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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외계인 친구 (2011,)
바다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모두 다 사실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믿어 줄 것 같지 않기에 내가 겪은 일을 글로 남기고자 한다. 저 미래의 누군가가 혹은 SF 에 관심 있는 호기심 많은 종족들이 이 글을 읽고 사람들에게 퍼뜨려 줄 거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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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쩍 엄마와 말 다툼이 많아졌다. 고등학생인 내가 엄마와 말 다툼이 많아질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이유는 단 한가지, 내가 공부를 너무 안 한다는 것이다. 사실, 공부를 안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은 없지만, 그것보다 내 걱정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다른 친구들은 저마다의 꿈을 이야기하고 서울의 대학에 갈 생각들을 하고 있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직 찾지 못했다. 엄마는 엄마대로 고민이 많을 것이다. 내가 살 고 있는 곳은 고급 주택가. 이 동네의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서 내노라하는 모범생들이고 대단한 특기들도 하나씩 하지고 있는데 그에 비하면 나는 보통 아이들보다도 못하니, 엄마로서는 답답할 노릇일 테다. 김여사. 죄송하오. 나 같은 딸도 있는 것 아니겠소? 그대의 인생에 작은 오점이라고 생각해주오. 하하하.
고3이 되어 단 한가지 좋은 것은 부모님께서 마련해 주신 나만의 공간이 생긴 것이다. 그 동안 내 방은 부모님 방 옆 2층에 있었는데 내가 시끄럽다고 우겨서 옥상에 작은 컨테이너 하우스를 만들었다. 말하자면 옥탑방과 같은 곳인데, 그래도 외관상 그 보다는 예쁘고 깔끔하다. 나는 명색이 19세의 여고생이니까!
“ 저 먼저 올라 갈게요.”
그 날도 식사자리의 냉랭한 기운을 감지한 나는 엄마의 화살이 날아오기 전에 얼른 피하자 싶어 재빨리 밥을 먹고 자리를 떴다.
수학 문제집을 폈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뭐라도 공부하자 싶어 세계사를 펴 든다. 아차, 세계사는 모의고사 범위가 아니지. 내가 처음부터 공부에 흥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것저것 관심이 많은 나는 하필이면 국어 영어 수학을 싫어했던 것이다. 미술도 재미있고, 음악도 재미있고, 심지어 일본어 독일어도 재미있는데, 내가 재미있어 하는 과목들은 점점 주요순위에서 밀려나고 결국 대입에 중요한 국,영,수 과목이 강조되면서 학교에서도 대폭 이 과목들에 대한 시간을 늘렸다.
아휴, 이제 와서 이렇게 신세 한탄하면 뭐하나. 뭐라도 공부해서 대학을 가야겠지.
똑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순간 경직되었다. 김여사께서 내가 공부를 잘하고 있는지 감시활동을 펼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닫았던 수학 문제집을 얼른 펴서 공부하는 척 했다. 연습장, 연습장이 어디 갔지?
“소라야, 과일 먹어라.”
“엄마 문 열려있어요.”
철컥 소리와 함께 방에 들어오는 김여사.
나는 고개를 들지 않고 문제 푸는 데 집중하는 척 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큰일이다. 그 틈을 타고 엄마가 공격해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침대에 걸터앉는 우리엄마. 뭔가 이야기 할 것이 있으면 엄마는 침대에 걸터앉는다.
“소라야, 너 우진이 알지?”
“…..”
“우진이가 이번에 수시로 서울대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대, 우리 동네에서만 서울대 수시 합격자가 도대체 몇 명이니? 우진이가 똑똑한 애도 아니었어. 우진이 엄마가 애 과외를 그렇게 시키더니만 엄마 등쌀에 겨우 들어 간 거지. 중학교 때만 해도 소라 네가 훨씬 잘했잖아. 엄마가 축하한다고는 했지만 속상하더라. 그러게 네가 그때 엄마가 하라던 과외만 좀 했어도…”
“엄마, 저 공부하고 있잖아요.”
“소라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너 외국에 유학갈래? 아빠랑 얘기해볼게.”
“엄마, 도대체 그 소리 몇 번이에요? 저 안 간다니까요. 한국이 좋아요.”
“그러면 이대로 어디에 갈지도 모르고 세월만 보낼 참이야? 만약에 네가 대학에 떨어지기라도 엄마는 동네 다니기 부끄러워서.”
“ 엄마, 떨어져도 제가 떨어지는 거지, 엄마가 무슨 상관이에요?”
“넌 우리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 거니? 왜 성적이 그 모양이야? 애가 머리가 나쁜 것 같지는 않은데…그러지 말고 지금이라도 유학준비하자.”
“됐어요 엄마.”
“소라야!”
“엄마, 저 지금 피곤하거든요. 딸이 조금이라도 공부 잘하길 원한다면 나가주세요. 어서.”
이렇게 놔두면 김여사의 하소연이 계속될까 싶어 자리에 일어나 엄마를 문가로 몰아나갔다.
“아니 소라야…엄마를 이렇게.”
“네네, 죄송합니다.”
