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臨時情敷) 동아리 결과// 240624
○ 주요 내용
- 시 감상 : 「내력」(김선우)
- 시 : 「그리움」(최재순), 「새참이 먹고 싶다」(최동순), 「빈집」(이희주), 「구원투수」(권인찬)
- 동시 : 「기사회생」(김경란)
- 수필 : 「진짜배기」(권인찬)
○ 다음(7.3. 수) 계획 : 여름방학 특집(한마음학술제 장기자랑, ‘임시정부’ 사행시 경연대회)
지금까지 매주 월요일에 하던 임시정부(臨時情敷) 동아리를 다음 주부터는 매주 수요일로 변경하여 진행하겠습니다. 월요일에 참석 여건이 어려운 학우님들이 있어 토의를 통하여 일정을 변경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다른 일정과 겹쳐 월요일에 참석하지 못한 학우님들이 계시면 다음 주부터는 수요일에 참석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시간은 19:30으로 동일합니다. 수요일로 변경하여 처음으로 진행하는 다음 주는 여름방학 특집으로 7.6(토)로 예정된 ‘한마음학술제’에서 발표할 시낭송 장기자랑에 대한 사전 시연과 ‘임시정부’를 주제로 한 사행시 경연대회를 실시하겠습니다. 물론 학우님들의 글을 발표하고 評하는 것은 변동사항이 없습니다. 이번 한 주도 늘 건강하시고 다음 주부터는 수요일에 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기사회생 - 김경란
6월 폭염에
텃밭에
배추, 깻잎, 상추
못살겠다 추우욱
고추, 오이, 가지, 토마토
타 죽겠다
쪼그락 쪼그락
앙 버텨온
울음
우렁우렁
빗소리 퍼붓는다
이제
살았다
빈 집 ㅡ 이정표
녹 슨 대문에는 오래된 적막이 문패를 걸었고
울 안의 대추나무는 생산을 멈추었다
한 낮 태양을 피하지 못한 뒤꼍의 아주까리
가벼운 참새의 조롱에도 얼굴을 떨구었고
세월에 지친 기와 지붕사이 솔 순들은
얼어붙은 생살을 부여잡고 지난 겨울을 났다
수염이 하얗던 할아버지와
초롱아래 반짇고리 더듬던 할머니
다시 못올 긴 외출을 하셨나 보다
두레박에 푸른 이끼 꽃이 피었다
담벼락 성긴 구멍으로 여름 정적靜跡이 넘나들고
홀로 실겅에서 살아남은 삼베보자기
백기를 든 빨치산의 항복문서일까
불 꺼진 아궁이 앞에서 낮잠에 들면
안방 벽장에 매달린 과부거미가 실 뽑으며 수절을 한다
별 빛 부서진 뜨락에 꽃닢 떨어지면
들창밖 종일 서성이던 그리운 사연들
총총 어긋난 대청마루에 오르고
서리 까마귀 젖은 휘파람 불면
낮게 웅크린 절망이 찾아든다
내 영혼의 빈 집에는 침묵에 갇힌 고독이 살고 있다
야무지고 단단한 가시가 되어 내 안을 아프게 찌르면서 ...
새참이 먹고싶다
최동순
벼 이삭고개 숙인 들녘
어머니 새참 광주리가
따스한 햇살 부끄러운듯
좁은 논둑 길에 별이되어 다가온다
가난을 어깨에 짊어지고
땀과 흙으로 얼룩진 옷들이
상수리 아래 수건돌리기 하듯 둘러앉아
어머니 화사한 웃음으로 건네 주시는
국수 한 그릇에 손수담은 막걸리 한잔
울퉁불퉁 손바닥에 박힌 아린 옹이들
몸속깊이 스며드는 노동의 피로가
봄눈 녹듯 사라져 함박꽃으로 피어난다
불볕더위와 지루한 장마속에서
한해 여름 견디어낸 흔적들
거두어 들이는 보람 만끽하며
흐르는 땀을 나누어 먹던 새참
들국화 향기보다 더 진하게
고향의 맛을 전하여 주시던
꿀맛같은 어머니 손길
어느새,
어머니 나이가 되어버린 오늘
그 새참이 먹고싶다
그리움
최재순
문설주에 기대어
조각배 닮은 초승달을 맞으며
처마까지 들어온
파르스름한 등나무꽃의
시린 마음을 안는다
끊어진 인연은
세월의 멍으로 남았는데
그리움 또한
문턱을 못넘고 있구나
뜨겁게 달구었던
태양이 꼬리를 감추고
바람마저 동반한 열우(熱雨)는
가슴을 산산조각 내는데
장승처럼 멈취진 기다림은
설곳을 잊은채
머~언 세상길을
나서고 있구나
구원투수
권인찬
난 곳은 다르지만
든 곳은 같을지니
휘돌아 흘러흘러
본래의 땅으로 돌아왔네요 그대
이별의 인사도 없이
그리움조차 말하지 못했던 그 얼굴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네요
거친 파도 앞에
온 몸을 던져
앞장섰던 그대
환호와 영광
아픔과 슬픔
가슴 속에 남아 있겠지요
이제,
한 걸음 뒤에 선 그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버팀목이 되겠지요
위기의 순간에는 다시 나설 수 있음을 알기에
무너지지 않길 바래요
진짜배기
권인찬
어린 시절 살던 고향은 바닷가였다. 그 덕에 나는 생선을 마음껏 먹었다. 식사때마다 생선 반찬이 없었던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생선 반찬이 나오면 아버지는 항상 ‘진짜배기’만 찾으셨다.
