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검진
최방식
영하권에 있는 겨울 날씨는 한 낮에도 차갑다. 아파트 문을 나서니 차가운 바람이 볼을 스친다. 보폭을 조금 크게 하고 빠른 걸음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자 순식간에 안경에 김서림 현상 때문에 앞이 안보여 안경을 벗었다.
언제까지 먹어야 하는지 모르는 혈압약과 콜로스테롤 약을 처방 받기위해 월말이면 어김없이 병원에 와야 한다. 아마 내가 죽기 전까지 병원 문지방이 닳도록 와야 될 것 같다. 혈압 약을 복용하다가 몇 년간 약을 끊은 적이 있었다. 퇴직 후 유유자적 농장 일을 하면서 좋은 공기 마시며 채식 위주로 식사를 하다가 의사와 상의도 없이 혈압 약을 먹지 않았다. 이유는 병원에 가기 싫어하는 나의 게으른 태도 때문이었다. 나이가 들면 어느 정도 혈압은 조금 높게 나오는 것이 정상이며, 서양에서 정상혈압 보다 우리나라의 정상혈압이 조금 낮게 책정되어 있다는 의료정보도 한 몫을 했다. 또 매일 약을 찾아 먹어야하는 것도 귀찮았다.
그날은 혈압약이 없어 며칠 약을 먹지 않았다. 목욕탕에 갔다가 혈압기가 있어 혈압을 재어보니 정상혈압이 나오는 것을 보고 나는 깜작 놀랐다. 약도 복용하지 않았는데 정상혈압이었다. 기계가 고장은 아닌 것 같은데, 이제 혈압이 정상적으로 돌아 왔나보다 하고 상기된 얼굴에 들뜬 마음으로 아내에게 큰 일이 난 것처럼 자랑을 하였다. 이날 이후 매일 먹어야하는 혈압약과 이별을 하고 4년 동안 혈압 약을 복용하지 않았다. 목욕탕에 갈 때 마다 혈압을 재어보면 수치가 들쑥날쑥 이었다. 어떤 날은 정상이고 어떤 날은 높게 나오곤 했다. 높은 수치가 나올 때 마다 은근히 걱정은 하면서도 약을 먹지 않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작년유월 초순 친구의 사무실에서 지인을 우연히 만나 그 분이 근무하는 종합검진센터에서 종합검진을 받았다. 한 달이 지난 칠월 중순이 되어서야 두툼한 봉투의 건강검진 결과서를 받아 보았다. 첫 페이지에는 친절하게 종합소견을 넣어 건강 상태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별지로 온 검진 결과지를 보고 깜작 놀랐다. ‘MRI상에 우측 내 경동맥에 동맥류 의심 소견입니다. 조영제를 사용한 MRI 검사를 권합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결과에 놀라 다시 확인하고 읽어 보았지만 결과는 변함이 없었고 불안함이 자리를 잡았다.
걱정스런 마음으로 검진센타에서 상담을 하고 바로 대학병원에 진료예약을 하니 한 달 후로 잡혔다. 하루하루가 그렇게 빨리 지나가던 날들이 그날부터 하루가 얼마나 긴지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 같았다. 병의 증세를 걱정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그날까지 기다려야 된다고 다짐했지만, 생각으로만 그칠 뿐 만약에 잘못되면 어떡하지 하며 신경이 쓰였다. 그동안 병세가 완화되어 더 이상 진전되지 않기만 바랄뿐이었다. 얼마 전 유명배우가 이병으로 갑자기 사망 했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었기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은근히 걱정이 되고 불안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병이라 그런지 병에 대한 걱정이 무디어 졌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진료예약 일이 되어 담당교수님을 만났다. 교수님이 영상을 판독하면서 첫마디가 “어떻게 이것을 알게 되었느냐”고 물었고, “건강검진에서 발견되었다”고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조기에 발견이 되어 참으로 다행이다.” 하면서 모니터 나타난 영상을 설명하며 수술을 해야 한다며 한 달 후에 수술 날짜를 잡았다.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할 때 너무 충격적이었다. 더군다나 뇌 부분을 수술한다니 온몸이 얼어붙었다. 담당교수님께 이 병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인지 물어 보았다. 원인은 아직은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지만, “혈압, 당료, 술, 담배 스트레스 등에 의하여 생기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약간의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운 증세가 나타나는 사람도 있지만, 무서운 것은 대부분 아무런 아픔이나 증상을 잘 느끼지 못하는 병”이란 것이다. 현대의학이 아무리 발달 했다고 하지만 아직 풀지 못한 난제들이 많은 것 같다. 그날 친구의 사무실에서 그분을 만나지 못했다면 격년제로 받는 일반적인 건강검진을 받고는 이것을 발견하지 못 할 수도 있었는데 그분을 만난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다.
이제 또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면서 인터넷으로 경동맥에 관한 자료를 살펴보니 상세하고 많은 정보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그중에 시술을 하게 되면 높은 성공률과 안정성이 있다는 정보가 기분을 한결 밝게 해 주었다. 이제 겉은 멀쩡한데 환자 아닌 환자가 되어 하루하루 안정을 취하며 살아 갈 수밖에 없었다.
예약한 입원일 열흘을 앞두고 아내가 코로나에 감염되었다. 한 달 전 병원에서 수술 상담을 받을 때, 부산에서만 하루에 삼천여명이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었다. 만약 코로나가 확진되면 보호자와 함께 PCR검사에 음성 확인판정을 받아 와야 된다며 미리 알려 주었다.