탁. 아무도 못 들어오게 문을 잠궈 둬야겠어. 엄마가 특별히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딸이 뭘 할지 이렇게 넋 놓고 있는데 저만큼도 걱정 하지 않는 엄마가 어디 있겠냐 말이다. 다 이해하지만, 다 이해하지만 말이다. 나는 뭘 할지도 모르겠는데 남들이 가기 때문에 대학에 가는 것은 정말 원하지 않는다. 엄마가 나의 이런 생각을 안다면 기절초풍 하겠지. 에라이 모르겠다. 걱정한다고 답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고. 엄마가 놔두고 간 참외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아삭아삭, 시원한 과즙이 배어 나온다. 적당히 잘 익었군. 왕 단순한 나는 아까의 침울함이 어느새 달콤한 과일 맛에 스며 들어가 없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한번도 보지 못한 밝은 색의 빛이 옥상 가득 채워지는 것이 보였다. 온 방안이 낮처럼 환해져 왔다. 시계를 보니 분명 저녁인데. 불꽃놀이라도 하는 걸까? 그 빛은 점점 환해져 가더니 시야를 덮어버렸다. 아니 시야가 너무 밝아져 눈을 뜨지 못한다고 하는 게 맞겠다. 걱정이 밀려왔다. 이대로 눈이 멀어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아이고 하나님, 제가 밤에 만화책을 너무 많이 보아서 이렇게 벌을 주시려 하는 군요. 이제부터 만화책도 안보고 부모님 말씀하시는 대로 열심히 공부할 테니 이 백색공포로부터 저를 탈출시켜 주세요.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단지 눈이 너무 부셔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머리로 생각한다. 옥상에 큰 조명장치가 있었던가? 그새 엄마가 구입해 장착하신 걸까? 그 빛의 존재는 뭐지? 왜 이리 눈이 부신 거지? 빛이 환하게 퍼지던 수초간의 시간 동안 별의 별 생각이 섬광과 같은 속도로 지나간다. 어렸을 적에 잘못했던 일, 친구들과 즐거웠던 일, 나의 첫사랑인 선생님 등. 아! 나는 20세를 못 넘기고 장님이 되는 걸까?
“아아악!”
누군가의 비명소리에 정신이 든 나는 눈을 떠 밖을 바라보았다. 아까의 그 환한 빛은 금새 잦아들었고 그 자리에는 왠 소년이 서 있었다. 뭐야? 도둑 인 거야? 가만있어보자. 소리를 질러? 그럼 도망가겠지? 내 방에 야구 방망이가 있었던가? 아무리 조그만 녀석이지만 어쨌든 이 시간에 여자 혼자 살고 있는 곳에 들어온 이 녀석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 도둑이든 꼬마이든 이 누나가 본때를 보여주마. 무기가 될 만한 것을 두리번 거리고 찾고 있는데 그 소년이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는 이쪽으로 다가온다.
아, 안돼. 나에게 뭘 하려는 거지? 방안에서 나의 동작은 점점 과격해지고, 겨우 무기가 될 만한 것을 발견했다. 바로 베개. 소년이 다가왔다.
“안녕.”
“……”
놀라움으로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한 나는 점점 벽으로 바짝 다가갔다. 그러자 그 소년은 한 걸음 더 내 곁으로 다가온다.
“안돼, 안돼 저리가.”
“안녕.” 아까와 같은 대사로 소년이 다가온다. 나를 빤히 보던 소년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혼잣말을 한다. 어 아닌가? 분명히 이렇게 하라고 가르쳐줬는데.
“엄, 엄마~! 엄마 엄마 엄마~!!!”
놀란 나는 베개를 들고 정신 없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 왠 이상한 아이가 우리 집에 왔어, 엄마, 엄마 엄마!”
“ 아유 시끄러워. 무슨 일이야?”
“엄마, 내 방에, 내 방에 지금 이상한 아이가…!”
“뭐라고?”
그때 아빠가 시끄럽다는 듯이 서재에서 헛기침을 하셨다.
“ 엄마, 내 방에 지금 이상한 아이가 와 있어요, 혹시 엄마 나한테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는 거 아니에요? 늦둥이라든가 숨겨둔 자식이 있다든가.”
“소라야, 지금 무슨 소리 하는거야? 이상한 아이라니!”
“지금 빨리, 내 방에, 어떤 아이가.” 놀라움으로 말을 떠듬떠듬 하자 엄마는 뭔가 짚힌다는 얼굴로
아빠의 서재로 들어간다.
“ 여보!”
“ 아까 연구한다고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잖아요!”
엄마는 못 참겠다는 듯, 방안에 들어가 아빠에게 소리쳤다.
“ 말해보세요! 맨날 그 놈의 연구 한다고 방안에 쳐 박혀 있더니 무슨 일인가 했네. 지금 소라방에 아이가 있다잖아요. 나는 당신만 믿고 살았는데 이게 무슨…”
아빠의 머리 위에는 물음표가 한 100개쯤은 떠다니는 얼굴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아이라니?”
“당신 혹시 숨겨둔 자식이라도 있는 거에요?”
“엥?”
“엄마, 아빠 지금 그럴 시간이 없어. 내 방에 그 놈이 도망갈지도 몰라. 빨리 잡아야 해.”
소란을 뒤로 하고 내가 먼저 방으로 올라갔다. 이번에는 시간이 좀 흘러서 그런지 용기가 조금 생겼다. 그래 까짓거 도둑이면 어때 어차피 조그만 녀석인걸. 엄마 아빠를 뒤로 하고 먼저 옥상으로 올라갔다. 심호흡을 하고 방문을 확 열었다. 아까의 소란과는 달리 정적이 감도는 내 방. 평소와 다름없이 모든 것이 그대로 있었다. 그 녀석은?
“뭐야, 얘 아무것도 없잖아. 무슨 애가 있다고 그러니?”
아빠가 나를 내려다 보며 말했다.
“이상하다. 아까 분명히 있었는데…”
“다른데 있을 지도 몰라 샅샅이 뒤져봐라 소라야.” 의심을 풀지 못한 엄마는 내 방 이곳 저곳을 뒤적였다. 옷장에도 없고, 침대 밑에도 없고, 책상 밑에도, 옥상에는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분명히 꼬마를 봤는데. 여기서 뛰어 내렸다면 몽이(우리 집 개이름)가 가만히 두지 않았을 텐데.
“으이구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헛것만 보고 말이야.”
엄마가 이제는 나를 향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아니야, 진짜 여기에…”
“여보, 이제 의심이 풀렸소?”
