설화에해당한다.
또 동물보은담에 해당하는 설화로 '육도집경'의 '방구보은설화', '삼국유사'의 '자라토주설화', 그밖에 구전설화인 '새보은설화'·'사슴보은설화' 등이 있으며 무한재보담으로는 구전설화 '이상한 남' 등이 있다. 결국, 선악형제담·동물보은담·무한재보담이 '흥부전'을 구성하는 3대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세가지 이야기가 불교적 색채를지녔다는 점에서 '흥부전'의 근원 설화에 해당하는 불전설화로서 '현우경'의 '선구악구설화', '잡비유경'의 '파각도인설화' 등을 들 수 있다.
결국, '흥부전'은 어느 하나의 근원 설화에서형성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설화의 결합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흥부전'은 조선 후기 서민사회에서 광대·가객 등 서민 예능인들에의하여 형성된 작품이므로 당시 사회의 다양한 모습과 작품을 생성시키고, 향유했던 서민 계층의 의식이 잘 투영되어 있다. 특히, 두 주인공인흥부와 놀부는 당시 서민 사회의 일정한 신분적 특징과 유형을 반영하는전형적 인물로 투영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하여 흥부와 놀부는 같은형제이면서도 양반과 천인으로, 그 사회적 신분이 상이하게 설정되었다고보아, 그 이유를 판소리계 소설의 중요한 특징인 부분의 독자성에 기인한다고보며, 작품의 사회사적 의미를 화폐 경제의 발달, 천부(賤富)의 대두와물질적 가치관의 성행에서 파악하는 견해가 있다. 또, 이와는 달리 흥부와놀부의 신분관계를 같은 서민층에서의 양면성을 반영했다고 보고, 놀부는상승된 경영형 서민부농의 반영인 반면에, 흥부는 소작인의 기회마저얻지 못하고 모든 생산 수단을 상실하여 품팔이꾼으로 전락한 영세농민을반영한 인물로 보는 경향도 있다. 이처럼 견해차가 있어도 '흥부전'이당시 서민 사회의 양상을 잘 반영하고 있고, 서민 계층의 삶과 생각을잘 나타내고 있는 작품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흥부전'은 대체로 형제간의우애를 강조한 윤리소설로서 인과응보적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주제와사상을 지닌 작품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교적 윤리도 덕을 내세우는것만이 '흥부전' 주제의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그 이면에는 당시의급변하는 현실 사회에서 몰락한 양반과 아직도 위세를 부리려는 기존관념이 허망한 것이라는 현실주의적 서민의 새로운 세계관의 제시에도 '흥부전'의 주제는 발견된다.
(1) 방이 설화
신라에 방이 형제가 살고 있었다. 형방이는 가난하여 의식을 구걸해서 살아가는 형편이었고, 아우는 부자였다. 어느 해 방이는 아우에게 가서 누에 알과 곡식의 종자를 구걸했다. 동생은매우 나쁜 사람이었으므로 알과 종자를 삶아서 주었다. 이를 모르는형은 그대로 받아 왔으나, 알 중에서 누에 한 마리가 생겨 나더니 황소만큼자랐다. 동생은 샘이 나 찾아와서 누에를 죽이고 갔다. 그랬더니, 백리 사방에서 뭇 누에가 모여들어 실을 켜 주었다. 종자도 역시 한 줄기밖에나지 않았는데 이삭이 한 자나 자라자, 어느 날 새 한 마리가 날아와그것을 물고 달아났다. 그는 새를 따라 산 속으로 갔다가 밤을 맞았다. 이윽고 난데없이 아이들이 나타났다. 그들이 금방망이를 꺼내서 이리저리치는데 그 때마다 부르는 것이 나타났다. 그들은 술과 밥을 차려서 한참먹더니 어디론지 가 버렸다. 방이는 이 방망이를 집으로 가지고 와서아우보다 더 큰 부자가 되었다.
아우는 시기심이 나서 그도 역시 형이한 바와 같이 해서 새를 따라가서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은 그를 보자, 이놈이 전에 방망이를 훔쳐 간 놈이라 하면서 갖은 부역을 시킨 후 코를뽑아 코끼리처럼 만든 후 집으로 보내 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부끄러움을참지 못해 속을 태우다가 죽고 말았다. 그리고 그 방망이는 방이의 후손에게전해졌는데, 어떤 후손이 "이리 똥 내놓아라."고 희롱했더니갑자기 벼락이 치더니 어디론지 사라지고 말았다.
