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敬說(자경설)-기대승(奇大升)
古人莫不訟前咎以自箴(고인막불송전구이자잠) : 고인(古人)들은 모두가 과거의 허물을 자책하여 스스로 경계하였으니,
蓋悼前之失(개도전지실) : 대체로 과거의 실수를 마음 아프게 여기고
而起後來善思也(이기후래선사야) : 앞으로 잘하려는 생각을 일으키려는 것이다.
是皆聖人賢士之所寓意用功者(시개성인현사지소우의용공자) : 이는 모두 성인(聖人)과 현사(賢士)들이 뜻을 붙여 공부하던 것인데,
吾何爲獨不然(오하위독불연) : 나만 어찌 유독 그러하지 않겠는가.
歌詠之餘(가영지여) : 가영(歌詠)하던 나머지,
丕遠惟十九年前事(비원유십구년전사) : 19년 전의 일부터 차근차근 서술하려 한다.
予生於嘉靖丁亥(여생어가정정해) : 나는 가정, 정해년(1527)에 태어났으니
乃大行王中宗大王之二十二年也(내대행왕중종대왕지이십이년야) : 그해가 곧 대행왕(大行王) 중종대왕 22년이다.
生一年(생일년) : 태어난 지 1년 만에
失王母(실왕모) : 왕모(王母 조모)를 여의었고
及齔而失慈天(급츤이실자천) : 7-8세쯤 되어서는 어머니를 여의고서
惟嚴君是依(유엄군시의) : 오직 아버지를 의지했는데,
劬勞鞠養(구로국양) : 아버지는 나를 고생하시면서 길러주셨다.
少多疾疹(소다질진) : 나는 어려서 질병이 많아
在死而生(재사이생) : 죽으려다 살아났는데,
至于今日(지우금일) : 오늘에 이르러 아득히
昧昧思之(매매사지) : 그 일을 생각하니
懷慟窮天(회통궁천) : 비통하기 그지없다.
嗚呼(오호) : 아,
天民之窮毒者(천민지궁독자) : 백성으로서 곤궁하기가
孰過於予哉(숙과어여재) : 누가 나보다 더하겠는가.
時念少時事(시념소시사) : 가끔 소싯적 일을 생각해보면
多不復記憶(다불부기억) : 기억나지 않는 것이 많으나
亦有一二可想者焉(역유일이가상자언) : 또한 한두 가지 생각나는 것도 있다.
癸巳歲(계사세) : 계사년에
始受學于家庭(시수학우가정) : 비로소 가정에서 수학하였고,
明年甲午之孟秋(명년갑오지맹추) : 다음해인 갑오년 7월에
丁窮天之慟(정궁천지통) : 망극의 비통함을 당하여
因決捨其業(인결사기업) : 이로 인해 학업을 그만두기로 결정하고
不復以問學爲事(불부이문학위사) : 다시는 학문을 일삼지 않았다.
蓋家君亦以新遭大變(개가군역이신조대변) : 대체로 가군(家君)께서도 역시 방금 대변(大變)을 당한 터라
未嘗爲誨(미상위회) : 글을 가르치지 않으셨다.
歲之乙未(세지을미) : 러다가 을미년에
讀孝經學書(독효경학서) : 그《효경(孝經)》을 읽고 글씨도 배우고
又誦小學(우송소학) : 또 《소학(小學)》을 외기도 하여
庶幾有望於不自棄(서기유망어불자기) : 거의 자포자기의 지경에는 이르지 않을 것을 기대하게 되었다.
何意天未悔禍(하의천미회화) : 그런데 뜻밖에 하늘이 재앙을 내리고
鬼亦不弔(귀역불조) : 귀신 역시 무정하여
於丙申之冬(어병신지동) : 병신년 겨울에
小妹以疫疾逝焉(소매이역질서언) : 작은 누이가 역질(疫疾)로 죽었다.
