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돌문화공원
언제 2024년 5월 29일
매 월 마지막 수요일은 무료 관람이라서 돌문화공원 탐방수업 순서를 바꿔 실시하였다
남조로 지나갈 때 마다 넓은 주차장을 보며 한번 가 봐야지 했는데 벼르다 수업 때문에 드디어 방문하게 된 돌문화 공원-넓고 그늘이 없다는 소문만 듣고 미뤄 왔었는데 들어 오자마자 듣던거와 달리 숲길이 있어 기대와 설레임으로 교수님 뒤를 따라 갔다
숲길을 나와 처음 만난 건 제주도 창조신 설문대 할망이 큰 키를 자랑하다 빠졌다는 물장오리를 상징한 연못이었다
제주도의 삼다라고 알고 있는 돌 바람 여자는 사실 제주 사람에게는 삼재였다고 한다
돌이 많은 땅에서는 농사가 안되고 바람은 많이 불어 풍랑이 거세지면 고기잡이 나간 배가 조난을 당하여 남자들이 많이 죽어 상대적으로 여자가 많아졌다고 한다
오늘의 주제 제주의 돌은 삼재를 이겨내어 살아온 제주민의 삶이 느껴지는 제주의 정체성이라고 한다
돌문화공원은 제주의 정체성, 향토성, 예술성을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는 곳으로 조성되었다
70~80년대 제주를 오면 들렸던 기억 속의 돌 나무 뿌리를 볼 수 있었던 목석원(아라동)을 만드신 백운철님이 목석원이 협소하다고 할때 북제주 군수와 연결되어 100만평이나 되는 땅을 기획 단장으로 위임되어 의지와 고집으로 만들어진 곳이라고 한다
백운철님은 돌문화 공원 조성의 의의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아 제주의 형성 과정과 화산활동, 신화, 역사를 비롯해 제주 민속 문화를 시대별로 정리해 후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배려해서 만든 제주다운 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물장오리를 지나면 돌문화 공원의 10경중 3경인 전설의 통로에서 오백장군이 사열하고 있는 모습을 연상케하는 기암거석들을 만난다
양쪽으로 커다란 현무암들이 마치 도열하듯 세워져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현무암 생성당시 밑부분은 단단하고, 윗부분에만 기체 빠져 나간 구멍이 있어 물이 빠져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현무암은 구멍이 많아 물이 빠져나가는 걸로 배웠는데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여적 뭘 배우고 가르쳤는지....
숲길 끝 물장오리의 분화구 모습의 하늘 연못이 보이기 시작할때 비양도에서 익지 않은 오디를 보며 아쉬워 했는데 여기서 맛나게 익어 주렁주렁 달린 오디를 만나 반가움에 하나씩 따서 자연을 맛보는 즐거운 시간도 가졌다
앞에 펼쳐진 하늘 연못은 한라산 백록담, 설문대할망 죽솥, 물장오리를 상징하며 돌문화 박물관 위에 원형으로 만들어진 대형 연못으로 지름 40m, 둘레 125 m 크기이다
하늘 연못은 무용가 홍신자의 결혼식 이벤트를 했던 곳이기도 하단다 언제가부터 장화가 준비되어 있어 사진을 찍는 포토죤이 생겼다 돌문화 공원이 처음 의도와 다르게 변화하고 있어 제주다움을 잃어버릴까봐 우려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하늘 연못 아래는 박물관이 있다 제주의 아름다운 오름 풍경을 방해하기 싫어 지상의 건물은 최소하시키고 지하에 박물관을 지었다고 한다 탐방일인 그날은 날씨도 맑고 바농오름과 큰지그리오름, 멀리 한라산까지 방해되는 것이 없어 뷰가 아주 좋았다
잔디밭을 지나 제2코스인 돌문화 역사 산책길쪽으로 가면
제주 돌민속품 야외 전시장이 시작 되었다
돌민속품 안내판에는