아빠는 억울함이 풀려서 다행이라는 듯 보였다.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엄마 아빠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엄마는 내 행동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계속 뭐라고 하셨고, 아빠가 고3 병일 거라고 겨우 말려주셨다. 공부는 하나도 안 하면서 고3병 걸린 애로 낙인 찍혀버렸다. 그것도 약간 정신이 이상해져 버린. 나는 두눈으로 똑바로 봤다. 귀에 아직 남아 있는 그 소년의 음성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베개. 베개가 저렇게 내팽겨쳐져 있는 것으로 보아서 분명이 그 소년과 한바탕 한 것이 틀림없다. 이번에는 나 혼자 해결하리라.
옥상으로 통하는 문으로 나갔다. 아까와는 달리 이상하게 마음이 침착해져 왔다.
“어이~ 아까 꼬마, 거기 있는 거 다 아니까 어서 나오지 그래?”
그러자 기계음 같은 위잉 소리가 들려오며 아까 그 소년이 둥그런 기계와 함께 물탱크 뒤에서 나왔다. 역시, 내가 헛것을 본 게 아니야.
“너, 그 의상은 뭐야? 최신 유행하는 코스튬이냐?”
소년은 나의 말에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빤히 쳐다보았다.
“그게 뭐야?”
“내가 너무 어려운 말을 했나? 뭐야 그 의상은? 요즘 소년들 사이에 인기 있는 의상이냐?”
그러자 소년과 나는 동시에 그의 몸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그 의상은, 은빛 반짝이는 몸에 찰싹 달라붙는 우주복 차림이었다. 어렸을 적 많이 보았던 ‘지구를 구하라’ 류의 만화영화에서 많이 보았던.
“ 안녕, 나 미루라고 해. 얘는 내 우주선 친구 SJW 이라고 해.”
“ 허허, 나는 오로라 공주라고 해. 은하철도 999는 우주 위를 나르고 있지.”
그의 어의없는 말에 나는 이렇게 받아 쳐 주었다. 그러자 소년은 활짝 웃으며,
“뭐, 너도 우주에서 왔단 말이야? 이야 이거 오랜만에 같은 곳에서 온 사람 만나네…정말 드문 일인데.”
“ 어엉?”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얘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소년은 정말 기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혼자서 우주여행 하려니 너무 고단하고 외롭고…게다가 SJW도 피곤해하지,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너라면 나를 도와 줄 수 있겠지? 네 이름은 뭐야? 너는 어느 별에서 왔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를 상황이다. 분명 이 소년은 정신병자이거나 도둑일 텐데 그런 것 치고는 등장 자체도 너무 특이하고, 정신병자로 몰기에는 이 소년은 너무 어렸다. 게다가 말하는 표정이며, 같이 온 우주선인가 하는 것도 너무 진짜 같아 보여 머릿속이 뒤죽박죽 하다. 약간 얼떨떨해 있는데 소년은 다짜고짜 내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말릴 새도 없이 옷장을 열어보고는
“이야, 신기해 지구인들은 이렇게 사는 구나. 불편하지 않을까? 너는 지구에서 산지 오래됐니? 지구인들이 입고 있는 옷을 입고 있네?” 그러면서 내 옷을 주욱 당겨본다. 그러더니 따라 들어온 우주선에게도 뭐라고 쑥덕쑥덕 하는데 언어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들을 수 없었다.
‘ 나, 역시 판타지 만화를 너무 많이 본 게 틀림없어.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걸 꺼야.’
소년은 천진스런 얼굴로 내 방을 바라보더니 하아암~ 소리를 내면서 침대에 벌렁 눕는다.
“너무 오래 여행했더니, 피곤해 나 좀 잘께.”
“야야, 거기서 그렇게 자면 어떡해? 집에 가서 자야지 집에 가서!”
내가 외치자, 그 소년은 감은 눈을 다시 뜨고는 얘기했다.
“부탁해.”
그대로 소년은 잠에 빠져들었다. 대책 없는 이 아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이지 찬찬히 살펴보니 보통 아이들과는 조금 다르게 생겼다. 투명해서 핏줄까지 보이는 피부하며, 머리색도 투명한 듯 검은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말투가 무엇보다 이상했다. 한국말을 하고는 있지만 뭐랄까 말하면서 불편해하고 있었고, 단어를 내뱉을 때도 바로 답변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내가 질문을 하면, 고개를 한번 끄덕 하더니 단어를 내뱉는 식으로. 나도 참, 공상적인 면이 있어서, 이런 상황을 즐기는 것 같다. 그래, 설령 이 아이가 우주에서 왔다고 하더라도 나를 해치겠어? 근데 이 아이 부모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오늘 신고를 하지 않고 그냥 내 방에서 하루 재워주고 내일 아침에 보내주기로 결심했다. 집 나온 소년이겠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그가 눈을 떴다.
“배고파.”
“뭐?”
“배.가.고.파.”
아래층의 부모님께서는 모두 주무시고 계셨다. 나는 살금살금 부엌으로 가 아까 먹다 남은 음식을 주섬주섬 챙겼다. 아 맞다, 아이들은 밥 먹는 거 싫어하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군것질 거리를 들고 위층으로 향했다. 내가 음식을 펼쳐놓자 소년은 신기하다는 듯 음식을 바라보았다.
“얘, 배고프다면서 그렇게 쳐다보기만 하면 어쩌니? 얼른 먹어.”
“지구인들은 이렇게 먹나 보지? 난 이렇게 먹으면 터져버릴 지도 몰라. 난 이런 음식 안 먹어.”
“얘, 너 배가 불렀구나, 그런 소리를 하게? 요즘 애들은 하여튼 버릇이 없다니까.”
그러자 소년은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고는
“ 나 정말 이런 음식 안 먹는데, 이봐 SJW 밖으로 나가자.” 라고 하면서 자신이 데리고 온 우주선 – 아마도 장난감이 분명한 – 과 옥상으로 나갔다.