家君以患禍荐臻(가군이환화천진) : 가군께서는 환난과 재앙이 거듭됨으로 인하여
避處山寺(피처산사) : 산사(山寺)로 피해 가 계셨으므로
予亦隨去(여역수거) : 나도 따라가서
讀書習字(독서습자) : 글을 읽고 글씨도 익혀
頗有進就之望(파유진취지망) : 꽤 진취의 희망이 있었다.
自其年冬月(자기년동월) : 그해 겨울부터
至于丁酉之秋(지우정유지추) : 정유년 가을에 이르기까지
家君在寺(가군재사) : 가군께서 절에 계시다가
秋晩(추만) : 늦가을에는
以上洛故還家(이상락고환가) : 서울에 가실 일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셨다.
予時尙記憶也(여시상기억야) : 나는 그때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家君上洛後(가군상락후) : 가군께서 서울에 가신 후로
予以居家不愜於心(여이거가불협어심) : 나는 집에 있는 것이 마음에 맞지 않았다.
十月之初(십월지초) : 그래서 10월 초에는
自矜奮(자긍분) : 스스로 분발하여
往書堂受大學畢(왕서당수대학필) : 서당(書堂)으로 가서 《대학(大學)》을 다 배우고
繼讀漢書及韓文(계독한서급한문) : 이어 《한서(漢書)》 및 한문(한유의 문장)을 읽고 나니
歲已晩矣(세이만의) : 그해가 벌써 저물었었다.
因下家覲親(인하가근친) : 인하여 집에 내려와 근친(覲親)하고
且復上焉(차부상언) : 또다시 올라가서
讀孟予及中庸(독맹여급중용) : 《맹자(孟子)》 및 《중용(中庸)》을 읽었고
常與儕輩聯句(상여제배련구) : 항상 동료들과 더불어 연구(聯句)를 짓고
亦不無述(역불무술) : 또한 다른 저술도 하였는데,
人皆稱有學性焉(인개칭유학성언) : 사람들이 모두 나에게 학성(學性)이 있다고 칭찬하였다.
讀眞寶前集(독진보전집) : 《고문진보(古文眞寶)》전집(前集)을 읽고
又讀舌賦(우독설부) : 또 고부(古賦)를 읽어
連誦不已(련송불이) :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었는데,
時則戊戌年也(시칙무술년야) : 그때가 무술년이었다.
是時(시시) : 이때,
予之外王母之外王父之妾(여지외왕모지외왕부지첩) : 나의 외왕모의 외왕부의 첩(妾)이
以家門之位(이가문지위) : 가문의 지위 때문에
常愛恤諸孫(상애휼제손) : 항상 여러 손자들을 사랑하여 돌보았다.
予之慈天(여지자천) : 나의 어머니께서
少嘗育於其家(소상육어기가) : 어릴 적에 일찍이 그 집에서 자랐고,
舍兄亦育於其家(사형역육어기가) : 나의 형도 그 집에서 자랐는데,
以予等之失慈(이여등지실자) : 우리들이 어머니 여읜 것을 불쌍히 여겨
眷顧甚至(권고심지) : 매우 극진히 돌보아주었다.
年八十有餘(년팔십유여) : 나이 80이 넘었는데도
而聽視未嘗少衰(이청시미상소쇠) : 듣고 보는 것이 조금도 어둡지 않았다.
常撫余而言曰(상무여이언왈) : 항상 나를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必當爲大人(필당위대인) : "반드시 대인(大人)이 될 것이니
着力讀書云云(착력독서운운) : 열심히 글을 읽으라……." 하였었는데,
其年春逝焉(기년춘서언) : 그해 봄에 별세하였다.
家禍卒迫(가화졸박) : 가화(家禍)가 갑자기 닥치니
烏得無慟哉(오득무통재) : 어찌 매우 슬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讀後集數百遍(독후집수백편) : 이어 《고문진보》 후집을 수백 번 읽고 나니
時則七月也(시칙칠월야) : 때는 7월이었다.
直至明年十月告畢(직지명년십월고필) : 그대로 다음해 10월까지 읽어 마치고 나니,
己亥年也(기해년야) : 그 해가 바로 기해년이었다.