“괴기는 대가리가 진짜배기여!” 하시면서 생선 대가리만 모아 드셨다. 생선 대가리는 당연히 아버지 몫이었다. 어린 나는 한편으로 생각하길 진짜 좋은 건 아버지 혼자 드시고, 나머지 가족들은 별로 맛도 없는 몸통만 먹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래도 크게 불만은 없었다. 당시 우리 가족들은 아버지의 권위가 절대적이었으므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생선 대가리는 아버지의 몫이라는 것이 우리 모두의 생각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 가족들은 큰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양계장 일을 맡게 되어 경기도 여주로 이사를 하였다. 양계장에는 약 5천여 마리의 닭을 키웠는데, 매일 사료를 먹이고 낳은 알을 모으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사과 농장까지 운영하면서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힘들게 일했다. 나도 학교가 끝나면 양계장에 나가 일을 도와야 했다. 양계장을 하다보니 우리 형제들의 도시락 반찬은 항상 ‘계란’이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하루 걸러 하루 정도는 닭백숙을 먹었다. 닭백숙을 먹을 때도 아버지는 어김없이 진짜배기만 드셨다. ‘닭고기는 껍데기가 진짜배기여!’라고 하시면서.
어린 시절 아버지가 즐겨 드시던 ‘생선 대가리’나 ‘닭 껍데기’가 진짜배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자식들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나도 한 때는 아버지처럼 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치킨을 배달시키면 닭목은 항상 내몫이 되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생각해 보면 좋은 음식을 먹이겠다는 아버지의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마음 한 편으로는 답답하고 안타까움이 몰려 온다. 아마도 아버지는 지금의 세상을 생각이나 하셨을까? 지금 세상은 너무나 풍족해졌다. 아버지가 사시던 그 시대에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좋은 음식들이 차고 넘친다. 언제 어느때라도 맛있는 것들을 시켜 먹을 수도 있다.
어떤 자료를 보니 현재의 우리가 단군 이래 처음으로 부모세대보다 더 부자인 세대라고 한다. 아마도 자신은 못 입고, 못 먹고, 못 살아도 자식만큼은 잘 입히고, 잘 먹이고, 잘 살게 해 주겠다는 부모님의 희생이 있었기에 이런 풍족한 세상이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돌아 가신 양가 부모님을 가끔 추억할 때면 안타깝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살아 계실 때 더 맛있는 것도 드시고, 자신의 삶을 더 즐겼었도 좋았을 걸, 왜 그렿게 하신건지, 그래서 행복하셨는지. 그리고 내가 더 잘 해 드렸어야 했었는데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돌아가시기 전 사 드렸던 자짱면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셨던 마지막 아버지와의 외식은 오래된 영상처럼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러면서 나는 나 자신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그렇게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지 않기로 했다.
“아마도 너희들은 우리가 보지도 듣지도 생각도 하지 못했던 더 좋은 것들을 먹을 수 있을거야.”
지금은 독립해서 살고 있는 애들이 가끔 집에 오면 애들은 엄마의 집밥을 먹고 싶어 한다. 그래서 한 끼 정도는 집에서 먹긴 하지만, 우리 부부는 주변의 맛집을 검색하여 외식을 하려고 한다. 물론 애들 핑계를 대지만, 더 늦기 전에 맛있는 것을 더 많이 먹기 위해서.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진짜배기’를 찾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