“잠깐 조용해 줘.” 라고 부탁하더니 소년은 깊게 숨을 들이 쉬었다. 그러자 믿지 못할 광경이 또 벌어지는 게 아닌가! 하늘에서 빛줄기가 꼬마의 머리 위에 내려오더니, 꼬마가 숨을 들이 쉴 때마다 빛이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아니, 이건 현실이 아니야. 꿈이라고. 이런 SF 같은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19년 인생 중 오늘 저녁 몇 시간 동안 겪은 일이 가장 놀라운 일이라고 할 만큼 나는 당황하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아까의 창백한 낯빛의 꼬마는 점점 화색이 돌더니 그 사이 키도 조금 자라 나 만큼 커진 것 같다. 그리고 얼굴도 점점 어른스러워 지더니 내 또래 남자아이의 얼굴이 되는 것이 아닌가.
“너, 너는 누구 십니까?” 나는 그만 존댓말이 나왔다.
“아까 말했잖아. 미루라고.”
“ 너 정말 우주에서 온 것이 맞는 거야? 아니면 나 정말 이상한 꿈을 꾸고 있거나. 이게 꿈이라면
정말 현실 같다.”
“꿈 아니야, 내 이름은 미루이고 우주를 여행 중이야.”
“이곳엔 왜 온 거지?”
“ 연료가 바닥났어. 이곳에 오기 전에 착륙했던 행성에서 연료를 보급 받지 못했거든. 너무 급하게 오느라.”
침착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미루를 보자 너무나 현실 같은 이 상황에 나도 평정을 되찾고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게 되었다.
“연료가 바닥났으면 다시 돌아 갈 수 있니?”
“깨끗한 물과 간단한 공구가 있으면 되는데 지금은 너무 피곤해서…그래 너는 어느 우주에서 왔다고? 네 이름은 오로라?”
“하하, 아까는 농담이었고, 나는 여기 살아. 내 이름은 소라.”
“소라…예쁜 이름이네. 우리와는 다른 말을 쓰지만 그래도 네 이름을 부르면 아름다운 느낌이 전달 돼. 좋은 이름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미루는 나와 점점 대화를 하면서 아까보다는 어휘도 많이 늘어 있었고 말도 점점 자연스러웠다.
“소라, 이 SJW를 고치려면 물이 아주 많이 필요한데, 물 좀 구해줄 수 있을까? 이곳에 오기 전의 행성에서는 물이 고갈되어서 구할 수 없었어. 아주 끔찍한 곳이었지.”
“물? 물이라면 저기 물탱크에…” 하며 나는 옥상의 노란 물탱크를 가리켰다.
“아, 지구는 아직 물이 남아 있구나. 반가운 일이군.”
미루가 타고 온 SJW은 작은 우주선이었다. 한 사람이 타면 꼭 맞는 사이즈의 작은 우주선.
어떻게 저걸로 우주를 여행할 수 있었을까?
“지구인들의 눈으로 보면 작은 우주선이지만 우리에겐 이게 편해.”
하고 내 생각을 읽은 듯 미루가 얘기했다. 내가 깜짝 놀라자 미루가 겸연쩍은 듯이 말했다.
“미안해, 이곳에서는 이렇게 대화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 배웠어.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으로 대화하거든.”
“생각이라고?”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미루는 물탱크에서 SJW로 물을 주입하는 일을 계속 하면서 얘기를 계속했다.
“음, 이를테면 텔레파시 같은 거라고 할까? 소리를 내어 대화하는 게 사실은 거추장스러운 거거든, 그래서 우리는 생각으로 대화해.”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나쁜 생각은 절대 못하겠군.”
“나쁜 생각?”
“거 있잖아, 옆에 있는 애가 수업시간에 계속 볼펜 소리를 딱딱 내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흉을 본다거나 하면 싫을 수밖에 없잖아. 나는 심지어 우리 담임이 없어졌다는 생각을 매일 하는 걸?”
“ 과연, 지구인들은 참 무섭구나. 그런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우리들의 생각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 그러니 나쁜 생각을 할 필요도 없지.”
미루라는 이 녀석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점점 그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지기 시작했다. 설사 거짓일지라도 나는 지금 할 일이 없고, 이 녀석이 나를 해칠 확률도 없어 보여 생각나는 대로 이것저것 질문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럼 너희들은 어떻게 사는데?”
“어떻게 사냐고? 무엇부터 얘기하면 좋을까? 아니 그전에 지구인들은 원래 그렇게 말이 많니? 고치는데 집중할 수 없어.”
“너 대한민국 여고생들이 얼마나 말이 많은지 모르는구나. 너도 불쌍하다 하필이면 내가 사는 곳에 떨어지다니.” 뾰루퉁해진 나는 입을 다물고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별이 반짝이고 있었고, 동네 개들도 짖지 않는 조용한 여름밤이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아직도 구별은 안 되지만. 이윽고 침묵을 깨고 미루가 심각하게 운을 떼었다.
“정말 끔찍했어. 아직도 그 광경이 잊히지 않아.”
“뭐가?”
“이 곳에 오기 전에 착륙했던 행성 말이야.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어. 아무것도. 그런 행성은
처음 봐.”
“사람이 사는 행성은 없어, 사람이 살지 않으니 아무것도 없는 게 당연하지.”
“그건 지구인들의 생각이고 사실 그렇지 않아, 다른 태양계에도 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어.”
“그런 얘긴 한 번도 듣지 못했어, 그걸 어떻게 증명하니?”
“지금 나를 보고 있고도 모르겠니?”
“……”
“ 그곳은 깜깜했어. 온통 깜깜하고 사람들의 흔적이란 없었어. 숨을 쉴 수가 없었어.
대기는 오염되어서 짙은 회색 빛 이었고, 거리마다 죽은 사람들이 넘쳐흘렀어. 나의 존재 따위는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듯했어. 삶이, 하루하루 삶이 지옥 같았거든. 저마다 물을 달라고 외치고, 물은 많았지만 마실만한 물은 없었어. 모두 오염되어 있었거든. 과거에 그 행성은 아름다운 보라색별이라 우리별에서도 자주 여행을 가곤 했던 것인데 어느새 그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어.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 말을 하면서 미루의 표정은 내내 어두웠다.