화산섬 제주도는 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바위 덩어리다 제주의 돌민속품들은 제주 사람들의 생활 구석 구석에 살아 숨쉬고 있다. 의 식 주생활에 농업 어업 축산 등의 생산활동 등은 물론 운반 통신 방어시설에도 돌을 이용해 왔다. 또한 경계를 나타내는 밭담, 잣성, 성담 등도 돌로 쌓고 놀이기구도 돌로 만들어 사용했다. 심지어 돌은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그 신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는 당터를 들러 싼 것도 돌이다
여기에 임시 야외에 전시된 돌민속품들을 통해 옛 선인들의 지혜로운 삶의 돌문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적혀 있었다
안내판에 쓰여 있는것 처럼 야외 전시장에는 많은 것이 재현되어 전시되어 있었다
1) 몰방애의 윗돌 알돌
육지에 연자매가 있다면 제주는 말이 끄는 몰방애가 있었다고 한다
큰돌의 몰방애는 마을 30가구 정도에 하나씩 설치 되어 정미소 역할을 하는 공공생활 용구로 이걸로 기준으로 공동체의 계를 형성하여 한가족처럼 서로 돕고 지냈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삼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2)대형 수형석
안내판에
내부는 스코리아로 채워져 있고 외부는 치밀한 용암으로 둘러싸여진 용암의 둥근 물체를 용암구라고 말한다. 이것은 종종 유동하는 용암에 의하여 스코리아 조각들을 코팅하여 이동하면서 둥근 모양으로 만들어진다. 드물게 용암의 유로에서 이탈한 용암 덩어리가 굴러가면서 둥근 모양의 용암구를 만들기도 하는데 이때는 그 내부도 치밀한 용암으로 채워져 있다. (크기 : 330cm X 160cm X 170cm)
라고 쓰여 있는데 읽어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용암이 흐르면서 나무를 감싸 안았고 나무는 용암의 열에 의해 타서 숯이나 재로 변하여 없어지며 남긴 구멍이 생긴 돌이라고 쉽게 설명해 주셨다 대형 수형석이란 말보단 용암 수형석이였으면 더 좋았을거라고 하셨다
수형석에는 바위수국이 피어 있었다 바위수국과 등수국 구분하는 방법을 설명해 주셨다
바위수국과 등수국과의 차이는 헛꽃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바위수국은 사진처럼 헛꽃이 하나씩 피었고 등수국은 헛꽃이 많이 피어 있다고 하셨다
그옆에 용암구와 대형 수형석
3) 먼나무(먼낭)
제주를 대표하는 나무의 하나인 먼나무는
쌍떡잎식물 무환자나무목 감탕나무과에 속하는 상록교목으로 가지는 털이 없고 암갈색이다. 잎은 어긋나고 두꺼우며 타원형 또는 긴 타원형이다. 연한 자줏빛 꽃이 5~6월에 피고 열매는 둥글고 지름 5~8mm이며 10월에 붉게 익는다. 관상수 조경수로 쓰이며, 한국 (제주도, 보길도) 일본, 타이완,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이 먼나무는 높이 4m 50cm, 지름 60cm, 100여 년이 넘는 수령을 지녔으며 제주의 자연석, 돌민속품, 민구류 등과 함께 탐라목석원에서 무상 기증함에 따라 2009년도에 이곳으로 옮겨져서 멋찐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4) 빌레못동굴
애월읍 어음리 70번지일대에 중기 구석기시대 빌레못동굴은 굴 근처에 '빌레못'이라는 연못이 있어 그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굴과 여러 개의 가지굴로 이루어진 용암 동굴이며 전체길이는 11,749m이다.1973년 굴 입구에서 약 900m 들어간 지점에서 갈색곰, 붉은 사슴, 노루 등의 뼈화석이 발견되었다.
