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태평제일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는 7월 21일 원로목사 추대식과 담임목사 취임식을 동시에 치렀다. "몇몇 교회가 후임을 뽑을 때, 이력서만 보고 뽑아 전쟁이 났습니다. 여러분은 눈물과 기도로 키운 젊은 목사를 세웠으니 감사한 일 아닙니까." 이날 감사 예배에서 나온 축하 메시지 중 일부다. 그런데 예배당 한쪽 구석에서는 짙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눈물과 기도로 키운 젊은 목사, 그는 담임목사의 아들이었다. 과연 교인들은 담임목사의 아들이 담임목사가 된 걸 감사하고 있을까.
▲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태평제일교회. 출석교인 500여 명의 중형교회다. (태평제일교회 교인 제공)
사실 태평제일교회는 담임목사 불법 세습 의혹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34년간 교회 담임으로 시무하며 정년을 4년 앞둔 성낙운 목사는 작년 8월 12일 예정에 없던 제직회를 소집했다. 느닷없이 신임 목사를 청빙했다고 발표하고, 그것을 위한 예산 승인이라는 안건을 상정해 처리했다. 신임 목사는 본인의 아들 성도경 목사였다.
안수집사들을 중심으로 일부 교인들이 이것은 엄연한 불법 세습이라고 반발했다. 성낙운 목사가 동사목사라는 이름으로 아들을 데려와 담임목사직을 세습하기 위해 편법을 썼다는 것이다. 제직회 소집도 정상적인 절차를 밟지 않았다. 일주일 전에 소집을 공고하도록 한 교단 헌법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반발한 교인들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제직회를 다시 소집하라고 교회에 청원했다. 출석 인원 500여 명 중 130명의 교인이 청원서에 서명했다. 당회 서기에게 3번이나 전달했지만, 성낙운 목사와 당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흐지부지 넘어갔던 문제가 올해 다시 불거졌다. 4월 28일 성낙운 목사는 제직회를 소집해 성도경 목사를 교회 담임목사로 청빙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번에도 절차가 문제였다. 작년과 달리 일주일 전에 소집을 알렸지만, 투표 없이 동의 재청 방식으로 가결했다. 이의를 제기한 교인의 의견은 묵살됐다.
교회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교인들은 교회가 소속된 서울강동노회에 호소했다. 노회는 5월 7일 정기 노회 때 이 일을 다뤘다. 몇 차례 논쟁이 오간 끝에, 규칙부장의 해석으로 결정하자는 결론이 났다. 규칙부장은 성도경 목사를 교회 담임목사로 청빙한 교회 결의는 불법이라고 했다. 무기명 비밀 투표를 거치지 않았고, 성낙운 목사가 아직 담임목사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이 일은 오후에 다시 논의됐다. 교회의 평화를 위해 허락해 주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뤘고, 설왕설래 끝에 성낙운 목사가 즉시 사임하는 조건으로 노회는 세습을 통과시켰다. 문제를 제기했던 한 회원은 노회가 불법 세습에 협력했다며 총회 재판국에 7월 11일 '결의 취소의 소'를 제기했다. 총회 재판국은 이 소를 받아들였고, 현재 심리 중이다.
성 목사 부자는 불법 세습 논란에 대해 헌법에 따라 적법하게 된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강동노회 노회장인 오양현 목사도 노회의 적법한 결의를 거친 일이라고만 말할 뿐이다.
정년이 4년이나 남았음에도 이렇듯 무리하게 교회를 아들에게 물려준 이유가 무엇일까. 성낙운 목사에게 직접 들을 수 없었지만, 문제를 제기한 교인들은 한목소리로 '세습방지법' 때문이라고 얘기했다. 예장통합에서 가장 큰 평양노회를 포함한 3개 노회가 헌의안으로 올린 이 법이 오는 9월 총회에서 결의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교인들은 성도경 목사에게 나쁜 마음은 없다고 했다. 담임목사 청빙 절차가 헌법에 명시된 대로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교회 교인들의 제보를 받은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공동대표 김동호·백종국·오세택)도 예장통합 총회에 질의 공문을 보내는 등 문제 제기에 동참하고 나섰다. "저희는 30년 이상 교회의 미래를 책임질 담임목사를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게 모시기 바랄 뿐입니다." 태평제일교회 한 교인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