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7월25일-26일(土日)雲雨
▲백두대간17차(고치령-국망봉-초암사....죽령)
해봉,메아리(27+10=37명)
![](https://t1.daumcdn.net/cfile/cafe/212B734B58BFC8181E)
♠참고
△ 국망봉(國望峰)
충북 단양군 가곡면(佳谷面)과 경북 영주시 순흥면(順興面)경계
높이 : 1,421 m
내용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높이 1,421 m. 소백산맥 중의 비로봉(1,439 m) 다음가는 고봉으로, 남서쪽으로 연화봉
(蓮花峰:1,394 m)에 이어지며, 낙엽수의 숲이 아름답다. 산의 남동쪽 기슭에는 부석사,
초암사(草庵寺),석륜암(石崙庵) 등이 있으며, 유명한 석천폭포(石川瀑布)가 있다.
선조(宣祖) 때 수철장(水鐵匠) 배순(裴純)이 왕이 승하하자 이곳에 올라와서 왕성을
바라보며 3년 동안 통곡하였다 하여 이 산을 국망봉이라고 이름지었다.
♡초암사(草庵寺)
소재지 : 경북 영주시 순흥면 배점리
종파 : 조계종
창건시기 : 신라시대
창건자 : 의상대사
내용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소백산 국망봉 남쪽 계곡 아래에 의상대사가 세운 조계종 사찰로, 의상이 부석사
터전을 보러 다닐 때 초막을 짓고 수도하며 임시 기거하던 곳이다. 부석사를 지은
후 이곳에 다시 절을 세웠는데, 우람한 거석 축대, 주춧돌 등으로 미루어 규모가 큰
절 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소백산의 절경 속에 자리잡은 청량도량으로 6?25전쟁으로 파괴되어 다시 지은
법당이 남아 있으며, 초암사 삼층석탑(경북유형문화재 126)과 초암사 동부도
(경북유형문화재 128), 초암사 서부도(경북유형문화재 129) 등을 소장하고 있다.
높이 3.5m의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하대에 조성한 것으로, 사각형 지대석 위에 세워진
이중기단의 각 면석에 우주가 있고, 일주씩 탱주를 모각 하였다. 각 층 옥신에도 우주
가 있고, 옥개석 아래 4단의 받침이 있다. 상륜부는 없지만, 주변에 그 파편이 흩어져
있다. 주변에 금성단, 소수서원, 죽계 구곡, 순흥읍 내리 벽화고분, 쌍계사 등의 관광지
가 있다.
♧산행 코스
03시20분 좌석리
04시20분 고치령
05시10분 헬기장
05시50분 식사
06시05분 1032봉
08시55분 국망봉
09시05분 초암사 갈림길
10시40분 초암사
11시30분 주차장 .
..........
12시33분 죽령
총 8시간10분
☞☞☞전국적으로 10-100m/m의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가볍지 못한 발걸음으로 잔득 찌푸린 밤길을 나섭니다.
부산진역 앞에 주차해있는 관광버스 안, 메아리 쪽은 7,8명
해봉 쪽은 20여명. 예정시간보다 5분 늦게 출발합니다.
변함없는 박대장님의 산행일정에 대한 자세한 안내 방송.
언양 휴게소에서 소형 플래시를 사고, 능숙한? 운전기사의 운전솜씨로
좌석리에 도착 한 게, 예측시간보다 40분 빠른
02시50분.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습니다.
박 대장님이 대원들을 그냥 잠들게 하고 1시간 뒤에 출발하려고 했는데
한 두 사람이 내리기 시작하자 끝내 모두 일어나 지난번 예약한 1톤 트럭이
나와 20분 거리인 고치령까지의 비 포장로를 달립니다.
심야, 트럭 화물칸에 선 체 달리는 색다른 기분을 느끼며 고치령(古峙嶺) 도착.
나머지 대원들을 태워오기를 기다리며 산행준비를 하는데 빗발이 떨어집니다.
옛 이름은 천적령(串赤嶺)인데 신라시대에 대사(大寺: 큰 가람)를 지으려고
터를 잡은 일이 있는데 그때에는 절터고개라 하였으나 차차 변하여 오래된
고개, 고치(古峙)고개라 부른답니다.
04시25분, 소백산 어의곡 코스를 타는 B팀 7명은 좌석리에 잔류하고
A팀 27명은 각자 우의를 챙겨 입고 램프를 비추며 좌측 능선으로 오릅니다.
우의 위에 푸득푸득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불빛만 내려다보며 걸어갑니다.
오늘은 캠코더만 촬영해도 벅찰 것 같아 캐논은 배낭 속에 잠자고 863봉은
어둠속에 언제 넘었는지 모릅니다.
