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유불선의 시조보다 더 높은 자리를 탐하지 말라
대전각의 마당에는 각 문 각파의 정예 수호무사들이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었다.
외딴 용소도에서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경계라기 보다는 서로 다른 문파에 대한 견제라는 것과 무림대회라는 취지가 참으로 어색한 풍경이다.
감성 일행이 전각의 대문 근처에 들어서자 마자, 흑색 무복을 입은 네 명의 무사들에게 가로 막혔다.
“뉘신지는 모르나, 이 전각에는 아무도 들게 하지 말라는 명을 받았소이다”
“난 해동선문에서 왔소이다. 안에 전해 주시구료?”
“해동선문이라? 해동이라면, 저 동이족이 아닌가? 선문이고 나발이고, 여기는 중원무림의 장문들이 기거하는 곳이다. 어디 변방 오랑케 따위가 발붙일 곳이더냐?”
제법 준엄한 어투에다 내공까지 실어서 축객령을 내린다.
“중원이라, 세상 사람이 모두 자신이 사는 곳이 중심이요, 가운데이거늘 어찌 여기만 중원이라 하오이까?”
“우리 무인은 그런 먹물로 쓴 말은 모른다. 돌아 가라면 돌아가는 것이 신상에 좋을 것이야. 보아하니, 서생이 삼류호위 무사 둘 데리고 유람차 왔다가 객기를 부리는 모양인데, 여기는 함부로 객기를 부릴 장소가 아닌게야. 알겠나?”
감성이 얼굴에 어설픈 미소를 띠우며, 뒤로 물러 서자 경계무사 네명이 껄껄거리면서 웃는다.
“학아, 지킬 것도 없는 곳을 지키게 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를 의심하는 것이고, 지배자가 피지배자에게 힘으로 시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저들이 말하는 충의라는 말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서로 어울려 돕고 사는 도리를 지배자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덕목으로 들고 나오는 말입니다.”
“그렇지, 널리 이롭다는 말의 범위는 울타리가 없다는 말이다. 울타리를 치기 시작하면, 울타리의 이름이 생기고, 이기심과 욕심이 생기며, 울타리 밖과 안을 구분하여 군림하고자 하는 자들이 나타나고, 울타리 안에도 그것에 걸맞는 지배자가 나타나지. 그 하수인은 충의니 충복이니 하는 말로 대중을 선동하고 스스로 대중을 밟고 선단다.”
“흐르는 물을 가두면 썩기 시작하고, 가둠이 없는 바다는 높고 낮음이 없어도 스스로 흐른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지, 이제 저 울타리를 걷어 볼까?”
감성이 돌아서자 마자, 곁에서 하얀 안개 덩어리 두개가 전각의 담을 넘어 들어간다.
“크르르릉 크앙”
동시에 감성의 입에서 호랑이의 낮막한 울부짖음이 흘러 나오고 문을 지키던 네명의 무사들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주저 앉는다.
앞에 선 내공이 약한 두명은 아예 바지가랭이가 축축하게 젖어 오기 시작한다.
뒤에 두명이 무너지듯이 앉는 바람에 닫긴 대문이 천천히 소리를 내며 열린다.
“소사숙은 얼마나 열심히 수련을 했으면, 일찍 시작한 저보다 나을 수가 있소?”
“학이형은 맨손으로 팼고, 나는 퉁소로 팼잖아요.”
감성이 들어선 전각 마당에는 수십명의 승려나 도인들, 무사들이 뒤로 눕거나, 서있는 자세로 도열해 있고 대문부터 대청까지의 통로에 있는 무인들을 옆으로 치워 통로를 내고 있는 소룡과 장학이 수다를 떨고 있다.
“형님, 그 소리는 개조심할 때 쓴다고 해놓고선 어찌 여기서 쓴답니까?”
“이놈아, 대문을 지키는 일은 개가 하지 누가 하냐?”
“맞다, 맞어.”
“형님, 저가 소리를 질러 모두 불러 낼까요?”
“됐다. 또, 밥 먹자고 할려고?”
환하게 밝혀진 전각 마당에 시간이 멈춘 듯 허수아비처럼 서 있는 경계무사들 사이에서 세 사람이 모여서 걸음을 대청쪽으로 옮긴다.
“학이는 무영 잠행을 좀 연습했느냐?”
“어렵네요. 쓰러진 사람은 들켜서 검집으로 수혈을 짚었고, 서 있는 사람에게만 성공한 것 같습니다.”
“소룡이는 모두 성공한 모양이구나.”
“예, 퉁소로 모두 마혈을 짚어서 세워 두었습니다.”
“나중에 룡이는 학이 한테 잠행의 묘리를 설명해 주거라.”
“예, 알겠느냐? 사질!”
“예, 소사숙.”
감성이 대청 마당 앞에 서서 목청을 가다듬고 큰 소리로 부른다.
“어험, 여보시오, 잠시 여쭐 말이 있소이다.”
소란스럽던 대청 안의 분위기가 갑자기 조용해 진다.
전각 뒷곁에서 왼손 팔뚝에 수건을 걸친 점원이 뛰어 나오면서 손님을 맡는다.
“예, 손님, 지금 나갑 …”
습관적으로 말을 뱉던 점원은 말을 하다가 입을 벌린 체로 멍하게 서있다.