“뭔가 해주고 싶었지만 나로서는 역부족이었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그 별이 그렇게 변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거든. 서둘러 나오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었어.”
“ 그 별은 어디에 있데?”
“ 그 별은…바로 지구와 화성 사이에 있어.”
“그건 말도 안돼. 내가 아무리 공부를 못해도 그 정도는 안다고. 지구와 화성 사이에는 금성이라는 별이 있어. 금성에서는 뻑뻑한 이산화탄소밖에는 없어. 사람이 살 수 없지.”
나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고 미루는 말을 이었다. “현재 지구인들의 과학기술로는 볼 수 없을 거야 사실은 그 사이에 작은 별이 하나 존재해. 아마 구 화성인들이 만들어 놓은 위성일 거야. 때에 따라 투명하게 바꾸는 기술도 그네들은 가지고 있으니까 지구인들 눈에는 안 띄었을 수도 있어. 있지, 그 별은 원래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는데….우리 수학여행 코스로 항상 순위에 들곤 했었는데 말이야.”
“ 수학여행 코스로 둘 만큼 인기도 있었고, 시간도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그렇게 금방 변할 수 있는 거니?”
“ 그야 우주의 시간은 천차만별이니까…우리별에서 하루가 지났다고 해도 다른 별에서는 100년이 지난 것일 수도 있고, 나도 시간을 제대로 돌려놓지 않고 우리별에 가면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 수도 모를 노릇이고…”
그는 우주선을 고치며 이야기를 했다. SJW 인가 뭔가 하는 우주선에 물을 주입하는 일이 끝나자 이번엔 오른손을 허공에 대더니 홀로그램 같은 영상이 펼쳐지고 그가 그것을 만지작거리자 뭔가가 전송되어 오는 것이 보였다. 나로서는 그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조용히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그가 왠지 멋있어 보였다.
“아까 그 별 말이야, 원래는 어땠는데?”
“원래는…완벽한 별이었어. 도시 곳곳에는 생명력으로 가득했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경작한 농작물이 있거나,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나누어 먹고, 마을을 이루어 함께 살아가곤 했었어. 지구로 치자면 방주처럼 생긴 건물들이 하늘에 둥둥 떠다녔고 그 안엔 작게는 수 십 명 크게는 수백 명 이렇게 단위를 짓고 살았었어. 웃음이 끊이질 않았고….가끔 나처럼 우주별 여행자들이 방문하면 기꺼이 머물 곳을 제공하고 함께 살도록 해주었지. 그런데 한 사람이 문제였어. 그 한 사람이. 내가 그 사람이 이상하다고 사람들에게 말했어야 하는 것인데.”
“그 사람이 왜 문제인 거야? 그 행성이 파괴되어 버린 것과 연관이 있는 거야?”
“항상 사람들은 뭔가 큰 것에서 징조를 찾고는 하지, 내가 어렸을 적 부모님과 그 사람이 살고 있는 방주를 방문 했을 때 그만 이상했어. 나는 어렸던 터라 누구보다 마음이 맑아서 이상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금방 알아챌 수 있었어.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따뜻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와 함께 있으면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나는 굉장히 불편했지. 내가 이 사실을 말하자 부모님은 함부로 그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고 주의를 주었고, 여행에서의 즐거움 때문인지 나도 그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 우리별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분을 받았는데도 말이야.”
이렇게 말하고 나자 미루는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지금 와서 이런 말 하면 무슨 소용이겠니? 안 그래?”
그때쯤 나는 미루의 말에 완전히 몰입되어 있던 터라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라고 재촉했다. 그가 하는 이야기는 어딘지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었다.
“아마 그 사람이 자원을 독점한 게 아닌가 싶어. 그 전에는 모두가 공동으로 생산하고 나눠 쓰느라 따로 숨긴다거나 넘치게 생산할 필요가 없었거든. 그가 무슨 수를 쓴 게 틀림없어. 뭔가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귀한 것이 나왔는데 그가 혼자 독점하려고 어떤 수를 쓴 거지. 그 일에서 발단 되었다고 생각해.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 것 같아?”
“글쎄……사람들이 서로 가지려고 했겠지. 그것이 왜 중요한지, 무엇을 위해 가져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냥 가지기 위해 싸웠을 것 같아.”
“맞아……이후에 사람들은 변해갔지. 더 이상 함께 살아가야 하는 대상으로 보지 않고, 나의 것을 빼앗아 가는 그런 상대로 보기 시작 한 거야.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마침내 그렇게 오염되고 만 거지. 그들이 살고 있던 방주들은 하나 둘씩 파괴 되고……그렇게 한 사람이 나쁜 마음을 먹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그 마음이 전달되고……그 별은 그렇게 파괴 된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해.”
“어쩐지 그 얘기 우리들 이야기와도 닮아 있는 걸?”
“닮아 있다니?” 미루가 슬픈 눈을 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 네가 지금 딛고 있는 이 지구도 점점 그런 곳으로 변해가고 있어. 함께 잘하기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니라 이기기 위해 살아가고 있어. 우리 학교만 해도 그래. 반 아이들 중 누구도 정말 학교 가는 것이 기뻐서 가는 아이들이 없어. 학교는 배우러 가는 곳이 아니라 경쟁을 하러 가는 곳이야. 내가 너를 이겨야 하고, 그래야 더 좋은 대학을 갈 수 있고…”
“그런 곳이 학교라니 슬픈 곳이구나 이곳도.”
“…...”
“그래도 뭔가 희망을 가져봐, 이곳은 아직 파괴되진 않았잖아? 넌 뭘 하고 싶은데?”
“나? 꿈같은 것?”
“그래, 네가 어렸을 적부터 줄 곧 하고 싶었던 것. 너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 그게 뭔데?”