05시10분, 비는 거치고 앞사람의 뒤만 보며 따라가다 희미한 여명이
밝아오면서 오른편 등산로를 따라 올라 선 곳이 헬기장인데 길을 잘못
들었는지 되돌아 내려와 왼편으로 꺾어지는 희미한 등산로를 따라 바쁘게
내려갑니다.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는 법,
쉽게 내려가지만 비에 젖은 등산로에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더 힘을 씁니다.
05시50분, 다시 오르막을 거쳐 올라선 1032봉 헬기장에서 박 대장이 인원점검,
잠시 휴식하고 완전히 밝았으나 사방이 운무로 덮여 전혀 조망이 되지 않습니다.
06시05분, ‘해발 1032m 상월봉 6.7km’의 이정표를 거쳐 짙은 안개구름 속에 쌓인
숲속을 물먹은 잡초로 덥힌 등산로를 따라 계속 걸어갑니다.
06시45분, 세 번째 헬기장에서 전원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발걸음을 멈춥니다.
준비해간 빵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하고 궂은 날씨 더 지체할 필요가 없어
06시52분, 박대장의 선두로 출발합니다. 적당한 위치에서 생기 찬 대원들이
걸어오는 모습을 캠코더에 담습니다.
주 대원의 부자와 송승환 대원, 초등학교 4학년 꼬맹이,
집행부 청소부 하회탈이 캠코더 앞에서 V자를 만들며 익살을 피웁니다.
원추리가 피어있는 등산로를 따라 부지런히 걸어갑니다.
자식사랑은 이런 산행으로 표시 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호연지기, 극기 훈련도 좋지만
대자연속에 함께 어려움을 겪으며 부자의 정을 서로 뜨겁게 느끼는 게,
이보다 더 좋은 가정교육이 있을까요?
06시55분, 지나온‘마당치2.5km, 연화동, 상월봉4.5km'갈림길이정표를 지나
간간이 멎는 가랑비 속에 뿌연 주변을 촬영하며 가다보니 선두와 점점
거리가 멀어져 갑니다.
07시15분, 등산로에 부러져 가로누운 고사목을 건너고
계속되는 빗줄기속에 가끔 우의 속의 캠코더를 꺼내어
운무속의 주변을 담으며 갑니다.
08시, 오른편으로 참나리, 붓꽃, 제비꽃등의 야생화 군락지가
나타나 정신없이 캠코더에 담습니다.
또 다른 1032봉과 1061봉,
구인사로 연결되는 신선봉 갈림길의 1272봉을 넘고
늦은맥이 고개를 지나는데 다시 굵은 빗줄기로 변신하여
캠코더 촬영도 포기하고 배낭에 넣습니다.
08시40분, 다시 변신하는 가랑비속에
’해발1269m 상월봉0.1km‘ 이정표를 지나고
’국망봉 0.6km‘이정표에서 원추리와 앵초, 참나리등
야생화 군락지를 지나면서 캠코더를 배낭에서 꺼내어
바쁘게 촬영하는데 뒤따라오든 주대원이 B팀으로 빠지자고 합니다.
후미에서 따라오든 장년 부부가 언제 앞섰는지
후미담당 집행부 젊은이와 국망봉을 지척에 두고
안개와 비바람 속, 바위사이에서 다시 아침식사를 하기에
벌써 식사하느냐고 했더니
“A팀으로 끝까지 따라 가기 위해 더 먹어야 해요!”
합니다.
08시57분, ‘국망봉 해발1420m 초암사5km 비로봉3.1km’
이정표를 지나면서 다시 빗발이 굵어져 안개와 비 탓으로
캠코더 촬영의 어려움을 느끼고,
국망봉-비로봉-연화봉-죽령은 전에 몇 번 촬영했고
장비보호를 위해 B팀으로 빠지기로 마음을 굳힙니다.
09시03분, ‘초암사’ 방향표지판에서 좌로 내려갑니다.
‘어의곡’에서 올라온 회원 7명을 포함하여
B팀은 21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임 대장이 리더로 완만한 경사에 흙이 많은 등산로를 따라 내려갑니다.
09시25분, 비탈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오른쪽 숲 너머
멀리 소백산 자락의 능선이 희미하게 보여 다시 캠코더를 꺼내어
촬영 후 비탈을 타고 내려갑니다.
10시05분, 계곡을 끼고 내려가다
10시27분, 개울을 건너면서 맑은 물에 세수를 하고
진흙탕 길에 뭍인 진흙 바짓가랑이와 등산화를 씻고
10시38분, 자연석에 ‘나무아비타불’이라고 음각한
큼직한 석비가 서있는 ‘초암사’ 大寂光殿 앞마당에 들어섭니다.