삼엄한 경계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는데, 모두들 뒤로 눕거나, 멍하니 서 있고, 왠 낮선 객들이 마당에서 얼쩡거리는 것이 흡사 유령을 보는 것 같은 모양이다.
그 때, 대청문이 열리고 초로의 무인이 나오면서 소리친다.
“경계 무사들은 뭐하고 잡손이 얼쩡대게 하느냐?”
“잡손이 주인을 불렸으면, 잡손에게 대답을 해야지 지키는 사람을 부르는 것은 무슨 예법이란 말이요?”
“여봐라, 곤륜 제자들은 들어라!”
축대 위에 서서 고함을 지르다가 갑자기 자세를 멈추고. 소룡은 퉁소를 허리에다 꼽으며 입맛을 다신다.
“에이, 박자가 틀렸네. 이보시오. 어디 제자인지는 모르지만, 그 제자들은 모두 쉬고들 있다오.”
다시 방문이 열리고, 노승과 검은 무복을 입은 장년의 무인이 검을 들고 나온다.
바깥의 상황을 파악한 노승이 크게 불호를 외친다.
“아미타불, 어디서 온 뉘신지 이렇게 무례하시오!”
노승의 불호를 신호로 대청문들이 일시에 왈칵 열리며 삼사십명의 남녀노소의 무리들이 벌떼처럼 날아 나온다.
“이제 다 나오신 게요?”
“아미타불, 원해는 물렀거라. 소승은 소림의 방장직을 맡고 있는 혜공이라고 하오만?”
“소생은 해동에서 온 선령이며, 감성이라 합니다.”
“서, 선령이라 했소이까?”
“그렇습니다. 해동선문의 천선 사부님의 명을 받고 중원에 들어 왔습니다.”
축대에서 네명의 인명이 뛰어 내려와서 포권을 한다.
“소승 소림의 혜지라 합니다.”
“소승 소림의 혜경이라 합니다.”
“본도들은 무당의 흑검, 청검이라 합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이보시오, 혜지대사, 나 곤륜의 장문이요. 근본도 모르는 사람을 장문회의에 참석시킨단 말이요?”
“아미타불, 사마장문 함부로 말하지 마시오. 중원무림에 귀한 손님이시니 우선 안으로 들어가서 자세히 말씀드리리다.”
“무슨, 변방에서 굴러 들어온 풍류공자까지? 이거야 원.”
“닥치시오, 마당에 수십명의 중원 무림의 내노라하는 고수들을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하시는 게요?”
“마당이 뭐가 어떻다고, 피장로는 뭐하는가? 헉!”
곤륜의 사마장문은 그제서야 넓은 마당에 도열한 경계무사들과 자파의 장로를 보고 사태를 파악한 모양이다.
“룡아, 학아, 무사들을 다 풀어 주거라, 장로님은 좀 더 세워두시고.”
“예, 형님”
“예, 사부님”
중인들은 모두 뜨악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고, 마당의 무사들 사이에서 하얀 그림자가 휩쓸고 지나 다닌다.
대문 가까이에 있던 무당의 고수가 마혈이 풀리자, 대청 쪽으로 몸을 돌리고 무언가를 보고할려다가 멍하니 쳐다 보고 있다.
여기저기에서 수근거림과 혈도가 풀린 무사들의 입에서 나오는 한숨소리가 마당을 뒤덮고 있다.
장문인들도, 경계를 서던 고수들도 모두 귀신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마당 가운데에 있는 세 사람을 쳐다 보고 있다.
“수치로고 수치라”
“누구신지 몰라도 무인들의 능력이 모자라는 것이 수치가 아니라, 수십명을 배치하여 지킬 것도 없는 전각을 지키며, 스스로 청한 손님을 내치는 법도가 수치인게지요.”
“나는 당문의 문주외다. 중원무림이 이렇게 무너지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외다.”
“사람 위에 세운 것은 무엇이며, 무너지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군요.”
“아미타불, 자, 다투고자 온 것도 아니요, 우리를 돕고자 오신 분이니 들어 가서 자세히 설명을 드리리다.”
혜공과 혜지는 감성일행을 데리고 대청 회의장으로 들어선다.
넓은 대청에는 열 다섯개의 탁자가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탁자마다 하나의 의자가 있었으며, 감성 일행을 위하여 새로운 탁자와 의자를 준비하고 모두 앉았다.
구파일방과 큰 세가나 초청된 손님들이 앉은 뒤에는 두 세명의 보좌격인 사람들이 서 있었다.
비구와 비구니도 있고, 젊은 낭자들도 더러 검을 들고 시립하고 있었는데, 특이한 것은 관복을 입은 무리들도 한 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미타불, 잠시 전에 본사의 혜지와 혜경, 무당의 흑검, 청검대협께서 해동을 다녀온 이야기를 하다가 멈춘 것 같소이다만, 해동의 선령이 직접 왔으니,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직접 질문을 해보시구려.”
“소림과 무당은 발뺌을 하실 참이오?”
“잠깐, 무당장문께서 무슨 일인지 본 선령이 설명을 청해도 되겠습니까?”
“예, 설명을 하기 전에 더 이상 무례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선령이 오신 취지를 여러 장문제형께 말씀올리겠습니다.”