발견된 갈색곰의 턱뼈와 다리배화석은 중국 주구점의 중기 홍적세층에서 출토된 것과 같고 붉은 사슴, 노루 등은 유럽의 후기 홍적세층에서 번성하였던 동물이다.이처럼 북반구에서 서식하던 대륙성 동물 뼈가 제주도에서 발견된 것은 제주도가 육지와 이어져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입증하는 자료라고 한다
5) 북촌리 바위그늘 유적
용암동굴의 무너진 곳을 이용한 대표적인 바위그늘유적이다. 발굴 조사에 의해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 탐라시대 전 후기로 이어지는 4개의 문화층이 확인되어 이 동굴이 지속적으로 주거공간으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유적의 규모는 정면폭 11 m, 높이 2.5m.길이 3m 가량이다. 신석기시대 층에서는 토기의 입술부분을 밖으로 접어 불인 겹아가리토기, 입술부분에 삼각형 또는 원형의 무늬를 줄지어 찍은 점렬문토기, 석기,골각기,불에 탄 열매 등이 출토되었다.
6) 우도 동굴유적
7) 고인돌
제주에 있는 고인돌을 모두 모아 놓았다고 한다 부족에 따라 다른 지석묘 형태를 지녔다고 한다
8) 선돌
선돌은 고인돌과 함께 거석문화의 하나로, 무덤을 표시하는 성격을가진 것으로 보이며 민속학적으로는 전설 혹은 신앙의 대상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제주도에는 가파도 고인돌군 주변에 1기의 선돌이 있다.
9) 지의류
균류와 조류가 공생하는 독특한 식물로 추운지방에서는 순록의 먹이로 사용되고 선형 방사형등 종류가 다양하고 리트머스가 지의류의 이름이라고 하셨다
10)상모리 화덕자리
전시된 화덕은 상모리유적에서 확인된 원형의 화덕 중 하나를 재 현한 것으로 음식을 익혀 먹기 위해서 만든 시설이다. 화덕은 지름 1.8m 정도의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10~30cm 정도의 자살을 깔 아 만들었으며 조사 당시 화덕 내부에서 숯이 확인되었다. 상모리 유적은 한반도의 청동기문화가 들어와서 형성된 생활유적으로 유 적의 위치와 출토유물 등을 보면, 어로를 생활기반으로 삼고 일부 수렵 채집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출토유물로는 구멍무늬토기, 골아가리토기, 붉은간토기, 돌도끼, 대팻날, 돌화살촉, 돌팔,같 판, 뼈바늘, 조개팔찌, 각종 조개껍질과 동물뼈 등이 있다
11) 석관묘
제주도내에서 흔치않는 무덤 형태로 편평하게 잘 다듬은 현무암을 서로 이어 붙여 관모양으로 짜 놓은 형태이다
소길리와 신례리의 석관묘를 재현 한 것으로 다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고려시대의 지배층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 후기가 되어서 비로소 목관이 나오기 시작 되었다고 한다
보고 듣고 하는 사이 어느덧 즐거운 간식 시간이 되었다
각자 챙겨온 간식을 내어 놓으니 진수성찬이었다 즐거운 수다와 함께 맛있게 먹고 2부를 시작했다
12) 제주의 돌담
기능과 특성에 따라 명칭이 달랐다고 한다
돌담 밭담 올레담 축담 산담 등등
13)돌확
곡식을 찧는 조그만 돌 절구
14) 기능별 제주 돌문화
의 식 주와 기능에 대해 나뉘어져서 있었고 다양한 돌 설명을 해 주셨다 제주어의 이름들이라 낯설고 생소한 것들이 많았다
장항굽, 봉애기(기름틀), 속돌(바늘 가는 돌), 어귓돌(산담 네 귀퉁이에 놓는 돌), 잇돌(디딤돌), 돌쩌귀(문연결), 등경돌(불피우는것), 돗도구리(먹이통), 시문(신들의 문), 고레(맷돌)등등 이름을 듣고 사진을 봐도 무엇을 하는것인지 몰라 설명을 들었는데도 쓰임이 상상이 안되는 것도 있었다 그런걸 만들어 사용한 사람도 있는데......