초암사와 관련이 있는지 모시 남방 샤스에다 안경을 쓴 장년이
초암사가 부석사와 같은 해에 건립되었다며
그 증거로 저 아래에 있는 축대가 부석사 축대와 똑 같은 공법으로
쌓았다며 일장 연설을 합니다.
다시 내리는 굵은 빗발을 맞으며 내려가다 비는 거치는데
주변의 경관이 아늑합니다.
콘크리트 포장로를 따라 내려가다 길가의 사과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 젊은이들이 따서 먹는 사과서리의
재미를 즐깁니다.
11시25분, 주차장 도착.
한데 관광버스는 문이 잠겨있고 기사양반이 보이지 않습니다.
누군가 식사하러 간 모양이라고 합니다.
많은 회원들이 비를 맞으며 기다립니다.
늦게 돌아온 기사아저씨, 미안해하며
12시, 더욱 굵어진 빗발을 맞으며 죽령으로 출발합니다.
풍기에서 임 대장을 비롯한 16,7명의 회원들이 목욕과 식사를 한다며
내리고 어떤 의무감? 때문인지...
비를 맞으며 완주하는 대원들의 하산하는 모습을
촬영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냥 죽치고 앉아 죽령으로 올라갑니다.
죽령(竹嶺)은 높이 689 m. 대재라고도 하는데 백두대간이 영남과 호서를
갈라놓는 길목에 해당, 삼국시대 이래로 봄, 가을에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던
곳이며 조선시대에는 죽령사(竹嶺祠)라는 산신사당이 있었다고 합니다.
12시33분, 부슬부슬 비 내리는 ‘죽령휴게소’도착.
김성수, 김윤근, 안승태 대장등 선두 3,4명은 이미 도착해 있다
버스에 오릅니다. 이들의 모습을 버스 안에서 계속 촬영합니다.
빗줄기는 다시 굵어지고 뒤따라 올라오는 회원들은
천문대에서는 아예 신발을 벗고 왔다는 등
모두 물에 빠진 생쥐 모습이지만 한결같이 미소 띤 얼굴이
만족감에 푹 빠져있습니다.
힘들게 완주한 기쁨은 직접 해보지 않는 사람을 모르리라.
하지만 완주하지 않고 초암사로 하산한 걸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만약 완주했더라면 촬영은커녕 캠코더는 빗물에 젖어 고장 났기 때문입니다.
비에 젖은 꼬맹이도 아빠와 함께 오릅니다.
어디 씻을 곳을 묻자 한 대원이
“식당 뒤편 화장실에 가 염치 불구하고 벗어 저끼고 샤워하고 안 왔능기요!”
하며 간이 샤워장이 있다고 알려줍니다.
13시45분, 박 대장이 후미로 도착.
집행부 젊은이에게 인원파악이 되었느냐 물으며 임 대장을 찾는데
풍기에 있다니까 별로 기분이 좋지 않는 표정이고
13시50분, 마지막으로 박수갈채를 받으며 대단한 장년 부부 팀이 오르자
곧 출발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 백두대간 종주는 비 때문에 캐논으로 촬영을 한 번도
못한 걸 뒤늦게 깨닫습니다.
풍기에서 1시간30분을 주니 목욕과 식사를 하라고 박 대장이 안내방송을 합니다.
느긋하게 2500원짜리 텅 빈 대중탕. 들어 닥친 많은 손님 때문에 주인은 정신을
못 차리고 급히 물이 채워진 따끈한 욕탕 안에서 피로를 풀고 느긋하게 나와
식당에서 곰탕으로 민생고를 해결합니다.
15시30분, 풍기를 떠납니다.
아직 오해가 풀리지 않는지 투덜대는 박 대장,
여유 있는 임 대장간의 신경전은 계속되어 귀로에
‘봉정사’ 관광은 말도 꺼내지 못하고 대신 기사양반에게
보물 ‘제비원’을 캠코더로 촬영하려고 하니 미리 알려달라고 부탁하자
16시28분경, 촬영준비 하라는 소리에
기사옆자리에 앉아있든 박 대장이 자리까지 양보해 줍니다.
움직이는 윈도 브러시 사이로 서행하는 버스 안에서 석불 촬영에 성공합니다.
28번 국도를 달리다 주유와 대원들의 배설을 위해
주유소에 들렸을 때 박 대장에게 저번에 촬영한 비디오테이프를
갖고 왔는데 어떻게 하겠느냐 니까 모르겠다며 임 대장에게 물어보 라고 합니다.
그리고 도중 정차 없이 곧장 달려
19시42분, 부산T/G 통과, 종착지 부산진 역전에 하차할 때
그 사이 풀어진 박 대장이 임 대장과 버스 승강대 밑에서
수고 하셨습니다며 인사합니다.
그리고 박 대장이 비디오는 나중에 종합 편집하여
보도록 하자며 손을 내밉니다.
산 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