“아미타불, 좋습니다. 그러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험, 약 백오십년전에 전대 송나라의 말기에 원에 대항하기 위하여 무림의 여러 방파들이나 세외고인들이 발벗고 나섰던 일은 여러분께서도 잘 아실 줄 믿습니다. 워낙 강력한 세력의 원군에 패하여 소림이 불타고, 악비장군이 간신의 농간에 생포되어 처형을 당하고, 무당 장문께서 자결을 하고, 개방장문께서도 처형을 당한 일이 있었으며, 그외 여러 방파가 해산되고 중원무림이 멸절의 위기를 맡게 되었을 때, 희생된 선대 선사께서 유지를 남기셨는데, 그 유지가 ‘중원의 무림을 중흥하고 싶으면, 해동선문을 찾아 도움을 받으라”는 것이었소이다. 드디어, 원의 세력이 물러 가고 구파일방이 새로 결성되고 오년전의 일차 무림대회에 참석한 소림, 무당, 개방, 화산, 공동의 장문회의에서 해동으로 특사를 파견하게 되었습니다.”
“소관은 황실 근위장인 이원술이요, 내가 그 사실을 보증하리다.”
“고맙소, 이대협. 소림과 무당에서 각각 두 명씩 최고 고수들을 선발하여, 해동으로 갔다가 약 일년 전에 귀환을 했고, 여태 생존해 계신 중원무림의 선사님들의 유지를 직접 청탁받은 천선을 배알하고, 유지의 뜻을 알아 내어 돌아온 것이외다. 다만, 그 때 특사로 파견된 이들이 천선으로부터 커다란 기연을 얻고, 높은 무공을 성취하게 되어 다른 방파들로부터 오해를 받게 되었소.”
“나는 점창의 장문이요, 어찌 그 짧은 시간에 그처럼 높은 무공을 성취하게 되었고, 무슨 영약이나, 비급이 없고서는 불가능한 것으로 아는 것이 상례이거늘, 소림과 무당에서는 중원무림을 대표한다는 취지로 보물을 취했으면 응당 공개하고 나누어 가져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니오?”
“나 감성이 한 말씀 올리겠소이다. 귀파 선사의 유지를 알았다면 굳이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닌 것 같소이다. 또한, 아직도 중원은 선사님들의 유지를 받들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소이다.”
감성이 의자에서 일어나자, 혜지와 혜경, 흑검과 청검이 탁자 사이로 황급히 나와 한 쪽 무릎을 꿁고 일제히 청을 한다.
“태사조님, 저희가 미욱하여 마음에는 있으나,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으니, 잠시 이해를 구하고 싶습니다.”
“나 곤륜 장문이요. 태사조라니? 원 이런 얼토당토 않는 일이 있소?”
“아미타불, 곤륜장문은 함부로 말하지 마시오. 선령의 사부이신, 천선께서는 연치가 육갑자를 넘었으며, 우리들의 육대 선사와 사승의 친분을 가진 중원무림의 귀빈이셨소.”
감성이 자리에 다시 앉으며, 탁자 위에 오죽성검을 놓고 기파를 열어 놓자 온 실내가 서리가 내린 듯이 차가운 기운이 감돈다.
“나는 중원에 배분의 대접을 받으려 온 것도 아니요, 더욱이 소생의 사부께서 구태여 깨우쳐 준 심법의 묘리를 회수하려 온 것도 아닙니다. 곤륜장문과 뜻을 같이 하는 문파가 있다면 묻고 싶소이다. 중원의 예는 이웃이 타인으로부터 선물을 받으면 그것을 욱박질러 나누거나 빼앗는 것이 예법이오이까?”
“그것이 아니라, 예로부터 중원의 무림은 구파일방이 살얼음판 같은 균형을 이루며 평화를 유지해 왔소이다.”
“하하, 구파일방이 무림의 단체이오이까, 도리의 단체이오이까? 숭산의 소림이 무술을 닦는 무관이며, 무당산의 청양각이 무공 수련장이며, 화산이 칼을 가는 대장간이오이까?”
“…”
중인들은 찬물을 끼얻인 것 같은 침묵 속에 빠져 든다.
“황실 근위장으로써 한 말씀 올리겠소이다. 예로부터 중원의 무림은 근본은 불법이나, 도법을 닦는 무리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고 양민을 위한 계도행을 원활키 위해 탄생된 것으로 아오만, 외침과 내환이 격심해진 관계로 무공을 겸비한 도승들이 세사에 관여하게 되면서 조직화되어 구파일방으로 정리된 것이라 생각하니, 이제와서 굳이 그 근원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필요가 있겠소이까?”
“보시오, 시전거리에 기생하는 왈짜들도 나름의 정의를 표방하며, 상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피를 빨아서 먹고 살며, 힘없는 상인들 위에 군림하고, 그 세력이 커지면 문파를 열고 관할의 관은 눈치를 보게 되어 있지 않소? 구파일방과 왈짜패의 다른 점은 근본이 무엇이냐라는 것이지, 무공이나 세력의 대소에 따라 달라 진단 말씀이요?”
“듣자하니 못하는 말이 없구만, 황실이 무림의 눈치를 보고 있단 말이요?”