“내 꿈이라……한 번도 누군가 내게 진지하게 꿈에 대해 물어봐 준 적이 없는데……”
“궁금해. 지구의 소라라는 사람이 어떤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지…” 미루는 하던 일을 멈추고 내 곁에 다가왔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그런 것이다. 우리 둘은 옥상에 세워둔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사뿐한 바람이 날아와 더위를 씻어 주었고, 여름 풀벌레 소리가 사근사근 들려왔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그리고 오늘이 진짜이기를.
“나, 사실은 그림 그리는 것을 무척 좋아해. 그것도 꿈에 나오는 그림을…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걸로는 대학에 갈 수 없어. 그리고 이 그림 실력으로는 미술대학도 어림없고...김여사, 아니 엄마는 지금에 와서라도 유학을 가라고 하지만 나는 한국이 좋은 걸.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그게 부끄러운 일이니? 나는 한국에서 잘 할 자신이 있어.”
내가 말을 마치자 미루가 나를 빤하게 바라보았다. 아무리 우주인이라고 해도 남자가 나를 이렇게 빤하게 바라보는 것은 처음이라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음……미안한데 대학이 뭐 하는 곳이지?”
“뭐? 대학을 몰라?”
“ 잘 모르겠는데……중요한 곳 인가 봐?”
“네가 온 곳이 어떤 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안돼. 뛰어난 재주가 있어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살 자신이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 대학을 가야 해. 그래야 일자리도 구할 수 있고, 장차 가정을 꾸려 살 수도 있고……복잡하겠지만 하여튼 그래.”
“그렇게 까지 말하는 것을 보니 그 대학이라는 곳은 정말 중요한 곳이구나, 그런데 너는 거기에 가고 싶은 거니?”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내가 좋아하는 그림 그리면서 사람들에게 이 그림을 보여주고 싶어. 나의 꿈속의 세상을 보여주고 싶고 그들의 꿈속의 세상을 보고 싶어.”
“꿈속의 세상, 정말 멋진 말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네가 말하는 그 대학이라는 곳에 가는 것 보다 훨씬 멋지게 들리는데?”
“ 정말?”
“물론이지, 네 그림 좀 보여 줄 수 있을까?”
신이 났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우글거리는 우리학교에서는 나의 취미를 알아봐 주는 이가 없었다. 다들 공부하고 학원가고 새로 나온 문제집이나 학원 이야기만 했다. 내가 그리는 그림에 관해서는 이야기 해 본 적도 없고, 혹 엄마가 보면 버릴 것이 분명하니 책상 서랍 속에 꼭 숨겨두었던 터였다. 미루라는 이름을 가진 우주인에게 내 그림을 보여주게 될 줄이야. 그에게 그 동안 그린 몇 점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사실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았던 적이 없었기에 보여주기가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보여주고 싶었다. 미루는 심각한 눈을 하고서 30cm 정도 떨어져서 그림을 보았다가, 바짝 가까이서 보았다가 그렇게 한참 말이 없이 내 그림을 감상했다.
“야야, 거기서 그렇게 자면 어떡해? 집에 가서 자야지 집에 가서!”
내가 외치자, 그 소년은 감은 눈을 다시 뜨고는 얘기했다.
“부탁해.”
그대로 소년은 잠에 빠져들었다. 대책 없는 이 아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이지 찬찬히 살펴보니 보통 아이들과는 조금 다르게 생겼다. 투명해서 핏줄까지 보이는 피부하며, 머리색도 투명한 듯 검은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말투가 무엇보다 이상했다. 한국말을 하고는 있지만 뭐랄까 말하면서 불편해하고 있었고, 단어를 내뱉을 때도 바로 답변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내가 질문을 하면, 고개를 한번 끄덕 하더니 단어를 내뱉는 식으로. 나도 참, 공상적인 면이 있어서, 이런 상황을 즐기는 것 같다. 그래, 설령 이 아이가 우주에서 왔다고 하더라도 나를 해치겠어? 근데 이 아이 부모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오늘 신고를 하지 않고 그냥 내 방에서 하루 재워주고 내일 아침에 보내주기로 결심했다. 집 나온 소년이겠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그가 눈을 떴다.
“배고파.”
“뭐?”
“배.가.고.파.”
아래층의 부모님께서는 모두 주무시고 계셨다. 나는 살금살금 부엌으로 가 아까 먹다 남은 음식을 주섬주섬 챙겼다. 아 맞다, 아이들은 밥 먹는 거 싫어하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군것질 거리를 들고 위층으로 향했다. 내가 음식을 펼쳐놓자 소년은 신기하다는 듯 음식을 바라보았다.
“얘, 배고프다면서 그렇게 쳐다보기만 하면 어쩌니? 얼른 먹어.”
“지구인들은 이렇게 먹나 보지? 난 이렇게 먹으면 터져버릴 지도 몰라. 난 이런 음식 안 먹어.”
“얘, 너 배가 불렀구나, 그런 소리를 하게? 요즘 애들은 하여튼 버릇이 없다니까.”
그러자 소년은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고는
“ 나 정말 이런 음식 안 먹는데, 이봐 SJW 밖으로 나가자.” 라고 하면서 자신이 데리고 온 우주선 – 아마도 장난감이 분명한 – 과 옥상으로 나갔다.
“잠깐 조용해 줘.” 라고 부탁하더니 소년은 깊게 숨을 들이 쉬었다. 그러자 믿지 못할 광경이 또 벌어지는 게 아닌가! 하늘에서 빛줄기가 꼬마의 머리 위에 내려오더니, 꼬마가 숨을 들이 쉴 때마다 빛이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아니, 이건 현실이 아니야. 꿈이라고. 이런 SF 같은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19년 인생 중 오늘 저녁 몇 시간 동안 겪은 일이 가장 놀라운 일이라고 할 만큼 나는 당황하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아까의 창백한 낯빛의 꼬마는 점점 화색이 돌더니 그 사이 키도 조금 자라 나 만큼 커진 것 같다. 그리고 얼굴도 점점 어른스러워 지더니 내 또래 남자아이의 얼굴이 되는 것이 아닌가.