줄거리
1) 신라 시대 어느 고을에 김방이라는인물이 살았는데, 그 동생이 악독하여 동생에게 재산을 다 빼앗겼다.
2) 어느 해 동생에게 보리를 꾸어다 밭에심었는데, 동생이 나쁜 보리만 골라 주어 싹이 거의 트지 안았다.
3) 밭 한가운데 꼭 하나의 보리싹이 나와 정성껏 가꾸었는데 어느 날 노랑새한 마리가 날아와 쪼아 먹고 말았다.
4) 방이가 슬퍼하자 노랑새는 방이를 데리고 가, 원하는 물건을 무엇이든나오게 하는 금방망이를 선물하였다.
5) 방이가 부자가 되자 동생이 시샘하여 방이가 한 대로 따라 해서 금방망이를얻었다.
6) 그러나 동생의 금방망이에서는 온갖 나쁜 것들이 나와동생을 해쳤다.
7) 동생이 재산을 다 잃고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방이가 와 구해 주었고 동생도 잘못을 뉘우쳤다.
(2) 박 타는 처녀 - 몽골 설화
옛날 어느 때 처녀 하나가 있었다. 하루는바느질을 하고 있노라니까, 무슨 서툰 소리가 들리는데, 나가 본즉 처마기슭에 집을 짓고 있던 제비 한 마리가 땅으로 떨어져서 버둥거리며애를 쓴다. 에그 불쌍해라 하고 집어 살펴본즉, 부둥깃이 부러졌다. 마음에 매우 측은하여, '오냐 네 상처를 고쳐 주마' 하고, 바느질하던오색 실로 감쪽같이 동여매어 주었다. 제비가 기쁨을 못 이기는 듯이날아갔다.
얼마 뒤에 그 제비가 평소와 같이 튼튼한 몸이 되어서날아오더니, 고마운 치사를 하는 듯이 하고 날아간다. 우연히 날아간자리를 본즉, 무엇인지 씨앗이 하나 떨어져 있었다. 이상한 일도 있다하고, 무엇이 나는가 보리라고 뜰 앞에 심었다. 그것이 점점 커지더니, 그 덩굴에 가서 커다란 박이 하나 열렸다. 엄청나게 크니까, 희한한김에 굳기를 기다려 하루바삐 타 보았다. 켜자마자 그 속에서 금은 주옥과기타 갖은 보화가 쏟아져 나왔다. 이 때문에 그 처녀가 금시에 거부가되었다.
그 이웃에 심사 바르지 못한 색시가하나 있었다. 이 색시가 박 타서 장자 된 이야기를 듣고, 옳지 나도그 색시처럼 제비 상처를 고쳐 주리라 하였다. 그래서 제집 처마 기슭에집 짓고 사는 제비를, 일부러 떨어뜨려서 부둥깃을 부러뜨리고, 오색실로 찬찬 동여매어 날려 보냈다. 얼마 지나니까 과연 박씨 하나를 가져왔다. 너무나 기뻐서 얼른 뜰에 심었더니, 여전히 커다란 박이 하나 열렸다. 오냐, 금은 주옥 갖은 보화가 네 속에 들었느냐 하고 그 박을 탔다. 뻐개어 본즉 야단이 났다. 그 속에서 무시무시한 독사가 나와서 그 색시를물어 죽였다.
(줄거리 :
1) 어떤 처녀가 제비 다리를 치료해 주었다.
2)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주어, 심었더니 큰 부자가 되었다.
3) 이웃집 처녀가 이를 부러워해서제비 다리를 꺾어서 치료해 주었다.
4) 제비가 역시 박씨를 물어다주어, 심었으나 망하고 말았다.
(3)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이고 온 이야기
1) 어떤 혹 달린 사람이 도깨비들에게 노래를 해주고는 혹에서 노래가 나온다고 했다.
2) 도깨비들이 혹을 떼어 갔다.
3) 이웃의 혹 달린 사람이 이를 탐내서 자기도 도깨비에게 노래를했다.
4) 도깨비들이 혹 하나를 더 붙여 주고 두들겨 주었다.
(4) 부자 방망이 이야기
1) 어떤 사람이 도깨비 집 천장에서 개암을 깨물었다.
2) 도깨비들이 그 소리에 놀라 부자 방망이를 둔 채 도망쳐, 그 사람은부자가 되었다.
3) 욕심 많은 이웃 사람이 이를 탐내, 자기도 도깨비집 천장에서 개암을 깨물었다.
4) 도깨비들이 그 사람을 찾아 내어두들겨 주었다. (자료 출처 : 한국사전연구사간 국어국문학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