時先輩以監試之望(시선배이감시지망) : 이때 선배(先輩)들이 감시(성균관에서 뽑는 생원진사시)를 보기 위해
萃于書堂(췌우서당) : 서당에 모여
讀書著文爲業(독서저문위업) : 글을 읽고 글을 짓는 것을 과업으로 삼았는데,
余亦從而學之(여역종이학지) : 나도 그것을 따라 배웠더니
亦無難者(역무난자) : 또한 어려울 것이 없었다.
歌誦不隨乎時(가송불수호시) : 가송(歌誦)에 대해서는 시속을 따르지 않았고
詩賦惟其所欲(시부유기소욕) : 시부(詩賦)는 오직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여
雖不能中於法度(수불능중어법도) : 비록 법도에는 맞추지 못했지만,
人或謂之能焉(인혹위지능언) : 혹 글을 잘 짓는다고 칭찬한 사람도 있었다.
當十月之晦(당십월지회) : 10월 그믐께
受史略於家君(수사략어가군) : 가군에게 《사략(史略)》을 배우기 시작하여
三閱月而畢(삼열월이필) : 3개월에 걸쳐 끝내고 나니,
歲則庚子(세칙경자) : 해로는 경자년이요,
月乃元也(월내원야) : 달로는 정월이었다.
其後稍稍蒙拔而業長矣(기후초초몽발이업장의) : 그 후 점차로 우매함이 트이고 학업이 진취되어 갔었다.
繼受論語(계수론어) : 이어서 《논어(論語)》를 수학하여
至秋而畢(지추이필) : 가을에 이르러 끝마쳤다.
是年春(시년춘) : 이해 봄에
外叔父擢第(외숙부탁제) : 외숙부(外叔父)께서 문과에 급제하고
及秋掃墳到此(급추소분도차) : 가을에 이르러 성묘(省墓)를 하러 이곳에 오셨다.
考其已往之業(고기이왕지업) : 외숙부께서는 내가 닦은 학업을 고찰하시고
而講其當時之學(이강기당시지학) : 또 그 당시 배우고 있던 것을 강론하시면서
勉其有成也(면기유성야) : 나에게 성취함이 있을 것이라고 면려하시었다.
於是(어시) : 그러자
京中親戚(경중친척) : 서울의 친척들이
聞其將有成也(문기장유성야) : 내가 장차 성취함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는
徵其文(징기문) : 내가 저술한 글들을 요구하였으므로
余卽盡以取爲之付與(여즉진이취위지부여) : 나는 즉시 글을 다 모아서 친척들에게 부쳐 주었다.
由是箱笥無昔時稿矣(유시상사무석시고의) : 이로 인하여 나의 상자 속에는 그 전에 지었던 초고(草稿)가 전혀 없게 되었다.
其冬(기동) : 그해 겨울에는
讀書傳(독서전) : 《서전(書傳)》을 읽어
皆成誦(개성송) : 모두 외었다.
明年秋(명년추) : 다음해 가을에는
讀詩傳繼讀周易(독시전계독주역) :《시전(詩傳)》을 읽고 이어 《주역(周易)》을 읽었다.
自庚子至辛丑凡八月(자경자지신축범팔월) : 경자년부터 신축년까지 사이의 8개월 동안과
自辛丑至壬寅之春凡十月(자신축지임인지춘범십월) : 신축년부터 임인년까지 사이의 10개월 동안을
合數之(합수지) : 합해서 계산하면
爲月者十有八(위월자십유팔) : 모두 18개월이요,
而爲年一度半强(이위년일도반강) : 햇수로 따지면 1년 반 남짓이 되는데,
志頹性懶(지퇴성라) : 그동안 뜻이 해이해지고 성질이 게을러져서
口不詠心不惟者殆半之(구불영심불유자태반지) : 글을 입으로 읊지도 않고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않은 시간이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雖時有感奮作氣(수시유감분작기) : 비록 수시로 느껴 분발하여 기세를 부려보기도 했지만
勢亦不能矣(세역불능의) : 역시 할 수가 없었다.