“그럼 아니란 말이요? 수천명의 조직화되고 지역별로 세력화된 무인이 간혹 탐관오리를 징죄하고, 도적을 척결한다해도 황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계륵과 같은 존재일 것이며, 늘 그 충성심을 저울질하지 않으면 불안할 것이 아니오?”
“할 말이 없소이다. 노심초사했는데, 그렇게 시원하게 까발려 주니 고맙구려. 그렇다고, 황실이 무림을 두려워한다는 말은 아니오.”
황실 근위수장은 비아냥거림의 어투에 진심을 담아 내는 표정이다.
“아미타불, 점창의 장문이 올시다. 고양이 목의 방울은 나중에 이야기 하기로 하고, 저 곤란에 빠진 제자들부터 해명해 주시구료?”
“고맙습니다, 장문 어른. 네 명의 도승은 저희 선문에서 특별한 비급을 얻거나, 영약을 얻은 것은 아닌 것 같고, 무리한 내공의 욕심에 단전에 뭉친 기를 풀어서 임독맥으로 소주천을 한 모양입니다. 다만, 불법의 본 마음을 찾는다는 본래의 법과 도법의 천지인 즉, 하늘과 땅과 인간의 같은 마음을 찾는 길을 되짚음으로써 소림과 무당의 심법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데 불과합니다. 다시 말하면, 없는 것을 얻은 것이 아니라 원래 있는 것을 찾은 것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럼, 임독맥 타동의 생사현관을 뚫었단 말씀이요?”
“그것을 생사현관이라고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성상만은 맞습니다.”
“그럼, 무당의 청검이 시전한 무공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요?”
“청검은 사람을 상대로 선문의 연화검을 진정 펼쳤는가?”
“아닙니다. 선령, 수적들의 수채 정벌에 가담하고 보니, 무인이 아니라 도인으로써 그 많은 살륙을 본다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서, 한 발 앞서 수채를 방문하여 연화검을 보여 주며, 수적들과 가솔들을 미리 대피시키고, 관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 수채에 남아 있던 가축들을 연화검으로 처리하여 현장을 만들었습니다.”
“청검 사제, 그 많은 부적을 태우고 제를 지낸 것은 무슨 뜻인가?”
“예, 장문사형, 비록 미물이지만, 사람의 목숨을 대신한 죄없는 가축들의 천도를 빌어 주고 싶었습니다.”
“아미타불, 선재로고, 선재로다.”
“그 연화검이라는 것은 무공이 아니오?”
“중원에서는 사람이 사람과 대적하고 다투는 것을 무공이라고 하면, 그것은 무공이 아닙니다.”
“그런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구려.”
“오늘 본 선령의 제자가 비무대에서 펼친 검이 연화검이요, 무당의 태극검혜와 맥을 같이하며, 소림 오권과 같은 맥이며, 개방의 타구봉법과도 같은 무리일 것이요. 다만, 다름이 있다면, 전래의 무공을 복원하고자 심신수련을 목적으로 창안되었다는 것이 유일한 차이일 것입니다.”
“아미타불, 제자들은 자리로 들어 가거라.”
“아직 풀지 못한 문제들이 있소이다.”
장문들은 또 다시 소란에 빠진다.
옆에 앉은 사람들과의 언쟁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무언가를 다짐하는 소리로 실내가 소란하고, 자파의 장로들과 숙의하는 모습들이 봄날 무논에 모여 있는 개구리떼 같다.
“자, 자, 이제 해동에서 귀환한 특사들의 오해는 풀렸고, 소림외 두 개 방파와 악비 장군의 유지를 따로 전하면, 또 다른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이 자리에서 말씀드려도 되겠소이까?”
“아미타불, 좋소이다.”
“무량수불, 그렇게 하겠소이다.”
“중원무림의 후예들은 들어라.”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감성에게 쏠린다.
“예, 선사님의 유지를 받들겠습니다.”
“무림의 근간은 법이며 도며 예이니, 그것을 잊지 말고, 모든 법과 도와 예는 대중에서 나오니, 그것을 앞세워 대중 앞에 서지 말 것이며, 어느 법이나 도의 시조보다 대중 앞에서 높은 자리를 탐하지 말 것이니라.”
“예, 명 받듭니다.”
무인 집단의 수장들은 일제히 부복을 하고 복명을 한다.
“선령, 근위수장이외다. 악비 선사의 유지를 듣고 싶소이다.”
“백성은 뿌리요, 나라는 줄기요, 황실은 꽃이라 했소이다.”
“그 말밖에 없소이까?”
“선문은 뿌리요, 물이요, 땅입니다. 권력에 관한 일이라 딱히는 잘 모르지만, 지는 꽃을 위하여, 줄기를 꺽는 우를 범하지 말고, 바람에 꺽이는 줄기를 지키기 위해 뿌리를 방패막이로 삼지 말라는 뜻이라는 생각이 들군요. 어차피 선문도 뿌리라 팔이 안으로 굽는 소생의 좁은 소견입니다.”
“황실에서 청하면, 방문해 주시겠소?”
“황실에서 보기에 무림이 무벌이 아니라, 백성으로 보이는 날이 오면 흔쾌히 방문하리다.”
“하하하하, 선령은 내가 이번 중원무림대회에서 듣고 싶은 말을 대신해 주시는 구려.”