“너, 너는 누구 십니까?” 나는 그만 존댓말이 나왔다.
“아까 말했잖아. 미루라고.”
“ 너 정말 우주에서 온 것이 맞는 거야? 아니면 나 정말 이상한 꿈을 꾸고 있거나. 이게 꿈이라면
정말 현실 같다.”
“꿈 아니야, 내 이름은 미루이고 우주를 여행 중이야.”
“이곳엔 왜 온 거지?”
“ 연료가 바닥났어. 이곳에 오기 전에 착륙했던 행성에서 연료를 보급 받지 못했거든. 너무 급하게 오느라.”
침착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미루를 보자 너무나 현실 같은 이 상황에 나도 평정을 되찾고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게 되었다.
“연료가 바닥났으면 다시 돌아 갈 수 있니?”
“깨끗한 물과 간단한 공구가 있으면 되는데 지금은 너무 피곤해서…그래 너는 어느 우주에서 왔다고? 네 이름은 오로라?”
“하하, 아까는 농담이었고, 나는 여기 살아. 내 이름은 소라.”
“소라…예쁜 이름이네. 우리와는 다른 말을 쓰지만 그래도 네 이름을 부르면 아름다운 느낌이 전달 돼. 좋은 이름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미루는 나와 점점 대화를 하면서 아까보다는 어휘도 많이 늘어 있었고 말도 점점 자연스러웠다.
“소라, 이 SJW를 고치려면 물이 아주 많이 필요한데, 물 좀 구해줄 수 있을까? 이곳에 오기 전의 행성에서는 물이 고갈되어서 구할 수 없었어. 아주 끔찍한 곳이었지.”
“물? 물이라면 저기 물탱크에…” 하며 나는 옥상의 노란 물탱크를 가리켰다.
“아, 지구는 아직 물이 남아 있구나. 반가운 일이군.”
미루가 타고 온 SJW은 작은 우주선이었다. 한 사람이 타면 꼭 맞는 사이즈의 작은 우주선.
어떻게 저걸로 우주를 여행할 수 있었을까?
“지구인들의 눈으로 보면 작은 우주선이지만 우리에겐 이게 편해.”
하고 내 생각을 읽은 듯 미루가 얘기했다. 내가 깜짝 놀라자 미루가 겸연쩍은 듯이 말했다.
“미안해, 이곳에서는 이렇게 대화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 배웠어.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으로 대화하거든.”
“생각이라고?”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미루는 물탱크에서 SJW로 물을 주입하는 일을 계속 하면서 얘기를 계속했다.
“음, 이를테면 텔레파시 같은 거라고 할까? 소리를 내어 대화하는 게 사실은 거추장스러운 거거든, 그래서 우리는 생각으로 대화해.”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나쁜 생각은 절대 못하겠군.”
“나쁜 생각?”
“거 있잖아, 옆에 있는 애가 수업시간에 계속 볼펜 소리를 딱딱 내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흉을 본다거나 하면 싫을 수밖에 없잖아. 나는 심지어 우리 담임이 없어졌다는 생각을 매일 하는 걸?”
“ 과연, 지구인들은 참 무섭구나. 그런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우리들의 생각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 그러니 나쁜 생각을 할 필요도 없지.”
미루라는 이 녀석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점점 그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지기 시작했다. 설사 거짓일지라도 나는 지금 할 일이 없고, 이 녀석이 나를 해칠 확률도 없어 보여 생각나는 대로 이것저것 질문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럼 너희들은 어떻게 사는데?”
“어떻게 사냐고? 무엇부터 얘기하면 좋을까? 아니 그전에 지구인들은 원래 그렇게 말이 많니? 고치는데 집중할 수 없어.”
“너 대한민국 여고생들이 얼마나 말이 많은지 모르는구나. 너도 불쌍하다 하필이면 내가 사는 곳에 떨어지다니.” 뾰루퉁해진 나는 입을 다물고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별이 반짝이고 있었고, 동네 개들도 짖지 않는 조용한 여름밤이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아직도 구별은 안 되지만. 이윽고 침묵을 깨고 미루가 심각하게 운을 떼었다.
“정말 끔찍했어. 아직도 그 광경이 잊히지 않아.”
“뭐가?”
“이 곳에 오기 전에 착륙했던 행성 말이야.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어. 아무것도. 그런 행성은
처음 봐.”
“사람이 사는 행성은 없어, 사람이 살지 않으니 아무것도 없는 게 당연하지.”
“그건 지구인들의 생각이고 사실 그렇지 않아, 다른 태양계에도 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어.”
“그런 얘긴 한 번도 듣지 못했어, 그걸 어떻게 증명하니?”
“지금 나를 보고 있고도 모르겠니?”
“……”
30분 정도가 흘렀을까 미루가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는 미소를 가득 띄우고서. 그때 나는 생각했다. 사람의 미소가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순수한 모습, 그 자체였다.
“왜 진작 그림을 그리지 않았니? 네 그림을 보니 우리와 다른 방법이라 무엇을 나타낸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너는 마음이 깨끗한 사람인가보다.”
“에이,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림을 가만히 바라보면 그림을 그린 사람의 마음이 느껴진다고 할까? 앞으로도 많이 그려주지 않을래? 내가 하나 가져가도 될까?”
“가져가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정말 가질래?”
“물론, 소중히 간직할게. 나, 아마 이거 가지고 가면 우리 별에서 인기스타가 될 거야.”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대화를 마친 후 미루는 SJW 에게 다가가더니 버튼을 눌렀다. 반짝반짝 해진 SJW가 나에게 다가온다. 무서워서 뒷걸음치자 미루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지잉~ 하는 소리가 나더니 SJW가 부웅하고 날아왔다. 그리고는 문이 열리면서,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오늘 참 여러 번 놀라고 있다.