평소 집에서 아내가 헬스장에 다니기에 다중시설을 이용하는 사람은 당신뿐이니 코로나에 걸릴 확률이 제일 높아 조심해야 된다고 일러두었다. 하루는 콧물이 흐르고 감기증세가 있다하여 병원에 빨리 가라고 했지만, 내일이면 낫을 것 같다며 내 말을 묵살을 하였다. 이튼 날 기침까지 하며 증세가 심하여졌다. 병원에 가니 코로나에 확진판정을 받았다. 다음날 나도 목이 아프고 기침을 하여 병원에 갔더니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 다행이 의사 선생님이 백신을 맞았다면 요즘 코로나는 감기처럼 지나가니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위안이 되었다. 모처럼 휴가차 친정에 쉬로 온 딸과 손자도 코로나에 확진이 되어 온 집안이 쑥대밭이 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무엇이든지 잘 먹던 손자가 열이 나고 입맛이 없어 끙끙거리며 누워있는 것이다. 다행히 며칠이 지나자 감기처럼 지나갔고 모두 원래대로 건강한 모습으로 회복되었다.
추석을 닷새 앞두고, 주일 오후 3시 수술을 받기위해 약속된 날짜에 병원에 도착했다. 아내는 보호자로 왔지만 구청에서 발송된 코로나 확진기간을 알리는 문자를 삭제해 버려서 보호자에서 배재되어 발걸음을 집으로 돌려야 했다. 졸지에 보호자 없이 홀로 병실을 찾아갔다. 가방에서 세면도구를 꺼내 서랍장에 넣고 옆 칸과 분리되는 커텐을 치고 침대에 누웠다. 낮선 병실 천장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눈을 감으며 뇌수술을 해야 하니 걱정과 두려움이 엄습했다. 기도하면서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음이라.”(이사야10장11절)는 주님의 말씀이 위안이 되었다. 집도하는 의사선생님께도 주님이 함께 해 주실 것을 기도했다. 저녁식사는 환자식이 아닌 정식이 나왔다. 누가 봐도 멀쩡한 사람이 환자복을 입고 있다. 뉴스에는 강풍과 폭우를 동반한 강력한 태풍이 올라오고 있으니 사전 피해예방을 강조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딸이 보호자로 병실을 찾아왔다. 지원군으로 찾아온 딸을 보니 나도 모르게 반가움과 웃음이 나왔다. 어제 엄마의 전화를 받고 직장에 휴가를 내고 달려온 딸이 고맙고 예쁘게 보였다. 이어 간호사들이 링거를 꽂고 조영제를 투입하고 영상촬영실에서 MRI를 찍었다. 부분 마취를 하여 영상촬영을 하는 동안 무척 고통스러웠다. 특히 뇌로 밀려오는 파도 같은 후끈한 열기의 느낌은 여러 차례 반복 되었다. 그때 마다 “올라갑니다.” 경고를 하고나면 눈에는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이 빤짝이다 반딧불처럼 사라지곤 했다. 나의 양손은 힘을 주며 침대난간을 단단히 붙잡았다. 오랜 시간이 흘렀을 것 같은데 영상촬영을 마치고나니 4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병실로 돌아온 후 온 몸에 얼마나 힘을 주었든지 기운이 고갈 되었다. 이것도 확실한 병의 진찰을 알기위한 조치로 몸에 고통이 따르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 드려야 했다.
다음날 오후 담당교수님과 면담을 하였다. 모니터에 나타난 영상은 선명하게 뇌의 동맥을 볼 수 있었다. 우측 내경동맥에 동맥류 0.3센티가 부풀어 올라 꽈리 모양을 하고 자리 잡고 있었다. 0.3센티라고 하지만 영상을 확대 시켜서 그런지 내 눈에는 제법 크게 보였다. 영상속의 꽈리를 커스로 가리키며 교수님이 “꽈리가 크면 수술을 해야 하고, 적당히 크면 시술을 해야 하지만 이건 너무 작아 시술도 하기 어렵다며 1년 후에 다시 검사를 하여 결정했으면 좋겠다.”는 교수님의 설명이었다. 딸은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몇 가지 질문을 교수님께 했지만, 나는 시술도 하지 않고 1년 후 검사를 해보고 결정하자는 말 외에 다른 말은 들리지 않았다. 안도의 숨을 쉬었다. 사람은 때가되면 생로병사를 받아 드려야 하지만 이정도의 증상에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이 병은 치료약도 없다. 1년 동안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건강관리를 잘 한다면 증상을 완화시켜 주거나 더 이상 진전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 기대를 걸어 볼 작정이었다.
그런데, 담당교수님과 처음 면담 할 때 내가 제출한 CD영상을 보면서 왜 수술을 해야 된다고 단호하게 말하며 수술 날짜를 잡고 나를 놀라게 했는지 원망과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건강검진에도 동맥류에 0.3센티 의심소견이 있다고 했고 그 영상을 보며 내게 설명까지 했는데, 그동안 두 달 동안 가슴조이며 걱정 했던 일들을 생각하니 화가 나고 억울하기 까지 했다.
태풍이 지나가고 있는 창밖의 강한 비바람은 오진이라는 말을 날려 보내는 것 같았다. 태풍이 동해안의 먼 바다로 물러가고 태양이 환하게 비추는 추석 전날 다행히 퇴원을 하여 가족들과 함께 추석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 퇴원을 하고난 뒤에도 혈압을 재어보면 여전히 들쑥날쑥 이었다. 건강관리를 나름대로 하고 있었지만, 동맥류에 혹(꽈리)이 생기는 것도 고혈압과 관계가 있다는 담당교수님의 말에 따라 고혈압 약을 다시 복용하게 되었다.
첫댓글 건강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느낍니다
건강을 잃어버리면 모두를 잃어 버리는 거죠.
불행중 다행입니다
걷기라도 꾸준히
하시는게 좋을듯합니다
감사합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