15) 탐라왕자의 묘(왕의 묘)
능선을 따라 무덤 3기가 배치되어 있었다 맨위에 위치한 3호 무덤이 가장 먼저 조성된 것으로 1호와 3호는 잘 다듬은 판석을 세워 네귀를 반듯하게 곽형태로 짜서 만들었고 2호는 다듬지 않은 편편한 석재를 여러단 단을 쌓아 곽을 만들었다
16) 동자복과 서자복
제주성 바깥 동쪽 서쪽에 성안을 지키는 듯 세워져 있었다는 복신 미륵신앙
17) 원당사지 오층석탑
이 탑은 현무암으로 만든 제주도내 유일한 불탑으로 원나라 공녀로 갔던 기황후가 아들을 낳기 위해 풍수사를 보내 북두칠성 명맥의 장소를 찾게 하였고 원당봉 자락에 원당사와 함께 불탑을 세웠다고 전한다 그러나 당시의 사찰은 화재로 소실되었고 지금은 제주도내의 유일한 불탑인 오층석탑만 불탑사에 남아있다.
1702년 이형상 목사에 의해 제주지역 사찰이 모두 소실 되고 1908년 안봉려관 스님이 관음사를 중건하였고 원당사는 불탑이 있다는 이유로 불탑사로 이름을 바꿔 관음사 말사가 되었다
원당봉에는 원래 원당사였던 불탑사(조계종)와 나중에 생긴 원당사(태고종), 문강사(천태종) 3개의 사찰이 있다
18) 존자암지 부도
유일한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종모양의 부도이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것은 탑, 스님의 사리를 모신 것은 부도이다
19) 제주의 무덤(산)
무덤이 육지부와 구별되는 독특한 구조적 특징은 산담에 서 볼 수 있다. 산담은 무덤 주위를 원형이나 타원형 혹은 장방형 으로 쌓은 돌담으로 죽은사람과 산사람의 경계로 생각했다
산담은 경작지와 무덤의 경계를 표시하거나 마소의 출입으로부터 무덤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또 화재가 났을 때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 형태로 쌓은 것이다. 산담의 형태는 외담(홈담)과 겹담으로 구분되며, 산담의 크기는 죽은 자의 생전의 사 회적 지위나 경제적 여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즉 타원형의 산담은 외담 형식으로, 비석이나 상석 등 가장 기본적인 석물조차 설치되지 않아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이 임시방편으로 무덤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장방형의 산담은 겹담형식으로, 비석 등의 기본적인 석물은 물론 동자석, 문인석, 망주석 등도 갖추고 있어 지위가 있거나 부유한 이의 무덤으로 보인다. 그 밖에 제주도의 무덤 중 고려시대 말기~조선시대 초기의 직사각형 호석이 둘러진 방묘 보다는 축소된 형태로 직사각형의 틀을 만들고 그 외에 봉 토를 쌓은 무덤의 형태도 드물게 찾아 볼 수 있다
어귓돌: 산담을 쌓고 맨 마지막에 사위에게 놓으라는 돌로 경계를 삼는 돌이다
20) 무덤에 세워지는 석물
동자석: 제주에만 있으며 사후세계를 믿고 혼령들과 놀아주기 위해 만들어서 익살스런 표정이 많다 정원석으로 쓴다고 육지로 많이 반출되기도 했단다
망주석: 망보는 용도로 임금 묘에 쓰다가 조선이후 세도가 무덤에서도 보인다
문신상 무인상: 제주에는 없었다
무덤 오른쪽 위 제단은 땅신에게 제를 올리기 위해 마련되어 있었다고 한다
21) 제주의 민간신앙