“내 이름은 SJW 미루의 우주선, 나를 타는 것을 허락하겠어.”
SJW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미루가 내 등을 밀었다.
“떠나기 전에 한번 타봐, 하늘 위를 한번 날아보지 않을래?”
겁이 나서 사색이 된 나를 보며 웃고 있는 미루가 억지로 SJW 안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아, 안돼 안돼. 나 아직 죽고 싶지 않다고, 게다가 이 우주선은 너무 작아, 우리 둘이 타면 또 고장 날 거야.”
“괜찮아. 그런 것은, SJW 가능하겠지? 잠시만 하늘을 날아줘.” 하고 미루가 명령하자, SJW는 우리 둘을 태우고 순식간에 하늘을 날아올랐다. 날아오르는지도 느끼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였다.
아니, 날아 올랐다기 보다는 번쩍 하고 그 순간 하늘에 나타났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겠다.
SJW가 자신의 시야를 밝혀주었다. 그러자 우리는 마치 통 유리 안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것 같은 모습이 되었다. 밤은 점점 깊어져 가고 있었고, 저 아래 내가 살고 있는 도시는 물빛에 반사되어 어른거렸다. 그 모습이 아름다웠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을 이렇게 내려다 본 적도 처음이다.
“아름답다.”
침묵을 깨고 내가 입을 먼저 열었다.
“응. 이곳은 아직 숨을 쉴 수 있는 곳이야. 이곳이라면 가능할거야.”
“가능하다니?”
“파괴되지 않고 잘 보존할 수 있을 거야. 너를 믿을께.”
“나를 믿는다니? 내가 뭘 할 수 있는데?”
“소라, 내가 이 별에 온 것은 사실 걱정이 되어서였어. 원래는 그 위성이 파괴된 것을 보고 바로 우리 별로 돌아가 그 사실을 알려주려고 했지. 그런데 지구가 걱정이 되더라고. 이 곳은 괜찮을 까 하고. 대기권에 들어오면서 이곳의 오염도 상당 하길래 아마 비슷한 상황이지 않을까 하고 걱정스레 착륙을 했지. 밖으로 나오니 다행스럽게 숨은 쉴 수 있었어 그리고 사람들도 있었어. 너처럼 이상한 사람 말이야.” 라고 말하며 그는 깔깔 웃었다.
“지구에는 너처럼 소리를 꽥 지르고, 쉴 새 없이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는 걸로 보아, 그래도 아직은 살만한 곳이라는 것을 느꼈어. 하지만 이곳도 위험해.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야. 소라, 너에게 부탁할게. 부디 네가 좋아하는 그림을 많이 그려서 사람들에게 보여줘. 네가 그림을 그리며 느꼈던 기쁨을 사람들과 공유해줘. 그러면 말이야, 그 언젠가 다시 이곳에 찾아올게.”
그의 말에 이별을 감지하자 슬픔이 밀려들었다. 지금 떠나려는 거야? 이제 막 정이 들려고 했는데 떠나는 걸까?
“그 말은 지금 떠난다는 거야? 이곳에서 좀 더 머무를 수 있을 수는 없어? 나는 아직 보여줄 것이 많은데. 네가 온 곳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이곳도 재미있는 곳이야.”
“그럴 것 같아. 다양한 색깔을 지닌 지구별. 아마 우리별에서 지구별을 생각하면 네가 떠오르겠지?”
“나도 그럴게.”
“지구별에는 아직 희망이 있어. 아마 네게서 본 것일지도 몰라. 너의 눈에는 아마 이상했을 나를 의심 없이 도와주고 이야기도 들어줘서 고마워. 너의 그 마음이 바로 지구의 희망이 되어 줄 거야. 사랑이 있는 한, 지구는 함께 살아 갈 수 있을 거야. 사랑이 있는 한. 나는 오늘 네게서 지구의 사랑을 배워간다. 낯선 사람도 순수하게 받아 줄 수 있는 지구의 사랑을.”
미루가 말을 마치자 SJW는 나를 옥상 위에 사뿐히 내려주었다. 미루는 내리지 않고 그대로 SJW를 탄 채 저편에서 나를 봐라 보았다. 나 또한 눈빛에 아쉬움을 가득 담고서 그를 바라 보았다. 우주선이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회전속도가 빨라지자 우주선의 모습이 공기 중에 점점 옅어졌다. 그 사이로 미루의 얼굴이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것이 보였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순식간에 빛이 번쩍 하더니 우주선이 사라졌다. 우주선이 날아오를 때 나온 빛으로 낮처럼 환해졌던 우리 동네는 다시 어둠 속에 잠기고, 나도 덩그마니 남겨졌다.
‘안녕 미루, 네가 다시 찾아 올 수 있도록, 미래에서 기다릴게.’
**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 내리는 비는 방사능 성분이 들어간 비라고 합니다.
방사능에는 다시마와 요오드 성분이 들어간 종합비타민제가 좋다고 하네요.
저는 오늘 되도력 밖에 안나가려 합니다.
나갔다 와서는 꼭 샤워를 하고
비에 젖은 옷은 세탁기에 돌리구요...
환경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는 요즈음입니다.
빨래 할때는 세재보다는 EM과 베이킹소다를 쓰게됩니다.
작가들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 아닌지요?
아마 자연의 울음과 슬픔을 더욱 잘 느끼리라고 봅니다.
저는 이것이 재해가 아니라 인재라고 생각이 듭니다.
오늘 하루 가만히 땅의 소리를 듣고
바람의 소리를 듣고
비의 소리를 들으며
미안하다고, 고마웠다고 마음을 전해보면 어떨는지...
주제 넘게 제안해 봅니다.
바다: http://blog.naver.com/vadah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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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00자 원고지 142장, 앞으로 연재소설은 연재가 끝나면 스스로 위와 같이 묶어 중편이나 장편으로 올리기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