구파일방과 세가들의 장문이나 문주들이 자파의 세력 확장과 명분에 대한 호기로 참석한 무림대회의 첫날에 벌어진 소동에 대하여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근위수장과 감성은 그들만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선령, 무당장문이외다. 본산을 방문하여 깨우침을 줄 수 있겠소이까?”
“도에 대한 이치는 무당이 저보다 더 잘 알 것이며, 무공에 대한 기술 또한 수많은 비급이 있을 것이외다. 무공의 성취에 대한 지나친 갈증으로 인한 탐욕으로 스스로 기로를 막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 보시구려, 후일 비단 무당뿐만 아니라, 힘 닥는 대로 구파일방을 방문하리다.”
“화산 장문입니다. 화산의 제자가 일전에 무례를 저질렀다고 들었습니다. 장문으로써 사죄를 드리는 의미로, 화산에도 방문을 청합니다.”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아도 청하신다면 매실차 한잔 얻어 먹으려 가지요.”
“하하하하, 참 시원해서 좋구려. 고맙습니다.”
화산, 오봉의 영수다운 처세술에 나머지 문파들의 표정이 굳어 진다.
“개방의 굼뱅이가 태사조 형님께 청을 한가지 해도 될 지 모르겠소이다.”
개방의 신선보 황장로가 개방방주 탁자 앞에 나와 앉으며, 고함을 지른다.
중인들은 경공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설치는 신선보며, 중원제일각이라는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개방장로가 스스로 굼뱅이라고 태연하게 말하며 나서는 것을 보며 또다시 소란이 일고 있다.
개방 방주는 미리 상황을 알고 있는 듯이 빙긋이 미소를 짓고, 혜지와 흑검은 오후에 감성 일행을 미행하다가 풀숲에서 본 광경을 떠올리며 입을 가리고 웃고 있다.
분위기는 풀려서 서서히 무림인의 연화장 같은 호기로운 열기가 퍼져가고 있는데, 감성과 소룡은 담담한 표정으로 전음을 주고 받는다.
[룡아, 아무래도 짚고 넘어 가야 하겠지?]
[형님, 저는 이미 마음에서 지웠습니다.]
[이 형이 못나서 그런지 그냥은 못 가겠구나.]
[형님, 못난 룡이 때문에 누를 끼치게 되는 것을 아닌지요?]
[아니다, 네 아버지는 선문의 사람이고, 너는 내 동생이다.]
[형님은 저더러 참으라고 해 놓고서는?]
[그래서, 내가 너보다 못났다고 하지 않는냐.]
두 사람은 마주 보며 미소를 짓는다.
“우리 신선보 늙은 동생께서 하문하실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소룡이 나서며 대답을 하자 중인들이 다시 웅성댄다.
“아, 아, 놀랄 것 없소이다. 이 비렁뱅이가 작은 재주 가지고 소태사조한테 덤볐다가 칠십나이 중에 한 갑자를 잃고, 밀반입한 술도 일곱 통이나 잃었소이다. 나이를 잃은 거야 대수롭지 않는데, 술은 영 아까워서 덤으로 청을 하나 드릴까 하오.”
“늙은 동생 청이라면야, 하시지요, 아우님!”
“옆에 계신 분이 우리 개방하고 가까운 연화걸승이 아니신지요?”
“저는 장학이라는 사람입니다. 언제 저한테 별호가 생겼는지 모르겠군요.”
“별호는 남이 먼저 부르는 것이지요.”
“저는 절에서 자라서 승려 복장을 하고 다니게 되어 오해를 하신 모양입니다. 무공은 여기 사부님께서 사사를 하셨고, 소림에 들러서 저의 무공의 뿌리를 찾아 속가로 입문하기 위하여 중원길에 올랐습니다. 소림에 입문하고자 하는 목적은 요동에 있는, 천영사에 불가의 사부님이 계신데, 불경을 구해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천영, 천영사라, 천영사라 했소이까?”
개방 방주와 소림 방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소리를 지른다.
천영사란 말 한마디에 분위기는 엉뚱한 데로 귀결되고 있다.
“천영사를 아십니까?”
“개방 늙은이가 말씀드리지요. 송대 말, 원나라에 맞서 싸우던 무림인들의 비밀숙영지 이름을 천영으로 하고, 동도들의 피난처나 은거지로 삼기로 했지요. 허나, 백년이 넘는 세월동안 하나 둘씩 없어지고 모두들 까맣게 잊어버렸지요.”
“그들의 연락방법은 무엇이었습니까?”
“예나 지금이나 무림의 정보는 개방에서 맡고 있었지요.”
감성이 오죽성검을 가리키며 묻는다.
“이것이 무엇과 닮았습니까?”
개방방주가 옆구리에 차고 있던 대막대기를 꺼내서 들어 보이며 번갈아 보고 탄식을 한다.
“이 타구봉과 흡사하군요. 마디에 있는 구멍만 뚫혀지지 않았다면 타구봉으로 오해할만 합니다.”
“저가 일년전에 천영사에 갔을 때까지 천영사에서는 원에 대한 저항군을 조련하고 있었으며, 무림맹의 통지를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선대의 수장은 아마 소림에서 나온 다섯명의 무승인 것 같았고, 순진한 양민들은 법호도 모르는 소림승들의 유지를 받아 백오십년을 열 두가지 동물의 흉내를 낸 무공을 수련하고 있었습니다.”