蓋家君以其少有知也(개가군이기소유지야) : 대체로 가군께서는 내가 조금 아는 것이 있다고 하여
常弛其授講(상이기수강) : 항상 수강(授講)을 엄하게 하지 않으시고,
簡誨而疏勸(간회이소권) : 훈계하고 권장하는 일도 소홀히 하시었으며,
時有所遊放(시유소유방) : 때로 방탕하게 노니는 일이 있어도
不究切之(불구절지) : 심히 책망하지 않으셨다.
余以其安逸爲可恒也(여이기안일위가항야) : 그래서 나는 안일을 내내 누릴 수 있는 것이라 여겼다.
是以年壯而學益頹(시이년장이학익퇴) : 이 때문에 나이가 장성해질수록 학문은 더욱 떨어지고,
歲久而志益弛(세구이지익이) : 해가 오랠수록 뜻은 더욱 해이해져서
以至於今泯泯也(이지어금민민야) :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보잘것이 없으니
可勝歎哉辛丑之春(가승탄재신축지춘) : 한탄스럽기 그지없다.
哭外從祖母(곡외종조모) : 신축년 봄에는 외종조모(外從祖母)를 곡(哭)하였다.
媽常以余慈天爲養嗣(마상이여자천위양사) : 외종조모께서는 항상 우리 어머니를 양사(養嗣)로 삼아오시다가,
及慈天棄世(급자천기세) :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視余等猶子(시여등유자) : 우리들을 마치 자식처럼 여기시어,
念寒而衣(념한이의) : 추울까 염려하여 옷을 입히시고
念饑而食(념기이식) : 주릴까 염려하여 밥을 먹여주시었다.
小子何知(소자하지) : 소자(小子)가 무엇을 알았겠는가.
惟媽我母(유마아모) : 오직 외종조모가 내 어머니인 줄로만 알았는데,
至是捐世(지시연세) : 이때 이르러 별세하시어
終天永辭(종천영사) : 영원히 이 세상을 하직하시니,
此怨曷崩(차원갈붕) : 이 원한을 어찌 다하겠는가.
天乎鬼乎(천호귀호) : 하늘이여, 귀신이여!
昔年奪吾母(석년탈오모) : 지난해에는 우리 어머니를 빼앗아가고
今又奪吾媽(금우탈오마) : 이제는 또 우리 외종조모를 빼앗아가니,
天乎鬼乎(천호귀호) : 하늘이여, 귀신이여!
一何毒我之極耶(일하독아지극야) : 어찌 나에게 이처럼 모진 고초를 내린단 말인가!
自需給高堂(자수급고당) : 아버지 봉양하는 일을 비롯하여
養以及百口之人(양이급백구지인) : 많은 식구들과 어머니 여읜
與吾輩二哀之小子(여오배이애지소자) : 우리 두 형제에 이르기까지
食有所不贍(식유소불섬) : 먹을 것이 부족하거나,
衣有所不完(의유소불완) : 옷이 해지거나 하면
奚所資而取焉(해소자이취언) : 어디에 의뢰하여 공급할 것인가?
後事之擺脫而不擧者(후사지파탈이불거자) :
誰與告之(수여고지) : 제쳐 두고 거행하지 않은 뒷일은 누구에게 고(告)할 것이며,
迷僮劣婢(미동렬비) : 어리석고 용렬한 종아이들은
於何聽受而共業焉問學之日(어하청수이공업언문학지일) : 누구에게서 명령을 받아 일을 해나갈 것인가?
繼夜望顯揚者(계야망현양자) : 밤낮으로 학문을 계속하여 출세하기를 바라던 것도
無所事於榮養(무소사어영양) : 이제는 조부모를 영화롭게 봉양하는 데는 쓸모가 없게 되었다
嗚呼哀哉(오호애재) : 아 슬프다, 아 슬프다!
春暮作西京賦(춘모작서경부) : 이해 늦은 봄에, 서경부(西京賦)를 지었다.
凡百有三十句(범백유삼십구) : 모두 1백 30구(句)가 되었다
龍山評之曰(룡산평지왈) : 용산(龍山)이 이 글을 보고 평론하기를 "
讀其詞(독기사) : 그 글을 읽어보면
想其人(상기인) : 그 사람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니,
宜其聲之久播於人(의기성지구파어인) : 의당 그 성문(聲聞)이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전파하겠다.