제주도는 일만 팔천의 신들이 존재하는 신들의 고향이라 말한다, 바다로 둘러싸인 해양환경과 화산섬지대, 기후 등의 자연조건하 에서 풍요로운 수확과 집단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제주민의 삶 속에는 다양한 신앙행위가 존재하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마을의 당을 본향당이라 한다. 본향은 제주사람들의 고향이라는 뜻이 다. 이곳의 당신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마을공동체의 삶과 마을 주민 개개인의 마음의 위안을 찾도록 보살펴 준다고 믿는다. 제주도의 민간신앙에 있어서 돌은 신앙의 성소. 제단, 신성한 공간과 세속적인 공간을 구분하는 울타리, 풍수지리적으로는 마을의 허한 곳을 보강하는 등 중요한 요소로 이용되며, 또한 돌 그 자체가 신체가 되어 신앙의 대상이 된다. 이곳은 돌과 관련된 민간 신앙을 엿볼 수 있는 석물들을 전시해 놓은 공간이 숲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김녕 서문하르방당
: 숲속 이끼로 덮혀 보이지 않아 마침 방문했던 곳이라 추가 사진을 첨부 합니다
22) 정주석
제주도 민가에는 마을길에서 집안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올레가 있었고 올레 양 어귀에는 구멍이 뚫려있는 나무기둥이나 돌기둥을 세워 놓았다 나무로 되어 있는 것은 정주목 돌로 된 것은 정주석이라 불렀다. 정주석에는 1~5개의 구멍이 있고 이 구멍에 걸쳐 놓는 나무를 정낭이라 부른다. 정주석에는 경계표시, 소와 말의 출입방지, 주인이 집안에 있고 없음을 전달하는 수단 등의 기능이 있다.
23) 고레(맷돌)
24) 죽솥을 상징한 연못과 오백장군
25) 샤스타 데이지 꽃밭
돌문화 공원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 같다 그냥 지나쳤으면 몰랐을 것들로 가득 찬 곳이었다
오늘은 배우며 후기 담당이라 교수님 한걸음 한걸음, 말씀 한마디 안 놓치려고 따라 다니느라 바쁜 탐방이었다 그랬으면서도 후기 작성하려니 놓친 것이 많아 찍어온 안내판과 인터넷을 뒤져야 연결이 되었다
후기 쓰며 정리가 많이 되었으니 마음 편하게 여유롭게 다시 방문해서 돌아보며 제주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반나절 탐방 수업에 듣고 본 것이 어찌나 많은지 써도 써도 진도가 안나가더니 드디어 후기 쓰기가 끝났다
첫댓글 우리 경늠샘 사진은 역시 좋아^^알찬 글 쓰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돌문화공원 개인적으로 참 좋았는데 샘 글 읽으며 다시 기억 소환중^^
하늘 곱고 바람 맑은 날…
우리 님들 가슴도 살짝 부풀어 들뜬 듯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졌던 날…
사진도 참 시원하고 이뻤던 날…
어마무시하게 마니 쓰셨네요
김녕 자료까지 직접 올리시고ㅎㅎ
마니마니 수고하셨어요~^^
쌤~
수고 하셨습니다~♧
늘 느끼는거지만
후기글을 읽으메
잠깐 나갔던 기억이..
스쳐가면 복습을 해봅니다.
잠시뒤면 내머리속에 지우개가 되지만요~♧
오늘도 즐건 하루 되세요~♧
돌문화공원이 영상 칼럼 같습니다.
선생님의 제주돌문화 글을 읽으며 제주다움을 생각합니다.
해맑게 자란 지영나무(?) 사진도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반나절 탐방에 보고 들은 것이 어찌나 많은지' 라며, 이리 빠짐없이 정리하시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다시 방문하실 때 저도 슬쩍 맨몸으로 따라가면 콩고물 묻힌 인절미가 될 듯 ㅎㅎ
우리 문탐수업의 수준이 갈수록 하늘을 찌릅니다. 다시 복습하듯이, 부족한 부분은 인터넷으로 스터디하면서 꼼꼼하게 정리하여 두고 두고 좋은 공부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많았습니다.