“어미타불, 당시 소림은 중원 각지에 분원이 난립해 있어서, 어디서 누가 참전을 했는지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아마 동물의 흉내를 낸 무공이라면 소림의 오호권이 잘못 전수되었나 보군요.”
“저가 주민들의 염원에 따라 천영사를 해산 시켰습니다. 중원무림맹이 아직도 실존한다면 널리 양해를 구합니다.”
“무림맹이 해산된 지도 백년이 넘었고, 정보를 맡은 개방이 했어야 될 일을 대신해 주셔서 오히려 감사드립니다.”
“아미타불, 업보로고, 업보로다.”
“업보라고 했소이까? 선각자나, 식자라는 탈을 써고 중생의 삶을 자신의 얄팍한 아집으로 백여년을 구속하고 침해한 것을 업보라고 말합니까?”
“그 당시는 그것이 대의였으며, 중생을 깨우치는 계도행이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랬다면 그럴 수 있겠지요만, 혹여, 명예를 위한 영웅심에서 였다면, 악비 선사의 유지를 생각해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그리고, 물러간 원나라는 대륙의 제국들에게 많은 교훈을 남겼지요.”
“교훈이라니, 그 무식한 오랑케가 무슨 교훈을 남겼단 말이요?”
“원태조는 나라의 뿌리가 되는 수많은 백성들을 끌고 다니며 세상을 정복하는 호기를 부렸지만, 기력을 다한 뿌리로 인하여, 앞으로 수천년의 세월 동안 그 대가를 치를 것 같소이다. 해서 하는 말이요. 무림이 뿌리를 가꾸고자 하는 것은 다른 의미의 권력이자 욕심임으로, 스스로 실한 뿌리가 됨이 어떻느냐고 하는 말이외다.”
“우리 더러 뿌리가 되라는 말이요?”
“그것이 귀사 선사님의 유지인 것 같소이다만, 소생으로서는 그렇게 해석을 했습니다.”
“이거야 원, 배고파서 남의 집 대문 앞에 서면 알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어렵게들 말하고 있네. 내 말은 누가 잡아 먹었남?”
“그럼, 신선보 장로께서 청하실 일이란 무엇인지요?”
“낮에 우리 개방제자들의 수고를 들어 주신 장사조님의 연화검을 다시 견식할 수 있는지, 염치불구하고 청을 드립니다.”
“학이가 수고를 할 수 있겠느냐?”
“예, 사부님.”
장학이 대청 가운데로 나서자, 각 방주들은 탁자를 들고, 의자를 뒤로 빼서 벽으로 모두 물러난다.
“학아, 요동 장원에서 사부가 하던 방법대로 해보거라.”
“예, 사부님”
장학이 발검을 하고 검에 기를 담자 검신에 하얀 빛무리가 어리고, 천중의 자세를 취하자 마치 만개한 싸릿꽃 가지를 들고 있는 것 같았다.
거의 일각에 걸쳐서, 소룡이 손가락으로 퉁소를 틩기는 소리에 맞추어, 삼백육십가지의 동작을 연결한 춤을 천천히 추기 시작하자, 중인들의 침 삼키는 소리만 실내를 채운다.
한 번의 시연이 끝나고, 퉁소의 타격음이 연속으로 세번 울리자 장학의 신형이 바닥에서 반자 가량 떠오르면서, 빛무리 속에 신형을 감추고 실내에 거대한 연꽃 한송이를 피워 낸다.
“허공답보다”
“연화검이다”
여기 저기서 감탄사와 부러움이 가득찬 소리가 들리고, 장학의 신형이 사라지며, 감성의 뒤에서 나타난다.
“헉, 귀신 같은 신법이다.”
누군가의 소리에 놀라 모두들 대청 가운데 몰려 있던 시선을 감성쪽으로 돌리고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서있는 장학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무량수불, 마당에 경계무사들의 처지가 이해됩니다.”
“아미타불, 소림의 오호권은 동물의 자세에 충실한 반면, 시주의 연화검은 오히려 사람의 자연스러운 자세에 근본을 두고 있으며, 형과 형 사이의 움직임 모두가 버릴 것 없는 하나의 초식으로 이루어져 있군요. 그 무공은 소림의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소림의 무공은 내공을 바탕으로한 외공의 발현이나, 시주의 연화검은 운기를 바탕으로한 기공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무당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태극권과 태극검혜의 복합된 또다른 경지를 보는 것 같습니다. 태극의 내공이 아닌 기공에 바탕을 둔 점은 매우 유사하나 형식에 억메이지 않음은 전설로만 내려오는 태극비전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점창 장문입니다. 선령께 한 가지 여쭈어 보아도 되겠습니까?”
“예, 하문하십시오.”
“무릇 무공이라함은 공격과 방어가 있있는데, 검무를 진정한 무공이라고 하기에는 실전 감각이 좀 떨어지고, 선문에서는 비무를 하지 않습니까?”
“선문의 무공은 사람을 상대로 창안된 것이 아니라 나무를 깍고, 농사를 짓고, 쇠를 다루고 하는 세상 사람들의 일상을 능률적으로 하기 위한 것으로 시작되었고, 비무는 하지만, 무술을 위한 비무가 아니고 마음 수련을 위한 비무를 합니다.”