思遠而氣壯(사원이기장) : 생각이 멀고 기(氣)가 장대하며,
語高而辭達(어고이사달) : 말이 고상하고 문장이 통창하다.
雖間有生澁(수간유생삽) : 비록 간간이 설고 껄끄러운 데가 있기는 하나,
特是小疵(특시소자) : 다만 이것은 조그만 흠일 뿐이다.
一蹴便到古作者列(일축편도고작자렬) : 조금만 더 진취하면 문득 옛 작자(作者)의 경지에 이를 것인데,
況其外之科乎(황기외지과호) : 더구나 그 밖의 과문(科文)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其可賀也已云云(기가하야이운운) : 축하할 뿐이다……." 하였다.
於夏(어하) : 여름에는
嘗次西征賦(상차서정부) : 일찍이 서정부( 반악이 지은 문장 이름)를 차운(次韻)하여 지으려 했다가
未及就而置焉(미급취이치언) : 미처 짓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明年春(명년춘) : 다음해 봄에는,
以秋有觀光之望(이추유관광지망) : 이해 가을에 과거(科擧)가 있어서
試作詩賦(시작시부) : 시험 삼아 시부(詩賦)를 지어보았다.
學源鹵莽(학원로망) : 그러나 학문의 근원이 거칠고
思致泥澁(사치니삽) : 생각이 꽉 막혀서
竟不能成篇(경불능성편) : 끝내 편(篇)을 이루지 못했다.
因竊自悲(인절자비) : 그래서 나는 속으로 슬퍼하기를
幸生天地間(행생천지간) : "나는 다행히 천지 사이에
得二樂焉(득이악언) : 두 가지 낙(樂)을 얻었으니,
旣無疾病厄窮之患(기무질병액궁지환) : 질병과 곤궁의 걱정 없고
耒耟耕穫之勤(뢰거경확지근) : 농사짓는 괴로움도 없었다
棄而不學(기이불학) : . 그런데 포기하고 학문을 하지 않는다면
則無復有所事於一世(칙무부유소사어일세) : 다시는 이 세상에 쓸모가 없게 될 것이다." 하고,
仍慷慨不能語(잉강개불능어) : 인하여 개탄스러워 말을 하지 못했다.
旣數日(기수일) : 수일 후에
聞先輩集于書堂(문선배집우서당) : 선배들이 서당에 모였다는 말을 듣고
往從之(왕종지) : 나도 가서 그들과 함께 있었다.
亦未嘗勤做(역미상근주) : 역시 거기서도 글을 열심히 짓지는 않았으나,
而嘗作吊鄭夢周賦(이상작적정몽주부) : 시험 삼아 조정몽주부(吊鄭夢周賦)를 지었는데,
筆端自爾無澁(필단자이무삽) : 이때는 붓끝이 저절로 막힘이 없었으니,
竟不知何故也(경불지하고야) : 끝내 무슨 이유인지 알 수가 없었다.
夏之仲(하지중) : 5월에는
諸生皆歸還(제생개귀환) : 제생(諸生)들이 모두 돌아갔다.
僕亦下家(복역하가) : 나도 역시 집에 내려와
爲一日之勤(위일일지근) : 하루하루를 부지런히 하여
一日之間(일일지간) : 하루 사이,
一哦之頃(일아지경) : 한번 읊는 동안에도
而溫故賦凡十餘首矣(이온고부범십여수의) : 옛것을 익히고 연구하여 부(賦)를 모두 10여 수 지었다.