감성이 대답을 하고 있는 와중에 마루바닥을 엉금엉금 기어다니면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신선보에게 시선이 쏠린다.
“황장로, 무얼 찾고 있는겐가?”
“햐, 한 치 간격으로 똑같이 그어져 있군.”
사람들이 일제히 마루바닥을 보자, 마루에는 미세한 그물 모양의 선들이 탁자 아래로 내민 발치까지 그어져 있었고, 어떤 이들은 섬뜩한 생각에 검으로 그은 선을 보자 발을 얼른 움추리는 사람도 있었다.
넓은 마루가 마치 바둑판 같은 모습에 모두들 경악을 금치 못하고 등에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장학의 무공을 보고, 평하던 소림과 무당의 장문도, 기죽기 싫어서 한 마디 거들던 점창 장문도 얼굴색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개방 황장로님의 청을 들어 주었으니, 이 감성이 장로님께 청을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예, 태사조님!”
“개방에서는 아직도 이 용소도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무슨 말씀이신지요?”
황장로의 생뚱한 표정과 달리 몇 몇 장문들의 얼굴에는 당황한 빛이 스쳐 간다.
“그럼, 개방장로님께서는 이 용소도에 대하여 아는 대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렇습지요.”
“잠깐, 공동 장문이외다. 아무리 선령이라 할 지라도 중원무림의 일에 그렇게 간습을 해도 됩니까?”
“아미타불, 업보로다.”
“누군가가 탐욕과 오해를 대의라는 명분으로 감추고 백여 명의 죄없는 사람들을 살인멸구하고도 간습이라고 합니까?”
“무슨 증험이라도 있습니까?”
“생존자가 한을 품고 십이년을 살아 왔고, 태중 유손은 하늘이 도와 엄연히 생존해 있소이다.”
“어찌 그런 일이 …”
“황장로께서는 계속 말씀해 보시지요.”
“예, 송나라가 망하고, 원이 들어서자 갈 곳을 잃은 중원의 무인들은 뿔뿔이 흩어져 은거에 들어 갔습니다. 그 중 절정고수 몇 명이 용소도에 들어 와서 수채를 틀었지요. 원래 용소도는 나무가 울창하여 사람이 들어 와서 살 곳이 못되었답니다. 원나라 시절에는 이 수적들이 원의 관선을 주로 노략질을 해서 관에서 여러 차래 정벌을 했으나, 수적들의 무위에 눌려 번번이 실패를 하고 말았지요. 세월이 흐르자 수적들도 서서히 변질되어 민간의 표물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서호의 물길에 큰 장애로 나타나기 시작했지요. 원이 물러가자 혼란기가 계속되고 수적의 횡포도 계속되었답니다. 또, 뭍에서는 은거했던 무인들이 세상에 나와 일부는 구파일방의 기틀을 갖추고, 일부는 이합집산으로 정도맹이니, 협의맹이니 하는 사설단체를 조직하여 강호를 종횡하는 혼란이 계속되었지요. 그 때, 천산에서 왔다는 약관의 고수가 나타나 온 중원이 술렁거린 적이 있었습니다. 고대의 상승무공을 구사했으며, 수많은 무림고수들을 격파하고 어느날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지요. 그 때, 저도 이미 개방의 정보를 담당하고 있던 터라 그 고수의 행방을 추적하여 개방과 연을 맺고자 백방을 수소문했으나, 찾지 못했는데, 이 용소도에 절대무인이 나타나서 수적들을 정리하고 은거 했다는 소문이 세상에 떠돌아 다녔습지요.”
“그 천산고수가 용소도에 들어 왔단 말씀입니까?”
“확실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 때부터 중원에는 한가지 괴이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용소도에 있던 수적들이 모두 건재하며, 용소도의 나무를 벌채하여 땟목으로 만들어서 서호 인근에 내다 판다는 것과 수십년간 노략질한 보물을 숨겨 놓은 보물이 용소도에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요?”
“중원의 도적들과 내노라하는 무인들이 용소도에 건너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 오면서 하는 말이 용소도에는 보물이 없으며, 수적들은 농사를 짓기 위하여 나무를 벌채하고 있었고, 용소도를 샅샅이 뒤져도 아무도 간습하지 않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사단이 일어 났답니까?”
“세월이 십년 정도 흐르고, 보물 소동이 잠잠해지기 시작할 무렵 중원에는 갑자기 잠적했던 협의맹이라는 방파를 초월한 무인 단체가 재결성되고, 악의 뿌리를 뽑는다는 기치 아래 오십여명의 협의맹 무인들이 용소도를 정벌하였고, 수적들을 모두 제거하고 그 와중에 사십여명은 수적들과 교전 중에 사망하고 열명 가까이만 돌아 왔으며, 용소도의 보물 이야기는 극히 일부의 사람들에게 전해 오는 전설이 되었지요.”
“그 때, 살아 돌아온 사람들을 알 수 있습니까?”
“본 걸개도 그 진상을 파악하기 위하여 겨우 한 사람을 찾았는데, 서로 복면을 하여 확실한 신분을 알지 못한다고 했으며, 며칠 후 다시 찾았을 때는 자신의 신분을 알리지 말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을 하고 말았지요.”