嘗作議政府賦姑蘇臺賦(상작의정부부고소대부) : 시험 삼아 의정부부(議政府賦)와 고소대부(姑蘇臺賦)를
皆百餘句(개백여구) : 모두 1백여 구(句)씩 지어보았는데,
始復其故所學(시부기고소학) : 그제야 비로소 옛날 배웠던 것을 회복하여
庶有不棄之期焉(서유불기지기언) : 거의 학업을 포기하지 않을 기대가 있게 되었다
及秋擧於試(급추거어시) : 가을에 이르러 시험에 응시했으나
卒無成(졸무성) : 끝내 이룬 것이 없어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莫恥之甚而志氣頹墮(막치지심이지기퇴타) : 그래서 지기(志氣)가 쇠퇴하여
竟無一慨念到胸次(경무일개념도흉차) : 끝내 한 생각도 마음에 가짐이 없이
優游卒歲(우유졸세) : 그럭저럭 그해를 마치면서 보던 것은
挾大學一部而已(협대학일부이이) : 오직<대학(大學)>한 책뿐이었다.
及聞罷榜之奇(급문파방지기) : 그 후 파방(罷榜)되었다는 기별을 듣고는
旬日於山寺(순일어산사) : 열흘 동안 산사(山寺)에 올라가 있으면서
誦元賦抄(송원부초) : 원부(元賦)의 초(抄)한 것을 외곤 하였다.
然未識沿河之步(연미식연하지보) : 그러나 하해(河海)로 들어가는 길을 몰라
而徒趦趄於斷潢(이도자저어단황) : : 한갓 근원 없는 두절된 연못가에 머뭇거리며
海未卽而見未克大(해미즉이견미극대) : 큰 바다에 나아가지 못하여 소견이 커지지 못했으니,
勞思長懷(로사장회) 아무리 속을 태우고 길이 생각을 하여도
亦末如之何也已(역말여지하야이) : 또한 어쩔 수가 없었다.
從事於有司(종사어유사) : 어떤 직무에 종사도 해봤지만
亦無聞焉(역무문언) : 역시 남에게 알려진 것이 없었다.
然作疑義甚好(연작의의심호) : 그러나 의의(疑義)를 지은 것이 매우 좋아
人皆許之(인개허지) : 사람들이 모두 허여하였으므로,
意其一得(의기일득) : 일득(一得)이 있으리라 생각했었지만
而竟不得(이경불득) : 끝내 얻지 못했으니,
命也可如何(명야가여하) : 운명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負級山齋(부급산재) : 내가 책을 싸들고 산재(山齋)로 가 있는 동안 때는
時已夏孟(시이하맹) : 이미 초여름이 되었다.
牧伯李公弘幹召諸生講于校(목백리공홍간소제생강우교) : 목사(牧使) 이공 홍간(李公弘幹)이 제생(諸生)들을 불러모아 학교에서 강의를 하였으므로,
余亦從而蹁躚(여역종이편선) : 나도 좇아가서 함께 어울려 지내며
奄冉日月(엄염일월) : 언뜻 세월을 보내고
六月之晦(륙월지회) : 6월 그믐에는
罷接而還(파접이환) : 파접(罷接)을 하고 돌아왔다.
越八月初吉(월팔월초길) : 그 후 8월 초하루에는
牧伯更集十餘輩講小學(목백경집십여배강소학) : 목사가 다시 생도 10여 명을 모아놓고<소학(小學)>을 강의하였으므로
余亦齒焉(여역치언) : 나도 거기에 끼었다.
仍登名校籍(잉등명교적) : 인하여 교적(校籍)에 이름을 올리고
奔走率所職(분주솔소직) : 분주히 맡은 직무를 수행하였다.
路又極遠惡(로우극원악) : 그러나 길이 또 매우 멀고 험하여
一出入(일출입) : 한번 출입하기가 힘들어서
息輒四五日(식첩사오일) : 쉬었다 하면 4-5일씩 쉬어버림으로써
業廢而志弛(업폐이지이) : 학업이 폐해지고 뜻이 해이해지니,
其爲弊也可勝言哉(기위폐야가승언재) : 그 폐단을 이루 다 말할 수 있었겠는가.
道途之中(도도지중) : 가고 오고 하는 가운데
忽見歲暮(홀견세모) : 언뜻 세모(歲暮)를 만났으니,
古人云(고인운) : 옛사람이 이르기를
日月馬上過(일월마상과) : "세월은 말 위에서 다 보내고,
詩書篋中藏(시서협중장) : 시서는 상자 속에 쟁여 두었다.“고 했다.
不其然乎(불기연호) : 그렇지 않은가
明年甲辰(명년갑진) : 다음해 갑진년엔
牧伯宋公純(목백송공순) : 목사 송공 순(宋公純)이
選儒生求益者(선유생구익자) : 유생(儒生) 가운데 더 배우기를 청한 자들을 선발하여
俾之講誦(비지강송) : 글을 강송(講誦)하도록 하고,
必書其時(필서기시) : 반드시 그 강송하기 시작한 때를 기록하여
時已久(시이구) : 기간이 오래 되었으면
卽考其所就之如何(즉고기소취지여하) : 곧 학업 성취도의 여하를 심사하곤 하였다.
余因是讀孟子(여인시독맹자) : 나는 이를 인하여《맹자(孟子)》를 읽어
三月之晦(삼월지회) : 3월 그믐에 끝내고
畢讀韓文(필독한문) : 한문(漢文 한유의 글)을 읽다가
四月之望(사월지망) : 4월 보름에는
祗謁龍山先生函丈焉(지알룡산선생함장언) : 용산 선생(龍山先生)을 찾아뵈었다.
午月(오월) : 5월에는
將赴都會(장부도회) : 장차 도회(都會)에 가려고
見于先生(견우선생) : 선생을 뵈었더니
先生命作民嵓賦(선생명작민암부) : 선생께서 민암부(民嵒賦)를 지으라고 명하시었다.
賦成(부성) : 부를 다 지으니,
先生亟稱之(선생극칭지) : 선생께서는 자주 칭찬하였다.
讀漢文止祭文而還(독한문지제문이환) : 한문(漢文)은 제문(祭文)만을 읽고 돌아오니,
月已晦矣(월이회의) : 5월도 이미 그믐이 되었다.
六月(륙월) : 6월에는
往都會(왕도회) : 도회에 갔다가
晦則刀頭(회칙도두) : 그믐에 집으로 돌아왔다.
秋初(추초) : 초가을에는
再往龍山(재왕룡산) : 재차 용산 선생께 가서
又讀韓文(우독한문) : 또 한문을 읽다가
望後還家(망후환가) : 보름 뒤에 집으로 돌아왔다.
自是月至入月之終(자시월지입월지종) : 이달부터 8월 말까지는
困暑長臥(곤서장와) : 더위에 지쳐 마냥 누워서
對案而已(대안이이) : 책상을 마주하고 있을 뿐이었다.
九月初(구월초) : 9월 초에는
往龍山講文選(왕룡산강문선) : 용산 선생께 가서 <문선(文選)>을 강독하다가
旬時還家(순시환가) : 열흘경에 집으로 돌아왔다.
十月之吉(십월지길) : 10월 초하루에
又往龍山(우왕룡산) : 용산 선생께 가서
講商書大文(강상서대문) : 상서(商書)의 대문(大文)을 읽다가
未畢一二卷而還(미필일이권이환) : 1-2권을 못다 읽고 돌아오니
月已生魄(월이생백) : 그때가 16일이었다.
烏飛鬼走(오비귀주) : 세월이 하도 빨라
又見歲暮(우견세모) : 해는 곧 지려고 하니,
回首天地(회수천지) : 머리 돌려 천지를 돌리니
日欲晼晩(일욕원만) : 또 세모를 만났다.
更何辭哉(경하사재) :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는가
初謂自數年來(초위자수년래) : 처음에 생각하기를,
惰放成痼(타방성고) : 수년 이래로 게으르고 방탕함이 고질이 되어
學未克就(학미극취) : 학업은 진취되지 못하고
而年且壯(이년차장) : 나이만 많아진다고 여겨
甚軫于懷(심진우회) : 매우 마음에 걱정을 하였다.
庶冬朔勤修(서동삭근수) : 그래서 겨울철이나마 학업을 부지런히 닦으려니 하였으나
而立志不固(이립지불고) : 뜻이 견고하지 못하고
結習未除(결습미제) : 그동안의 습관을 제거하지 못하여
玩愒流光(완게류광) : 놀면서 헛되이 세월만 보냈을 뿐이었다.