“그 외의 증거나 심증은 없었습니까?”
“본 걸개가 사건이 나고 두어달쯤 뒤에 용소도에 들어 와서 조사를 해 보았는데, 빈 집들만 있고, 집집마다 혈흔의 흔적은 있으나 시신은 한 구도 찾지 못했습니다. 괴이한 것은 대다수의 가옥에는 가정을 꾸리고 산 흔적들이 있어서 수적의 수채로 보기는 미심쩍었다는 것이고, 사당 같은 건물 뒤에 백여기의 만든지 얼마 안되는 무덤이 비석이나 표말도 없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사를 포기했습니까?”
“그 후로 서호 인근을 떠나지 못하고 맴돌다가 십여년의 세월을 보냈으며, 최근에 와서야 누군가가 용소도의 생존자를 수소문한다는 말을 듣고 조사를 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생존자가 있다면요?”
“생존자를 만나 보았습니까?”
“만났지요. 생존자가 여러분들과 같은 생각이었으면, 여러분들은 아마 지금쯤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 있을 겁니다.”
“무슨 그런 황당한 겁박이 있소?”
“여기 용소도의 식수나 용수는 이 전각 뒤에서 흐르는 계곡물이 유일한 수원이라 들었소. 여기에 무형지독을 풀었다면, 용소도에 들어온 오천여명의 중원무림은 멸절을 면치 못했을 것이오. 다만, 전대 용도주의 간곡한 유언으로 갈등을 하고 있던 차에 죽은 줄 알았던 소도주를 만나 마음을 풀게 된 것이라 들었소.”
찻잔을 들고 있던 사람들은 찻잔을 슬며시 도로 내려 놓는다.
“아미타불, 업보로다, 죄업이로다.”
“그날 야습을 한 협의맹의 인원은 오십이었고, 반항도 하지 않고, 무기도 없는 수적들의 가솔들을 모두 죽여 살인멸구를 자행했으며, 만삭이 된 도주 부인의 배를 갈라 고문을 했으며, 도주는 자신의 실수로 고혼이 된 섬 주민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스스로 화살받이가 된 것이 실상이며, 그 때, 다행이 들일을 나갔다가 목숨을 건진 이가 유일한 생존자올시다.”
“그럼, 사십명의 협의맹 무인들의 생사는 어떻게 되었답니까?"
“십여 명의 인부로 보이는 사람들과 삼십여 명의 하급 무인들은 고육지계을 써서 지휘층의 십여명의 무인들이 스스로 죄를 덮기 위하여 처단했다고 합니다.”
“무량수불, 어찌 그런 일이…”
“혹여, 이 무림대회가 보물과 관련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부터 잊으시오. 용소도에 보물은 없소이다. 재물이 있었다면, 이 척박한 땅에서 나무를 벌채하고 농사를 짓고 살았겠소? 또, 이미 공개된 사실이니, 생존자를 찾아 귀찮게 하거나, 추후 용소도에 손을 뻗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보물이 없다고, 어찌 그리 장담하시오.”
누군가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뱉는 말이 실내를 울린다.
“적어도 일이천여명의 무인들이 석달 전부터, 아니 그 전에도 수시로 들어 왔겠지만, 이 용소도를 이잡듯이 뒤지고도 그런 말이 나오시오?”
“나 근위수장이요. 그럼 두번째 문제도 해결되었구만?”
방관자 같은 태도를 견지하고 있던 황실 근위수장은 소매를 털며 볼 일이 끝났다는 듯이 일어 선다.
그 때, 감성의 오죽성검에서 검이 저절로 뽑혀서 푸른 귀기를 내뿜어면서 대청마루 가운데로 날아가 춤을 추며 귀성을 울린다.
“키히히히히히히히히”
그리고는 순식간에 검집으로 돌아와 숨을 죽인다.
“어검술이다!”
“선문이 힘이 없어서 덮고 가는 줄 아시오? 힘이 있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는 것이오.”
감성의 말을 시작으로 일각여 동안 싸늘하게 식은 실내 분위기를 깨고, 다시 조용하게 선언을 한다.
“용소도의 전대 도주는 해동 선문의 사람이었으며, 그 후손과 생존자 역시 선문과 관련이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해동 선문은 세상의 일에 관여치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나, 만약 세상이 선문의 일에 관여한다면 세상 끝까지,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찾아 갈 것이외다. 또한, 사당 뒤쪽 무덤에 표석이 있으니, 사죄드리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침탈한 무명 무인들의 이름을 적어 주시고, 무고한 고혼들에게 향이나 피워 주길 바랍니다. 단, 용소도를 무림대회가 끝나는 날까지 조사하고도 보물을 찾지 못한다면 영원히 묻어 두시오!”
모두 쥐죽은 듯이 침묵을 지키고, 승려들의 그 흔한 불호조차도 삼키고 있다.
중원 노물들의 머리속에는 이십오년 전, 봉두난발에 부대자루 같은 옷을 걸치고, 등에는 쇠막대기 같은 검을 메고, 맨 발로 중원을 헤집고 다니던 타둔걸객 용린의 바보 같던 모습이 화인처럼 떠오른다.
첫댓글 기다리던 글이 올라왔네요..즐거운 마음으로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