虛度日月而已矣(허도일월이이의) :
嗚呼(오호) : 아,
余生之歲正月己卯朔(여생지세정월기묘삭) : 내가 태어난 날이 정월 초하루 기묘일이었는데,
今已百有一十己卯矣(금이백유일십기묘의) : 지금 벌써 1백 10번째의 기묘일을 맞게 되었다.
業儒之日(업유지일) : 유학(儒學)을 공부한 날도
不爲近矣(불위근의) : 꽤 오래 되었고
降生之載(강생지재) : 세상에 태어난 햇수도
不爲少矣(불위소의) : 적은 햇수가 아니건만,
棄之而未嘗及謀所立(기지이미상급모소립) : 포기를 해버리고 성립할 것을 미처 꾀하지 못했으니,
甚矣(심의) : 심하다,
余之無知也(여지무지야) : 나의 무지함이여!
其亦不善變矣(기역불선변의) : 역시 좋은 쪽으로 변화하지 못한 것이었다.
追思之(추사지) : 돌이켜 생각하니
可爲扼腕痛心(가위액완통심) : 참으로 분하고 가슴 아프기 그지없었다.
故自此以來(고자차이래) : 그리하여 그 후로
慨懷勞思(개회로사) : 슬프고 괴로운 생각에 못 이겨
中夜起坐(중야기좌) : 한밤중에 일어나 앉아
度時揣己(탁시췌기) : 사리를 헤아리고 자신을 헤아려보니,
悲來塡膺(비래전응) : 슬픔이 가슴에 가득하여
言之不可已(언지불가이) : 그것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乃編次往事(내편차왕사) : 그래서 지나간 일들을 편차하여
跡其所踐之如何(적기소천지여하) : 행해온 일들이 어떠했는가를 추적해서,
一以爲戒(일이위계) : 한편으로는 경계를 하고
一以爲勸(일이위권) : 한편으로는 권면을 하고,
而又自悲我生之不辰也(이우자비아생지불진야) : 또 스스로 좋지 않은 때에 내가 태어났음을 슬퍼하는 바이다.
抑是言也(억시언야) : 아마도 이 말은
皆前日小小之事(개전일소소지사) : 모두가 지난날의 사소한 일로써
靡有警過失造工夫者(미유경과실조공부자) : 과실을 경계하고 공부에 진취하지 못했던 일이니,
蓋記不忘耳(개기불망이) : 대체로 기억하여 잊지 않을 뿐이요,
非所與論於言之外也(비소여론어언지외야) : 말의 이외에 논할 바가 아니다.
雖然(수연) : 비록 그러하나
使之常接乎吾之耳目(사지상접호오지이목) : 그것을 항상 나의 이목(耳目)에 접(接)하게 하여
思昔伊艱(사석이간) : 옛날의 어려웠던 때를 생각하고
顧今無成(고금무성) : 지금의 성취 없음을 돌아보면서
慨乎其存乎心而不舍(개호기존호심이불사) : 개연히 그것을 마음에 두고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則其於感勵激發之效(칙기어감려격발지효) : 감격하고 분발하는 데에
亦未必無少補云耳(역미필무소보운이) : 또한 반드시 조금이나마 도움이 없지 않을 것이다.
其他事意(기타사의) : 그 밖의 일의 내용에 대해서는
心計已熟(심계이숙) : 마음속에 이미 익히 계산되어 있으나,
固未易與泓穎謀也(고미역여홍영모야) : 그것은 쉽게 붓으로 다 쓸 수가 없으므로
遂不復言(수불부언) : 마침내 다시 말하지 않는다
첫댓글 휴우~ 다 읽었슴다. ㅎ ...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론, 많이 들어봤는데..책을 직접 보진 않아서..언젠간 보게 될 지 모르겠으나,기대승이 우리나라에서는 좀 희귀성씨이고, 글을 읽어보니, 성장환경이 참 불우했네요. 영민하고 바른 사람은 일찍 가는군요. 나에게도 學性이 勃 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